새로운 농촌사회학

한국농촌사회학회

차 례

머리말

제1장 농촌사회학이란 무엇인가(김철규)

1. 사회학과 농촌사회학

2. 농촌사회학의 역사와 현황

3. 농촌사회학의 이론적 시각

4. 농촌사회학의 전망

제2장 농촌인구의 변동과 전망(김태헌)

1. 농촌과 인구 개념의 기초

2. 농촌인구 및 인구구조의 변화: 1960∼2010

3. 농가인구의 변화: 1980∼2010

4. 농가인구의 장래전망

5. 요약 및 시사점

제3장 농촌가족의 구조와 변동(김흥주)

1. 가족과 농촌가족

2.농가의 가족구조와 변동

3. 농가의 가족문제

4. 농가 변동의 메커니즘

제4장 농촌조직의 다양성(윤수종)

1. 농촌조직의 유형화

2. 농촌조직의 전개과정

3. 생산조직의 양태

4. 농업관련 조직

5. 농민조직

6. 지배통제조직

제5장 농민운동의 전개과정(윤수종)

1. 농민운동의 의의

2. 8·15 직후 한국전쟁 시기의 농민운동

3. 1950∼1960년대의 농촌운동

4. 농민운동의 성장과 전농의 결성

5. 전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

6. 여성농민운동

7. 농민운동의 새로운 전개

제6장 농업생산과 과학기술(박민선)

1. 과학기술과 사회

2. 농업생산의 특성과 농업기술

3. 현대 농업기술의 발달과 농업의 산업화

4. 농업기술의 전파와 수용

5. 한국 농업과 기술

6. 지속가능성과 적정기술

제7장 농촌개발과 농촌계획(송정기)

1. 농촌개발의 개념과 접근방법

2. 신자유주의 발전전략과 대안적 농촌개발 및 계획

3. 한국의 농촌개발과 계획의 정책적 전개

4. 한국의 농촌 정주권 개발과 공간계획

5. 대안적 농촌개발과 계획의 과제

제8장 농촌 지역공동체의 변화와 발전(이해진)

1. 농촌사회와 지역공동체

2. 농촌 지역공동체와 마을만들기

3. 농촌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자본

4. 농촌 지역공동체와 리더십

5. 농촌 지역공동체와 귀농 · 귀촌

6. 농촌 지역공동체의 재구조화와 과제

제9장 농촌복지(박대식)

1. 농촌복지란 무엇인가?

2. 농촌복지가 왜 필요한가?

3. 농촌주민의 생활실태와 복지욕구

4. 우리나라 농촌복지정책의 추진 실태와 문제점

5. 농촌복지정책 및 제도 개선방안

제10장 농업과 먹을거리(김종덕)

1. 농업의 등장과 사회변화

2. 농업의 특징과 기능

3. 전통적 식량체계의 농업과 먹을거리

4. 세계식량체계의 농업과 먹을거리

5. 지역식량체계의 농업과 먹을거리

6. 우리나라 농업과 먹을거리의 현실과 과제

7. 결론

제11장 농촌과 여성(허미영)

1. 농촌사회와 여성

2. 여성의 농업참여현황

3. 국제 여성정책과 성 인지적 농업정책

4. 성 평등한 가족관계를 위한 모색

5. 여성농업인 지위향상을 위한 과제

제12장 한국 농업구조의 변화와 위기의 한국농업(윤병선)

1. 농업생산력구조의 변화

2. 농가경제의 변화

3. 농업위기의 실태

4. 맺음말: 대안의 모색





머리말

이 책은 농촌사회학에 관심을 가진 학부생들을 독자로 생각하고 쓴 것입니다. 농촌, 농업, 농민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대학생들을 위한 학술도서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 책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농(農)을 멀리하고, 천시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산업화가 곧 발전이고, 도시가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농촌은 어려움에 처하고, 농민들은 줄어들었으며, 농업은 위축되었습니다. 그 결과 과연 한국사회는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된 것일까요? 무슨 일이든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적인 발전이 심화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시인들은 소외, 고독, 환경의 파괴 등을 경험하게 된 반면, 농민들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농촌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위기와 농촌의 위기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농촌에 대해 깊이 공부하면 한국사회의 구조와 변동 과정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이제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 책의 글들은 이런 성찰을 위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농촌에 관심을 가진 사회과학자들이 이 책을 함께 썼습니다. 각 주제별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에 대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농촌사회학, 인구, 가족, 조직, 운동, 기술, 개발, 공동체, 복지, 먹을거리, 여성, 농업구조 등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거나 아니면 특별히 관심이 있는 장을 골라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새로운 농촌사회학』 교과서를 꿈꾼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제는 중견이 된) 젊은 학자들이 모이면, 으레 농촌사회학 교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함께 쓰자고, 우리가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지요.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과 바쁜 개인 생활 등으로 우리의 꿈은 쉽게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2008년 드디어 중요한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한국농촌사회학회가 세계농촌사회학대회를 유치하면서 학회 발전을 위한 사업의 하나로 교과서 출간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학회 임원들이 농촌사회학 교재 집필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해주셨고, 이에 따라 교과서 집필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큰 결단을 내려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정기환 선생님, 허장 선생님, 그리고 조옥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늦어진 데 대해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 학자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함께 책을 내겠다는 의지로 원고를 쓰고, 서로 돌려 보고 평을 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원고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독회와 토론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미진한 점은 다음 개정판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지만 우리 필자들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한국사회의 현재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우리 농촌의 현실, 문제, 위기, 희망 등에 대해 깊이 공부함으로써 독자들이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기를 기대합니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한국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책의 편집과 교정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집문당의 유지현 님과 고려대학교 대학원의 이철 군에게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땅에 희망을 품고 살아온 농민들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진 미래 세대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2011년 겨울,

필진의 뜻을 모아 김철규 씀.





제1장 농촌사회학이란 무엇인가


김철규


주요 개념 및 용어

농촌, 농업, 농촌사회학의 의미, 농촌사회학의 역사, 농촌사회학의 이론, 농촌사회학의 전망


이 장은 농촌사회학의 역사와 현황 등에 대해 소개하고, 안내하는 글이다. 농촌사회학이 무엇인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 본다. 또한 농촌사회학의 기초적인 개념과 이론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1절에서는 농촌과 관련된 몇 가지 개념들을 명료히 한 뒤, 왜 농촌사회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2절은 농촌사회학의 역사를 간단히 개괄하고, 한국 농촌사회학의 발전과정과 현황에 대해 소개할 것이다. 3절에서는 농촌사회학의 주요 이론적 시각들에 대해 소개한다. 특히 최근의 농업사회학적 이론들에 대해 공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4절에서는 현재의 시점에서 농촌사회학이 가지는 학술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와 전망에 대해 논의한다.



1. 사회학과 농촌사회학


1)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농촌사회학은 사회학이라고 하는 보다 큰 학문 분야 내의 분과학문이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특징짓는 질서를 찾아내고 서술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권태환 · 홍두승 · 설동훈, 2009). 얼핏 보기에 무질서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행위를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하면, 일정한 질서 혹은 유형을 가지고 있다. 개인이 자율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규범이나 문화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때로는 가정교육에 의해, 때로는 동료들의 압력에 의해, 또는 언어에 의해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는 이러한 규제나 질서를 만들어낸다.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이 사회학이라고 할 때, 구체적인 수준에서 사회는 사람, 조직, 문화 등의 3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사회에 몇 명이나 살고 있는지, 연령은 어떤 분포를 보이는지, 남자와 여자의 수는 얼마인지, 인종은 어떤 분포를 이루고 있는지 등을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사회학은 이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를 알고 싶다면 우선 한국에는 인구가 얼마이며, 성비는 어떻게 되고, 고령화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 안다고 해서 그 사회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개개인이 모여 가족, 직장, 교회, 동호회, 계, 회사, 학교 등 각종 조직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조직은 조직 자체의 논리와 힘을 갖게 되며, 사람 개개인의 수명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조직, 즉 가족, 회사, 종교집단, 정부 조직 등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혈연에 기반한 가족이 대단히 중요하며, 가족 관계가 다른 사회조직이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한국 가족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과 사람들이 만든 조직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요소가 문화이다. 사람이나 조직은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생각과 행위의 틀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는 대개의 경우 비가시적이다. 예컨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든지 어른에게 물건을 드릴 때는 두 손으로 드려야 한다든지 하는 것은 한국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나 행위 양식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그 사회 속에서 자라면서 익힌 것으로 외부인들은 잘 알기 어렵다. 한 사회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가시적인 문화적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정리하면, 사회학은 사람, 조직, 문화로 구성된 사회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사회학은 사회에 대해 연구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론을 개발해왔다. 예를 들어, 사회학자들은 사회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가치관에 대해 조사한 뒤, 사람들의 가치관이 정치적 행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혹은 출생과 사망에 관한 양적 자료를 분석하여, 10년 후에 그 사회의 인구구조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을 포괄적으로 양적 방법이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문화를 연구할 때에는 사람들의 행위나 상호작용을 장기간에 걸쳐 관찰하거나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면접을 실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사회의 문화적 규범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을 질적 방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회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축적하는 학문이 사회학이다.1)


2) 농촌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생활의 질서를 찾아내는 학문으로, 구체적인 연구 대상은 사람, 조직, 문화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농촌사회학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사회학은 사회학의 한 분과로서 농촌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사회생활을 특징짓는 질서를 찾아내고 서술하는 학문이다. 농촌사회학은 구체적으로는 농촌의 사람, 조직, 문화 등에 대해 연구한다.

농촌사회학은 ‘농촌’의 다양한 측면을 사회학적으로 다루는 사회학 내의 분과학문이다. 그렇다면 농촌이란 무엇일까? 많은 경우 농촌은 도시의 대립 개 념으로 이해된다. 즉 도시의 사회적 특성들을 일반화한 뒤, 이와 반대되는 특성을 지닌 곳이 곧 농촌이라고 보는 방식이 주를 이뤄왔다. 이러한 시각을 ‘이분법적 접근’이라고 한다. 예컨대 농촌은 도시에 비해 규모가 작고, 인구밀도가 낮으며, 동질적인 사회 구성원들이 살고 있고, 익명성이 낮으며, 사회적 이동성 또한 낮은 것으로 이해된다(<표 1-1> 참조).


<표 1-1> 농촌과 도시 분류

특 성

농 촌

도 시

직 업

농업

비농업

환 경

자연환경

인공환경

지역사회 크기

작음

인구 밀도

낮음

높음

인구의 이질성

동질적

이질적

사회적 분화

단순

복잡

이동성

낮음

높음

상호작용

1차적 정의적(情誼的) 관계

2차적 비정의적(非情誼的) 관계

출처: Sorokin & Zimmerman, 1929; 홍동식, 1988에서 재인용.


소로킨과 짐머만(Sorokin & Zimmerman)에 의해 제시된 이러한 농촌과 도시에 대한 이해 방식은 이후 농촌을 바라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즉 도시와 농촌을 서로 대립되는 특성을 가진 공간이자, 완전히 구별되는 두 가지 사회 유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편 이처럼 농촌과 도시를 독립적인 분석 단위로 취급하는 것은 두 지역사회 사이에 이뤄지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간과한 것이라는 입장이 있으니, 이를 ‘도농공생적 접근’이라고 한다. 도농공생적 접근은 도시와 농촌이 다양한 기능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예컨대 농촌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도시와 도시민들의 재생산을 위해 꼭 필요하며, 마찬가지로 도시의 공산물은 농촌의 유지와 농민의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다. 농촌과 도시의 상호의존적인 역할과 기능의 수행을 통해서 한 사회가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 도농공생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농촌과 도시가 이분법적 접근에서 보았듯이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진 것은 아니며, 또한 농촌을 도시적 속성의 부재 공간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분석적 수준에서 농촌과 도시를 이념형으로 생각함으로써, 두 사회적 공간이 가진 특수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유용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농촌의 일반적인 특성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농촌사회학은 농촌의 사람, 조직,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농촌의 사람, 조직, 문화가 도시의 그것들과 어떤 점에서 차별성을 지니는지를 강조해서 보는 것은 농촌사회학 공부에 있어서 적절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다음에 논의하듯이, 농촌과 도시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차츰 동형화 혹은 동질화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

농촌에 관한 앞의 논의가 주로 사회학적인 것이라면, 정책이나 통계 차원에서의 농촌은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행정구역상 시부(市部)(인구 2만 명 이상의 읍부)를 도시로 규정해왔다. 또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동을 도시로, 읍 · 면을 농산어촌으로 규정한다. 또 행정자치부와 국토해양부는 시와 읍을 도시로, 면은 농촌으로 간주한다. 끝으로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인구 5만 명 이상 지역을 시로, 인구 2∼5만 명 지역은 읍으로 규정한다. 이로써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실질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1995년부터 도시와 농촌지역이 통합된 ‘도농복합도시’가 출현하면서 인구 5만 명 이상을 시로 구분하던 것 역시 의미를 잃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95년 남양주시와 평택시, 1996년 용인시, 파주시, 이천시, 1998년 김포시, 안성시, 그리고 1999년 광주시 등이 도농복합도시가 되면서 한 ‘시’내에 사회적 특성으로서의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이처럼 부처에 따라 혹은 행정 목표에 따라 농촌과 도시의 구분이 달라지고, 또 그 구분 역시 점점 불분명해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농촌을 하나의 사회 · 역사적 공간이자 분석적 이해를 위한 이념형으로 상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에서 농촌을 쉽게 정리해보자. 일반적으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한다. 농업이란 농작물의 씨앗을 뿌리고, 관리하고, 수확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일을 통해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농민이라고 한다. 농촌에는 주로 농민들이 살지만, 농촌에 사는 사람 모두가 농민은 아니다. 농촌도 하나의 사회이므로 그곳에는 다양한 조직들이 존재하고, 다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전통적인 옛 농촌마을을 상상해보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한의사,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서당 훈장님, 농기구를 만들고 수리하는 대장장이, 쌀을 찧고 떡을 하는 방앗간 주인, 술을 만드는 양조장 기술자, 식사와 술을 파는 주막 주모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도시에 비해 그 분업화나 전문화의 정도는 낮았을지 몰라도 전통적인 농촌 역시 하나의 사회로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 있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농촌은 보통 도시와의 비교와 대조 속에서 논의된다. 농촌은 인구 밀도가 낮고, 사람들이 정이 많은 데 비해, 도시는 인구 밀도가 높고,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적 이해는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농촌과 도시가 반대되는 특성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통이 발달하고, TV, 인터넷 등의 매체가 확산되면서 농촌과 도시의 문화적 차이는 많이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도시에서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멀지 않은 과거에 농촌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특히 한국처럼 짧은 시기에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곳에서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외삼촌 등 친인척들이 농촌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농촌을 우리와 동떨어진 매우 이질적인 사회로만 생각하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다.


3) 왜 농촌에 관심을 가지는가?


이 책은 농촌, 농업, 그리고 농민 등 ‘농(農)’의 문제를 사회학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교재이다. 지난 50년은 한국사회가 ‘농(農)’으로부터 벗어나고 멀어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변동의 키워드는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농촌은 전근대적인 과거의 공간으로 이해되었고, 낙후된 것의 상징으로 인식되기까지 했다. 더구나 사람, 자본,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이 도시에 집중되면서 농촌은 희망이 없는 사라질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학적으로 볼 때, 농촌의 미래는 별로 희망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한국인의 대부분은 도시에 살며, 서비스업이나 제조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농촌의 인구는 2010년을 기준으로 할 때 약 8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6% 정도이다. 그리고 실제 농업에 종사하는 농가 인구는 2005년 약 34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7%였다. 농가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2025년이면 234만 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7%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도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랐을 것이다.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소비와 유행과 속도의 문명 속에서 자라나 생활하는 도시 젊은이들에게 농촌에 관심을 갖고, 농촌의 사회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뜬금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이 시점에서 농촌사회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농촌이란 무엇일까? 아래는 실제 농촌사회학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농촌이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을 때의 응답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학생 (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새벽부터 밭에 나가고 새참을 먹고, 호미와 낫 등이 쌓여있는 비닐하우스가 나에게는 농촌이다. (자연계 남학생)”


학생 (나)

“농업이 저와 가장 큰 연관을 맺는 부분은 물론 식생활일 것입니다. 웰빙 열풍,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드러나듯 먹을거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금, 여태껏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농업과 저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삼시 세끼의 제 식단과 제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최근 들어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인문사회계, 여학생)”


학생 (다)

태어나면서부터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인 서울에서 자라난 나는 농촌은 그저 명절 때마다 경험할 수 있었던 미지의 공간이었다. 농촌은 아버지의 고향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인문사회계, 남학생)


학생들의 답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농촌은 혈연이나 지연으로 연결된 비익명적인 공동체이다. 그리고 아직 친척들이 농촌에 있기 때문에, 명절이나 방학 때에 방문하면서 느끼는 따뜻한 공간이 농촌이다. 둘째, 농촌은 농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식하는 생산 공간이다. 특히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먹을거리의 위험에 대해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자신이 먹는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생산지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 셋째, 농촌은 자신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며, 단지 부모나 할아버지 등 윗세대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들에게 농촌은 자신과는 직접 관련 없는 타인의 공간인 것이다. 이 경우에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농촌이 우리의 의식 밖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여러분에게 농촌은 무엇인가? 농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농민들은 여러분에게 누구인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도시인들이 농촌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공간으로 여기고 있지만, 조금만 상상력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가 농촌, 농민, 농업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질문과 관련해서 몇 가지 방식으로 대답할 수 있다.


(1) 먹을거리 생산지로서의 농촌

우선 앞의 학생 (나)의 입장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먹어야 살며, 먹을거리의 기본은 농산물이다. 농촌은 농산물 혹은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공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내가 어제 저녁 때 먹은 쌀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가족이 즐겨 먹는 사과와 배는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가? 한국인의 식단에 핵심인 된장에 필요한 콩과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는 어디에서 누가 재배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음식은 인간 생존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지만 우리는 별로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광우병의 사례에서 보듯 나쁜 먹을거리는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따라서 건강을 생각한다면 좋은 음식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현대인들의 생활은 도시 공간에서 활동을 기반으로 하지만 유기체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에 음식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음식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농업활동을 통해 농민이 생산한다. 농촌은 도시인들에게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중요한 생산 공간이요, 농업은 먹을거리 생산활동이며, 농민은 먹을거리 생산자인 것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도 고급 승용차나 스마트 폰을 먹고 살 수는 없다. 기본적인 생존의 요소이자 즐거움의 원천인 음식은 농(農)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도시인들도 농(農)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2) 삶의 공간으로서의 농촌

여전히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의 농촌에는 약 800만 명이 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800만 명으로 구성된 집단은 결코 작은 집단이 아니다. 사회학자들은 농촌주민보다 수가 적은 동성애자, 범죄자, 탈북자 등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연구한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서의 농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아직 농촌에 사는 사람들과 관계의 끈을 가지고 있다.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급속하게 도시화와 이농이 진행된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을 받기 위해서나 혹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난 많은 사람들의 부모나 친척은 농촌에 남아 있다. 설이나 추석 때 소위 귀향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멀리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

농촌은 최근 들어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는 귀농인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계기로 시작된 귀농 행렬은 초기에는 실패가 많았다. 경제적 동기에 의한 초기 귀농자들은 준비 부족 등으로 농촌에 뿌리를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에는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추구하는 귀농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치밀한 준비를 많이 하고, 농촌으로 이주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이 농촌에 모이면서 농촌공동체도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촌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3) 대안문화의 공간으로서의 농촌

그동안 농촌은 전통성과 과거의 상징이었다. 도시적인 것이 모두 좋은 것이라면, 농촌적인 것은 그 반대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과도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많은 문제를 낳았다. 특히 한국과 같이 짧은 기간 동안에 급속한 사회변동을 겪은 곳에서는 그 부작용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는 이러한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경제성장과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한국인들은 이제 피로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소외, 공동체 해체, 생태파괴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도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회의를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농촌이 간직한 공동체적 문화, 좋은 환경, 느린 삶의 속도, 그리고 사람들 간의 정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산촌학교, 농촌체험, 귀농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농촌이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가치들이 위기에 처한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 대해 알고, 공부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농촌사회학은 단지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적 학문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농촌사회학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2. 농촌사회학의 역사와 현황


1) 농촌사회학의 역사


농촌사회학(rural sociology)은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이 모태가 되었던 사회학의 성격과는 상이한 점이 있었다. 유럽에서 처음 발생한 사회학은 급격한 사회변동과 질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였다. 특히 콩트,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등의 고전사회학자들은 거대한 사회변화를 이론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각기 다른 이론적 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학의 대가들은 자신이 목도하고 있는 시대변화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 거대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고민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많은 거대이론들이 등장했다.

반면 농촌사회학은 미국의 농민과 농촌이 부딪혔던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미국에서 처음 제도화된 농촌사회학은 매우 실용적인 학문으로 출발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미국의 급속한 발전과 산업화는 농촌지역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토지 투기에 따라 농지 가격이 급상승하였고, 부재지주가 증가했으며, 농민 계층의 분화에 따라 다수의 농민들이 도시 노동자로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농촌은 빈곤의 심화, 위생의 악화, 농업생산성의 하락, 공동체 해체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봉착한 농촌을 지켜내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적 대응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것이 1908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발족시킨 ‘농촌생활조사위원회(Commission on Country Life)’이다. 이 위원회는 농민들이 처한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1909년 종합적인 농촌생활위원회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회학자들이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데, 특히 농촌계획, 농업기술, 농촌개발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였다. 정부의 개입과 투자를 배경으로 농촌사회학자들은 이론보다는 경험적 조사연구와 실용적인 정책 개발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었다. 이러한 실용적 · 경험적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 대한 강조는 구체적인 농촌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체계적인 이론화 작업이나 거시적인 구조 변동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또한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 속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임시적인 미봉책을 제안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1970년대 이후 농업사회학 출현의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보다 상세히 다루도록 한다.

홍동식(1988)은 미국 농촌사회학의 역사를 5개 시기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시기 구분을 대체로 수용하고, 보완할 것이다. 제1기는 ‘농촌사회학의 생성기’(1900∼1920년경)인데, 이 시기에는 농촌사회학과 관련된 논문이나 교과서가 처음 발간되고 농촌에 관한 사회학적 접근이 시도되었다. 대표적인 책으로는 1915년에 발간된 갈핀(Galpin)의 『농업 공동체의 사회적 분석』을 꼽을 수 있다. 제2기는 ‘농촌사회학의 발전기’(1920년대)라고 명명되는데, 이때 농촌사회학은 새로운 사회학 분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주요 대학에서 농촌사회학과를 만들었으며, 관련 강좌가 체계적으로 개설되었다. 농촌사회학 연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코넬 대학, 위스콘신 대학 등이 본격적으로 농촌 연구를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연구서로는 소로킨과 짐머만(Sorokin & Zimmerman)이 1929년에 발간한 『농촌 · 도시사회학의 원리』가 있다. 이 책은 농촌사회학이 농촌문제에 대한 직접적 해결보다는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를 학문적으로 규명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개념과 이론화에 힘을 기울였다. 미국 농촌사회학 역사의 제3기는 ‘농촌사회학의 성숙기’(1930∼1945년경)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는 농촌사회학의 체계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1937년에 농촌사회학회(Rural Sociological Society)가 창립된 것을 들 수 있다. 1936년에 전문학술지 농촌사회학(Rural Sociology)이 창간된 이후, 이어서 농촌사회학회가 창립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농촌사회학의 제도적 틀이 만들어짐에 따라 이후 농촌사회학의 발전과 학자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제4기는 1950∼1960년대로서 ‘농촌사회학의 침체기’였는데, 이때 미국 농촌사회학은 정체성 위기를 경험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포드주의로 일컬어지는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미국의 농업생산과 식품 소비구조는 급변하고, 이에 따라 농촌사회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농촌사회학의 기존 패러다임은 별 다른 설명틀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뒤에서 살펴볼 구조기능주의 이론이나 근대화론적 시각은 미국 농업의 산업화, 농촌과 도시 구분의 희석, 생태위기 등을 설명하는 데 별 기여를 하지 못함으로써, 안팎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1970년대부터 농촌사회학은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며, 새로운 학문적 정체성을 실험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를 제5기 ‘새로운 농촌사회학의 등장기’로 명명할 수 있다. 1980년 뉴비와 버틀(Newby & Buttel)이 출간한 『선진사회의 농촌사회학』은 대단히 중요한 저작으로 기존 농촌사회학의 몰역사적 분석을 비판하면서, 대안적인 농촌사회학 이론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새로운 농촌사회학은 기존 농촌사회학이 농업기술의 전파, 지역사회개발, 인구문제 등을 주로 구조기능주의 시각에 서서 바라보고, 기술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고 비판한다. 새로운 농촌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 불평등, 계급, 환경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농업과 농촌 분석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미국의 농촌사회학은 제6기로 ‘신농업사회학의 활성기’로 부를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농업 정치경제학적 시각이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했다(Buttel, 2001). 버틀(Buttel)에 따르면, 새로운 농업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경향은 농식품 체계에 관한 연구들이다. 세계체계론적 시각이나 조절이론의 틀에서 농업과 식품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또 한 농산물의 전체 생애주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상품체계분석의 활용도 눈에 띈다. 이들은 모두 생산으로서의 농업과 소비상품으로서의 식품을 통합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농식품’(agri-food)이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버틀(Buttel)의 농업 정치경제학적 연구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미국 농촌사회학의 지형은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미국 농촌사회학의 건재로서, 양적 방법을 활용한 지역개발, 인구, 기술 혁신 등에 관한 연구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둘째, 농업사회학의 꾸준한 발전으로, 1세대 농업사회학자들의 뒤를 이어 신농업사회학자들이 활발하게 농식품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셋째, 과거와는 달리 유럽의 농촌사회학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론화 작업이 강화되고 연구 영역 또한 환경, 문화, 기후변화 등으로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2) 한국농촌사회학의 역사와 현황


한국사회학의 초기 역사는 곧 농촌사회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이 국내 대학에 처음 소개되었던 시기의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농촌사회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농촌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전 일제시대에도 한국(조선) 농촌의 실태에 관한 연구들이 일본 학자나 한국 학자들에 의해 이뤄지긴 했지만 이 시기를 한국 농촌사회학의 역사로 포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해방 이후의 농촌사회학 역사를 개괄하겠다.

우선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를 제1기 ‘농촌사회학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주요대학에 사회학과가 만들어지고, 연구자들은 한국사회에 관한 기초적인 연구들을 진행하고, 사회학의 토대를 쌓았다. 농촌의 1차 집단에 관한 연구들이나 마을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뤘다. 예컨대 최재석의 “신앙촌락의 연구”(1955), “한국농촌에 있어서의 친족의 범위”(1957) 등의 논문과 이만갑의 저서 『한국농촌의 사회구조』(1958) 등이 있다. 한편 왕인근은 1960년 최초의 농촌사회학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 『농촌사회학』을 출간하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경제개발과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과정에서 농촌의 해체와 위기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관련 연구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을 제2기 ‘농촌사회학의 형성기’(1960∼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한국농촌사회연구회의 이름으로 출간된 대학 개론서인 『농촌사회학』(1965)과 최재석의 『한국농촌사회연구』(1976) 등이 있다.

1970년대는 박정희 정부에 의해 근대화 기획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농촌은 저발전, 낙후성, 비합리성의 공간으로 해석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개입이 시도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새마을운동으로, 그 성과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의 개입을 통한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마을운동이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정책연구가 진행되었고, 적지 않은 사회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하였다. 이 연구들은 대체로 근대화론적 시각과 구조기능주의적 이론틀 속에서 한국 농촌의 문제를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회학자들은 농촌 개발에 관한 연구를 많이 진행하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농촌사회학자들이 가장 많이 다룬 주제가 1960년대는 ‘조직’(21.6%)이었던 데 비해 1970년대는 ‘농촌개발’(27.2%)이었다. 즉 낙후된 농촌을 어떻게 하면 근대화하고 개발할 것인가가 농촌사회학자들의 연구 관심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1970년대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사회를 황폐화시켰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농촌사회학을 체계화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져 학문으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1980년대는 제3기 ‘농촌사회학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전의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과 농촌문제를 구조적인 시각에서 조명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러한 학술적 노력은 농촌문제의 심화라는 현실의 반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화와 개발에서 배제된 농민들은 빈곤에 시달렸으며, 인구는 감소하였다. 특히 젊은 인구의 유출로 인해 농촌은 인적 자원이 고갈되었다. 농촌의 총각들은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가족이 형성되지 못하고 출산도 이뤄지지 않는 재생산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또 농산물 수입 개방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농가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개방 농정은 이미 어려움에 처한 농가들을 부채의 덫으로 몰아넣었고, 농업 위기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화론은 더 이상 한국의 농업문제에 대한 적절한 시각이 될 수 없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비판적 시각에서 농촌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한국 농촌의 위기를 연결시켜 설명하는 노력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시기에는 농촌사회학 교재도 여러 권 출간되었는데, 예컨대 최재율의 『농촌사회학』(1986)과 홍동식의 『농촌사회학의 이해』(1988) 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 피폐화, 농업 개방 등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김성훈의 『쌀의 정치경제론』(1984), 한국농촌사회연구소의 『한국농어촌문제의 이해』(1989) 등이 출간되었다.

1990년대 이후의 시기는 제4기 ‘농촌사회학의 제도화 및 재편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농촌사회학은 몇 가지 큰 변화를 겪는다. 첫째는 농촌사회학의 분화와 전문화이며, 둘째는 농촌사회학 연구자의 노령화와 세대 교체, 그리고 셋째는 농촌 연구 지형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에는 농촌 연구자들이 모여 한국농촌사회학회를 창립하였고, 다음 해 전문학술지 『농촌사회』가 창간되었다. 농촌사회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제도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농촌사회학회와 학술지의 출범은 그저 단순히 또 다른 학문 분과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농촌 및 농업의 위기에 대한 연구자들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농촌사회학회지 창간사는 몇 가지 시대의 진단을 내놓았다. 첫째, 농촌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다. 단순히 학술적 입장이 아니라 현실 속 농(農)의 위기를 실감하며, 학자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둘째, 농촌사회학의 절박한 위기감이다. 한국사회학의 중심 분야였던 농촌에 관한 연구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실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많은 1세대 농촌사회학자들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원로 농촌사회학자들이 은퇴하면서 연구자의 수가 감소했고, 농촌이나 농업에 관심을 가졌던 일부 중견 농촌사회학자들은 사회적으로 수요가 많은 다른 분야로 연구 관심을 전환하기도 했다. 젊은 농촌사회학자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이 과정은 농촌사회학 분야의 위축을 가져왔다. 그러나 농촌이나 농업에 관심을 가진 인접 분야의 연구자들이 꾸준히 충원되었고, 농촌사회학의 연구 영역이 확장되면서 농촌사회학은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저작으로는 김일철 · 김태헌 · 김흥주의 『한국 농민의 불안과 희망』(1993), 김철규의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변동』(2003), 김종덕의 『농업사회학』(2006) 등이 있다. 최근 들어 먹을거리, 다문화가정, 귀농귀촌, 도시농업, 환경 등 새로운 연구 주제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촌사회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3. 농촌사회학의 이론적 시각


1) 구조기능주의


1950∼1960년대에 가장 대표적인 사회학의 이론적 시각은 구조기능주의라고 할 수 있다. 구조기능주의 이론가 중에 대표적인 학자는 탈코트 파슨스(Parsons)와 로버트 머튼(Merton)이 있으며, 이들의 저작은 미국 농촌사회학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여전히 구조기능주의적 시각은 중요한 설명틀 중 하나이다.

구조기능주의적 시각은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한다. 그리고 다양한 하위조직이나 제도들이 각자 맡은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그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본다. 예컨대 농촌사회에서는 가족, 학교, 새마을부녀회, 청년회, 종교 모임 등 다양한 조직들이 각기 부여된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위 조직들의 유기적 결합에 의해 농촌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다.

농촌사회와 관련해서, 구조기능주의의 몇 가지 이론적 가정을 홍동식(1988)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구조기능주의에서는 농촌사회의 현상을 전체 사회 안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둘째, 농촌사회는 개인, 가족, 집단, 조직 등 사회 단위들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로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체계이다. 셋째, 농촌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은 농촌사회 전체의 균형 유지와 통합에 기여한다. 넷째, 농촌사회의 모든 체계는 자연 및 사회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시킨다. 다섯째, 농촌사회의 변화는 점진적이고 일시적이며, 사회변동은 조화, 통합, 균형을 위한 적응 과정이다. 사회갈등이나 사회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는 농촌사회의 통합과 균형을 위한 적응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구조기능주의나 신기능주의적 시각은 오늘날에도 많은 농촌사회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이론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역사회나 개발을 연구하는 미국의 실증주의적 농촌사회학자들은 기능주의적 이론틀을 암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2) 인간생태학적 시각


인간생태학적 시각은 1961년에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파크(Park)가 썼던 “도시”라는 논문에서 처음 소개되었으며, 이는 생물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인간 사회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즉 식물 군집의 변천을 설명하는 경쟁, 지배, 계승, 분리, 동화 등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지역사회 변화 과정을 이해하려고 했다.

가장 잘 알려진 인간생태학 모델은 던컨(Duncan)의 POET 모델인데 각각은 인구(Population), 조직(Organization), 환경(Environment), 그리고 기술(Technology)을 나타낸다. 던컨의 POET모델은 미킬린(Micklin)에 의해 보완되어 농촌사회학 연구에 활용되었다. 미킬린은 인간 생태계의 기본 요소를 인구, 환경, 사회조직으로 상정하였으며, 사회조직은 다양한 적응의 기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즉 구체적으로는 과학기술, 문화, 권력, 자원 등을 통해 조직이 적응해 나간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균형이 이뤄지며, 조직이 생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킬린의 모델은 샌더스(Sanders)에 의해 인간과 토지 관계에 적용되었다. 농민의 수와 농지 규모 등이 반영되어 농장의 크기나 경작형태 등이 결정되며, 정주형태 및 공동체 조직이 형성된다. 이러한 농민의 조직적 적응은 농촌사회에서 과학 기술, 문화, 경쟁, 갈등, 동화 등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페레즈(Perez)는 이러한 일련의 인간생태학적 설명을 종합하여, 농촌생태학(rural ecology)으로 체계화시켰으며 농촌지역사회를 인구밀도, 정주형태, 지역집단, 인간-토지 관계, 사회적 과정 등으로 개념화하는 분석틀을 제시하였다.

결국 구조기능주의 이론과 인간생태학적 시각은 모두 다윈주의의 영향을 받아 사회체계를 생물 유기체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한 생명체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체의 각 부분이 반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유기체의 하위 단위들로 분화되어 각각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에서는 인간생태학적 시각을 구조기능주의의 일부로 간주하기도 한다. 두 이론 모두 넓은 의미의 전통적 농촌사회학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3) 농업사회학적 시각


농업사회학적 시각은 이전의 농촌사회학적 접근으로는 농촌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농촌사회학의 주요 이론틀이었던 구조기능주의와 인간생태학적 시각, 그리고 실증적 · 정책적 접근으로는 농촌사회를 둘러싼 구조적 변화를 담아낼 수 없다는 입장이 농업사회학자들에 의해 공유되었던 것이다(임형백 · 이성우, 2004). 농업사회학적 시각은 농업이 어떻게 국가, 기업, 국제분업 구조 등에 의해 재구성되는가를 연구해야만 농촌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68혁명을 경험한 비판적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 1970년대에 대거 등장하면서, 농촌사회학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농촌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논의가 활성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마르크스, 카우츠키, 레닌 등의 자본주의와 농업에 관한 연구들이 재조명되었다. 이러한 토양 위에 농업 구조의 변동에 대한 다양한 설명틀이 발전할 수 있었다.

뉴비와 버틀(Newby & Buttel)은 농업사회학적 접근을 ‘새로운 농촌사회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Newby & Buttel, 1980). 농업사회학적 접근은 기존의 농촌사회학 이론들이 몰역사적인 분석에 집중함으로써 농촌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간과했다고 본다. 또 농촌사회학적 접근은 경험적 조사 기법만 발달시켜 농촌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했고, 도시-농촌 이분법을 전제로 한 채 정태적 분석에 매달림으로써 농촌 위기의 동학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새로운 농촌사회학 혹은 농업사회학적 접근은 거시적 · 역사적 분석을 강조한다. 특히 국가의 역할을 중요시하며, 자본주의적 발전과 세계시장 등의 구조적 변수들을 설명에 끌어들인다. 농업사회학적 접근 가운데는 정치경제적인 구조와 변수들을 강조하는 설명틀이 다수이므로, 농업정치경제학적 시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치경제학적 시각에 선 농업사회학 연구들은 하나의 통일된 이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양한 논자들이 조금씩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농업문제를 분석하고자 했던 것이다. 몇 가지 중요한 논의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만과 디킨슨(Mann & Dickinson)은 농업자본주의론을 통해, 왜 농업은 공업 부문에 비해 자본주의화가 늦게 진행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공업에서는 자동화된 공장시설이 발달했다. 그리고 근로자들은 유사한 작업환경에서 단순화된 노동을 하며,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 체계가 급속히 만들어졌다. 반면, 농업의 경우는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생산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만과 디킨슨(Mann & Dickinson)은 왜 가족농이 여전히 지속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이론틀을 만들어냈다. 만과 디킨슨(Mann & Dickinson)은 마르크스의 생산시간과 노동시간 개념을 도입한다. 즉 농업의 경우, 산업과는 달리 노동이 투입되지 않는 생산시간이 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작물 생산은 햇빛, 물, 공기 등 자연환경에 의해 일정 시간 생육이 필요하므로, 공산품 생산에 비해 노동이 투입되는 시간이 짧다. 이들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 즉 잉여가치는 노동력에 대한 지배에서 발생하는데,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기업이 농업에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결국 농업생산에는 자연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 농업 자본주의화의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날에도 소규모 가족농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만과 디킨슨(Mann & Dickinson)의 농업자본주의론은 이후 팻 무니(Mooney)와의 치열한 논쟁을 낳았으며, 자본주의와 농업 관계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풍성하게 했다.

한편 굿만과 래드클리프트(Goodman & Redclift)는 유사한 문제의식을 다른 방식의 질문으로 풀어나갔다. 즉 농업자본주의화의 장애물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농업 부문은 어떤 방식으로 자본주의화되는가를 이론적으로 분석하려 했다. 이들은 자본에 의한 농업의 포섭 과정을 분석하면서, 전유주의(appropriationism)와 대체주의(substitutionism)라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한다. 전유주의란 기존의 농업생산과정을 단계적으로 분절시켜 그 가운데 일부를 산업자본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농사를 짓는 주요한 과정인 파종이나 수확을 농민의 노동력 대신 파종기나 수확기 등이 대신하도록 함으로써, 농업 과정 자체가 하나 둘 농기계 산업이나 정유 산업 등의 일부로 포섭되도록 하는 것이다. 대체주의란 농산물을 공업적 생산품으로 대체함으로써, 농업의 영역을 점차 축소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설탕 대신 화학감미료를 개발한다든지 버터 대신 마가린을 만들어내는 것 등이다. 이러한 전유주의와 대체주의라고 하는 이중적 과정에 의해 농업과 농산물은 끊임없이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의 일부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 굿만과 래드클리프트(Goodman & Redclift)의 지적이다.

농업사회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또 다른 학자로 윌리엄 프리드랜드(Friedland)를 꼽을 수 있다. 프리드랜드는 상품체계분석을 제안하였으며, 실제 이 분석방법을 통해 캘리포니아의 양상추 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즉 1981년에 발간된 『녹색황금 제조하기: 양상추 산업의 자본, 노동,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 “상품(농산물)의 생산만이 아니라 전체 생산, 가공, 그리고 유통체계”에 대해 분석해야 함을 주장했다(Friedland, Barton, Thomas, 1981: 13). 식품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과정의 혁명적인 변화를 고려할 때, 해당 농산물의 생산자 조직, 노동 충원 방식, 생산기술, 과학기술 등에 대해 총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체계분석은 이후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구체적인 농식품에 대한 분석 방법으로 채택되었으며, 방법론적인 개선이 이뤄지기도 했다.

최근 캐나다의 해리엇 프리드만(Friedmann), 미국의 필립 맥마이클(McMichael) 등은 식량체제론(food regime)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이들은 먹을거리를 자본주의 발전과 국제분업구조 속에서 바라보고,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는 특정한 형태로 구조화되었는데 이를 식량체제라고 부른다. 제1차 식량체제는 19세기 유럽의 팽창기에 형성된 것으로 주로 식민지 체제 속에서 중심부 국가들의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주변부 지역의 농업 생산기지화로 요약된다. 이러한 체제 속에서 아메리카, 호주 등의 식민지 지역은 유럽의 노동자들에게 값싼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즉 주변부의 식량 및 원자재 생산은 중심부의 임노동자화와 산업발전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제2차 식량체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하에서 형성된 국제식량질서와 자본주의 관계를 개념화한 것이다. 미국의 고도로 산업화된 농업에 의해 생산된 값싼 농산물이 제3세계에 대량으로 수출되어 주변부 국가의 산업노동자 계급을 형성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제2차 식량체제는 우리나라의 식량 수급 및 산업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미국 공법 480호(PL480)에 의한 값싼 미국산 농산물 원조, 농가 경제의 궁핍화에 따른 탈농,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이동과 산업예비군의 증가, 그리고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수출산업화 전략 등은 제2차 식량체제의 틀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최근 맥마이클(McMichael)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과 WTO체제는 초국적 기업에 의해 농식품의 생산과 유통이 지배되는 새로운 기업식량체제(corporate food regime)의 출범을 알리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의 맥락에서 농식품은 국가나 지역사회의 통제를 벗어나, 고도의 수직적 통합을 이룬 거대 초국적 농식품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품을 둘러싼 국제적 규범 역시 이러한 초국적 기업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제3세계의 시민들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게 되었고, 먹을거리 주권을 찾기 위한 대항운동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상으로 외국의 농촌사회학의 이론틀과 최근 논의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한국의 농촌사회학자들은 외국의 이론을 일정 부분 도입하면서, 한국 농업 및 농촌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해왔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의 농업위기와 농촌문제는 보다 거대한 사회변동에 의해 발생되어 심화되었다. 한국의 농촌위기와 농업문제는 세계자본주의의 변화, 산업화, 세계화 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농촌사회학자들은 외국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비교적 다양한 시각에서 농촌 인구, 문화, 농식품, 농민운동, 조직, 농업 기술 등의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부터 한국의 농촌사회학자들이 경험적 현실과 이론을 결합시켜 각 주제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시도할 것이다.



4. 농촌사회학의 전망


한국사회는 숨가쁘게 산업화와 도시화의 길을 달려왔다. 그 결과 경제규모의 확대와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극도로 개인화되고 경쟁적인 사회에 살다보니 한국인들은 모든 연령대에서 높은 자살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여러 국제적인 조사에서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과도한 도시화, 경쟁주의, 배금주의 등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이전과는 다른 가치와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농촌은 새로운 대안과 삶의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과 경쟁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 타자에 대한 관심, 느림, 생태 등의 새로운 가치를 배태한 농촌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환경의 변화는 농촌사회학의 위상과 역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 농촌사회학에서 다뤄야 할 중요한 주제들을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의 농촌사회학은 ‘농촌문제’의 사회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탈농, 농촌공동체의 해체, 빈곤, 고령화, 농촌인구 감소 등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즉 농촌의 위기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농촌의 위기는 여전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농촌의 위기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또한 새로운 전환과 도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에 대한 반성과 문제 제기가 적지 않게 이뤄져 왔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로 얻은 과도한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경쟁사회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농(農)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도시농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잿빛의 도시에 채소를 심고, 기르는 도시농업은 신선한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의 질서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경쟁사회에서 정서적 안정과 심리 치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사까지 짓지는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광우병, 구제역, 멜라민, 조류독감, 유전자 변형 식품 등에 따른 먹을거리의 위험에 대해 신경을 쓴다. 또 비만, 당뇨, 콜레스테롤 등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소비자들이 먹을거리의 안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즉 자신이 먹는 식품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에 대해 알고자 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대형마트가 아니라 생협이나 직거래 등을 통한 대안적 유통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농산물을 통해 생산자 농민들과 직 ·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농촌을 직접 방문하여 자신이 먹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보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체험하기도 한다. 이는 도시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농촌과 농민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최근 도시의 삶을 버리고 농촌으로 떠나는 귀농 · 귀촌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도시를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대안적인 가치와 삶을 위해, 혹은 아토피와 같은 자녀의 건강을 생각해서 농촌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농촌에서의 새로운 삶은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만족도는 대단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지역에서 농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제까지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서의 삶은 도시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제공하여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게 하는 것이다.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농촌사회학은 이제 미래의 학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동안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치가 폄하되었던 농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농촌사회학이다. 이를 통해 농촌의 어려움이 심화되었던 지난 50년을 딛고,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기획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농촌이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농촌사회학은 이러한 새로운 기획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정책적인 바탕을 마련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고문헌

권태환 · 홍두승 · 설동훈, 2009, 『사회학의 이해』, 다산출판사.

임형백 · 이성우, 2004, 『농촌사회의 환경과 기능』, 서울대학교 출판부.

홍동식, 1988, 『농촌사회학의 이해』, 법문사.

Buttel, Frederick, 2001, “Some reflections on late twentieth century agrarian political economy”, Sociologia Ruralis 41(2): 165-181.

Fredland, William H., Amy E. Barton and Robert J. Thomas, 1981, Manufacturing Green Gold: Capital, Labor and Technology in the Lettuce Indust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Newby, Howard and Frederick Buttel(eds)., 1980, The Rural Sociology of the Advanced Societies, Montclair: Allanheld.


이야깃거리

  1. 각자 농촌이란 어떤 곳인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관련시켜 이야기해 보자.

  2. 한국의 농촌사회학과 미국의 농촌사회학은 각기 어떻게 다른 경로를 거쳐 발전해왔는지 이야기해 보자.

  3. 농촌사회학을 통해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지 이야기해 보자.

  4. 농촌사회학의 이론들이 한국의 현실에서 개인의 지적 관심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토론해 보자.


더 읽을거리

김종덕, 2006, 『농업사회학』, 경남대학교 출판부.

김철규, 2003,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변동』, 고려대학교 출판부.

Newby, Howard and Frederick Buttel(eds)., 1980, The Rural Sociology of the Advanced Societies, Montclair: Allanheld.





제2장 농촌인구의 변동과 전망


김태헌


주요 개념 및 용어

농촌인구, 도시인구, 인구변동, 출생, 사망, 이동, 농업인구, 농가인구, 어가인구, 임가인구, 인구구성, 고령인구, 인구균형방정식, 성비, 부양비, 노령화지수, 합계출산율, 대체출산수준, 인구피라미드, 장래인구, 농가의 장래인구


이 장에서는 농촌사회를 구성하는 인구에 대한 기초개념과 그 변동을 설명하고 미래의 인구를 전망한다. 전국인구는 농촌인구와 도시인구로 구분한다. 이때 도시와 농촌의 구분 기준이 필요하다. 인구의 변동이 그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영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농촌사회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사회(전국, 농촌 등)구성원인 인구의 변화와 그 특성을 설명하면서 인구에 대한 기초개념을 설명하여 인구변동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인구변동은 일반적으로 출생, 사망, 이동으로 나타나며, 지역이나 시간에 따라 변동요인의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농촌인구의 변동원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함으로써 농촌사회의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의 농촌사회를 구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인구의 변화에 따라 사회가 변화하고, 사회경제정책이 달라진다. 미래의 인구를 전망한다면 미래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적절한 사회정책을 마련하고, 미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농촌사회의 발전을 위한 노력도 이와 같다. 이러한 노력을 위해 농촌인구(또는 농가인구)의 미래를 전망하여 미래의 농촌사회를 예측하기로 한다.



1. 농촌과 인구 개념의 기초


1) 농촌인구와 농업(농가)인구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구구성의 변화를 가져온다. 선진사회는 물론이고 개발도상국에서도 과거 출산수준이 높은 피라미드모양의 인구구조로부터 출생아 수가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주발모양의 인구구조로 변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소년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고령사회로 변모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이미 이 단계에 진입했으며, 그동안 고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제성장은 도시로 농촌인구의 이동을 촉발함으로써 전체인구 중 농촌 및 농림어가인구의 비중이 축소되고 있다. 농업선진국의 경우 농업인구는 총인구의 2∼4%에 머무르고 있다(통계청, 2006b). 우리나라의 농림어업인구 역시 수출위주의 경제개발과정에서 생산적인 농촌인구를 흡인함으로써 전체인구 중 농림어업인구의 비율 감소는 물론 성·연령별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취학 및 취업을 위해 청장년층 농림어가인구가 도시로 전출하여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이 커지고, 여성의 농촌생활 기피로 젊은 세대의 성비가 크게 높아졌다.

농촌과 도시를 구분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urban areas)는 인구규모, 인구밀도, 경제활동, 서비스시설 등이 일정기준을 넘을 때 도시로 규정하고 있고, 그 외의 지역을 농촌(rural areas)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의 농촌과 도시의 분류는 종전까지 인구 5만 명 이상인 행정구역상의 ‘시’지역을 도시로, ‘군’지역을 농촌으로 원용하였다. 1990년대 초에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일부 ‘군’지역이 ‘직할시’ 또는 ‘시’지역과 통합함에 따라 종전의 ‘시’지역에 ‘군’에만 있던 ‘읍’과 ‘면’을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종전 ‘시’의 행정구역이었던 ‘동’과 ‘군’의 행정구역인 ‘읍’과 ‘면’을 구분하여 ‘동부’를 도시로, ‘읍 · 면부’를 농촌으로 구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진 1960년대까지는 농촌의 주산업이 농업이고, 대부분의 가구는 농업가구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농촌인구의 특성은 농가인구의 특성과 아주 유사하였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인구의 도시전출로 농촌(읍 · 면부) 인구의 성 · 연령별 특성이 변화하고, 도시가 확장되고 농촌산업이 다양해지면서 농업경영가구가 감소함으로써 농촌의 인구구조는 농업경영가구의 인구구조와 차이가 커졌다.


2) 인구의 기초개념


(1) 인구성장

인구성장이 출생, 사망 및 이동의 세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며 이들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이것을 인구균형방정식이라고 한다.


P1 = P0 + B - D + NM


이때 P1P0는 각각 비교시점과 기준시점의 인구이고, B와 D는 각각 두 시점간의 출생아 수와 사망자 수이고, 그 차이(B-D)를 인구의 자연증가라고 한다. NM은 순전입인구로 전입인구(IM)와 전출인구(OM)의 차로 나타내며, 이것을 인구의 사회적 증가라고 한다.


(2) 성 · 연령별 인구구조

성비(sex ratio, SR)는 여자인구( pf / pm ) 100명에 대한 남자인구( pm)의 비(比)로서


SR = ( pm / pf ) × 100


와 같이 표시한다. 일반적으로, 출생 시의 성비가 103∼107 정도이지만 여자의 사망률이 남자에 비하여 낮기 때문에, 연령이 높아지면서 성비는 완만히 낮아져서 40∼50세 부근에서 100 이하로 낮아지고, 그 후 급속히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은 출생성비, 성별 사망력의 차이, 차별 인구이동, 출산수준 등의 영향을 받는다.

인구학이나 인구자료에서의 연령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완결연령(completed age)’을 뜻한다. 완결연령은 몇 번 생일이 지났느냐를 가지고 계산하는 나이이다. 완결연령을 ‘지난 생일 기준연령’이라고도 한다.

총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2005년 현재 개발도상국에서는 총인구의 30.9%가 15세 미만 인구이고,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5.5%에 불과하다. 한편 선진국의 15세 미만 인구는 전체의 17.0%에 불과하지만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5.3%나 된다. 우리나라의 연령별 인구구조는 1970년대까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유형이었으나 그 후 유소년인구의 구성비가 감소하는 대신 노인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여 2000년 현재 유소년인구와 노인인구의 인구구성비는 각각 21.1%와 7.2%로 고령화사회가 되었다(통계청, 2006a).

부양인구구성은 경제적으로 부양연령층 인구와 피부양연령층 인구의 구성을 뜻하는 것으로 보통 부양비를 그 지표로 사용한다. 이때 부양인구( p15-64 )는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연령인구를 말하며, 피부양인구는 15세 미만의 유소년인구( p0-14 )와 65세 이상의 노년인구( p65+ )를 말한다. 그러므로 부양비를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유소년부양비 = ( p0-14 / p15-64 ) × 100

노년부양비 = ( p65+ / p15-64 ) × 100

총부양비 = 유소년부양비 + 노년부양

              = {( p0-14 + p65+ ) / p15-64 } × 100


유소년 및 노년부양비를 이용하여 노인문제의 전망에 도움을 주는 인구의 노령화지수(AI)를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표 2-1> 우리나라의 부양비 및 노령화지수: 1960∼2020

연 도

인구구성비

부 양 비

노령화지수

0∼14

15∼64

64∼

총부양비

유소년

노년

1960

42.3

54.8

2.9

82.5

77.2

5.3

6.9

1980

34.0

62.2

3.8

60.8

54.7

6.1

11.2

2000

21.1

71.7

7.2

39.5

29.4

10.1

34.3

2020

12.0

72.4

15.5

38.1

16.6

21.4

129.1

선진국(’05)

17.0

66.7

15.3

48.4

25.5

22.9

90.0

개도국(’05)

30.9

63.6

5.5

57.0

48.6

8.4

17.8

출처: 통계청, 2006a, 2011d.

AI = (노년인구 / 유소년인구) × 100

     = (노년부양비 / 유소년부양비) × 100

우리나라의 부양비와 노령화지수는 <표 2-1>과 같다. 유소년부양비는 빨리 감소하는 반면에 노년부양비는 2000년 전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3) 출산지표

어떤 사회의 출산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가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TFR)이다. 합계출산율은 어느 한 시점의 연령별 출산율이 일정하게 지속될 때, 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가임연령기(15∼49세) 여성만을 대상으로 연령별 출산율(ASFRi)과 합계출산율(TFR)을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60년에 6.0으로 최고에 도달하였으며, 그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1984년에는 출산력의 대체수준인 2.1이 되었고, 2005년에는 1.08명으로 낮아졌다(<표 2-2> 참조). 2010년에 1.23명으로 높아졌으나 여전히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표 2-2> 연령별 출산율과 합계출산율의 추이, 한국: 1960∼2010

연 령

1960

1984

1990

2000

2005

2010

15∼19

37

7

4

3

2

2

20∼24

238

162

83

39

18

17

25∼29

330

187

169

151

92

80

30∼34

257

52

51

84

82

112

35∼39

196

8

10

17

19

33

40∼44

80

1

2

3

3

4

45∼49

14

0

0

0

0

0

합계출산율(TFR)

6.0

2.1

1.59

1.47

1.08

1.23

출처: 1) 1984 이후: 조대희 외, 1985.

         2) 1990 이후: 통계청, 2006a.

         3) 2010: 통계청, 2011c.


합계출산율이 2.1명이면 한 여성이 출산한 자녀 중에서 출산 시의 연령까지 생존한 여아 수가 평균 1명이 된다. 이 출산수준을 대체출산수준(replacement level)이라고 한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인 상태가 지속되면 장래인구는 인구의 규모와 연령별 구조가 일정한 정지인구가 되고, 2.1명보다 크거나 작으면 장래인구는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2. 농촌인구 및 인구구조의 변화: 1960∼2010


농업 중심이던 우리나라 산업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전형적인 농업사회였던 1960년의 인구구조를 보면 총인구의 72%가 농촌(읍ㆍ면부)에 거주하였으며, 도시(동부)인구는 28%에 불과하였다(<표 2-3> 참조).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 이후 도시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2000년에 79.7%가 되었으며, 농촌인구는 20.3%로 40년 전 도시의 인구구성비(28.0%)보다 낮아졌다. 2010년에는 이러한 정도가 더욱 심화되어 농촌인구는 총인구의 18.0%에 불과하게 되었다. 특히, 농업의 비중이 높고, 농촌의 특성이 강한 면부의 인구는 1960년에 63.0%에서 1980년에는 30.6%로 감소하였고, 2010년에는 10% 미만(9.4%)으로 낮아졌다. 이와 같이 농촌인구가 빠르게 감소한 것은 젊은 연령층의 지속적인 이촌향도 현상이 가져온 젊은 연령층의 감소가 농촌의 출생아 수 감소로 이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표 2-3> 도시(동부)와 농촌(읍 · 면부)인구의 변화: 1960∼2010

 

1960

1980

2000

2005

2010

인 구

구성비

인 구

구성비

인 구

구성비

인 구

구성비

인 구

구성비

전 국

24,989

100.0

37,436

100.0

46,136

100.0

47,279

100.0

48,580

100.0

동 부1)

6,997

28.0

21,434

57.3

36,755

79.7

38,515

81.5

39,823

82.0

읍 부1)

2,259

9.0

4,540

12.1

3,756

8.1

3,944

8.3

4,200

8.6

면 부1)

15,734

63.0

11,463

30.6

5,625

12.2

4,820

10.2

4,557

9.4

수도권2)

5,194

20.8

13,298

35.5

21,354

46.3

22,767

48.2

23,836

49.1

주: 1) 행정구역이 ‘동’인 경우는 도시로, ‘읍’과 ‘면’인 경우는 농촌으로 구분하고 있음.

     2) 수도권은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를 포함.

출처: 통계청, 2011a.


우리나라의 농촌인구는 1960년대부터 약 20년 동안 농촌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 도시에 저임금의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도시와 농촌의 생활환경의 차이가 커짐에 따라 보다 나은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찾아 도시로의 전출이 이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농촌인구의 감소 속도가 매우 둔화되는데, 이는 인구의 초고령화로 인해 도시로 전출하는 젊은 연령층의 인구규모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농촌인구의 고령화 정도를 비교하기 위하여 읍 · 면부의 성 · 연령별 인구구조를 인구피라미드로 나타냈다(<그림 2-1> 참조).


<그림 2-1> 농촌(읍 · 면부) 인구구조의 변화: 1980 및 2005


1980년의 농촌(읍 · 면부) 인구구조는 젊은 연령층이 도시로 전출함에 따라 30대 전후 젊은 연령층의 인구가 감소하고 이들의 자녀인 영유아(0∼4세)인구도 감소하는 유형이다. 40대 이상의 고령층과 10대 중심의 청소년층은 당초부터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잔류세대이므로 인구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구조는 빠르게 변화했다. 1980년대의 초기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농촌인구의 모양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였으며, 2005년에는 잔류하고 있는 인구의 연령별 구성비가 거의 유사한 형태가 되었다. 이것은 1980년대에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10대의 인구가 나이가 들면서 도시로 전출한 데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농촌인구의 고령화는 심화되고, 젊은 연령층이 충원되지 않으면서 총인구는 계속 감소할 것이다.

농촌인구의 부양정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세 연령계급(0∼14세, 15∼64세 및 65세 이상)으로 나누어 고령화의 정도를 비교하였다(<표 2-4> 참조).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구성비가 1980년까지 동부나 읍 · 면부 모두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그 후 농촌(읍 · 면부)인구의 노인인구 구성비는 급속히 증가하여 2000년에는 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4% 이상)가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령화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2010년에는 20.9%로 초고령사회(20%)에 진입하였다. 대신 유소년(0∼14세)인구와 생산가능연령(15∼64세)인구의 감소로 노년부양비와 노령화지수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도시(동부)의 인구가 고령화사회(7%)에 도달한 것과 비교하면 농촌의 고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2-4> 도시(동부)와 농촌(읍 · 면부)의 주요 연령별 인구구조: 1960∼2010

 

합 계

0∼14세

15∼64세

65세 이상

노령화지수

1960년 전국

100.0

40.7

55.6

3.7

9.2

동 부

100.0

38.1

59.5

2.4

6.3

읍 · 면부

100.0

41.3

54.5

4.2

10.3

1980년 전국

100.0

33.8

62.3

3.9

11.4

동 부

100.0

32.5

65.0

2.6

7.9

읍 · 면부

100.0

35.7

58.7

5.6

15.7

2000년 전국

100.0

21.0

71.7

7.3

35.0

동 부

100.0

21.6

73.0

5.5

25.3

읍 · 면부

100.0

18.6

66.7

14.7

78.7

2010년 전국

100.0

16.2

72.5

11.3

69.7

동 부

100.0

16.5

74.3

9.2

55.7

읍 · 면부

100.0

14.9

64.2

20.9

140.3

출처: 통계청, 2011a 및 2011b.


도시와 농촌의 연령별 성비를 비교하면 연령별로 성별 이동의 차이를 볼 수 있다(<그림 2-2> 참조). 1980년에는 농촌의 20대 여성이 도시로 전출함에 따라 농촌(특히, 면부)의 성비가 급증한 반면 도시(동부)의 성비는 100 이하로 낮아졌다. 농촌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남자보다 도시로 진출한 여자가 더 많은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2005년에는 면부에서 성비가 높은 연령층은 40대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읍부의 성비변화도 뚜렷해졌다.


<그림 2-2> 도시(동부)와 농촌(읍 · 면부)인구의 성비변화: 1980 및 2005



3. 농가인구의 변화: 1980∼2010


1) 농림어가인구의 변화


우리나라의 농촌을 읍 · 면부로 정의한다면 이 지역의 인구는 농업을 포함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한다. 산업화 이전에 농촌의 주산업이 농림어업이었다면 산업화의 진행과 함께 농촌의 산업도 크게 변하였다.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변화를 통하여 농촌의 변화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1960년부터 농업총조사를 실시하였으며, 1990년과 2000년부터 어업총조사와 임업총조사를 각각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를 <표 2-5>에 정리하였다.


<표 2-5> 농림어가 총인구의 변화: 1980∼2010(천 명, %)

 

1960

1980

1990

1995

2000

2005

2010

농가

14,242

10,827

6,661

4,851

4,031

3,434

3,064

총인구대비

57.0

28.9

15.3

10.9

8.7

7.3

6.4

증감률1)

-

-

-

-27.2

-16.9

-14.8

-10.8

어가

-

-

496

347

251

221

171

총인구대비

-

-

1.1

0.8

0.5

0.5

0.4

증감률1)

-

-

-

-30.0

-27.6

-12.0

-22.6

임가

-

-

-

-

1642)

264

254

총인구대비

-

-

-

-

0.4

0.6

0.5

주: 1) 지난 5년간 증감율임.

     2) 산림청에 임가로 등록된 가구대상 조사 결과.

출처: 통계청, 2011b.


우리나라의 농가인구는 1960년에 총인구의 57.9%였으나 1980년에 총인구의 28.9%인 1,083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그 후 농가인구는 더 빠르게 감소하여 1990년에 총인구의 15.3%인 666만 명이 되었으며, 2000년에는 8.7%인 403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이 감소는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10년 후인 2010년에는 6.4%인 306만 명으로 지난 50년 동안 총인구는 약 2배 증가(<표 2-3> 참조)한 반면에 농가인구는 약 5분의 1 정도로 감소하였다. 1990년부터 5년간 총 27.2%나 감소하였으나 그 후에는 감소속도가 둔화되어 2000년대에는 전반과 후반 각각 5년간 14.8%와 10.8%의 감소율을 기록하고 있다.

어가인구도 농가인구와 같이 빠르게 감소하였다. 1990년에 50만 명으로 총인구의 1.1%였으나 2000년에는 10년 전 인구의 반에 해당하는 25만 명이 되었으며, 이 감소는 계속 이어지면서 2010년에는 17만 명이 되었다. 1990년대 전, 후 각 5년 동안 30.0%와 27.6%씩 감소하여 농가인구의 감소속도를 앞서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감소속도는 많이 둔화되었으나 후반에 다시 감소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임가의 경우는 2000년 산림청에 등록된 임가를 대상으로 조사하였으므로 2000년에 임가인구로 조사된 16만 명을 2005년의 임업총조사대상인 26만 명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2010년의 임가인구가 25만 명으로 감소폭이 매우 작은 것이 특징이다.


2) 농가인구의 연령별 인구구조 변화


농가와 읍 · 면부, 전국 평균의 인구구조를 <표 2-6>에서 비교하였다. 1980년의 농가와 읍 · 면부 및 전국 평균 인구의 연령별 구조는 매우 유사하였다. 총인구의 약 3분의 1이 0∼14세 유소년인구이고,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는 60% 정도이며, 노인인구는 총인구의 3.9∼6.7%에 불과하였다. 특히, 농가와 읍 · 면부의 연령구조가 매우 유사한 것, 특히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구성비가 각각 6.7%와 6.5%로 아주 유사한 것은 농촌의 전통사회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으며, 농촌의 산업이 농업 중심이기 때문에 농가인구와 읍 · 면부(농촌) 인구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할 수 없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표 2-6> 주요연령별 인구구성비의 변화: 1980∼2010(단위: %)

연도 및 연령

농 가

읍 · 면부

전 국

1980년

100.0

100.0

100.0

0∼14

33.0

35.7

33.8

15∼64

60.3

59.6

62.3

65∼

6.7

6.5

3.9

1990년

100.0

100.0

100.0

0∼14

20.6

23.6

25.7

15∼64

67.9

67.3

69.3

65∼

11.5

9.0

5.0

2000년

100.0

100.0

100.0

0∼14

11.4

18.6

21.0

15∼64

66.9

66.7

71.7

65∼

21.7

14.7

7.3

2010년

100.0

100.0

100.0

0∼14

8.8

14.9

16.2

15∼64

59.4

64.2

72.5

65∼

31.8

20.9

11.3

출처: 통계청, 2011a 및 2011b.


그러나 1990년에 들어오면서 농촌과 전국인구의 연령별 특성이 달라졌다. 전국인구의 경우 생산가능연령인구가 총인구의 69.3%로 70%에 육박하지만, 농가와 읍 · 면부인구의 경우에는 67% 수준에 머물면서 인구의 고령화현상이 뚜렷하였다. 더욱이 농가인구와 읍 · 면부인구의 연령별 특성도 크게 달라졌다. 1980년까지만 하여도 유사하였으나 농가인구의 감소와 함께 고령화현상이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1990년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1.5%로 읍·면부의 9.0%를 훨씬 상회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0∼14세의 유소년인구는 급감하여 겨우 20%선을 유지하게 되었다.

농가인구의 고령화는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2000년에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농가인구의 21%를 상회함으로써 초고령인구가 되었으며, 0∼14세 인구는 11.4%까지 감소하였다. 읍 · 면부의 인구도 전국 평균에 비하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농가인구의 변화에 비하면 그 속도는 훨씬 느린 편이다. 2000년의 농가인구가 총인구의 8.7%로 감소하여(<표 2-5> 참조) 읍 · 면부 인구 중에서도 그 비중이 낮아져 과거의 농촌인구와는 또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2-3>은 1980년부터 2005년까지 농가인구의 성 · 연령별 인구구조를 그린 인구피라미드이다. 1980년의 인구피라미드는 30대가 중심인 젊은 연령층이 도시로 전출하였거나 비농업에 종사함에 따라 40대 이후와 10대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전형적인 농촌의 인구구조를 보이고 있다. 10세 미만의 인구가 적은 것은 부 모세대의 전출에 따른 출생아 수의 감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연령층의 유입 없이 일어나는 지속적인 전출은 10대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와 고령인구구성비의 증가를 가져왔다(김태헌, 2006 참조). 1980년 인구피라미드에서 50대보다 많았던 40대가 10년 뒤인 1990년에는 50대로 연령이 높아지면서 40대보다 많 아졌고, 2000년의 피라미드에서는 60대 고령인구의 구성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연령층에서 전입은 없고, 전출만 꾸준히 이루어지는 이유로 구성비는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2005년도에 더욱 극심하였다. 고령층은 60대 이후로 높아지고, 젊은 연령층은 사라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고령화현상이 지속된다면 노인인구의 사망과 젊은 인구의 전출로 농가인구는 극소해지고, 농가 중심의 농촌사회는 찾기 어려워 질 것이다.


<그림 2-3> 농가인구 구조의 변화: 1980∼2005


3) 농가인구의 성비 변화


우리나라 인구의 특성 중 하나는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나타나는 높은 출생성비이다. 1980년대 초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높은 출생성비는 1990년에 116으로 가장 높았으며, 그 후에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농가인구의 규모와 연령별 구성비의 빠른 변화에도 출생성비는 아직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통계청, 2006a 참조).

1980년에는 0∼4세인구의 성비가 106.0으로 정상수준이었으나 1990년에 112.6으로 급상승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2005년 10∼14세인구의 성비가 115.8로 매우 높은 것은 1990년대 상반기의 출생성비가 가장 높았다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다.

농촌에서는 일반적으로 성별 이동의 차이로 일부 연령층에서는 성비가 매우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젊은 연령층에서 여성의 도시진출이 먼저 나타나고, 이어서 남성이 이동한다. 여성의 이동이 쉬운 것은 서비스직이나 단순 직종에 취업이 수월하기 때문이며, 남자의 경우에는 앞으로 생업을 정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며,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것도 생업과 관련되기 때문에 도시로의 이동이 늦어지고,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 이것은 이 연령대에서 성비의 불균형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1980년까지 성비가 가장 높았던 연령층은 25∼29세이다. 성비가 가장 높았던 연령층은 2000년까지 변동이 없었으나 2005년에는 30∼34세에서 성비가 가장 높았다. 물론 1990년, 2000년에도 연령이 높은 층에서 성비가 높아지고 있었으며, 2000년의 25∼29세 연령층의 성비가 167.7로 가장 높았다. 이 성비는 주위 연령층으로 분산되면서 가장 높았던 성비 수준이 점차 낮아졌다(<그림 2-4> 참조).


<그림 2-4> 농가인구의 연령별 성비 변화: 1980∼2005


노년층의 성비도 변화하고 있다. 일반적인 연령별 성비의 패턴은 출생성비가 105 전후로 시작되어 서서히 낮아지다가 40∼50세 경부터 빠르게 감소한다. 이것은 성별 사망률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농가인구에서는 60세가 지나면서 성비가 오히려 높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림 2-4>에 의하면 1980년에 60∼64세인구의 성비가 96.6으로 주변보다 높았으며, 1990년에는 65∼69세인구의 성비가 가장 높았다. 이것은 2005년에 다시 70∼74세로 높아졌다. 노년층의 성비가 낮아지지 않고 높아지는 이유도 성별 이동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노년층에서 할아버지의 전출보다는 할머니의 전출이 유리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할머니들의 경우 배우자 사망 후에 자녀들과 재결합하는 것이 할아버지들보다 수월한 데서 오는 현상이며, 이렇게 연령층이 높아지는 것은 자녀들과의 재결합 시기가 늦어지는 결과라고 하겠다.



4. 농가인구의 장래전망


1) 추계방법


장래인구를 추계하는 데 이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흔히 이용하는 방법이 코호트요인법(Cohort component method)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역별 출생, 사망 및 이동에 관한 정확한 자료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외에 수리적 모형으로 곰페르츠법(Gompertz method), 지수법(exponential method) 등을 들 수 있으며, 여기에서는 자료의 제한으로 지수법을 이용하였다.

농가인구의 감소속도는 1980년 이후 둔화되었다(<표 2-7> 참조). 농가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구성비를 보면 1980년에는 총인구의 28.9%였으나 그 수가 빠르게 감소하여 1990년에는 반으로 줄어든 15.3%였고, 1995년에는 10.9%로 낮아졌다. 이러한 감소현상이 지속되면서 2000년에 8.7%이던 것이 2010년에는 6.4%가 되었다(<표 2-5> 참조). 1980년 이후 총인구에서 농가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에는 빨리 감소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감소유형은 앞으로도 지속된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농가인구의 구성비는 아무리 감소한다 하더라도 “0”이 될 수 없으므로 시간이 무한히 흐르면 이 구성비가 “0”에 접근한다고 가정하였다. 또한, 농가 총인구의 특성에 따라 성 · 연령별 인구도 동일한 특성을 가진다고 가정하면 구성비의 수준에 따라 변화의 유형이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성 · 연령별 농가인구가 성 · 연령별 전국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모형을 추정하여 장래 농가인구를 추정하였다.


2) 농가의 장래인구


2020년까지의 전국 농가인구를 지수법을 이용하여 성 · 연령별로 추계하였다. 1980년 이후의 성별 농가인구와 전국인구를 <표 2-7>에서 비교하였다.


<표 2-7> 전국인구에 대한 농가인구비중의 변화: 1980∼2020

연 도1)

농가인구(천 명)

전국인구에 대한 농가인구비중(%)

남 자

여 자

1980

10,827

5,415

5,412

28.9

1990

6,661

3,279

3,383

15.3

2000

4,031

1,971

2,060

8.7

2005

3,434

1,677

1,757

7.3

2010

2,961

1,451

1,509

6.1

2015

2,602

1,272

1,330

5.3

2020

2,342

1,143

1,200

4.7

주: 1) 1980∼2005: 농업총조사결과, 2010∼2020: 장래농가인구추계결과.


2005년까지의 농가인구는 농업총조사결과이고, 2010년 이후는 위에서 추계한 장래인구이다.

우리나라 농가의 인구는 1980년에 1,083만 명으로 전국인구의 29.8%를 차지하였으나 그 후에도 빠르게 감소하여 2005년에는 전국인구의 7.3%에 해당되는 343만 명으로 25년 전 인구의 약 3분의 1로 감소하였다. 앞에서 지수모형을 이용하여 장래 농가인구를 추계한 결과 2010년에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296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며, 전국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1%로 낮아질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감소현상은 지속되어 2020년에 농가인구는 전국인구의 4.7%인 243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한다.

농가인구는 규모에서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변화는 성 · 연령별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그림 2-5>는 2050년부터 2020년까지 농가인구의 성 · 연령별 인구구조를 그린 인구피라미드이다. 2005년까지만 해도 노동력의 고령화가 뚜렷하지만 농가인구에는 젊은 연령층도 좀 있고, 50대와 60대도 농업인력의 활용이 가능한 모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10년에는 고연령층노동인력이 더욱 고령화되고, 젊은 연령층의 감소도 더욱 뚜렷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심화된다. 그리하여 2020년의 인구피라미드에는 인구구조가 60세 이상의 노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는 현재의 고령층이 사망하면서 농업 중심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변화할 것이다.


<그림 2-5> 장래 농가인구의 구조변화: 2005∼2020


농가인구의 구조를 보면(<표 2-8> 참조), 2005년에 65세 이상인구가 전체의 29.1%로 전국인구 2005년에 9.1%에 비하면 고령화가 극도에 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인구의 전입이 없고, 저출산현상으로 젊은 층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노인인구만 상대적으로 급증한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10년에 전체 농가인구의 34.2%, 2020년에 44.7%에 도달함으로써 전국인구의 15.6%(통계청, 2006a)에 비하면 약 3배에 달하게 된다.


<표 2-8> 농가의 부양비 및 노령화지수: 2005∼2020(%, 인구 백 명당)

 

2005

2010

2015

2020

인구구성비

100.0

100.0

100.0

100.0

0∼14

9.8

5.9

3.7

2.5

15∼64

61.1

59.8

57.1

52.8

65∼

29.1

34.2

39.1

44.7

총부양비

63.6

67.1

75.0

89.3

유소년부양비

16.0

9.9

6.5

4.7

노년부양비

47.6

57.1

68.5

84.7

노령화지수

296.9

574.9

1,050.2

1,816.1

주: 2010년 이후는 장래농가인구추계결과.


유소년인구의 감소로 유소년부양비는 2005년의 16.0에서 2020년에 4.7로 감소하지만 반대로 노년부양비는 같은 기간에 47.6에서 84.7로 급증한다. 그러므로 농가인구의 총부양비는 2050년에 63.6에서 2020년에 89.3으로 증가하게 된다. 또한, 노령화지수는 2005년에 296.7로 노년인구가 유소년인구의 약 3배였으나 그 후 급증하여 2020년에는 18배가 넘게 된다. 이것은 농가인구의 고령화가 앞으로 더욱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요약 및 시사점


1) 요약


전형적인 농업사회였던 1960년의 인구구조를 보면 총인구의 72.0%가 농촌(읍 · 면부)에 거주하였으며, 도시(동부)인구는 28%에 불과하였다.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 이후 도시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2000년에 79.7%가 되었으며, 농촌인구는 20.3%로 40년 전 도시인구의 구성비(28.0%)보다 낮아졌다. 2010년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농촌인구는 총인구의 18.0%에 불과하다. 농업의 비중이 높고, 농촌의 특성이 강한 면부인구는 1960년에 63.0%에서 1980년에는 30.6%로 감소하였고, 2010년에는 겨우 9.4%로 낮아졌다. 이와 같이 농촌인구의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젊은 연령층의 농촌인구가 계속 도시로 전출하고, 이러한 젊은 연령층의 감소는 농촌의 출생아 수 감소로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농가인구는 1980년에 총인구의 28.9%에 해당되는 1,083만 명이었다. 그 후 농가인구는 빠르게 감소하여 2000년에는 8.7%인 403만 명이 되었다. 이 감소현상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10년 후인 2010년에는 6.4%인 306만 명으로 지난 30년 동안 농가인구가 약 4분의 1로 감소하게 되었다. 농가인구는 인구의 감소와 함께 빠르게 고령화현상이 진행되었으며, 1990년에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1.5%로 읍 · 면부의 9.0%를 훨씬 상회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0∼14세의 유소년인구는 급감하여 겨우 20%선을 유지하게 되었다. 농가인구의 고령화는 이후 더욱 뚜렷하였다. 201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농가인구의 32%로 매우 심각한 초고령인구가 되었으며, 0∼14세인구는 8.8%까지 감소하였다.

지수모형을 이용하여 장래 농가인구를 추계한 결과 2010년에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296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며, 전국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1%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이러한 감소현상이 지속되어 2020년에는 전국인구의 4.7%에 해당되는 234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한다. 농가인구의 큰 변화는 성 · 연령별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2005년까지만 해도 노동력의 고령화가 뚜렷하긴 하지만 농가인구의 젊은 연령층도 좀 있고, 50대와 60대도 농업인력의 활용이 가능한 모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10년에는 고연령층 노동인력은 더욱 고령화되고, 젊은 연령층의 감소는 더욱 뚜렷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2020년의 인구피라미드에는 60세 이상 노인만으로 인구구조가 구성된다. 이러한 사회는 현재 농가인구의 고령층이 사망하면서 농촌의 중심산업이 더 이상 농업이라고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2) 시사점


우리나라 농가의 인구 변화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농촌 및 농업발전을 위해 고려하여야 할 사항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농가인구의 급감과 초고령화의 진행은 농촌(읍 · 면부)의 인구특성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농촌의 주산업이 농업이었을 때와 다르므로 농촌발전을 위한 노력과 농업대책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농가인구 20∼30대의 성비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여자의 전출이 많은 데서 오는 현상이지만 농가 특성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최근 국제결혼의 증가로 나타나고, 국제결혼은 전입하는 여성들과 그 자녀들의 적응문제로 이어진다. 소득증대와 같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미혼의 원인과 결혼 후의 안정과 같은 것에 사회적인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셋째, 장래인구를 추계한 결과 농가인구의 고령화는 더욱 심화되고, 젊은 노동력 부족현상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젊은 연령층의 전입이 없으면 유소년인구의 감소는 불가피하고, 이것은 농가의 다음 세대가 사라지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유소년인구를 비롯하여 생산가능연령인구가 계속 감소하게 되면 농업 중심의 농촌사회가 사라지고, 다른 사회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우리나라 농가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4.7%가 주로 고령자로 구성되므로 현재 선진국의 농가인구비중(2∼4%)에 비하여 우리나라 농가인구가 많다고만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김태헌, 2006, “한국의 농촌인구와 가족의 변화”, 권태환 · 김두섭 편 『한국 인구의 성장과 다양성』, 한양대학교 인구및고령사회연구소.

김태헌, 2008, “농림어가의 인구”, 김태헌 · 이내성 편 『푸른들, 숲, 바다 그리고 삶』, 통계개발원.

조대희 외, 1985, 『1985년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 한국인구보건연구원.

통계청, 2006a, 『장래인구추계』.

통계청, 2006b, 『국제통계연감』.

통계청, 2007, 『2005 농업총조사보고』, 『2005 어업총조사보고』 및 『2005 임업총조사보고』.

통계청, 2011a, “2010 인구총조사결과(인구전수)” 보도자료. 2011. 5. 30.

통계청, 2011b, “2010 농림어업총조사 최종결과” 보도자료. 2011. 8. 30.

통계청, 2011c, “2010 출생통계(확정)” 보도자료. 2011. 8. 24.

통계청, 2011d, “장래인구추계: 2010~2060년” 보도자료. 2011. 12. 7.

황진수 · 김태헌 외, 2007, 『현대노인복지정책론』, 대영문화사.


이야깃거리

  1. 농촌인구의 변동이 농촌사회의 변화에 미친 영향을 논의해 보자.

  2. 도시와 농촌인구 변동의 차이를 비교하고, 그 원인을 논의해 보자.

  3. 농촌인구의 장래전망을 검토하고, 미래의 농촌사회발전을 위한 대안을 생각해 보자.


더 읽을거리

김태헌 · 이내성 편, 2008, 『푸른들, 숲, 바다 그리고 삶』, 통계개발원.

통계청, 2011, 『장래인구추계』.

통계청, 2011, 『농림어업총조사보고』.





제3장 농촌가족의 구조와 변동


김흥주


주요 개념 및 용어

농촌가족, 농가(farm households), 가족구조, 가족유형, 가족농(peasant family farm), 농촌성(rurality), 농림어업총조사, 전업농가, 겸업농가, 이념형(ideal type) 가구, 과도기형(transitional type) 가구, 비이념형(non-ideal type) 가구, 빈곤문제, 가족부양체제, 생산노동의 여성화, 불균형 사회화, 핵가족화론, 가족전략론


<한국 농촌에서 가족들이 살아가기>

K씨는 현재 42세, 부인과 중2 아들과 초6 딸과 함께 논 4,000평, 포도밭 400평, 한우 15두, 돼지 30두를 소유한 영농후계 ‘농업인’으로 살고 있다. 작년 한해 K씨가 벌어들인 소득은 총 3,052만 원. 하지만 부채가 모두 9,500만 원에 이른다. 시설재배를 위한 과잉투자와 이에 대한 적절한 소득보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부채의 누적 원인이었다. 최근 K씨는 정부가 유렵연합이나 중국과 FTA 협상 체결을 서두르면서 포도와 축산마저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르자 농사에 자꾸 회의가 든다. 더구나 자녀의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농사는 집어치우고” 도시로 가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살자”는 마누라의 성화에 심각하게 이농을 고민 중이다. 아직은 젊기 때문에 새로운 농사를 지어 보고 싶고, 정부도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속은 것을 생각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오늘도 K씨는 TV에서 보여주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보면서 언제까지 도시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진다.


K씨는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요 농업지표를 보면 2010년 현재, 한국 농촌에 살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농가’의 생활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경제적으로 어렵 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 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지역 응답자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00만 원 미만’이 56.5%, ‘100∼150만 원 미만’이 11.9%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농촌지역에는 월평균 가구소득이 15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이 2/3 이상이 몰려 있었다. 통계청 (2010) 의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 (읍 · 면부) 주민의 52%가 소득에 불만족하다고 응답하였다. 도시근로자에 대한 농가의 상대소득은 2007년 73%에서 2009년 66%로 하락했다. 도농 격차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활환경도 열악하다. 의료 및 문화시설은 90% 이상이 도시에 몰려있다. 1982년부터 소규모학교 통폐합정책을 추진한 결과, 2005년까지 5,058개교를 통 · 폐합하였다 (한국교육개발원, 2008) . 2008년 기준 농어촌의 보건의료기관수는 8.5%, 병상 수 는 11.8% 에 불과했다. 반면에 도시는 각각 91.5%, 88.2%에 이른다 (보건복지부, 2010: 33) . 한국이 얼마나 도시 편향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한국의 농촌가족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K씨처럼 살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농가의 구조변동과 가족문제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변동과 문제발생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고자 한다.



1. 가족과 농촌가족


1) 가족의 이해


(1) 개념

현대 사회학에서 가족 개념을 정의하는 문제는 그 자체가 논쟁적일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혼인과 혈연관계로 구성되는 경제공동체이자 주거생활을 같이하는 생활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인류학자 머독(G. P. Murdock, 1949)은 가족(家族, the family)을 “주거를 같이하고, 경제적인 협동 및 자녀의 생산으로 특징지어지는 하나의 사회집단”이라고 규정하였다. 버제스와 로크(Burgess & Locke, 1953)는 가족을 “결혼이나 혈연 또는 입양의 유대로 맺어지며 단일가구를 형성하는 집단”으로 지칭하고, 최재석(1966)은 “가계(家系)를 공동으로 하는 친족집단”으로 정의하였다.

이런 전통적 정의들을 감안하면, 가족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제도로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속성들이 있다. 첫째, 가족은 혼인이나 혈연과 같은 특수한 관계로 구성된 공동체 집단이다. 둘째, 가족 구성원은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동거한다. 셋째, 성인 구성원이 다음 세대에 대한 양육을 책임진다. 넷째, 생계를 공유하는 경제 단위로서 기능한다. 이와 같은 속성을 종합하면, 가족은 “혈연, 혼인 또는 입양의 유대로 맺어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일정 기간 공동으로 거주하며, 자녀세대를 양육하고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집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 정의는 현대의 가족변화 추세를 반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families)을 포괄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미국사회사업가협회에서는 가족을 “자신들 스스로가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전형적인 가족임무를 수행하는 2인 이상의 사람들”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비혈연가족, 재혼가족, 미혼모(부)가족, 공동체가족 등 대부분의 가족형태를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10년에 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 · 혈연 ·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라고 정의함으로써, 혈연적 구성만이 아니라 입양과 같은 사회적 구성도 가족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또한 가족과 달리 가정을 구별하여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 양육 · 보호 ·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 단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의 가족구성원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를 볼 때 현대의 가족은 결혼과 성관계, 출산과 혈연, 입양, 경제적 공동생활, 정서적 유대, 주거생활 공동체 등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1인가족, 다문화가족, 공동체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2)


(2) 형태

가족이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회에서 그 성원을 보충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체계이다. 그러나 구조적 관점에서 볼 경우, 가족은 한 쌍의 부부와 그들의 자녀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넓은 친족집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가족은 단일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가족의 형태에 따라 가족원의 상호작용이나 기능, 가족행동들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가족의 형태를 구분하는 일은 가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가족의 형태는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라 하더라도 계급이나 인종, 지역 등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가족형태는 시대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확대가족(extended family)이 지배적이었던 반면에 산업사회로 올수록 핵가족(nuclear family)이 증가하게 된다. 가족형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상이한 관점에 의해서, 또 그 분류의 목적에 의해서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다.

먼저 가족성원의 수에 의한 구분이 가능하다. 예컨대 1인가족, 2인가족, 3인가족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며, 한 사회 전체에서 한 가족의 평균인원을 산출해낼 수도 있다. 이러한 구분이 가족의 ‘인원별 형태’이며, 가족의 평균인원을 이용하여 가족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 가족의 세대(世代) 구성을 가지고도 가족형태를 구분할 수 있다. 이를테면 1세대가족, 2세대가족, 3세대가족 등으로 구분하는 것인데, 이를 가족의 ‘세대별 형태’라고 한다. 세대 수가 많을수록 확대가족의 성격을 띠며, 중심 세대의 연령을 통해 가족주기를 측정할 수도 있다.

가족구조의 성격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형태 분류가 가족 성원의 구성과 크기에 따라 확대가족과 핵가족을 분류하는 것이다. 이를 ‘결합범위별 형태’라고 한다. 확대가족은 여러 세대의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크게(大) 확대된(擴) 가족형태로, 부부의 공동 생활체에 양친과 형제자매가 같이 사는 친족 중심의 대가족을 의미한다. 확대가족은 혼인한 자녀의 분가 여부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어느 한 자녀의 부부가 혼인한 이후에도 분가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가족을 구성하는 경우를 직계가족이라고 한다. 반면에 형제들이 혼인 이후에도 분가하지 않고 부모와 한 가족을 구성하는 경우를 결합가족(consanguine family)이라고 한다. 여기서 직계가족의 분류는 장자를 통한 가계계승을 중시해온 한국 전통사회의 가족형태를 분류하는 데 적절한 개념이 될 수 있다.3) 핵가족은 결혼을 한 부부와 그들의 미혼 자녀, 이렇게 2세대 이하로 구성되는 가족형태이다. 핵가족은 부모와 자녀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확대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며,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고 여성 지위가 향상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가족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동이 잦고 가족 단위의 집단 노동이 불필요한 현대의 산업사회와 도시사회에 친화적인 가족형태이다(Goode, 1962).


2) 농촌가족의 이해


(1) 농촌가족과 도시가족

농촌과 도시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농촌 개념은 도시의 속성을 전제로 정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많은 사회학자들은 농촌과 도시의 차이를 하나의 개념적 틀 속에서 살펴보려고 하였다. 이러한 농촌과 도시의 상대적인 개념의 틀 속에서 도시가족과 대비되는 농촌가족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론적 입장이 있다.

첫째, 이분적 접근(dichotomy approch)이다. 이 방법은 농촌가족과 도시가족을 두 개의 확연히 구별되는 유형으로 본다. 농촌과 도시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별개로 존재하여 농촌가족과 도시가족은 서로 다른 형태, 기능, 관계, 규범, 가치,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표 3-1>은 이러한 차이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표 3-1> 농촌가족과 도시가족의 차이

구 분

농촌가족

도시가족

형 태

확대가족 중심

핵가족 중심

기 능

생산활동 중심

소비활동 중심

관 계

부자관계 중심

부부관계 중심

가 치

전통적 가치

근대적 가치


이와 같이 농촌가족과 도시가족의 차이를 강조하는 입장은 농촌이 외부 사회와 지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어 농촌 특유의 지리적 · 사회적 ·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도시와의 상호관계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며, 농촌가족에 대한 연구는 농촌이란 지리적 범주 안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파악하는 데 집중된다. 지난 60년대 한국사회학의 농촌연구가 대부분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농촌과 도시가 하나의 사회체계로 통합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이분적 접근은 논리적으로나 분석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둘째, 공생적 접근(symbiotic approach)이다. 이 방법은 농촌과 도시가 상호 별개의 세계도 아니고 연속적인 변화과정을 나타내는 두 개의 이념형도 아니며, 사회체계의 부분들로써 공생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농촌가족은 도시가족과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상호 연관된 부분이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변화과정을 겪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공생적 접근은 다시 생태학적 시각과 정치경제학적 시각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생태학적 시각은 교통과 통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농촌과 도시 간의 공간적 접근성이 증대되는 현상을 주목한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농촌과 도시 사이의 기능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확산되면서 농촌가족과 도시가족은 동질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정치경제학적 시각은 농촌과 도시의 불균형 발전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도시의 산업 부문의 발달은 농촌의 자원과 노동력이 강제적으로 이전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촌과 도시는 기능적 관계이기 보다는 갈등적 관계이며, 상호 의존적 관계이기 보다는 착취적 · 배타적 관계로 본다. 이런 입장에서는 농촌가족의 변화를 도시와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 즉, 도시의 산업자본이 농촌경제를 지배하면서 농가가 해체되고, 젊은 층이 도시로 대거 이동하면서 농가의 지속성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2) 농촌가족과 농가

농촌가족은 공간적 차원에서 도시 지역과 대비되는 농촌지역의 가족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도시성(urbanity)과 대비되는 농촌성(rurality)을 지니고 있는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농촌사회학의 연구 대상으로서 농촌가족을 개념화할 때, 농촌을 단순히 도시의 상대적인 지역으로 보거나 행정 법규에 따른 특정 지역으로 보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도시의 행정구역 안에서도 농촌적인 마을을 볼 수 있고, 농촌의 행정구역 안에서도 도시적인 지역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촌가족을 사회학적 연구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농촌이란 지리적 · 행정적 범주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사회적 · 문화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공간”으로 정리하고, 이러한 농촌에서 형성된 가족을 농촌가족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런 조작적 정의가 있어야 농촌가족은 실제적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경험적 범주(empirical category)가 된다.

지역 범주를 강조하는 농촌가족과는 달리 농업이라는 직업 범주를 강조하는 개념이 농가(farm households)라고 할 수 있다. 농가는 농촌지역에서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가구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가구의 의미는 결혼이나 혈연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협력과 주거 공간의 공유를 기준으로 하는 개념이다. 가구는 정부의 인구센서스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농가는 통계청에서 실시하는 농업총조사의 조사 단위로 사용되고 있다. 2010년 제8차 농업총조사 당시 사용한 농가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www.affcensus.go.kr/ acensus).


‣ 2010년 12월 1일 현재 논이나 밭을 1,000m2(10a) 이상 직접 경작하는 가구

‣ 지난 1년간 직접 생산한 농축산물 판매금액이 120만 원 이상인 가구

‣ 2010년 12월 1일 현재 사육하는 가축의 평가액이 120만 원 이상인 가구


농가인구는 호적이나 주민등록과 관계없이 농가에서 취사, 취침 등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으로서 가족, 친인척 등을 말하며 농업 고용인 등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도 농업과 관련되면 포함된다. 농가는 농업생산에의 참여 정도와 농사 규모에 따라 전업농가와 겸업농가로 구분할 수도 있다. 전업농가는 지난 1년간 농업 이외의 일에 1개월 이상 종사한 가구원이 없는 농가를 말한다. 겸업농가는 지난 1년간 농업 이외의 일에 1개월 이상 종사한 가구원이 있는 농가를 말한다. 이 중 1종 겸업농가는 농업 수입이 농업이외 수입보다 많은 농가를 말하며, 2종 겸업농가는 농업이외 수입이 농업 수입보다 많은 농가를 말한다. 따라서 전업농가가 줄어들고 겸업농가가 많아진다는 것은 농업에의 의존 정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촌사회학에서 가족을 연구할 때 분석 단위로 사용하는 것은 농촌가족일수도 있고, 농가일수도 있다. 지역 범주나 농촌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강조할 때는 농촌가족이 분석 단위가 되며, 농업생산 특성을 강조할 때는 농가가 분석 단위가 된다. 그러나 중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에는 무엇을 대상으로 분석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3) 농촌가족 연구동향

한국 농촌가족에 관한 조사연구는 1959년에 전국의 3개 군, 6개 면, 14개 리를 대상으로 농촌의 가족생활 전반을 분석한 고황경 외(1963)에서 시작되었다. 이 연구는 전통가족이 산업화로 인해 근대가족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바람직한 농촌가족변화의 방향으로 가정교육에 의한 가족관계의 민주화, 가족계획에 의한 가족구성의 근대화, 여성의 지위향상을 제시하였다. 이는 유교적 가족주의가 강하게 지배하던 당시 현실을 감안한다면 매우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이후의 농촌가족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농촌가족 연구는 최재석(1975)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는 미국의 발달된 가족연구의 실증적 방법과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한국 농촌에 적합한 새로운 분석틀을 만들어서 농촌가족의 구조적 특성, 권력구조, 역할구조, 기능, 가치관 등을 연구하였다. 특히 방대한 양의 양적 · 질적 자료는 1960년대 한국 농촌가족의 실상을 세세하게 알려주어 이후 농촌가족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미시적인 연구가 대부분이고 가족에 대한 거시적인 연구는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1970년대 농촌가족 연구는 구조기능주의 이론과 근대화 이론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특히 산업화와 핵가족의 기능적 적합성을 강조하는 구드(Goode, 1963)의 핵가족화론은 거의 모든 연구에 적용되었다.4)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근대화)로 인해 전통적인 농촌가족이 근대적인 핵가족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근대화의 지표로 근대적인 핵가족을 제시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 농촌가족에 남아있던 전통적 가치, 질서, 구조는 변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농촌가족 연구는 비판적 관점의 도입으로 매우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 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농촌여성의 열악한 지위와 가족 내의 성차별적 구조를 파악하게 되었다. 특히 농업노동력이 여성화되면서 농촌여성들이 생산노동에 가사노동까지 책임지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실태와 그 메커니즘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계급분화론적 접근은 농민가족의 존재형태를 도시 자본계급의 가족과 비교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접근은 자본주의에 따른 계급구조의 변화에 따라 가족생활이 계급의 이해관계 속에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농민가족이 착취와 억압이라는 자본주의 계급관계의 모순 속에서 점진적으로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농촌가족 연구는 두 가지 분야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첫째는 농촌가족의 비관적 현실에 대한 염려다. 농촌사회는 지금 노년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유소년인구의 감소로 최악의 인구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으며, 노인가구와 빈곤가구의 증가로 가족의 지속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농촌가족의 문제들이 매우 심도 있게 연구되고 있다. 둘째는 농촌의 새로운 희망에 대한 관심이다. 2000년대 들어 증가하기 시작한 귀농가구와 다문화가정이 사회재생산(social reproduction) 가능성을 새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30∼40대 젊은 층의 귀농은 생태 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농촌에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결혼이민자가족이 증가하면서 농촌의 재생산체계가 새롭게 복원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최근의 농촌가족 연구는 새롭게 등장하는 농촌지역의 다양한 가족들(families in rural society)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농가의 가족구조와 변동


1) 가구 수의 변화


196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도시산업 부문은 급속한 성장을 한 데 비해 농업부문은 축소되고 이로 인한 농가 수 또한 감소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1970년에 2,483천 가구로 정점을 이루던 농가는 이후 계속 감소하여 2010년 현재는 1,177천 가구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 40년 사이 무려 1,210천 가구가 줄어들었으며, 감소율은 49.4%에 이른다. 1960년 이후 농가 수의 변화를 보여 주는 <표 3-2>에 의하면, 1980년에서 199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농가가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90년에서 1995년에 이르는 5년 사이의 감소율이 무려 15%에 이르고 있다.


<표 3-2> 연도별 농가 수 변화: 1960∼2010(단위: 천 가구)

 

1960

1970

1980

1990

1995

2000

2005

2010

농가 수

2,329

2,483

2,155

1,767

1,501

1,383

1,273

1,177

증감률

6.6

-13.2

-18

-15.0

-7.8

-8.0

-7.5

출처: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잠정집계결과』, 2011.


이러한 농가 수의 감소요인은 시기별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1970년대의 감소가 도시산업 부문의 유인요인(pull factor)에 따른 것이라면,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농산물 가격파동과 수입개방으로 인한 농가경제의 악화 때문에 농업을 포기하고 떠나는 유출요인(push factor)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2000년 이후는 농가 생애주기상 해체기에 해당하는 농가의 자연소멸 요인으로 인한 감소가 늘어나고 있다. 사실 농가경제의 악화나 도시산업 부문의 유인으로 농가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는 경제적 회생전략이 일정 부분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등장하는 해체기 농가의 자연 소멸은 경제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런 점이 농촌사회의 구조적 해체위기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농가 수의 지속적인 감소로 인해 전국 총 가구 수 대비 농가비중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2010년 통계청이 작성한 인구주택총조사와 농림어업총조사 잠정집계결과에 의하면, 2010년 총 가구 수 대비 농가비중은 6.8%로 나타나 1990년 15.6%에 비해 8.8%p나 감소하고 있다. 전체 산업구조에서 농업비중이 줄어드는 만큼 농가 수의 비중도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연도별 농가 규모 추이는 1995년에 큰 폭으로 감소했다가 2000년 이후에는 감소폭이 둔화되고 있다. 이는 귀농가구와 결혼이민자의 증가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2) 가구크기의 변화


1960년대의 산업화 이후 한국의 가족변화에서 나타난 특징은 규모의 축소와 구성의 단순화, 근대적 가족행동 및 가족가치의 증가라고 정리할 수 있다(안호용 · 김흥주, 2000). 이 중에서 가족구조의 단순화 추이는 세대 깊이의 축소, 평균 가구원 수의 감소, 가구규모의 축소 경향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구규모 축소와 세대구성의 단순화 경향은 농가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농가의 가구규모를 보면, 1990년 이후 지난 15년 사이에 큰 폭으로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3인 이상의 대규모 가구가 크게 줄어드는 반면에 2인 이하의 소규모 가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로 지난 15년 사이에 가구원이 5인 이상인 농가는 74.2%, 4인 가구는 52.1%, 3인 가구는 33.0% 감소한 반면에 1인 가구는 58.4%나 증가하였고, 2인 가구 또한 39.4 % 증가하였다. 이러한 결과 2005년 현재 2인 가구가 43.9%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다음으로 3인 가구(16.7%)와 1인 가구(14.8%)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4인 이상의 대규모 가구가 대폭 줄어들고 2인 이하의 소인수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평균 가구원 수는 2005년 현재 2.70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를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결과와 비교해보면, 전국의 2.88명보다 적으며, 특히 도시 특성을 보여주는 동부(同部)의 2.93명보다는 0.23명이나 적은 규모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농가의 가구규모가 도시에 비해 축소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표 3-3> 연도별 농가 규모 변화 추이: 1990∼2010(단위: 천 가구, %)

구 분

1990년

1995년

 

2000년

 

2005년

 

2010년1)

 

증감률

증감률

증감률

증감률

농 가

1,767

1,501

-15.1

1,383

-7.8

1,273

-8.0

1,177

-7.5

농가비중

15.6

11.6

-4.0%p

9.7

-1.9%p

8.0

-1.7%p

6.8

-1.2%p

주: 1) 인구주택총조사 잠정 집계 결과의 전체 일반 가구(17,334천 가구)에 대한 농가비중.


<표 3-4> 가구원 수별 농가 분포 변화: 1990∼2005(단위: %)

 

총 농가 수

1인

2인

3인

4인

5인 이상

평균 가구원 수

1990

1995

2000

2005

1,767,033

1,500,745

1,383,468

1,272,908

6.7

10.0

13.1

14.8

22.7

32.9

38.7

43.9

17.9

18.3

17.6

16.7

18.9

16.6

14.4

12.5

33.8

22.3

16.3

12.1

3.76

3.23

2.91

2.70

증감률1)

-28.0

58.4

39.4

-33.0

-52.1

-74.2

-27.0

주: 1) 1990년 대비 2005년의 증감률임.

출처: 통계청, 『농업총조사보고서』, 각 연도.


지역별 분포를 보면 광역시 지역이 평균 3.07명으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에 전북(2.6명), 전남(2.4명), 경북(2.5명), 경남(2.5명)지역은 전체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광역시 지역의 농가는 도시가구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농가의 가구규모 특성을 보다 자세하게 분석하기 위해 전국 일반가구의 규모와 비교한 것이 <표 3-5>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도시지역에 비해 농가에서는 2인 가구가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현재 농가에서는 2인 가구의 비중이 43.9%로 가장 높으며, 다음으로 3인 가구(16.7%)와 1인 가구(14.8%)의 순서이다. 이러한 2인 가구의 비중은 전국이 22.2%, 동지역이 20.1%인 것에 비해서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 것이며, 농촌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읍면지역의 30.6%에 비해서도 13.3%p나 높은 수치이다. 2인 가구의 대부분이 65세 이상의 노인부부로 이루어진 가구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수치는 농가의 구조적 해체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반면에 1인 가구 비율은 14.8%로 동지역의 19.1%나 읍 · 면지역의 23.3%에 비해 비교적 낮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노인단독가구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동지역의 경우에는 1인가구가 혼인 적령기인 20대 후반에서 30대에 분포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점은 농가의 경우 1인 가구가 자녀가 도시로 떠나 노부부만의 가구형태로 있다가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한 이후의 현상이라면, 동지역인 도시의 경우는 비교적 젊은 층이 자발적으로 결혼을 미루면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1인 가구 특성이 농촌과 도시에서 그만큼 다르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표 3-5> 가구원 수별 가구구성 비교: 2005(단위: 천 가구, %)

구 분

총 가구 수

1인

2인

3인

4인

5인 이상

전 국

15,887

20.0

22.2

20.9

27.0

10.0

 

동지역

12,745

19.1

20.1

21.7

29.1

10.0

읍면지역

3,142

23.3

30.6

17.6

18.7

9.8

농 가

1,272

14.8

43.9

16.7

12.5

12.1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결과』, 2006; 통계청, 『농업총조사보고서』, 2006.


가구의 크기를 측정하는 또 다른 방법인 세대구성별 가구분포를 보아도 농가는 전국의 일반가구에 비해 매우 특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국의 일반가구에 비해 농가는 1세대와 2세대 가구의 비중이 매우 높다. 농가의 경우 1세대와 2세대 가구 비중이 전체의 73.9%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1세대 가구의 비중이 39.9%로서 전국의 일반가구 16.2%보다 23.7%p 높고, 도시 특성을 보이는 동지역보다는 25.8%p나 높다. 반면에 전국의 일반 가구는 2세대 가구의 비중이 55.4%로 가장 높다. 이는 농가의 34.0%보다 21.4%p나 높은 수치이고 동지역의 경우는 58.7%로서 농가보다 24.7%p나 높다.


<표 3-6> 세대별 가구구성 비교: 2005(단위: %)

구 분

총 가구 수(%)

1세대

2세대

3세대 이상

1인 가구

비혈연가구

 전 국

15,887,128(100.0)

16.2

55.4

7.0

20.0

1.4

 

동지역

12,744,940(80.2)

14.1

58.7

6.7

19.1

1.4

읍면지역

3,142,188(19.8)

24.9

42.2

8.1

23.3

1.5

농 가

1,272,908(100.0)

39.9

34.0

11.3

14.8

0.1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결과』, 2006; 통계청, 『농업총조사보고서』, 2006.


이러한 세대별 가구구성의 차이는 곧 농가에서 세대구성의 단순화 경향이 도시지역보다 훨씬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특히 전통적으로 3세대 이상의 직계가족 유형이 주류였던 농촌사회에서 이처럼 세대구성이 도시보다 더 축소되고 단순화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농가의 구조적 변화가 심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세대가 단순할수록 중심 세대의 연령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농가의 구조적 해체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3) 가족유형의 변화


일반적으로 가구의 인원상 형태나 세대별 구성형태를 살펴보는 것은 가족의 크기나 세대 깊이, 그리고 구성상 형태의 다양성을 살펴보기에 유용한 접근법이지만 가족구성의 ‘의미의 차(差)’에 대한, 그리고 가족해체의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가족의 구조적 특질에 근거한 가족유형의 변화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대다수 연구는 지난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가족의 구조적 해체가 심화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상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농업총조사 원자료 분석에 의한 농촌가족의 구체적인 유형변화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 3-7> 전국 일반가구와 농가의 가족유형 비교: 2005

 

인구주택총조사(일반가구)1)

농업총조사(농가)1)

15,887,128

100.0

1,272,908

100.0

핵가족형

부부

부부+기타 친인척

경영주+기타 친인척

부부+자녀

경영주+자녀

부부+자녀+기타 친인척

2,258,982

16,081

32,902

6,701,759

1,369,943

73,562

14.2

0.1

0.2

42.2

8.6

0.5

502,183

2,785

2,785

286,367

44,905

7,654

39.5

0.2

0.2

22.5

3.5

0.6

소 계

10,453,229

65.8

846,679

66.5

직계가족형

부부+자녀+양친

부부+자녀+한부(모)

부부+양친

부부+한부(모)

140,535

567,150

23,279

131,544

0.9

3.6

0.1

0.8

10,303

64,820

4,046

43,633

0.8

5.1

0.3

3.4

소 계

862,508

5.4

122,802

9.6

기 타

부(부)+형제자매

조부모+손자녀

4세대 이상 가구

비혈연가구

기 타2)

221,492

58,101

15,902

225,946

879,275

1.4

0.4

0.1

1.4

5.5

12,817

3.844

394

98,281

0.0

1.0

0.3

0.1

7.7

소 계

1,400,716

8.8

115,336

9.1

1인 가구

3,170,675

20.0

188,091

14.8

주: 1) 인구센서스의 경우는 가구주, 농업총조사의 경우는 경영주를 기준으로 구성한 것임.

     2) 기타에는 1세대, 2세대, 3세대가구의 ‘기타’를 모두 포함한 것임.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결과』, 2006; 통계청, 『농업총조사보고서』, 2006.


2005년을 기준으로 한국 농촌의 대표적인 가족유형은 중심 부부와 그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형(family of procreation)이다(66.5%). 반면에 전통 농촌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중심 부부와 그가 부양하는 부모세대가 결합하는 직계가족형(family of orientation)은 9.6%에 그쳤다. 그러나 전국의 일반가구와 비교해보면, 핵가족형은 비슷한 분포를 보이나 직계가족형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직계가족형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아직도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특성이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핵가족형 가구 중에서는 ‘부부’만으로 이루어진 가구형태가 39.5%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는 전국 일반가구의 비중보다도 25.3%p나 높게 나타난다. 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부부의 연령대이다. 농가의 경우 연령 분포가 대부분 60대 이후이지만, 전국 일반가구의 경우는 결혼 직후의 자녀 생산 이전 연령대인 30대에 모여 있다. 이 사실은 농가의 부부가구가 구조적 해체에 직면한 유형인 반면에 일반 부부가구는 이제 막 시작하는 형성단계에 있는 유형임을 알게 해준다. 다시 말해 농가는 해체과정에 놓여있는 반면에 도시가구는 형성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가족 생애주기 단계에서 결혼 이전 자녀가 구성원으로 있는 ‘자녀포함형’ 가구는 자녀출산, 양육, 사회화 기능을 수행하는 비교적 건강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농가 중에서는 이런 가구가 전체의 32.5%에 불과하다. 반면에 전국의 일반가구는 55.8%로 나타나 23.3%p나 차이가 난다. 농가에서 자녀포함형 가구가 적게 나타나는 것은 전체 가구주의 연령분포와 농가인구의 고령화현상을 감안할 때, 자녀가 성장하여 부모를 떠나는 가구의 해체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만약 도시로 떠난 자녀가 귀농하여 다시 새로운 가구를 구성하거나 부모와 동거하는 가구유형을 구성하지 않는 한 향후 농가의 가구유형이 더욱더 구조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농촌가족의 구조적 변화를 보다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핵가족형과 직계가족형의 구별보다 더욱 세밀한 조합에 의해 유형을 구분하고, 이들의 분포와 변화추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가의 경우는 가구원의 고령화와 가족주기상 해체기에 해당하는 농가가 많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형태상 분류를 통해서는 유형별 의미의 차이와 가족구성의 변화가 지니는 구조적인 차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기에서는 중심 부부의 연령, 가족성장 단계, 가구원의 구성범위, 가계계승자의 존재 여부와 지위 등을 고려하여 이념형 가구와 비이념형 가구, 과도기형 가구를 구별하여 그 분포와 변화추세를 살펴보기로 한다.5) 여기에서 사용하는 이념형, 비이념형, 과도기형 가족유형 분류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런 분류기준에 의거하여 2005년을 기준으로 농가와 전국 일반가구의 유형별 분포를 재구성한 것이 <표 3-8>이다. 2005년 농가의 가구구성에서 이념형적 가족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는 형태는 전체의 23.3%로서 전국 일반가구의 43.2%와 비교할 때 19.9%p나 적은 수치다. 이러한 경향은 비이념형 가족유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농가가 28.4%임에 비해 전국의 일반가구는 38.2%를 차지하고 있다. 농가의 가족구조의 특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과도기형 가족유형이 과반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전체의 48.3%를 차지하여 전국 일반가구의 18.6%보다 무려 29.7%p나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해체기에 놓여 있는 노인 부부가구가 39.5%나 된다. 이들 부부 중에서 한쪽이 사망하면 이들은 바로 노인 독거가구가 된다. 반면에 전국 일반가구의 1인 가구는 결혼을 자발적으로 미루는 비혼(non marriage) 가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이념형(ideal type) 가구는 ‘부부+자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핵가족(monolithic nuclear family)과 ‘부부+자녀+양친’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직계가족을 의미함.

  • 과도기형(transitional type) 가구는 전이과정에 있는 가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녀가 성장하여 독립한 형태나 부모 중 일방이 사망하여 한부모가족 형태로 있는 핵가족이나 직계가족형 가구를 의미함.

-‘부부’ 가구의 경우 결혼 후 자녀를 갖지 않은 형성기 가구나 자녀가 모두 독립한 쇠퇴기 가구를 모두 포함하며, ‘부부+양친’의 경우 중심 부부의 자녀가 독립한 경우임.

  • 비이념형(non-ideal type) 가구는 과도기형 가구가 해체되어 1인 가구나 조손가구로 구성되는 형태와 친인척과 형제자매가 포함된 방계형, 비혈연가구 등이 포함된 형태임.


<표 3-8> 전국 일반가구와 농가구성의 비교: 2005

 

인구주택총조사(일반가구)

농업총조사(농가)

15,887,128

100.0

1,272,908

100.0

이념형

부부+자녀(핵가족)

부부+자녀+양친(직계가족)

6,701,759

140,535

42.2

1.0

286,367

10,303

22.5

0.8

소 계

6,842,294

43.2

296,670

23.3

과도기형

부부

부부+양친

부부+한부(모)

부부+자녀+한부(모)

2,258,982

23,279

131,544

567,150

14.2

0.1

0.8

3.6

502,183

4,046

43,633

64,820

39.5

0.3

3.4

5.1

소 계

2,980,955

18.6

614,682

48.3

비이념형

1인 가구

방계형(친인척 포함가구)

한부모가족형

조부모+손자녀

비혈연가구

4세대 이상 가구

기 타*

3,170,675

344,037

1,369,943

58,101

225,946

15,902

879,275

20.0

2.2

8.6

0.4

1.4

0.1

5.5

188,091

13,224

44,905

12,817

394

3,844

98,281

14.8

1.0

3.5

1.0

0.1

0.3

7.7

소 계

5,063,879

38.2

361,556

28.4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결과』, 2006; 통계청, 『농업총조사보고서』, 2006.


이와 같이 전국의 일반가구와 농가의 가족유형을 비교해 본 결과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농가는 전국의 일반가구에 비해 전형적인 가족유형이 점차 해체되어 과도기형 가족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의 중심 부부 연령이 대부분 60세 이상의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이념형에서 과도기형으로, 과도기형에서 비이념형으로 가족구조가 변화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둘째, 가족의 사회재생산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이념형 가족유형이 전국의 일반가구에 비해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농가 가족구조의 지속가능성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자녀포함형 가구의 감소추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인데, 전반적으로 농가의 사회재생산 기능과 가족부양체제가 약화되어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표 3-9>의 농가의 가족유형 변화추이를 살펴보는 것은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지만 향후 변화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2000년 이후 2005년까지의 기간 동안, 전체 농가 수가 감소했기 때문에 모든 유형의 가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의 가구가 줄어든 것이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핵가족이며, 감소폭이 큰 가구유형은 ‘부부와 자녀, 그리고 양친’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직계가족 유형이다. 이에 따라 5년 동안, 이념형 가족은 85,275가구가 줄어들었으며, 감소율은 22.3%에 이른다.


<표 3-9> 연도별 농가 가족유형의 변화추세: 2000∼2005

 

2000

2005

증감

(2000∼2005)

증 감

증감률

1,383,468

100.0

1,272,908

100.0

-110,560

-8.0//

이념형

부부+자녀 (핵가족)

부부+자녀+양친(직계가족)

364,928

17,017

26.4

1.2

286,367

10,303

22.5

0.8

-78,561

-6,714

-21.5//

-39.5//

소 계

381,945

27.6

296,670

23.3

-85,275

-22.3//

과도기형

부부

부부+양친

부부+한부(모)

부부+자녀+한부(모)

471,248

4,813

46,957

93,928

34.1

0.3

3.4

6.8

502,183

4,046

43,633

64,820

39.5

0.3

3.4

5.1

30,935

-767

-3,324

-29,108

6.6//

-15.9//

-7.1//

-31.0//

소 계

616,946

44.6

614,682

48.3

-2,264

-2.4//

비이념형

1인 가구

방계형(친인척 포함가구)

한부모가족형

조부모+손자녀

비혈연가구

4세대 이상 가구

기 타1)

181,225

10,506

56,453

16,160

348

5,465

114,390

13.1

0.8

4.1

1.1

0.1

0.4

8.3

188,091

13,224

44,905

12,817

394

3,844

98,281

14.8

1.0

3.5

1.0

0.1

0.3

7.7

6,866

2,718

-11,548

-3,343

46

-1,621

-16,109

3.8//

25.9//

-20.5//

-20.7//

13.2//

-29.7//

-14.1//

소 계

384,547

27.8

361,556

28.4

-22,991

-6.0//

주: 1) 기타에는 1세대, 2세대, 3세대가구의 ‘기타’를 모두 포함한 것임.

출처: 통계청, 농업총조사 원자료 분석.


이념형 가족이 이렇게 줄어드는 반면에 과도기형 가족과 비이념형 가족은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0년 44.6%를 차지하던 과도기형 가족은 2005년에 48.3%로 증가하여 절반에 육박하고 있으며, 비이념형 가족은 27.8%에서 28.4%로 증가하고 있다. 과도기형 가족이 증가한 이유는 자녀가 성장하여 부모를 떠나면서 만들어지는 노인부부가족이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자녀가 포함된 ‘부부+자녀+한부(모)’형태는 전형적인 직계가족 형태에서 부모 중 한명이 사망하면서 편친이 포함된 불완전 형태의 직계가족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들은 향후 자녀가 성장하여 이동하게 되면 비이념형 가구형태로 전환될 소지가 많은 가구들이다. 비이념형 가족에서는 1인 가구와 방계형 가구의 증가폭이 크다. 반면에 조손가족이나 비혈연가족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이와 같이 이념형은 줄어들고, 과도기형이나 비이념형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농촌에서 농가 수가 감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가의 구조적 해체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특히 과도기형의 부부가구나 비이념형의 1인가구는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해체될 농가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심 부부의 연령대를 고려하여 가족유형을 재구성하면, 부부형 가구나 1인가구의 대부분은 고령화된 형태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의 구성비가 높은 것은 그만큼 농가의 가족구조가 허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농가의 가족문제


1) 농가의 빈곤문제


산업화 과정에서 농가가 생산위기로 인해 빈곤 상태에 이르는 경로는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직접 지배 방식으로 산업화 초기, 국가와 자본이 농가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단계이다. 1960∼1970년대 국가 주도의 수출지향 공업화를 위해 농가의 과잉노동력을 활용하여 도시산업의 장시간 노동체계를 유지하고, 농산물가격을 통제하여 저임금구조를 지속하였던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결과 농촌인구가 과도하게 도시로 유출되어 농가의 고령화와 생산노동의 여성화를 가져왔으며, 농가경제가 악화되어 농가의 빈곤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둘째, 간접 지배 방식으로 80년대 이후 급격하게 붕괴되는 농업체계를 대체하기 위해 산업부문과의 비교우위 논리를 통한 농산물수입개방과 농업구조조정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단계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산업부문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러한 개방농정이 더욱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농가는 생산이 위축되고 소득이 줄어들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농가의 빈곤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농가의 빈곤문제는 무엇보다도 해가 갈수록 농가수지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 3-10>에 의하면, 1975년 농가 가처분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불과하던 것이 점차 늘어나 2005년에는 소득보다 부채가 더 많은 상황(117.1%)에 이르고 있다. 생산성 부채는 생산투자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것인데, 1995년 이후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이때가 WTO체제 이후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농업에 투여되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당시 농정의 효과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부채규모가 소득보다 높을 경우 정상적인 가계운영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가계성 부채마저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농가경제의 어려움이 그만큼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부채 총액이 소폭 줄어들고는 있지만 농가경제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표 3-10> 농가수지의 변화추이: 1975∼2008

연 도

부채총액(A)

구성비(%)

가처분소득(B)

부채비율(A/B)

생산성

가계성

차입상환

1975

33,434

57.9

36.1

6.0

1,127,110

3.0

1985

2,023,922

64.5

23.5

12.0

5,689,669

35.6

1995

9,163,120

80.0

12.1

7.9

21,628,739

42.4

20051)

27,209,874

65.1

24.3

10.6

23,232,064

117.1

2008

25,786,236

62.8

25.0

12.2

23,749,149

108.6

주: 1) 2005년 부채구성은 농업용과 겸업용을 생산성으로, 기타를 차입상환으로 전환한 것임.

출처: 통계청, 『농가경제통계』, 각 연도(부채); 농림부, 『농림통계연보』, 각 연도(가처분소득).


농가수지의 악화 이유는 간단하다. 성장과 소득의 괴리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난 25년간 실질농업소득 및 불변농업소득액(부가가치)의 변화를 보면, 1995년까지는 농업소득과 농업생산액이 거의 비슷하게 변화했으나, 1995년 이후에는 둘 사이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된다. 이와 같이 성장과 소득의 괴리현상이 나타난 것은 농산물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이후 2008년까지 농산물 가격은 11% 상승한 데 비해 투입재 가격은 41%나 상승하여 경영여건이 악화된 데다 소비자물가는 33%나 상승하여 농가의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이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FTA가 체결되고 이행되기 시작하면 교역조건은 더욱 악화되고, 성장과 소득의 괴리현상은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가빈곤은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

농가수지가 악화되고 농가빈곤이 심화되면서 두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농가빈곤이 이중구조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농가 계층 간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5분위 소득비율이 1995년에는 6.3배였으나 2008년에는 9.4배로 늘어나고 있다. 도시부문의 5분위 비율인 5.3배보다 훨씬 높아 농가 내부의 계층 격차가 그만큼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상위 소득계층의 분포는 감소하고, 하위 소득계층일수록 분포가 늘어나 소위 ‘하방집중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농가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무엇보다도 농업소득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6) 농가 의 교역조건 악화로 농사만 짓고서는 농촌에서 살기 힘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실질농업소득이 최상위보다 최하위 계층에서 4배나 빨리 감소했기 때문이다.

둘째, 도농 간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표 3-11>에 나타나듯이 도시근로자 대비 농가의 월평균 가구소득 비율은 1985년까지 112.8%로 도시근로자 가구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어 2008년에는 65.3%에 머물고 있다. 또한 30∼40대의 젊은 농가는 도시가구보다 소득이 높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점차 떨어져 70대 이상 고령농가는 도시 노인가구의 49.8%밖에 되지 않는다. 최저생계비 미만의 절대 빈곤 가구 수도 농촌지역은 전체의 18.2%에 이르지만 도시는 8.5%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중위 60% 미만의 경우, 농촌지역은 44.3%가 절대빈곤에 처해 있지만 도시는 24.3%로 차이가 있다. 절대빈곤의 수준마저도 도농 간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이다(보건복지부, 2010: 11).


<표 3-11> 도농 간 소득격차 추이: 1975∼2008

연 도

도시근로자가구(A)

농가(B)

B/A(%)

1975

65,540

72,744

111.0

1985

423,788

478,021

112.8

1995

1,911,064

1,816,880

95.1

2005

3,250,837

2,541,918

78.2

2008

3,894,709

2,543,583

65.3

출처: 통계청, 『도시가계연보』(도시근로자), 『농가경제통계』(농가), 각 연도.


WTO체제에 대비하기 위해 농업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오히려 도농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농가 내부에서도 성별, 연령별, 계층별로 소득수준이 큰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농가빈곤의 이중구조는 개인 차원의 게으름이나 나태함 때문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농업체제의 위기에 대해 농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산체계가 붕괴되면서 빈곤이 오히려 심화된, 구조 차원의 문제이다(김흥주, 1994; 장경섭, 2009). 따라서 빈곤농가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빈곤의 이중구조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가족생활의 토대를 약화시켜 농가 재생산체제의 위기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2) 가족관계의 해체


농촌가족은 앞에서 살펴본 구조의 해체에 덧붙여 가족관계의 해체도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부모-자녀 관계의 변화는 부모의 소외문제와 부양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흔히 가족관계는 가구(가정)라는 동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 관계와 가족7)이라는 관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념적 관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념적 관계는 자녀의 도시 이동에 따른 구조적 측면의 가족해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는 실제적 관계와 이념적 관계를 구별하지 않지만, 자녀는 이념적 관계보다 직접 경험하는 실제적 관계를 더 중시한다는 데에 있다.

<그림 3-1>은 1세대 부부가 1남 1녀를 두었고, 자녀가 모두 이동하여 남자는 결혼하고 두 자녀를 둔 경우를 가정하고 이들의 가족관계를 모두 표기해본 것이다. 이들의 가족관계 수(Y)는 가족원 수(X)에 의해 결정되는데, 공식은 Y = X/2(X-1)이다. 따라서 <그림 3-1>에서 형성되는 가족관계 수는 모두 21개이다. 그런데 부모인 A와 B는 이 중에서 오로지 자신의 부부관계만이 공간과 시간을 같이하는 실제적 관계이며, 나머지 20개의 관계는 가족이라는 상징적 틀 속에서 이루어진 이념적 관계에 불과하다. A(父)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와 같이 모두 동거한다고 가정하면 21개의 관계를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단 하나의 관계(A-B)만을 통제하며, 이 관계도 권위관계이기보다는 협력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A는 통제권의 상실에 대한 소외를 느낄 수밖에 없다. B(母)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사회에서 B가 유일하게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E와의 관계(고부관계)는 오히려 며느리 눈치를 보아야 하는 역(逆)관계로 재편되는 형편이다.


<그림 3-1> 가족의 가족관계 수


부모와 자녀 사이의 이념적 관계와 실제적 관계의 괴리는 전통적으로 부모-자녀의 권위관계를 유지하는 물질적 장치였던 상속관행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재산상속의 경우, 무엇보다 농지상속을 통한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력행사가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자녀가 도시에서 다른 직종에 종사하면서 농업계승을 바라지 않고, 농지의 재산가치도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통제수단으로서 농지상속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관계는 부모가 자녀에게 농산물의 제공 등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과 자녀가 부모에게 현금지원을 통해 부분적인 부양체계를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제사상속도 가계계승의 의의가 약해져 통제수단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부모가 자녀가 있는 도시로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가족관계의 변화는 부양체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표 3-12>에 의하면 부모 부양을 가족들이 해야 한다는 의견은 2002년에는 70.7%에 이르렀지만 2010년에는 36.0%에 불과해 34.7%p나 감소하였다. 반면에 가족과 정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은 18.2%에서 47.4%로 29.2%p나 증가하였다.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12.7%나 되었다. 2010년을 기준으로 도시지역인 동부와 농촌지역인 읍 · 면부의 견해 차이도 상당했다.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은 농촌이 42.0%로 도시의 34.7%보다 7.3%p가 많았다. 반면에 정부와 사회 책임을 주장하는 견해는 도시가 8.9%p가 많았다. 특징적인 것은 장남 중심의 부모부양의식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에 21.4%에서 2010년에는 12.3%로 낮아졌다. 그러나 농촌은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장남에 의한 부모부양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표 3-12> 부모 부양에 대한 견해

 

부모

스스로 해결

가족

가족과

정부,

사회

정부,

사회

기타

소계

장 남

(맏며느리)

아들

(며느리)

(사위)

모든

자녀

자식 중

능력 있는 자

2002

100.0

9.6

70.7

100.0

21.4

19.7

1.4

27.6

30.0

18.2

1.3

0.2

2008

100.0

11.9

40.7

100.0

17.3

6.7

0.9

58.6

16.4

43.6

3.8

0.0

2010

100.0

12.7

36.0

100.0

13.8

7.7

1.8

62.4

14.3

47.4

3.9

0.0

동부

100.0

12.4

34.7

100.0

12.3

7.5

2.0

63.9

14.3

49.0

3.9

0.0

읍 · 면부

100.0

13.9

42.0

100.0

19.2

8.4

1.3

57.1

14.1

40.1

3.9

0.0

출처: 통계청, 『한국의 사회지표』, 2010.


이와 같이 가족부양체제가 점차 약해지는 경우, 부모의 보호는 노인복지제도가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기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복지수준이나 인식을 감안하면 노년층 부모세대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노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나 시설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공공부조 또한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소규모의 재산 및 소득으로 인해 충분하게 제공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복지패널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빈곤인구비율 대비 수급인구비율은 대도시 93.5%, 중소도시 66.3%, 전국 평균 74.1%인 데 비해 농촌은 48.6%로 나타났다. 대도시에 비해서는 44.9%p, 전국 평균에 비해서는 25.5%p나 낮은 비율이다. 그만큼 농가들이 절대빈곤의 현실인 데 비해 국가의 사회보장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김흥주, 2011: 120). 가족부양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국가의 사회복지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부모세대의 생계유지 방법은 스스로 노동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농촌의 부모들은 대부분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농사를 짓는다. 농사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새벽에 봉고차로 일하러 나가 저녁에나 집에 돌아오는 형태로 농외소득을 얻기 위해 부업에 참여한다. 때문에 한낮에 마을에 들어가면 초고령이거나 건강 때문에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노인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이것이 한국 농촌 노인들의 생계유지 전략이다.


3) 생산노동의 여성화


농촌인구가 고령화되고, 젊은층의 이농으로 생산노동에 참여할 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여성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생산노동의 여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국 농촌은 1970년대만 하더라도 농가의 노동력 구조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 농업생산도 미작 중심이었기 때문에 여성노동의 필요성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농산물수입 때문에 농가경제가 더욱 악화되었고, 농가 차원에서는 경제활동의 다양화를 통해 이에 대응하려 하였기 때문에 복합영농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축산과 채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복합영농은 노동과정의 특성상 여성노동을 많이 필요로 한다. 더구나 이농과 고령화로 인해 농가의 노동력은 많이 부족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여성이 생산노동에 대거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표 3-13>은 농가의 성별 농업노동투하량 변화추이를 살펴본 것인데, 1975년에 전체의 33.3%를 차지하던 여성노동이 점차 늘어나 2008년에는 47.6%로 전체 생산노동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노동이 늘어나게 된 요인은 농가경제의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족노동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생계를 유지하려는 전략적 선택에 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농가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1985년에 52% 수준이던 것이 2005년에는 68%에 이르러 20년 사이에 16%p가 증가하고 있다. 동일 기간에 농가의 남성 참여율이 6%p 증가하였으며, 2005년에 비농가여성의 참여율이 48.5%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생산노동의 여성화가 얼마나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표 3-13> 성별 농업노동투하량 변화: 1975∼2008

연 도

여 자

남 자

합 계(총 시간)

1975

33.3

66.7

100.0(1,708.47)

1985

42.8

57.2

100.0(2,016.95)

1995

48.2

51.8

100.0(1,413.67)

2005

49.9

50.1

100.0(1,487.48)

2008

47.6

52.4

100.0(1,229.36)

출처: 통계청, 『농가경제통계』, 각 연도.


이러한 생산노동의 여성화는 흔히 부부 사이의 역할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여성노동력의 필요성 때문에 전략적 차원에서 부부사이에 역할 공유(role-sharing)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농촌은 부부사이의 의사결정 구조와 역할구조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농업경영과 소득관리 등 경제활동 분야는 여전히 남성의 몫으로 남아 있고, 식사준비, 세탁, 청소 등 가사노동 부분은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생산노동에 공동으로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가정생활을 하는 데 있어 역할의 공유보다는 오히려 성별 역할 분담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불평등 구조가 여전히 여성문제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먼저 농가 부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자. <표 3-14>에 의하면 전체 항목에서 50% 이상이 부부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으며, 생활비와 자녀교육 항목에서는 오히려 부인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사활동 부분은 어느 정도 부부 사이에 역할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농지매매, 농사작목 결정, 농산물판매 결정 등 농업경영 관련 항목은 남편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부부 공동으로 결정하는 경우에도 궁극적인 결정은 남편의 몫인 경우가 많았다. 허미영과 박민선(2004)의 연구에 따르면, 농가여성의 경영성과 참여는 매우 낮았으며, 경영과정에 참여하는 경우도 일상적 의사결정을 제외하고 전략적이고 관리적인 의사결정은 남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농가 부부의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가 여성들의 지위향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 3-14> 농가 부부의 의사결정구조: 2009

구 분

주택농지 매매

농사/작목

농산물 판매

생활비

TV채널

자녀교육방식

경조금

남편우위

45.0

45.8

38.0

18.9

29.4

11.5

35.9

부부공동

52.6

50.3

52.9

56.7

53.1

74.0

58.4

부인우위

2.4

3.9

9.1

24.5

17.5

14.5

5.7

합 계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출처: 농촌진흥청, 『2009 농촌지표』, 2010.


더 큰 문제는 역할구조에서 나타난다. <표 3-15>에 나타나듯이, 여성의 생산노동 참여가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에서도 식사 준비(92.9%)와 세탁(93.7%), 청소(79.7%) 등 가사노동은 거의 전적으로 부인 역할이다. 이 때문에 농가의 여성은 과중한 생산노동에 덧붙여 가사노동까지 이중, 삼중의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표 3-15> 농가 부부의 역할구조: 2009

구 분

큰돈 관리

생활비 관리

식사 준비

세탁

청소

자녀 양육

친인척 교제

남편역할

73.2

11.4

0.7

0.8

1.8

1.1

21.1

부부공동

26.3

23.3

6.0

4.8

17.2

35.5

66.5

부인역할

0.6

64.8

92.9

93.7

79.7

61.6

11.9

부모 · 자녀

-

0.5

0.4

0.7

1.2

1.8

0.5

합 계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출처: 농촌진흥청, 『2009 농촌지표』, 2010.


농가 여성은 과중한 노동 부담과 더불어 인구고령화에 따른 노인부양 부담까지 안고 있다. 한 사회의 노인부양 또는 수발의 주체가 여성임을 보여주는 인구지표로는 가족부양비(familial support ratio)가 있다. 이는 40∼59세의 여성인구를 65∼84세의 고령인구로 나누어서 구할 수 있다. 인구센서스 결과에 의하면, 2005년 농가의 가족부양비는 0.58이다. 이에 비해 도시는 1.97이다. 그만큼 농가의 여성이 떠안아야 할 노인부양의 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활성화되고, 농촌에 적합한 복지모델이 정착되면 여성의 부양 부담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여전히 과중한 부양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4) 자녀교육의 문제


한국 농촌의 자녀교육 문제는 농촌의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비롯되고 있다. 공간환경과 심리환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양 측면 모두 도시지역과 비교해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먼저 공간환경의 문제를 살펴보자. 학령기 인구의 부족으로 인한 소규모 학교비율이 도시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전체의 64.6%가 200명 이하의 학교이며, 1000명 이상인 학교는 4.8%에 불과하다. 이러한 소규모 학교 · 학급은 잘 운영하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나 우리 농촌은 오히려 복식학급8)등 교육여건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학거리가 멀기 때문에 통학수단도 대중교통이나 통학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교직원의 부족이나 상치교사의 문제 때문에 교육수준에 대한 불신도 높다. 이 때문에 농가의 교육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표 3-16> 학생 수별 학교 수 비교

구 분

200 이하

200∼600

600∼1000

1000∼2000

2000 이상

농산어촌

64.6

22.8

7.8

4.5

0.3

100.0(4,557)

도시지역

3.8

11.5

27.1

53.0

4.6

100.0(5,592)

출처: 농림부, 『농림어업인에 대한 복지실태조사』, 2004.


<표 3-17> 학교교육서비스 만족도 비교

구 분

만 족

보 통

불만족

합 계

농산어촌

11.9

53.6

34.5

100.0(3,500)

도시지역

29.5

50.4

20.1

100.0(1,506)

출처: 농림부, 『농림어업인에 대한 복지실태조사』, 2004.


방과 후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농촌자원개발연구소의 2005년 조사에 의하면 전체 학생의 46.4%가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거나 친구와 함께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교과목을 보완하는 학원을 다니는 경우는 22.2%이며, 개인 과외를 받고 있는 경우는 3.1%에 불과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나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방과 후 학교도 대부분 도시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농촌주민들은 농촌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교육시설 보완, 안전한 교사 확보, 교육정보화 시설 확대 등 공간환경 관련 부분이 전체의 55.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교육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26.2%에 머물렀다(농림부, 2004). 비용문제보다 교육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녀교육에 집중할 수 없는 부모의 현실과 생산노동에 시달리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부담감은 열악한 심리환경을 만들고 있다. 부모세대는 자신의 계층 이동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녀들을 교육시켜 자기와는 다르게 살게 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매일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과중한 농사일 때문에 자녀들에게 많은 신경을 쓸 수 없는 현실이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반면에 자녀는 부모의 과도한 자기희생적 태도에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대다수 농촌지역 학생들은 ‘불균형 사회화’를 경험하고 있다. ‘불균형 사회화’는 학교 제도가 수행하는 사회화 내용과 농촌 생활의 현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있어 학생들이 오히려 자아정체감 혼란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전북 임실에서 녹취한 다음의 이야기가 이러한 불균형 사회화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한시도 쉴 틈이 없이 일해야 되는디 자식들 공부하는 데 들여다 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애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밥먹을 때와 저녁에 테레비나 같이 보는 정도이다…. 가끔 저녁에 애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무순 이야긴지도 모르겠고 피곤혀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 공부 잘하고 잘되는 것이 소원인디 때로는 미안한 생각도 들고 농사일 작파허고 도외지(도시)로 나가 공부환경이나 만들어 줄까 허는 생각이 많이 든다….”(K씨, 남, 42세, 농부)


“···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는디 나 혼자 공부한다고 방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갑갑혀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모내기 철 같이 바쁠 때에는 학교에 가도 집중이 안된다…. 공부 열심히 허는 것이 보답허는 길이라는 걸 알지만…. 가끔은 테레비나 소설책에서 읽은 도시애들의 교육환경이 부럽기 그지없다….”(K씨의 차남, 15세, 중학생)


농촌에서 상급 학교에 자녀를 진학시켜야 하는 경우, 가구 전체가 도시로 이동할 수 없을 때에는 자녀만을 도시로 이동시켜 홀로 공부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농가들은 대개 ‘1가족 2가구’의 형태로 지낼 수밖에 없다. <표 3-18>을 보면, 전국의 분거가족은 2006년에 21.2%에서 2010년에는 15.1%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농촌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읍 · 면부는 오히려 21.6%로 동부의 13.6%보다 8.0%p나 많다. 특히 미혼자녀의 분거율이 19.7%에 이른다. 이 수치가 바로 농촌에서 도시로 유학한 자녀들이라고 볼 수 있다.


<표 3-18> 분거가족 비교: 2006∼2010

 

분거가족

가구주1)

국내 · 외

배우자 및 미혼자녀

국 내

국 외

배우자

미혼자녀

2006

100.0

21.2

19.8

1.8

4.7

18.5

2008

100.0

16.5

15.0

1.9

3.8

14.1

2010

100.0

15.1

13.6

1.8

4.4

12.5

동 부

100.0

13.6

12.0

-

4.5

10.9

읍 · 면부

100.0

21.6

21.0

-

3.7

19.7

주: 1) 배우자나 미혼자녀가 타 지역에 살고 있는 가구주이며, 한 가구주당 배우자 및 여러 명의 자녀가 동시에 타지에 살고 있는 경우가 있음.


농촌자원개발연구소(2005: 254)의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도시로 이동한 자녀들 중 45.9%가 자취를 하고 있다. 이들 농가는 정규 교육비 외에 주거비 · 생활비 · 교통비 등을 따로 지불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중 부담은 농가의 가계 압박을 가져온다. 농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다양화하여 소득을 극대화해야 하며, 이 때문에 부모세대는 과다한 자기 착취의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자녀의 교육문제는 농촌의 ‘청소년’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가족생활의 위기를 가져오는 ‘가족’문제라는 점이 특징이다.



4. 농가 변동의 메커니즘


1) 핵가족화론


지금까지 한국 농가의 구조변화와 다양한 가족문제를 살펴보았다. 그중에서 핵심은 농업생산의 주체인 농가의 해체와 이로 인한 농촌사회 전체의 재생산 위기이다. 이러한 농가의 변동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농가의 구조변동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연구는 핵가족화론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산업화와 가족변화의 관계를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핵가족화론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농가인구가 대규모로 유출되며, 이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가 가족구성을 변화시키고, 가족구성의 변화가 가족생활의 내용을 변화시킨다고 설명한다. 변화 내용으로는 전통적인 농촌가족이 산업화로 인해서 구성 측면에서 가구규모의 축소와 핵가족화, 내용 측면에서 가족기능의 축소와 여성의 역할증대, 가족관계 측면에서 가장의 권위 약화와 평등한 부부관계로 변화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분석은 결과에 대한 설명력이 높다는 나름의 유용성은 있겠지만, 산업화라는 추상적인 힘만을 가족변화의 동인으로 상정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가족을 산업화에 단순히 적응하는 수동체로 파악하기 때문에 농가해체의 역동적 과정과 문제발생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농가의 해체과정을 산업화라는 거시요인만이 아니라 다른 요인과의 연관 속에서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그림 3-2> 핵가족화론 변동 모델


2) 가족전략론


농가해체의 과정을 장기지속의 시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이해하고, 그 틀에서 농민의 가족문제가 심화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농가변화에 대해 보다 과학적인 해명을 위해서는 변화요인의 거시(구조)와 미시(행위)의 연계(macro-micro linkage) 과정과 그 동학을 하나의 틀에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산업화라는 거시요인만을 가지고 변화를 설명하는 한계와 농가 내부의 미시 차원에 집착하여 가족문제에 접근하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둘째, 농가의 경우, 변화가 바로 가족위기의 심화과정이며, 이는 곧 다양한 가족문제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가족의 재구조화 과정이 아닌 해체라는 가족문제로 귀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농촌의 가족문제는 농가해체를 강제하는 다양한 외부압력과 이에 소유자원을 총동원하여 대응하려는 농가 생계유지 전략 사이에서 점진적으로 파생되는 것이기에 도시가족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가구주 실직으로 한순간에 해체되는 중산층이나, 해체가 노동시장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도시 빈민가족과는 차별화된 가족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관점을 가지고 한국농가의 변동과정을 도시하면 <그림 3-3>과 같다.


<그림 3-3> 농가의 변동과정과 영향요인


첫째, 농정의 실패와 자본의 농업지배 등 외부의 강한 압력이 농가 해체를 강제하는 과정이다(<그림 3-3>의 Ⅰ → Ⅲ).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농가의 잉여를 강제로 이전시킴으로써 도시산업무문의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1960∼1970년대의 저농산물가격정책을 통한 저임금구조의 유지, 1980년대의 농산물수입개방을 통한 가격정책의 유지, 1990년대의 농업구조조정을 통한 국가경제의 경쟁력 유지 등이 그 예이다. 자본부문은 국내 농산물의 가공 · 유통의 독점, 거대 글로벌 농기업의 농업시장 지배 등으로 농업의 잉여를 이전시켜 갔다. 즉, 거시요인의 농업지배가 대다수 농가의 생산체계를 붕괴시켜가는 과정이다.

둘째, 생산체계 붕괴로 인한 궁핍화에 대응하는 농가의 생존전략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농가가 해체되는 과정이다(<그림 3-3>의 Ⅱ → Ⅲ). 국가와 자본의 잉여이전 압력은 농가의 궁핍화를 가져오지만, 이에 대해 농민은 가족을 매개로 다양한 전략을 통해 농업생산을 유지하려 한다. 농민에게 있어 가족은 생산의 단위인 동시에 노동공급의 단위이며, 가부장적 권위에 의해 가족원의 노동력을 조정 · 통제할 수 있는 집합체이기도 하고, 가치실현이 상실된 비임금노동(non-wage labor)과 무보수가사노동(unpaid domestic work)이 결합되어 생계유지의 단순재생산을 가능할 수 있게 하는 특수한 구성원리로 규제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생존전략 실행이 가능하다(Crow, 1989: 7).

농가가 취하는 기본적인 생존전략은 경제활동을 다양화하여 수입을 극대화하고 소비를 최대한 억제하여 가계의 균형을 맞추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소비극소화 전략에는 가족원의 일부가 도시로 이동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들이 도시에서 취업하여 임금소득을 올리거나 비경제활동인구를 줄여 가구 단위 소비를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계유지 전략은 급격한 농가해체를 막아주기는 하지만 전략의 실행 자체가 농가에게는 커다란 부담이기 때문에 또 다른 해체요인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과도한 자기착취(self- exploitation)의 노동형태와 노동조건 악화, 성별 · 출생순위별로 차별적인 전략행위의 강요, 과도한 소비억제 등이 서서히 농가를 재생산 위기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셋째, 해체 과정에서 다양한 가족문제를 안게 된 농가에게 국가는 지속적으로 ‘가족을 통한 복지(welfare through the family)’라는 가족부양체제를 강조하였으며, 이 때문에 농가의 재생산체계가 빠르게 붕괴되는 과정이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농가는 국가의 복지체제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도시자녀에 대한 복지기능을 수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농가의 생활역량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국가는 농가에 대한 복지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농가의 해체위기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 농가는 산업화라는 외부 충격에 의해 일시에 자연적으로 해체된 것이 아니다. 국가와 자본의 농업지배 과정에서 ‘생산체계의 붕괴, 농가경제의 궁핍, 소유자원을 총동원하는 생계유지 전략, 가족 재생산체계의 약화’ 순으로 서서히 해체되어 왔다. 외부의 강제력과 농가의 대응력 사이의 동학관계에서 농가의 대응력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농가의 생산 및 재생산 위기가 개인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첩된 모순구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농촌가족의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의 복지책임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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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2010, 『제2차 농어촌보건복지 기본계획(10-14)』.

장현섭, 1993, “한국 사회는 핵가족화하고 있는가”, 『한국 근현대가족의 재조명』(한국사회사연구회논문집)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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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 『농어촌지역 보건복지 욕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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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gess, Ernest W. and Harvey J. Locke, 1953, The Family: From Institution to Companionship , New York: American Book.

Crow, G., 1989, “The Use of the Concept of ‘Strategy’ in Recent Sociological Litera-ture”, Sociology 23(1): 34-78.

Goode, W., 1963, World Revolution and Family , New York: Free Press.

Murdock, G. P., 1949, Social Structure , New York: Free Press.


이야깃거리

  1. 농촌가족과 도시가족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왜 차이가 만들어지는지, 이러한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이 있는지 논의해 보자.

  2. 농촌가족의 구조적 해체 현황을 이야기해 보고, 해체 과정에 영향을 미쳤던 구조적 요인과 행위적 요인을 설명해 보자.

  3. 농촌가족의 다양한 가족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을 선택하여 그 실태와 해결방안을 논의해 보자.

  4. 최근 들어 농촌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희망을 만들고 있다. 귀농가구와 결혼이민자가구가 곧 그들이다. 이들이 농촌가족의 미래에 어떠한 활력이 될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더 읽을거리

김흥주, 1994, “한국 농민가족의 변화에 관한 연구: 농민의 가족전략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미간행).

장경섭, 2009, 『가족 · 생애 · 정치경제: 압축적 근대성의 미시적 기초』, 창비.





제4장 농촌조직의 다양성


윤수종


주요 개념 및 용어

농촌조직, 농민조직, 농업조직, 농촌공동체, 마을, 생산조직, 노동조직, 수탁 작업조직, 작목반, 영농조합법인, 수리조직, 동족조직, 친족조직, 생산자조직, 유통조직, 농민운동조직, 두레, 계, 품앗이, 고지, 공동작업반, 농기계공동이용조직, 농업회사법인 , 품목별생산자조직, 금융조직, 지배통제조직



1. 농촌조직의 유형화


농촌사회학에서 농촌은 공간 개념이지만 실은 농민과 농업을 함께 다룬다. 따라서 농촌조직이라고 할 때, 공간적인 의미의 농촌조직(예를 들어, 마을)과 농업주체인 농민들의 결집체라는 의미에서의 농민조직, 그리고 농업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이루어진 농업조직들을 포괄한다. 물론 농촌조직, 농민조직, 농업조직은 서로 경계가 모호하거나 겹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난다. 또한 국가장치의 하위 단위들인 지방자치단체들을 포함한 행정기구들과 준국가기구들, 유관 단체들까지 포괄하기도 한다.

또한 농촌사회학에서는 조직을 ‘집단’이란 개념으로 파악해 왔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개념에 입각하여 마을 개념이 정립되어 왔다. 특히 농업경영이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다 보니 가족집단과 친족집단 및 동족집단 등이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점차 농업생산방식도 바뀌어 나가고 마을 단위 공동체적 결속이 변화하면서 이러한 집단들은 점차 변해가고 있으며, 마을 간의 수평적인 연계나 마을을 넘어서는 조직이나 집단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집단 개념을 느슨한 조직 정도로 생각하고 농촌의 다양한 집단들을 조직에 포함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러 기준을 종합하여 농촌조직의 변화양상을 고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해 보고자 한다.

먼저 전통적인 조직의 양상을 공동체의 변모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를 위해 농촌공동체 개념에 대한 이해와 그 내용을 살펴보고 농촌공동체의 변화에 대해서 기술한다. 여기서는 마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 나간다.

이어서 생산조직을 중심에 두고 농촌조직을 설명해 나가고자 한다. 생산력 수준이 미약한 상태에서의 생산조직은 축력과 노동력을 중심으로 결합된 노동조직으로 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공동노동의 필요성에서 생긴 다양한 노동조직들이 나타났으며, 기계화와 더불어 노동 중심의 결합형태에서 기계 중심의 결합형태로 바뀌어 갔다. 또한 다양한 농기계이용조직들이 등장하였고, 기계가 고성능화되면서 기계작업자가 다른 농민들의 작업을 해주는 수탁작업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러한 변화양상은 특히 벼농사에서 두드러졌다.

또한 상품작물 재배의 증가와 다양한 작목별 유통화에 따라 작목반을 비롯하여 작목별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 노동조직과 생산조직의 범위를 넘어서는 생산자들의 결합형태로서 유통과 가공에도 참여하는 생산자조직이 영농조합법인 등의 이름을 띠고 나타났다. 영농조합법인을 비롯한 회사법인의 증가와 다양한 공동체적 실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고용노동의 집합화와 조직화도 나타나고 있으며, 수리조직 또한 저수지와 보의 수준에서 댐과 간척지 건설 등의 규모로 전개된다.

아울러 기존의 농업관련 유통조직들도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신협, 농협과 같은 농업 금융 관련 조직들도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 및 유통 조직들 주위에는 각종 농민조직들이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들은 전국 단위로 조직되어 있으며 각 지역에는 지부가 있다. 조직들은 관 주도형과 민간 주도형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민간이 주도하는 조직들 중에는 국가의 농업정책에 대해 비판하면서 농민의 권익을 실현하려는 농민운동조직도 발전해 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관 주도형이 아닌 국가장치의 하위단위도 농촌조직에 포함된다. 따라서 다양한 조직들을 포괄하면서 국가의 지배를 실현해 나가는 각종 국가기구들과 준행정기구들이 있다.



2. 농촌조직의 전개과정


1) 농촌공동체


농촌공동체에 관한 논의는 여러 학문분과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그 강조점이나 개념규정 또한 다양하다. 역사학이나 경제학에서는 대개 원시시대의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여 분석한다. 공동생산, 공동분배에 기초한 씨족공동체, 지역공동체로서 농촌(촌락)공동체를 분석하고, 이러한 공동체가 계급사회가 전개되면서 어떻게 해체되었는가에 초점을 둔다. 그 결과 공동체의 존속을 부정하는 인식으로 나아간다. 반면 사회학에서는 자본주의사회가 발전하면서 공동체적 요소들이 사라져 가는 측면을 강조하는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사회의 전개와 함께 전반적으로 공동체가 해체되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분석하는 데서 ‘공동체’ 개념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를 분석하는 데 공동체 개념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고, 당연히 농촌공동체 개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보통 공동체라 하면 일정한 지역(마을) 단위에서 생산과 생활을 공동으로 영위하는 집단으로서, 일정한 정도의 내적 공통성을 가진 집단을 의미한다. 먼저 농촌공동체라고 할 때에는 마을 사람의 ‘생산과 생활의 공동기구로서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공동생산은 역사학이나 경제학에서는 흔히 토지를 비롯한 중요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 및 그와 결합된 공동노동, 공동분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유화가 계급사회가 정립되면서 이러한 의미의 공동생산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가족 중심의 소유가 진전될수록 나아가 공동소유부분은 축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생산과정 그 자체의 공동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가족을 중심으로 소생산, 소경영을 해나가고 있는 농민들은 생산수단(농기구, 농기계 등)의 미비, 생산과정의 계절성으로 인한 노동력 수요의 일시적 집중, 일정한 내부적 노동분업 등으로 공동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가족적 소(小)소유라는 토지소유의 기반 위에서 생산의 공동화는 지속되었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 생산의 공동화는 모든 생산과정의 공동화(공동생산)를 의미하지 않으며, 더구나 공동경영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생산의 공동화는 일부의 생산과정에서만 나타나는 생산의 공동화를 의미하며, 이는 공동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개별농가의 영농이 이러한 공동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생산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대개 이러한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물론 생산의 공동화는 사회주의 농촌에서 나타나는 생산대의 작업처럼 체계화된 공동화에서, 마을 단위의 품앗이(반)와 작업집단(예: 농기계공동이용조직)에 의한 공동작업과 다양한 방식의 노동력조달을 통한 공동작업 등에까지 그 폭이 넓다.

기계화가 진전되면서부터는 마을 단위 안에서 농기계를 중심으로 한 생산의 공동화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물론 생산이 개별화되는 측면도 있다). 생산의 공동화는 마을 단위에서 일정한 조정이 이루어지지만, 마을 범위 안에서 소수농가 사이에 행해지는 것이 많고 마을 전체로 이루어지는 것은 적은 편이다.

농촌공동체의 생활공동화는 생산의 공동화와 마찬가지로 자연부락, 즉 마을 단위로 이루어져 왔다. 물론 마을 단위를 넘어서는 면식범위 안에서 생활의 공동화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주로 마을 안에서 나타난다. 개별 가족의 독립적인 생활의 기초 위에서 농가 간에 각종 형태의 공동생활(협동생활)이 이루어진다. 특히 마을 단위 안에서 결혼, 장례, 기타 마을놀이 등의 서로 돕는 방식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마을 안에 다른 농가의 큰일에 다니지 않으면 자신이 큰일을 당했을 때에 처리할 수 없게 된다. 즉 생활의 공동화도 가족 혼자서는 처리하기 힘든 일을 마을 안에서 공동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며, 이것은 개별 농가의 이탈을 방지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생산과 생활의 공동기구로서의 농촌공동체 안에는 공동체의 유지 · 발전에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각종 기제(mechanism)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 기제 중에는 마을 안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도 있고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있다.

먼저 마을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는 동족부락의 동족조직을 들 수 있다. 한 동족조직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에는 마을 단위의 거의 모든 일이 동족조직의 움직임과 괘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두 동족이 엇비슷한 경우에는 동족간의 갈등과 화해가 마을 단위의 갈등과 화해를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동족부락 여부에 따라 마을 단위의 공동생산과 생활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마을 안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는 각종 조직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계이다. 계조직은 동족조직과 결합된 것도 있으나, 경조사 · 친목 · 이익증대사업을 위한 것 등 다양하다. 이러한 각종 계는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동계)도 있으나, 이는 드문 편이며 마을 안에 일부 농가에 의해 결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 각종 계는 주로 마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

이처럼 농촌공동체의 생산과 생활의 기본적 포괄범위는 마을이고 또한 마을은 주민들의 자치조직의 기초이다.


2) 공동체적 조직의 해체


농촌은 기본적으로 가족을 중심으로 소생산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생산 및 생활의 근거지이다. 또한 농업생산은 소생산이면서도 특히 분산적이고 영세한 경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농촌에 나타나는 각종 조직은 이러한 생산구조(농업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농업생산구조는 또한 한국사회 전체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변화를 겪어 왔다. 그 변화의 결과 한국농업은 독점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소생산부문으로 규정되고 있다. 독점자본의 농업지배는 농민층분해를 가속화시키며 이는 전농민이 몰락하는 가운데 중간층에 속하는 농민의 비중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최근에는 양극분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독점자본의 농업지배론과 농민층분해론은 농업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렇게 몰락해 가고 있는 농업을 일으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서 조직화(나아가 협동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농촌지역조직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기본적으로 농촌의 생산과 생활은 마을(자연부락) 단위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마을 단위로 각종 조직들이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조직적 연계에 편입되지 못하는 성원은 그 공동체에서 살 수 없었다. 즉 사회에서 공동체적 조직은 성원들을 규제하고 지배구조를 지탱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먼저 농촌의 공동체조직 가운데 몇 가지 생산조직을 살펴보자. 협동적 미풍으로서 흔히 예로 들고 있는 두레는 마을 단위로 모내기, 김매기, 수확 등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공동작업조직이었다. 중남부 미작지대에 널리 행해진 두레는 각 농가에서 남자 1명씩 동원되어 구성되었다. 두레는 생산농민이 주축이 되어 제법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었으며, 강제적이고 의무적인 성격을 띠었다. 또한 두레는 마을의 전체 경지를 공동으로 작업하는 조직이자, 공동노동과 공동오락(농악), 그리고 공동식사 등을 통해 노동과 오락을 결합한 노동조직이었다.

반드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조직은 아니었으나 농업생산과 관련한 중요한 조직으로는 수리조직이 있었다. 수리조직은 흔히 수리계의 형태를 띠었는데, 수리시설의 수리망이 미치는 영역 안에 경지를 소유하고 있는 몽리민(蒙利民: 수리시설에 의해 물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몽리민들은 수리시설의 유지관리를 위한 ‘부역’에 참여하고, 부담금인 ‘수세’납부의 의무를 지닌다. 수리계는 일정한 내부조직을 갖추고 있었으며, 수리시설의 관리와 용수의 통제를 담당하였다. 두레와 수리조직 이외에도 농촌에서 공동작업이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조직되는 것으로서는 울력이라는 것이 있었다. 마을의 도로수리나 기타 공동작업이 필요할 때에(공동경작 등) 각 농가에서 나와서 함께 작업하는 조직이다.

이처럼 생산공동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여러 조직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촌공동체의 생활 자체를 통괄하는 생활공동체적 조직이었다. 흔히 동계라고 불리는 것으로 마을 단위의 일을 마을 성원의 결집 아래 공동으로 의결하고 실행하는 조직이었다. 나아가 관혼상제의 일도 동계조직을 통해 기본적으로 이루어졌다.

동계처럼 마을 단위로 되어 있는 것도 많았지만 마을 안의 소수인들 사이에 많이 결성되었던 것으로는 각종 계조직이 있었다. 계조직의 발생은 매우 오래 된 것으로 보이며, 계는 농민들의 상호부조를 위한 것에서 각종 사업을 위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내부의 조직화가 진전된 형태로 나타났다. 농촌조직의 기초가 계라고 할 만큼 계조직은 각종 조직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들 공동체적 조직은 봉건사회라는 계급사회 안에 있던 조직들이었고 따라서 그 계급성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두레는 생산농민들의 작업공동체였지만,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농촌지배층(대개 지주 또는 양반관료)은 머슴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참여하면서 이러한 조직을 통해서 자신의 지배틀을 재생산할 수 있었다.

공동체적 조직의 해체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단위를 중심으로 한 생산과 생활이 자본주의화에 따라 자본 및 국가에 의한 농민 개인에 대한 직접적 지배가 관철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동체적 조직의 해체를 두고 ‘미풍의 쇠퇴’라고 하는 향수어린 얘기를 하기보다는, 그 해체 속에서 새로이 나타나는 조직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조직화의 방향을 전망하는 것이 건설적일 것이다.


3) 마을


먼저 농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서 농민들의 생산과 생활의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지연집단(地緣集團)으로 마을(자연부락)을 들 수 있다. 흔히 농촌생활은 하나의 취락을 이루고 그 안에서 생산과 생활의 공동성을 유지하는 공동체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 마을은 성원들이 서로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생활공동체로서 상호 협조하는 속에서 개별생활을 유지해 간다. 또 이 마을 단위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토착적인 인물들이 그 마을을 총괄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을을 단위로 하는 농촌생활을 총괄하는 주민자치조직으로 마을총회가 있다. 마을총회는 마을의 일에 대해 마을사람들 간의 의사교환 및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다. 또한 마을의 작목반이나 공동작업반 또는 농기계반의 책임자 등을 선출하거나 이장, 반장 등을 선출하기도 한다. 나아가 마을 안의 노동임금도 대개는 마을회의에서 결정한다. 그 밖에 마을총회는 대동계 등을 통해 마을사람들로부터 일정한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마을공동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마을이 지연을 공동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에 반해, 혈연을 기초로 하여 마을 안에서 또는 마을을 넘어서는 범위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는 동족조직(친족조직)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농촌에는 각종 연령별 조직이나 성별 조직이 있다. 연령별 조직은 대개 청년회나 친목계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에는 각종 계조직이 있다. 친목계, 대동계, 부녀계, 청년회계, 상수도계, 쌀계, 혼계, 상계 등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종다양하다. 또한 관혼상제 때에는 서로 품앗이를 하여 어려운 일을 돕기도 한다. 이처럼 각종 계조직을 통하여 마을사람들은 서로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3. 생산조직의 양태


1) 기계화 이전의 노동조직들


생산조직은 넓은 의미에서 생산관련조직으로 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생산과정에 관련된 공동노동조직은 물론 유통조직, 가공조직까지 포괄하여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공동노동조직은 좁은 의미의 생산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농업생산력의 발전(특히 기계화의 진전)에 따라 노동력 중심의 조직에서 기계를 중심으로 한 조직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공동노동조직으로는 8·15 이후에도 일부 잔존했던 앞서 말한 두레를 비롯하여 광범하게 나타난 품앗이, 고지, 공동작업반 등을 들 수 있다.

품앗이는 중간농민층이 주로 많이 참여하며 노동의 등가교환 원칙 위에서 상당한 유연성을 지닌 임의적 결합이자 소수인이 공동작업을 하는 조직이다. 이것은 논농사, 밭농사에서 그리고 전국적으로 광범하게 나타난다. 품앗이는 노동교환 및 노동력결합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품앗이는 현재에도 중요한 농업노동형태로서 널리 행해지고 있으며, 기계화로 인한 농업노동의 성별 분업과 상품작물재배의 증가에 따라 여성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지는 논농사에서 많이 나타났던 것으로 임금을 미리 받고 그 다음해(철) 일정량(면적)의 일을 해주는 농업노동청부조직이었다(광산업 등에서 나타나는 덕대제와 유사하다). 8·15 이후에도 고지(雇只)는 계속되었지만, 점차 고지대(雇只隊)처럼 집단을 이룬 고지가 줄어들고 개인고지가 주종을 이루게 되었고 고지노동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작업(기본적으로 4고지; 모내기, 김매기 2회, 벼베기)에서 한두 가지 작업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대개 모내기작업), 농민들의 빈궁이 완화되면서 임금을 후불하는 도급반(공동작업반의 일종)으로 바뀌었다.

공동작업반은 노동력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마을 단위로 노동력을 조정하여 동원하려는 취지에서 널리 행해졌는데, 대개 논농사작업에서 나타난 것으로 1970년대에 가장 활성화되었고, 1980년대 초반까지도 중요한 작업조직이었다. 공동작업반은 노동력을 가능한 한 많이 동원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여성노동력의 참여가 두드러졌고(모내기작업반), 계층구분 없이 거의 전농가가 참여하였다. 작업반은 작업을 의뢰하기만 하는 (작업반원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작업도 의뢰하고 공동작업에도 참여하는 사람, 그리고 작업은 의뢰하지 않고 공동작업에만 참여하는 사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작업을 의뢰하고 공동작업에도 참여하는 사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동작업반은 품앗이보다는 좀 더 조직화된 것이었으며, 주로 모내기작업을 하였고 부분적으로 수확작업도 하였다. 공동작업뿐만 아니라 공동취사도 하였으며, 분배는 기본적으로 작업의뢰비용과 작업임금의 차액을 정산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좀 더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으로는 탈곡작업반(탈곡기를 사용하는 남자들의 공동작업반)이 있었다(윤수종, 2010).


2) 기계화와 생산조직의 변화


기계화가 진전되면서 소수의 조작업으로 모내기가 가능해지면서 모내기공동작업반은 급속히 해체되거나 기계이앙작업반으로 변하였고, 탈곡작업반은 동력탈곡기를 이용하는 농기계공동이용조직으로 바뀌었다.

농기계공동이용조직으로는 정부에서 시범사업으로 했던 종합농업기계화시범단지와 농협 단위조합이 주체가 되어 운영한 영농기계화센터 등이 있었으나 점차 유명무실해졌고, 1980년대 중반 이후 농민이 직접 운영하는 농기계공동이용조직이 광범하게 나타났다. 기계화영농단은 그 가운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계화영농단은 정부의 보조 및 융자를 받아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공동으로 이용해나가는 조직이다. 기계화영농단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농가들이 조직체계를 갖추고 일관기계화가 가능한 정도의 기종을 보유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공동작업조를 가지고 있으며, 작업신청을 받아 작업을 해주고 작업수수료를 받아 운영하였다. 대개 주도자는 대농층이며 이장이거나 유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계화영농단은 농기계공동이용조직 가운데 좀 더 조직화된 형태를 띤 것일 뿐이며 그 비중은 아주 작았다.

실제로 농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농기계공동이용조직은 개인임작업형태, 수호공동이용형태, 마을단위공동이용형태 등등 매우 다양하였다. 작업의 내용이나 방법 등은 각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기계의 종류와 노동력확보상황에 따라 다르며, 기본적으로는 논농사의 양대 농번기인 모내기와 수확(및 탈곡)작업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농기계공동이용조직은 점차 고성능의 농기계를 갖추어나가면서 더욱 소수인의 공동작업조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 소수의 공동작업조들이 많은 이용자들의 작업을 맡는 방식으로 나아가면서 수탁작업조직의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작업조직의 형태로서 위탁영농회사가 설립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특히 기계화가 진전되고 농업노동력이 노령화되면서 1990년대 이후 벼농사작업이나 기계작업이 가능한 작업에서는 수위탁작업이 급증하고 있다. 경운정지, 모내기(이앙기작업)와 수확(콤바인작업)에서 수위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수위탁작업의 증가는 마을 안의 작업을 몇 사람의 기계작업자(또는 팀)가 맡아서 하게 하였다. 벼농사의 경우는 기계작업자를 중심으로 한 작업조(직)가 기계 없는 농민들의 작업을 맡아서 해 주고 작업료를 받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다른 밭농사 및 상업작물에서는 새로운 주도적 작목을 중심으로 결집된 농민들이 작목반을 결성하여 활동해 왔고 최근에는 다양한 생산조직들을 구성하여 활동한다.


3) 새로운 농업생산조직들


농업생산조건의 변화와 더불어 농업생산주체도 변화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농업생산조직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조직들은 농업노동을 공동으로 하기보다는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는 조직으로 변하였으며, 이 생산자조직은 특정 작목을 중심으로 결집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위탁영농회사와 영농조합법인, 다양한 생산실험(예를 들어 생명농업) 공동체들이다. 정부의 일정한 지원 속에 이루어지지만 농민들의 자발적인 의욕이 기반이 된 것들이다.


(1) 회사법인

농업기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1980년대에는 기계화영농단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위탁영농회사, 회사법인이란 이름으로 영농대행조직이 생겨났다. 회사법인형태로서 위탁영농회사의 설립이 1990년대 초반에 가속화되었다. 일관기계화가 가능한 기계체계를 갖추고 회사형태를 갖춘 위탁영농회사는 벼농사의 수위탁작업을 맡았으며, 이러한 작업이 활성화되자 위탁영농회사는 벼농사의 핵심적 작업집단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벼농사 작업이 한시적이기 때문에 위탁영농회사는 운영이 어려워지고 그렇기 때문에 벼농사기계화작업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사업항목들(노동력배급사업, 객토사업, 운반사업 등등)을 해 나가기도 하였다. 2005년 통계로 보면(<표 4-1> 참조) 5천여 명이 회사법인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법인으로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농촌지역 또는 마을 안에서 기계작업자를 중심으로 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또는 회사들)이 바로 벼농사작업의 주체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정해진 일에 한정하지 말고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벼농사작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작목반의 지속

작목반 조직은 1970년대부터 농협이 주도하여 상품작물을 재배하던 마을들에 동일작목 재배농민들을 묶어서 만든 것으로 농협의 계통출하와 연결시킨 조직이었다. 농민들도 상품작물을 재배하면서 출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작목반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작목반 조직은 1990년대 초중반에는 영농조합법인 제도가 시행되면서 영농조합법인들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생산농민들의 결합체라는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영농조합법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일부만 살아남는 상황에서도 작목반 조직은 비교적 급속한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작목반 조직은 꼭 형식적으로 작목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결집해 있지 않더라도 농업생산자들이 작목별로 결합하는 기초적인 단위로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작목반은 1970년대 후반,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활성화되었고, 채소 · 원예 · 축산 · 과일 등의 작목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작목을 중심으로 결합되기 때문에 마을(자연부락)의 범위를 넘어서기도 한다. 영농기술의 도입, 영농자금의 조달, 공동구판매 등을 주로 하지만 공동작업도 부분적으로 실시하며, 특히 시장조건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나간다. 따라서 다른 농업생산조직과 비교하여 작목반원들은 회의와 토론을 자주하며, 나아가 작목반의 작업 이외의 일에서도 협력해나간다. 작목반조직은 하나의 마을 내지는 2∼3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지만 작목별 단지화가 진행되면서 포괄하는 지역적 범위를 확대해 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고추, 딸기, 양파 등의 작목에서와 같이 군 · 면 단위의 지역별 조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나아가 동일 작목에서 양돈협회, 포도회, 양계협회 등과 같이 전국적인 (단일)조직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물론 그 조직의 내적 결속력과 성격은 다르지만 작목별로 전국적인 조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일부 품목들에서는 전국적인 품목별 조직화가 진행되었다.

물론 작목반도 다양한 운영형태를 지니고 있었고 농민들의 자생적인 힘을 얼마나 담아내느냐에 따라서 그 활동도 천차만별이었다. 현재에도 작목반은 각종 상품작물재배마을 안에 조직되어 있으며 주로 농협을 통해 계통출하 하는 기본 단위가 되고 있다. <표 4-1>에 따르면 2005년도에 작목반에 가입해 있는 농민들이 20만여 명(20만 2342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표 4-1> 생산자조직 참여 여부 및 현황별 농가(2005년)

생산자조직

참여농가

작목반

법인

논벼

과수

채소

특용작물

화훼

기타

영농조합

농업회사

전국

226,249

(1,272,908)

42,914

65,612

65,765

11,812

4,700

11,539

44,302

4,898

주: ( ) 안은 총 농가 수.

출처: 『농업총조사』, 2005.


(3) 영농조합법인

영농조합법인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95년에는 2,455개에 이르렀고 이후 급속히 증가하여 1999년 말에는 5,993개가 설립되었으며 4,429개가 운영 중이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정부의 지원 속에서 난립하던 영농조합법인이 2000년대 들어서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표 4-2>에 따르면 2005년에 영농조합법인이 4,293개, 농업회사법인이 967개로 나타나고 있다. 참여농가는 <표 4-1>에 따르면 영농조합법인 44,302농가, 농업회사 4,898농가로 나타나고 있다.

영농조합법인은 벼 이외의 작물들의 상업화가 진전되고 사업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영세농의 결집체라는 성격을 넘어서 지역 단위 농민들의 다양한 결집체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는 기존에 활성화된 작목반이나 결집체들이 영농조합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자신들의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제도화시키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생산과정 자체를 일부 공동화하면서 구판매사업 등을 공동으로 하기도 하였으며, 점차 생산을 넘어 유통과 가공을 결합해 나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중간상인들의 개입을 배제하고 생산자들이 직접 생산, 유통, 가공을 하고, 나아가 도시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영농조합법인은 축산과 원예작물(채소, 과수, 화훼)을 중심으로 많이 설립되어 있다. 이것은 시설투자가 많이 필요한 부문들에서 지원을 받아 법인체로 조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축산, 화훼 등에 비해 과수, 특작의 경우에 구성원이 더 많다.


<표 4-2> 농업법인 현황

연도/조직형태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영농조합법인

3,852

(1,424)

3,919

(1,571)

4,315

(1,662)

4,274

(1,528)

4,425

(1,528)

4,293

(1,335)

4,410

(1,344)

농업회사법인

1,356

(418)

1,248

(450)

1,283

(517)

1,158

(462)

1,067

(434)

967

(376)

898

(307)

일반회사법인

216

83

82

78

84

88

66

국가 · 지자체

113

86

86

87

89

93

89

생산자단체

78

63

64

67

66

60

62

합 계

5,575

(1,842)

5,528

(2,021)

5,960

(2,179)

5,788

(1,990)

5,856

(1,962)

5,626

(1,711)

5,650

(1,651)

주: ( ) 안은 개별운영형태 수.

출처: 『농업통계연보』.


다수의 영농조합이 소수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부에서는 다수의 구성원을 지닌 영농조합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것은 영농조합 안의 분화현상을 보여 준다. 출자규모면에서도 분리가 나타나는데, 대다수의 영농조합은 소규모투자를 하고 있는데 반해 일부 대규모투자를 하는 영농조합도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영농조합법인은 대다수가 소규모인 채로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 대규모 영농조합들이 나타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애초에 영세소농의 결집체로 출발하였던 영농조합법인은 그 활동형태들이 다양해지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는 농민들이 결집되는 조직체가 되고 있다. 물론 설립된 영농조합법인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영농조합법인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여전히 활동적인 농민들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에는 영농조합법인이라는 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4) 고용노동조직


고용노동의 형태는 판매되는 노동력의 노동기간, 노동종류, 결합노동 여부, 임금지불방식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제시기에도 널리 있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 드물게나마 찾아 볼 수 있었던 머슴이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보통 농촌에서 고용노동이라고 할 때에는 일고(일일고용)형태의 날품노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용노동형태에서도 고지대나 도급반처럼 조직화된 양상을 띠는 것이 있다. 도급반은 작업 이전에 임금을 받는 고지와는 달리 작업을 해 준 뒤에 임금을 받는다. 도급반은 마을의 빈농들이나 농업노동자들이 일정한 조를 이루어 일정 면적의 작업을 해 주기로 하고 일을 해 준 뒤에 임금을 받아 분배하는 조직이다. 또한 고지대가 도급반으로 변모해 가기도 하고, 특히 1970년대 이후 널리 나타났던 공동작업반이 빈농이나 농업노동자들 혹은 부녀자들로 구성될 때에는 다른 농가의 작업을 해 주고 임금을 받는 도급반의 성격을 지니기도 하였다.

또 공동작업반이나 도급반 가운데에는 한 농촌마을에서 다른 농촌마을로, 도시지역에서 농촌마을로 이동하면서 작업을 하고 임금을 받는 이동작업반이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에 지역 간 · 마을 간 노동력 차이에 따라 나타났던 부녀자들의 모내기작업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했던 이동탈곡작업반 등도 도급반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널리 나타난 새로운 고용노동형태는 기계작업조에 의한 수탁작업이다. 이것은 동력용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개별농민의 작업을 해주고 작업비를 받는 형태이다. 개인임작업, 기계작업조 즉 탈곡작업반, 이앙작업반, 방제작업반, 콤바인작업반, 기계화영농단 등에 의한 수탁작업이 이에 속한다.

다른 한편 기계화가 불가능한 작업들이 많은 상품작물재배지역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하자 도시의 빈민층 여성 및 이웃 마을의 여성노동력을 집단적으로 동원하여 작업해 나가는 형태가 발전했다. 1980년대에 들어 양파생산지역이나 딸기재배지역 등에서 모종심기나 수확 시기에 일시적으로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 경우 노동력조달의 역할을 하는 사람(또는 회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어떤 지역이나 마을에 노동력을 동원하는 브로커이다. 영농조합법인이나 농업회사법인 등이 이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가나 마을에서 브로커에게 연락하면 도시 인근에 형성된 노동력시장에서 혹은 자신의 연결망을 통해서 원거리에서 여성노동력을 동원해 준다. 그러나 노동력이 필요한 농사철이 되면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연결망이 생겨서 매년 계속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집단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들은 일정한 집단을 이루어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일하곤 한다.


5) 수리조직(수리계)


농업수리는 논농사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농경노동이 정착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농업수리사업은 국가의 중요한 통치업무 가운데 하나였으며, 예전부터 유명한 저수지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의 수리사업은 국가의 관리하에 시행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마을 단위로 관리 ·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즉 대규모 수리시설의 경우에는 주로 국가관리하에 있었지만, 그 외 거의 모든 수리시설에서는 해당 수리시설의 몽리민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수리시설의 수 · 개축에 참여하고 수리계를 통해 물관리를 하였다.

수리시설의 종류는 관개용시설과 방수용시설로 나눌 수 있다. 관개용시설에는 저수지(提堰, 또는 防築: 산곡협간에 제방을 만들어 저수한 것), 보(하천을 막아 흘려보내는 것), 수로(溝渠: 도랑)가 있고, 방수용시설에는 제방(提防: 하천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둑)과 해수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방조제가 있다. 저수지는 대개 국유였고 저수지 이외의 수리시설은 대개 보와 제방이었는데 이것들은 몽리민들의 공동소유였다.

이러한 수리시설을 관리하며 공동노동하는 조직으로서 수리계(수리조직)가 널리 조직되었다. 수리계는 수리시설의 보유 · 관리를 위해 몽리민들이 만든 계로서 몽리계라고도 하며, 제언(저수지)계와 보계가 있다. 저수지는 대개 국유(관유)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계가 드물었으나, 농촌공동체나 몽리민이 공동관리하던 보에서는 계가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국유나 공유의 저수지 및 보에 있는 계는 수리에 대한 계원의 각종 권리와 의무를 제시하였다. 그에 반해 농촌공동체나 몽리민이 관리하던 보계는 좀 더 단순한 조직 형태를 띠었다.

수리계는 농지개량조합(현재는 농어촌진흥공사)에서 관리하는 지역 이외의 제언과 보에서 나타나고 있다. 꼭 수리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수리관계조직이 있다. 수리계는 평상시에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가뭄이나 홍수 때에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수리계는 수리시설의 수리망이 미치는 영역 안에 경지를 소유하고 있는 몽리민들로 구성된다. 몽리민들은 수리시설의 유지관리를 위한 ‘부역’에 참여하며, 부담금인 ‘수세’납부의 의무를 지닌다. 수리계의 조직을 보면, 먼저 제언계의 경우 임원으로 도감(都監, 수리계장), 감고(監考: 보수 받는 실질적 관리자), 이사(평의원)가 있고 몽리민으로 구성된 총회가 있다. 보계의 경우에는 보계장, 보감고(洑監考), 물감고(監考), 수문지기 등과 계원으로 이루어진다(조직은 지방에 따라, 계의 규모에 따라 다르다).

몽리민들 간에는 상호평등의 원칙이 적용되고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용수이용에 제한이 있다. 즉 계원은 수리관행의 이행을 위한 공동체적 규제를 받으며, 수리시설을 몽리민이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수리계 조직은 몽리민의 공동작업에 의해 수리시설을 증 · 수축하는 것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 용수시기, 한발 시의 배수, 신규가입과 수로확장, 수리질서의 확립, 분수(分水)관행과 도수징계(盜水徵戒) 등 용수통제를 실시한다.

수리계는 농사짓기 전에 전체회의를 통해 수리계의 운영 및 작업일정, 책임자 등을 정하는 등 활동을 개시해서 모내기철이 되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특히 가뭄이 들었을 경우에는 수리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진다. 물이 부족한 때에는 엄격한 분수관행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이 부족할 때에는 물싸움도 종종 나타나는데, 이러한 문제들도 수리계를 통하여 공동으로 처리해 나간다.

1945년 8·15 이후 일제시기의 수리조합이 그대로 이용되고 전쟁으로 일부 시설이 파괴되기도 하였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복구되었다. 5·16 군사쿠테타 이후 수리조합은 임명된 조합장에 의한 운영으로 바뀌고 이름도 토지개량조합으로 바뀌었다. 토지개량조합은 1970년에 농지개량조합으로 바뀌었으며 규모가 더욱 커졌다. 1986년 농지개량조합에 의한 관개면적은 약 49만 정보로 전체 논면적의 36.9%에 달하였다. 농지개량조합이 관리하는 수리시설은 대개 대규모이고, 소규모의 저수지 · 보 · 양배수장 · 관정(管井) 및 기타 집수지 등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몽리자들의 공동보유 · 관리 형태(수리계)로 운영되었다.

농지개량조합은 주로 관배수시설의 설치 · 유지관리 · 개보수사업, 농사개량 및 농기계화 시범사업의 추진, 경지정리사업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방만한 운영과 각종 비리 사실이 터져나옴에 따라 1991년에는 농어촌진흥공사, 농지개량조합연합회와 더불어 농업기반공사로 통합되었다. 농업기반공사는 중앙, 도, 시군 단위의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산기반조성사업과 함께, 농어촌용수 및 지하수자원의 개발 · 이용 및 보전 · 관리를 비롯하여 농어촌지역개발사업을 해 나갔다. 2005년 말에는 기능과 조직을 개편하여 한국농촌공사로 출범하였다. 그동안 경지정리와 수리시설 개발 등을 중점으로 추진하여 농지와 저수지 및 용배수시설 등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또한 최근에는 새만금이나 영산강지역 등에서 간척사업 및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 등을 해 왔다.


6) 다양한 공동체적 실험조직들


농업회사와 영농조합법인은 단지 공식적인 이름일 뿐이다. 그 이름 뒤에는 다양한 움직임을 포괄하고 있는 다양한 농민들의 활동이 있다. 물론 그 활동에는 생산을 담당한 작업자들을 축으로 한 팀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대안운동이 점차 확산되면서 삶의 한 부분 또는 몇 가지 부분을 바꾸려는 자연주의적이고 생태주의적인 경향을 지닌 생활공동체운동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공동체운동은 농촌의 삶과 관련하여 많이 나타난다. 농촌의 생활공동체운동은 생명농업(유기농업, 자연농업, 기타 등등)에서 나타나는 대안적 사회관계들, 영농조합법인들 가운데 전진적인 공동체들 속에서 볼 수 있다. 농촌의 생활공동체운동은 종교를 매개로 약간 폐쇄된 공동체로 흐르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하면서도 색다른 내부 관계(새로운 협동방식)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것이 마을공동체운동이다.

마을공동체운동은 기존의 농촌공동체에 기반하면서도 생태적인 문제의식 위에서 계획적으로 생태마을을 만들어 생활과정 전반을 바꾸어 가려는 운동이다.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좀 더 넓은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체로 주거양식의 변화와 더불어 유기농 식량 생산과 유통, 그리고 교육과 문화 창조가 함께 이뤄지는 마을을 지향한다.

마을공동체운동에서는 다양한 공동체마을과 더불어 생태산촌만들기, 공동체운동네트워크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을공동체운동은 대체로 1980년대 후반 이후에 시작하여,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마을공동체운동은 과학농법으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제기된 대안농업으로서 유기농업과 연관되어 전개된다. 또한 귀농운동, 생태마을운동, 대안학교운동, 생협운동 등과 결합하여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을공동체운동은 부분적으로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마을만들기사업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각 지자체들이 지원하여 각종 체험마을, 정보화마을을 만들어 도시민과의 연계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을 안에 이 변화를 주도하는 집단들이나 조직들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4. 농업관련 조직


1) 품목별 생산자조직


민법에 의거하여 협회 등의 형태로서 전국적인 조직으로 설립된 대표적인 농민단체로는 축산분야의 대한양계협회, 대한양돈협회, 한국양록협회, 한국양봉협회, 한국낙농육우협회 등과 그 외에 한국화훼협회, 한국생약협회, 한국산림경영자협회, 대한잠사회 등의 품목별 단체와 전국농업기술자협회,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등의 특정신분 혹은 지역 내 생산자들의 친목과 상호 간의 생산기술교류 혹은 자조적인 신용사업 등을 수행하는 농민단체들이 있다(최민호 · 정지웅 · 김성수 · 최영찬. 1997).

대부분 이 단체들은 1960년대 말 이후부터 1970년대에 설립되었다. 품목별농민단체 중 대한잠사회, 한국생약협회, 한국화훼협회, 대한양계협회, 대한양돈협회 등은 유사업종인 2∼3개 단체가 정부의 직 · 간접적인 유도에 의해 통합된 것이다.

품목별 농민단체는 해당 품목의 산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를 통합함으로써 해당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려는 이익단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 단체에는 농민 이외의 구성원들도 함께 한다. 생약협회와 화훼협회의 구성원은 생산자인 농민과 생산물 전문판매상인들로, 양돈협회는 50두 이상의 사육자와 돈육수출업자로, 양계협회는 생산자인 채란 · 육계업자와 부화 · 종계 및 감별업자로 구성되어있다. 상대적으로 축산분야에 품목별 농민단체들이 많은 것은 축산업의 경우 사육규모별로 복합영농가, 전업농가, 기업적 양축가가 혼재하고 있어 협동조합이라는 단일조직으로는 구성원의 동질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품목별 단체의 사업내용을 보면 생산기술 보급 · 지도사업, 조사연구사업, 홍보사업, 구 · 판매사업, 금융사업, 무역, 회원복리증진사업 등으로 매우 광범위하며 협동조합의 활동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신용업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협동조합과는 달리 위의 협회들은 공식적인 신용업무가 불가능하고 정책사업도 매우 제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품목별 단체는 비교적 대규모 생산자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산업 및 생산물 소비에 대한 홍보와 회원 상호 간의 생산 및 유통, 그리고 정책방향에 대한 정보교환활동을 활발히 전개한다. 최근에는 농업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품목별 단체들도 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함께 농민운동에 나서기도 한다.


2) 유통조직


대부분의 농산물은 생물형태로 그리고 일부는 가공식품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중간유통은 대부분 민간상인이나 기업인이 담당하며 일부를 협동조합이 담당하고 있다. 개별농민이 유통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고, 협동조합의 공판장, 판매장 등에서 산지도매와 소비자도매의 방식을 취하거나, 소비지소매 단계에서 농민조직들이 유통과정에 참여하며, 작목반이나 영농조합법인과 같은 농업생산조직이 조직의 활동영역을 확대하면서 참여하고 있다.

유통조직으로는 작목반 이외에도 각종 출하조직을 들 수 있다. 과일공판장, 경매장, 채소출하조직인 협동출하반 등이 그것이며, 수매조직(미곡, 기타 식량작물, 고추 등 상품작물에서)이나 계약재배조직(담배, 인삼 등) 등도 농민의 생산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상인조직(상품작물의 매매 및 운반조직)도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유통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공산품을 농촌에 판매하는 조직으로서 공동구판매조직(신협의 구판매사업, 마을 단위 구판장, 농협의 하나로마트)이 있다.

나아가 농민의 가공조직도 일정하게 나타나고 있으나(단무지공장 등 마을농민이 주도하는 소규모 가공조직), 기본적으로 농외자본이 들어와 경영하는 냉동저장창고, 대규모목장(우유공장) 등과는 달리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농촌에 나타나고 있는 유통시설을 분류해 살펴보면 유통관련 조직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농촌지역에 있는 산지의 주요 농협유통시설로는 농산물집하장, 저온저장고, 선과장, 청과물종합유통시설, 미곡종합처리장 등을 들 수 있다. 좀더 도시 쪽으로 가면 유통시설로, 농산물공판장, 농산물집배센터, 농산물직판장, 농산물슈퍼마켓 등이 있다. 축산과 관련해서 농촌지역의 축산물협동조합 유통시설로는 가축시장, 도축장, 집유장, 계란집하장 등이 있고 도시 쪽 소비지에는 축산물공판장, 축산물판매장, 냉동창고 등이 있다.


3) 금융조직


전통적 농업금융조직으로는 계를 들 수 있다. 예로부터 계는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농민들이 상부상조하기 위해서 만든 자발적 결사체이다. 계는 성원들로부터 일정액을 갹출하여 돌아가면서 목돈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계는 그 목적에 따라 납세를 하기 위한 계, 관혼상제를 위한 계, 이식을 위한 계, 공공생활을 위한 계, 공동구입을 위한 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에 와서는 농협을 비롯한 거대한 금융조직이 생겨나면서 계조직은 친목계 수준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농촌지역에서 금융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는 신용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 신용협동조합(신협)은 서민들이 푼돈을 모아 그들 스스로 운영하면서 은행처럼 금융과 교육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반에 설립되기 시작하여 1964년에 전국 51개의 신협을 가입조합으로 하여 한국신용협동조합연합회를 결성하였다. 2008년을 기준으로 보면 전국에 걸쳐 1천여 개의 신협이 있는데 교회, 성당, 직장, 농촌 등을 단위로 하여 조직되어 있다. 읍 · 면 단위에 있는 농촌신협은 250여 개에 이른다.

농촌에서의 신협운동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활성화되었고 ‘(새)마을금고’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농촌신협은 금융사업 뿐만 아니라 지역농민들과 경제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농업금융을 전반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조직은 농협이다. 농업협동조합(농협)은 농민들이 조합원이 되어 협동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8·15 이후 구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 합쳐져 만들어졌으며 국가장치화 되면서 농민들의 개혁요구를 받아 왔다. 농협은 농협중앙회가 있고 농협중앙회 산하 기구로 각 도와 특별광역시에 지역본부가 있으며, 시군지부와 지점 · 출장소가 있다. 농민들과 좀 더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것은 지역 단위 농협들로 1990년대 중반 각 읍 · 면 단위에 1,500여 개의 단위농협들이 있었다. 최근 들어 단위농협들을 일부 통합하였으며 지역농협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축협과 품목별 조합을 통합하여 농촌에 있는 농협을 말할 때에는, 지역농협(977개)과 지역축협(118개), 나아가 품목농협(46개), 품목축협(24개), 인삼협(12개)까지를 포괄한다.

농협중앙회는 금융사업과 구판매사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농협개혁의 표적이 되고 있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으며 농협중앙회는 자신이 주도하는 신용자회사를 설립하여 운용하고 있고, 지역농협들은 농민들과 다양한 경제사업을 벌여 나가고 있으며 특히 농민들의 생산물을 계통출하하도록 하고 있다.



5. 농민조직


1) 관 주도형 농민조직


(1) 4-H회

4-H회는 지(知, Head), 덕(德, Heart), 노(勞, Hands), 체(體, Health)를 신조로 하여, 농촌청소년들의 사회교육활동을 통해 농촌개선을 이룩하기 위해 전개된 사업조직이다. 그리고 이 모임을 기반으로 한 4-H운동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태동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둔국의 농촌재건과 청소년운동의 일환으로 보급 또는 확산되었다.

한국의 4-H회는 관제적인 조직으로 명칭이 농촌청년구락부(1940년대 후반) → 4-H구락부(1950∼1960년대) → 새마을 4-H구락부(1970년대) → 새마을청소년회(1979년) → 4-H(1988년 이후)로 변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각 시기마다 자격 연령에 차이가 있었으나 대체로 30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었다. 1991년 이후에는 리동 단위에서는 영농 4-H와 학생 4-H로 나뉘어 조직되어 있으며 읍면, 시군, 도, 중앙 단위의 연합회가 구성되어 있다. 4-H는 농촌계몽의 매개자로 역할을 하였으며 농촌개선과 영농후계세대를 육성하는 기능을 하였다. 4-H는 농촌진흥청의 주관하에 운영되는데, 1960∼1980년대에 활성화되다가 최근에는 농촌청소년들이 거의 없어지면서 활동이 미약해졌다.


(2) 농촌지도자연합회

농촌지도자연합회는 작목별 전문기술을 가지고 영농에 성공한 농촌자원지도자의 모임으로서 1962년에 조직되기 시작하여 1970년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농촌지도자연합회는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을 점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읍면 단위로부터 시군, 도, 중앙연합회 조직이 결성되어 있으며 동리마다 2∼3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2010년의 회원 수는 7만 8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농업기술센터에 주로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 과학영농과 생활기술 향상을 위한 시범활동, 농민교육사업, 농촌청소년 육성지도, 신품종 종자보급 및 시범단지 조성, 농업도서 및 홍보물 발행, 선진국 농업연수, 농업연구조사 등을 해 왔으며, 최근에는 영농강좌, 영농신기술 보급, 여성농업인신문 발간, 농촌지도자대회, 농산물품평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3) 새마을부녀회

농촌에 있던 여성관련 조직들을 1978년에 통 · 폐합하여 만든 조직이다. 전국조직으로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가 있고, 도시지역에도 설립되어 있으며 읍 · 면 · 동지역 단위에 까지 조직되어 있다. 농촌에서 여성조직이라 하면 부녀회 조직을 가장 주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부녀회의 주요 사업은 가정새마을운동, 건전생활실천운동, 생활환경가꾸기운동, 농촌살리기운동, 이웃사랑실천운동 등으로 농촌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관련되어 있다. 최근에는 ‘사랑의 노인섬기기’, ‘재생비누제작’, ‘김장담가주기’, ‘새마을알뜰마당’ 등을 하고 있다. 부녀회는 농촌의 여성조직으로서 관제적인 활동을 하지만 동시에 농민운동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농민운동 조직으로 변하기도 한다.


2) 민간 주도형 농민조직


(1) 농업경영인연합회

농업경영인연합회는 8만여 명이 넘는 농어민후계자들이 모여 1987년에 만든 조직으로 2010년 기준으로 회원이 12만여 명에 달한다. 회원들은 30∼40대가 주축을 이룰 정도로 농촌의 젊은 인력들을 포괄하고 있다. 중앙회(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즉 ‘한농연’), 도 · 시군연합회, 읍면회 등을 두고 있다. 조직사업으로는 협동조합개혁을 추진하고, 지방의회나 농축협조합장 선거 등에 참여하기도 한다. 정책사업으로는 조사연구와 대안제시를 하고 농어민신문을 비롯한 홍보물을 발간하며 농민권익보호와 교육, 연수 등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농업경영인대회를 중앙회와 도 단위에서 개최하고 있다. 농촌이 위기에 처하면서 농업경영인연합회의 회원들도 농민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비롯한 여타 농민단체들과 연대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한여농’이 활동하고 있다.


(2) 농민운동조직


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농민들의 전국단일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1990년 72개 군농민회와 6개 도연맹 대표자들에 의해 결성된 운동조직으로, 합법적인 공개 대중조직을 표방하고 있으며 빈농 · 소농 주도의 변혁을 주요목표로 하고 있다.

전농은 1990년대 이후 농민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전농은 1990년대 전반기에는 농축산물수입자유화정책의 확대실시에 대응하여 UR협상 저지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5년부터는 농업을 전면 개방하는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농은 이에 대한 반대투쟁의 파고 속에서도 지역화와 대중화에 힘쓰며 농정개혁투쟁을 통해서 농민대중과 결합하려고 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 개방의 파고가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전농은 한-칠레 FTA 저지를 위한 원정투쟁과 상경투쟁을 주도적으로 전개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반세계화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지역 농민들이 상경하여 농민대회를 개최하면서 농민의 요구를 외쳤다. 특히 쌀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후반기에 들어서는 한미 FTA 저지투쟁과 동시다발적 지역투쟁을 주도하였다. 미국의 농축산물수입압력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가 드높았고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 투쟁을 하면서 도청과 같은 지역의 중요 기관 앞에 쌀을 야적하는 투쟁을 벌여 나갔다.

2000년대 이후 전농을 축으로 한 농민운동의 핵심적인 특징을 보면, 농민들 대부분과 관련을 맺는 벼농사(쌀)와 관련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국내농업문제가 국제적인 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과는 달리 단순한 거부 및 반대라기보다는 지배권력의 방향설정과 정책운영에 대해 비판하고, 이와 관련하여 권력비판을 수행해 가려는 의지가 보인다. 이제 전농은 대안농정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으며 다양한 정책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여성농민운동은 1977년에 가톨릭농촌여성회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1984년에는 기독교농민회 안에도 여성위원회가 조직되었다. 1980년대 들어서 단순히 농촌에 거주하는 농촌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생산자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여성농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5년 소몰이시위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후 각종 투쟁에서도 여성들이 운동당사자로 등장하였다(엄영애, 2007).

전농이 결성되기 몇 달 전인 1989년에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992년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으로 개칭하였다. 전여농은 전농과 조직적인 연대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되 독자적인 여성농민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89년 출범 당시 19개 군 군여성농민회 조직으로 출범하였는데, 2009년에는 29개의 지역조직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여성농민활동가들은 각 마을에 있던 부녀회 조직을 활성화하고 민주화하면서 여성농민조직으로 변형시켜 갔다. 전여농은 ‘자주적’ 여성농민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특히 농촌의 가부장적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전여농은 해마다 전국여성농민대회와 각종 토론회를 치르면서 여성농민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려고 노력하였고 다양한 제도개선활동 및 투쟁을 전개하였다. 최근 들어서는 ‘대안을 만드는 투쟁’을 내세우며 한 농가당 하나의 토종씨앗을 갖는 ‘토종씨앗지키기’와 소비자가 생산자를 지원하고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보내는 ‘우리텃밭제철꾸러미’와 같은 독자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② 가톨릭농민회

가톨릭농민회는 1970년대 농민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대표적인 자생조직으로 1972년에 출범했다. 1964년 광주 · 전주 · 수원교구 관할 내 몇 개의 천주교 본당에 근거한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가 경북 구미에서 창립되었고, 경북 왜관읍에 있는 성베네딕트 수도원의 경제적 지원하에 전국본부가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들어 한국가톨릭농민회(1971)로 명칭변경을 하고 농민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가톨릭농민회의 조직은 말단조직인 분회(정회원 5명 이상으로 마을 단위)로부터 군 단위의 협의회, 도 또는 교구 단위의 연합회, 전국본부(대전소재)의 4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전국본부는 최고의 의결 · 집행기구로서 전체조직을 통괄하고 농민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며 지방조직에 대한 지원활동을 했다.

가톨릭농민회는 1970년대 말 각종 농민운동을 주도했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자주적 농민회의 등장과 더불어 농민운동의 확산에 주축이 되어 활동하다가 1990년 전농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일부 활동가들이 전농에 참여하였음에도, 기존에 갖추었던 가농의 지역조직기반은 사라지지 않았다. 1990년대에는 기존의 10개 연합회를 교구농민회체제로 전환하고 새롭게 ‘생명공동체운동’에 주력하였다. 특히 ‘우리밀살리기운동’ 등을 통해 농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기여해 왔다. 최근 들어서 환경운동단체, 유기농업단체,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와 연대활동을 강화하여 농민운동의 새로운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③ 기독교농민회

기독교농민회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전남지역의 농촌교회 평신도 농민과 청년 일부가 지역 단위 농민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태동하였다(정명채 외, 1995). 크리스챤아카데미의 교육을 매개로 전남지역의 기독교 청년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1978년 3월에 전남기독교농민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이 전남기독교농민회가 모체가 되어 여타 지역의 기독교농민회들이 설립되었다. 그 후 1982년 3월에는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기농)가 결성되고, 1989년 2월에는 한국기독교농민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기농은 1980년대 농민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하였으며 특히 전국 단위에서 농축산물수입개방 반대투쟁의 선두에 나서곤 하였다. 1990년 전농 결성 이후 한국기독교농민회는 활동 방향과 목표를 새롭게 정립하고 정의운동, 생명운동, 공동체운동을 펼치는 평신도 농민선교단체로 재출발하였다(정명채 외, 1995). 그러나 기농활동가들은 대부분 전농으로 흡수 · 통합되면서 1995년 이후 기농의 활동은 뜸해졌다.



6. 지배통제조직


생산조직 이외의 다양한 조직을 범주화할 때,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조직된 것과 농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것 등 다양한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 구분이 엄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존질서 아래에서 양자는 항상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조직들은 현존 지배구조 속에서는 항상 지배통제구조로 편제되어 들어갈 수 있다. 즉 지배통제조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발적인지 국가 주도적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위에서 언급한 조직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지배통제조직은 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국가는 각종 국가장치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조직을 만들어냄으로써 농민을 지배해 나간다(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 한국가톨릭농민회, 1990).

국가는 군대, 경찰 · 검찰 및 사법기구와 같은 폭력적 기구를 통하여 농민의 정치적 진출을 억제하였으며, 더 나아가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각종 행정조직들, 각종 준행정조직들, 그리고 각종 연합조직들(예: 군정자문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군방위협의회, 군지역대책협의회, 군기관장친목회 등)을 만들어낸다. 또한 예비군조직이나 정당조직, 부녀회, 청년회, 개발위원회 등으로 농민들을 포섭하고 필요할 때에 정치적으로 동원한다.

이러한 지배통제조직을 구축해 가는 데에서 국가는 일정한 자원을 분배하면서 농민들을 동원한다. 국가는 마을 단위의 각종 조직을 지원하고, 더 나아가 생산조직의 운영(융자금의 대여, 농기계 보조 등)에 대한 일정한 시혜를 베푸는 방식으로 지배통제를 관철시켜 간다. 그러면서 공동체적 성격을 지닌 마을을 통제하기 위해서 국가는 마을 안에 각종 끄나풀조직을 만들어 이를 통해 농촌과 농민을 지배 · 통제한다. 다시 말해 이장을 비롯하여 영농후계자(농업경영인), 전업농, 반장 등의 농민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다양한 끈을 두어 관리해 나간다.

농촌에는 주민자치의 기초가 되는 마을 단위로 각종 생산조직과 사회조직이 만들어져 있다. 마을 단위를 넘어서는 조직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을 간의 수평적 관계가 거의 단절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자신의 지배통제조직을 통해서만 농촌마을을 수직적 조직구도에 편입시키려고 한다. 1980년대 이전에 마을 단위를 넘어선 조직은 대개 지배통제조직이거나 협동조합조직과 같은 조직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점차 마을 단위를 넘어서는 생산 및 사회조직이 활성화되고 있고 또한 지배통제조직의 대안으로서 농민회 조직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지배통제조직을 통해 농민을 분열시키면서 지배하는 국가에 대응하여, 농민의 생산조직을 기반으로 각종 형태의 공동조직을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반영된 것이다.

국가는 농촌 주민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기 위하여, 주민을 각종 조직으로 묶는 방식을 취한다.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행정조직(리/반/개발위원회)을 들 수 있다. 행정조직은 1914년 지방행정제도 개편(부락을 행정 단위로), 8·15이후 부활(법정리), 5·16 쿠데타 이후(행정리 설치-반조직으로 세분화됨)의 과정을 거쳐 행정리와 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행정리는 대체로 1구, 2구, 3구 등 몇몇 마을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마을 주위의 조직으로는 개발위원회가 있다. 개발위원회는 이장을 중심으로 한 마을 내 유력인사들(반장, 새마을지도자 등 공식직책 담당자)로 구성된다. 형식상으로는 주민의사수렴, 마을 단위 개발사업의 최종결정 등을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이장의 업무수행을 지원하는 행정보조기구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의 실질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이장은 마을총회에서 선출되는 것이 보통인데, 마을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니면서도 국가정책의 수행과정에서 핵심끄나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마을에 대한 면사무소와 농협의 업무수행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 한국가톨릭농민회. 1990).

이러한 행정조직과 더불어 마을의 거의 모든 주민을 구성원으로 하는 중요한 조직으로 새마을협동조직(새마을영농회, 새마을부녀회, 새마을청소년회, 금고, 문고 등)이 있다. 이러한 조직들은 형식상 민간조직이지만, 내용상 행정기관의 지시와 통제를 받는 끄나풀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마을마다 새마을지도자가 있고 조직마다 회장이 있지만 실제 이장이 총괄하는 추세에 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이후에는 농촌에도 정당과 각종 정치조직들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정당조직은 평상시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선거철에는 선전 동원을 통해 마을이나 지역 안에서 득표활동을 한다. 그리고 선거철에는 정당조직 이외에도 각종 공식 · 비공식조직이 동원된다. 지역의 군사적 동원조직, 초등학교 육성회와 어머니회, 동창회, 친목회, 계 등도 동원된다.


참고문헌

문정창, 1961, 『한국농촌단체사』, 일조각.

손경년, 1991, “여성농민조직형태에 관한 일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윤수종, 2009, 『농촌사회제도연구』, 전남대학교 출판부.

정명채 · 민상기 · 최경환, 1995, 『주요농민운동단체의 형성과 전개과정』,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강현, 2006, 『두레: 농민의 역사』, 들녘.

최재석, 1975, 『한국농촌사회연구』, 일지사.

최재율, 1986, 『농촌사회학』, 유풍출판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 한국가톨릭농민회, 1990, 『지역사회 지배구조와 농민』, 연구사.

한국배수관개위원회, 1996, 『한국수리사』, 서라벌인쇄.


이야깃거리

  1. 기계화와 함께 나타난 농업노동조직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

  2.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조직들과 관에서 만든 조직들 간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3. 농업생산의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영농조합법인의 구체적인 형태나 운영방식에 대해서 사례를 찾아 탐색해 보자.

  4. 지배통제조직과 농민운동조직을 대비시켜 가면서 농촌의 지배구도를 상상해 보자.


더 읽을거리

엄영애, 2007, 『한국여성농민운동사』, 나무와숲.

최민호 · 정지웅 · 김성수 · 최영찬, 1997, 『농민조직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제5장 농민운동의 전개과정


윤수종


주요 개념 및 용어

농민운동, 농촌운동, 농촌계몽운동, 협동조합운동, 가톨릭농민회, 기독교농민회,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값피해보상운동(‘소몰이’시위), 농축산물수입 반대운동, UR협상 저지투쟁, 농정개혁투쟁, FTA 저지투쟁, 원정투쟁, 상경투쟁, 동시다발 지역투쟁, 여성농민운동, 대안농업운동, 유기농업운동, 생협운동, 지역먹을거리운동



1. 농민운동의 의의


20세기 혁명은 농민혁명이라고 할 만큼,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농민들은 사회변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농민은 작은 땅을 소유하고 자가경영 하면서 변화를 원치 않는 보수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농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농업은 부차적인 산업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자본 및 외부세력과 싸움을 벌여 나갔지만 점차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대안적인 운동으로도 나서고 있다.

되돌아보면 농민운동은 조선 말기인 19세기 중엽부터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다. 1862년에는 전국적으로 농민저항이 두드러졌으며 1894년에는 이른바 갑오농민전쟁이 발발하여 봉건국가체제를 뒤흔들 정도로 번져 나갔다. 일제 시기에도 농민들은 3.1운동 후반부에 대거 참여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소작쟁의를 통해, 1930년대에는 혁명적 농민조합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체제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의지를 표출해 왔다.

8·15 직후 농민들은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여 광범한 토지요구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고비로 농민운동은 침체하였고, 1950∼1960년대에는 농촌계몽운동 정도의 흐름만이 나타났다. 뒤이어 1970년대에는 사회변화를 지향하는 농민운동이 다시 움트기 시작하였다.

그 후 40여 년에 걸쳐 전개되어 온 농민운동은 농민들의 직접적인 이해를 표출해 왔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재조직해 나갈 방향을 제기해 왔다. 40여 년간의 농민운동은 노동운동과 함께 한국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든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8·15 직후부터 전쟁시기까지의 농민운동, 197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장과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결성, 그리고 그 이후 세계화 국면 속에서 전농운동의 전개과정을 주류 농민운동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서술하고, 여성농민운동과 최근 들어서 활성화되고 있는 대안농업운동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2. 8·15 직후 한국전쟁 시기의 농민운동


1) 8·15 직후의 자생적인 농민운동


8·15 직후 시작된 농민운동은 농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자생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시기의 농민운동은 정치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의 역사적인 경험을 국가수립운동으로 새로이 계승하였으며, 경제적으로는 식민지시대부터 이어져 온 지주소작관계를 개혁하여 농업 · 농민문제를 발전적으로 해결하려는 농민들의 자주적인 참여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생적인 움직임은 건국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 참여해가면서 점차 농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농민조직 결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농민들의 토지요구는 북한의 토지개혁에 자극받아 더욱 활발해졌다. 농민대중의 자발적인 역량표출을 배경으로 출현한 농민조직은 농민위원회, 농민조합, 농민연맹, 노농연맹 등 다양하였다.

이러한 초기의 농민운동은 1945년 12월에 통일된 전국조직인 ‘전국농민조합총연맹’(전농)의 결성으로 이어진다. 전농은 188개의 군 단위 조직(면 단위 1,745개, 마을 단위 2,588개)으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가입한 조합원도 약 330만 명에 이르렀다. 전농은 농업 · 농민문제의 본질이 일제와 민족반역자에 의해 유지되어 온 반봉건적인 토지소유제도에 있다고 규정하였다. 전농은 밖으로는 식민지 잔재 청산을 통해 완전한 민족적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통일전선운동에 참여하면서, 안으로는 토지혁명에서의 최종적 승리를 위해 빈농을 중심으로 조직역량을 강화해나가려고 하였다. 전농은 ‘무상몰수 ·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향해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운동에 적극 뛰어들었으나, 미군정의 전농에 대한 검거선풍과 우익조직들의 공격으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이혜숙, 1989).


2) 10월 항쟁과 추곡수집 반대투쟁


1946년 6월에는 대홍수가, 그리고 7∼8월에는 농촌의 식량부족이 농민생활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식민지하에서조차 없었던 하곡수집이란 제도를 통해, 미군정은 전국의 식량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하곡수집기간 동안 각 정미소나 심지어 가정에서의 도정조차 금지하였다. 심지어 이 과정에 친일적인 경찰까지 동원하였다.

미군정의 불합리한 정책에 대해 농민들은 추곡수집 반대투쟁으로 나아갔고, 추곡수집에 대비하여 미리 벼를 베는 등의 합법적 · 반합법적인 투쟁을 계속하였다. 특히 강제적인 추곡수집은 농민조합과 전농으로 조직화되어 있던 농민대중을 적극적인 항쟁으로 나서게 한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1일의 대구봉기를 시작으로 곧바로 경북지역의 항쟁으로 점화되었으며, 이는 거의 동시에 전국의 각 군으로 전파되었다. 처음 대구봉기에서 경찰의 탄압을 피해 인근 농촌지역으로 진출한 좌익단체 성원들과 지역 인민위원회 및 농민조합조직, 그리고 수백 수천 명의 농민들은 일제히 집회를 열고 농기구로 무장한 뒤 경찰서 · 면사무소 등의 행정기관을 접수하려 시도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지주부호 · 우익인사 · 경찰 · 관리의 집을 공격하여 이들을 살해하였으며, 나아가 신한공사와 양곡창고를 습격하여 양곡수집기록을 불태우고 쌀을 분배하였다. 이에 대해 군정청을 중심으로 경찰과 우익단체를 투입하여 대대적인 검거와 색출을 하고 그리고 미군의 지원을 받은 진압작전을 편 결과 봉기는 곧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10월 항쟁은 10월 7∼8일경부터는 경남지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쌀을 요구하는 마산 · 통영지역의 시위가 대중적인 항쟁으로 전화하자, 진주 · 하동 · 의령 등지에서는 대중시위와 경찰서 습격이 잇달았다. 이어 1946년 10월 중순부터는 경기도의 개풍 · 광주와 황해도의 연안 · 백천, 그리고 충청도의 예산 등의 지역에서 치열한 항쟁이 벌어졌다.

전국 각지의 항쟁이 강원도 횡성 · 묵호에서의 산발적인 소요양상 외에는 거의 진압되어가던 10월 말에 이르러, 전남지역의 농민항쟁이 대규모로 폭발했다. 화순탄광 노동자들의 배고픔을 호소하는 시위를 출발점으로 시작된 전남지역의 농민항쟁은 민중들의 시위에 미군정과 경찰이 발포하는 양상이 무려 50여 차례나 반복될 정도로 치열하였다. 그 후 이 지역의 항쟁은 전북의 남원 · 순창에서의 산발적인 소요를 끝으로 다시 잠잠해지기는 하였지만, 일제가 물러간 이후 식량의 안정적 획득을 바랬던 농민들은 미군정의 미곡수집에 대하여 이처럼 거칠게 항의하였다.


3) 농지개혁에서 6·25전쟁까지의 농민운동


10월 항쟁의 패배로 변혁운동의 세력기반이 크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이를 틈타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민당과 우익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이 그들의 정치적 · 계급적 거점을 실질적으로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토지를 둘러싼 농민의 투쟁은 날로 거세져갔다. 미군정은 이제 직접 나서서 농지개혁을 실시하려고 하였다. 혁명을 예방하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10월 항쟁 이후 합법활동을 계속해 온 전농은 ‘무상몰수 · 무상분배’안을 가지고 농민들의 토지요구를 제기하였다. 이 당시 전농은 정치적인 투쟁 끝에 비록 합법적인 조직의 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미군정에 의해 그 활동이 전면적으로 봉쇄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불법단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틈새를 교묘하게 이용한 우익진영은 1947년 8월 30∼31일에 반공청년단체들을 모체로 한 ‘대한독립촉성 농민총동맹(농총)’을 결성하였다. 이 관제단체는 앞장서서 ‘유상매수 · 유상분배’의 토지개혁안을 주장하였을 뿐아니라 ‘5.10선거’에 농민을 동원하기 위해 선전계몽하는 일을 떠맡았다.

한편, 전농과 그 산하의 농민위원회 조직이 대거 파괴되어가자, 농촌에서는 토지개혁을 예견한 지주들의 토지방매가 이루어졌다. 1948년 9월부터 정부는 농지개혁법 제정을 위해 법안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지개혁법은 1949년 6월 21일에야 국회를 통과하여, 1950년에 들어서 비로소 실시가능해졌다. 이 시기에 농지개혁을 지향하는 농민투쟁은 점차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갔고 마침내는 본격적인 유격투쟁으로 비화되었다(장상환, 2010: 18).



3. 1950∼1960년대의 농촌운동


1) 1950년대 농민운동의 부재와 농촌운동


1950년에 실시된(토지방매를 포함하여) 농지개혁의 결과, 지주계급은 해체되고 자작농적 토지소유가 성립된다. 이후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 축적이 농민으로부터의 곡물수집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농민들은 빈궁해지고 고리채에 시달렸다. 또한 8·15 직후의 농민투쟁의 패배와 한국전쟁으로 농민과 민중의 권리는 위축되고 농민운동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전농을 불법단체로 만들어 결국 해체시켰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농의 활동은 사라졌고, 이후 우익 농민단체인 농총만이 존립하게 된다.

농총은 전농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이를 분쇄하는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전농의 활동이 사라지자 농총의 활동도 미진해져 갔다. 농총은 농민의 권익신장을 위한 사회운동보다는 농민계몽과 농촌재건, 지도자 양성에 주력했고 잡지 『새농민』을 발간하여 영농법 등 농업기술 보급에도 역점을 두었다. 한편 농민후생조합을 조직하고 생필품을 공동구매하는 등 초기 협동조합운동도 추진했다. 1952년 말에 농총은 ‘대한농민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농민회는 권익활동보다는 농정 · 건의활동 정도를 했으며, 이후 언제인지 모르게 흐지부지 없어졌다.

1950년대에는 농민들이 자연발생적인 수준에서 임시토지수득세의 경감 내지 면제를 위한 노력, 각종 농산물수매 불응, 잡세납부 거부, 수세감면 요구 등을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수탈에 대한 수동적인 저항의 형태를 띠었을 뿐 자신의 조직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전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1950년대의 농민운동은 주로 농업협동조합설립운동과 지역개발운동 등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농업협동조합 설립운동과 관련해서, 일제시기에 있던 금융조합과 농회를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58년 금융조합을 농업은행으로 개편하고 단위농업협동조합은 신용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는 단위농업협동조합을 농업은행과 정부에 완벽하게 지배되는 비민주적 구조로 만들었다. 또한 마을 단위나 지역 단위에서 협동조합활동(구판매사업, 이용사업)을 하거나 시범부락을 만들어 각종 시설들을 설치 · 이용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농촌활동가 가운데 일부는 문맹퇴치운동, 도박근절운동, 폐풍개선운동 등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농업문제를 연구하고 언론을 통하여 정부 농정을 비판하는 등 여론을 형성해나갔다. 1956년 8월에 창립한 ‘한국농업문제연구회’(농연)는 농지개혁의 실패와 잉여농산물 도입의 부정적 영향, 한국자본주의와 농업 등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고 실천적으로는 전근대적 생산양식을 극복하기 위해 협업농업의 양성을 주장했다(장상환, 2010: 25-26).


2) 1960년대 농촌운동과 맹아적 농민운동


4.19 이후 대학생들은 선거계몽활동을 전개하여 민중, 특히 농민들에게 접근했다. 대학생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 하기 방학기간을 이용해 농촌야학과 4-H구락부 중심 계몽운동, 농촌실태조사, 무의촌 진료 등 농촌활동을 전개해왔다. 1960년대 대표적인 대학생 농촌계몽운동으로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향토개척단(鄕土開拓團)운동이 있었다.9) 이 운동은 단순한 노력봉사의 차원을 넘어서서 농민의 의식화와 조직화 및 농촌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해 나갔다. 이러한 학생농촌활동이 여러 대학에서 전개되도록 하는 데는 구농회(救農會)라는 비공개조직의 역할이 있었다.

이 당시의 농민운동은 권익투쟁보다는 농사기술 보급운동과 생활개선운동, 지역개발운동 등 농촌계몽운동이 대부분이었고, 대학생들의 농촌계몽운동에서 일부 농민권익운동적 성격을 띠는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4-H구락부운동은 농촌청소년들의 농업기술 학습과 창의력 개발, 자주성 개발 등을 목적으로 추진된 지도학습 조직활동이었다. 그리고 4H 자원지도자 외에도 농촌여성들의 생활개선구락부를 지도하는 자원지도자, 정부에서 추진하던 지역사회개발사업을 지도하던 자원지도자 등이 있었다. 이들 세 부문의 자원지도자들을 통합하여 ‘전국자원지도자연합회’를 구성하여 농촌지도사업을 전개하였다. 또한 1950년대부터 이루어져 오던 협동조합운동이 1960년대 들어 각 지역에서 선구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협업농장운동, 이어서 민간 주도로 이루어진 협업농장운동이 있었다.

민간의 자발적 · 자주적 조직으로서 ‘농촌문화연구회’(1954년 설립)와 ‘전국농업기술자협회(1964년 설립)’가 있었다. 전자는 독자적인 농민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농민문화』란 잡지까지 간행하고 있었고, 후자는 독농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농업기술 보급을 위해 ‘전국농업기술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들 단체 외에도 ‘가나안 농군학교’를 비롯하여 대전의 ‘복지농도원’, ‘기독교 연합봉사회’, 캐나다선교회의 ‘이리농장’, 충북 괴산의 ‘육우개발협회’, 감리교 계통의 ‘양곡은행’, YMCA의 ‘농촌개발사업’, 그리고 천주교 원주교구의 ‘농촌개발사업’ 등 많은 기관이 있었다.

또한 1960년대는 농민운동 지향을 지닌 조직들이 태동한 시기이기도 하다. 1964년 10월에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JOC) 안에 농촌청년부(JAC)가 설치되었고, 1966년 10월에는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가 창립되었다. 이 조직은 새농사기술, 지역사회개발, 공동체의 형성과 실천, 양돈양계기술 등을 강조하고 교육하였고, 몇 가지 협동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점차 농업 · 농민문제가 기존의 활동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에는 농업문제연구회의 활동을 계승하여 한국농업근대화연구회(농근연)가 창립된다. 이 연구회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농업문제에 대한 교육 및 연구 등을 하였고, 현실정책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통해 농업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들에게 농민운동의 열의를 촉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장상환, 2010: 34-35).



4. 농민운동의 성장과 전농의 결성


1) 1970년대 농민운동의 전개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농업문제의 해결은 단순한 정책 제시와 비판의 차원을 넘어 농민들의 주체적 움직임에 근거해야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비로소 지식인들의 인식과 종교계의 협력에 의하여 농민권익을 확보하려는 농민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가 1972년 4월에 ‘한국가톨릭농민회’(가농)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농민권익의 옹호’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또한 기독교계의 움직임도 이어져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농민교육 프로그램과 ‘YMCA연맹’의 농촌개발사업이 실시되었다.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 사회교육원’(크리스챤아카데미, 1974∼1979)은 1974년에 발족했으며, 노동 · 여성 · 농민 등의 분야에 관한 강좌를 실시하였다.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실시한 농민교육은 농민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민의 민주적 정치역량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두었다. 5년 넘게 진행된 이 교육 프로그램에 약 800여 명의 교육생이 참가하였다(이우재, 1991). 이 시기의 농촌청년활동가들은 농민교육을 통해서 연결망을 만들어 갔고, 이것이 나중에 농민운동의 지역적 전개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가톨릭농민회는 1972년 명칭변경과 동시에 농민운동을 위한 농민교육, 조사활동, 조직강화를 해나갔고, 1977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농민권익실천활동을 추진해 나갔다. 농협민주화운동과 쌀생산비보장운동, 그 외 다양한 협동활동과 농정시정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기독교농민회로 묶인 사람들이 이 시기에 가농 안에서 활동해 나갔다.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권익실천에 나서고 독재정권과 부딪치면서 몇 가지 사건이 발생하였다(정호경, 1986: 257-282).

1970년대에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벌인 운동으로는 ‘함평고구마사건’을 들 수 있다(조영호, 1984: 172-185). 1976년 발생한 함평 고구마사건은 고구마수매를 둘러싸고 농협의 수매약속과 책임회피, 그에 대한 농민들의 피해보상대책위활동, 그리고 2년여 만의 보상으로 특징지어졌다. 함평고구마사건은 농민들이 주체가 되어 농협의 횡포에 대응하고, 피해조사를 하고 농민들의 결집을 실험한 최초의 시도로 남아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자 독재정권은 가농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1978년 2월 가농 춘천지부의 활동을 핑계삼아 지부뿐만 아니라 전국 본부 회원까지 구속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1979년에는 경북 영양군의 농민들이 감자피해보상활동을 벌였다. 보상이 마무리된 뒤에 정권은 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오원춘)을 납치하였고 이에 항의하는 가농 간부들을 구속하여 이른바 ‘오원춘사건’으로 비화하였다(한국가톨릭농민회, 1999: 49-50).

1978년 3월에는 전남기독교농민회가 창립되어 기독교농민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다. 가농이나 크리스챤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농촌청년들이 해남과 무안 지역을 중심으로 가농에서 활동하다가 기독교농민을 조직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기독교농민운동은 1982년 3월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기농)를 결성하여 전국적인 농민운동조직의 틀을 세우게 된다.

1970년대의 농민운동은 농협강제출자, 신품종 강제경작, 주택개량사업강제, 부당농지세부과, 경지정리피해보상 등 말단 행정기관의 부정에 대처하는 운동과 이를 지원하는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적 권리요구에 집중되고 있었다. 이러한 농민운동은 독재정권으로 표상되던 유신체제의 몰락을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1979년 10.26사건(대통령피살사건) 이후 열린 공간 속에서 농민들과 농민단체들은 농업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민주화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2) 1980년대 농민운동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개방농업정책’으로 외국농산물의 수입이 대폭 늘어나면서 식량자급률이 5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농산물 가격이 동결되거나 폭락하는 가운데 농민의 가계비 지출은 늘어만 갔다. 이렇게 농가경제가 악화되어 가는 가운데 농민운동은 1980년 5.17쿠데타 직후 여타 민족민주운동과 마찬가지로 잠시 침체 상태에 빠졌지만 곧 재활성화 되었다.

음성의 고추재배농민들은 1981년 말부터 부당농지세제시정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1982년 들어 농지세개정을 요구하는 농민대회를 개최하였고, 그 후 국회에서의 농지세제개정을 이끌어 냈다(최재영, 1985: 203-221). 그러자 각 지역에서 부당농지세제 시정운동이 뒤를 이었다.

이어서 1983년 가농은 ‘농협조합장 직선제 실시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서명운동은 일반농민들에게 농민운동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83년 가을 추곡수매가가 동결되고 시중 쌀값이 하락하면서 농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수매량 확대 시위를 전개하였다. 농지개량조합의 부당한 수세부과에 대한 항의와 현물납부투쟁이 이어졌고 경운기를 가지고 시위하는 방식이 나타났다(엄영애, 2007: 197-206). 1984년 여름에는 기농과 가농이 농가부채탕감을 요구하면서 부채문제를 여론화시켜 나갔다. 이어서 1984년 9월 2일에 전남 함평에서 열린 ‘함평 · 무안 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은 지역적 요구들과 농가부채탕감, 농축산물 수입금지, 수매가인상, 비농민소유토지 농민환원 등의 전농민의 일반적인 요구와 지방자치제 실시 등 정치적 요구를 내걸었다. 농민들이 조직적인 준비활동을 통해 농민대회를 개최하는 방식이 나타났던 것이다(박연섭, 1986: 299-305).

정부는 복합영농이란 취지 아래 농민들에게 소를 키울 것을 권장하였는데, 오히려 쇠고기 수입을 늘려 소값 폭락을 가져왔다. 이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가 전국적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1985년 들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소값피해보상운동은 ‘소몰이’시위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농민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게 되었다. 가농과 기농이 함께 참여하여 전개하였으며, 7월과 8월 동안 전국 20여 개 군10)에서 2만여 명의 농민들이 소를 앞세워 경찰저지선을 돌파하였고 소와 함께 걸어서 장터나 지역을 순회하면서 경운기 시위도 벌이고 국도도 차단하였다(한국가톨릭농민회, 1987). 투쟁이 진행될수록 일반 농민대중의 참가가 늘어났고 여성농민들의 참여가 두드러졌으며, 농민들은 정권을 미국의 예속정권으로 규정하고 민주화 요구도 제기해 나갔다.

1985년에는 농축산물 수입 반대 및 소값피해보상운동 이외에도 불량종자피해투쟁과 간척지 소작료 인하 및 분배 요구투쟁이 전개되었다. 소몰이시위를 계기로 대중적 투쟁이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각종 투쟁위원회들이 지역과 전국 단위에서 결성되었다(이정찬, 1990: 183-221). 상반기에는 이들 지역 단위 투쟁조직들에 의한 정치투쟁이 전개되었으며, 하반기에는 지역 단위의 운동노선을 수립하면서 전국규모의 투쟁조직이 결성되고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인 투쟁이 전개되었다(허헌중, 1987: 235). 이렇게 대중투쟁이 전개되면서 농민운동의 각 지역조직들에 의해 각종 홍보물들이 만들어졌다. 또한 지역투쟁에는 가농, 기농이 함께 참여하고 독자적인 농민조직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나아가 1986년경부터 종교단체의 형식을 빌리지 않은 자주적인 농민조직들이 군 단위에서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종교와 무관한 자주적인 전국 단위의 농민운동조직을 세울 것을 주장하여 이들 가운데 일부가 1987년 2월 ‘전국농민협회’(전농협)를 창립하였다.

1987년 들어서는 ‘농가부채 공청회’라는 새로운 투쟁방식에 의하여 부채농가들이 결집하였다. 또한 자본 중심의 토지개발정책 및 토지수용에 반대하는 투쟁도 벌여 나갔다. 특히 6월항쟁과 7∼9월의 노동자대투쟁은 농민운동을 크게 고무하였다. 6월항쟁 기간에는 각 지역의 농민들이 ‘독재타도’와 각종 농민의 요구를 내걸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또한 6월항쟁의 성과를 대중적으로 조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라는 당시의 연합조직에 전국농민위원회를 설치하고 참여하였다(허헌중, 1987: 242-251).

그러나 정부는 1986년 9월에 이미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농산물무역 완전자유화를 위한 무역협상을 실시할 것을 합의하였다. 동시에 노골적으로 농업포기정책을 취하기 시작하였고 골프장이나 관광단지 조성 등을 추진해 나갔다. 이에 농민들의 분노가 전국적으로 폭발하고 요구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이호철, 1993: 77). 특히 1987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자주적인 농민조직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1987년부터 1988년에는 각종 다양한 쟁점들을 둘러싸고 농민들의 요구와 투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기본적으로 외국농산물수입 저지 및 농산물 제값받기투쟁이 주조를 이루면서, 다양한 투쟁영역들이 등장하였다. 투쟁영역별로 보면, ① 대규모간척농지의 분배요구투쟁과 토지수용 반대투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토지투쟁, ② 품목별 · 지역별로 농민운동단체와 생산자조직이 결합해서 벌였던 외국농축산물 수입개방 저지투쟁, ③ 양담배 수입으로 담배농가의 고추생산으로의 전환에 따른 고추값 폭락과 그에 대한 농산물제값받기투쟁, ④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수세폐지 · 농조해체투쟁, 그리고 ⑤ 의료보장쟁취투쟁 등이 전개되었다. 운동방식은 점차 격렬해졌다. 집회를 넘어서 점거방식이 등장하였고, 트랙터, 경운기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투쟁에 참여하는 농민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게다가 투쟁이 연중 끊임없이 전개되었고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었다(장상환, 1989: 109-132).

1989년에 들어서 열린 ‘2·13 여의도 농민대회’는 농민운동 역사상 대중조직이 움직인 최초의 행사였다. 가농과 기농을 중심으로 한 ‘전국농민운동연합’(전농연)이 개최했는데, 수세폐지, 고추값 보장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1989년 내내 투쟁은 지속되었고 농민운동의 조직화가 진행되었다.


3) 전농의 결성


농민들의 투쟁이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일회적이고 단기적인 것에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것으로 발전하면서, 농민운동의 전국 조직이 가농, 기농, 전농협 등으로 분열되는 폐해가 발생하였다. 사업이 중복되고, 조직 간에 소모적인 갈등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농민대중들로부터 전국조직을 통일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농민대중의 요구는 사실 이미 1986년경부터 대중적인 투쟁이 전개되면서 내부로부터 제기되어 왔고, 일부 지역에서는 투쟁과정에서 내재적으로 실현되기도 한 것이었다. 농민조직의 통일에 대한 논의는 1989년부터 이어지다가 1990년 4월 농민조직들의 통일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결성되었다.

1980년대 농민운동을 결산하는 의미를 지닌 전농의 결성은 기존의 운동방식에 대한 최종적인 조직적 결론이었다. 대중들의 활발한 투쟁을 상향식으로 조직화하여 분열된 각종 농민운동조직을 통일한다는 것은 분열지배를 획책하는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농민적 대항장치를 만드는 것이었다.

전농 스스로를 1980년대 자주적 농민운동의 결실이라고 보았으며, 기존의 분립된 전국조직들을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군 단위 대중조직에 기초를 둔 전국농민조직으로 규정하였다(전농 정책실, 1990: 1-4).

이제 농민운동이 전농을 중심으로 제도화되면서 전농조직이 투쟁 단위가 되어 갔다. 전에는 각종 투쟁위원회 등의 활동이 활발했던 데 반해, 농민운동의 각종 활동들은 점차 전농의 계통조직(전농 중앙-도연맹-시군농민회-읍면지회-마을분회)을 통해 이루어졌다.

전농은 74개의 군 단위 농민회 조직을 기반으로 출발하였다(정명채 외, 1995: 94-95). 그동안 조직을 확대하여 2010년 기준 104개 시군농민회가 전농에 참여하고 있다.



5. 전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


1) 1990년대 농민운동


전농은 1990년대 전반기에는 UR협상을 통한 농축산물수입자유화정책의 확대실시에 대항해 UR협상 저지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0년대 후반기부터는 농업개방을 전면화하는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UR 반대투쟁에서 농정개혁투쟁으로 넘어가게 된다.


(1) UR협상 저지투쟁

1989년 농축산물 수입자유화조치를 취하면서 한국 농업은 세계화의 격랑 속에 내던져지게 된다. 이 시기의 농민운동은 전농을 대중적 기반으로 하여, 1986년부터 밀실에서 진행된 UR협상(농산물의 전면개방과 저관세화 내용으로 타결됨)에 대한 저지투쟁과 ‘농어촌종합발전대책’(1990년)이라는 명목 아래 농업구조조정을 통해 농업을 포기하려는 농업축소정책에 대한 분쇄투쟁을 주로 전개하였다(전농, 2009).

1990년대 전반기에 전농이 주도한 농민운동형태는 ‘농민대회’였다. 대개 서울에서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모여들어 UR 반대, 농산물수입 저지, 농발대 분쇄, 제값받기 등을 내걸고 항의시위를 벌이는 형태로 전개하였다. 물론 전농 혼자서가 아니라 다른 농민단체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 운동단체들과 연합하여 농민대회를 개최하였다.

농민들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UR 반대투쟁은 비록 국회비준을 막아내지 못했지만, WTO이행특별법을 제정하게 하고 농업을 지키기 위한 농민 ·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형성하게 했으며, 농민대중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농민운동이 더욱더 전 지구적인 상황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전농의 투쟁은 협상거부 및 협상과정에서 한국정부의 반농민적 자세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갔다.

다른 한편, 이러한 반대투쟁을 하면서도 전농은 대학생들의 농활과 결합해 나갔다. 이와 더불어 의료보장쟁취운동, 쌀값보장 및 전량수매운동, 골프장 반대투쟁, 잎담배전량수매투쟁, 농협개혁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전농은 현장 농민들과 결합된 투쟁과 민주주의쟁취투쟁을 함께 조직 · 전개하면서 농민운동을 대중화하려고 했다.


(2) 농정개혁투쟁

4년에 걸친 농민들의 강경한 투쟁에도 농업개방을 전면화하는 비준안이 1994년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농민운동진영은 한동안 침체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후 오히려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전농은 1995년에 변화된 상황에 조응하는 활동과 투쟁을 실천할 것을 결의하면서 전국투쟁보다는 도, 시군 단위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실천활동을 해나갔다. 한편으로는 종자피해보상투쟁, 사과제값받기투쟁, 골프장 반대, 쓰레기장 반대 등 지역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투쟁을 활발히 전개해갔다. 다른 한편 지자체선거 대응, 농사청년조직 건설, 민원상담소 개설, 농업신기술 연구 등 생활운동영역의 확대를 통해 농민조직을 지역대중 중심의 일상활동과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사업도 경제사업 활성화, 제도정치권 진출, 협동조합 참여, 지역운동영역 개척 등으로 다원화되었다.

지역화 · 대중화를 중심에 두고 운동방향을 모색하던 전농은 1996년에 들어서면서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요구, 신농정 폐기, 농업회생대책 요구를 하면서 대정부투쟁을 전개하였다. 1997년에는 소값 파동으로 9월 들어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1999년 들어서는 농협개혁을 촉구하고 노동자세력과 함께 민중대회를 개최해 나갔다.

전반적으로 1980년대와 비교해 볼 때 전농결성 이후 1990년대의 농민운동에서는 반독점 및 반독재라는 거대담론은 약화된 반면, 농민들의 실질적인 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욕구들을 반영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김철규, 1997: 78). 또한 국내농업문제가 국제적인 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내농업을 방기하려는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농민보호요구가 커졌다.


2) 2000년대 농민운동


전농은 2000년대 들어서는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아래에서 추진된 한-칠레 FTA와 한미 FTA 저지 및 비준 저지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 한-칠레 FTA 저지투쟁과 원정투쟁 및 상경투쟁

2000년 5월 2일에는 전농과 전여농, 가농 회원 등이 한-칠레 FTA 중단과 WTO 수입개방 반대를 위한 농민대표자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이후 개방정책과 FTA협정과 관련하여 전농과 여타 농민단체들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대표적으로 2001년부터 2004년 초까지 이어진 한-칠레 FTA 저지투쟁이 있었고, 1999년부터 계속 진행해 온 WTO 쌀개방 저지투쟁(1999∼2005)이 있었다.

한-칠레 FTA 저지투쟁은 다양한 현장교육 및 선전과 함께 전개하였으며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주최로 2001년에 열린 ‘한-칠레 FTA 저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표자대회’를 필두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농민단체들이 함께 참여했으며 특히 각 지역에서 시군농민회 단위로 영농발대식을 하면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대한 지역 농민들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농민들은 서명운동, 전국농민대표자 대회, 각 지역에서의 영농발대식, 동시다발 시군농민대회, 이장단의 쌀개방 반대선언운동 등을 통해 저지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2002년에는 각지의 농민들이 농민대항쟁을 벌였고 11월 13일에는 전국에서 모인 농민 10만여 명11)과 시민 2만여 명이 합세하여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우리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하여 개방농정으로만 치닫는 정권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결국 정부는 한-칠레 FTA를 2002년 말 강행 타결하였다. 2003년 들어 전농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한-칠레 FTA 반대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2004년까지 이어진 농민대회들에서 지역 농민들은 차량으로 전국 각지의 주요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상경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초 총선을 앞두고 정부는 한-칠레 FTA 국회비준동의안을 상정하여 강행 처리하였다(전농, 2004).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정부의 주도 아래 협정이 비준되었지만, 전농을 비롯한 농민운동단체들은 한국정부에 대해 저지투쟁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시애틀 WTO 4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1999; 칸쿤 WTO 5차 각료회의 무산투쟁, 2003; 홍콩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2005)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갔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함께 농민들은 원정에 나섰고 선진국들의 자본 중심의 협력체계구축에 대해 반대시위를 하였고 농민의 요구를 확산시키려고 하였다. 또한 저지투쟁을 하면서도 ‘사회포럼’에 참여하여 다른 나라의 운동집단들과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하기 위해 연대하였다.

전농은 이러한 반세계화투쟁과 더불어 구체적인 요구들을 제기하면서 다양한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예를 들어, 농가부채문제를 제기하여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로부터 ‘농가부채특별법’을 쟁취하였다. 또한 농민들의 주요 작목인 쌀문제와 관련하여 쌀개방 저지투쟁을 벌여나갔으며, 도청, 시군청 등 지역의 주요건물 앞에 일제히 쌀가마를 쌓는 야적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2) 한미 FTA 저지투쟁과 동시다발 지역투쟁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미 FTA문제가 전체운동의 주요 사안이었으며 농민운동의 주요 사안이기도 하였다. 2006년 3월에 여러 단체들이 참여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졌고 전농도 여기에 참여하여 한미 FTA 저지에 나섰다. 수입쌀에 대한 규탄시위와 기자회견, 수입쌀입고 저지활동 등을 전개해 나갔고 동시다발 범국민대회를 전개하였다. 특히 전국 각 도에서 농민들은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시위자들과 함께 각 지역 도청에 진입하거나 진입하기 위한 격렬한 마찰을 일으켰다. 2003년에서 2006년 상반기까지 수도 없이 벌어진 수도권 상경투쟁과는 달리, 지역투쟁은 빈약한 도청 소재지의 공권력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압박하여 위력을 과시했다. 물론 지역 농민들 중 일부는 여전히 상경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농산물을 적재하고 선전전을 진행한다든지 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횃불시위를 벌이고 노숙투쟁을 한다든지 하였다. 서울 도심에 소와 염소, 오리를 풀어 저지투쟁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에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농민들의 투쟁을 사전에 봉쇄하려고 하였다.

2008년 들어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뒤이어 촛불시위가 터지면서 전농은 쇠고기수입 반대, 한미 FTA 비준 반대를 요구해 나갔다. 점차 ‘시군동시다발 농민대회’ 형식이 전개되었고, 농민단체들의 연대체인 ‘농민연합’이 주도하여 전국광역동시다발 농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특히 농민대회에서는 투쟁일변도로 나아가지 않고 다양한 행사를 하면서 일반 농민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또한 각 지역의 도청, 시군청에 나락을 적재하면서 생산비 폭등과 농축산물 가격폭락에 대해 항의하였다.

2009년 들어 전농은 2008년도에 이어 한미 FTA 비준 강행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의회비준이 늦어지면서 한국에서의 비준도 지연되고 있다. 그리고 전농은 농협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고, 중단된 정부 차원의 대북쌀지원을 촉구하면서 대북쌀지원법제화를 요구하였다. 2010년 들어서 전농은 대북지원중단, 통일쌀북송불허에 대해 규탄하고 무상급식을 제기하고 있다. 수년간 해온 대로 각 지역별로 도연맹대의원대회와 시군별 농민회 총회, 영농발대식을 하였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련 모임과 농민회원들의 선거참여가 있었다.


3) 농민단체들의 연대연합투쟁


전농은 1990년대 초반부터 여타 농민단체들, 시민 · 노동단체들과 연대하여 투쟁했다. 1991∼1992년에는 정권에 반대하는 연대연합조직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전국연합)12), 1993∼1994년에는 ‘우리농업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13를 중심으로 정부의 개방정책을 저지하고 우리 농업을 지키자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92∼1994년에는 16개 농민단체를 비롯한 182개 단체가 연대한 ‘우리쌀지키기범국민대책회의’가 우루과이라운드 반대투쟁을 선도했다. WTO가 출범한 1995년 이후에는 추곡수매가 인상 등 농축산물 가격보장과 농가부채 해결, 협동조합 개혁이 주요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이슈들은 농민들의 광범위한 이해가 걸린 것들이었고, 전농 이외에 다른 다양한 단체들도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농업의 위기에 대해 인식하고 점차 함께 싸워 나가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칠레 등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쌀협상, 협동조합개혁 등과 관련한 농민운동이 전농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연대 아래 이루어져 왔다. 2001년 3월 5일에 열린 ‘한-칠레 FTA 저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표자대회’는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전국농민단체협의회14)는 품목별 생산자 단체들의 협의회로 1988년 농민운동단체들과 함께 ‘농축산물 수입 저지 전국농민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함께 활동한 경험이 있었다. 외국농산물 수입이 더욱 구체화된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운동단체들과 함께 운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FTA 체결이 논의되면서 ‘우리쌀지키기농업회생연대’15)가 2002년 말에 결성되어 시민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한-칠레 FTA 체결 및 비준 반대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농민과 뜻을 같이하는 단체들이 결집하였다. 또한 2003년에는 ‘전국농민연대’16)가 결성되었다. 전국농민연대는 그 후 한 · 칠레 FTA 비준 거부와 협동조합개혁운동을 주도하였다. 전국농민연대에 소속된 8개 농민단체는 전국 규모의 조직으로 사안에 따라 단체 간의 입장차이도 있으나 연대의 틀을 갖추고 함께 투쟁해 나갔다. 2003년 6월 20일 ‘한-칠레 FTA 반대 전국농민대회’에는 협동조합 4개 노조도 참여하였다. 전국농민연대는 2003년과 2004년의 전국농민대회를 주도하여 개최하였으나 2005년부터는 품목별 단체들이 빠져나가면서 활동이 미약해졌다.

그러다가 한미 FTA 체결과 관련하여 농민들이 다시 전국적으로 반대운동을 벌여 나가면서 농민단체들 간의 연대의 필요성을 느꼈고, 2006년 들어 11개 농민관련단체가 모여 연합조직으로서 ‘전국농민연합’(농민연합)을 출범시켰다.17) 농민연합은 그 후 전국농민대회를 주도하여 개최하였고 각종 대정부 투쟁에서 주도적인 주체로 나섰다. 2008년에는 20개 품목별 생산자단체로 구성된 농민단체협의회와 농민연합을 단일화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농민연합은 전농(회원 4만 명)과 전여농이 한 축을 형성하고 한농연(회원 8만 명)과 한여농이 다른 한 축을 형성하면서 활동해 왔다. 그러나 2009년 11월에 전국농민대회를 하고 난 뒤 정부의 압력 속에 한농연과 한여농이 탈퇴하기에 이르렀고, 농민연합은 그래서 농민연합은 2010년 10개 단체로 새출발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연대연합활동에서 전농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4) 농민운동의 지역적 전개


전농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농민운동조직으로 한편으로는 중앙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세력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로서 활동하였다.

전농의 농민운동은 전농의 계통조직을 통해 이루어졌다. 물론 전농이 결성되던 시기에 각 지역에서도 농민운동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시군별로 운동조직의 다양성, 핵심적 쟁점 유무, 선거정치에의 개입 등에 따라 조직화의 정도와 운동의 지속성은 달랐다(김준, 1995: 221-252).

도연맹과 시군농민회는 전농이 전국적으로 주최하는 농민대회를 도나 시군 단위에서 개최하였다. 또한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농민대회 등에는 시군 단위 농민회에서 농민들이 상경하여 참여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전국동시다발 농민대회 등을 각 지역에서 전개하기도 하였다. 또 고속도로 점거투쟁 등을 벌여 나갔으며 2000년대 후반에는 각 지역에서 야적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전국 단위의 협의체나 연대체가 만들어질 경우 시군농민회는 지역 단위에서도 그 형식에 맞추어 조직화를 시도하기도 하였고, 도연맹이나 시군농민회는 지역의 시민단체 및 운동단체들과 함께 연합하여 지역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역정치에 나서기도 하였고 일부 시장, 군수나 의원, 조합장이 되어 농정개혁에 개입하기도 하였다.

지역에 따라 전국 단위에서는 포괄할 수 없는 특수한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매립지문제, 정전피해보상, 보리피해대책, 불량비료피해투쟁 등 각 시군 단위에서 각개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최세정, 2001: 72-73).

또한 지역별로 특이한 사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진주시 농민회가 1994년부터 벌여온 영농조합법인 사업이 특기할 만하다(정진상, 2002: 169-195). 진주시 농민회는 농민회 산하에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농약, 농자재, 면세유 등을 취급하며 퇴비공장을 운영하는 협동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지역의 농민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농민회활동이 활발한 다른 지역에서도 영농조합법인활동을 벌여 나가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농민회의 활동은 각 시군 단위 안에서 면 단위마다 마을 단위 마다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농민들의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농민회가 활성화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최세정, 2002: 78).



6. 여성농민운동


여성농민운동의 맹아적 형태가 나타난 것은 한국가톨릭농민회 창설 10년 만인 1977년에 가톨릭농촌여성회가 만들어지면서이다. 그리고 1984년에는 기독교농민회 안에 여성위원회가 조직되었다. 1970년대에는 ‘배우는 농촌여성되기’를 내세우면서 농촌여성이 사회발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계몽과 의식개선 차원의 농촌여성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남성 중심의 농민운동이 주류를 이루어 온 것에 대한 반성과 농촌여성도 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가농을 중심으로 저항적인 농민운동의 정체성이 뚜렷해졌고, 여성농민들도 농촌여성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생산자로서의 여성농민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성농민의 특수성을 제기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계몽과 의식개선활동에서 여성농민운동으로 전진하게 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특히 1985년 소몰이시위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후 각종 투쟁에서도 여성들이 운동 당사자로 등장하였다(엄영애, 2007).

전농이 결성되기 몇 달 전인 1989년에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992년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으로 개칭하였다. 전여농은 전농과 조직적인 연대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되 독자적인 여성농민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89년 출범 당시 19개 군여성농민회 조직으로 출범하였는데(박소진, 1994: 31-32), 2009년에는 29개의 지역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성농민활동가들은 각 마을에 있던 부녀회 조직을 활성화하고 민주화하면서 여성농민조직으로 변형시켜 갔다. 전여농은 특히 자주적 여성농민을 제창하였는데, 이것은 외세로부터 자주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특히 농촌의) 가부장적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전여농의 실천활동에 대해 전농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전여농은 해마다 전국여성농민대회와 각종 토론회를 통해서 여성농민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려고 노력하였고 다양한 제도개선활동 및 투쟁을 전개하였다. 농촌지역 학교급식 실현, 여성농업인센터 설립지원, 농가도우미제도 도입, 농협 복수조합원 가입 및 활동, 후계자 선정 시 가산점 확보 등의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농민운동의 방향이 반세계화투쟁으로 나아가면서 여성농민운동도 반세계화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하였다(박신규 · 정은정, 2010: 111).

한-칠레 FTA, 한미 FTA 등을 둘러싼 반세계화 투쟁 속에서 여성농민운동은 점차 국제연대투쟁을 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점차 ‘대안을 만드는 투쟁’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사업을 전개해 왔다. 2005년 일부지역에서 시작하여 2007년 전국적으로 ‘토종씨앗지키기’(1농가 1품종 토종 갖기) 사업을 해 왔으며, 2009년에는 기존의 생협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소비자가 생산자를 지원하고 새산자는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보내는 ‘우리텃밭제출꾸러미’ 사업을 시작하였다(박신규 · 정은정, 2010: 114).

이처럼 여성농민운동은 여성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면서 대안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7. 농민운동의 새로운 전개


농민운동은 투쟁과 거부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서 구성을 향한 운동, 즉 대안을 만들어가는 운동으로 변해 왔다. 이미 1970년대부터 유기농업운동이, 1980년대에는 생협운동 등이 시작되었으며,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공동체운동과 대안적인 식생활운동으로서의 지역먹을거리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윤병선, 2010: 131).

유기농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생산농민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76년 유기농업생산자단체인 정농회가 설립된 후 1978년에는 한국유기농업협회가 설립되었다. 또한 가농과 기농은 전농의 창립 이후에 유기농업을 지향하는 공동체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은 다양한 운동주체들에 의해 추진된 소비자운동이지만 농민운동과 연계를 맺고 있다. 특히 생협운동은 유기농업운동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협운동은 도시지역의 개별 단위 생협들이 생산자들과 독자적으로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던 것이 생협들끼리 1997년 물류연합체를 구성하여 생협활동을 대중화하였다. 2000년 들어서 급성장한 생협운동과 생협물류는 이제는 일반유통시장과 경쟁하게 되었다.

농촌 마을공동체운동은 기존의 농촌공동체에 기반하면서도 생태적인 문제의식에서 계획적으로 생태마을을 만들어 생활과정 전반을 바꾸어 가려는 운동이다.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좀 더 넓은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체로 주거 양식의 변화와 더불어 유기농식량 생산과 유통, 그리고 교육과 문화 창조가 함께 이뤄지는 마을을 지향한다. 마을공동체운동에서는 다양한 공동체마을과 더불어 생태산촌만들기, 공동체운동네트워크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을공동체운동은 부분적으로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을 받기도 한다(강수돌, 2007).

최근 들어 강조되고 있는 대안식생활운동은 학교급식운동, 농민장터운동, 지역먹을거리(대안식품체계)운동 등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런 운동들은 서로 연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을 각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로 하자는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특히 지역먹을거리(로컬푸드)운동은 지역 단위에서 새로운 거버넌스(협치)모델을 제기하면서 생산자 농민과 소비자를 결합시키는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김종덕, 2002; 김종덕, 2007). 이러한 운동은 농민을 소비자와 연계시키고 농민운동을 농민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과 연결시켜 확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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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거리

  1. 8.15 직후 활발했던 농민운동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침잠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2. 1950∼1960년대의 농민운동과 1970∼1980년대의 농민운동을 비교해 보고 그 차이점들을 살펴보자.

  3.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설립된 이후 농민운동의 전개과정이 지닌 특징을 1970∼1980년대와 비교해 보자.

  4.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유기농업운동, 생협운동, 농촌공동체운동, 대안식생활운동 등에 대해서 자료를 좀 더 찾아보고 그 전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더 읽을거리

이우재, 1991, 『한국농민운동사연구』, 한울.

조동걸, 1979, 『일제하 한국농민운동사』, 한길사.





제6장 농업생산과 과학기술


박민선


주요 개념 및 용어

과학, 기술, 기술혁신, 기술의 사회적 구성, 산업적 농업, 전유와 대체, 화학농업, 생물공학, 식품가공기술, 녹색혁명, 통일벼, 유전자조작, 슈퍼잡초와 슈퍼해충, 농업기술의 전파와 수용, 기술 수용의 체바퀴(treadmill), 유발적 기술 경로, 적정기술, 토착기술



1. 과학기술과 사회


기술이란 사람이 유용한 물건을 만들고 이용하고 완성하도록 돕는 도구(tools), 지식(knowledge), 기술(skills) 그리고 절차(procedures)를 말한다.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하고, 환경을 보다 더 적절하게 만들기 위해 환경을 변형하고, 생존수단을 획득하기 위해 기술을 이용한다. 흔히 기술은 문화의 물리적 혹은 하드웨어적 측면이라고 보아 도구(tool), 수단(implement), 기계(machines)일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기술은 또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소프트웨어도 포함한다. 이 소프트웨어에는 복잡한 기술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직도 포함된다.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살펴보면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학은 체계적 연구를 통해 축적되고 조직화된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의 체계라는 점에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 기술은 생산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실용적인 지식을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과학이 추상적인 체계로 구성된다면 기술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기술혁신(technology Innovation)이라고 할 때는 산업적이거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기술을 말한다. 최근에 들어오면서 기술의 변화가 과학연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게 되면서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과학지식의 기반이 없이는 개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과학기술은 산업사회를 이끌어 온 핵심적 요인이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에 대한 종래의 관점에 따르면 기술은 서구적 합리성을 나타낸다고 보고 대체로 기술의 변화가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동시에 과학기술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한다는 기술결정론적 관점이나 근대화이론 등에서는 과학기술을 보편적인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기존의 농촌사회학에서도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을 대체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기존의 농촌사회학에서는 기술을 농업과 농촌의 발전을 위한 핵심적 요인으로 생각하는 관점을 수용하였고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기술혁신과 전파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특히 근대화이론의 관점에서는 서구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 선진 기술의 도입과 전파를 촉진하기 위해 기술 혁신과 전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중점을 두어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과학사회학, 기술사회학의 관점에서는 ‘과학기술 자체’를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삼으면서 이러한 견해에 반하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의 객관성과 관련해서 사회구성론적 관점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관련 행위자들에 의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가는지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과학기술의 보편적 합리성과 중립성에 대한 가정 그 자체를 문제시하고 과학기술이 생성되고 채택되는 사회적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기술의 변화를 계기로 상당한 사회적 갈등이 유발되어 왔으며 과학의 진보라는 개념이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로도 작용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는

관점도 나타나고 있다. 농업기술에 대해서도 이러한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데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농업의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농업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행위자와 농업기술의 방향 그리고 그것이 농업구조와 농촌사회, 식품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데 이러한 관점이 유용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기존의 농촌사회학과는 달리 농업 사회학적 관점에서도 그와 유사한 관점들이 채택되고 있는데 농업사회학적 관점에서는 특히 유전자조작 기술과 같이 과학기술의 개발과 적용이 주로 초국적 거대 농식품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이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식품 안전과 같은 사회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과 환경에 미치는 역작용 등에도 주목하고 있다.

20세기의 과학과 기술과 사회

20세기 기술은 관련된 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해서만 발전하는 것이 많다. 그렇지만 지금의 기술이 상당정도 과학화되었다고 해도 기술에는 아직도 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 기술은 물질적 생산에 관련되어 있으며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가능성과 목적하는 바를 확장한다. 기술은 자원에 기초해서 자원을 확장하고, 과학의 응용만이 아니라 시행착오에서 복잡한 실험에 이르는 나름대로의 지식을 활용한다. 기술 디자인과 선택에는 경제 · 정치 · 문화적 고려가 개입하고, 이러한 경제 · 정치 · 문화적 요소는 기술에 의해 다시 형성되면서 변화한다.

우리가 기술을 만들지만 기술은 우리 경험과 인간관계 및 사회적 관계를 바꿈으로써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 어떤 기술은 인간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다른 기술은 독재자의 권능을 강화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나치 정권은 거리에 라디오를 설치하고 나치즘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방송을 사용했다. 반면에 미국 일리노이에 거주하는 흑인 인권운동가 칸타코(Mbanna Kantako)는 아주 작은 FM 라디오 방송을 운영하고 흑인들의 견해와 목소리를 방송하고 있다. 라디오 같은 기술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떤 환경에서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민주적으로 사용하고 싶어도 그렇게 사용할 수 없는 기술도 있다. 핵무기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낙타를 바늘구멍에 넣는 것보다 힘들다. 일본도(日本刀)는 사람을 해치는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내가 시계태엽을 감아야 시계가 작동하듯이 인간은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계로 상징되는 시간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듯이 어떤 기술에게는 꼼짝달싹 못하게 예속되어 버린다. 모든 기술이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기술의 궤적은 그것을 발명한 사람도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발전한다.

출처: 홍성욱, 2009, “테크놀로지와 인간 그리고 사회”,

이상욱 외,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동아시아: 17-19.



2. 농업생산의 특성과 농업기술


농업생산은 생산, 유통, 노동의 측면에서 공업생산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농업생산의 대상이 동물, 식물과 같은 유기체라는 점, 기후나 지형 등 자연적 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 농업생산에 있어 토지의 제약이 크다는 점 등이다. 즉 노동의 대상이 자연에 속하는 생명체이며 자연을 이용하여 농업생산이 이루어지고 자연에 의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만(Mann)과 디킨슨(Dickinson)은 농업에서의 노동이 동식물의 생육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공업과는 달리 농업 생산시간(production time)과 농업 노동시간(labor time)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Mann and Dickinson, 1978). 이처럼 농업노동이 분절적이고 그로 인해 일관기계화가 어렵고 분업이 어렵다는 점, 동식물의 경우 질병과 같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 최종 산물인 농축산물의 부패와 수요 공급의 조절이 어렵고 그로 인해 가격등락이 큰 점 등이 공업생산과 다른 농업생산의 특성이다. 이러한 농업의 특성 때문에 농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성장이 뒤쳐지고 과학기술의 적용도 쉽지 않다고 인식되고 있다. 또한 자연재해나 질병으로 인한 농업생산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의 농업 진출을 저해하고 이는 가족 단위의 생산방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다른 산업분야나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러한 기술들이 농업에도 적용됨으로써 점차 농업이 산업화되고 그에 따라 기업의 농업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과거 농업생산의 일부였던 작업영역에 기업의 참여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과거 퇴비를 만들고 제초를 하는 노동은 화학비료나 제초제로 대체됨으로써 농업노동의 일부가 농화학기업의 사업 영역으로 변모되었다. 농산물 생산 후 농가에 의해 행해지던 가공, 저장이 유통기업이나 농식품기업에 의해 행해짐으로써 기업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농업(agriculture)은 전체 부가가치 가운데 생명체를 직접 재배 · 사육하는 영농과정(farming)으로 그 영역이 축소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즉 농민에 의해 이루어지던 노동 가운데 영농 이전의 단계(pre-farming)와 영농 이후 수확 · 가공 · 저장 · 판매하는 영농 이후의 단계(post-farming)가 점차 농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에 따라 전체 농업생산의 부가가치 중에서 농민이 수취하는 부가가치의 몫은 점차 축소된다.

굿맨(Goodman) 등은 이와 같이 농업에서 기업의 지배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을 전유(appropriation)와 대체(substitution)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유는 농업의 일부분이 산업활동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말하는데, 농업생산 과정이었던 노동의 일부가 농기계, 제초제, 농약의 개발로 인해 기업의 생산활동으로 바뀌고 농민은 기업으로부터 이것을 구입하여 농업생산과 결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유의 과정은 농업의 특수성 때문에 불연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이제는 기술 개발을 계기로 농업 생산활동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전유하고 있다.

한편 과학기술의 개발로 인해 농업생산의 전 과정을 공업생산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현상도 나타나게 되는데 화학섬유가 나타나면서 면화, 삼베 같은 섬유원료를 생산하는 농업을 상당 부분 혹은 완전히 대신하거나 값싼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진 과당이 사탕수수와 사탕무의 재배를 대신하는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기술개발을 계기로 전체 농업생산이 기업의 활동으로 대체되어 농업생산 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과정을 굿맨(Goodman) 등은 대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농업생산의 전유의 과정은 기업활동이 농업생산과 재결합함으로써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능을 하는 반면, 농업생산의 대체의 과정은 기업활동이 농업생산 그 자체를 완전히 대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자본의 농업 진출은 불연속적이지만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은 과학기술을 매개로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다. 특히 생물학이나 유전공학과 같은 과학기술은 동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이해하고 변화시킴으로써 농업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



3. 현대 농업기술의 발달과 농업의 산업화


농업기술은 생물학적 기술, 기계적 기술, 화학적 기술, 그리고 상품 및 유통기술로 구분할 수 있다(서종혁, 2007: 18-19). 생물학적 기술은 종자나 종축의 개량이나 동식물의 생리현상과 관련된 재배, 사양, 천적을 이용한 병충해 방제 등과 관련된 기술이다. 화학적 기술은 화학비료나 농약과 같은 화학적 투입재와 관련된 기술을 말한다. 기계적 기술은 농작업과 관련된 기계 및 가공기계 설비와 관련된 기술을 의미한다. 한편 농업기술은 농업에 투자되는 생산요소를 기준으로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적 기술과 토지를 절약하는 생화학적 기술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은 기술진보의 방향이 생산요소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점에 따른 것으로 노동 가격이 비쌀 때는 노동절약적인 기계적 기술이 촉발되고 토지의 가격이 비쌀 때는 생화학적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서구에서의 현대적인 농업기술은 ① 영농기계화(기계적 기술) ② 화학농업의 발전(화학적 기술) ③ 식품가공적 기술 ④ 생물공학적 기술의 과정을 거쳐 발전해오고 있다(Bowler, 1992).


1) 영농기계화


농장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에너지, 즉 물리적 노동의 조달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력의 변화는 농장노동과 농업의 조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영농의 기계화는 농기계의 개발과 사용을 통해 사람의 노동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기계에 의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다.

공업적 노동과 비교할 때 농업노동의 문제는 동식물의 생장과 관련된 계절적 노동으로 인해 연중 지속적인 노동 투입이 어렵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만과 디킨슨(Mann & Dickinson)의 지적처럼 이것이 농업의 성장을 지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농업노동은 농번기와 농한기에 노동력 수요가 큰 차이를 보여 농한기에는 노동력이 매우 불충분하게 사용되지만 농번기에는 노동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심각한 수확의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농업노동의 독특함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고용노동에 의존하는 방법보다는 가족노동력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농업에서 가족에 의한 생산이 다른 산업과 달리 오래 잔존하는 이유이다. 가족농의 경우에 농업생산 규모와 생산능력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은 가족원의 노동능력이었다. 그러나 기계는 가족노동을 대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첫째, 사람과 달리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기간 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점, 둘째, 필요할 때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셋째, 고단하고 지루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람의 노동에 의존하던 농업에서 기계화의 돌파구는 19세기에 개발된 경운기, 파종기, 수확기, 탈곡기와 같은 작업기구들이었다. 이러한 기구들은 농작업 능률을 향상시키고 더 큰 규모의 경지를 경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농업 노동시간을 단축하였다. 미국에서는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기계화가 시작되었는데 이 때 석유를 동력으로 하는 다목적 트랙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농장에서의 에너지원은 축력이나 인력으로부터 화석연료로 대체되었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본격적인 기계화가 시작되었다. 농업기계화를 계기로 농장의 집중이 급격하게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농업노동의 에너지원으로서 점차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축력을 이용하기 위해 가축을 기르는 유인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로써 경종과 축산이 결합된 복합영농의 필요성도 감소하게 되었고 경종과 축산이 점차 전문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과 함께 농화학 제품의 개발로 인해 유기질 비료를 화학비료로 대체할 수 있었던 것도 전문화의 한 요인이 되었다.

한편 축산농가의 경우는 교배종 옥수수 다수확 종자가 개발되고 보급되면서 대부분의 사료를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착유기, 자동급식기와 같은 기계가 도입되면서 공장형 축산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목별로 전문화와 규모 확대의 정도가 차이를 보이지만 축산과 같이 노동의 계절성이 큰 제약이 되지 않고 외부로부터 사료를 조달함으로써 사료작물 생산을 위해 필요한 토지로부터의 제약을 벗어나면서 축산은 산업화된 농업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로 조절되는 자동급식시설을 갖춘 대규모 사육장에서 닭이나 돼지를 집약적으로 생산하는 공장형 축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2) 화학영농의 발전


농업에서 화학비료, 제초제, 살충제와 같은 화학제품 사용이 확대된 것은 미국에서는 1950∼1960년대이다.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 것은 1908년 하버에 의해 공중질소고정법이 발견된 이후이다. 하버는 1913년에 미국의 화학기업인 BASF에 근무하던 보슈와 함께 암모니아 상업화 공정을 개발하였고 이로써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송성수, 2009).

화학비료는 토양외부에서 영양분을 공급해 줌으로써 토양의 자연적 비옥도에 의존하지 않고도 농업생산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고 토지를 보다 집약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즉 토지의 비옥도를 높이기 위해 휴경을 하거나 공기 중에서 질소를 고정하는 콩과류 식물과의 돌려심기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단일작목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단작 경작(monoculture)을 촉진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1930∼1980년대 사이에 화학비료의 사용량이 8배 증가하였는데 특히 토양에서 가장 부족한 질소비료의 경우에는 1969∼1982년 사이에만 사용량이 2배 증가하였고 그 후에는 감소하였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1950∼1970년 사이에 질소비료 사용량이 2배, 프랑스는 1956∼1983년 사이에 3배 증가하였다(Bowler, 1992).

그 외에도 제초제는 노동력을 절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1970∼1980년대 곡물과 사탕무우, 감자 등을 재배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살충제와 살균제의 사용은 작물의 질병과 해충 제거에 크게 효과적이지 않아 급격히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노동력을 절감하는 데에는 기여했다.

비료와 농약은 모두 토지에 의존하는 농업이 가진 자연적 제약을 극복하고 병충해와 같은 농업생산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산업적 농업의 근간이다. 그러나 화학비료와 농약은 모두 물과 토양의 오염을 가져옴으로써 화학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농민은 물론 소비자의 건강문제를 야기하고 자연생태계를 훼손하는 역작용을 초래하였다.


3) 식품가공기술과 농업생산


식품가공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농업의 변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가공기술의 발달로 농산물 생산과 식품소비 사이의 시간적 · 물리적 거리가 점차로 멀어지고 식품소비 가운데 가공산업의 부가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는 데 반해 농산물 생산의 부가가치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농산물과 식품의 괴리는 단순히 농산물 생산과 식품소비의 물리적 거리나 공간적 차이를 넘어서 농산물이 생산된 본래 형태 그대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정제, 가공을 거쳐 원래 생산된 농산물의 형태를 알 수 없거나 농장에서 생산된 원재료들을 결합 · 가공하여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식품을 개발하는 형태적 괴리도 포함하고 있다.

식품가공업은 미국에서 1960년대, 유럽에서는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식품의 저장과 보관을 늘리려는 노력은 19세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는데 식품저장을 위한 통조림가공(Canning) 기술이나 냉동 · 냉각기술의 발달로 식품의 보존과 유통기간을 늘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은 식품무역에도 영향을 미쳐 농산물과 식품의 교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통조림은 초기에는 고기, 과일, 채소 등을 유리병에 통조림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알루미늄 깡통을 통조림의 용기로 사용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1870년대에는 기존의 가열처리방식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파스퇴르에 의해 용기 내의 공기를 제거하는 방식이 개발되었고 이로써 보다 완전한 보관방법이 가능해졌다. 저장기술이 발달하면서 도시노동자들은 가공 포장된 육류, 채소, 과일을 연중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소비되는 가공식품은 점차로 단순한 포장이나 제분, 정제와 같은 단순 가공을 넘어 여러 단계의 변형과정을 거치고 다양한 원재료들을 재결합하여 가공하는 고차 가공된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세계 식품판매현황을 보면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2조 3천억 달러 가운데 신선식품으로 판매되는 금액은 23%인 5,300억 달러에 불과하고 가공식품과 음료는 1조 7천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미국이나 EU 같은 국가들은 전체 식품소비의 50%를 포장식품으로 소비하고 있는데, 포장식품이 가공식품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반 조리 혹은 완전 조리된 즉석식품의 규모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자오븐의 보급,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의 취업증가로 인한 조리의 기회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변화 외에도 원자료를 새로운 원자료로 대체하거나 인공적인 식품을 개발하는 형태의 식품가공도 증가하고 있다. 열대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 대신 옥수수전분을 이용하여 감미료를 만들거나 버터를 대체하는 마가린을 개발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굿맨(Goodman) 등이 지적하는 대체의 전형적인 예에 해당한다.

식품가공기술의 개발과 식품산업의 발달로 인해 농민들이 전통적인 농산물 시장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비중은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 식품가공의 비중이 커지고 식품가공이 점차 대규모 농식품기업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이들이 농산물의 주요 수요처가 되고 있다. 농식품 기업들은 원료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점차 계약재배 방식으로 농민들로부터 원재료를 공급받고 있다. 농식품 기업은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고 농민은 안정적으로 판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계약재배가 확대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거대 기업화된 소수의 농식품 기업과 다수의 농업인과의 계약재배는 이들 간의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해 불균형적인 계약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육계(식용 닭)산업을 예로 들면, 부화장과 사료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도축가공기업이 부화한 병아리와 사료를 농민에게 제공하고 농민은 일정기간 병아리를 사육하여 육계를 납품하면 기업은 납품받은 육계를 도축 가공하여 판매하는 형태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민이 사육하기 전 단계(부화와 사료생산)와 후 단계(도축, 가공, 판매)를 동일 기업이 맡게 되면서 농민들은 생산자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독자적으로 판매처를 선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육계를 사육하는 농가는 기업과 연계를 맺지 않으면 육계생산과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리한 계약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민은 일방적으로 기업이 제시하는 가격을 수용하는 입장(price-taker)에 설 수밖에 없다. 사육농민은 토지와 사육장을 제공하는 반면 기업이 제시하는 사육방법을 따라야 하지만 사육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축 질병이나 재해와 같은 생산의 불확실성은 모두 농민이 부담하는 것이다. 계약재배농가는 독자적인 농업경영의 독립성을 점차 상실하면서 단지 토지(사육장 등도 포함)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토지를 가진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4) 생물공학의 발전과 농업생산의 변화


생물공학은 주로 곡물이나 과수 작물, 축산에 대한 품종 개발을 통해 진행되어 왔다. 젖소의 산유량이나 육류의 육질 전환율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 감자나 곡물의 질병저항력 증가, 사과 등 과수작물의 왜성(矮星) 성장방법 등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축산부문에서는 성장호르몬 주사나 사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과학적 연구 등이 진행되었고 이것이 집약적 사육을 통해 생산의 효율을 꾀하기 위한 공장형 축산으로 이어졌다.

생물학적 기술 가운데 현대 농업과 미래의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술은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 기술이다.


(1) 녹색혁명

녹색혁명은 미국에서 다수확 종자개발에 성공했던 교배종 옥수수를 모델로 전세계적으로 쌀과 밀 같은 곡물의 다수확 교배종 종자의 개발과 보급을 통해 식량 증산을 시도한 것을 말한다.

교배종 종자의 개발은 수확량 증가를 가져왔지만 다수확 종자의 도입과 더불어 관개시설의 도입, 화학비료 및 농약의 투입으로 인한 화학적 농업으로의 변화, 종자기업에 의한 종자의 보급과 종자의 상품화 등 현대적 농업의 특성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혁명은 다수확 종자 개발이라는 단순한 기술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의 시스템 전체를 바꾼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쌀과 밀을 비롯한 다수확 품종은 화학비료와 농약에 대한 반응성을 높이기 위한 고반응성 종자로 개발되었으며 높은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경지가 반듯하고 관개와 배수시설이 갖추어져야 하며 화학비료,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 등의 농약을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 녹색혁명이 가져온 수확량의 증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녹색혁명을 통해 쌀과 밀 같은 주요 곡물의 수확량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고 토지가격의 상승을 가져왔으며 화학농약 및 비료의 증투로 인한 토양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다수확종자인 교배종 종자는 F1세대에서는 우수한 형질을 발현하지만 F2세대에서는 우수한 형질이 보전될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매년 종자를 새롭게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로 인해 상업적인 종자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농화학기업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기술시스템론과 녹색혁명

농업기술의 역사에서 보면 녹색혁명은 전형적인 기술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기술시스템론에서는 기술이 단순히 물리적 인공물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요소를 포괄한다고 보고 있다. 자동차의 발명이 자동차도로의 건설뿐만 아니라 신호체계 등의 발전과 함께 진행되었으며, 에디슨은 백열등만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전기, 배전기, 계량기와 같이 전력시스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적 요소들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술시스템이론은 기술 변화에 관한 대안적 해석도 제공하고 있는데 기술결정론적 시각과 사회적 이해관계가 기술을 형성한다는 사회결정론을 모두 넘어서고 있다. 즉 기술시스템 내에는 기술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모두 녹아 있으며 기술과 사회는 동시에 진화한다고 보고 있다(송성수, 2009).

녹색혁명은 다수확 신품종의 개발과 보급을 통해 빈곤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개도국의 사회주의혁명(적색혁명)의 확산을 막고자 시도한 ‘녹색’의 혁명이었다. 다수확 신품종 개발이 핵심이지만 단순한 인공물(다수확 종자)의 개발을 넘어 비료, 농약 등을 이용한 화학적 농업과 단립형 종자개발을 통해 기계수확을 가능하게 한 기계적 농업으로의 변환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국제농업연구기관, 각국 정부와 국가 지도기관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개발과 보급에 앞장섰으며 농자재 구입에 필요한 농업금융시스템의 구축, 다수성 작물을 위한 관개시설 및 댐의 건설, 농화학산업의 육성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회제도의 변화와 함께 발전하였다.

녹색혁명은 모든 농민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고 종자, 비료, 농약을 구입할 수 있는 부유한 농민들에게 유리했다.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은 투입재를 구입할 수 있는 농민들은 녹색혁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이익을 누릴 수 있었던 반면 자원이 부족한 농민들은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이농이 촉진되고 이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현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유전적으로 동질한 형질의 종자를 계속 식부함으로써 자연재해나 병충해에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지게 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여 병해충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전적으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종자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역작용도 가지고 있다.


교배종 종자의 개발과 종자산업의 발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개발된 교배종 옥수수는 잡종(F1)이 부모세대보다 왕성한 생육을 나타내는 잡종강세를 이용하여 생산량 증대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당시 옥수수 개발에는 다양한 방식의 교배방법이 개발되었으나 우수한 부모세대의 옥수수를 교배하여 나타나는 우세한 품종을 부모세대와 다시 반복하여 교배하는 여교배(Crossbreed)방식이 고안되었다. 즉 원하는 형질의 종자를 얻기 위해 부모 혈통을 보전하여 교배하는 잡종강세의 개념이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여교배 과정은 종자의 산업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가지게 되는데, 첫째, 우수한 부모 세대를 확보하지 않는 한 종자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농민은 물론 다른 기업에서도 동일 품종의 종자를 생산할 수 없는 일종의 ‘생물학적 특허’와 같은 장벽을 가지게 된다.

둘째, 여교배 과정은 종자개량의 일원이었던 농민들의 능력 이상의 복잡한 절차와 체계적 노력 그리고 장기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어서 이를 계기로 육종이 농민의 손을 떠나 과학의 영역으로 옮아간 계기가 되었다. 교배종 종자 생산에 필요한 선별과정에서 순계선발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주로 집단 선별방식을 통해 우수한 종자를 생산해 온 농민들이 육종에서 배제되고 전문 육종가에 의해 육종이 이루어지는 전환점이 되었다.

셋째, 교배종 종자는 F2세대에서는 F1세대가 가지고 있던 우수한 특성을 보전할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매년 종자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과 당시 종자업계의 적극적인 로비활동 등에 힘입어 종자는 점차 사기업에서 생산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교배종 종자가 개발되기 전에는 종자가 주로 주립대학(Landgrand university)과 그 부속 지도기관에 의해 개발 · 보급되었지만 교배종 종자의 개발을 계기로 점차 사기업에 의해 상품으로 개발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Kloppenburg, 2007).


(2) 유전자조작 기술

유전자조작 기술은 생명체의 형질, 기능, 형태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떼어내 인공적으로 다른 생명체에 주입함으로써 생명체를 변형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기술이다. 유전자조작 기술은 기존의 육종과는 달리 어떤 생물체로부터도 유전자를 취하여 동식물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육종이 불가능한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 유전자조작은 교배를 통한 형질변경의 차원을 넘어 미생물, 식물, 동물 등 어떤 생명체로부터도 유전자를 추출하여 동식물의 형질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종래의 동일 종끼리 교배를 반복함으로써 종자 및 종축을 개량하던 육종법과는 근본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전자조작 기술은 자연을 재창조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유전자조작 식물의 경우에는 냉해에 강한 작물이나 질병에 강한 작물, 저장이나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한 작물과 같이 농업과 식품의 자연 제약적 특성을 극복하기 위한 작물을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식물의 영양성분을 변경함으로써 기능성 작물을 개발하거나 의학적 기능을 가진 작물의 개발도 가능하다. 동물분야에서는 인슐린과 같은 인체에 중요한 단백질 생산, 사람의 유전자를 주입한 장기이식용 형질변경 돼지의 생산, 젖소의 우유생산을 늘리기 위해 개발된 인공성장호르몬의 개발 등이 상품화되었거나 개발되었다.

그러나 국제미작연구소나 국제옥수수 · 밀연구소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 국제연구기관이나 국가연구기관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었던 녹색혁명과는 달리 유전자조작 기술의 개발과 상품화는 사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허에 의해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개발한 기업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유전자조작 작물 가운데 가장 많은 기술이 제초제 내성 작물인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몬산토는 자사가 개발한 제초제인 라운드업(Roundup)에 내성을 가진 옥수수와 콩을 개발함으로써 종자와 제초제를 함께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Kloppenburg, 2007).

현재 재배되고 있는 유전자조작 농산물 재배면적은 2010년 현재 1억 4,800만ha인데 그 특징을 살펴보면 ① 현재 재배되고 있는 유전자조작 종자의 90%는 몬산토라는 하나의 기업에 의해 장악되고 있으며 ② 최대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전체 생산의 77.8%(2010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고, 인도와 중국이 그 뒤를 잇고 있으며 ③ 작물별로 보면 대두가 53%, 옥수수가 30%에 이르고, 그 뒤를 면화, 카놀라가 잇고 있는데, 거의 모든 유전자조작 작물은 이 4개 품목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④ 이들 작물의 보급은 매우 빨라서 전 세계 대두의 70%, 옥수수의 24%, 면화의 46%가 유전자조작 작물일 정도로 유전자조작 작물의 비중이 높아졌다.


<표 6-1> 유전자조작 작물의 재배현황

구 분

2007년

2008년

성장률(%)

재배면적(백만 ha)

비율(%)

재배면적(백만 ha)

비율(%)

대 두

58.6

51

65.8

53

13

옥수수

35.2

31

37.3

30

6

면 화

15.0

13

15.5

12

3

카놀라

5.5

5

5.9

5

7

사탕무우

0.3

<1

알파파

<0.1

<1

0.1

<1

파파야

<0.1

<1

<0.1

<1

기 타

<0.1

<1

<0.1

<1

전 체

114.3

100.0

125.0

100

12.3

출처: 2008, ISAAA Brief 39.


<표 6-2> 주요 작물의 유전자조작 작물 비율

구 분

전 세계 재배면적

(백만 ha)

유전자조작

면적(백만 ha)

유전자조작

면적비율(%)

대 두

95

65.8

70

옥수수

157

37.3

24

면 화

34

15.5

46

카놀라

30

5.9

20

기 타

-

 

-

전 체

316

125.0

40

출처: 2008, ISAAA Brief 39.


유전자조작 종자의 개발은 주로 거대 초국적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초국적 농화학기업들은 종자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이들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유전자원과 육종기술을 획득하면서 초국적 농화학-종자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 기업은 자사가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농화학제품에 내성을 가진 종자를 개발함으로써 농화학제품과 종자를 결합하여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조작 기술의 개발을 계기로 유전자조작 생물체에 대해서도 특허가 보장됨으로써 이제 유전자 조작된 생물체는 그것을 개발한 개발자의 소유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종자는 자연의 산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농민들 간에 자유로이 교환되어 공동으로 개량해 온 공동의 자산으로 간주되었지만 이제는 소유권을 가진 상품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따라서 로열티를 가진 작물의 종자는 수확 후 종자를 다시 파종할 수 없도록 보장을 받고 있다. 이로써 농민들은 매년 로열티를 지불하고 종자를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몬산토와 신젠타, 바이에르와 같은 초국적 농화학-종자기업은 자사가 개발한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종자를 개발함으로써 종자와 농화학제품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전자조작 기술에 대해서는 찬반 양측에서 많은 논란이 진행되어 왔다. 유전자조작 찬성론자들은 첫째, 질병 치료제의 개발 및 유전자 치료법을 통해 질병을 극복하고, 둘째, 다수확 품종개발이나 가뭄이나 한파와 같은 자연조건에 견딜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함으로써 식량의 증산을 가져오고 식물의 영양성분을 강화하여 식품 가치의 향상을 가져옴으로써 전세계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셋째, 해충에 내성을 가진 Bt작물이 농약 사용을 줄여주고 제초제 내성 작물의 경우에는 제초제 사용을 줄여 줌으로써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조작 반대론자들은 유전자조작 기술의 부정확함, 살아있는 생명체가 조작되어 자연 속에서 확산될 경우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그리고 일단 자연 속에 방출된 유전자조작 생명체가 계속 증식될 경우 그것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불가역성 등을 이유로 유전자조작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유전자조작 반대론자들은 첫째, 유전자조작을 통해 생성되거나 외부에서 주입된 유전자(단백질)가 사람의 면역 체계를 교란하거나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 둘째, 유전자조작에 사용되는 항생제 내성 미생물을 통해 항생제 내성이 확대될 가능성, 셋째, 유전적으로 동질적인 작물이 재배될 경우 유전적 다양성이 소멸되어 급격한 자연재해에 대한 치명적 피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전판이 사라지게 되어 식량생산의 안정성을 침해하게 될 가능성, 넷째, 제초제 내성 작물이 주변의 근연종과 자연교배함으로써 슈퍼잡초가 발생할 가능성, 다섯째, Bt작물에 내성을 가진 슈퍼해충이 발생할 가능성을 들어 강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전자조작에 대한 찬반론의 입장

유전자조작에 대한 찬반논란이 매우 치열한 가운데 찬성론자들은 주로 생명공학 산업계, 학자들이며 반대론자들은 주로 시민단체나 소수의 의식 있는 과학자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주요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전자조작 찬성입장

유전자조작 반대입장

핵심 논점

-작은 리스크에 비해 엄청난 편익이 기대되는 21세기 핵심기술

-문제해결 가능성은 적은 데 비해 잠재해 있는 예측불가능한 리스크는 매우 큼

과학관

-분자생물학적 환원주의적 과학관

-유전자결정론적 관점

-생태학적인 전체론적 과학관

기술의 특성

-전통적인 육종과 다르지 않은 친숙하고 안전한 기술

-기존의 기술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자연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나쁜 기술’

위기의 성격

-항상 존재했던 리스크

-기술적으로 예측 · 해결가능

-예측 불가능한 잠재적 리스크,
장기적이고 누적적 리스크

규제

-발전에 지장 없는 범위 내에서 과학적 증거를 통한 최소한의 규제

-‘사전예방 원칙’에 입각한 강력한 사회적 규제

기술에 대한 서술

-유전자‘변형’, 자연스러움, 기존기술과 동일함, 그린 테크놀로지

-유전자‘조작’, 유전자오염, 예측불가능성, 불가역성

출처: 허남혁(2000: 81-82)에서 재정리.



4. 농업기술의 전파와 수용


1) 기술전파의 과정


새로운 영농기술은 일부 지역이나 특정 농민에게는 보다 더 잘 수용되기도 하고 어떤 지역이나 어떤 농민에게는 수용이 거부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기술 채용과 전파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로저스(Rogers)의 5단계 모델에 따르면 기술 채용과 전파는 다음의 5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이론화되었다. 즉 기술전파의 과정이 (1) 정보를 접하고 새로운 기술을 인지(awareness)하는 단계 (2) 이 기술에 대해 관심(interest)을 가지고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 (3) 평가(evaluation)의 단계로 기술의 적용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 (4) 평가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수용가능하여 새로운 기술을 시도(trail)하는 단계 (5) 기술수용(adoption)의 5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이 모델은 교육과 정보의 흐름을 강조하였는데 기술의 채용자는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부가적인 정보를 획득한다고 보고 있다. 비록 진행과정이 항상 완벽하게 선형적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단계별 순서는 거의 정확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독립적인 기술수용자가 기술을 수용하는 과정을 외부에서 개발된 제품이나 기술을 단순히 선택하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기술의 개발과 보급에는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네트워크에서 일하는 많은 관련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녹색혁명과 같은 복합적이고 시스템적인 기술의 개발과 전파에는 국제미작연구소나 국제옥수수 · 밀개량연구소와 같은 국제연구기관, 세계은행이나 록펠러재단과 같은 국제적 기관, 각국정부의 연구소와 지도소, 그리고 다수확 종자 보급을 위한 정부의 지원 등 많은 요인들이 기술의 전파와 보급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시스템 기술의 전파는 기술보급원과 독립적 수용자 사이의 일대일 접촉을 넘어서는 많은 요인들이 기술의 전파와 수용에 영향을 미친다.

기술전파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는 보다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 내에서 수용자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관점도 나타나고 있다. 여론의 주도자가 지역 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기술을 전파하는 중개자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때 기업이나 대학, 기술요원들이 농업이나 농촌의 수요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수록 기술의 전파는 용이하다. 즉 (1) 기술의 개발자와 기술의 사용자가 공동으로 문제를 인식할수록 (2) 시험(pilot)단계의 프로그램에서 생산된 자료를 해석하는 데 개발자와 사용자가 상호작용하고 다음 단계의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 공유될수록 (3) 기존 사용자 네트워크를 통해서 정보와 기술을 전파할수록 기술전파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술은 단순한 기술의 수용을 넘어 그것을 지원하는 하부구조를 필요로 한다. 1970년에 진행된 녹색혁명의 경우 다수확 품종의 보급은 관개시설의 정비, 화학비료 · 농약의 제조와 보급,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지원, 정부의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농업 금융제도의 정비 없이는 불가능했다. 지역사회가 상호이익을 위해 협조하고 지역조건에 적합한 기술을 채용할 지역네트워크를 개발하고 필요한 기술시스템의 실질적인 작동을 위해 필요한 하부구조를 만드는 것이 기술 전파에 필수적이다.

그 외에도 기술의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기술의 전파자와 수용자 간의 사회적 거리’가 중요한데 수용확률은 전파자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낮아진다는 것이다. 혁신발생지로부터 기술의 확산은 물결파동모양으로 형성되고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파동이 약해진다.

기술의 확산에 대한 ‘자원이론’의 관점에서는 지리적 접근성보다는 생산수단 특히 자본이나 토지와 같은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혁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한데 영농규모가 크고 교육수준이 높은 혁신자는 자본을 쉽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지리적 접근성 보다는 생산수단에 대한 접근성이 확산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2) 기술수용의 결과


기술수용은 모든 농민과 모든 지역에 균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술수용의 결과 역시 모든 농민에게 수혜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기술수용은 기술의 쳇바퀴(treadmill)에 빠져들게 한다. 즉 기술의 채용은 끊임없이 시장생산을 위한 경쟁에 휘말리도록 하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시 새로운 기술 채용을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에 농업생산을 중단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신기술을 채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술 채용의 쳇바퀴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신기술 채용을 통해 기술은 점차 규모(size), 동력(power), 용량(capacity), 속도(speed)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기술채용은 S자의 누적곡선을 그리면서 진행된다. 즉 초기에는 소수의 혁신자가 신기술을 채용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술을 채용하고 그 후에는 소수의 지체된 사람들이 뒤늦게 기술을 수용한다. 그리고 기술채용의 수혜는 초기의 수용자에게 집중되고 지체된 수용자는 오히려 신기술의 영향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과 그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농민층분해론을 들 수 있다. 농민층의 분해론에서는 기술채용과 그것이 서로 다른 자원을 가진 농민들에게 차별적인 영향을 미쳐서 농민층 내부의 계층분화, 더 나아가서 경쟁에서 뒤쳐진 농민들이 농업으로부터 이탈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농업의 상업화를 계기로 농민들은 서로 다른 생산의 조건들을 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 최대한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이 때 생산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조건은 개별 생산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가치(=생산비)와 그 상품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시장가치)의 차이, 즉 농가들 간의 생산력의 격차이다. 높은 가치를 가진 농민은 시장가치 이하의 생산비로 초과이윤을 획득하는 반면 생산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진 농민은 시장가치 이상의 생산비로 마이너스의 초과이윤을 획득하게 된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을 채용하는 쳇바퀴(treadmill)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생산에 유리한 농민은 농업생산을 통해 얻은 초과이윤을 시장생산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해 투자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누적적으로 진행되면 대경영의 소경영에 대한 유리함이 뚜렷해지고 대경영에 대한 소경영의 축출이 보다 급격하게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농민층 분화와 분해의 과정이다.

그러나 경쟁에서 뒤쳐진 농민들이 곧바로 농업으로부터 퇴출되는 것은 아니다. 농업소득이 생산비에 미치지 못해도 소생산자로서 생계비를 충족하는 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소비 수준을 최저한도로 낮추면서 농업에 잔류하는 성향을 보여준다. 선진국에서의 많은 소생산자가 농업이외의 소득으로 생계를 보충하는 반면 개도국에서는 과소소비와 부채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부채농가 등 다수의 빈곤한 농촌계층들이 농촌내부에 잔류한다. 기술의 채용은 시장생산에서 농민들 간의 계층적 차이를 확대하고 더 나아가서 경영에서 불리한 농민을 농업생산에서 축출하면서 진행된다.



5. 한국 농업과 기술


1) 한국농업기술의 시기 변화


한국 농업에 체계적인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하여 기술위주의 농업으로 전환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한국 농업에서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한국사회와 농업의 근대화 과정에 따른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정책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주로 국가 주도로 기술개발과 보급이 이루어졌다.

한국농업의 기술개발에 대해 서종혁(2007)은 앞에서 지적한 기계적 기술, 생물학적 기술, 화학적 기술의 관점에서 시기를 구분하고 있는데 1960년대부터 1970년대를 생화학기술의 적용, 1970년대부터 1980년대를 기계적 기술의 적용, 1980년부터 1990년대를 시설농업기술의 적용, 1990년대 중반 이후 친환경농업 기술을 포함하는 고품질 상품화 기술과 IT와 BT 등 새로운 과학기술의 적용이 중심을 이룬다고 구분하고 있다.

박정근(2007)은 자원생산성의 측면에서 1970년대를 기점으로 주로 토지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 생화학기술 발전기와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 기계기술의 발전기로 구분하고 있다. 박정근은 기계적 기술에 이어 생화학기술의 발전을 보인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는 생화학기술의 적용에 이어 기계적 기술의 적용이 이루어졌다고 지적하고 이를 기술변화의 방향이 부존자원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가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유발적 기술변화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농업기술의 진보는 부존자원에 따라 기계적 기술과 생화학적 기술이 각각 다른 경로를 보이는데 요소시장에서 부존자원에 따른 요소가격에 의해 편향된 기술 경로를 나타낸다. 즉 농업성장은 그 나라의 부존자원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적정 기술경로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야미(Hayami)와 루탄(Rutan)은 유발적 기술변화 가설을 설정하고 미국과 일본의 농업성장 과정을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농업기술은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높이는 토지생산성과 단위 노동당 수확량을 높이는 노동생산성에 의해 계측할 수 있는데 인구가 과밀하여 경지면적이 좁고 노동이 풍부한 아시아 지역은 일본과 같이 토지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발전하게 되고 토지가 풍부하여 경지면적이 넓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희소한 미국에서는 노동생산력을 높이는 기술이 발전하였다. 기술은 부존자원에 의하여 제약된 성장의 장애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진근(2006: 233-245)은 농업기술의 발전을 기술 혁신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생계위주의 자급형 농기술 발전단계(해방 후∼1968년 이전)로 만성적인 식량부족의 시기에 종자개량과 재배법, 새로운 화학적 기술을 통해 토지생산성이 증대한 시기이다. 또한 농촌의 노동력이 풍부하고 노임이 낮아 기계적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던 시기이다.

2단계는 상업적 영농기술 발전단계(1968∼1993년)로 도시화와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급격한 이농이 진행되고 농촌 노임수준이 상승하면서 농업기계화가 진전된 시기이다. 또한 도시 소비인구의 증가로 인해 축산물과 신선채소 수요가 증가하여 축산사양기술과 시설채소기술도 발전하였다.

3단계는 농업의 국제화에 따른 기술 발전단계(1994년∼)로 농산물 수입개방의 확대로 인해 값싼 해외 농산물의 수입이 확대되었던 시기로 생산비 절감 기술과 상품의 고급화 기술이 발전한 시기이다.


2) 시기별 한국농업기술의 발전과정18)


(1) 다수확 신품종 개발과 농화학 기술의 개발 보급기(1960년대 초∼1970년대 말)

시기별로 보면 1970년대는 주곡인 쌀의 자급을 위한 다수확 신품종 개발이 주요한 사회적 과제였으며 이를 위한 생물학적 · 화학적 기술이 발전한 시기이다. 한국에서의 다수확 신품종은 그 당시 다수확 품종개발을 통해 녹색혁명을 주도하던 필리핀 소재 국제미작연구소의 IR8 품종과 대만과 인도의 품종을 교배함으로써 IR667 품종을 개발하고 현지 적응시험을 거쳐 통일벼로 명명되어 보급되었다. 녹색혁명을 가져온 다수확 교배종은 비료와 물에 대한 반응성을 높인 고반응성 종자로서 통일벼의 재배는 단순한 종자의 보급뿐만 아니라 농약과 화학비료, 댐의 건설과 같은 관련기술이 함께 도입되어야 했다. 따라서 녹색혁명을 이끄는 고반응성 종자의 보급과 함께 농화학제품에 의존하는 농업으로의 전환이 함께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도 역시 녹색혁명을 계기로 비료, 농약의 사용량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표 6-3>에 따르면 비료 사용은 1970년대 초반에, 그리고 농약 사용은 1970년대 후반에 급격히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일벼의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도 함께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통일벼를 재래품종과 같은 가격에 수매하고 비료농약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불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다수확 신품종 보급과 함께 토지생산성이 크게 증가한 시기이다.


<표 6-3> 연도별 비료사용량(단위: 천 톤)

연 도

비료 총량

질 소

인 산

가 리

1961

308

211

81

17

1965

393

218

123

51

1970

563

356

124

83

1975

886

481

238

167

1980

828

448

196

184

1985

807

414

186

207

1990

1104

562

256

286

1995

954

472

223

259

2000

801

423

171

207

2008

570

302

115

153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통계연보』, 각 연도.


<표 6-4> 연도별 농약사용량(단위: 톤)

연 도

수도용

원예용

1975

2808

5811

8619

1980

6430

9702

16132

1985

7069

11178

18247

1990

8429

16653

25082

1995

4867

20967

25834

2000

6292

19795

26087

2005

4651

19855

24506

2008

4068

21300

25368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통계연보』, 각 연도.


(2) 농기계 개발 보급을 통한 노동절약적 기술 적용기(197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

1970년대가 주로 생화학기술에 주력한 시대였다면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는 이농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농기계의 보급이 급격하게 이루어진 기계적 기술이 발전된 시기이다.


<표 6-5> 연도별 농기계 보유대수

농기계 기종

1965

1970

1980

1990

2000

2005

2008

경운기

708

11,884

289,799

756,489

939,219

819,662

739,725

트랙터

-

61

2,664

41,203

191,631

227,873

253,531

이앙기

 

-

11,061

138,405

341,978

332,393

309,907

바인더

 

-

13,652

55,575

72,315

60,008

50,069

콤바인

 

-

1,211

43,594

86,982

86,825

85,338

관리기

 

-

-

50,699

378,814

392,505

421,616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통계연보』, 각 연도


<표 6-6> 시설작물 식부면적(단위: ha)

연 도

1983

1985

1990

1995

2000

2005

2007

식부면적

16,194

23,182

44,613

92,498

105,758

100,889

94,508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통계연보』, 각 연도.


연도별 농기계의 보급과정을 보면 1960년대 후반 경운기의 보급에 이어 이앙 및 수확기계가 보급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트랙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 들어 수확용 콤바인이 보급되기 시작하여 점차 고성능 기계로 대체되었다. 농업기계기술의 발전은 다음과 같은 4가지 발전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였다(서종혁,2007: 57-58).


① 경운기의 도입에 의한 기계 경운, 운반, 양수, 농약살포 등 축력대체 단계(1960년대 말∼1970년대 중반)

② 이앙기 보급을 통한 기계 이앙 단계(1970년대 후반∼1980년대 후반)

③ 수확기계 보급을 통한 기계 수확 단계 및 미작 일관 기계화 작업이 실현된 단계(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④ 밭작물과 축산의 기계화 · 자동화 단계


(3) 백색농업혁명과 산업적 축산 기술의 도입기(1970년대 말∼1980년대 말)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말까지는 도시의 소비시장이 커짐에 따라 플라스틱 비닐을 이용한 멀칭재배와 시설재배가 급격하게 확대된 시기였다. 동시에 양계와 양돈의 시설축산이 보급되어 사육두수를 늘린 산업적 축산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이 동시에 증가했지만 토지생산성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던 시기이다.


(4) 상품화기술 개발과 유통기술의 발전기(1990년 초∼현재)

이 시기는 농산물 시장개방이 확대되면서 농산물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품화 기술이 개발된 시기이다. 농산물의 규격화와 포장화를 통해 소비지의 대형 매장을 중심으로 대량 거래가 이루어지고 유통 과정의 콜드체인화와 저장 및 수송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상품거래의 정보화를 촉진하는 바코드 시스템 기술이 일반화된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농산물의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면서 친환경농업 기술 역시 개발 · 보급되었던 시기이다.

위에서 정리한 시기별 농업기술의 발전과정을 기술유형과 요소생산성, 그리고 해외로부터 관련산업기술의 도입과 정착과정으로 정리한 것이 <그림 6-1>이다.


출처: 서종혁, 2007.

<그림 6-1> 한국 농업기술 발전의 유형과 시대구분



6. 지속가능성과 적정기술


농업기계화와 화학농업 그리고 녹색혁명과 같은 농업기술은 한편으로는 비재생에너지인 석유의존형 농업을 초래하였고 환경오염이나 농업생산의 기업의존성을 심화시켜왔다. 이러한 산업형 농업, 석유의존형 농업이 가진 역작용은 토지 황폐화, 수질오염, 온실가스 배출과 같은 문제를 유발하는 한편 석유에 의존하는 농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농업의 지속가능성문제와 연관되어 새롭게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제기되고 있다.

지속가능성의 가치들은 생태적으로 건전하며 경제적으로 실현가능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하며 인도주의적 기술을 장려한다. 지속가능한 기술의 주요한 요소로 거론되는 것이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다.

바르바(Barbour)는 적정기술의 다섯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중간규모의 기술로 전통적 도구나 방식들에 비해서는 효율적이지만 광범위하게 채용되고 사용되는 데 충분할 정도로 비싸지 않아야 한다. 둘째, 돈벌이가 충분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자본집약적이기보다는 노동집약적 기술이어야 한다. 셋째, 손쉽게 채용하고 스스로 작동하고 관리하기 쉽도록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넷째,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소규모로서 자립적이고 자기결정적이며 지역에서 관리하는 것을 촉진하는 기술로 대규모 지원조직이나 하부구조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외부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이다. 다섯째, 환경친화적 기술로서 에너지 사용이 적고 최소한의 오염을 발생시키며 재생가능한 자원을 사용하고 기능이 복합적인 기술이다.

적정기술과 관련해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토착기술이다. 토착기술은 특정한 사회나 문화에 고유한 지식으로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기술이기 때문에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식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문 과학자나 기술자에 의해 개발된 지식이나 기술이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다. 현대의 많은 의학제품들도 이러한 전통적인 토착지식에 기반을 두어 개발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적정기술이나 토착지식은 기술개발자와 수용자를 현대의 기술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전문과학자와 기술자집단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지식이나 기술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와 수용자가 기술개발과정에서 협력하기도 하며 이미 토착사회에서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나 지식이 개발자에 의해 수용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박정근, 2007, 『농업연구개발정책』, 박영사.

서종혁, 2007, 『한국농업기술, 이노베이션: 성과와 전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진근, 2006, 『애그리비즈니스론』, 농수축산신문.

송성수, 2009, 『기술의 역사: 뗀 석기에서 유전자재조합까지』, 살림.

홍성욱, 2009, “테그놀로지와 인간 그리고 사회”, 이상욱 외,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동아시아.

허남혁, 2000, “유전자 조작을 둘러싼 담론”, 권영근 편, 『위험한 미래』, 당대.

Bowler, Ian p., 1999, Agricultural Change in Developed Countries , 김기혁 역, 『서유럽의 농업변화』, 한울.

Goodman, David and Michael Redcliff, 1991, Refashioning Nature: Food, Ecology and Culture , Routledge.

ISAAA, 2008, “Global Status of Commercialized Biotech/GM Crops in 2008”, ISAAA Brief 39.

Kloppenburg, Jack, Jr., 2007, First the Seed: the political economy of plant biotechnology, 1492- 2000, 허남혁 역, 『농업생명공학의 정치경제: 시작은 씨앗부터』, 나남.

Mann, Susan and James Dickinson, 1978, “Obstacles to the development of capitalist agriculture”, Journal of Peasant Studies 5(July): 466-481.


이야깃거리

  1. 과학기술의 진보성을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이 삶의 질에 미친 부정적 사례들을 찾아보고 과학기술의 진보성 주장에 대한 토론을 해 보자.

  2. 과학기술의 발전이 한국 농업과 농촌에 미친 긍정적 변화와 함께 부정적 변화에 대해 비교하여 검토해 보자.

  3. 산업사회의 지속가능성 문제와 사회전체와 농업에 대한 과학기술의 적용이 어떻게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토론해 보자.

  4. 현재 개발되었거나 개발되고 있는 적정기술의 예를 찾아보고, 그것이 대규모 기술과는 어떤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자.


더 읽을거리

권영근 편, 2000, 『위험한 미래』, 당대.

박민선, 2001, “생명공학을 통한 기업의 농업지배”, 『농촌사회』 11(2): 221-241, 한국농촌사회학회.

서종혁, 2007, 『한국농업기술, 이노베이션: 성과와 전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상욱 외, 2009,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과학기술학자들 ‘기술’을 성찰하다』, 동아시아.

홍동식, 1988, 『농촌사회학의 이해』, 법문사。

Goodman, David and Michael Redcilft, 1991, Refashioning Nature: Food, Ecology and Culture, Routledge.

Kloppenburg, Jack Jr., 2007, First the Seed: The Political economy of Plant Biotechnology, 1492-2000 , 허남혁 역, 『농업생명공학의 정치 경제: 시작은 씨앗부터』, 나남.

Shiva, Vandana, 2000, Biopiracy, 한재각 외 역,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당대.





제7장 농촌개발과 농촌계획


송정기


주요 개념 및 용어

농촌개발, 농촌계획, 발전주의, 글로벌주의, 근대화이론, 종속이론, 수입대체산업화, 비교우위, 신자유주의, 위로부터의/아래로부터의 개발, 외생적/내생적 개발, 통합 농촌개발, 지속가능한 농촌개발, 농업구조조정, 삶의 질 특별법, 농업 · 농촌의 다원적 기능, 정주권 개발계획, 농촌관광, 그린투어리즘, 살기좋은 농촌만들기


오랜 기간 동안 농촌지역의 물적 필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지만, 실업, 부적절한 주택, 빈약한 보건의료, 지속적인 빈곤과 같은 다른 문제들은 여전하다. 특히 대다수의 인구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의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심각하다. 따라서 농촌개발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중요한 정책적 개입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개입은 일정한 공간을 통해 실천된다. 농촌계획은 주로 농촌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 혹은 지역에 관한 계획을 말하며, 위계적인 공간이용 계획에 규정되면서 농촌지역의 자연자원의 이용과 보전, 물리적 시설과 공간의 활용을 위한 계획이 포함된다. 더 엄밀하게는 인간 정주를 위한 농촌 공간의 이용과 배분 등을 말한다.

아마도 20세기 후반 발전패러다임의 가장 큰 변화는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전지구화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과 농촌공동체도 경제적인 전지구화에 적응할 것이 요구되었는데, 그것은 자유시장체제가 모든 산업부문에 작동하는 보편 적 원리라 는 가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전지구화의 일차적 국면은 산업경제의 보편화이지만 최종적인 정치적 결과는 문명사회의 주된 제도로 간주되던 정의, 공적 지출, 사회복지, 지방의 자율성 등의 파괴를 포함한다. 그것은 멈출 수 없는 과정이며, 주로 산업적 생산주의의 확산과 같은 전지구화는 토지(생태적), 노동(사회적), 자본(경제적)과 같은 농촌자원의 요소들에 영향을 미쳐 농촌생활의 근본을 흔드는 위협이 되었고, 식품, 농업, 농촌공동체의 상호관계를 새롭게 접근하는 대안적 농촌개발 및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농촌개발에 관한 개념과 접근방법, 이론적 자원을 검토하고, 한국사회에서의 농촌개발 프로그램을 시기별로 나누어 정책적 쟁점과 특성을 살펴본다. 또한 한국에서의 정주권 개발과 같은 농촌 공간계획도 살펴볼 것이다. 더 나아가 전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의제로서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에 관한 주요 쟁점과 과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1. 농촌개발의 개념과 접근방법


1) 농촌개발의 개념


(1) 농촌개발의 개념

원래 발전이란 영어의 ‘development’를 번역한 말로, 보다 나아진 혹은 성장한 ‘상태’를 가리키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인 저개발국의 원조정책에서 저개발국을 ‘발전시키다’라는 타동사로 사용하면서 발전은 개발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개발은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정책 개입을 의미하지만, 발전도 같은 맥락에서 혼용하여 사용하면서 자동사와 타동사의 두 가지 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촌개발의 개념은 주로 1970년대에 정립되었는데, 그것은 개발의 목표와 접근방법 또는 개발의 기능적 측면에 따라 여러 가지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최근까지도 농촌개발을 농업생산성의 증대와 같은 의미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종래의 개발 개념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장이라는 한정된 범위로 접근한 데서 결과한 것이었다. 농촌개발을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 주민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고 자립적인 개발과정을 이룩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Lele, 1975: 20)가 있다. 이것은 (1) 자원의 동원과 할당을 통한 하층 주민의 생활수준 향상, (2) 대중 참여를 통한 실제적 혜택, (3) 적정기술과 수용능력의 개발을 농촌개발의 주요 측면으로 규정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홍동식(1988: 403)은 농촌개발을 내용면에서는 “농촌지역의 사회, 경제 전 부문을 포괄하는 생산, 제도, 참여 및 생활수준에서의 균형적인 향상”으로 파악하며, 방법면에서 “농촌주민의 지속적이고 자립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한편, 로저스 외(Rogers, et al., 1988; 332)는 농촌개발을 “농촌지역에서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조직화된 노력”이라고 폭넓게 정의하면서, 여기에 고용, 소득, 건강, 교육, 주택, 영양은 물론 서비스나 물적 시설의 개선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러한 농촌개발의 개념과 방법은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 국가수준, 그리고 세계경제체제 등의 여러 차원과 맞물려 상호관련성을 가지면서 규정된다.


(2) 농촌개발과 농업개발

국제식량기구(FAO)는 말할 것도 없이 국제노동기구(ILO),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UN) 산하의 여러 기구에서도 농촌개발을 주요 과제로 다루고 있는데, 때때로 농촌개발은 농업개발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농업개발은 주로 품종개발이나 기술혁신과 같은 농산물의 생산성 증대를 강조하는 경제적 성장의 의미로 사용하는 반면, 1970년대에 들어와 발전 개념이 확대되면서 농촌개발의 개념은 교육을 포함하는 인적 개발, 보건의료와 복지 등의 사회개발, 주민의 의사결정 참여, 삶의 질과 생활조건의 개선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흔히 농촌개발을 농업개발과 동의어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농촌개발을 농업정책의 보조물, 즉 농업과 농업공동체를 지원하는 수단으로 인식한다.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나 지역에서는 농업의 발전 없이는 농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겠지만, 농업만으로는 농촌사회가 유지될 수 없으며, 농촌지역의 발전 없이는 농업부문의 지속적인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농업부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농촌 자연경관의 유지, 환경보전, 농산물의 유통과 가공, 농촌관광과 도농 연계 등 농촌의 다면적 기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지속가능한 농촌의 구축에 있어서 농업이 갖는 사회적 · 경제적 기능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농업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구사회학적 재생산이 가능한 농촌공동체의 회복은 물론, 농촌 거주자를 위한 교육, 문화, 보건의료, 주택, 상하수도, 교통과 통신 등의 인프라 및 서비스의 제공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활동을 위한 조직적인 개입이 바로 농촌개발이다.


제3세계

세계의 국가들을 구분하는 방식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독립국가들이 출현하면서 기본적으로 세 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제1세계는 부유하고 산업화된 북아메리카, 서구 유럽, 일본과 같은 국가들을 포함하며, 제2세계는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를 포함한다. 제3세계는 대부분 유럽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국가들로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산업화되고 부유하게 될 특권을 갖지 못한 모든 국가들이다. 일본과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을 말하며, 이들 국가들은 상호 관련된 과잉인구, 빈곤과 영양실조, 문맹 등의 문제들을 갖고 있다. 1990년대에는 구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제3세계라는 용어 대신에 남측(The South)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2) 농촌개발의 범위와 원칙


농촌개발을 위한 정책적 개입을 의미하는 농촌정책에는 농업개발, 경제활동의 다각화, 환경 및 경관보전, 주체역량 강화는 물론 여기에 더하여 농촌생활 환경개선 등 사회간접자본의 구축과 복지 및 공공 서비스 영역의 사업을 포괄하고 있다. 일부의 시각에서는 농촌생활 환경개선과 복지 및 공공서비스 영역을 농촌개발과 구분하여 농촌지역개발로 규정하기도 한다. 농촌지역개발은 지역의 기본 욕구(basic needs)와 국민적 최소한(national minimum)이라는 개념에 입각해 지역 간 형평성 확보를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농촌지역의 경제적 · 사회적 ·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농촌개발과 구분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농업정책의 영역을 행정적 · 실천적 필요에 의해 농촌개발과 농촌지역개발로 구분하는 것은 편의적인 용법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농촌개발은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의 두 가치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래의 농촌개발은 주로 신고전주의 시각의 경제적 관점에서 농업생산성 향상과 빈곤의 해소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확대되는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농업구조 개혁을 위해 ‘통합 농촌개발 및 계획’이라는 농촌개발 및 농촌계획의 전략적 접근이 제기되고 정주공간을 중심으로 한 주민의 기본 욕구, 참여와 자립, 재분배와 공정성 등을 강조하는 대안적 패러다임이 확산되었다(Brohman, 1996). 이러한 요소들을 1990년대의 지속가능한 농촌개발(sustainable rural development)을 구성하는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농촌개발의 개념과 범위, 원칙은 국가의 발전 정도나 발전전략의 내용 및 수준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며, 세계경제체제 내에서의 북측과 남측 국가들의 위치와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접근되고 있다.


패러다임(paradigm)

어떤 사회문제나 과학적 퍼즐을 바라보는 방식을 말하는 패러다임은 흔히 모델(model)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쿤(T.Kuhn)이 말한 패러다임이란 과학자 공동체에게 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모델을 제공하는 어떤 현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말한다. 발전 패러다임은 적어도 1970년대 후반까지는 제3세계 국가의 사회경제적인 진전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잘 짜여 지고 단순화된 이해 방식, 즉 지적인 모델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는 빈곤과 불평등의 확대, 환경악화 등의 변칙들(anomalies)이 다발하면서 발전 패러다임의 심각한 위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3) 농촌개발의 접근방법


(1) 외생적 접근과 내발적 접근

외생적 개발(exogenous development) 접근은 농촌개발을 위한 성장의 동력을 외부로부터 추진한다는(driven from outside) 의미이다. 농촌문제를 도시와 비교한 기술적 · 경제적 · 사회문화적 낙후성(backwardness)에서 찾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농업부문으로부터 비농업부문으로의 노동과 자본의 이동을 장려하는 한편 농촌지역으로의 제조업 이전과 인프라 건설 등을 추진한다. 따라서 농촌개발의 과제는 근대화이론의 가정인 농촌이 도시를 따라잡는 것(catch-up)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기대만큼의 경제성장을 가져오지 못했으며, 농업의 근대화와 집약화로 인한 과잉생산과 환경파괴, 농촌사회의 해체와 대외의존 심화 등의 문제를 초래하였다.

내발적 개발(endogenous development) 접근은 성장 동력을 지역 내부에서 찾아(drive from within) 지역 내부의 인적 · 물적 · 제도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발전을 추구하고, 그 발전의 이익을 다시 지역으로 환원하는 것을 중시한다. 농촌문제를 농촌개발에 참여하고 주도할 지역역량의 부족에서 찾으며, 지역 주도의 상향식 발전, 주민참여와 협동, 자치와 연대 등을 강조한다. 또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여 경제적 · 사회적 · 환경적으로 통합된 개발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 접근은 농촌지역의 발전이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율적이라는 점에서 이상적인 대안이지만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 있다.

모든 농촌지역은 내부와 외부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외부로부터의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과 대항의 과정을 통해 상호작용한다. 발전의 동력은 지역 내부뿐만 아니라 지역 외부로부터 주어질 수 있기 때문에, 외생적이거나 내발적이라는 이항대립적 사고보다는 지역과 지역 외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면서 지역 역량을 강화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2) 하향적 접근(집중화)과 상향적 접근(탈집중화)

외생적 개발 전략은 기본적으로 위로부터의 하향식(top-down) 접근을 취하며, 내발적 개발 전략은 아래로부터의 상향식(bottom-up) 접근을 강조한다. 하향식 접근은 모든 부문이나 모든 지역에 투자하기보다는 선도적인 부분과 지역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통합된 개발 이념과 가치를 추구한다. 반면에 상향식 접근은 작은 규모의 자율적 정주공간을 단위로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계층의 주민에게 필요한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며, 이를 위해 지역의 자원할당과 배분 등의 개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참여를 강조한다.

하향적 집중화와 상향적 탈집중화 모두 대중 참여의 증대, 경제적 · 정치적 민주주의, 사회정의 등의 발전 목표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지만, 전후 발전주의 시기에는 집중화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고 최근에는 많은 분석가들이 탈집중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집중화든 탈집중화든 어떤 절대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모두 공존하기도 하며, 서로 다른 시기와 다른 장소에서 각각 중요시되거나 그렇지 않게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지방, 민간과 지역이 각각의 역할을 구분하여 민주적인 방식의 의사결정과 분권 및 참여를 추진하되, 이들의 연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의 농촌개발 및 계획의 접근은 외부 자본에 의한 하향식 집중화 방식의 농촌개발로부터 지역의 자원과 욕구 및 주민 참여에 기초한 내발적인 상향식 탈집중화 방식의 농촌개발, 즉 지속가능한 농촌개발로 바뀌어 가고 있다.



2. 신자유주의 발전전략과 대안적 농촌개발 및 계획


1)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발전연구의 막다른 길


1980년대의 지속적인 경제위기, 국가 주도 발전전략의 계속되는 실패, 확대되는 남측과 북측의 빈부격차 등 ‘발전연구의 막다른 길’(impasse in de-vel-op-ment studies)로 표현되는 발전이론의 한계 상황이 초래되면서, 이후 세계는 ‘경제 자유화’와 ‘시장 개방’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이념에 의해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것은 국제금융 자본과 초국적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세계를 하나의 표준화된 시장으로 통합하는 동시에 ‘국민국가’ 단위로 조정되고 조직되던 모든 것들을 해체시켰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구조조정프로그램을 통해 제3세계 국가들을 국제금융 자본의 지배하에 둠으로써 그동안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는 종래의 발전전략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성장이론에서는 기존의 수요를 자극(demend stimulation)하는 수입대체, 국가개입, 중앙집권화된 개발계획 등에 대신하여 공급을 자극(supply stimulation)하는 사적 부문의 주도(private initiative), 시장 주도의 성장(market-led growth), 외부지향적 개발에 중점을 둔다.

근대화이론이나 종속이론과 같은 전후 주류 발전이론의 전략들은 모두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여 주로 경제성장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발전주의’이론으로 묶을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경제활동의 전지구적 성질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상품사슬과 그것들의 사회적 · 경제적 영향을 통해 전개됨에 따라 발전은 과거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발전은 여전히 개별 국가에 의해 추구될 것이지만, 점차 “국가적으로 조직화된 경제성장”이라는 전통적 의미의 발전 개념이 아니라 전지구적 경제통합이 “전지구적으로 조직화된 경제성장”의 과정으로 바꿔진 것이다(McMichael, 2004).

전지구화는 이제 발전 논의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이념의 확산으로 인해 어느 지역은 살아남아 번성하지만 다른 지역들은 쇠퇴하는 매우 불평등한 결과를 낳게 됨에 따라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났다. 참여, 권한부여(empowerment)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개발’로 부르는 대안적 개발은 자율적인 내발적 변화(endogenous change), 권력과 자원의 이양(transfer of power and resources), 대안적 발전 경로와 신사회운동의 지지(alternative development path and support of new social movement)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근대화이론과 종속이론

근대화이론은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 신생 독립국가들이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서구 스타일의 발전을 단계를 통과해야 하는 ‘근대화의 절대명령’으로 보았다. 이러한 연속선상의 발전이란 산업화에 기초한 경제성장을 말하며, 발전계획에 있어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프랭크(Frank)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이 근대화이론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종속이론으로 알려진 이 이론은 발전과 저발전이 동전의 앞뒷면으로 간주되어, 발전국가의 상태는 그들의 글로벌 자본주의체제로의 편입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저발전을 일시적인 전자본주의 단계로 간주하기보다는 중심과 주변의 착취관계 때문에 항구적으로 저발전 단계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형태의 발전은 기존의 발전주의와 다른 목표를 갖는데, 그것은 물질적인 기대 상승이 아니라 기본 욕구(basic needs)에 초점을 두며, 참여를 발전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본다. 1991년 UN 인간개발 리포트(Human Development Report)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간 개발의 근본적인 목적은 발전을 보다 민주적이고 참여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소득과 고용기회, 교육과 건강, 그리고 깨끗하고 안전한 물리적 환경에의 접근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각각의 개인들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에 충분히 참여하고 인간적이고 경제적 · 정치적 자유를 누릴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이 이 같은 발전의 약속을 충족시키지 못하였으며, 세계가 환경적으로 성장의 한계를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제 발전을 재고해야 하는 시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강조되면서 사회적 · 경제적 ·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구축이 새로운 과제로 제기되었다.


<표 7-1> 발전주의와 글로벌주의 비교

 

발전주의

(1945∼1970년대)

글로벌주의

(1980년대∼ )

사회적 목표

사회적 복지후생

평등한 시민

사적 기업 주도의 글로벌 소비주의

정체성 정치와 다층의 시민

정치경제학

국가규제의 시장

케인즈주의의 공적 지출

자기규제의 시장(통화주의)

공적 부분 축소

발전(모델)

산업화(산업의 복제)

수입대체산업화(ISI) 및 국가경제부문의 상보성(브라질, 멕시코, 인도)

세계시장에의 참여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의 수출지향(칠레, 한국, NAFTA)

동원수단

민족주의(탈식민주의)

시장의 힘

기제

공적 투자(인프라, 에너지)

교육

토지개혁

민영화

기업가 정신

공적 부분의 긴축

변이

제1세계(기업의 자유)

제2세계(중앙 계획)

제3세계(발전동맹을 통한 근대화)

구조조정(개방 경제)

지역 자유무역협정(FTA)

글로벌 경제 관리(선량한 협치)

출처: Philip McMichael, 2004.


2) 발전패러다임의 변화와 대안적 농촌개발 및 계획


발전주의에서의 농촌개발은 주로 농업생산성 증대와 같은 농업개발과 동일시되거나 도시성장을 위한 불균등 발전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빈곤과 낙후로 상징되는 농촌에 대한 개발계획을 의미하였다. 즉, 발전주의에서의 농촌개발은 주로 (1) 품종개량, 기계화와 산업화에 의한 농업 생산성의 향상, (2) 강력한 리더와 위로부터의 개발계획, (3) 외생적 개발 등의 특징을 갖는 것이라면, 글로벌주의에서는 (1) 농업과 농촌의 다면적 기능을 활용하여, (2)주민참여와 혁신 주체의 형성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개발계획, (3) 내발적 개발 등의 특징을 갖는다.

농업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근대부문과 전통부문의 이중 개념이 제도화된 국가들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의 농촌개발 접근방식이 받아들여졌다. 하나는 소농층과 중농층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통합 농촌개발’(Integrated Rural Development) 프로그램이며, 다른 하나는 대농층에게 투자를 증대시키고 농업수출을 확대시키기 위한 주도권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농촌개발 접근이 보건과 교육, 농업확장 서비스와 인프라 등에 대한 국가개입의 여력을 넓히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농촌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을 확대시키고 때때로 상당히 관료적인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대안적인 농촌개발 전략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 간접적인 성장의 파급효과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 대신에 직접적인 재분배

‣ 지역 단위의 소규모 프로젝트에 초점

‣ 공적 재화와 서비스 제공을 통한 기본욕구와 인간 자원의 개발에 대한 강조

‣ 성장 우선의 발전 개념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인간 중심의 개념으로 변화

‣ 발전 프로젝트의 설계와 이행에서의 지역이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

‣ 자립의 강조(외부 의존성의 감소, 보다 협동적이고 사회적 ·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조건의 창조)


이러한 접근이 주류 발전 접근보다 가시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전략의 유용성에 대한 비판이 있다. 즉, 이론과 실천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역의 참여란 립 서비스에 불과하며, 하향적 · 온정적 방식은 현실을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할 뿐 실제는 지역 조직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발의 여러 측면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지역의 정체성과 정치적 표현 방식을 흡수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대안적 개발 프로그램들이 취했던 이와 같은 하향적 방식은 국가뿐만 아니라 지역의 엘리트 집단에 의한 빈번한 지배와 그들의 이해에 기여하게 되었다.

한편, 지역과 공간계획 부문에 관한 대안적 접근은 균형 있고 효율적인 그리고 지역에 적합한 공간조직을 만들어 민주적인 참여와 공평한 성장을 촉진할 필요를 강조한다.

전후 제3세계의 지역 및 공간계획을 지배한 신고전주의 계획이론은 기능적 통합, 위계적 확산, 하향침투와 확산을 통한 분극화 해소를 근간으로 하는데, 이는 근대화이론의 하향식 개발을 답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개발에 대한 기능적 접근은 여러 지역의 개발이 국가경제 발전의 전체과정으로 통합되는 기능으로 간주되며, 경제성장의 극대화, 투자에 대해 강력하게 집중된 통제를 일반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도시와 산업의 성장이 하향침투와 확산을 통해 지역불균등의 문제를 극복하는 최선의 공간적 해결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적 접근의 공간 전략은 기대하던 확산효과가 미미하여 도시와 농촌 간의 지역불균등을 확대하였다.

반면에 탈집중화와 참여를 근간으로 하는 대안적 공간 전략은 보다 공정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재분배가 강조되었으며, 기본적인 사회적 · 경제적 인프라의 제공, 가난한 자와 농촌지역의 욕구에 기초한 맞춤형 프로그램의 개발, 탈집중화된 계획의 사용을 요구한다. 이러한 대안적 공간 전략의 하나는 ‘통합 농촌개발계획’(Integrated Rural Development Planning)이며, 다른 하나는 ‘정주공간(territorial) 혹은 농도(agropolitan) 개발 접근’이다.

‘통합 농촌개발계획’은 제3세계 국가들의 농업개발에 대한 국제기구나 원조기관의 관심이 되었는데,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전략이 소수의 대도시 성장 촉진에 집중된 것과는 달리 보다 균형있는 공간구조를 위해 거대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고 주변 농촌지역의 성장을 자극하기 위해 소규모 혹은 중간 매개적 도시센터의 개발을 강조한다. 잘 통합되고 지역적으로 접합된 도시체계를 위한 농촌과 도시 간의 연계는 도시에 대한 압력을 경감시키고, 지역불균등을 감소시키며, 지역에 적합한 효율적인 정치행정체계를 가능하게 하고, 주변지역의 빈곤을 감소시키며, 농촌경제를 자극하는 등의 기능을 갖는다.

다른 대안적 공간계획인 ‘정주공간 지역계획’접근(Friedmann, 1981)은 탈집중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통합 농촌개발계획’과 유사하지만, 기능적 통합보다는 오히려 제3세계 농촌 주변부에서의 경제적 침체와 저발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주공간 통합’이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효과적인 지역 성장의 촉진과 같은 비교우위 원리에 의한 기능적 지역정책은 주변부 농촌지역의 자원을 외부의 이해를 위해 착취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심부 도시지역과의 통합을 통해 외부의 지배에 종속되기 보다는 주변부 농촌지역이 “거주자들이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지역자원의 이용”으로 정의되는 ‘정주공간 통합’을 지향하는 보다 내발적(endogenous) 형태의 개발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 공간전략의 문제는 이론적 정합성의 문제도 있지만, 소농착취의 다양한 기제에 작용하는 농촌의 사회관계를 소홀하게 다루고 있으며, 특히 정주공간 접근에서는 전형적으로 지역을 공동의 집합적 이해를 공유하는 동질적이고 미분화된 실체로 인식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농촌의 공간계획 전략들은 국가나 국제적 차원의 발전문제와 결합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3. 한국의 농촌개발과 계획의 정책적 전개


1) 한국 농촌개발정책의 역사와 변화


농촌개발계획은 상위의 국가발전계획에 영향을 받으면서 전개되는데, 우리나라의 국가발전계획이 1971년까지는 국토계획과 경제계획이 경제개발계획에 통합되어 추진되어 왔으나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1976)에서는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이 분리되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중심은 도시였다. 한국은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성장거점전략’을 통한 불균등성장론의 채택, 농촌과 도시의 이중구조의 가정, 확산이론 등의 관점에서 공간계획의 중심을 도시에 두어 왔다. 더구나 농업이라는 산업의 경쟁력 상실로 인한 농촌과 도시와의 소득격차 확대는 농촌이라는 공간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한국의 농촌개발계획을 국토종합개발계획 체계하에서의 위치, 농업정책의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대략 5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50∼1960년대는 토지개발사업이 시행되고 마을개발계획이 태동한 시기로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지역사회개발사업’이 있다.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에 의한 농촌개발과 지역개발계획제도가 도입된 시기이다. 1980년대는 정주권개발사업 등 농촌종합개발사업에 의한 지역개발계획이 형성된 시기이다. 1990년대는 UR 타결 이후 개방화에 다른 농업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시기이며, 「농어촌발전특별법」과 「농어촌정비법」을 수립하여 농촌정주생활권 개발과 농촌생활환경 정비 등 농촌개발계획이 제도화된 시기이다. 2000년대는 농촌의 다면적 가치와 기능을 강조하고 주민 주도의 상향식 방식을 채택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등 새로운 농촌개발방식이 도입되고 농촌을 국토균형발전의 축으로 인식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 1950∼1960년대 한국의 농촌개발과 계획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당면한 문제는 농촌의 근대화와 더불어 식량자급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초창기부터 농업의 생산성 증대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1958년에 시행된 지역사회개발사업(Community Development Program)은 UN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의 농촌개발 모델로 채택하여 보급한 것으로 마을을 기본 단위로 하여 주민조직을 육성하고 부존자원을 최대한 이용하여 마을의 농업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식량증산을 위하여 농지개혁이 단행되었고 제1차 농업증산5개년계획(1953∼ 1957)과 제2차 농업증산5개년계획(1958∼1962)이 뒤이어 수립되었다. 이러한 개혁방안에는 종자개량, 기술보급, 병충해 방제철저, 영농자금 확대지원 등에 의한 생산성 제고에 중점이 두어졌다. 또한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경지정리, 개간, 간척을 농정의 주요한 사업으로 시행하였다. 1967년에는 농업생산성 향상, 농업소득증대, 농업구조개선, 자립적 가족농의 육성, 기업농 · 협업농의 조장, 농업경영의 세분화 방지 등을 종합적으로 계획 · 실시하기 위하여 「농업기본법」을 제정하였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가의 공통적인 현상인 농촌의 전근대적 성격과 농업의 후진성을 탈피하고자 하였던 이 시기에는 식량자급을 통하여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공업부문에 공급하는 것이 목표였다. 1967년 이후로는 농촌과 도시의 소득격차, 농업경영의 악화로 인한 대규모 이농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으며, 농가인구는 1967년에 1,600만 명을 정점으로 매년 60만 명씩 감소하여 1971년에는 1,470만 명으로 줄었고, 농가호수도 1967년에 259만 호를 정점으로 매년 2∼3만 호씩 감소하여 1971년에는 248만 호로 줄었다. 이 시기의 농촌개발은 소득향상의 관점에서 접근하였고, 생산성 향상을 통하여 농업문제를 해결하려는 농업정책에 집착하였다. 식량자급에 유효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농촌과 도시의 소득격차가 커지면서, 농업은 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기 시작하였고 농촌은 삶의 공간으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2) 1970년대 한국의 농촌개발과 계획

1970년대는 압축적 근대화와 개발주의 산업화정책을 추진한 시기이며, 농촌정책은 이러한 틀에서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전략을 위한 노동력과 식량의 동원 및 보상이라는 기조 위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정신으로 하여, 국가 주도하에서 각 마을 단위의 조직화와 농민의 의식개혁을 통해 농촌의 환경개선과 소득증대를 목표로 한 농촌개발사업이다. 1971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된 이 운동은 낙후된 농촌의 근대화를 목표로 하여 농촌개발에 있어서 생산성 증대, 소득증대, 생활환경 개선, 의식개혁에 큰 비중을 두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는 제2차 농어민소득증대 특별사업이 추진되었다. 소득 탄력적 품목과 수출품목이 집중 개발되었고, 주산단지 조성방식으로 지역농업이 개발되었다. 다수확 품종 생산 및 수매 확대에 의한 농업소득의 증가와 새마을사업 추진에 의한 소득증대 등에 힘입어 1975년에는 일시적으로 농촌과 도시의 소득균형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발전국가의 산업화전략을 추진하는 동원 기제로서 농촌사회의 조직화와 의식개혁을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산업 간, 지역 간 불균형정책을 기조로 농촌을 희생한 것이었다.

더욱이 1970년에는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종결되면서 농업기반조성사업과 농촌생활환경개선을 통한 농촌근대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농촌근대화촉진법」을 제정하였다. 식량자급을 목표로 한 녹색혁명이 추구되어 1971년부터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한 ‘통일벼’의 단위 면적당 높은 수확량으로 인해 국내 쌀 생산량이 증가하고 자급을 달성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농촌과 도시의 소득격차가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형평성의 관점에서 도농 간 소득격차 또는 농가 계층 간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 농정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1967년 이후 매년 60만 명씩 감소한 농가인구의 도시집중은 저임금노동력의 공급을 넘어 도시에서 실업문제를 야기하게 되었으며, 농촌과 도시의 격차가 국토의 불균형개발을 심화시키면서 과잉도시화 등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농촌개발은 농업소득 보전을 목표로 하는 농촌개발방식으로 바뀌었고, 농촌에 고용을 유발하고 농외소득을 통한 소득 보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3) 1980년대 한국의 농촌개발과 계획

농가인구가 전체인구의 20% 정도로 감소하고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중도 15%를 밑돌자 1983년에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이 제정되고, 농공단지가 지정되기 시작하였다. 또 소비구조의 다양화, 상업적 영농의 지향, 농업기계화 및 새로운 기술개발, 농산물 수입의 확대 등에 따라 종래의 획일적인 주곡 증산정책에서 농가소득과 지역성을 고려하는 생산정책으로 전환을 시도하였다. 이에 따라 1986년 군 단위를 대상으로 한 ‘농촌지역종합개발계획’의 부문계획으로서 처음 지역농업계획이 수립되었다. 지역농업의 개념은 일정한 지리적 · 공간적 범위를 갖는 영역의 농업, 다시 말하면 행정구역상 또는 개발목적에 따른 계획지역 단위에서의 농업문제를 다루는 것을 말한다. 1980년대의 농촌개발의 특징은 지역개발의 단위가 마을에서 군 단위로 확대되면서 군 중심도시와 배후 농촌마을을 연계하는 정주생활권을 설정하였으며, 정주생활권 내에서의 고용과 산업의 진흥, 정주환경의 개선 등의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미국으로부터 농산물수입개방 압력이 가중되었다. 특히 한국이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서 벗어나 1986년부터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자 이를 배경으로 수입개방 압력이 가중되었다. 1988년에 개최된 한 · 미통상협상에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의 수입자유화 예시계획을 발표하면서 243개 농산물수입이 개방되었다. 이미 한국의 농산물이 과잉공급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농산물수입개방 압력까지 가중된 것이다.


(4) 1990년대 한국의 농촌개발과 계획

한국은 1990년에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인 농업구조개선정책을 시행했다. 이 법에는 시 · 군 농어촌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규정이 포함되었는데 이것은 농림수산업의 구조개선과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적인 수단을 담은 산업계획이라는 특성을 담고 있다. UR협상으로 쌀 시장이 개방되자 정부는 1993년 ‘신농정5개년계획’을 발표하면서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을 실시하였다. 농업구조개선정책을 통하여 농산물시장개방을 전제로 한 경쟁력 있는 농업의 육성을 목표로 하고, 그 방법은 농지유동화를 통한 개별경영의 규모 확대에 두었다. 즉 영세농의 탈농을 유도하고 전업적 상층농의 규모를 확대하는 농가유형별 선별적인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농지제도의 개선에 의한 농지의 유동화를 촉진하고 농지소유의 상한선을 확대하며 농업진흥지역을 지정하여 농업생산기반투자를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핵심과제는 농산물수입 개방에 대응한 농업구조조정(agricultural structure adjustment)으로, 상품생산을 지향하는 전업농을 육성하기 위해 영농규모를 확대시키고 기술혁신으로 생산력을 높여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1970년에 제정되어 농업생산기반, 농어촌생활환경개선을 위한 기본법으로 운영되어 오던 「농촌근대화촉진법」을 폐지하고, 1994년에 「농어촌정비법」을 제정하였다. 이 시기의 농촌개발사업은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을 바탕으로 주로 물적 기반시설의 조성과 정비에 초점이 주어져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농촌지역의 활성화를 가져오는 데는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한편 농어촌발전위원회 보고서 ‘농정개혁의 방향과 과제’(1994년 6월)와 「농업 · 농촌기본법」(1992년 2월 제정)은 모두 새로운 농정의 방향으로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다원적 기능에 초점을 둔 농정은 생산지향적 농업정책에서 지속가능한 농촌발전정책으로 농정의 방향 전환을 모색한 것이었다.


(5) 2000년대 한국의 농촌개발과 계획

2000년대에 들어와 농촌을 도시와 더불어 국가균형발전의 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2003년 말에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농촌개발을 포함한 지역개발사업의 정책추진틀이 종래와는 크게 달라졌다. 낙후지역 및 농어촌지역개발 등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종래 행정자치부와 농림부 농어촌지역개발사업의 주요 재원인 양여금이 폐지되고 농어촌지역개발사업은 균형발전특별회계로 이관되었다. 이 법에 따라 예산편성 및 운영방식도 지방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상향식으로 전환되었다.

농림부는 농촌개발정책의 종합적 추진을 위해 ‘농업 · 농촌종합대책’을 수립하고 도하개발아젠다(DDA), 자유무역협정(FTA), 2004년의 쌀 재협상 등과 같이 밀려오는 시장개방 압력에 따라 농업과 농촌을 지원하기 위한 ‘농업 · 농촌지원계획안’을 2003년에 발표했다. ‘농업 · 농촌지원계획안’에 따른 새로운 농정의 기본 틀과 정책방향을 살펴보면, 그 목표를 도시와 농촌이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로 잡고 있다. 이를 위해 (1) 농업을 지속가능한 첨단생명산업으로 육성하고, (2) 농업인은 도시근로자에 상응하는 소득을 실현하며, (3) 농촌은 농촌다움을 갖춘 쾌적한 도농 공존의 삶의 공간이라는 세 가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농업 · 농촌종합대책’에서 밝힌 정부의 농정추진체계가 크게 농업정책, 소득정책, 농촌정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농업정책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소득정책에서는 ‘잘사는 농업인’을, 농촌정책에서는 ‘살고 싶은 농촌’을 각각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새로운 농정 비전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1) 농업정책으로 시장지향적 구조개혁, 친환경 고품질 농업, 신성장동력 확충, (2) 소득정책으로 직불제 확충, 경영안전 강화, 복합산업 활성화, 복지기반 확충, 그리고 (3) 농촌정책으로 교육여건 개선, 살고 싶은 농촌개발 등의 혁신과제가 설정되어 있다.

또한 농림부는 ‘농업 · 농촌종합대책’을 바탕으로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이하 「삶의 질 특별법」)을 제정하고, 제1차 기본계획(2005∼2009)을 수립하였다. 「삶의 질 특별법」에는 기본계획을 포함하여, 농림어업인 등의 복지증진, 농산어촌 교육여건의 개선, 농산어촌 지역개발, 복합산업 활성화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농업 · 농촌종합대책’에서 제시한 소득정책의 하나인 복합산업 활성화와 농촌정책 세 가지를 포함한 4대 부문을 농촌정책의 핵심내용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농산어촌 지역개발에는 (1) 농산어촌의 기초생활여건의 개선, (2) 농산어촌 경관의 보전 및 형성 지원, (3) 향토산업의 진흥, (4) 농산어촌 정보화의 촉진, (5) 농산어촌 문화예술의 진흥, (6) 농산어촌 문화복지 시설의 설치 및 운영 지원, (7) 도농 교류 활성화 및 투자유치 지원, (8) 농산어촌 지역종합개발계획의 수립과 시행, (9) 농산어촌 거점지역의 육성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의 농촌개발정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동안의 하향식 정책시행방식에서 탈피하여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지역개발 주체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지역개발 리더십교육을 실시하고, 농촌개발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개발인력교육기구를 구성하고, 지역개발인재정보시스템(인재뱅크)의 구축을 지향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2) 한국 농촌개발정책의 변화 특성


(1) 2000년대 이전의 농촌개발 및 계획의 특성

2000년대 이전까지의 한국농촌정책의 일관된 흐름은 발전주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산업정책으로서의 농업정책에 기초해 있었으며,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적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1970년대의 산업화과정에서는 국가 발전전략을 위한 강요된 희생과 동원전략으로서의 농업정책이 전개되었으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는 신자유주의 개발전략에 따른 시장개방의 압력으로 인해 농업과 농촌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촌개발은 농업정책의 보조적 성격을 갖고 주로 사회간접자본의 정비와 같은 물적 기반에 치중되었으며, 정부 주도의 하향적 개발방식으로 인해 중앙에 대한 지방의 의존성이 심화되고 지역의 자율성 결여와 역량부족문제가 심화되었다. 주민참여가 공청회와 시 · 군 단위의 심의회 등을 통해 형식적으로는 규정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배재된 행정위주의 농촌개발사업이 전개되는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2000년대까지의 농촌개발정책은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 패러다임에서 산업화, 근대화, 그리고 글로벌화라는 구조적 변동에 조응하는 방식이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농촌 공간은 농업부문에 종속되고, 동원과 배제의 배후지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이해진, 2009).


(2) 2000년대 이후의 농촌개발 및 계획의 특성

농업부문을 포함한 무역의 자유화와 시장개방을 가속화한 WTO체제 출범 이전까지도 한국 농촌의 경제활동은 농업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농촌정책도 발전주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농업부문 정책의 보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업시장의 개방과 함께 농촌개발정책은 농업부문에 대한 관심에서 농촌의 다원적 가치와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증가를 반영한 농촌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변화하게 되었으며, 주민 주도와 참여에 바탕을 둔 상향적 개발전략을 지향하는 동시에 도농 교류를 통한 농촌활성화를 추진하는 정책들이 전개되었다.

한편에서는 녹색농촌체험마을, 농촌마을종합개발, 신활력사업 등과 같은 정부 주도의 농촌지역개발사업들은 농촌공간을 새로운 개발자원으로 활용하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사회의 주민이 주체가 되는 마을만들기운동이나 안전한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의 상생과 연대를 도모하는 대안적 농촌개발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위로부터의 농촌개발정책과 아래로부터의 대안적 발전전략과 운동을 통해 주변적 위치에 있던 ‘농촌’정책이 종래의 주류 ‘농업’정책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개발담론을 형성하게 되는 농촌정책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시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농업개발을 통한 농촌발전보다는 농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고자 하는 통합 농촌개발 방식으로의 전환인 동시에 의사결정 방식의 민주화 및 정주공간 단위의 자립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정책변화는 다양한 내적 · 외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시장개방 압력은 국가 농업정책의 한계를 드러내었으며, 지방자치제도의 실시 이후 분권과 자치를 강조한 정치시스템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더 나아가 안전한 먹을거리와 생태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도시민의 인식과 가치 전환, 그리고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해 유기농업과 지역먹을거리운동과 같은 대안농업을 실시하는 소규모 공동체와 지역사회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변화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한국 농촌개발정책의 특성과 평가

가속화된 농업시장의 개방과 구조조정 압력으로 인해 종래의 국가개입에 의한 발전주의 농업정책은 한계를 드러내면서 경쟁력 있는 농가의 육성, 농촌 공간의 관광자원화 등 경쟁과 혁신을 강조하는 새로운 농촌개발정책들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국가의 농촌 공간개발정책은 정부 주도의 관료적 접근이라는 특성을 가졌다. 농촌개발정책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농촌‘마을’을 단위로 하고 있으며, 유사한 정책이 여러 부서에 의해 중복적이고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었고, 농촌개발이 주로 그린투어리즘과 같은 농촌관광에 치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향식 개발방식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의 수용능력 부족, 전문가의 부족 등으로 인해 개성 있고 독자적인 지역정책의 특성이 상실되는 등의 많은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지원 대상을 ‘농업’으로부터 ‘농업, 식품, 농촌’으로 확대하고, 지원방식을 전체농가의 ‘평균적 지원’에서 ‘농가유형별 차별화’로 전환하였다.

‣ 투 · 융자방향에 있어서는 ‘생산기반 등 사회간접자본(SOC)’에서 ‘소득과 복지를 위한 지역개발’로 바뀌었다.

‣ 소득안정수단에 있어서는 과거의 ‘가격지지’정책에서 ‘소득보전’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 정책의 중점이 ‘생산 중심’에서 ‘소비자안전 품질 중심’으로 옮겨지면서 농촌의 성격이 ‘농업생산’ 공간으로부터 ‘생산 및 정주 휴양’ 공간으로 넓어졌다.


2004년부터 농림부가 도입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3∼5개 마을의 소권역을 단위로 하는 종합개발 방식을 수립하여 종전의 기초생활환경을 넘어서 농촌의 경관 개선, 주민 소득기반 확충 등 사업대상의 범위를 확장하였으며, 소권역 단위의 개발협의회를 두어 주민이 참여하고 지역사회가 주도권을 갖는 상향식 개발, 지역의 개성을 중시하는 지역특성화 개발과 파트너십의 강조를 지향하고자 하였다. 비록 농촌개발의 목표와 방법 그리고 정책수단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없이 지역의 자율성을 강조함으로써 수용 여건이 미약한 마을에 자율성의 이름으로 개발을 위임하는 신자유주의 방식의 개발 문제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것은 2000년대 농촌개발정책이 정부의 국토균형발전계획과의 관계 틀에서 재정립되면서 개방농정의 농촌 압박을 「삶의 질 특별법」에 따른 ‘종합농촌마을개발계획’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 데서 유래한 것이었다. 농가소득 확보 차원의 기반을 소권역의 마을을 단위로 한 정주권 개발과 도농교류 및 그린투어리즘에서 찾고자 한 것이었으며, 지원 방식도 경쟁과 선택을 유지하면서 상향식으로 주민 참가와 지역사회 주도권을 부여하는 등 지역혁신을 강조하였지만, 내발적 개발로서의 지역의 자원과 잠재력을 개발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풀뿌리운동의 차원에서 유기농업과 지역먹을거리운동 등의 대안농업 및 내발적 농촌개발운동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의 접근을 모색하는 공동체적 시도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정부 차원의 대안농업에 대한 정책적인 접근은 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새로운 농촌기능으로서 식품안전성문제를 농업과 농촌부문에 포함시켜 종합적으로 다루고자 하였지만, 개방농정 이후 농업부문으로부터 농촌으로의 정책 이동으로 인해 농촌의 근간을 이루는 농업에 대한 정책의 소홀이 문제시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는 대안농업을 글로벌 패러다임에서의 가족농 지원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 정책적 지원체계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참가, 역량강화, 연대에 초점을 두는 공동체적 대안농업과 마을만들기운동 등 지역 주민과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실천 공간으로서 농촌을 재구조화하려는 대안적 농촌개발에 대한 정책적 지원체계의 확립이 요구되고 있다.



4. 한국의 농촌 정주권 개발과 공간계획


2000년 이후 한국의 농촌공간은 지역정책의 패러다임변화와 함께 재구성되었다. 국토 이용과 계획이 분권, 혁신, 지역균형을 강조하는 상향식 접근의 지역혁신체계 구축에 초점이 주어지면서, 부문으로서의 농업정책이 농촌 정주공간이라는 지리적 공간에 대한 발전전략으로 지향점이 전환되었던 것이다.

한편에서는 정주생활권이라는 농촌공간의 재편 및 조직화가 강조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농업 ·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는 농촌공간의 이용에 대한 계획이 추구되었던 것이다. 수입 개방 압력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는 농업부문에서의 경쟁력 강화, 기업농의 육성 등 농업부문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시장전략을 수용하도록 요구하였지만, 농업부문에서의 소득보전 한계로 인해 이에 대한 대체전략으로서 농촌지역개발을 강조하는 공간정책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1) 농촌공간계획과 정주권 개발


1980년대 초에는 마을 단위 농촌개발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배후지인 농촌마을과 중심지를 포괄하는 권역의 ‘정주생활권개발전략’이 발표되어 1981∼1984년에 정주생활권개발 시범사업이 전개되었다. 이 사업은 1985년 이후 농림수산부 주관으로 ‘농어촌지역종합개발계획’으로 변경되어 1994년까지 전국 136개 군 가운데 109개 군의 계획수립을 완료하고자 하였다. 이 개발계획은 군 단위를 정주생활권 개발계획의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재원마련이 안된 상태에서 계획수립만 추진되고 시행되지 못함으로서 농촌개발전략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게 되었다.

1990년 4월에는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면 단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농어촌 정주생활권개발계획’이 수립되었으며, 마을 단위로는 ‘문화마을조성계획’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이 법안은 농촌계획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공한 최초의 입법이라는 의의를 갖지만, 개방 압력하에서 농어촌구조개선 사업을 바탕으로 농촌사회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것에 비하면 시설설비 이외의 농촌지역의 활성화라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없었다. 2004년에는 마을 단위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행되면서 한국에서의 정주생활권개발계획은 3∼5개 마을의 소권역을 대상으로 하는 농촌개발 사업으로 전개되었다.


(1) 문화마을조성사업

문화마을조성사업은 농어촌 면 지역의 중심마을에 대한 집중 지원을 통해 생활환경을 정비하고, 농촌관광, 농촌체험활동, 생산기반정비사업과 소득증대사업을 연계하여 추진함으로써 생활환경과 소득이 조화를 이룬 농촌마을로 정비할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 사업은 농촌의 중심마을을 집중 육성하여 농촌지역의 거점생활공간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갖고 분산된 마을의 집중화와 주거환경의 정비를 통해 농촌마을을 중소도시 수준의 생활환경으로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업의 기본 방향은 정주권개발 대상 면 단위 내에 있는 중심마을에 대한 도로, 상하수도, 전기 통신시설 등의 마을기반 정비, 주택단지 조성, 놀이터, 마을회관, 공동작업장 등 공동이용시설, 환경기초시설, 주택 등 정비, 그리고 농업생산기반 조성 및 소득원개발사업과의 연계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2) 정주권개발사업

정주권개발사업은 농어촌 면지역의 중심생활권과 광역시 자치구의 준농어촌지역을 대상으로 주택정비, 편익시설, 도로, 상하수도 및 환경시설 등에 투자해 생활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업으로, 전국 1,224개 면 가운데 오지 및 도서지역을 제외한 762개 면을 대상으로 추진하였다. 이 사업은 지방양여금이라는 비교적 안정된 재원을 기반으로 추진하여 농촌의 생활환경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주권개발사업과 문화마을조성사업은 모두 1980년대의 군 단위 농촌지역종합개발계획에 따른 투자사업의 추진이 어렵게 되면서 등장했으나 계획수립과 추진 방식은 과거의 개발계획을 답습하였으며, 명목상 중심마을을 단위로 한 정주생활권사업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면이라는 행정적 단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지역실정과 유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내용도 대부분 생활환경 정비사업에 치중하여 생산기반조성이나 소득사업과의 연계가 부족하였다.


(3)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정주권개발사업과 문화마을조성사업은 여러 한계를 보이면서 2004년부터 권역별 종합개발 방식인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농촌의 경관개선, 기초생활환경 정비, 공동소득기반 확충, 지역역량강화를 위한 주민교육 등을 지역특성에 맞게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이 사업은 기존의 면 단위의 사회간접자본 정비 사업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3∼5개의 마을로 구성된 소권역 단위의 지리적 · 생태적 · 역사적 특성을 살린 새로운 방식의 농촌종합개발사업으로 마을 단위에서 중앙정부에 이르는 다층적인 위계를 가지고 사업계획 과정에서 지자체, 지역주민, 민간단체, 사업전문가 등의 다양한 행위자의 참여와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등 상향적으로 추진되는 체계로 구성되었다.

주민참여를 강조하는 상향적 공모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공모과정에서 예비계획을 수립하여 신청하도록 하여 권역별 추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감독과 유지관리 등 사업과정에 주민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제도화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자율성을 증대시켰다. 또한 지역역량 강화를 위한 마을기획과 운영 등 소프트웨어 사업이 포함되고, 도시와 농촌의 연계를 구축하는 개발을 지향함으로써 도시민의 인구유입과 정주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귀농 · 귀촌을 지원하는 시설과 환경조성 등의 접근이 시도되었다. 종래의 시설 위주의 지원과 관 주도적 사업이 갖는 한계를 보완하고 녹색농촌체험마을 조성과 같은 농업 ·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활용한 농업 외적인 개발사업을 추구하였지만, 발전주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개발욕구로 인해 생태계의 무분별한 파괴와 농촌자원의 상품화 및 외부 자금에 대한 의존 증대 등 내발적 개발방식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으며, 농업문제의 회피로 인해 농촌공간이 상품화되고 시장화 되는 등 신자유주의적 농촌개발 전략의 한계가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농촌고유의 자율성과 지속가능성의 확보가 향후 농촌개발의 과제로 제기되었으며, 이러한 과제는 농민의 삶의 질 향상과 주체적인 역량강화를 높이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2) 농촌공간을 이용한 농촌활성화방안


(1) 그린투어리즘과 농촌관광

정부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농외소득 증대방안의 하나로서 농촌관광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개방농정하에서 농업소득 지지가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농외소득을 보전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농촌관광개발을 추진한 것이었다. 관광농원 개발(1984년) 이후 농어촌 휴양단지 개발(1989년), 민박마을 지원사업(1991년) 등은 바로 개방농정의 보완책으로 실시된 전략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은 수요자인 도시민의 욕구나 공급자인 농촌인의 수용능력과 여건을 고려하지 못한 채 추진됨으로써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1990년대 말부터는 농업 · 농촌의 다원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대되고,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늘게 되었다. 특히 소비 패턴이 변화되면서 대안적 관광으로서 그린투어리즘, 농촌관광, 도농녹색교류, 녹색농촌체험 등 농촌관광의 수요가 증대되었다.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는 농촌관광은 농촌지역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도시민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서 의의가 있다. 농촌관광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은 도농교류를 위한 사업으로 확대되었는데, 그것은 생태, 문화, 역사 등 지역자원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농촌활성화 도모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도농교류는 이를 위한 인적 교류, 농특산물과 같은 상품, 관광과 휴양 목적의 체험 서비스, 정보, 문화, 자본의 교류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린투어리즘(greentourism)

농촌관광의 일본적 표현을 의미하는 그린투어리즘이란 ‘농촌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 생활과 산업을 매개로 도시민과 농촌주민 간의 교류형태로 추진되는 체류형 여가활동’을 말한다.

농업 · 농촌의 다원적 기능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이라는 재화를 생산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그 생산을 통해서 식량안보, 국토 및 환경보전, 자연경관 유지, 전통문화 보존, 농촌 지역사회의 유지와 국토의 균형발전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행하는데, 이러한 농업의 추가적이고 비시장적인 기능을 농업의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이라 부른다. 일본의 「신농업기본법」에서는 농산물 공급기능 외에도 국토보전, 수원(水源) 함양, 자연환경의 보전, 양호한 경관형성, 문화전승 등 농업 · 농촌의 다면적 기능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농업의 자연 순환기능과 생물다양성 개념이 강조된다면, 농업 · 농촌의 다면적 기능이란 종합적으로 농촌의 ‘어메니티’(amenity) 유지 · 증진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다원적 기능은 국내의 농업생산과 결합되어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농산물 교역에 의한 수입농산물로는 이런 다원적 기능을 공급받을 수 없고, 따라서 국내 농업이 이런 다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농업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WTO 차기협상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2) 살기좋은 농촌만들기

차별화된 농촌지역개발의 필요에 따라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소득원을 개발하고 도시민과의 교류나 정주 촉진을 위한 대안이 요구되면서 지역혁신 차원의 ‘살기좋은 농촌만들기’가 2001년에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강조되었다.


5都 2村, 5村 2都

도시민의 농촌지역 수요에는 크게 체재형 수요와 정주형 수요가 있다. 체재형 수요는 흔히 5都 2村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주 1∼2일은 농촌에 머무는 거주형태이다. 반면에 정주형 수요인 5村 2都형은 사는 곳은 농촌이지만 주 1∼2일은 도시에 머무는 거주 형태를 말한다.


‘살기좋은 농촌만들기’의 비전은 도시민의 정주촉진을 위한 지원체계 구축이라는 소프트웨어와 도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정주환경의 구축이라는 하드웨어를 결합하여 도농상생형 복합생활공간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도농상생형 복합생활공간 조성은 “쾌적하고, 아름답고, 특색있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살기좋은 지역만들기’의 5대 과제의 하나로서 (1) 도시민을 위한 귀향마을만들기(주말 방문자나 은퇴자를 위한 주거 공간), (2) 사회안정망 확충 차원의 농어촌 생활서비스 제공, (3) 소도읍과 중소도시의 교육, 복지, 의료, 문화 서비스기능 강화 등이 구체적인 내용이다. ‘살기좋은 농촌만들기’는 농촌에 체재 · 정주하고자 하는 도시민의 수요를 현실화하여 농촌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로 중소도시와 농산어촌을 연계하려는 전략이다. 쾌적한 환경, 아름다운 경관, 개성 있는 문화 등의 농촌다움(rurality)과 쾌적성(amenity)을 정비하여 도시민에게 매력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식품안전 욕구를 반영한 환경친화적 농업으로 전환하는 등 농촌공간에 대한 재구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도 지역주민의 정책 수용능력의 미약 등 현실적 여건이 부합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나타났다.



5. 대안적 농촌개발과 계획의 과제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확산과 전지구화라는 발전패러다임의 전환은 한국 농촌사회와 농업에 대한 근본적 위협으로 작용하였으며, 발전주의 패러다임에서 작동하던 종래의 농촌개발 및 계획에 대한 정책적 전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안전한 식품의 공급, 지속가능한 농업, 살기 좋은 농촌사회를 포함하는 대안적 접근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이론적 · 실천적 정합성에 대한 검토를 하고자 한다.

먼저, 이론적 차원에서 사회적 · 경제적 ·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대안적 농촌개발은 생태와 사회경제의 통합을 모색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가드(Norgaard, 1987) 등이 강조하는 농업생태학(agroecology)에서는 자본주의 산업화의 부정적인 외부효과인 생태적 차원의 환경오염과 사회경제적 차원의 부의 불균등을 극복하기 위해 대안적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것은 주로 신자유주의 경제의 글로벌화에 대한 저항에서 발생하였으며, EU의 ‘농업공통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CAP는 유럽의 식품 자급률 확보와 활력있는 농촌사회 유지를 위해 1991년에 ‘CAP 미래에 대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생산자와 환경파수꾼이라는 농민의 이중역할 (2) 농업환경의 독자성 확보를 위한 적정한 수의 가족농 유지 (3) 농촌발전을 위한 대안적 경제활동 (4) 환경친화적 영농의 추진 (5) CAP 기금의 농가소득에 대한 직접적 지원 등이다. ‘아젠다 2000’으로 발전한 CAP의 농촌개발 전략의 궁극적인 두 가지 목표는 경제적으로 성장가능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지역의 통합적 개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버텔(Buttel, 1998)이 제기한 ‘새로운 농촌사회학’은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 프로젝트를 비판적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접근, 즉 보다 생태적인 농촌개발을 포함하고 있으며, 농업, 농식품, 농촌공간과 같은 주제들이 중심적 테마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보다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을 위한 생태학적 근대화(ecological modernization) 접근도 새로운 대안으로 사회-자연 네트워크를 주장한다. 여기서 농촌개발의 주요 관심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 지리적 불균형 발전에 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정주공간과 환경 정의를 다룬다. EU의 구조기금이나 LEADER 프로그램에는 이러한 정주공간의 정의에 관한 강력한 철학이 있다.

대안적 농촌개발 및 계획을 추구하기 위한 실천적 차원의 쟁점 가운데 하나는 농촌개발 및 계획의 주체에 관한 것이다. 종래의 발전주의 패러다임에서 농촌개발 및 계획의 주체는 국가였으나, 글로벌주의 패러다임에서는 초국적 자본과 같은 시장이 이를 대신함으로써 국가의 개입이 약화되고 농민을 포함한 커뮤니티는 와해되고 말았다. 대안적 농촌개발 및 계획은 새로운 행위주체와 사회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관계나 결사체적 연결망은 비공식적이지만, 신뢰, 공통의 이해, 그리고 서로 다른 행위자 간의 협동에 기초하고 있다. 지역사회지원농업(Community Sponsored Agriculture)이나 시민농업(Civic Agriculture)과 같이 능동적인 소비자가 생산자 농민과 연대하는 새로운 사회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적 접근에서는 행위자 간의 전통적인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정부와 기업은 규제가 아닌 거버넌스와 네트워크 관계로, NGO와 기업은 대결이 아닌 협동의 관계로, 그리고 기업과 기업은 경쟁의 관계가 아닌 파트너십과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개념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대안적 농촌개발과 계획을 생각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주의의 확산은 농촌개발 및 계획의 대상 및 방법에 관해서도 대안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종래의 부문정책으로서의 농업개발에 대한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한편 친환경농업의 확산과 농촌의 다면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증대시키면서 농촌주민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농촌은 식량을 생산하는 공간 혹은 농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한계 공간이 아니라 농업 및 농촌의 다면적 기능이 강조되면서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유지 보전해야 할 공유 자원인 것이다. 따라서 농촌의 다면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모델 도입이 필요하다. 유기농산물이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관심과 수요의 급증은 바로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농업이 친환경적으로 변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것이 농촌 활성화를 위한 수단적 측면으로 다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유기농업이나 친환경농업은 그에 적합한 정주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농촌계획에서도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촌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침체된 농촌사회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농촌활성화 전략이 필요하다. 주민이 주체가 된 ‘아래로부터의’ 내발적 개발 정책에 토대를 두고 지역 자원의 합리적 활용방안과 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외부조건에 대응하면서 스스로 지역의 자원, 자본, 노동력 등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지역 내의 산업, 문화, 교육, 보건, 복지, 환경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농촌의 발전적 미래상은 (1) 농촌의 농촌다움(rurality)과 쾌적성(amenity)이 유지되는 정주공간, (2) 생활환경 및 서비스 향유가 자유롭고 편리한 공간, (3) 도시와 유기적 연계를 갖는 산업의 배치로 인한 다양한 소득기회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종래의 농촌개발은 농촌 생활환경의 물리적 개선을 목표로 중앙정부가 주도한 결과, 대부분의 농촌에서 물리적 생활환경은 상당한 개선을 이루었음에도 정부 주도의 농촌개발 방식이 거듭되면서 주민은 정부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되었고 주민 공동체의 자율적 개발역량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향후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을 위한 새로운 관점은 내용에 있어서는 농촌의 생태적 이점을 손상시키지 않고 물리적 생활 편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방식에 있어서는 정부가 아닌 주민의 자율적 개발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EU의 농촌개발 프로그램에서도 강조된 바와 같이, 농촌 어메니티(rural amenity)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관심의 증가, WTO체제 출범이후 농업구조개혁에 대한 압력의 증대와 종래의 농업정책의 한계, 분권화와 내발적 발전 요구 등이 선진국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농촌 패러다임 형성의 배경이다. OECD가 제시한 선진국의 농촌 패러다임은 농촌지역의 다양한 개발 잠재력을 활용하려는 정책 목표를 설정하여 새로운 농촌정책에서는 (1) ‘역량 구축’(capacity building), (2) ‘지역사회 주도권’(community initiatives), 그리고 (3) ‘파트너십’ (partnership)을 주축으로 한 자조적인(self-reliance) 농촌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박진도, 2005, 『농촌개발정책의 재구성』, 한울.

이해진, 2009, “농촌정책 패러다임의 변화와 농촌지역개발사업”, 『농촌사회』 19(1): 7-47.

홍동식, 1988, 『농촌사회학의 이해』, 법문사.

Brohman, John, 1996, Popular Development: Rethinking the Theory and Practice of Development , Blackwell Publishers.

Friedman, J., 1981, “The active community: toward a political-territorial framework for rural development in Asia”, Economic Development and Cultural Change 29: 226-261.

Lowe, P., C. Ray, N. Ward, D. Wood & R. Woodward, 1998, Participation in Rural Development: A Review of European Experience , Centre for Rural Economy Research Report, Centre for Rural Economy, University of Newcastle.

McMichael, Philip, 2004, Development and Social Change (3rd ed.), Sage Publications Inc.

Norgaard, R. B., 1987, “The Epistemological Basis of Agroecology”, in M. Altieri(ed.), Agroecology: The Scientific Basis of Alternative Agriculture , Boulder, Colorado: Westview Press, pp. 21-27.

Rogers, E. M., Rabel J. Burdge, Peter F. Korsching, Joseph F. Donnermeyer, 1988, Social Change in Rural Societies: An Introduction to Rural Sociology (3rd ed.), Prentice Hall, Inc.


이야깃거리

  1. 발전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농촌개발 및 계획의 내용과 방법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비교하여 검토해 보자.

  2. 한국 농촌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농촌개발과 계획을 위한 정책적 대응은 시기별로 어떤 특성과 문제를 보이면서 전개되었는지를 정리해 보자.

  3. 농촌의 공간계획이 정주 단위를 달리하면서 변화해 온 배경과 문제점들을 토의해 보자.

  4. 농촌 공간을 이용한 농촌활성화방안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 대안적인 접근들이 농촌주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논의해 보자.


더 읽을거리

박진도, 2005, 『농촌개발정책의 재구성』, 한울.

홍동식, 1988, 『농촌사회학의 이해』, 법문사.





제8장 농촌 지역공동체의 변화와 발전


이해진


주요 개념 및 용어

농촌사회, 지역공동체, 마을만들기, 리더십, 사회적 자본, 귀농 · 귀촌, 커뮤니티 비즈니스, 다문화사회


이 장에서는 농촌사회와 지역공동체의 변화를 다룬다. 농촌 지역사회와 마을 공동체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이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사회적 공간으로서 농촌사회는 거시적 사회구조와 변동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농촌사회 주체들의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에 의해 재구성된다. 한국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농촌사회의 전통적인 지역공동체는 사실상 거의 붕괴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시장 중심의 생산주의적 농업과 세계농식품체제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농촌 지역사회의 공동화(空洞化)는 더욱 가속화되었고, 농촌사회의 지속가능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농촌정책 패러다임이 농촌 지역사회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주민들이 주도하는 자생적인 농촌마을만들기운동이 새롭게 등장했다. 농촌사회가 담고 있는 다원적인 사회공간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농촌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시도들이 모색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장에서는 농촌사회의 변동을 지역공동체의 맥락, 즉 농촌 지역공동체의 사회공간적 변동의 차원에서 조명하여 농촌사회와 지역공동체의 위기, 재구조화, 대안적 실천들을 살펴볼 것이다. 농촌사회와 지역공동체의 관계와 변화의 동학을 특히 마을만들기운동, 리더십, 귀농 · 귀촌, 사회적 자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농촌사회와 지역공동체의 발전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 및 다양한 주체적 노력들의 의의와 과제들을 제시한다.



1. 농촌사회와 지역공동체


1) 한국 농촌과 지역공동체의 변화


농촌마을은 자연적 · 역사적 · 사회문화적 자원과 특성을 지닌 물리적 공간이자 농촌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의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고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간이다. 사람들은 자연의 질서에 조응하고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을 이용하면서 전통적으로 혈연이나 지연을 바탕으로 자연부락과 농촌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논과 밭을 경작하는 농경이 지배적인 생산 수단이었던 시절부터 농촌마을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단위였으며 그 안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적 관계와 질서가 운영되던 사회적 생활공간이었다.

공동체는 영어의 커뮤니티(Community)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공통의 생활공간을 바탕으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농촌 마을공동체는 혈연 및 지연 관계를 바탕으로 특정한 지역 내에서 농경을 경제활동의 중심에 두고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가치와 생활방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을공동체는 신분적 위계질서나 관습적 질서를 강요하는 엄격한 규범에 따라 운영되는 폐쇄적인 성격을 지녔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마을 구성원들 간의 공유된 정서적 유대와 사회경제적 연대가 친밀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퇴니스(T o¨ ennis)는 이런 점에 주목하여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를 구별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공동체의 사례로 17세기 중반 이후에 형성된 문중(門中)은 혈연적으로 공동의 선조를 갖는 후손들이 같은 지역에 대대로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종족마을, 또는 동성촌(同姓村)을 의미하고, 종중(宗中)은 이러한 후손들이 함께 공동 조상에 대한 제사, 유교적 혈연위계질서, 길흉사의 상부상조, 교육 등을 유지하던 마을공동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촌락공동체는 지리적 공간이면서 사회적 관계의 장으로서, 모내기와 같이 농업생산에서의 협동노동을 가리키는 두레, 마을 공동의 신앙의례인 동제, 개별 친족들 간의 집단적 결속조직인 동계 등이 존재했다(이재열, 2006). 이처럼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에서는 문중과 같은 혈연조직, 대동계와 같은 지연조직이 공존하는 가운데 마을주민들의 경제 및 사회활동과 관련된 각종 계 조직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집단들이 중층적으로 존재해 왔다. 따라서 전통적인 촌락공동체는 가족에 원형을 둔 지역집단이라는 점, 생산을 위한 공동조직이라는 점(최재석, 1983), 자연발생적이면서 귀속적이고, 포괄적이며, 상호부조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공동체적인 강제를 수행했다는 점 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신용하, 1985).

그러나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은 농촌마을의 전통적 공동체를 해체하는 사회구조적 힘으로 작용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권위주의적 독재 정권에 이르러 이른바 ‘압축성장’의 급격한 사회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촌마을은 국가 주도적 발전전략에 따른 동원과 희생의 대상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지향적 산업발전을 목표로 한 공업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불균형 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예컨대 정부는 저곡가정책을 통해 도시의 물가안정과 저임금을 유지하였고, 이 때문에 살기 어려워진 농촌에서 젊은이들을 거대한 산업예비군으로 편입되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인구의 급속하고 대규모적인 이농은 농촌의 침체를 가속화시켰고, 과거의 농촌마을이 지녔던 공동체적 가치와 규범은 급속히 해체되었으나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주체와 공동체적 대안들은 형성되지 못했다. 더구나 계속되는 탈농과 고령화의 압박은 농촌마을을 급속히 공동화시키고 붕괴시켰다.

1960년대부터 이촌향도(離村向都)가 증가하면서 농촌인구와 농가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60년 농촌인구는 1799만 명으로 우리나라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8.3%였고, 총 가구에서 농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53.7%에 달했던 것이, 2010년에는 농가인구가 306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6.3% 수준으로 떨어졌다(<표 8-1> 참조).


<표 8-1> 농가인구의 변화: 1980∼2010(단위: 천 명, %)

 

1980

1990

1995

2000

2005

2010

농 가

10,827

6,661

4,851

4,031

3,434

3,062

총 인구대비

28.9

15.3

10.9

8.7

7.3

6.3

출처: 대한통계협회, 『2005농림어업인총조사 종합분석』, 2007; 통계청, 『2010 농립어업총조사』.


한국 농촌사회의 붕괴는 산업화 과정에서 채택한 불균형 발전전략에 기인한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농촌과 농업을 희생하는 대신에 도시와 제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발전국가의 불균형 성장전략은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늘리면서 농촌사회를 지나간 과거의 유물과 같은 낙후된 지역공간으로 표상하였다. 농촌사회의 낙후성과 도농격차의 심화는 농촌공동체의 자생력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도권이나 지방도시로의 인구유출은 농촌사회의 자급자족 경제를 붕괴시키며 기회의 불평등과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켰다. 농촌사회의 자립구조와 자생적 역량들이 급속하게 약화되면서, 사회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심리구조를 확산시켰다. 농촌출신 젊은이들이 농촌을 빠져나가면서 농촌마을에서 아이들이 우는 소리를 듣기 어렵게 되었고, 나이 50이 넘은 장년층이 청년회장을 맡는 실정이 농촌의 현실이 되었다. 인적자원의 유출과 재생산의 위기는 농촌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면서 농촌사회의 역동성을 잠식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뒤르켐(Durkheim)이 말한 기계적 연대의 바탕이었던 농촌공동체 내부 구성원들 간의 유사한 직업에 따른 공통의 믿음과 규범적 결속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구조화된 공동체의 위기는 농촌사회의 신뢰와 연대, 사회적 네트워크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문제를 발생시켰다.

농촌인구의 유출과 고령화 및 도농격차의 심화로 농촌공동체는 전통적인 사회문화적 · 규범적 공동체성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지, 문화, 의료, 주거 등 농촌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도 더욱 열악해지면서 생활공동체로서의 활력도 잃어갔다. 최근에는 WTO와 FTA를 앞세운 농산물의 시장개방과 전 세계의 자유무역화가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농촌사회의 경제적 기반마저도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한국 농촌사회의 공동체성은 1960년대 이후 지난 50년 동안의 변화를 거치면서 기존의 농촌마을이 갖고 있던 지역공동체, 생활공동체, 경제공동체, 규범공동체로서의 특성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할 수 있다.


2) 농촌 지역공동체의 재발견


그런데 최근 들어 농촌사회의 공동체적인 삶을 복원하고 재창조하려는 움직임들이 등장했다. 여기서 공동체적인 삶이란 농촌사회 구성원인 마을주민들이 서로 함께 어울려 살면서 농촌사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고유의 전통문화 및 생태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농촌주민들 간에, 나아가 도시민들과의 상호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의미한다.

공동체는 결사체와 구별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어떤 전통이나 본래적인 원형을 가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공동체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롭게 그 정체성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사회적 구성이 가능하다. 이처럼 공동체는 정책이나 자발적 주체들이 새로운 가치지향이나 발전전략의 방향을 모색하는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정책적 · 사회운동적 개념화가 가능하다(이재열, 2006: 91).

2000년대 들어서 한국 농촌사회의 변화를 향한 다양한 노력들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인 면에서 농촌 어메니티(rural amenity)를 자원으로 삼는 농촌관광과 그린투어리즘, 지역축제와 장소마케팅, 지역특산물과 혁신클러스트 등이 낙후된 농촌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새로운 발전전략으로 등장했다. 자생적인 마을리더들이 생겨나고 리더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이 실험되고 있다. 농촌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이 활용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지역사회 경제공동체의 가능성을 찾는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모색되고 있다. 귀농 · 귀촌자가 많아지고, 도시와 농촌 간의 교류와 연대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의 구축이 요구된다.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으로 다문화가정도 많아지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적 공동체적 삶의 필요도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 농촌사회의 고유한 자원을 활용하면서 지역의 특성에 맞는 마을발전을 꾀하는 마을만들기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농촌사회의 자생적 리더들이 주도하는 자발적인 마을만들기운동에서부터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에 이르기까지 농촌공동체의 복원과 새로운 농촌만들기를 시도하는 다양한 실험들이 새롭게 모색되고 있다.



2. 농촌 지역공동체와 마을만들기


1) 마을만들기의 개념과 의미


마을만들기는 일반적으로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인 마을과 지역을 보다 공동체적이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란 용어는 일본의 ‘마찌쯔쿠리(まちつくり)’운동의 사례를 응용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국가와 시장의 힘으로 농촌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일련의 정책과 자본활동을 농촌개발이라 한다면, 마을만들기는 지역주민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발전시켜 나가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는 고유한 지역사회 공간을 단위로 지역사회 바깥의 국가나 시장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마을 공동의 지역자원(자연적 · 역사적 · 사회적 · 문화적 자원)들을 활용하면서 지역사회의 발전을 자발적으로 추구해가는 시민 공동체적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울러 마을만들기는 지역성(locality)을 함께 하는 사회적 공간 범위 내에서 공동체적 정체성과 연대감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공통의 가치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주민참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전략적 실천 과정을 의미한다.19)

이러한 마을만들기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는다.

첫째, 마을만들기는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자발적인 자치활동이다. 마을만들기는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경제적 낙후와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소외계층과 지역사회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 가는 활동이다.

둘째, 마을만들기는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목표로 한다. 지역공동체 개발은 지역성, 공동체성, 연대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적 사회적 관계의 형성 또는 공동체의 재생을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마을만들기는 지역사회 공간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공동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자생적 지역공동체만들기운동을 포함한다.

셋째, 마을만들기는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증대를 위한 대안적 실천이다. 즉 자립적생태적 · 순환적 지역공동체의 복원과 재생산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결국, 농촌 마을만들기는 낙후되고 소외된 농촌사회를 자치와 자립, 희망과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대안사회를 향한 과정과 실천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농촌 마을만들기는 농촌공동체가 거의 붕괴되어 가는 농촌현실을 창조적이고 주체적으로 바꾸기 위해 시도되는 새로운 지역만들기운동과 실천들을 가리킨다. 마을만들기운동은 마을 단위의 지역운동을 표현하는 개념으로서 마을디자인, 마을가꾸기, 공동체운동, 주민자치운동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이는 농촌공동체적 ‘마을’을 농촌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 때 마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범주를 넘어 사람들의 긴밀한 관계와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

원래 농촌은 마을 공동체 내부에서 자급과 협력이 순환과 공생을 이루는 공간이었다. 농촌공간은 다원적인 의미를 함축한 공간이다. 농촌사회는 생산과 공동체적 생활의 공간이며, 어메니티(amenity) 휴양의 공간이자, 식량안보와 먹을거리 안전을 확보해 주는 공간이다. 농촌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지속가능해야만 농업의 문제도 자생적이고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운동은 이러한 농촌사회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농촌공동체의 재생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적 노력들인 것이다. 농촌 마을만들기는 궁극적으로 농촌사회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전략과 실천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공생과 교류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농촌의 마을만들기활동은 한마디로 농촌공동체의 회복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주민운동이자 실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2) 마을만들기의 발전과 현황


한국 농촌사회에서 마을만들기운동은 1990년대 후반 무렵에 민간 차원의 자생적인 마을만들기활동과 지자체 및 중앙정부 차원의 농촌마을 개발사업들이 추진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간 차원에서는 시민단체와 농촌마을이 결합하여 생태마을을 만드는 사업이 시작되었고 농촌마을에서 협동조합운동, 농민운동에 뿌리를 둔 자생적인 리더들이 친환경 유기농법이나 창의적인 마을 공동체활동들을 펼치면서 마을만들기형태의 새로운 시도들이 등장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2000년대를 전후한 시점부터 농촌성(rurality)과 농촌 어메니티(rural amenity) 및 그린투어리즘(green tourism)을 표방한 농촌관광과 마을가꾸기사업들이 활성화되었다. 낙후된 농촌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마을만들기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강원도의 ‘새농어촌건설운동’과 전북 진안군의 으뜸마을가꾸기’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역리더, 지역주민, 시민단체 등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된 민간 차원의 마을만들기운동은 노무현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정책과 농촌마을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앞세운 참여정부의 지역개발정책이 마을만들기운동을 정책 수단으로 도입하고 활용한 것이다. 주민참여와 상향식 추진방식을 농촌지역개발을 위한 정책사업의 기본틀로 확립하고 시행하였다. 2000년대 들어 농촌마을을 단위로 하는 정부의 농촌지역개발사업들, 즉 녹색농촌체험마을, 전통테마마을, 정보화마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산업적 · 도시적 관점에서 하드웨어와 인프라 중심, 개별농가 지원 방식으로 대표되었던 농촌개발사업이 참여정부에 들어서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사업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농촌개발사업들은 상향식 개발, 즉 아래로부터의 참여에 바탕을 둔 사업선정과 추진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토론과 합의를 거쳐 사업추진을 결의하고 마을에 맞는 사업 아이템을 신청하면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심사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농촌에서의 마을만들기활동은 정부 예산사업이 매개가 되고 행정 주도의 성격이 강하다(구자인, 2007: 65).” 이러한 정부정책사업의 실행과 더불어 농촌 마을만들기 컨설팅 기업, 전문가, 마을리더가 새로 등장하면서 농촌마을을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실험과 활동들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마을만들기는 다양한 형태의 흐름들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농촌마을개발사업뿐만 아니라, 자생적 공동체, 귀농 · 귀촌, 도농연계 등이 마을만들기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확장시키고 있다. 자생적 공동체는 생태적 삶과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주거와 생활 공동체, 즉 의도적 공동체(intentional community)를 만드는 것이다. 경남 산청의 안솔기마을, 경남 함양의 청미래마을, 전북 장수의 하늘소마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마을만들기에 필요한 요소들로는 가치관, 지역자원, 리더십, 조직, 전략, 네트워크, 정체성 등이 있다. 마을만들기운동을 선도적이고 모범적으로 추진한 마을 사례들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자연자원과 정부의 지원, 마을리더의 기획력과 헌신적 리더십, 전문가 네트워크의 참여와 협력, 도시 거주 소비자그룹이나 생협과의 연계 등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를 거두었다. 마을만들기운동이 적극적으로 진행된 농촌마을에서는 인구증가, 관광객 증가, 소득증대, 주민자긍심 고취 등의 가시적인 성과들을 이루었다. 화천 토고미마을, 이천 부래미마을, 단양 한드미마을 등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강원도 화천의 토고미마을은 지역 교회의 작은 모임에서 출발한 리더십 집단이 마을만들기를 주도했고, 충북 단양의 한드미마을은 귀농한 마을리더가 주민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며 마을자원을 활용하는 동시에 정부의 농촌개발사업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자생적인 마을만들기의 기반을 마련했다.

마을만들기의 추진과정을 리더십의 차원에서 보자면, 마을만들기는 초기 단계에서는 리더에 의해 발전하다가 그 후에는 점차 전체 이해관계 당사자가 서로 토론하고 합의하여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0년을 전후로 농촌개발정책사업이 활성화되는 한편, 이러한 기회와 자원을 활용한 의식 있고 적극적인 리더들이 농촌개발사업과 결합하면서 마을만들기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다.


마을만들기 사례-전북 진안군 마을만들기

전북 진안군은 2000년대 초반 행정안전부의 지역 낙후도 평가에서 전국 234개 시군 중 23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취약한 자연환경과 인구유출이 심한 대표적인 낙후지역이었다. 그러나 진안군 마을만들기 역사는 지자체 단체장의 리더십, 행정적 기반, 전문가의 역량이 결합되면서 시작되었다. 2001년에 진안군은 농촌발전기획단을 신설하고 외부 전문가를 전담 공무원으로 영입하여 2003년에는 ‘으뜸마을가꾸기’사업을 추진하였다. 주민 주도형, 상향식 마을만들기를 기본 모델로 삼아 생산기반 정비사업, 소득작물 개발 및 가공, 자연 순환형 농업을 통한 소득증대사업을 통해 지역경제와 정주 공동체의 활성화를 목표로 추진되었다. 2006년에는 젊은 귀농인을 중심으로 전국 최초로 마을간사제도를 시행하였으며, 정부의 농촌개발정책인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과 전원마을조성사업을 유치하여 진행하였다. 진안군의 실험과 성과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 제1회 마을만들기전국대회를 개최하여 마을만들기와 관련된 지자체, NGO, 활동가, 귀농·귀촌인, 전문가가 함께 모여 마을만들기의 방향과 과제를 논의하고 학습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또한 도시민 유치를 목적으로 마을축제와 귀농1번지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귀농 · 귀촌활성화센터와 도농교류센터를 설립하면서 적극적인 귀농과 농촌주민 주도형 마을만들기를 지원하고 있다. 진안군의 사례는 전국에서 가장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에서도 행정과 리더십, 주민조직화와 참여, 전문가의 네트워크와 거버넌스를 통해 구축된 마을만들기 프로젝트가 지역 경제와 농촌공동체의 복원 및 귀농인을 유입하는 등 농촌사회의 활력과 주민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를 통한 내생적인 농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농촌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자본


퍼트넘(Putnam, 2000)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참여자들이 협력함으로써 공통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성취하게 만드는 신뢰, 규범, 연결망과 같은 사회조직적 특성으로 정의하였다.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connections)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reciprocity)과 신뢰의 규범을 가리킨다. 퍼트넘은 시민적 공동체의 존재와 자발적인 결사체에의 참여 경험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토대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개인과 집단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시민 결사체 조직에 참여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동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연대와 협력의 규범과 네트워크를 구축할수록 사회적 자본은 강화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해체된 공동체를 재생하고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동체 복원의 목표가 주민들 간의 신뢰와 협력을 높이고,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함양하여 궁극적으로 농촌사회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면,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자본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재생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동체적 연대와 공공성의 확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폐쇄적이고 집단이기주의적인 사회적 연결망은 공공의 이슈와 자원을 사적이익을 위해 사유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차원, 관계적 차원과 사회적 역량의 차원의 개념으로 구분된다(이재열, 2006: 86). 먼저 사회적 자본은 개인들 간의 관계에 내재해 있으면서 구체적인 행동과 규범에 영향을 미치는 원천이자 개인들이 그러한 원천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자원이라는 의미(관계적 자본, Relational capital)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자본은 어떤 공동체 내의 신뢰가 높아서 다양한 집합행동의 문제를 용이하게 풀어나가고, 사회적으로 시민의식을 높여 정책실현의 효율성과 정당성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전체적 용량(Societal capacity)이라는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농촌 지역사회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강하게 남아있는 문화적 · 사회적 규범의 특성들과 연고주의적 사회관계의 특성과 문제점(전통적인 인맥 중심의 관행)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개방성을 유지하고 연대와 협력의 사회적 역량을 증진시키는 데 걸림돌로 작동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 농촌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들이 요구된다(이재열, 2006: 86). 첫째, 주민조직이나 학습모임 등의 자발적 결사체의 활동을 조직화해서, 민주적인 지배구조 및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공동체 내 · 외부의 다른 조직들과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적(公的) 문제, 예를 들어 정책적 이슈 등을 다루는 데 투명한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고 민주적 공론장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데, 이를 위해 사람, 제도, 특히 정책과 조직의 공정성과 공공성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농촌지역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와 도시민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농촌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하다. 도시구조의 존속과 도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식량, 에너지, 자원 등은 근본적으로 농업과 농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농촌과 도시의 연계를 바탕으로 농촌에서의 지역공동체 형성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농촌과 도시의 변화 때문이다(이재열, 2006: 87-88). 첫째, 세계화와 정보화의 변동 속에서 과거와 같은 자급자족을 실현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지난 50년간의 불균형 발전의 결과와 WTO나 FTA에 따른 농산물 시장개방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농촌도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급자족 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둘째, 낙후되고 정체된 농촌에서 개방성은 발전의 핵심이다. 도시화율이 90%를 넘게 되면 영국이나 유럽의 앞선 경험처럼 더 나은 삶의 질과 쾌적한 자연환경을 추구하는 귀농 · 귀촌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개방성의 압력과 요구가 높아진 농촌은 이제 이질성의 요소들과 공존하는 법을 체득해야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기로에 서 있다. 도시의 영향력이 농촌으로 밀려들고, 농촌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교육, 의료, 문화, 복지 등의 삶의 질을 인근도시와의 연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도시와 농촌 간의 상호 보완적인 연계를 강화하는 공동체의 발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이질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갖는 결혼이민자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농촌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하면서 보다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개방성의 확대와 지역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사회문화적 통합과 다양성의 조화가 요청되고 있다.



4. 농촌 지역공동체와 리더십


1) 농촌마을 리더십의 변화와 특성


리더십의 역할은 “특정 상황하에서 집단이나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리더십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조직의 목표를 명확히 인식시키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실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농촌 마을만들기에서 농촌 마을공동체의 복원과 지속가능한 농촌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농촌주민의 조직화, 역량강화, 동기부여, 자신감 회복, 공동의 실천 등을 이루어 가는 데 리더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십의 개념은 매우 다양하게 정의된다.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특성, 리더의 행위, 리더와 구성원의 상호작용 및 관계, 구성원과 조직목표, 조직문화에 대한 영향력 등의 차원에서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다. 리더십은 리더 개인과 그를 둘러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며, 최근에는 리더의 인적 · 물적 · 사회적 측면을 ‘자본’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등장했다(허장 · 정기환, 2003).

한국 농촌마을에서 리더십의 변화의 역사를 살펴보자. 1917년에 일제 식민지 행정개편에 따라 농촌마을과 행정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는 이장이 탄생했다. 이장은 1961년의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 조치법」에 의해 임명직으로 전환되었고, 농사에 필요한 자재의 배분, 쌀 수매량 배정, 식량증산을 위한 품종개량과 재배에 관해 강력한 권한과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허장 · 정기환, 2003: 53).

해방 이후 한국농촌의 근대화는 엘리트가 주도하는 근대적이고 계몽주의적인 리더십을 요구했다. 이후 전개된 최초의 근대적인 마을만들기운동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운동에서 리더십은 국가의 산업주의적 동원 체계와 권위주의적 통치를 뒷받침하는 도구적 리더의 성격이 강했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추진되면서 1970년대 농촌사회의 지도자는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로 이원화되었다. 이들은 새마을운동의 추진 주체로서 농촌 주민과 국가정책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농과 고령화로 농촌사회의 활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장의 권한과 영향력이 행정적 보조 수준으로 떨어지고 새마을지도자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이전까지는 정부 차원의 농촌주민교육에서 농업 기술 지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농촌지역주민의 역량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농촌관광이나 농촌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전문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리더십 역량 개발을 위한 다양한 교육이 시도되고 있다. 즉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농업기술교육 중심에서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들의 역량강화교육으로 변화하는 추세이다.


2) 농촌 마을만들기와 리더십


농촌 마을만들기는 농촌마을 구성원이 주체가 되어 농촌문제에 대응하여 주민 스스로 마을 공간과 사회적 관계를 재편하는 일련의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주민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마을의 문제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해 가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마을리더는 농촌마을의 지역현안을 잘 알고 있을뿐더러 마을만들기의 의의를 인식하고 주민들을 조직화하여 함께 참여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농촌마을의 리더가 중요한 이유는 농촌마을이 처한 열악한 현실과 그것을 강제하는 보다 거시적인 조건과 힘들의 작용에 맞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과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남 광양 청매실농원이 위치한 섬진강 일대는 자연적 · 지리적 조건으로 낙후된 농촌마을이 대부분이었고, 이로 인한 인구의 감소와 지역 경제의 침체를 피할 수 없었지만 이러한 불리한 여건들을 매화를 이용하여 관광, 식품, 유통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는데 여기에는 리더의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농촌 마을만들기운동이 성공하기 위해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마을을 바꾼다. 마을을 바꾸고 새로운 공동체를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우선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마을만들기운동의 사례들은 거의 대부분 리더의 존재와 역할에 기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의 성공 모델로 소개되는 마을리더들은 관행농업을 대체하는 친환경적이고 공동체적인 기술과 농법을 수용하여 혁신적으로 적용하는 특성을 보인다.

국가의 농촌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어 마을 단위의 농촌개발사업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부의 농촌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화된 마을 단위 농촌개발사업으로 ‘녹색농촌체험마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등이 있는데, 이러한 정부정책 사업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농촌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사업신청을 강조하는 아래로부터의 개발방식을 지향하였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역량과 리더십을 갖춘 리더의 역할이 마을만들기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지역리더들은 일반적으로 비전 제시자, 지역 계획자, 지역 내 · 외부의 네트워커, 조직관리자, 의사소통자, 지역자원 발굴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리더십이 농촌 마을만들기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을만들기 리더십은 농촌마을이 직면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과 마을만들기운동의 가치와 목표를 제시한다. 둘째, 리더십은 마을 주민을 조직화하고 참여를 유도하여 주체적인 마을만들기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리더십은 마을의 자연자원뿐만 아니라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마을만들기 전략을 창조한다. 넷째, 리더십은 외부 전문가, 중앙정부 및 지자체, 다른 지역마을이나 리더들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새롭게 구축한다. 다섯째, 리더십은 마을만들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리더십은 제도적 유산을 조직화하고 인적 · 물적 자원을 전략적으로 동원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박준식 외, 2009: 55).

마을리더는 농촌마을의 조직화, 주민참여, 공동체적 유대와 협력, 정부의 정책적 지원 활용, 갈등과 이해의 조정, 비전의 제시와 교육 등의 역할을 통해 마을과 공동체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그리하여 리더는 개인적 특성과 자원을 활용하여 마을의 사회적 자본을 증진시키고 이를 활용하여 자연 자원의 특성과 정부정책을 결합시켜 마을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 내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발전에서 조직화와 리더십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요인인데 이러한 조직화와 리더십은 공동체 성원들 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사회적 자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이재열, 2006).

최근에 농촌 마을만들기운동의 성공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뒤에는 대부분 혁신적이고 헌신적이며 열정적인 마을리더들이 있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의 재생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한 명의 뛰어난 리더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명의 마을리더들이 탄생하고 이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리더십팀(leadership team)을 이루며 공동체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리더를 발굴하고, 리더십을 고양시켜, 농촌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배경 조건들과 전략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농촌공동체와 학교, 그리고 마을리더-충남 홍성 사례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마을은 새로운 농촌 만들기의 교과서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이 마을은 1990년대 초 오리 농법을 도입한 친환경농업과 생태마을만들기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농촌정책사업의 시범 · 우수마을로 선정되어 성공적인 마을만들기 모델로 소개되고 있다. 문당리의 마을만들기운동은 학교와 리더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지역의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는 농촌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혁신을 추구하는 지역리더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는 1958년도에 설립된 대안적 농업기술 학교이다. 풀무학교는 “무공해 유기농법에 기반을 둔 새로운 농법을 개발하고 참 진리를 생산하며, 흙 속에서 진리를 공동생산하는 참농부를 육성”하는 목표를 추구한다(www. poolmoo. or.kr). 풀무학교 출신인 문당리 마을지도자는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친환경농업과 자생적인 마을사업들을 기획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부의 농촌개발정책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마을만들기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5. 농촌 지역공동체와 귀농 · 귀촌


1) 귀농 · 귀촌의 개념과 의의


1990년대부터 농촌사회로 이주하는 귀농 · 귀촌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1991년 전국귀농운동본부가 결성되고, ‘귀농사모’ 등 회원 수 10만에 육박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가세하면서 귀농 · 귀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분위기는 급속히 팽창하였다. 자발적 귀농은 농촌사회가 인적자원의 유출과 부족으로 인해 직면하게 된 고령화, 공동화 등 농촌과 농업의 지속과 재생산 구조 자체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귀농 · 귀촌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4,067가구, 즉 1만 명에 육박하는 도시인구가 귀농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귀농 · 귀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다양한 귀농 · 귀촌 지원 프로그램의 운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에서도 귀농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전개하고 있다.


귀농 · 귀촌 개념에 대한 접근방식

귀농은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농촌지역으로 이주하여 농업과 관련된 직업이나 영농을 통해 경제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거주지와 직업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귀농자를 개념화하면 “귀농자는 농촌 의존형이면서 농촌환경이 유지된 거주지역의 일상생활권 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권역 내에서 주요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상시 거주자”로 정의된다(서만용 · 구자인, 2005). 그러나 최근에는 비경제적 동기, 비농업직 종사, 비상시거주 형태의 귀농자들처럼 엄격한 의미의 귀농자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귀농인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귀촌’이란 용어로 포괄하고 있다. 농사를 짓지 않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농촌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농촌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귀농 · 귀촌은 1955∼1963년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국내 베이비붐 세대는 대략 720만 명으로 추산되고, 이 세대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은퇴를 맞으면서 귀농 · 귀촌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규 귀농 · 귀촌인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회정책이다.

귀농 · 귀촌은 농촌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큰 변화이다. 인구의 과소화와 고령화로 생기를 잃고 있는 농촌공동체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는 것은 농촌 지역사회에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새로운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가진 비교적 젊은 도시민이 유입되면, 지역사회는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즉, 귀농 · 귀촌인의 증가에 따라 지역경제의 활성화, 문화 인프라의 발전, 농촌사회 조직의 부흥 등을 예상할 수 있다.

정부는 귀농 · 귀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정책을 펼쳐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09년부터 「귀농 · 귀촌종합대책」을 시행하여 본격적인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지자체 역시 다양한 정책을 통해 귀농 · 귀촌인의 지역 이주를 지원해왔다. 농촌 지역공동체의 회생과 농촌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관점에서 이러한 귀농 · 귀촌인들은 농촌 지역공동체의 변화에 매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귀농과 귀촌을 정의할 때 이론적 · 정책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고려하면 접근방식을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김철규 외, 2011). ① 귀농 · 귀촌을 도시민의 실업 대책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적 측면이나 경제적 목적으로 보는 관점, ② 귀농 · 귀촌을 사회문제 해결(‘도시의 과밀화’와 ‘농촌의 과소화’)의 방안으로 해석하는 관점, ③ 귀농 · 귀촌을 농촌공동체의 자립 및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새로운 자원이자, ‘농(農)’의 가치를 통해 현대의 도시와 농촌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보는 관점들이 그것이다.


2) 귀농 · 귀촌의 변화와 특성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이른바 생계형 귀농이 일시적으로 급증하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6,409가구가 귀농한 이후 2000년 이후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귀농 · 귀촌인구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서 2009년에 4,080가구, 2010년에도 4,067가구로, 1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귀농 · 귀촌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8-1>, <표 8-2> 참조).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그림 8-1> 2000년대 귀농 · 귀촌 가구의 변화 추이(단위: 가구)


<표 8-2> 90년대 이후 연도별 귀농 현황

구 분

합 계

‘90∼‘98

‘99

‘00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가구 수

34,379

13,595

4,118

1,154

880

769

885

1,302

1,240

1,754

2,384

2,218

4,080

4,067

누 계

34,379

20,781

17,713

18,867

19,747

20,516

21,401

22,703

23,943

25,697

28,081

30,299

34,379

38,446

구성비(%)

100

39.5

13.6

3.8

2.9

2.5

2.9

4.3

4.1

5.8

7.9

7.3

11.9

10.6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업경영과 내부 자료.


<표 8-3> 연령별 귀농 · 귀촌 현황

구 분

계(%)

‘90∼’98

‘99

‘00

‘01

‘02

‘03

’04

‘05

‘06

‘07

‘08

‘09

34,379

(100%)

13,595

4,118

1,154

880

769

885

1,302

1,240

1,754

2,384

2,218

4,080

∼29세

2,791

(8.1)

1,282

361

65

38

62

64

34

54

70

44

31

686

30∼39세

12,206

(35.5)

6,058

2,077

515

316

258

239

243

287

315

386

328

1,184

40∼49세

9,875

(28.7)

3,368

1,206

391

293

238

260

402

393

565

766

699

1,294

50∼59세

6,428

(18.7)

2,004

422

155

187

149

201

423

319

481

706

632

749

60세∼

3,079

(9.0)

883

52

28

46

62

121

200

187

323

482

528

167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업경영과 내부 자료.


귀농자의 연령분포는 <표 8-3>에서 보는 것처럼, 30~50대 귀농자가 가장 많다. 2009년 통계의 경우, 귀농자의 연령별 분포 가운데 30대가 36.4%, 40대가 28.3%를 차지하면서 청장년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층이 농촌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농촌 지역공동체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90년대 말의 일자리와 생계형 귀농과 비교해 볼 때, 최근의 귀농 · 귀촌은 농촌사회에서의 삶과 가치를 중시하여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치추구형 귀농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2010년 귀농 · 귀촌 가구의 현황은 귀농 · 귀촌의 증가 추이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8-2>에 나타난 것처럼, 2010년 귀농 · 귀촌 가구 수는 4067가구, 인구 수는 9732명(가구당 2.4명)으로 집계됐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귀농 · 귀촌자 가운데 농사를 지으려고 농촌으로 이주한 귀농이 88.9%(3615가구)였으며, 전원생활 등을 목적으로 이주한 귀촌은 11.1%(452가구)이었다. 연령별로는 50대가 35.8%로 가장 높았고 40대(30.2%), 60대(16.4%), 30대(13.6%) 순이었다. 귀농 · 귀촌 후 농촌에서 주된 종사분야는 벼나 배추 같이 생산기술과 자본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노지작물을 재배(경종분야)하는 경우가 47.2%를 차지했고 과수(17.8%), 시설원예(10.9%), 축산(7.7%) 순으로 많았다. 귀농 전 직업은 자영업이 33.1%로 가장 높았고 사무직(19.0%), 생산직(10.8%) 등의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경북으로 이주한 가구가 27.3%로 최고였다. 이어 전남(18.9%), 전북(15.0%), 경남(13.2%) 등의 순이었다. 이러한 귀농 · 귀촌 가구의 급증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공동체와 생태적 가치의 추구, 경제적 목적, 정부의 귀농정책 등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 8-2> 2010년 귀농 · 귀촌 가구의 특성(단위: 가구)


귀농 · 귀촌 가구의 급증을 2000년대 마을만들기운동의 확산과 연관 지어 살펴보면,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자생적 공동체가 추진하는 각종 마을 단위 지역개발사업이나 마을만들기에서 귀농 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한 자원과 동력이 되고 성공모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귀농 · 귀촌에 대한 농촌정책과 운동의 관심이 크게 증대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마을 또는 지역에 귀농 · 귀촌을 장려함으로써 부족한 인적자원을 확보하고 마을만들기의 새로운 주체로 설정하려는 관점의 변화와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귀농 · 귀촌현상이 증대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들을 배경으로 한다. 농촌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가치의 변화가 그것이다. 즉, 농촌지역에 대한 관심과 도시민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도시 거주자의 56.3%가 농촌지역으로 이주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고, 2007년 농촌진흥청이 특별 · 광역시에 거주하는 35세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서도, 은퇴 후 농촌에서 자연과 벗하는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의사를 밝힌 사람이 10명 중 6명 정도인 64.1%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인식과 수요의 증대는 도시적 삶을 대신하여 농촌 공간과 자연이 제공하는 어메니티 자원 및 사회문화적 자원, 그리고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과 지향을 반영한다.

귀농자의 정착 과정에 대한 실증적 조사연구의 사례를 보면, 귀농을 처음 결심한 이후에 실제 귀농까지 이르는 시간은 평균 19.8개월이다. 귀농자들은 낮은 경제적 소득에도 불구하고 높은 생활 만족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귀농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생계유지수단, 가족의 반대, 귀농지 선정, 영농기술 습득과 농지확보 순서 등으로 나타났다(서만용 · 구자인, 2005).

귀농의 성공은 정착 농촌지역의 주민들과 커뮤니티와의 융합과 적응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먼저 귀농을 하는 근본적인 철학과 가치가 정립되어야 하고, 이를 귀농마을 지역사회와 조화시키며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귀농에 실패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토착 농민들과의 불화와 갈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개별적 귀농이 아니라 집단적 마을형태로 귀농 · 귀촌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러한 경험과 고민의 결과에서 나온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귀농 · 귀촌현상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나타낸다.

첫째, 농업을 직접적인 경제활동 수단으로 선택하지 않는 비농업적 귀농, 즉 귀촌이 늘어나고 있다. 둘째, 영농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 성찰적이고 가치 추구적 삶을 위한 비경제적 목적의 생태적 귀농이 늘고 있다. 셋째, 과거와 달리 고학력 전문직의 귀농 · 귀촌이 크게 증가했다. 넷째, 귀농마을, 전원마을 등 개별적인 귀농이 아니라 10∼30여 가구가 공동의 단지를 조성하여 집단적으로 이주하는 귀농 · 귀촌마을(귀농 커뮤니티) 위주로 이루어진다.

귀농 · 귀촌마을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마을만들기의 형태이자 그 안에서 자발적이고 자체적인 규약과 질서가 구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2008년 말 완공된 충남 서천의 산너울마을은 귀농 · 귀촌자들을 위해 지은 최초의 공동체형 생태마을이다. 2006년부터 3년간 서천군이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전원생태마을 전문 사회적 기업인 (주)이장이 컨설팅과 기획을 맡아 흙벽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34가구가 태양열 발전, 빗물재활용 시설 등을 갖추면서 귀농자들로 구성된 생태 공동체마을이 탄생하였다. 이 외에도 지방자치단체의 귀농 지원 조례 제정 및 실질적 지원책이 실행되고 있다. 전북 진안군의 새울터마을, 장수군의 하늘소마을, 경북 상주 귀농마을, 충북 괴산의 민들레마을 등이 10∼30여 가구로 구성된 귀농 · 귀촌자들의 마을공동체이다. 특히 전북 진안군은 귀농 행정체계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중앙정부(농림부)에서도 2004년부터 전원마을조성사업을 통해 귀농자 중심의 마을단지를 개발하고 있으며, 2009년 4월에 귀농 · 귀촌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농림부가 지원하는 전원마을조성사업, 농어촌 뉴타운, 그리고 최근 유행처럼 확산되는 지자체의 귀농지원 마을단지 조성은 의도하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별도의 귀농마을이 조성되면서 기존의 토착 주민들과 커뮤니티가 단절된 귀농자들만의 폐쇄적 공동체나 집단 거주지가 될 수 있다. 과연 이들이 농촌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인적자원이고 농촌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인지에 대한 평가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귀농 공동체 사례-“전북 남원시 산내면-귀농1번지”

“산내면 일대에는 250∼300명 정도의 귀농인이 거주한다. 주민의 10%가 넘는 수치다. 실상사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이들은 대부분 실상사 귀농학교를 거친 사람들이다. 산내면은 산촌이라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곳으로 귀농하기에 적합한 농촌은 아니다. 그런데도 산내면이 귀농인에게 최고 인기 귀농지로 꼽히는 이유는 뭘까. 일단 심심하지 않다. 사람들이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하면서 어울린다. 여유로운 전원생활과 생태적인 농업을 꿈꾸는 낭만적 귀농의 수요를 충족시킨다. 귀농인이 현지인과 어우러져 공동체는 없지만 공동체 의식이 있는 독특한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또 다른 이유는 자녀 교육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근에 대안학교도 많고 귀농인 비율이 많아 아이들도 많은 편이며, 귀농인들 가운데 전문성을 살려 미술, 영어 강사를 맡고 있다.”

-출처: 시사IN, 2009. 10.3 · 10, 107 · 108 합본호 48쪽


전북 진안군에 귀농 · 귀촌한 사람들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김철규 외, 2011), 귀농 · 귀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귀농준비기간, 지역사회 및 주민들과의 사회적 관계, 가족들의 지지 등이 중요한 요인이다. 귀농 · 귀촌의 동기와 지향을 중심으로 유형을 구분했을 때는 경제적 목적이나 개인적 효용(건강, 전원생활)보다 농촌사회가 지닌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형에서 만족도와 성공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귀농 · 귀촌인의 삶의 양식과 지역공동체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귀농 · 귀촌인들과 원주민들 간에도 서로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귀농 · 귀촌의 증가는 농촌사회로의 인구유입과 이들의 전문적인 역량과 리더십을 활용하여 농촌 지역사회의 활력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자발적 생태 귀농자들이 농촌 마을만들기에 중요한 인적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도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와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귀농 · 귀촌자의 정착뿐만 아니라 이들의 자원과 역량을 적극적인 도농연계와 새로운 농촌 마을만들기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6. 농촌 지역공동체의 재구조화와 과제


농촌 지역공동체의 재구조화는 앞에서 논의한 사안들 외에도 다양한 지점에서 진행될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는 농촌경제의 활성화와 자립을 위해 순환과 공생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며,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공동체에 필수적인 소통과 자치에 기반을 둔 풀뿌리 민주주의를 착근시켜야 할 때이다. 다문화사회,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역민주주의 또는 마을민주주의,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상생이 이러한 농촌 지역공동체의 재구조화의 단면이자 과제이다.


1) 다문화사회


농촌 지역공동체의 문화적 변동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다문화사회의 등장이다. 농촌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는 농촌총각이 결혼하지 못하는 현상들과 결부되어 있다. <표 8-4>에서 보듯이 2005년 시점에서 농촌청년의 미혼율은 51.3%로 농촌가구의 남성 미혼자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표 8-4> 지역 및 성별 혼인상태의 인구구성비의 비교(30∼39세, 2005년)

지 역(성)

미혼

유배우

이혼

사별

농      가(남)

100.0

51.3

44.3

3.9

0.5

읍 · 면부(남)

100.0

29.6

67.3

2.8

0.3

농      가(여)

100.0

15.3

82.2

1.7

0.8

읍 · 면부(여)

100.0

  8.8

87.6

2.8

0.8

출처: 대한통계협회, 『2005년 농림어업총조사 종합분석』, 2007.


농촌현실이 어려워지고 불편해지면서 농민과의 결혼을 기피하는 한국 여성들이 점차 늘어났고, 급기야 결혼 적령기를 넘긴 농촌총각들은 해외에서 배우자를 찾게 되었다.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한국으로 시집오는 이주여성들과 한국 농촌남성들 간의 국제결혼이 급증했다. <표 8-5>는 농촌지역 국제결혼율의 변화추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국내 총 결혼건수에 비해 농림어업종사자의 결혼건수는 2%대에 머물러 있다. 이 가운데 국제결혼 비율이 2004년 27.4%에서 2005년 35.9%로 급증하였으며, 2008년에 결혼한 농림어업 종사자 중 41.1%가 국제결혼을 했다. 특히 농촌지역으로 분류되는 읍 · 면 거주 농촌총각 중 44.5%가 외국출신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지역에서 일어나는 혼인의 절반 가량이 외국인여성과 국내 농촌총각 간의 국제결혼인 셈이다(이해진, 2011).


<표 8-5> 농촌지역 국제결혼율 변화추이(단위: 건, %)

연 도

총 결혼건수

농림어업자결혼건수(%)

국제결혼건수(%)

2004

310,944

6,629(2.1)

1,814(27.4)

2005

316,375

8,027(2.5)

2,885(35.9)

2008

327,715

4,959(8.7)

2.038(41.1)

2009

309,759

4,341(8.2)

1,679(38.7)

출처: 통계청, 연도별 혼인통계결과.


한편 여성농가 중에서 이주여성농업인(농업에 종사하는 여성결혼이민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9,508명으로 전체 여성농가인구의 0.5%에 불과하던 것이 2020년에는 74,034명으로 늘어나 전체 여성농가인구의 6.2%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 자녀 수는 2005년 12,516명으로 19세 미만 농가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2명의 자녀를 낳을 것으로 가정할 경우 2020년에는 130,331명으로 19세 미만 농가인구의 49.0%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된다(농민신문, 2009. 11. 23).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제 우리의 농촌 지역공동체는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다민족 · 다문화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최근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농촌지역 2개의 마을 중 1개 마을에는 거의 외국인 며느리가 살고 있으며, 농촌주민 10명 중 3명 정도가 국제결혼이주여성과의 교류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컨대,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증가와 다문화가정이 급증하면서 농촌 지역공동체는 다문화사회의 통합과 소통이라는 새로운 재구조화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2) 커뮤니티 비즈니스


새로운 농촌 지역공동체를 향한 경제적 차원의 노력들은 농촌경제의 순환, 공생, 자립을 향한 다양한 실험들로 진화해 나간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농촌형 사회적 기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란 용어를 영국의 사례에서 발굴하여 일본에서 처음 사용한 호소우치의 정의에 따르면,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 커뮤니티를 기점으로 주민이 친근한 유대관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을 말한다. 또한 지역 커뮤니티에서 잠자고 있던 노동력, 원자재, 노하우, 기술 등의 자원을 활용하여 자발적으로 지역 문제의 해결에 착수하고, 바로 비즈니스로 성립시키며,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호소우치, 2006: 15).” 또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그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 내 유휴자원을 활용하여 비즈니스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아가는 조직체 또는 사업”으로 규정된다(김윤호, 2010). 요약하면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문제와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라 지역주민이 지역자원을 활용하여 수행하는 공동체적 사업이나 조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과 사업이 늘어나기 시작한 배경은 무엇보다 농촌지역 경제의 자립적 생존이 불가능하게 된 사회구조적 현실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경제의 침체와 붕괴 위기에 직면하여 농촌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대안적 생존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농산물개방에 따른 농업과 농촌경제의 위기를 국가지원이나 시장경쟁이 아닌 내생적이고 공동체적인 방식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밖에도 마을만들기운동, 지역자원 및 다원적인 농촌기능의 재발견, 농촌관광의 증대, 지역먹을거리운동, 도농교류의 증대, 귀농 · 귀촌의 증가, 농촌형 일자리창출 모색 등이 최근 들어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활성화시키는 배경들이다. 한편,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의 사례는 지역공동체의 문제와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그 범위가 결정된다. 즉 농촌지역 사회서비스(복지, 보육, 교육, 의료, 돌봄서비스)와 식품가공, 마을만들기, 전통공예, 역사 및 문화자원, 지역금융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업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흙살림’이나 ‘(주)이장’과 같이 농촌형 사회적 기업이 로컬푸드를 매개로 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실현하며 보급시키고 있다. 여기에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단체, 소비자 네트워크들이 커뮤니티 비즈니스 협력자로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공동체 회사가 모두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실행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사업들이다. 지식경제부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센터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면서 생활공동체가 주인이 되는 지역순환경제를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자체 사례로는 전라북도 완주군이 2010년 완주 커뮤니티 비즈니스 센터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1년부터 54개의 농어촌공동체 회사를 육성하기 시작해서 2015년까지 3,000개의 농어촌공동체 회사, 즉 농촌지역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조직을 육성할 계획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규정하는 농어촌공동체 회사란 ‘지역주민 또는 귀촌인력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기업경영방식을 접목하여 지역의 인적 · 물적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농어촌지역의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이러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농촌 지역공동체를 경제적 측면에서 재구조화하는 새로운 활동이다. 농촌형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목표는 지역공동체의 경제를 자립하고 순환시킬 수 있는 구조로 바꾸기 위해 지역사회의 내생적 요인들인 주민주체와 지역자원을 활용하여 사업적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과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마을만들기운동, 사회적 자본, 귀농 · 귀촌인의 협력, 리더십과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농촌형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농촌 지역공동체가 이전처럼 자립적인 생활공동체의 단위로 부활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호혜와 연대를 핵심가치로 삼는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 경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실험이다.


3) 마을민주주의와 도농상생


농촌 지역공동체의 재구조화를 위한 정치적 과제는 마을민주주의의 확립이다. 2011년 9월, 충남 공주의 한 농촌마을에서 마을 이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 원인은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사업을 마을에 유치하면서 발생한 마을 간, 주민 간의 갈등과 비난 때문이었다. 이장으로서 그 책임을 혼자 감수하며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은 농촌 지역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건이 바로 농촌사회의 민주주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농촌사회의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질서와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규범과 조직, 연대와 협력의 유산들이 대부분 사라지거나 파괴되었다. 반대로 개인적 이익을 앞세운 개인화,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편가르기와 배타적 태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공동체적 삶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적 자본의 붕괴이며, 통합하고 소통하는 규범과 질서가 부재하는 아노미적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농촌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농촌의 마을민주주의가 요구된다. 과거의 지연 · 혈연 중심의 결속적 사회관계나 전통적 권위가 부재한 오늘날의 농촌사회에서 지역공동체의 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민주적 의사결정과 합의를 이끌어내 해결할 수 있게 만드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치의 시스템이 착근될 필요가 있다. 농촌 마을 내의 회의나 조직을 활성화시켜 그 안에서 민주적 리더십, 참여와 소통, 협동과 공생 등의 마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작은 민주주의의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농촌 지역공동체만들기는 마을만들기운동을 포함하는 동시에 더 확장된다. 이는 농촌마을을 산업주의적이고 개발주의적인 관점에 따라 도시적이고 시장경쟁적인 방식으로 재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듦에 따라 공동체성과 사회적 관계성을 회복하여 활력을 띠는 공간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또한 교육과 문화 소득의 불균형이 해소되어 삶의 질이 높아지는 살기 좋은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 자연, 역사, 지역성을 보존하는 생태주의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작업이다.

그러한 공동체적 마을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이다. 생태적 가치와 공생적 나눔의 미덕이 공동체 내부에서 작동하고 나아가 다른 공동체와 도시로까지 확대되고 연계되는 것이다. 또한 귀농 · 귀촌인처럼 이질적이고 낯선 이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규범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일이고, 국제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처럼 혼종된 주민들과 함께 기존 농촌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융합하며 새롭게 뿌리내리는 공동체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을만들기를 통한 공동체적 지향은 대안적 지역공동체 형성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실험과 전환을 통해 농촌 지역공동체는 도시와 농촌의 연계와 상생이라는 보다 확장된 가치를 지향한다. 이는 지역공동체가 재구조화되는 네트워크적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농촌성(rurality)에서 도시와 연계된 호혜적 공간(reciprocal community)으로 농촌 지역공동체의 공간적 의미의 재구성이 모색되는 것이다. 이러한 농촌 지역공동체 만들기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해소하는 동시에 도시와 농촌의 상생과 공존이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실천 전략이자, 서로를 필요로 하며 호혜적인 교류를 증대시키며 대안적인 공간과 사회를 추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농교류와 호혜적 상생을 위해서는 농촌 마을공동체의 복원과 시민적 결사체의 강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농촌마을의 공동체성을 복원한다는 의미는 과거의 공동체의 원형을 가정하거나 그것을 부활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농촌사회 구성원들 간의 상호 신뢰와 연결망을 강화하는 것이며 농촌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공생에 필요한 공공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는 집합적 호혜와 연대를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도시에 농촌을 심는 발상의 전환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도시농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또한 ‘친농인(rural-friendly people)’ 또는 ‘농시민(rural-citizen)’, 즉, 농업과 농촌에 친화적인 도시민을 양성하는 것도 새로운 농촌공동체만들기 전략의 하나가 될 것이다. 농업농촌 교육, 농촌체험, 로컬푸드, 학교급식, 먹을거리교육이 수단이 될 수 있다. 단, 도시의 사회적 필요와 소통하되 그것에 종속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농촌 지역공동체를 추구하는 1차적인 이유는 농촌사회와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고 구성원들이 건강한 삶의 질과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도시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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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거리

  1. 현대사회에서 농촌과 농업이 지닌 다원적인 의미와 가치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농촌과 농업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2. 일반적으로 농촌사회를 전통적인 공동체사회라고 말할 때, 어떤 특성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오늘의 농촌사회에서 그러한 요소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아보자.

  3. 새로운 농촌 지역공동체 형성이 왜 필요하고, 대안적 농촌공동체를 향한 다양한 시도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도시와 도시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토론해 보자.

  4. 농촌공동체의 회복과 새로운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각자(내가, 대학생이, 청년세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5. 귀농 · 귀촌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다문화가정, 도농교류와 관련된 실제 사례들을 찾아서, 당사자들의 생각과 이야기, 이러한 현상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구조적 원인, 그리고 문제점과 바람직한 대안들을 논의해 보자.


더 읽을거리

강대기, 2004,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는 가능한가』, 아카넷.

김재현, 2009, “한국의 지역 만들기와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전략적 도입”, 『커뮤니티비즈니스 한 · 일포럼: 지역재생과 자립을 위한 대안찾기』.

박원순, 2009,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검둥소.

야마모토 마사유키, 2005, 충남발전연구원 역, 2007,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마을만들기』, 충남발전연구원.

이사 아쓰시 외 편, 최선주 외 역, 2007, 『시민이 참가하는 마치즈쿠리』, 국토연구원.

하승수, 2007,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후마니타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1991, 『한국자본주의와 농촌사회』, 사회문화연구소.

Woods, Michael, 2011, RURAL, Routledge.





제9장 농촌복지


박대식


주요 개념 및 용어

복지, 농촌, 농촌복지, 생활실태, 복지욕구, 농촌복지정책,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 사회보장제도,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보건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 기초생활 여건


경북 영양군에 사는 김○○씨(여, 67세)는 20살에 나이가 자기보다 아홉 살이 더 많은 이○○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1명을 두었다. 남편은 평생 벼, 고추, 담배 등을 주로 재배했는데 5년 전에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아들(45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가서 여러 가지 장사를 하여 한 때 상당한 재산을 모으기도 했으나 IMF 외환위기 때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현재는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 며느리(37세)는 가정불화로 3년 전에 가출하여 가족들과 소식을 끊고 지내고 있다. 그리하여 김 할머니가 손자(15세, 중학교 2학년)와 손녀(12세, 초등학교 5학년)를 돌보고 있은 지가 2년이 넘었다. 현재 김 할머니는 고추농사 300평, 벼농사 1,000평을 짓고 있으나 품삯, 농기계 이용료, 농약값 및 비료대금 등을 지불하고 나면 세 식구의 끼니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서울에 사는 아들은 김 할머니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데도 현재 김 할머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서울에 사는 아들이 아파트(25평)를 소유하고 있고, 김 할머니도 주택(오래된 기와집)과 전답(1,500평)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농촌에는 김 할머니 사례와 같이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가출, 생사불명, 생활고 등의 이유로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 총 조사의 가구유형 통계에 따르면, 농촌의 조손가족은 36,468가구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조손가족은 농촌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조손가족의 애환은 영화 ≪집으로≫20)에 잘 나타나 있다.

실제로 손자녀를 양육하는 농촌의 할머니 · 할아버지들 대부분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데다 부모 없는 자식을 양육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사회적 편견 등이 겹쳐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이들 조손가족을 위한 정부의 대책은 별로 없다.

이와 같이 농촌에는 실제 생활은 대단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농촌 실정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인하여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장에서는 농촌복지란 무엇이며, 농촌복지가 왜 필요한가에 대하여 살펴본다. 그리고 농촌주민의 생활실태와 복지욕구를 소득, 보건의료, 교육, 기초생활여건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또한 우리나라 농촌복지정책의 추진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여 농촌복지정책 및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자 한다.



1. 농촌복지란 무엇인가?


복지를 의미하는 영어의 ‘welfare’는 ‘지내다’, ‘살아가다’는 의미의 ‘fare’에 ‘만족스러운’ 혹은 ‘적절한’이란 의미의 ‘wel’이 합쳐져서 ‘만족스럽게 지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Webster사전에서는 ‘welfare’를 ‘안락하고 만족한 생활상태’ 또는 ‘인간의 건강과 번영의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농촌복지(rural welfare)는 농촌과 복지의 합성어이다. 즉, 농촌복지는 농촌에서 실행하는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농촌이란 행정적으로는 읍 · 면지역을 지칭한다. 그러나 법적인 측면에서 농촌이란 「농어업 · 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읍 · 면지역’과 ‘읍 · 면 이외의 지역 중 그 지역의 농어업, 농어업 관련 산업, 농어업 인구 및 생활여건 등을 고려하여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고시하는 지역’을 말한다. 따라서 농촌복지의 대상은 농촌에 거주하는 농업인21)뿐만 아니라 비 농업인을 포괄한다. 즉, 농촌복지의 대상은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 전체라고 할 수 있다.

‘농촌복지’는 협의적 개념과 광의적 개념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협의적 개념에서 볼 때, ‘농촌복지’란 ‘농촌에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국가와 사회단체, 기타 민간부문에서 도움을 주는 시책’을 말한다. 한편 광의적 개념에서 볼 때, ‘농촌복지’란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상태, 안녕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상과 관련된 개념으로서 ‘농촌주민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향상시키고 삶의 기회(life chance)를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삶의 질’이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풍요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의 기회’란 ‘물질적 풍요나 정신적 만족이 특정 사회집단에 편중되지 않고 골고루 분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광의적 개념의 ‘농촌복지’란 ‘농촌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반 정책과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농촌복지는 농촌주민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복지서비스), 보건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 기초생활여건 개선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농촌복지가 왜 필요한가?


농촌복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시장개방이 확대되어 외국 농산물의 수입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농가경제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고,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서 농촌지역에서의 비농업부문의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그리하여 각종 삶의 질 지표(예를 들면, 가구소득, 보건의료서비스 수준)에 있어서 도농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농촌사회 내부에서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어서 농촌복지가 필요하다(박대식 외, 2006).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행 복지정책은 농업 및 농촌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농촌복지가 필요하다. 기존의 복지정책에 농업의 산업적인 특성(예를 들면, 계절성, 자연조건의 영향 등)과 농촌의 지역적 특성(예를 들면, 취약한 인프라, 산재되어 있는 고객 등)을 반영하여 농촌 현실에 맞게 개선하지 않는다면 복지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농업에 종사하거나 농촌지역에 거주하면서 상대적으로 불리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농업과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도 농촌복지가 필요하다.

또한 농촌사회의 초고령화, 다문화가족 · 독거노인 · 조손가족의 급증, 귀농 · 귀촌 인구의 증가, 가족 · 이웃 · 지역공동체의 복지기능 약화 등으로 인해서 농촌지역에서의 복지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 농촌복지의 획기적인 개선 없이는 농업발전이나 농촌사회의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3. 농촌주민의 생활실태와 복지욕구


1) 소득


농림어업의 GDP는 23.4조 원(’08)으로 우리나라 전체 GDP의 2.5% 수준이다. 농가소득(평균)은 1985년 5.7백만 원에서 2006년 32.3백만 원으로 증가하다가 2009년에는 30.8백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농가소득 중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5년 64.5%에서 2009년 31.5%로 줄어들었다. 도농 간의 소득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즉, 1995년에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의 95%이던 것이 2009년에는 66%로 하락하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지역(읍 · 면부) 응답자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00만 원 미만’이 56.5%, ‘100∼150만 원 미만’이 11.9%의 순으로 나타나 월평균 가구소득이 15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이 2/3 이상임을 알 수 있다(<표 9-1> 참조). 그리고 통계청(2007)의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읍 · 면부)주민의 소득 만족도는 ‘만족’ 10.2%, ‘보통’ 37.8%, ‘불만족’ 52.0%로 나타나 소득 만족도가 아주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9-1> 월평균 가구소득 분포(단위: 명, %)

농촌(읍 · 면부)의 월평균 가구소득

빈 도

비 율

         100만 원 미만

100∼150만 원 미만

150∼200만 원 미만

200∼250만 원 미만

250∼300만 원 미만

300∼350만 원 미만

350∼400만 원 미만

          400만 원 이상

484

102

  73

  66

  49

  37

  12

  34

56.5

11.9

  8.5

  7.7

  5.7

  4.3

  1.4

  4.0

857

100.0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a.


빈곤실태를 살펴보면, 최저생계비를 이용한 빈곤수준이 농촌지역은 18.2%인 반면에 도시지역은 8.5%로 농촌지역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 빈곤의 경우, 농촌지역이 도시지역에 비해서 중위소득 40% 미만에서는 14.5%P, 중위소득 50% 미만에서는 18.1%P, 중위소득 60% 미만에서는 19.9%P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표 9-2> 참조).


<표 9-2> 도농 간 빈곤수준 비교*(단위: %)

구 분

최저생계비 미만

상대적 빈곤

중위소득 40% 미만

중위소득 50% 미만

중위소득 60% 미만

농 촌

도 시

18.2

8.5

27.7

13.2

36.8

18.7

44.3

24.4

전 체

9.4

14.6

20.4

26.3

주: 경상소득 및 가구 기준, 2007.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b.


2) 보건의료


통계청(2008)의 자료에 의하면, 2주간의 조사대상 기간 동안 0세 이상 농촌인구 중 질병이나 사고로 아팠던 사람의 비율인 ‘유병률’은 21.8%, ‘평균 유병일수’는 9.0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05년 기준 농촌주민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고혈압’ 34.3%, ‘고지혈증’ 18.0%, ‘당뇨병’ 9.5%로 나타나 도시주민(고혈압 26.2%, 고지혈증 16.8%, 당뇨병 7.7%)보다 높았다.

2007년 기준 농촌의 보건의료기관 수는 6,857개로 도시(46,057개)의 1/7 수준이고, 농촌의 병상 수는 74,970개로 도시(375,149개)의 1/5 수준으로 나타났다(<표 9-3> 참조).


<표 9-3> 보건의료기관 수(단위: 원)

구 분

종합

병원

요양

병원

병원

의원

결핵병원

한센

병원

정신

병원

치과

병원

치과

의원

한방

병원

한의원

부속

병원

조산원

농 촌

  20

137

187

  3,516

0

1

28

4

  1,543

17

1,375

25

 4

  6,857

도 시

282

456

758

22,749

3

0

79

147

11,737

121

9,520

157

48

46,057

출처: 보건복지가족부, 2008.


2007년 농가 및 어가의 ‘월평균 보건의료비’는 각각 143,029원, 128,167원으로 도시근로자가구(111,985원)에 비해 많이 지출하였다(통계청, 2008). 질병치료 시 농촌주민들의 애로사항으로는 ‘치료비가 많이 든다’(43.1%), ‘의료기관이 멀다’(24.3%),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다’(19.6%), ‘의료서비스 질이 낮다’(11.6%) 등이며, 농촌의 보건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의료비 인하 · 지원’(26.7%), ‘종합병원 건립’(21.5%), ‘보험혜택의 현실화(16.5%), ‘의료기관까지의 이동시간 단축’(12.4%), ‘의료인력수준 향상’(12.1%), ‘의료장비 현대화’(10.1%) 등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08).


3) 교육


농촌의 학교 수는 2000년 4,589개교에서 2008년 4,526개교로 감소하였고, 학생 수는 2000년 1,323,741명에서 2008년 1,119,882명으로 감소하였다. 그리고 1982년부터 소규모학교 통폐합정책을 추진한 결과, 2005년까지 5,058개교를 통폐합하였다. 농촌의 소규모학교(학생 수 100인 이하) 비율은 47.9%이며, 농촌의 ‘복식학급 초등학교’는 745개이며, 복식학교 비율은 28.6%로 나타났다(한국교육개발원, 2008).

도농 간 교육격차는 농촌지역의 학교 수 및 학생 수의 지속적인 감소와 결손가정의 증가, 도시지역에 비해 낮은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부족한 정책적 지원 등의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농촌지역 학생들은 도시지역에 비해 학업성취도와 대학진학률이 낮고, 지역주민의 교육서비스 만족도와 평생학습 참여도가 낮게 나타나는 등 학교교육과 사회교육 모두에서 교육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실시한 200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결과에 따르면, 읍 · 면지역 학생들의 경우 국어, 수학, 영어 과목 모두 도시지역에 비해 우수와 보통 학력을 지닌 학생비율은 낮은 반면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비율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지역에는 도시지역에 비해서 보습학원이나 예체능학원 등 사교육시설이 크게 부족하다. 그리하여 농촌 학생들은 도시 학생들과 동등한 교육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도농 간 학력차이를 심화시키고 도시지역으로의 유학을 추진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촌지역 학부모의 자녀 사교육기회 만족도도 도시지역 학부모에 비해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즉, 농촌지역 학부모의 자녀 사교육기회 만족도는 만족 7.0%, 보통 46.3%, 불만족 46.7%인 데 반해서 도시지역 학부모의 자녀 사교육기회 만족도는 만족 13.5%, 보통 56.7%, 불만족 29.7%로 나타났다. 농촌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는 ‘교육비 부담경감’이 37%로 가장 많았으며, ‘교육시설 현대화’ 22.1%, ‘우수교사 확보’ 17.9%, ‘교육정보화 촉진’ 8.2%, ‘우수학생 지원제도 도입’ 7.7% 등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08).


4) 기초생활여건


농촌주민의 기초생활여건은 주택, 교통, 상하수도, 문화 및 여가생활 여건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주택의 경우, 주택의 노후도,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을 주요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주택의 노후도는 건축년수가 25년 이상인 주택의 비율로 측정할 수 있는데 2005년 기준으로 농촌(읍 · 면부)은 24.5%인 데 비해서 도시(동부)는 9.1%로 나타났으며, 면부지역은 30.0%나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율을 살펴보면, 군지역의 경우 4가구 중 1가구는 최저한의 주거기준22)에 미달하는 주택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9-4> 참조).


<표 9-4>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율(단위: 호, %)

구 분

일반가구 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율

군지역

1,678,560

447,875

26.7

도 · 농복합시

3,899,600

535,050

13.7

일반시

3,047,931

223,809

  7.3

출처: 김혜승, 2007.


2005년 기준 농촌 주택 중 빈집의 비율은 9.5%이며, 그중 39%가 12개월 이상 비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석면 슬레이트 처리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여(1동당 약 400만 원) 소유주가 빈집 정비(철거 비용 보조는 1동당 100만 원) 신청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기준 농촌(군부)의 도로포장률은 73.5%로 도농복합시(74.9%)나 특별 · 광역시(98.2%)보다 낮았으며, 2006년 기준 농촌(읍 · 면부)의 상수도 보급률은 59.5%인 데 반해서 도시(동부)는 98.7%로 나타났다. 도로와 관련하여 농촌주민들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대중교통의 경우 노선이 단순화되고 운행횟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2006년 기준 농촌(군부)의 하수도 보급률은 42.1%로 도농복합시(72.8%)나 일반시(97.1%)에 비해서 훨씬 낮았다.

농촌의 기초생활여건(주택, 교통,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에 대한 만족도는 ‘만족’ 32.5%, ‘보통’ 34.8%, ‘불만족’ 32.7%로 나타났으며, 기초생활여건 불만족요인은 ‘교통’(57.6%)이 가장 높고, ‘쓰레기 처리’(22.0%), ‘상하수도’(13.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08).

문화 · 여가생활 여건에 대하여 살펴보면, 전반적인 소득수준 향상, 주5일제 정착 등으로 문화 · 여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커지는 데 비해 도농 간 관련 인프라 격차가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공연, 전시, 문화 · 복지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농촌지역의 ‘문화 · 예술 시설’ 수가 도시지역의 1/4 수준23)에 불과하다.

농촌지역의 인구감소로 공연장, 전시장(미술관, 화랑), 영화관 등의 단위인구 당 시설 수는 도시지역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다만 행정구역(시 · 군) 단위 및 단위 면적당 시설 수는 도시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아 주민의 접근성이 낮다. 농촌지역 내에서도 도농통합시와 일반 군지역 간에 편차가 크게 나타나며 프로그램 내용 등 질적 수준은 도시에 비해 아주 열악한 실정이다.

농촌지역의 도서관, 문화여가시설(시 · 군민회관, 복지회관, 청소년수련시설 등) 등도 인구기준으로는 도시지역보다 양호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설이 도시 위주로 편중되어 있어서, 대도시의 경우 군지역에 비해 평균 10배 이상의 문화여가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시설의 규모나 문화 · 여가 프로그램 운영 등 서비스의 질적 수준도 농촌은 도시에 비해서 크게 열악하다.

그리고 농촌주민들은 문화예술 시설 및 프로그램의 부족, 접근성의 제약 등으로 인해서 문화 향유에 대한 참여도도 도시주민들에 비해서 낮다. 예를 들면, 농촌주민의 문화 · 예술프로그램 관람률은 도시주민들에 비해서 낮을 뿐 아니라 군지역의 경우 관람률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표 9-5> 참조).


<표 9-5> 연간 예술행사 관람률(단위: %)

연간 예술행사 관람률

2006

2008

전 체

65.8

67.3

대도시

69.6

70.6

중소도시

63.2

67.6

군지역

57.0

48.9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2008.


통계청의 2007년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주민이 문화 · 예술행사(2007년 기준)에 대하여 만족하는 비율은 35.7%이고, 불만족하는 이유는 ‘내용이 다양하지 못해서’(60.1%), ‘수준이 낮아서’(37.0%), ‘주변시설 부족’(23.1%), ‘행사횟수 부족’(21.6%), ‘행사시설 부족’(17.0%) 등으로 나타났다. 농촌주민들은 주말 및 휴일 여가시간을 주로 가사일과 휴식에 사용하고 있으며, 도시주민들에 비해서 별도의 여가활동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주민들이 여가시간에 가장 하고 싶은 활동은 여행(53.6%), 휴식(21.7%), 자기 개발(19.1%), 스포츠(16.4%), 문화예술 관람(15.3%) 순이었다.



4. 우리나라 농촌복지정책의 추진 실태와 문제점


우리나라 농촌복지정책의 추진 실태와 문제점은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 및 정책 추진체계, 사회보장제도(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복지서비스), 보건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 기초생활여건 개선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 및 정책 추진체계


(1)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이하 ‘삶의 질 향상 특별법’이라 함)」(’04. 3. 5 공포, 6. 6 시행)은 농림어업인 등의 복지증진, 농산어촌의 교육여건 개선 및 농산어촌의 종합적 · 체계적 개발의 촉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농림어업인 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삶의 질 향상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는 농림어업인 등의 복지증진, 농산어촌의 교육여건 개선 및 지역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5년마다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기본계획」(이하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이라 함)을 수립하여야 한다.

2005년 4월에는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1차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5개년(’05∼’09) 기본계획」(이하 ‘제1차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이라 함)을, 그리고 2005년 6월에는 시행계획을 수립하였다. 5년간 총 20.3조 원의 투융자계획(복지 3조 4,226억 원, 교육 3조 1,373억 원, 지역개발 11조 2,480억 원, 복합산업 2조 4,552억 원)으로 총 133개 과제를 추진하였다.

「제2차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5개년(’10∼’14) 기본계획」(이하 ‘제2차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이라 함)의 비전은 삶터, 일터, 쉼터가 조화된 행복한 농어촌을 구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2차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의 비전은 기초생활 인프라와 복지기반이 갖추어지고,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며, 누구나 찾고 싶고 살고 싶은 농어촌을 만드는 것이다.

제2차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의 추진전략은 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2대 선진제도(농어촌서비스기준, 농어촌 영향관리 가이드라인)를 도입하고, ② 지역이 주도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체계를 구축하며, ③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정책의 추진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농어촌서비스기준은 농어촌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요구되는 공공서비스 항목과 그 항목별 최소한의 목표수준으로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농어촌 정책추진 시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서비스기준은 8개 분야(주거, 교통, 교육, 보건의료, 사회복지, 응급, 문화여가, 정보통신)에 31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어촌 영향관리 가이드라인(농어촌영향평가제도)은 농어촌인구의 분산거주, 불리한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정부정책이 농어촌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사전 점검하고, 불리한 차별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또한, 제2차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은 7대 부문(보건 · 복지 증진, 농어촌 교육여건 개선, 기초생활 인프라 확충, 농어촌 경제활동 다각화, 문화 · 여가여건 향상, 농어촌 환경 · 경관 개선, 지역발전 역량 강화)별 추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제2차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 기간(’10∼’14) 중의 총 투융자규모는 34조 5천억 원 수준으로 국비 22조 7천억 원, 지방비 11조 1천억 원, 기타 7천억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4년 1월 29일에 제정 · 공포된 「농어촌주민의 보건복지 증진을 위한 특별법」(이하 ‘농어촌 보건복지 특별법’이라 함)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상 진전과 자유무역협정(FTA)의 확산에 따른 농산물시장의 개방으로 경제 · 사회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농어촌에 대하여 보건의료기반의 조성 및 사회복지 증진에 관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여 농어촌주민의 보건복지 증진을 도모한다.

보건복지부장관은 농어촌 보건복지사업의 체계적인 추진을 위하여 농어촌의 복지수준에 관한 실태조사를 5년마다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농어촌보건복지기본계획과 연도별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해야 한다.

「제1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05∼’09)」은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수립하여, 제10차 사회문화정책관계장관회의 심의(’05. 6. 16)를 거쳐 최종 확정 · 발표하였다. 5년간 총 2조 9,331억 원의 투융자계획으로 농어촌 사회안전망 확충 및 보건의료공급 기반 개선에 관한 총 35개의 과제를 추진하였다.

제2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10∼’14)의 비전은 ‘더불어 행복한 농어촌, 건강하고 활력 있는 농어촌’이다. 제2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10∼ ’14)의 목표는 ① 농어촌 주민의 기본생활 보장 및 사회통합 강화, ② 농어촌 보건의료 기반 개선 및 농어촌 주민의 건강증진이다.

제2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10∼’14)의 추진방향은 ①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하여 농어촌 주민의 건강하고 안정된 노후생활 도모, ② 다문화가족 증가에 따른 사회 구성원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사전적 투자 확대, ③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 제공, ④ 아동 · 여성 · 가족의 복지욕구에 적극적으로 대응, ⑤ 지역별 의료접근성의 격차의 최대한 완화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제2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10∼’14)의 추진과제는 크게 3개 부문(기본생활보장 강화, 연령 · 세대 사회통합, 보건의료기반 개선 및 건강 증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34개 세부 추진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제2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 기간 중(’10∼’14)의 총 투융자규모는 4조 5,421억 원으로 국비 2조 6,410억 원, 지방비 1조 9,011억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 농촌복지 관련 정책 추진체계

농촌복지 관련 중앙정부의 정책 추진체계로는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위원회’,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의 농촌복지정책 관련 조직 등을 들 수 있다.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위원회’는 「삶의 질 향상 특별법」에 의거하여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11개 중앙 부처 장관, 농림어업인단체 대표, 관련 전문가 등을 위원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위원회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실무위원회’를 두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복지정책 관련 조직으로는 농어촌사회과, 농어촌정책과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보건복지가족부의 농촌복지정책 관련 조직으로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관련 부서 및 ‘저출산고령사회정책실’ 등을 들 수 있다.

지자체에서는 농촌복지정책이 각 사업에 따라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센터, 농정과, 사회복지과 등으로 나뉘어져서 추진되고 있다.


(3)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 및 정책 추진체계의 문제점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 및 정책 추진체계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초고령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복지정책이 크게 부족했다. 도시보다 20년 이상 앞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초고령 농촌사회에 적합한 농촌형 복지정책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다.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이 이원화되어(삶의 질 향상 특별법과 농어촌 보건복지 특별법) 있어서 정책 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농촌복지 특별법 관련 위원회의 운영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농촌복지 전문 인력도 크게 부족하고, 농림수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가족부 등과 같은 중앙부처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농촌복지정책기능은 취약한 데다 농촌복지 관련 부처 및 기관 간의 협조 및 조정체계도 미약하다. 더구나 2005년부터 중앙정부의 많은 복지사업들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었는데 이러한 지방이양사업들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관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농촌복지에 대한 인식 부족, 단체장의 의지 미약 등으로 인해 농촌복지사업이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면 도농 간 복지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단기적인 선거 전략 위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장기간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농촌복지사업은 더 이상 추진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사회복지서비스를 농촌주민들에게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전달체계도 부족하다. 현행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는 복지 수요자가 광범위한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농촌 실정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읍 · 면지역의 복지 관련 공무원들의 업무과중도 심각한 실정이다. 또한, 기존의 농촌복지 프로그램은 대부분 주어진 예산에 따라 사업을 짜 맞추는 식의 공급자 위주였기 때문에 복지 수요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그리고 농촌복지정책도 지역주민이나 지역단체의 적극적 참여를 바탕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즉, 지방자치단체, 농협,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을 통한 지역사회의 역할이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2) 사회보장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사회보험은 노동능력(지불능력)이 있는 국민이 사회보험료를 내고 약속된 급여를 받는다. 공공부조는 소득과 재산 수준이 낮고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는 가난한 국민이 무료로 급여를 받는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주로 보호자가 필요한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의 생존과 자립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말한다.


(1) 사회보험

농촌주민에게 적용되는 사회보험으로는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을 들 수 있다.


국민연금 은 모든 경제활동계층을 대상으로 하여 가입자가 노령, 장애,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에 처해 소득이 감소하거나 상실되는 경우 본인이나 유족에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연금형태의 급여를 제공한다. 1988년에 산업 및 임금 근로자를 중심으로 처음 도입되었으며, 1995년 7월부터 농어촌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2010년 9월 기준 국민연금의 농촌지역가입자 수는 195만 명이다.

농어업인은 가처분소득의 부족, 연금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국민연금 미가입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통계청의 2008년 농림어업인 복지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어가의 국민연금 미가입률은 44.4%(도시주민은 28.5%)로 나타났다. 농어업인의 국민연금 신고소득액도 사업장 가입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다. 이로 인해 연금 수급 시 연금액이 작아 노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농업인들은 연금가입기간이 짧아(농업인 107개월, 지역 126개월, 사업장 119개월) 수령할 수 있는 기본연금액이 크지 않다. 여성의 연금 가입률도 상대적으로 낮다(농림어가 14.9%, 도시 20.3%).

이처럼 국민연금은 현재의 농촌주민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연금 수급자도 소수에 불과하고, 2000년 말부터 받고 있는 특례노령연금도 월평균 12∼15만 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은 질병, 부상이라는 불확실한 위험의 발생과 분만, 사망 등으로 인해 개별 가계가 일시에 과다한 의료비를 지출함에 따라 겪게 되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국가가 법으로 정하여 실시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1977년에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처음 도입된 이후, 농촌지역에는 1988년에 도입되었으며, 1989년 7월부터 도시지역의 자영업자까지 포함함으로써 전 국민에게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국민건강보험은 본인이 부담하는 비중이 50% 이상에 이를 정도로 보장성이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농촌주민에 대한 보험료 경감 수준 및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고용보험 은 실직근로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전통적 의미의 실업보험사업 외에 적극적인 취업알선을 통한 재취업의 촉진과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고용안정사업, 직업능력개발사업 등을 상호 연계하여 실시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1993년에 고용보험법이 제정되어 1995년부터 고용보험제도가 시작되었다.

고용보험의 주요 사업으로는 고용안정사업, 직업능력개발사업, 실업급여 사업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고용보험 가입 농업 관련 사업장 수(2009년 4월 기준)는 8,820개이고, 가입 근로자 수는 51,187명에 불과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은 산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책임을 지는 의무보험으로 원래 사용자의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 책임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소정의 보험료를 징수하여 그 기금(재원)으로 사업주를 대신하여 산재근로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이다. 산재보험은 1963년에 제정되어 1964년에 근로자 500인 이상 규모의 광업 및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도입되었다.

산재보험의 경우, 2000년 7월부터는 근로자 1인 이상 규모의 전체 사업장(농업, 임업, 어업, 수렵업은 5인 이상)으로, 2005년 1월부터는 근로자 1인 이상 규모의 농림어업 법인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산재보험 가입 농업부문 사업장 수(’07년)는 3,818개이고, 가입 근로자 수는 34,528명에 불과하다.24) 많은 선진국에서는 개별 농업인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농림어업 법인에 속한 근로자로 한정되어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05년부터 3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2008년 7월부터 실시되고 있다. 그동안 가족의 영역에 맡겨져 왔던 치매 · 중풍 등 노인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간병, 장기요양문제를 사회연대원리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분담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농어촌지역에서 시행 초기부터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어 제도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낮은 주민 인지도, 지나치게 엄격한 등급판정체계, 과중한 본인부담금, 요양시설의 지역 간 불균형 및 난립 등으로 인하여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2) 공공부조

공공부조의 대표적인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는 절대빈곤층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하되 자립 · 자활 서비스를 통한 생산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 빈곤에 대한 사회적 책임(국가책임)을 강화하는 종합적 빈곤대책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과거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한 것으로 2000년 10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지원내용으로는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등이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소득인정액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또는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어야 한다. 2006년도 지원대상자 162만 명 중 농촌주민은 전체의 20%인 약 32만 명 정도이다. 그러나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제도 운영에서 농촌의 특수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농촌주민은 소득평가액 및 재산의 소득환산액 산정, 부양의무자 기준, 부양능력 판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농촌은 빈곤인구비율에 비하여 수급인구비율이 너무 낮다. 한국복지패널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빈곤인구비율 대비 수급인구비율은 대도시는 93.5%, 중소도시는 66.3%인 데 비해 농촌은 48.6%로 나타났다(<표 9-6> 참조). 그리고 농촌지역에서는 자활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고,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산간지역 주민들은 읍 또는 시내로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마저 크게 부담이 되고 있다.


<표 9-6> 지역별 빈곤인구율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률 비율(2007)

구 분

빈곤인구비율(A)1)

수급인구비율(B)

비율(B/A*100)

대도시

6.6

6.2

93.5

중소도시

6.8

4.4

65.3

농어촌

14.8

7.2

48.6

전 국

7.4

5.5

74.1

주: 1)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구 비율.

출처: KOWEPS(한국복지패널데이터) 2차 원자료.


기초노령연금 은 생활이 어려운 노인의 생활안정 지원을 목적으로 2007년에 도입되어 2008년 1월부터 실시되고 있다. 지원은 2008년 1월부터 6월까지는 70세 이상 노인의 60%, 2008년 7월부터 12월까지는 65세 이상 노인의 60%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2009년 1월부터는 65세 이상 노인의 70%까지 확대되었다. 즉,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전체 노인 중 소득과 재산이 적은 70%(’09년)의 노인에게 지급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액(2011년 4월 기준)은 노인 단독가구는 월 최고 91,200원, 노인 부부가구는 월 최고 145,900원이다.


(3) 사회복지서비스

농촌 사회복지서비스의 현황과 문제점은 노인, 영유아, 장애인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노인복지서비스: ‘2008년 지방자치단체 복지종합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 재가노인복지시설 충족률은 농촌지역이 중소도시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역별 편차는 농촌지역 내에서 더욱 심각하였다. 이것은 향후 재가노인복지시설 인프라 확충에 있어서 농촌 지자체 간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함을 나타낸다. 농촌노인에 특화된 노인복지서비스로는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을 들 수 있다. 영농도우미사업은 질병(입원 5일 이상), 상해(2주 이상 진단) 농가에 영농도우미를 지원하는(영농도우미 인건비의 70% 지원, 10회 이용 가능) 것이다. 가사도우미사업은 고령농가 등 농촌 취약농가에 가사도우미를 지원하는(최대 12회로 월 1회 수준) 것이다. 영농도우미사업은 지원요건(연령 75세 미만, 농지소유 5ha 미만 등)이 너무 까다롭다는 민원이 많고, 가사도우미사업은 타 부처사업과의 중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많다.


영유아복지서비스: 도농 간 복지격차가 매우 심각하다. 즉, 농촌에는 영유아보육시설이 전혀 없는 지역이 아직도 많고, 특히 24개월 미만의 영아보육시설이 크게 부족하다. 게다가 농업인들은 오후 늦게까지 농작업에 종사하고, 휴일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에 종일운영, 휴일운영 등 다양한 운영 방식을 희망하고 있지만 이에 부응하지 못해 농촌 실정에 맞는 보육프로그램이 부족하다. 또한 농촌 보육시설의 물리적 환경 및 설비가 열악하여 보육시설의 공간이 협소하고, 교재, 실내 온도 및 습도 조절기구, 관련 도서, 장비 등이 크게 부족하다.


장애인복지서비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06)의 ‘2005년 전국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촌 거주 장애인의 41%가 65세 이상 노인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농촌 거주 장애인의 월 평균 소득(126만 원)은 도시 장애인의 월 평균 소득(165만 원)의 7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농촌 거주 장애인 가구에 대한 추가적인 소득 지원대책이 필요하다. 농촌 거주 장애인의 주거현실은 출입구의 턱이 높고 실외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등 아주 열악한 실정이다. 그리고 농촌 거주 장애인의 가구소득을 높일 수 있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및 사회적 일자리가 부족하다. 또한 농촌은 도시보다 의료재활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노인장애인의 비중이 높은 데, 장애인복지관 및 재활병 · 의원 등 의료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기관은 도시보다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3) 보건의료서비스의 현황과 문제점


농촌의 보건의료서비스는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등과 같은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일해야 하는 농업노동의 특성상 농부증(농부증 의심 포함) 환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나 아직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아 치료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민간 의료기관과 의료 인력의 공급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도농 간의 격차도 계속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민간 병 · 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지역은 의료서비스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시설, 인력, 기능마저도 취약하다. 그리고 농어촌발전특별세사업은 보건소의 시설개선에 집중되어 보건지소 및 보건진료소에 대한 지원은 크게 부족했다. 그동안 보건소의 시설 · 장비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나 병원수준의 진료기능은 아직도 미흡하다. 보건지소는 면 단위 1차 진료기관이기 때문에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밀착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공중보건의 1인과 간호사 1∼2인이 배치되어 있고 처방과 투약이 제한되어 있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4) 교육서비스의 현황과 문제점


현행 농촌 교육서비스에서는 지역사회의 여건과 특성을 반영한 학교 육성 및 학습 프로그램이 미흡하여 교육문제와 지역의 공동체 활성화 및 사회 · 경제발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이 부족하다. 그리고 소규모학교가 증가하고 복식수업 등이 늘어나고 있는 데 비해 관련 교육교재, 프로그램 등의 개발 및 보급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농촌 현실에 맞는 평생학습 기반 및 프로그램이 미흡한 데다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설마저 부족하여 자기계발 등의 평생학습에 대한 주민 참여비율은 낮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육사업이 지방(교육청)으로 이양되어 중앙 단위에서의 사업계획 및 관리에 한계가 많은 실정이다.

이 밖에 현행 농촌 교육서비스의 문제점으로는 ① 농업인 및 농촌주민들의 교육비 부담 경감을 위한 지원(농업인 고교생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 농촌 출신 대학생에 대한 학자금 지원, 농어촌학생 기숙사 이용확대 등)이 현실과 괴리가 크며, ② 농어촌학생 대학특별전형은 수도권 4년제 대학 및 국공립대학의 경우 농촌지역의 현실적 수요에 못 미치는 실정이며, ③ 도시에 비해서 학교 내외의 특기적성교육의 기회가 극히 부족하다.


5) 기초생활여건 관련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


현행 기초생활여건 관련 정책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마을 단위 위주의 지역개발사업 추진으로 인해서 정주체계(마을-읍 · 면-중심도시)별 특성을 반영한 개발이 미흡하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농촌 중심지 개발의 투자효율은 높은 편이나, 상당수의 개발사업이 마을 단위를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생활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는 거점(읍 · 면 소재지)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아 인근 도시에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받는 등 서비스 접근성도 열악한 실정이다. 또한 최근 지역개발 분야에서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으나, 지방 주도의 개발을 뒷받침할 효과적인 추진체계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현행 관련 정책은 기존 주민뿐만 아니라 농촌 이주 희망 도시민에게도 매력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개발모델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5. 농촌복지정책 및 제도 개선방안


1) 기본방향


첫째, 사회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령통합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즉, 세대 간의 통합과 균형, 파트너십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연령통합의 효과로는 생애주기의 유연화(교육, 노동, 여가가 전 생애에 걸쳐 균형 있게 시행되고 개인의 욕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 연령차별주의의 완화, 성장 동력의 유지 등을 들 수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계층 · 지역 간의 양극화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생산적 · 참여적 복지정책을 실천적으로 추진하여 수요자 중심의 농촌복지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농촌주민들을 위해서는 생산적 사회참여를 통해 자립과 자활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근로능력이 없는 농촌 저소득 계층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보장해야 한다. 그동안 저소득층 위주로 추진되어 온 복지정책을 농촌주민 전체로 확대하고(전 국민 보편적 복지의 실현)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 있어서 주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복지’는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정책과정에서도 농촌복지정책의 핵심 수요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셋째, 중앙 및 지방 정부의 복지정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복지재정이 상당히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복지지출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농촌복지정책 추진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관련 예산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복지에 있어서 지방정부의 역할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개별화와 지역성이 강조되는 사회복지서비스 영역에서 지방정부의 역할 증대가 필요하다.

넷째, 도시보다 20년 이상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농촌인구의 고령화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농촌인구의 장기적 전망에 바탕을 둔 앞서가는 노인복지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노인복지의 패러다임이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고령화”로 바뀌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농촌노인을 소극적인 사회복지의 수혜 대상으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다가올 노동력 부족 시대에 대비하여 노인인력의 생산적 활용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농촌형 노인일자리사업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또한 농촌주민의 다양한 복지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정부의 제도적 노력과 더불어 민간부문의 참여와 자원 활용을 통한 다원적 복지제공이 필요하다. 민간부문의 복지 참여는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나 특정 인구집단이나 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사회문제 등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민간에서 제공하는 복지는 공공복지의 부족분을 보충하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계층을 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보호할 수 있다.


2) 관련 법 및 제도의 개선


첫째,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 및 기본계획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원화되어 있는 「농촌복지 관련 특별법」(「삶의 질 향상 특별법과 농어촌 보건복지 특별법」)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며, 중장기적으로는 통합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농촌복지 특별법 관련 위원회의 운영을 활성화해야 한다.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여 단순한 자문위원회가 아니라 실질적인 종합 · 조정과 기획 및 평가기능을 갖는 위원회로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 이 위원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안건이 제출되어 회의를 통해 이를 정리하고 위원회 차원의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원회 사무국의 기능과 조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농림수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 중앙부처의 농촌복지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둘째, 국가정책이 농촌에 불리하게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농어촌영향평가제도(Rural Proofing)를 도입하고, 이를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위원회’의 주된 기능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농어촌영향평가제도는 정부의 정책이 도시와 비교하여 농촌지역과 농촌주민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지 않는지, 정책으로 인해서 농촌이 가지고 있는 다원적 가치의 훼손은 없는지를 정책설계 단계부터 검토하여 도농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셋째, 지방이양사업을 개선해야 한다. 지자체가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 등에서 감시 ·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지방이양사업 시행 여부가 지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유인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미 지방으로 이양된 사업일지라도 지자체, 관련 단체, 전문가, 지역주민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필요하다면 국가사업으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재정상태 등을 고려하여 농촌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국고지원 비율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농촌복지 전문 인력을 양성 · 배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농촌복지 관련 교과과정 및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촌복지론’을 개발하여 사회복지학과 및 관련 학과에 적용하거나 ‘지역사회복지’ 과목에서 농촌복지 관련 내용을 중요하게 다루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 담당자(특히, 읍 · 면지역의 경우)를 대상으로 ‘농촌복지론’ 교육을 의무화하고,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농촌복지 전문연구인력을 충원 · 양성해야 한다.


3) 농촌복지 부문별 주요 정책과제


(1) 사회보장제도의 개선


① 사회보험

국민연금의 경우, 보험료 부과체계를 농업인들의 소득활동을 반영하여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인의 실제 소득에 가장 근접한 소득 수준을 객관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연금제도의 기본적인 특징, 소득보장체계에서의 국민연금의 역할, 기금관리, 연금정책, 관련 제도 등을 농촌주민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교육 및 홍보를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또 농업인 가입자에 대한 국고보조를 계속하고 보조를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연금보험료 지원방식을 농가 단위 지원에서 농업인 부부 개별 지원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부가 별도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본인 부담금은 감소하면서도, 향후 연금 수급액이 많아지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농업인의 국민연금 가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경우, 보험료 부과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휴 · 폐경 농지, 빈 축사 등은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한 자료를 제시하는 경우에는 부과표준소득 산정에서 특례적용(경감 확대 또는 제외)을 해야 한다. 그리고 빈 축사 · 농업용 트럭 등 교환가치가 낮은 농업시설물 · 장비에 대한 재산비례보험료 부과를 폐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보험료 부과방식을 소득비례 단일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농업인의 국민건강보험료를 소득계층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경감해 주는 방안을 마련하여 사회적 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

산재보험의 경우, 우선 농업인특별가입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농업인안전공제는 사망 또는 장해 시 지급하는 공제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공제료 지원 수준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산재보험 수준의 보장이 될 수 있는 농업인안전공제 상품을 개발하고, 농업인의 공제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농업인의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산재보험과 유사한 ‘농업인 재해보험제도’의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고용보험의 경우는 농촌주민 및 농촌 소재 사업체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고용보험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경우, 첫째, 장기요양인정 및 등급판정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등급판정 시 치매나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2∼3회에 걸쳐서 조사를 하고, 등급판정항목에 정신 · 신경 관련 내용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의사소견서를 제출하지 않아서 등급판정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중보건의사 등을 활용하는 ‘찾아가는 의사소견서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지역별로 적정 수준의 노인장기요양기관을 유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방문요양, 방문목욕 등을 제공하는 재가급여기관은 이미 공급과잉 상태이므로 기존의 기관들을 내실 있게 발전시켜 가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가급여기관이 신규로 무분별하게 설립되지 않도록 시 · 군 · 구에서 설치를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수진을 확보하도록 하고 이론 및 실습교육이 계획표대로 제대로 실천되도록 감독해야 한다. 또한, 현재 많은 농어촌 장기요양기관에서 구인난을 겪고 있는 영양사, 물리치료사, 간호사와 같은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인건비 지급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4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가입을 확실하게 보장하여 요양보호사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다음은 저소득층의 본인부담금 경감방안을 현실화해야 한다. 현행 본인 부담금은 재가급여의 경우는 최대 월 12∼17만 원이고, 시설급여의 경우는 월 25∼29만 원(월 25∼30만 원 수준의 비급여 항목을 포함하면 월 50∼60만 원)으로 농어촌 저소득층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발표한 저소득층 본인부담금 지원방안은 농어촌의 경우 국민건강보험료 하위 15%(9천 명)에 대하여 본인부담금(비급여 항목은 제외)의 50%를 경감하는 것이다. 이 개선안을 좀 더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농어촌 저소득층의 기준을 국민건강보험료 하위 20∼30% 수준으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일부 주민을 제외한 대다수의 농촌주민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따라서 신문, TV, 라디오, 이장단회의, 영농교육, 농업인단체 모임 등을 활용하여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홍보 및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끝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관련한 지역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관련 각종 통계자료를 시 · 군 · 구별로도 작성하여 공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인장기요양보험 관련 사항을 요양기관별, 동부(도시) 및 읍 · 면(농촌)별로도 검색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농촌주민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② 공공부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 우선적으로 소득평가액의 산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농업인의 실제소득 계산방식에 있어서는 현행 ‘농축산물 표준소득표’는 중상위 기술 수준의 선도농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이므로 영세농가에 적용할 때에는 표준소득액의 일정비율만큼 감액하여 적용해야 한다. 중 ·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선도농 대상의 소득조사를 확대하여 영농계층(영농규모)별로 세분화하여 영세농가의 노동능력과 영농실정에 맞는 농업소득 산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난방비, 교통비 등도 가구특성별 지출비용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재산의 소득환산액 산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재산 종류별 소득환산율(일반재산 월 4.17%, 금융재산 월 6.26%, 승용차 월 100%)은 현재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감안하여 대폭 인하해야 한다. 그리고 농업생산활동에 이용되고 있는 농지는 농작물의 판매에 따른 순소득만을 평가해야 하며 재산의 소득환산액 계산에 이중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농업생산 활동에 이용되지 않는 휴 · 폐경농지, 빈 축사 등은 재산의 소득환산액 산정 시에 소득환산율을 낮추거나 산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리고 부양의무자 기준에 있어서는 부양능력 판정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현행 부양능력 판정 소득기준(‘부양능력 없음’ 기준의 경우, 부양의무자가구 최저생계비의 130%)은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으므로 우선 최저생계비의 185% 수준으로 상향조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중위소득 기준까지 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양능력 판정 재산의 기본공제액 기준(현행 중소도시 4인 가구 기준, 1억 850만 원)도 상향조정하여 현실화해야 한다.

끝으로, 현행 농어민 특례제도를 좀 더 현실성 있게 개선하고, 농어촌의 자활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농어민 특례제도의 경우, 예를 들면, 농어업에 직접 사용된 대출금의 이자상환액 전부를 소득평가액 산정 시 지출요인으로 인정하고, 소득평가액 산정 시 제외되는 직접지불금의 종류를 확대해야 한다. 농촌의 자활지원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역자활센터를 중심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자활지원체계를 확립하고, 농촌 실정에 맞는 자활사업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현행 기초노령연금 소득인정액 산정 시 친환경농업 직불금, 조건불리지역직불금, 경관보전직불금 등은 제외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쌀소득보전 직불금은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는 쌀소득보전직불금 등을 기초노령연금 소득인정액 산정 시 제외토록 특례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각종 직불금이 소득인정액에서 제외되면 기초노령연금 수급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③ 사회복지서비스

노인복지서비스에 있어서는 재가노인복지시설이 지역 간에 균형 있게 설치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노인들의 서비스 접근성 또는 노인들의 이용 편의성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독거노인에 대한 노인돌보미 파견 및 노인장기요양 등급외자에 대한 가사 및 활동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농지 외에 별도의 소득원이 없는 고령농을 위해서 2011년부터 도입된 농지연금제도25)가 계획대로 잘 정착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의 경우, 영농도우미사업은 지원요건(예를 들면, 75세 미만, 입원 10일 등)을 좀 더 현실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으며, 가사도우미사업은 농어촌 경로당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사회적 일자리사업, 사회적 기업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영유아복지서비스에 있어서는 먼저 농촌 취약지역에 국공립 보육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농협과 여성농업인 조직이 중심이 되어 마을회관, 경로당 등의 시설을 이용한 공동보육을 활성화하고 운영비 및 전문교육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농번기에는 보육전공 대학생의 실습, 대학생 보육농활 등을 통해 보육교사를 확보하고 연장보육, 야간보육, 24시간 보육, 휴일보육 등과 같이 농촌 보육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보육수당 등을 지급하여 농촌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해야 하며, 보육시설의 차량 운영비 지원(현재 20만 원/월)을 차량 수 및 운행거리 등을 감안하여 현실화해야 한다.

장애인복지서비스에 있어서는 먼저, 보호작업장, 근로작업장과 같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확충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확대하여 취업을 희망하는 농촌 장애인들이 지속적으로 일을 하여 가구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 거주 장애인들에 대한 의료재활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복지관을 새로 설치하거나 기존 장애인복지관의 분관 등을 추가로 설치하고 더불어 보건소의 방문진료사업과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장애인 의료재활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농촌에는 저상버스 등의 대중교통수단과 장애인전용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의 운행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현실을 감안하여 농촌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 복지관버스, 셔틀버스 등과 같은 다양한 교통수단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농촌 거주 장애인의 주택을 장애인이 생활하는 데 편리하게 개조할 수 있도록 주택개량자금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2) 보건의료서비스의 개선

첫째, 농촌 공공 보건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재편해야 한다. 보건소는 지역 보건의료의 중심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행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민간병원이 부족한 지역의 보건소는 병원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시설 · 인력 · 장비를 확충해야 한다. 보건지소는 1차 보건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물리치료실, 1차 의료장비, 이동진료차량 등을 지원하도록 한다. 보건진료소는 노인 및 ‘거동불편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맞추어 방문간호, 응급처치, 건강교육 위주로 특화하고, 방문보건의료기기세트와 같은 기본 장비를 보강해야 한다.

둘째, 주치의(단골의사)제도를 도입하고 공공 보건의료 인력의 안정적인 확보 및 자질 향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치의는 지역주민의 평생건강관리 책임자로서 1차 진료를 담당하면서 질병예방 및 재활사업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읍 · 면별로 적정 수의 주치의를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 등으로 공중보건의사 자원이 크게 부족하게 될 것을 감안하여 앞으로 농촌 공공 보건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대책(예를 들면, 고향의사제도)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농촌형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응급의료기관이 없는 농촌(43개 군)에는 응급의료 시설 및 장비, 인력을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농약중독, 농기계 사고, 위급한 질환자의 발생 등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지역별로 응급구조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농부증과 같은 농촌지역의 특수 질병에 대한 예방 및 치료 대책을 강구하고,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 경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3) 교육서비스의 개선

교육서비스에 있어서는, 첫째, 농촌 특성을 반영한 학교를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 전원학교 및 연중 돌봄학교 육성, 기숙형 고교 운영 내실화 등을 통해 농촌 현실에 맞는 교육 · 복지 학교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농촌 전원학교는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첨단 e-러닝 시스템을 바탕으로 우수 공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율학교로 육성해야 한다. 연중 돌봄학교에서는 농촌 취약지역 학생의 학력을 신장하고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해서 교육 · 복지 종합서비스를 연중 지원해야 한다. 기숙형 고교는 학교 수를 확대하고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의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비 등을 지원하도록 한다.

둘째, 농촌주민의 평생교육기반을 확충하고 평생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지역에 특화된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개발을 지원하고, 농촌주민의 평생학습 이용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평생교육에서 소외된 고령농업인, 다문화가족 등을 위한 맞춤형 평생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이 밖에 농업인 고교생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 대상의 경지규모의 기준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농촌 출신 대학생에 대한 학자금 지원 및 기숙사 이용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 학생의 학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4) 기초생활여건의 개선

기초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마을-소생활권-거점읍 · 면-중소도시’로 이어지는 지역개발의 기본 패턴을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규 마을을 조성하고 기존 마을을 재개발하여 인구유입을 유도해야 한다. 마을 재개발은 기존 마을 주민과 이주 희망 도시민이 공동으로 추진하도록 한다. 그리고 영농 · 생활권 단위로 권역화(3∼5개 마을)하여 소득기반 확충, 생활환경 정비, 경관 정비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자체에 예산과 권한을 부여하고, 중앙정부는 간접 지원하는 상향식 개발체계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주택부문에 있어서는 농촌 주택개량을 확대하고, 슬레이트 지붕 철거 처리를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주택을 보다 쉽게 신 · 개축할 수 있도록 주택개량을 위한 융자금 지원한도 및 지원물량을 확대해야 한다. 마을경관 개선 등을 위해서 농촌 빈집 정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슬레이트 지붕 개량 시 농촌 주택개량사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노후 슬레이트 처리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통부문에 있어서는 농촌주민의 교통편의와 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 도로정비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교통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벽지노선 운행버스 손실비용을 지원하고, 순환버스 운행 지원, 수요 대응형 교통수단 제공 등 지역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낙도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해상교통수단을 제공하고 교통비 부담을 완화시켜 줄 필요가 있다.

상 · 하수도부문에 있어서는 상수도 보급을 확대하고 수질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면 단위 상수도 보급을 확대하고, 상수도 공급이 어려운 자연마을은 간이상수도를 설치하되 지자체의 관련 기준에 따라 수질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농업 · 생활용수가 부족한 지역은 암반관정 개발 및 이용시설(정수시설, 송 · 배수관, 물탱크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농촌의 오폐수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환경부의 ‘농어촌 하수도 개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농촌의 하수도 보급률(’07년 45.7%)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문화 · 여가부문에 있어서는 첫째, 농촌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생활친화(공감)형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문화원, 농협 등을 활용하여 농촌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회관, 경로당 등으로 찾아가는 문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농촌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 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희망 대한민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문화 바우처(공연 · 전시 관람료 지원), 복지관광, 문학 나눔(우수 문학도서 보급)사업 등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셋째, 농촌 학교의 문화예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농촌 학생들의 문화 감수성 및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 등과 같은 분야의 문화예술 강사를 농촌 학교에 우선적으로 지원(파견)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강사의 자원으로는 귀농 · 귀촌자, 인근 대학 또는 군부대의 관련 전공자, 문화예술 단체의 전문가 등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농촌의 전통문화를 계승 ·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참고문헌

김태완 외, 2009, 『농어촌의 보건복지수준에 대한 실태조사 연구』, 보건복지가족부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혜승, 2007, 『최저주거기준을 활용한 2006년 주거복지 소요추정 연구』, 국토연구원.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위원회, 2009, 『제2차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5개년 기본계획』.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2008, 『2008 문화향수실태조사』.

박대식 외, 2006, 『농촌사회의 양극화 실태와 정책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대식 외, 2008,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기본계획(’05∼’09) 중간평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대식 외, 2009, 『삶의 질 향상 기본 · 실행계획 추진 평가 및 제2차 기본계획 수립 연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건복지가족부, 2008, 『주요업무 참고자료』.

보건복지가족부, 2010, 『농어촌주민의 보건복지증진을 위한 제2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10∼’14)』.

통계청, 2007, 『사회통계조사 결과』.

통계청, 2008, 『2008년 농림어업인 복지실태조사 보고서』.

한국교육개발원, 2008, 『교육통계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6, 『2005년 전국 장애인 실태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a, 『농어촌지역 보건복지욕구 전화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b, 『한국복지패널조사』.


이야깃거리

  1. 우리나라 농촌지역의 복지수준은 도시지역에 비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뒤떨어져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토론해 보자.

  2. 농촌은 인구 고령화가 도시보다 20년 이상 앞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미 초고령사회이다. 인구 고령화가 농촌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복지 대책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3. 농촌에는 실제 생활형편은 아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토론해 보자.

  4. 최근 농촌학교 통폐합에 대한 대안으로 ‘작은 학교 가꾸기 운동’이 강조되고 있다. 작은 학교의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토론해 보자.

  5.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석면 슬레이트는 우리나라 농촌에서 아직도 흔히 볼 수 있는 지붕 재료이다. 농촌의 석면 슬레이트 지붕 철거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6. 우리나라 농촌의 인심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농촌의 미풍양속을 현대 복지제도와 연계하는 방안에 대하여 토론해 보자.


더 읽을거리

권구영 외, 2007, 『농어촌사회문제론』, 공동체.

김상균 외, 2005, 『사회복지개론』, 나남.

김영란 외, 2008, 『지역사회와 복지』, 공동체.

박대식 외, 2010, 『농어촌 취약계층의 생활실태와 정책 개선방안: 독거노인과 조손가족을 중심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태영, 2008, 『지역사회복지론』, 학현사.

이용교 외, 2010, 『농어촌복지론』, 광주대학교 출판부.





제10장 농업과 먹을거리


김종덕


주요 개념 및 용어

농업, 먹을거리, 잉여생산, 농업의 기능, 문화, 전통적 식량체계, 슬로푸드, 세계식량체계, 산업형 농업, 글로벌푸드, 패스트푸드, 비만, 푸드마일, 지역식량체계, 지역농업, 로컬푸드, 농민시장, 공동체지원농업, 기관급식, 직거래, 생협, 먹을거리 공동체, 관행농업, 음식교육, 식량자급률, 공동생산자, 음식시민


“농민 없는 미래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휴대폰을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쌀과 채소와 과일이 필요합니다. 요리에만 관심 있고 농업에 관심이 없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농업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먹을거리만 얘기하는 것은 먹을거리 포르노입니다. 농업과 먹을거리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농업 없이 먹을거리는 없습니다.”

(슬로푸드협회 회장 카를로 페트리니의 2010년 9월 9일 고려대학교 강연).



1. 농업의 등장과 사회변화


사람의 생존에 음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람이 지구상에 살기 시작하면서 먹을거리의 확보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에 인류는 먹을거리를 채취와 수렵에 의존했다. 인류학자 모간에 의하면 인류는 열매, 견과, 뿌리를 먹기 시작하다가 어류를 잡아먹고 불을 사용한 다음 활과 화살을 이용한 사냥 단계로 나아갔다(프리드리히 엥겔스, 김대웅 역, 1985). 사람들이 채취와 수렵으로 먹을거리를 확보한 시기에는 먹을거리의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소비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계절이나 여건에 따라 때로 필요를 넘어서는 양을 확보하기도 했겠지만, 전반적으로 식량부족의 상태를 면치 못했다. 수렵과 채취는 노력과 결과 사이에 확실한 연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었다(마이클 폴란, 조윤정 역, 2008). 그리하여 수렵과 채취의 시기에는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굶어 죽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인류가 생존에 필요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게 된 것은 작물을 파종하고 재배하여 수확한 이른바 농업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인류 역사에서 농업의 시작은 10,000여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업은 임신과 양육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렵과 채취에 불리했던 여성들의 발명품이다. 농업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종자를 주거지 인근의 공터에 심어 수확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종자도 몇 가지 안 되었고, 수확이 보잘것없었으며, 생산량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농사가 잘 될 때와 안 될 때의 수확량이 많이 차이가 났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특정 토양에 맞는 작물과 종자를 찾아내게 되었고, 그 종자에 맞는 투입재와 영농기술이 적용되면서 점차 생산량이 늘어났고, 생산량도 안정적이 되었다. 또 수확이 예측가능해졌다.

사람들은 농업의 시작과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야생 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비교적 다루기에 온순한 소나 돼지, 말, 닭, 염소 등이 가축화의 대상이 되었다. 소는 농민들에게 영농과 생활에 필요한 축력과 거름 그리고 단백질을 제공했다. 돼지, 닭 등의 사육은 사람들에게 안정적으로 단백질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분뇨는 거름으로 활용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지역여건에 따라 사육동물이 달랐다. 더운 날씨로 인해 돼지사육이 불리했던 중동지방에서는 돼지를 기르지 않았다(마빈 해리스, 서진영 역, 1998). 지역 여건상 돼지의 사육이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중동지방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음식문화가 자리했다.

농업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었다. 농업은 인류가 이전시기와 달리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확보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사회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농업에서 안정적 식량 확보는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농업이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장기간에 걸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들은 지역에 적합한 종자를 찾아내어 개량하고, 영농기술을 발전시켜 농업생산성을 늘려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류는 필요한 양보다도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농업부문에서 잉여생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농업에서의 잉여생산은 사회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잉여생산을 하기 전에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공동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비했다. 잉여생산은 사유재산이 생겨나게 했고, 원시공동체의 해체와 가족의 출현, 계급의 분화와 국가의 등장을 가져왔다(프리드리히 엥겔스, 김경미 역, 2007). 농업에서 잉여생산이 이루어지면서 공동생산, 공동소비가 이루어진 원시공동체가 약화되고, 가부장제 가족이 출현했다. 가장이 재산을 소유했고, 권력을 행사했으며, 노예도 가족에 포함되었다. 농업에서 잉여생산으로 인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그것에 기초해서 권력을 행사한 유산계급이 등장했다.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지배했고, 이들은 계급지배가 갖는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다.



2. 농업의 특징과 기능


농업을 좁은 의미의 농업과 넓은 의미의 농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좁은 의미의 농업은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영농을 지칭하는 데 비해 넓은 의미의 농업은 식량생산은 물론, 가공, 유통,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농업과 직 ·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모든 것들을 지칭한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좁은 의미의 농업의 경우 노동력 구성비나 국민총생산액(GDP) 대비 생산액이 낮지만, 넓은 의미의 농업의 경우 전체 경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농업은 토양과 기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과 차이가 난다. 따라서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농업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농업은 다른 산업보다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사를 통해 짓는 작물 그 자체가 생명체이며, 또 농업의 산물인 먹을거리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 농업의 부산물도 다른 생명체에게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농업의 바탕인 토양 그리고 물은 각종 미생물의 삶의 터이다.

농업은 오랫동안 산업 중에서 가장 중심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농업이 중심인 농업사회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전개 이후에 산업사회가 되면서 농업은 점차 사회의 주변적 위치가 되었다. 그럼에도 농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농업은 다른 산업이 하지 못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에 불가결한 식량공급을 하고 있다. 국가마다 농업부문이 제공하는 식량의 비중은 다르지만, 사람들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을 공급하고 있다. 농업은 가공을 위한 원료공급을 한다. 식품가공을 위한 곡물, 고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섬유 등의 생산에도 원료를 제공한다. 요즈음은 인공합성원료의 비중이 커져, 농업의 원료제공기능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농업은 식품산업이나 제조업에 중요한 원료를 제공하고 있다.

농업은 도시에서 창출하지 못하는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여성, 청소년, 장애인, 고령층 등 이른바 한계노동력도 영농에 종사할 수 있다(성진근, 1992). 또 농업은 다른 부문에 노동력을 공급한다. 영농의 합리화와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 불필요해진 노동력이 다른 분야로 진출한다. 농업은 외환 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국가는 농산물의 수출을 통해 외환수입을 얻을 수 있고, 또 식량을 자급하는 경우도 농업의 식량생산이 없으면, 필요한 식량을 외환을 들여 수입을 해야 하므로, 이 경우에도 외환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

1) 홍수조절 및 예방

2) 수자원 함양

3) 기후순화

4) 대기정화

5) 토양유실 감소

6) 유기물 분해

7) 수질정화

8) 휴양처 제공(경관가치)/ 녹색환경

9) 사회경제적 효과(사회안정, 일자리 제공 등)

10) 국토의 균형적 발전


농업은 앞에서 지적한 경제적 기능 외에 이른바 경제적으로 셈할 수 없는 비교역적 기능 또는 다원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임형백 외, 2004).

농업은 또 인류 문화의 원천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농업은 그 용어에 문화(culture)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목사회에 비해 농경사회가 훨씬 더 풍부한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켜왔으며, 그 유산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농업과 관련된 영농조직, 영농기술, 농기구, 재배방식, 농민의 영농에 대한 노하우와 지식, 사람과 작물 간의 관계, 사람과 토양과의 관계, 먹을거리 요리법 등이 모두 문화이다.



3. 전통적 식량체계의 농업과 먹을거리


먹을거리는 농업 이외에도 축산업, 수산업 등에 의해 생산된다. 또 가공과 수송 등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된다.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규정하는 틀을 식량체계(food system)라고 한다. 인류 역사에서 식량체계는 바뀌어왔고, 그것에 따라 농업과 생산 및 소비되는 먹을거리가 변화되어 왔다.

인류역사에 먼저 전통적 식량체계가 자리했다. 전통적 식량체계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율이 높고, 농산물 생산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이루어졌다. 농산물이 지역의 특성이나 여건이 반영되어 생산되었다. 농산물의 유통은 지역 내 친족, 다른 사회 망이 교환을 좌우하고 지배했다. 농산물의 소비 측면을 보면, 수확과 계절이 먹을거리의 풍요와 결핍을 좌우했고, 농산물의 선택이 인근지역의 농산물로 제한되어 농산물 무역이 매우 적게 이루어졌다. 먹을거리의 소비는 이용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좌우되었다. 사회집단 간에 영양 불평등이 존재했다.


식품체인, 식량경제, 식량체계

식품체인(food chain)은 식품과 관련된 요소를 일직선상으로 간주하고, 식량경제(food economy)는 경제적인 측면의 식량에 초점을 맞춘다(Tansey et al., 2000). 식량체계(food system)는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 분배(소비) 등을 모두 포괄하는 하나의 체계를 지칭한다. 식량체계는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 분배를 생물적 측면, 경제적 · 정치적 측면, 사회적 · 문화적 측면에서 상호관련하에 파악한다. 따라서 식량체계의 개념은 식량에 대해 기능적 접근이 아니라 통합적 · 전체적 접근을 할 수 있게 한다.

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는 생산자인 농민, 노동자, 교환업자(trader), 가공 및 제조업자, 도매 및 소매업자, 요식업자(cater) 및 소비자 등이다(Tansey et al., 2000).

좋은 식량체계의 기준으로 ① 안전한 식품의 공급 ② 취약자에게도 먹을거리 접근 보장 ③ 충분한 양의 공급 ④ 지속가능성 ⑤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의 공급이 지적되고 있다(Tansey et al., 1996).


전통적 식량체계의 농업의 특성을 보면(Beardsworth, et al., 1997: 33), 생산이 대규모가 아니라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소수의 품종으로 소규모

영농이 이루어졌지만, 점차 다품종 소량생산이 자리했다. 특정 시기에 파종하고, 특정 시기에 수확하는 영농이 이루어졌다. 가뭄, 홍수, 고온, 추위 등이 먹을거리 생산을 크게 제약했다. 기술이 발전되지 않아 자연적인 조건이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영농이 이루어졌다. 자본집약적이 아닌 노동집약적 농업이 이루어졌다. 노동력이 풍부했으므로 영농에 노동의 투입이 많이 이루어졌다. 농번기에는 지역에 따라 품앗이가 발전되었다.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할 작물을 선택할 수 있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영농방법으로 농사를 지어 영농에 자율성을 가졌다. 즉,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영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역의 토양, 기후, 음식문화 등을 반영한 작물재배도 이루어졌다.

전통적 식량체계의 농업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졌다. 자연의 순리에 맞추어 생산된 제철 먹을거리였다. 대부분의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생산되어 유통되기 때문에 먹을거리의 이동거리 즉, 푸드마일이 짧았다. 당시에는 저장 시설이나 기술도 거의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확 직후에 바로 섭취해야 했다. 가공기술이나 시설이 거의 없었으므로 먹을거리 중 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었다. 대신에 농산물을 식재료로 하여 조리과정을 통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식품은 자연과정(발효)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역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다양한 발효방식이 개발되어 이용되었다.



4. 세계식량체계의 농업과 먹을거리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세계식량체계가 전통적 식량체계를 대체했다. 세계식량체계는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 및 소비가 세계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세계식량체계의 등장에는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 수송수단 및 기술의 발전이 기여했다(김종덕, 2009). 1890년대 미국, 영국, 유럽에서 진행된 산업화는 도시화를 촉진했고, 도시에서의 대규모 식량수요는 지역을 넘어 식량을 공급하는 식량체계를 발전시켰다. 18세기의 운하의 발전, 19세기 중반의 철도의 발전은 대규모 식량의 장거리 운송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멸균 처리 등 식품 보존 향상 기술, 냉장차의 발명, 자동차 보급, 가정의 냉장고, 식품 해동기(1970년대), 전기 오븐(1980년대) 등의 가전제품도 세계식량체계의 확산에 이바지했다.

세계식량체계의 특징을 보면(Beardsworth, et al., 1997: 33), 상대적으로 소수인구가 농업을 담당하며, 효율성과 경쟁을 위해 경작규모는 대규모가 된다. 농산물 생산이 지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위해 이루어진다. 농산물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품이 되었고, 경쟁을 위해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가급적 비용을 줄이게 된다. 경쟁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외부에 비용을 전가하면서 싼 가격으로 식량이 공급된다. 돈과 시장이 먹을거리에 대한 접근을 좌우한다.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이 다양한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져 이러한 수요에 맞추어 사치재를 재배하는 농업이 발전했다. 반면에 경제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식량을 구입할 수 없어 굶주린다. 전 세계 68억 인구 중 10억 명 정도가 굶주리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세계식량체계에서는 계절과 무관하게 먹을거리를 섭취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먹을거리의 사철생산이 가능하고, 또 다른 지역에서 수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계식량체계의 구조


세계식량체계는 곡물 메이저, 농기업, 식품산업, 생산자, 소비자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주요 행위자는 곡물 메이저, 농기업, 식품산업이다. 곡물 메이저는 세계 곡물 유통의 80%를 점유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농기업들은 산업형 농업에서 종자, 영농, 비료주기, 방제 등을 담당함으로써 식량 체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Heffernan, 1997). 식품산업은 식품 가공, 유통, 서비스 등으로 구성되며, 세계 식량 체계에서 점점 더 그 비중을 높여 가고 있다.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농기업, 식품산업에 의해 지배되고, 이용되고 있다. 농기업, 식품산업은 농민과 소비자들을 분할하여 지배한다. 생산자인 농민들은 영농에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농기업에 종속되어 있다. 소비자들은 식품산업이 공급하는 먹을거리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그냥 단지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소비자에 불과하고, 또 음식에 대해 관심이 없고, 음식을 중시하지 않는 음식문맹자다.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자신의 생명과 생존에 직결되는 먹을거리를 통제하지 못한다.

세계식량체계에는 이른바 산업형 농업(industrial agriculture)이 자리한다. 산업형 농업에서는 농산물 생산을 공산품 생산과 같은 것으로 보고,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원리를 농산물 생산에 적용한다.

산업형 농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김종덕, 2009).

첫째, 산업형 농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화학비료, 농약의 사용은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사막화하고, 수질을 오염시키고, 생물다양성을 줄인다. 소규모 경지임에도 불구하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투입과 농기계 등의 도입은 푸드달러 중 농민들의 몫을 크게 줄여 농민들을 영농에서 쫒아낸다. 산업형 농업이 확산된 후 전 세계에서 농민들의 비중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둘째, 산업형 농업은 농업의 특성에 맞지 않는다. 농업은 지역의 여건에 영향을 받는다. 지역의 영농조건, 토양, 기온, 영농문화,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 등이 영농을 좌우한다. 산업형 농업은 농업이 지역의 여건이나 영농문화에 맞아야 한다는 기본을 무시하고 있다.

셋째, 산업형 농업은 환경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산업형 농업에서 제초제, 살충제 등의 다량사용은 생태계를 파괴하여 침묵의 봄을 낳았다(레이첼 카슨, 김은령 역, 2002). 산업형 농업에서 경쟁과 이윤을 위해 등장한 유전자 조작 종자도 생물 다양성을 줄이고, 슈퍼 잡초 등의 출현을 가져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앤드류 킴브렐, 2000: 163).


산업형 농업의 특징

1) 농산물 생산에 공장 수준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

2) 경작형태로 볼 때 단작재배(monoculture)가 지배적이다.

3) 자본 집약적이다. 단위 면적당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산출을 위해서는 비료나 농약 등의 투입재를 이용하고, 농기계 등을 사용한다.

4) 속도를 추구한다. 더 빠른 속도가 자본회전을 빨리하고, 경쟁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5) 지역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위한 생산을 지향한다.


세계식량체계에서는 글로벌푸드, 패스트푸드와 같은 먹을거리가 생산되고 유통된다. 이들 먹을거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세계시장을 위해 산업형 농업에 의해 대규모로 생산된다. 생산과정에서 비용을 줄이고자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이 사용된다. 첨단기술과 자재 등을 이용하여 제철과 관계없이 생산된다. 예를 들면, 수박은 1년에 세 차례 생산된다. 그리하여 제철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먹을거리는 장거리 수송을 거쳐 세계시장에서 유통된다. 따라서 먹을거리의 물리적 이동거리 즉, 푸드마일이 길다. 세계식량체계의 먹을거리는 사회적 이동거리도 길다. 먹을거리 생산자로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장기간, 장거리 수송과정에서 먹을거리의 변질을 막기 위해 방부제 등이 투여된다. 또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공과 포장을 많이 한다.

세계식량체계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먹을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김종덕, 2009).


<그림 10-1> 산업형 농업에서 푸드달러 중 농민 몫의 저하


첫째, 먹을거리의 영양가가 떨어진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이용해 대규모로 생산된 곡물과 채소는 수분은 늘고, 비타민과 미네랄은 줄어든다(마이클 폴란, 조윤정 역, 2009). 채소는 이전의 채소가 아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산량 확대를 위한 이종교배작물은 순종작물에 비해 아연 함량이 1/3, 철 함량이 28%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식품안전에서 취약하다. 세계식량체계에서는 먹을거리의 생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식품안전보다 비용을 줄이는 데 더 역점을 둔다. 제초제, 살충제를 이용하여 재배하므로 수확물에 농약의 잔류 가능성이 크다. 경작면적이 늘어나고 있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도 식품 안전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채 유통되고 있다. 먹을거리의 저장, 이동 중에 변질을 막기 위해 처리하는 방사선 조사나 살포하는 방부제, 살충제 등도 식품안전을 위협한다. 또 먹을거리가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생산하므로, 생산과정에서 소비자들의 건강, 영양 등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 소비자 또한 누가, 어떤 과정으로 생산하는지 알 수 없는 먹을거리의 유통 때문에 안전한 식품에 접근하기 어렵다.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가 한 국가에 수입될 때 통관을 거친다. 통관과정에서 실수나 착오 등으로 식품안전에 문제의 식품이 유통될 수 있다. 또 수출업자, 수입업자의 불순한 의도가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싼 가격에 공급되는 패스트푸드와 각종 가공식품은 21세기의 전염병인 비만을 낳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은 가격이 저렴하고,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이 이러한 음식을 선호하고 있다. 고열량의 동물성 지방과 설탕이 주성분인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의 전 세계 확산은 선진국을 넘어 개발도상국에도 과체중과 비만을 낳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8년 기준 전 세계인구 중에서 20세 이상 중 과체중인 사람이 15억 명, 비만은 5억 명 정도로 추계하고 있다. 비만은 개인에게 고통을 가져다줌은 물론 사회의 의료비 부담을 크게 증가시킨다.

넷째, 환경에 문제를 야기한다. 먹을거리의 생산에 다량의 농약 등이 살포되는데, 살포된 농약이 토양에 있는 미생물이나 어류, 곤충, 조류 등을 죽인다. 먹을거리의 상당부분이 단작재배로 생산되므로 종자의 유전적 다양성이 훼손된다.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수송 및 소비에 많은 화석에너지가 사용되는데, 이는 이산화탄소의 방출을 가져와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

다섯째, 지역 식량보장을 위협한다. 얼핏 보기에 세계식량체계에서는 농산물 무역자유화에 기반을 두고 먹을거리가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접근 기회를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계식량체계의 먹을거리는 지역 식량보장에 부정적이다(김종덕, 2009). 먹을거리의 유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으로 인해 먹을거리의 유통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기름 값의 인상도 먹을거리의 장거리 이동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쌀이나 밀 등 주요 곡물값이 오를 때 이를 수출하는 국가에서 수출을 통제하여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식량 수출 국가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나라의 식량 공급의 안정성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이후에 더 유리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위해 식량 수출을 제한한다. 실제로 2007∼2008년도 유가인상과 동반된 곡물가격 인상은 식량수출국가의 수출 통제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40여 개 국가들이 식량폭동을 겪었다. 식량폭동은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해 피해인구가 더 많았던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식량폭동은 인명의 희생을 가져오고, 계급 간에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다. 식량폭동은 또 세계식량체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크게 위협한다.



5. 지역식량체계의 농업과 먹을거리


지역식량체계는 세계식량체계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식량체계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세계식량체계와 달리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은 상호 간에 지원, 이해, 책임 공유, 피드백 등을 가능케 한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아는 관계에서 생산하고 소비한다. 생산자는 지역의 요구를 반영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소비자는 단순히 먹을거리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슬로푸드운동에서 말하는 공동생산자가가 된다. 그리하여 먹을거리의 생산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세계식량체계에서와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먹을거리를 통제할 수 있다. 즉, 이들은 먹을거리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는다. 그리하여 식품산업이나 수입 및 유통업자에 대한 의존이나 이들의 불순한 의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역식량체계의 구조


지역식량체계의 등장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이다.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식품안전이 문제가 되고, 패스트푸드가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 등의 질병을 유발하자 보다 안전하고 건강에 이로운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식량체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둘째, 세계식량체계에서 위기를 맞이한 가족농들의 대응이다. 경쟁에서 밀린 중소 가족농들이 생존전략으로 채소와 과일 같은 새로운 작물의 생산과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였고, 농민시장에의 참여도 적극적이었다. 셋째, 지역기관들의 지원이다. 미국에서는 토지기부대학 그리고 도시의 상공회의소 등이 이 역할을 했다. 토지기부대학 등은 자신의 존재기반이던 농촌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상공회의소는 농민시장을 통해 도심의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식량체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넷째, 정부나 공공부문의 지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재정지원과 제도 등을 통해 지역식량체계의 확산에 기여했다.

지역식량체계의 모델로는 농민시장, 공동체지원농업, 기관급식, 각종 직거래 등이 있다(김종덕, 2009). 농민시장은 농민과 그 위탁자가 판매인이 되어 농산물을 판매하고, 소비자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지역 농산물을 구입하는 형태이다. 농민시장에서는 농산물의 판매와 구매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을 맞대고, 영농과 농산물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농민시장에서는 지역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공동체지원농업은 소비자들이 회원조직을 만들어 농가와 제휴하는 방식이다. 회원들이 영농철이 시작되기 전에 회비를 내고, 그 회비는 농가에게 전달된다. 회비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회비 대신에 농가에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농가는 회원들에게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분배한다. 그 구성물은 공동체지원농업마다 차이가 난다.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특정 지점에 배달하고, 회원이 그곳에 들러 가져간다. 공동체지원농업의 핵심은 소비자들이 농민의 영농위험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농사가 흉작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이를 감수한다. 흉작이 농민의 책임이 아닐뿐더러 농민도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관급식은 학교, 병원, 회사, 군대, 관공서 등에서 지역농산물을 이용하여 급식하는 것을 말한다. 급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역에서 재배된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서 좋고, 지역농민들은 농산물을 판매하는 공간이 되어 좋다. 또 급식은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미국 농장학교 연결 프로그램에서는 학교 급식과 관련된 연계활동으로 교실영양교육, 지역농산물 구매, 교실 밖 수업, 학교 텃밭 운영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급식을 통해 학생들은 지속가능한 생활을 배운다. 직거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거나, 생활협동조합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를 말한다. 직거래를 통해 먹을거리의 지역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며, 푸드마일이 짧아진다. 또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유통단계도 줄어들게 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지역농업이 자리한다. 지역농업이란 지역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지역의 영농문화, 지역민의 수요에 바탕을 두고 있는 농업을 말한다. 지역농업에서는 지역의 종자가 재배된다.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적인 영농방식을 계승하여 그 방식대로 영농을 한다. 가족농이 지배적이며, 이들의 영농규모는 비교적 소규모이다. 지역농업은 인근지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영농이 이루어진다. 또 지역마다 주어지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농업이 자리한다.

지역농업에서는 로컬푸드와 슬로푸드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로컬푸드는 글로벌푸드와 달리 공간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생산자의 얼굴을 가진 먹을거리이며, 소비자가 생산자 그리고 생산방식을 알고 있다. 지역시장에서 유통, 소비되기 때문에 푸드마일이 짧다.

로컬푸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롭다(김종덕, 2009). 첫째, 식품안전 측면에서 유리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는 가운데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산자가 소비자의 안전을 고려한 생산을 하게 된다. 생산자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거리인 푸드마일이 짧고, 갓 수확한 농산물을 바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방부제 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둘째,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 생산자는 글로벌푸드에 비해 생산비를 줄여야 하는 압력, 그리고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에 농약을 덜 치게 된다. 또한 로컬푸드는 푸드마일이 짧기 때문에 저장과 수송에 드는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생산자가 외부 투입재에 덜 의존하고, 먹을거리의 유통단계가 적기 때문에 생산자 몫의 푸드달러가 늘어난다. 이는 가족농들이 영농을 지속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지불하는 먹을거리 대금이 지역에서 순환된다. 넷째, 로컬푸드는 지역사회를 활성화한다. 로컬푸드를 매개로 하여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먹을거리 공동체(food community)가 형성될 수 있다. 로컬푸드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지역의 공공현안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인다. 로컬푸드는 사회적 자본의 증대에도 기여한다. 로컬푸드를 매개로 하여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신뢰가 생겨나면 이러한 신뢰는 먹을거리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어 지역사회 발전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


지역식량체계의 지역경제 효과

미국에서 세계식량체계에 속한 농민에게는 푸드달러 1달러 중 9센트가 돌아가는데 지역식량체계의 농민에게는 1달러 중 80센트나 돌아간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연구에 의하면, 영국의 경우 소비자들이 지역의 먹을거리의 직접 구매에 지불한 10파운드가 지역 경제에 25파운드를 창출하는 데 비해, 슈퍼마켓에 지불한 10파운드는 지역 경제에 14파운드를 창출한다. 전자가 후자보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허남혁 외, 2007).


지역식량체계에서 지역농업에 의해 생산되는 슬로푸드 또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카를로 페트리니는 슬로푸드를 좋은 음식, 깨끗한 음식, 공정한 음식이라고 정의했다(카를로 페트리니, 김종덕 외 역, 2008). 슬로푸드가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기 때문에 이를 섭취하는 소비자에게 이롭다. 슬로푸드에서 소비자는 인공의 맛이 아닌 자연의 참맛을 누릴 수 있다. 슬로푸드는 성장기간을 단축하지 않고 자연의 속도로 생산되는 것이다.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제철에 생산된다. 이와 같은 생산방식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낳고, 지역의 환경에 기여한다. 좋은 맛과 영양을 유지한다. 동물을 해치지도 않는다. 지역농업의 생태적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슬로푸드는 생산자의 노동에 대해 공정한 대우를 하는 먹을거리이므로 생산자의 복지에 기여한다. 따라서 먹을거리 생산자들이 영농에 보람을 갖고, 영농을 지속하게 한다.



6. 우리나라 농업과 먹을거리의 현실과 과제


우리나라는 여러 계기를 통해 세계식량체계에 편입되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식량체계의 일원이 된 주요한 계기는 미국의 농산물 원조 제공, 다수확 품종 벼의 보급과 녹색혁명의 추진, 1970년대 말의 농정 개방,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2000년대 한-칠레 FTA(Free Trade Agreement)의 비준 등이다(김종덕, 2009).

우리나라에 세계식량체계가 자리하면서 산업형 농업이 지배적인 영농형태가 되었다. 친환경농업의 비중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관행농업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는 단위 면적당 생산량 제고를 위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식량체계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소규모 경작을 하는 가족 중심의 농가들은 값싼 수입농산물의 범람 그리고 과잉생산에 의한 가격폭락으로 인해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다. 농민 몫 푸드달러의 저하로 영농수입이 줄어들어 영농을 통한 생계유지가 어렵고, 농가 부채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농촌노동력이 노령화되고, 탈농이 진행되는 가운데, 젊은층이 영농을 기피하고 있다. 또 농업용지가 공업용 토지나 주택단지, 도로 등으로 전용되면서 경지면적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휴경지도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하여 전체경제에서 농업과 농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5%밖에 안 되어 식량보장이 매우 취약한 형편이다. 쌀을 제외하면 곡물자급률은 5% 미만이고, 밀은 자급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곡물소비량의 7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엄청난 규모의 곡물을 수입해야만 하는데 세계의 곡물수급 여건이 좋지 않아 앞으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의 곡물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인데, 공급여건은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곡물에 대한 수요는 늘지만, 공급이 줄 때 시장에서 가격 급등은 불가피하다. 곡물가격 급등은 수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의 증가와 안정적인 수입기반을 약화시킨다.


GATT, WTO와 농산물 무역자유화

GATT(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하에서는 농산물 무역자유화와 관련하여 예외 품목을 허용했다. 반면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산물로 출범한 WTO(세계무역기구)는 예외 없는 농산물 무역자유화를 명시하고 있다. WTO는 회원국의 농업을 구조화하는 규칙들로 농업합의안 이외에도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합의안」(Agreement on 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위생 및 식품위생조치」(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 「무역에 관한 기술적 장애」(Technical Barriers to Trade), 「수량제한」(Quantitative Restrictions), 「보조금과 상쇄조치」(Subsidies and Countervailing Measures),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the General Agreement on Trade in Services) 등을 두고 있다. 또 WTO는 분쟁조정 사무국(dispute resolution panels)을 두고 농업합의안을 강력하게 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을 보면, 주곡에서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81년에 128kg에서 2010년에 72kg으로 크게 줄었다. 쌀 소비의 급격한 감소는 육류와 곡물, 가공품 등 섭취하는 음식이 다양해졌고,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자급을 하고 있는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수입하는 곡물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는 외국의 곡물을 더 수입하도록 하고, 그리하여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을 더 낮추는 결과를 낳고 있다. 쌀을 점점 더 적게 먹는 이러한 소비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낮은 식량자급률, 가족형 농가가 직면한 어려움, 도시 소비자들이 직면한 먹을거리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먹을거리의 공급과 소비가 가능한 한 지역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지역농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획기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세계식량체계에서 지역식량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식량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과제로는 다음을 지적할 수 있다(김종덕, 2005).


세계의 곡물 수급 사정

세계인구는 2011년 기준 70억 명인데, 가장 낮은 예측을 적용하더라도 2042년에 80억 명으로 늘어난 뒤 줄어드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앞으로 30여 년간 진행될 인구증가로 곡물의 수요가 추가된다. 거기에다가 중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소득증대로 인한 육류소비 증대는 사료용 곡물에 대한 수요를 크게 늘일 전망이다. 특히 쇠고기와 돼지고기 수요의 증대는 사료곡물의 수요증대로 이어진다. 석유가격이 상승하면서 바이오 연료 생산에 곡물사용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09년에 미국의 곡물생산량 4억 1,600만 톤 가운데 1억 1,900만 톤이 자동차연료용 에탄올 생산에 사용되었다.

반면에 세계의 곡물생산은 향상될 여지가 별로 없다. 세계의 곡물생산은 1950년부터 2000년 사이에 3배가 증가했지만 최근 들어 답보상태에 있다. 세계의 곡물생산 증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대수층의 수위 저하로 나타나는 물 부족, 지나친 경작과 방목으로 인한 표토 유실과 사막화,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재앙, 도로 및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대로 인한 농경지 전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첫째, 농업과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업형 농업과 글로벌푸드는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는 데 대안농업과 로컬푸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지역식량체계를 지원하고 추진할 주체들의 지역식량체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급선무이다. 또 생산자와 소비자들도 지역식량체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식량체계가 자리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농산물에 대한 의무적 구매의 확대가 필요하다. 지역농산물의 잠재적이고 집합적인 수요층인 학교, 병원, 사업체, 공공기관 등에서 지역농산물을 이용한 급식 등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들 기관들이 의무적 구매를 하도록 하고, 이어서 이를 자발적 구매나 제도화된 구매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셋째,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식량체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은 지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생산자 조직과 소비자 조직이 생기고, 조직 간에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화에는 교육이 중요하다. 생산자 조직과 소비자 조직을 연결하는 데는 또 시민단체나 비정부기구의 연결 프로그램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넷째, 지역식량체계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지역식량체계와 관련된 제도와 조직, 조례 등을 정비해야 한다. 정부는 지역식량체계를 담당하고 지원할 부서를 두어야 한다. 지방정부는 단독으로 또는 시민단체와 함께 지역식량체계와 관련된 조례제정에 나서야 한다.

다섯째,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정책 중 특히 재정지원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농민시장, 학교 급식 등에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도 이를 긍정적 준거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도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유통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의 운용에 관련된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7. 결론


먹을거리는 개인의 생명유지나 사회의 질서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먹을거리가 공급되지 않으면 개인은 생명을 지탱할 수 없고, 사회는 혼란으로 인해 붕괴된다. 또 공급된 먹을거리가 잘못된 것일 경우 개인에게 고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청난 의료비 등을 부담케 한다.

먹을거리는 다른 생활필수품과 차이가 난다. 우선 다른 것으로 대체가 가능하지 않다. 또 필요하다고 해서 단번에 많이 생산할 수 없다. 조금만 모자라도 그 영향이 크다. 모자라면 가격상승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생활비에서 식료품비 비중이 높은 하층 계급은 굶주리게 되고 이러한 식량부족은 식량폭동으로 이어진다.

현재 세계적인 수준에서 먹을거리 위기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식량의 수요는 커지는 반면 공급여건이 불확실하여 식량보장이 위협을 받고 있다. 먹을거리의 생산기반인 농업이 중시되지 않는 가운데, 전세계에서 농경지 등이 다른 용도로 전용되고 있다. 토양이 악화되어 가고, 종자의 다양성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지역농업이 붕괴되고, 농민들이 영농에서 밀려나고 있다.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에 따른 식품의 안전성도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문제의 식품이 유통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선진국에서도 식중독이 늘어나고 있다.

가공식품 및 패스트푸드의 확산으로 비만이 세계적인 전염병이 되었고, 비만으로 인한 질병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개인과 사회의 의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농업과 먹을거리 위기는 세계식량체계에 기인한다. 산업형 농업에 기반을 둔 세계식량체계는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가운데 지속가능성이나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유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하여 지배하고, 식품기업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먹을거리의 탈정치화(depoliticization of food)를 하여 소비자들이 먹을거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김종덕, 2010).

현재 인류가 직면한 농업과 먹을거리 위기를 극복하려면, 앞에서 지적한대로 세계식량체계를 지역식량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지역의 특성과 여건이 반영된 영농이 자리하여 산업형 농업이 야기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로컬푸드나 슬로푸드가 생산되고 유통됨으로써 식량보장이나 식품안전에 더 유리하다. 또 지역식량체계에서는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먹을거리의 공동체를 구성해 자신이 먹는 먹을거리를 통제하고, 농업과 먹을거리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

지역식량체계가 자리하게 되면, 현재의 농업과 먹을거리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농업이 환경적 · 경제적 · 사회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해지고, 현재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식량 보장이나 식품 안전성이 향상될 것이다. 또 소비자들은 농업과 먹을거리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농업과 좋은 음식을 위해 행동하는 음식시민(food citizen)이 될 것이다.


식품기업의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의 수단

1) 광고

2) 홍보

3) 마케팅 전략

4) 전문가 이용

5) 공중참여에 대한 전략적 법률 소송

6) 식품표시제도의 활용

7) 정치인에게 로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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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2009, 『먹을거리위기와 로컬푸드』, 이후.

김종덕, 2010,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와 대응에 관한 연구”, 『지역사회학』 12(1): 13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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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sey, Geoff & Tony Worsley, 2000, The Food System: A Guide, London; Earth Scan Publications Ltd.

http://www.isec.org.uk/toolkit/gfindex.html


이야깃거리

  1. 농업이 인류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해 보자.

  2. 산업형 농업이 농업과 먹을거리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이야기해 보자.

  3. 사람들이 저가 음식을 선호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4. “식량은 정치이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5. 지역식량체계로의 전환을 위해 먹을거리 소비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더 읽을거리

김종덕, 2006, 『농업사회학』, 경남대학교 출판부.

마이클 폴란, 조윤정 역, 2008, 『잡식동물의 딜레마』, 다른세상.

벨라미 존 포스터 외 엮음, 박민선 외 역, 2006, 『이윤에 굶주린 자들』, 울력.

웬델 베리, 이한종 역, 2011, 『온 삶을 먹다』, 낮은산.

제라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옮김, 2005, 『총, 균, 쇠』, 문학사상사.





제11장 농촌과 여성


허미영


주요 개념 및 용어

여성농업인, 농업노동, 농외노동, 발전 속의 여성, 젠더와 발전, 성 주류화 전략, 성 인지적 농업정책, 가족경영협약, 여성농어업인육성법, 친환경농업


농업 · 농촌의 문제에서 여성이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농촌에서는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노령화 및 여성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도시화와 더불어 전개된 농촌의 인구이동 및 농정실패에 따른 농촌인구의 지속적인 이탈은 농촌을 여성 중심의 고령사회로 만들었다. 농촌인구의 감소에 따라 노동력의 부족은 심화되고 있고, 여성들이 농업의 주된 노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농촌의 환경변화 또한 여성의 역할을 증가시키고 있다. 농업생산의 기지 못지않게 농촌의 다원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수도작 중심의 논농사에서 고품질 고소득 중심의 특용작물재배와 기타 농외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향후 농업생산, 유통, 소비의 전 영역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현실과 더불어 최근 몇 년간 먹을거리 안전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관행농업에 비하여 친환경농업은 섬세한 손작업이 많이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여성노동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며 성별경계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 장에서는 농촌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증대하는 가운데 농가의 생산과 재생산 중심에 있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살펴보고,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성평등적인 관계로 변화시키려는 가족경영협약을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여성농업인의 지위향상을 위한 과제 등을 논의한다.


1. 농업의 환경변화에 따른 여성농업인의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과 농업 정책수립에서 성 인지적 접근의 필요성을 논의한다.

2. 여성농업인의 지위향상과 성평등적 가족문화형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1. 농촌사회와 여성


1) 농촌여성과 여성농민, 여성농업인


꾸준한 인구감소, 고령화 및 여성화는 농촌 인구변화의 주요 특징이다. 농가인구의 여성화는 여성이 농업생산의 주된 노동력이 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정책대상으로 농촌 및 농업의 여성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농촌여성’은 농촌에 거주하는 모든 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농가와 비농가 여성을 포함한다. 농촌사회에는 농업인과 비농업인, 농가 내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비농취업인구 등이 혼재한다. 이에 반하여 ‘여성농업인’은 직업인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와 달리 ‘여성농민’은 보다 학술적인 용어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강조하는 농민운동권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농민의 사전적 의미는 기본적으로 가족노동을 기반으로 하여 자가소비를 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자를 말하며, 농업경제의 측면에서 보면 가족을 중심으로 생산과 소비를 결합하여 농업경영을 해 나가는 사람이다. 여성농민은 가부장제의 성적 억압과 계급적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진 집단이다.

오늘날 농업정책의 대상으로 여성농업인을 강조하는 것은 농촌의 내재적인 문제로 상업농업의 증가에 따라 농산물 판매와 유통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등 여성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적 문제로는 FTA체결과 신자유주의의 영향하에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직업의식을 가진 여성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그가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여성농업인을 구분하고 있다. 피어슨(Pearson, 1979)은 독립적 생산자, 농업파트너, 농업보조자, 농가주부로 구분하였고, 개슨(Gasson, 1980)은 영국에서 여성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농사작업의 빈도, 농업에 대한 책임감, 부부 간 분업, 자원봉사조직에의 참여, 가사에의 접근 등에 입각하여 농촌여성을 농가주부, 주부농민/농업보조자, 여성농민 등 세 가지의 이상적인 역할유형으로 구분하였다(김영옥 · 김이선, 1999에서 재인용).


2) 농업환경의 변화와 여성의 역할 증대


농업환경의 전반적인 변화 또한 여성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있다. 최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시민의 각성, 상업농업의 증가에 따라 농촌사회의 노동변화,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도시민의 농촌 관광수요의 증대, 귀농 · 귀촌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더 나아가 결혼이주여성의 증가, 고령화에 따른 보살핌 노동 및 독거 농촌 여성의 노후 생활안정 등 농촌 · 농업의 여성참여 나아가 농촌여성과 관련된 문제가 농업 · 농촌의 시급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농업환경의 변화에 따른 여성의 역할 증대 사례로는 첫째, 친환경농업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들 수 있다. 1990년 중반 이후 농정의 패러다임이 다수확 생산에서 안전한 식품생산으로 전환되고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증가와 친환경농업정책추진으로 2009년 현재 전체농가의 14%가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WTO 협상과 FTA 체결로 농업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가의 활로 모색으로, 내적으로는 산업형 농업의 병폐에 따른 먹을거리 안전성에 대한 각성으로 생산 및 소비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은 잔손질이 많이 가는 노동 특성으로 인하여 여성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둘째, 농산물 생산 못지않게 유통 및 소비영역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유통 및 소비의 중요성 증대는 여성의 역할 및 참여를 증대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농촌의 정보화로 인하여 농산품의 인터넷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그에 따라 농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농산물을 포장하고 유통시키는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

셋째, 농촌공간의 어메니티(amenity) 자원의 재조명 등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농가 중에서 직판장, 직거래, 농가식당, 농산물 가공업, 농가민박, 관광농원, 주말농원 등 농업관련 산업을 시도한 농가가 7.9%로 나타났다(농업총조사, 2005). 은퇴 후에 농촌으로 이주하는 사람들, 도심을 떠나 귀농하는 사람들, 주 5일제 노동조건의 변화에 따라 주말농장을 만들고 농사체험을 즐기는 사람들의 증가 등 농촌 · 농업의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능 확대 또한 여성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있다.



2. 여성의 농업참여현황


1) 여성농업노동에 대한 이론적 쟁점


김혜순(1994)은 기존 여성의 농업노동연구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몇 가지 쟁점을 제기하였다. 기존의 연구들이 여성노동의 실태연구에 기반한 경험적 연구였다고 지적하고, 농가여성을 연구하는 새로운 분석틀을 제안하였다. 이런 문제제기는 오늘날 농가여성의 노동을 이해하는 분석틀로도 여전히 유효하다.

첫째, 농가여성노동을 연구할 때 농업가구를 분석 단위로 해야 한다. 지금까지 농가의 총수입에 영향을 주는 나머지 가구원의 활동은 간과하거나 보조적인 것으로 처리되어 왔다. 농업가구는 노동의 조직 단위이며, 소득의 결집 단위로서 전 가구원의 노동을 조직하고 동원하여 가구소득을 극대화하려 한다.

둘째, 남성 중심적 성별분업체계의 실상을 밝히고 이를 개선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농가에서 생산과 재생산을 생산과정과 연결된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 농가여성의 구체적인 노동내용에는 사회노동(농업노동과 농외노동)과 가사노동을 사용한다. 환금작물재배뿐만 아니라 가용식량 생산활동, 가축 키우기, 품팔이, 품앗이, 농외소득을 위한 활동, 가사노동은 세대적 · 일상적인 노동력인 생산과 재생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셋째, 농가여성의 노동을 전체 경제구조와 농업생산의 사회적 관계와 연관해서 분석해야 한다. 가족농의 온존 속에 농가여성의 노동을 규명한다는 것은 노동의 수행과 노동력의 착취가 개별 임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이 노동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집단적 기제 즉 가족, 가구, 친족의 숨어 있는 부분노동을 전제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성별분업체계의 특징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성별분업체계는 경제적으로 은폐된 여성, 가사노동의 여성전담규정, 가사노동에 대한 무평가, 여성의 이중노동부담, 여성노동의 저평가와 상대적 저임금과 이를 합리화시키는 이데올로기 등이다.

넷째, 새로운 농업구조와 농민사회에 대한 전망과 정책은 농민가족과 농가여성의 노동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농가여성문제는 농가여성이 그 경제적 기여에 상응하는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김혜순, 1994: 155-159).

농가여성은 농업노동과 더불어 가사노동도 수행하기 때문에 농가의 생계유지전략에 기여한다. 하지만 여성의 기여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성별분업의 불평등은 농가의 재생산과 농업생산의 재생산의 위기를 가져온다. 사크(Sach)는 이와 같이 여성노동의 가치가 평가되지 않는 것을 농촌사회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이들을 보이지 않는 농민(invisible farmer)으로 칭하였다. 농가의 생산과 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농민으로 간주해 온 여성농업인에 대한 이론적 ·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


2) 농업노동실태


(1) 노동기여도

농가 수를 보면, 2000년에는 1,383천 가구로 전체 가구의 9.7%에서 2010년에는 1,177천 가구로 전체 가구의 6.5%로 그 비중이 낮아졌다. 2010년 농가의 영농형태는 논벼 45.0%, 채소 18.6%, 과수 14.5%, 식량작물 9.9% 순으로 조사되어 2005년에 비해 논벼 농가의 비중은 낮아진 반면, 과수 · 관상작물 · 축산 · 채소 농가의 비중은 약간 증가하였다. 과수 및 밭농사는 여성의 노동참여가 많은 분야이다. 1970년의 농업주종사자 중 여성비율이 28.3%이던 것이 2000년에는 52.1%로 증가하고, 2009년에는 53.0%에 이르고 있다.

여성의 농업노동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전반적으로 책임지고 총괄하는 경영주가 남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0.3%로 높았으며, 여성 본인을 경영주로 응답한 비율은 26.3%로 나타났다. 여성 경영주의 83.8%가 60대 이상이며, 또한 여성 경영주의 81.5%가 남편과 사별한 것으로 나타났다(여성농업인 실태조사, 2008). 이처럼 여성경영주의 대다수는 남편과 사별한 독신가구의 고령 여성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가는 남성경영주에 의해 대표되고, 여성이 경영주인 농가는 배우자의 사망 등으로 배우자가 없는 농가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농가여성의 농업노동기여도에 대하여 절반이상이라고 응답한 농가가 43.6%로 나타났다. 여성의 농업노동은 참여형태에 따라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시설재배 농가가 시설배재를 하지 않는 경우보다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으며, 영농형태별로 보면 화훼, 일반밭작물 등을 주로 하는 농가에서 70% 이상 농사일을 담당하는 여성농업인은 각각 46.7%, 42.8%로, 다른 영농형태보다 여성농업인의 농사일 담당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여성농업인 실태조사, 2008).


<표 11-1> 농가인구의 농업주종사자 변화추이와 여성비율(단위: 천 명, %)

구 분

1970

2000

2009

남성

여성

비율

남성

여성

비율

남성

여성

비율

농가

인구

전 체

14,442

7,164

7,258

50.3

4,032

1,972

2,060

51.1

3,117

1,510

1,607

51.6

15세 이상

8,150

3,932

4,218

51.8

3,701

1,772

1,929

52.1

2,852

1,369

1,483

52.0

농업주종사인구

4,119

2,952

1,167

28.3

1,112

1,112

1,228

52.5

1,859

869

990

53.0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1970, 2000, 2010.


(2) 농업노동시간

농업과 같이 자영업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 그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그 활동시간을 추적하면 그 직업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24시간의 생활시간 연구는 농업의 일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농업인의 노동참여 수준을 확인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농촌에서 노동은 크게 농번기와 농한기, 농사와 가사로 양분하여 볼 수 있다. 농촌진흥청이 실시한 2005년 생활시간조사결과에 따르면, 농번기 여성은 농업노동 7시간 6분, 농업 외 노동 23분, 가사노동 3시간 41분으로 총 11시 간 11분을, 남성은 농업노동 9시간 35분, 농업 외 노동 31분, 가사노동 29분으로 총 10시간 35분 노동을 한다. 농한기 여성은 농업노동 3시간 8분, 농업 외 노동 22분, 가사노동 5시간 17분으로 총 8시간 47분을, 남성은 농업노동 5시간 12분, 농업 외 노동 26분, 가사노동 1시간 34분으로 총 7시간 12분 노동을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노동시간이 더 많다.


<표 11-2> 노동시간(단위: 시:분)

구 분

농번기

농한기

부 인

남 편

부 인

남 편

노동시간

11:11

10:35

8:47

7:12

 

농업노동

농업 외 노동

가사노동

7:06

0:23

3:41

9:35

0:31

0:29

3:08

0:22

5:17

5:12

0:26

1:34

사회문화적 시간

생리적 시간

3:41

9:08

3:56

9:29

4:49

10:24

6:13

10:35

출처: 농촌진흥청, 2006.


노동량에 대한 조사 결과, 노동량이 많다고 느끼는 여성농업인은 52.2%로 절반 이상이고, 지나치게 많다고 느끼는 여성농업인도 29%나 되어 전체 응답자의 81.2%가 노동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가사분담에 대한 만족도는 불만족이 37.5%, 그저 그렇다가 33.5%로 대체로 가사분담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0여 년간 여성의 농업노동시간은 꾸준하게 증가하여 남성과 거의 대등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은 이에 더불어 가사노동을 하지만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은 지난 40여 년간 1시간 내외로 그 분담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농번기 가사노동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약 7배가량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의 가사노동참여를 만족스럽게 평가하는 여성농업인은 정신적 건강이 양호하고 사회관계, 여가생활, 경제수준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남성의 가사분담에 참여하도록 하는 부부교육과 사회여건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3) 농작업 담당비중

200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결과 농작업 유형별로 여성농업인 자신과 남편, 그 외의 다른 가구원 가운데 누가 주로 노동을 담당하는지 질문한 결과, 경종농업의 경우 여성이 주로 담당하는 농작업은 제초작업(김매기) 29.2%, 출하준비(선별 · 포장) 25.6%, 씨앗심기(파종) 21.7%, 비료주기(시비) 19.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농업 노동력 구성을 보면 농업유형에 관계없이 가족노동력이 중심이 되지만 특히 시설재배나 특작, 전작, 과수 등의 분야에서는 거의 모든 농가가 임시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다. 대부분 1년에 50명 정도에서 300명 정도 고용하였고, 시설농가에서는 500명에서 1,000명까지 고용한 사례도 있었다(김영옥 · 김이선, 1999).

농업노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남성이 대체로 농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이나 하우스 관리를 담당하며, 여성은 심고, 순치고, 풀 뽑고, 키우고, 수확하고, 포장하는 것을 담당한다. 대체로 농가 내 성별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친환경농가의 경우 성별분업의 경계가 약화되면서 부부가 함께 작업하는 경향을 보인다.


<표 11-3> 농작업별 농업노동 담당 비중(단위: %)

 구 분

주로 내가

주로 남편

둘이 비슷

다른 가족, 고용노동

작업하지 않음

논/밭갈이

4.8

31.4

8.9

52

2.9

씨앗심기(파종)

21.7

14.5

34.1

27

2.7

이앙(모내기 등)

3.3

16.7

12.3

49.8

17.9

비료주기(시비)

19.7

34.1

24.4

20.3

1.5

제초작업(김매기)

29.2

21.6

31.8

13.1

4.3

농약살포

13

29.7

32.5

22.1

2.7

출하준비(선별 · 포장)

25.6

15.2

42.2

9.4

7.7

수확하기

11.7

10.1

38.6

39.4

0.2

수확물 운반

8.8

28.3

24.1

38.2

0.5

수확물 건조, 세척

21.7

12.2

36.1

24.1

5.9

농축산물 판매

26.2

32

29.8

7.2

4.9

농축산물 가공

3.3

2.4

5.9

1.2

87.2

출처: 여성농업인 실태조사, 2008.


3) 농외노동실태


우리나라 농가의 경우 농가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여성들의 농외활동이 증가하여 왔다. 농외소득은 농산물 이외의 경제활동에서 얻는 농산물 가공 및 관련사업, 일반서비스업, 임산물과 상공 광업 및 수산업생산 노동 등으로 생긴 겸업소득과 노임수입, 급료수입, 사례금수입, 임대료수입, 이자수입과 가사수입 등으로 생긴 사업 이외의 소득으로 구성된다.

200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결과에 의하면, 전체 1,501농가의 13.1%가 농사일 이외의 농외소득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농외소득 활동상황을 보면, 40대가 25%로 가장 높고, 50대 15.9%, 60대 12.3%, 40대 미만 11.9%, 70대 6.7%순으로 나타났다(<그림 11-1> 참고). 농외소득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농업인의 종사상 지위를 살펴보면, 농외소득 여성농업인 60.2%가 임금근로자이며, 39.8%가 비임금근로자로 나타났다. 임금근로자 여성농업인의 67.8%가 일용근로자, 20.3%가 임시근로자, 11.9%가 상용근로자로 나타났다(농림수산식품부, 2008).

농외 취업한 임금근로자 여성농업인의 월평균 수입 분포를 보면, 10∼20만 원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9.5%로 가장 높다. 그 다음 순으로 10만 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16.1%, 70∼100만 원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16.1%이다. 20∼30만 원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15.3%, 20∼30만 원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15.3%, 50∼70만 원은 15.3%이다. 이처럼 농외소득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농업인의 월평균 수입 분포는 양극화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11-1> 농외소득활동 참여 여성농업인의 연령분포


4) 여성농업인의 경영참여


여성들이 농사를 짓는 직업인으로서 공동농업경영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영참여를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참여는 경영에 관한 책임과 권한을 공유하는 일체의 행위이다. 경영참여는 성과참여, 재산참여, 의사결정참여, 경영대표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성과참여는 농업참여에 대한 금전적 보상으로, 재산참여는 자산의 소유 여부로, 경영대표권은 상품의 출하자 혹은 입금통장명의로 파악할 수 있다.

의사결정영역은 전략적 의사결정, 관리적 의사결정, 일상적 의사결정 등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략적 의사결정은 영농의 연간계획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의미하며, 관리적 의사결정은 농가의 자원운용과 조달계획을 중심으로 하는 의사결정이다. 한편 일상적 의사결정은 농가의 생산과정과 구체적으로 관련을 가진 의사결정을 말한다.

2003년 전국 150쌍의 농가 부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농지를 포함하여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여성농업인은 12.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금전적 보상의 경우에는 ‘정기적 보상’이 8%, ‘비정기적 보상’이 10%로 나타났다. 따라서 극히 소수의 농가를 제외하면 여성노동에 대한 보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허미영 · 박민선, 2004). 현재 우리나라 여성농업인의 경영참여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점차 대부분의 여성농업인은 자신의 농업참여에 대하여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일부 선도농가의 여성농업인은 자신이 경영주로서 역할을 하고 소득과 상품대표권을 자신의 명의로 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200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에 나타난 의사결정참여를 보면 품사기, 작물결정, 농사일정 결정, 농산물 출하 및 판매 등의 의사결정 참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으나 장부 및 재무관리, 영농일지 기록 등의 의사결정 참여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기농업실천농가 등 일부 친환경농가의 경우에는 여성농업인의 경영참여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 11-4> 여성농업인의 경영참여의 영역과 지표

참여의 영역

참여의 내용

경영참여 지표

경영인의 권한

성과참여

업적참여

수익참여

이익참여

정기적 수익배분

비정기적 수익배분

정기적 소득배분

잔여청구권자

재산참여

자기자본참여

타인자본참여

농지 및 자산의 단독 및 공동 소유

경영체의 소유자

의사결정참여

정보참여

협의참여

결정참여

정보의 공유

의사결정참여

경영의사결정자

경영 대표권

대외적 경영 대표

농산물 출하자 명의

상품출하관리통장의 명의

경영의 대표자

출처: 허미영 · 박민선, 2004.


5) 농업에서의 젠더이슈


(1) 여성노동력의 주변화

농업참여의 측면에서 보면, 여성농업인은 남성에 비하여 기술을 요하는 작업보다는 단순 반복되는 작업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농업기술교육을 받을 때 남성이 우선적으로 참가하며, 여성이 전문적인 기술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상대적으로 적다. 전반적으로 농가경영과 핵심노동은 남성이 담당하고 농업노동과 주변노동은 여성이 담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경향이다.

임금측면에서 보면,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임금을 낮게 받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인지 통계 DB에 따르면, 2006년 기준 농림어업 분야의 남녀 임금격차(남성 평균임금 대비 여성 평균임금의 비율)는 48%로 나타나 성별임금차이가 가장 높다. 밭농사나 시설재배농가에 고용되는 인력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농업부문의 노동가치평가에서도 성차별이 지속됨을 알 수 있다.


(2)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

농촌에서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무보수 가족 종사자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성이 여성농업인 및 실질적 경영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까지 농가에서 주요 자산(농지, 주택 등)은 가구주인 남성명의로 등기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여성농업인 명의의 농지가 없는 농가는 78.7%이며, 농가소유 농지 중 여성농업인 소유의 농지면적 비중은 16.3%이다. 2003년 14.9%에 비해 약간 증가하였지만 이는 고령 독거가구의 증가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실제 농가의 경영주가 아니면서 여성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는 전체농가의 8.3%밖에 되지 않는다(농림수산식품부, 2009).


농업인에 대한 정의

  • 농지법상의 농업인이란 1,000m 2 이상의 농지 또는 330m 2 이상의 고정식 온실 · 버섯재배사 · 비닐하우스에서 농작물 또는 다년생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자.

  •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대가축 2두, 중가축 10두, 소가축 100두, 가금 1,000수 또는 꿀벌 10군 이상을 사육하거나 1년 중 120일 이상 축산업에 종사하는 자.

  •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인 자.

  • 영농조합법인의 농산물 출하 · 유통 · 가공 · 수출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고용된 자.

  • 농업회사법인의 농산물 유통 · 가공 · 판매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고용된 자.


여성이 실질적으로 농업노동에 참여하고 있으나 농업참여의 주변화로 인하여 농업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용 · 재정 서비스 등에서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업 · 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 개정되어(’07.12.21), 여성농업인의 지위인정 관련 조항이 마련되었다. 예를 들면 ‘정부는 여성농업인이 농업경영 등에 참여하거나 기여한 정도에 상응하는 사회 · 경제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수립 · 시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제27조 2항)을 신설하여 여성농업인이 경영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3) 신용 · 재정 서비스에서의 불평등

여성농업인의 재산소유에서의 불평등은 이에 따르는 사회 · 경제적 혜택, 즉 신용 · 재정 서비스에서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신용과 재정서비스의 불평등은 여성농업인의 경영참여 및 독자적인 농업경영을 하고자 할 때 제약 요소가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금융기관을 통하여 농업관련 자금에 대한 재정 서비스를 받으려고 할 때 남성농업인과 차별적인 경향이 있다.

또한 최근 3년간 농축산경영자금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2005년에 3조 1,983억 7,700만 원, 2006년에 3조 856억 4,100만 원, 2007년에 2조 9,200억 6,400만 원으로 막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중 여성에게 지원된 대출비율은 2005년 13.3%, 2006년 13.6%, 2007년 15.8%에 그치고 있다(농림수산식품부, 2008). 이와 같은 결과는 첫째, 경영관련 업무가 남성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고, 둘째, 담보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대출의 경우에 여성농업인은 담보자산이 없으며, 셋째, 여성이 농업인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4) 여성농업인의 정책결정과정 참여

정책결정에서 여성 참여는 여성 권익의 증대뿐만 아니라 농업에서 여성참여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농업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을 보면 농림수산식품부 소관 각종 위원회(’07년 농정 23.4%, 수산 11.1%) 및 지방자치단체의 농정 및 수산관련 위원회의 여성 위촉비율(’07년 32%)이 아직까지 미흡하다.

2003년도 대비 2008년도 조직활동의 변화를 살펴보면, 작목반 가입은 4.4%에서 8.2%, 농업법인 가입은 3.1%에서 3.4%로 아주 낮은 수준이며, 여성농업인 단체의 가입은 18.7%에서 26.6%로 증가하였고(농림수산식품부, 2008), 여성농업인의 생산자단체참여를 나타내는 농협가입은 2005년 25.3%에서 2009년 29.7%로 증가하고 있지만 특히 농협 여성 대의원비율은 11.7%, 여성임원비율은 2.3%로 매우 낮다.

농가에서 여성역할이 증가함에 따라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농업인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농림수산식품부 소관 각종 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 농정 및 수산 관련 위원회의 여성위촉비율을 확대하고, 마을 단위 지역개발사업에 여성농업인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3. 국제 여성정책과 성 인지적 농업정책


1) 국제 여성정책의 배경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여성농업정책은 국제 여성정책의 영향을 받아 왔다. 국제 여성정책은 1975년에 멕시코에서 열린 제1차 <세계여성회의>를 기점으로 열렸던 네 차례의 <세계여성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에 따라 ‘발전 속의 여성전략(WID: Women in Development)’, ‘젠더와 발전전략(GAD: Gender and Development)’, ‘성-주류화 전략(Gender Mainstreaming)’ 등 크게 세 가지 전략으로 전개되었다.

유엔은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정하고 여성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유엔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협약을 제정하고, 향후 10년간 발전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발전 속의 여성전략’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WID전략은 여성들로 하여금 소득창출기회로 진입하게 하였으나 여성들의 지위향상으로 이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중부담만 늘어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수입활동을 하여도 그 성과는 남편에 의해 통제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농업에서 젠더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5년에 열린 ‘세계북경여성대회’이다. 북경여성대회를 계기로 농업정책을 수립할 때 성 인지적 관점을 통합시켰으며, 농업정책에 대한 성 분석을 시도하게 되었다. 세계북경여성대회의 실천방향으로 「여성발전을 위한 FAO 행동계획(1996∼2001)」을 수립하였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2001년 제3차 「여성발전을 위한 행동계획(2002∼2007)」은 젠더와 발전에 맞게 성 주류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효과적인 지원체계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GAD전략은 여성정책의 계획과 집행과정에 있어서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경험과 역할에 기초하도록 강조한다. GAD전략에서는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의 근원은 훈련이나 교육, 그리고 신용부족이 아니라 남성우월주의 이데올로기와 남성 주도의 권력분배와 통제방식 때문이라고 본다(Millerand Razavi, 1998: 김경희, 2005: 269 재인용).

1995년 북경에서 열렸던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는 남녀평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전략으로 성 주류화 개념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북경 행동강령에 의하면, 성 주류화는 “성(gender) 이슈를 공공기관의 모든 의사결정과 정책실행에 고려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 주류화 전략은 남녀가 사회의 각 분야에서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의 재구조화, 인력과 재정의 재분배, 제도와 사회문화 전반의 변화를 요구한다(강남식, 2001).

성 주류화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에는 성 주류화를 위한 정책기구의 설치, 성 분리통계와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정책과 프로그램의 성별영향평가, 성 인지예산, 남녀평등교육훈련 등이 제시된다(김재인, 2007).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성 주류화 전략은 기존의 여성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성 주류화 전략은 여성만을 특별하게 취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 여성과 남성의 차이, 여성들 간의 차이, 남성들 간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고려하여 남녀평등사회를 추진하는 것이다.


2) 성 인지적 여성농업인 정책의 추진


여성차별에 대한 접근에서 시작한 젠더이슈가 농업부문에서 심각하게 논의된 것은 저개발 국가에서 여성농업인의 지위에 관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여성농업인들의 농업노동 참여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농업인의 지위는 향상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과 여성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가와 자치단체의 책무와 협약이행을 골자로 한 「여성발전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여성발전기본법은 헌법의 남녀평등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사항을 규정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의 촉진과 여성발전의 도모를 목적으로 한다. 주요 효과는 남녀평등과 여성발전을 위한 법 제정 및 개정의 촉진, 여성정책수립의 촉진, 여성관련 행정기구 및 조직설치의 확대, 여성발전기금의 설치 운용과 여성단체사업의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김엘림 외, 2004: 147-150).

우리나라는 1980년 중반까지 요보호여성으로서 농촌여성을 다루다가 국민의 정부시기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정책대상으로 고려하였다. 1998년 농림부는 여성정책담당관실을 만들고 여성농업인 정책의 가이드라인인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여성농업인의 미래발전상을 구체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여성농업인에 대해 최초로 명시된 법령은 1999년 제정 공포된 「농업 · 농촌 기본법」(14조)이다. 이 법령에서는 여성농업인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의 필요성에 근거하여 여성농업인의 지위향상과 전문인력화를 위한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명시적 규정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시행령이 결여되어 선언적 성격의 법 규정이 되었다.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고 최초로 「여성농어업인육성법」(2001.12.31.)이 제정되어 성 인지적 농업정책의 단초를 열었다. 농업정책에서도 여성의 참여가 급증하고 그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성 인지적 접근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농림부에서는 2003년 3월에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농업 · 농촌 종합대책」에서 새로운 농정의 기본 틀과 정책방향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여성농업인과 관련하여 볼 때, 여성농업인센터의 확충 및 농가도우미제도에 대한 내용 정도만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농업 · 농촌 종합대책」에서는 여성농업인과 직접 관련된 정책과제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새로운 정책과제 발굴은 물론이고, 이미 추진되고 있는 여성농업인 정책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였다. 이에 농림부에서는 2004년 12월 「농업 · 농촌 종합대책」의 세부계획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여성농업인 복지 증진 이외에 농업 · 농촌사회의 발전주체로서 여성농업인 육성을 주요 과제로 채택하여 여성농업인 정책 추진 기반 구축, 성 인지적 농림사업 추진 유도, 여성농업인 역량 강화 등의 계획을 수립하였다(김영옥 외, 2005).


성 인지적 농업정책

농업분야정책과 프로그램을 추진할 때 여성과 남성의 독특한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경험과 관점을 고르게 반영하여 특정 성(性)에 대한 편파가 없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 인지적 농업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방법에는 성별영향평가가 사용된다. 성별영향평가는 정책, 프로그램, 법 등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차별적인 효과를 평가하는 것으로 정책의 수립, 집행, 평가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미치는 서로 다른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성 인지적 농업정책의 대표적인 예로는 호주의 “농업과 자원관리에서의 여성을 위한 계획”이 있고, 국내의 사례로는 농가도우미제와 여성농업인센터운영 등이다.


여성농업인 육성 5개년 계획

다음은 3차에 걸친 여성농업인 육성 5개년 계획의 기본틀이다. 제1차 여성농업인육성 5개년 계획(2001~2005)이 수립되어 여성농업인 경영능력 강화, 여성농업인 지위향상촉진을 위한 목표를 제시하였다. 핵심과제는 ① 신기술 · 신지식농업에의 대응을 위한 경영능력의 강화이다. ② 여성농업인의 역할증대에 부응하기 위한 지위향상촉진이다. ③ 여성농업인의 안정적 농촌정주를 위한 삶의 질 향상이다. ④ 여성농업인 육성정책의 체계적 구축을 위한 인프라의 구축이다(농림부, 2005).

제2차 여성농업인육성 5개년 계획(2006~2010)에서는 제1차 계획에서 더 나아가 남녀 농업인이 책임과 성과를 공유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 농촌을 비전으로 설정하고, 여성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남녀 파트너십 정착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① 여성농업인 지위향상, ② 여성농업인 전문인력화, ③ 여성농업인 복지증진 ④ 정책인프라구축 등이다.

2011년부터 시행되는 제3차 여성농업인육성5개년계획(2011~2015)에서는 여성농어업인을 농어촌의 전문 인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창조성 · 전문성 · 리더십을 겸비한 여성농어업인 육성,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을 통한 여성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을 비전으로 설정하고, ① 여성농어업인의 직업적 권익향상, ② 전문 농어업경영역량 강화, ③ 지역개발 리더 및 후계인력 육성, ④ 여성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정책추진 인프라 강화를 위한 정책이 시행된다(농림수산식품부).



4. 성 평등한 가족관계를 위한 모색


1) 가족경영협약


가족경영협약은 농가 내 가족 구성원, 특히 부부 간 요구사항의 협의과정을 거쳐 불만요소를 제거하고 생활상의 변화를 통하여 농가경영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가족경영협정이 1960년대부터 시행되었으며, 농업노동의 인력감소가 가시화되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일본의 가족경영협정제도는 독일의 「농지양도계약법」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부모와 자식(또는 영농승계자) 간의 협정으로 시작되었으나 농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농촌가구가 부부 중심의 농가형태로 바뀌면서 부부 간의 협정으로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가족경영협정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07년까지 가족협정체결 농가는 전국 37,721가구이고, 체결농가 중 74%는 인정농업인이다. 가족경영협약제도의 도입은 근대적인 농업경영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의 가족경영협약은 2004년 농촌진흥청의 연구지원으로 가족경영협약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전지역의 22쌍의 농가 부부를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가족경영협약을 체결하였다. 2006년 8월 충남도농업기술원에서 7쌍의 농가 부부가 가족경영협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농림부 후원으로 생활개선중앙회가 주관하여 3차례 워크숍을 실시하여 73쌍의 농가 부부가 협약을 체결하였다. 농촌진흥청의 가족경영협약 프로그램을 통하여 2008년 현재 가족경영협약농가는 총 170여 농가에 이른다.

협약의 주요내용은 농업경영의 목표, 역할분담, 이익분배, 노동조건, 경영이양, 기타 생활문제에 대한 협의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인에게 농업참여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거나 농지를 부인명의로 이전해 주는 농가에서부터 생활상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농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특히 노동시간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노력하거나 시설하우스 한 동씩 부부가 각각 책임지고 농사짓는 것을 합의하는 농가도 있다.


가족경영협약 시범 농가 부부


아직 도입 초기단계이지만 대체로 전업농가이며 상대적으로 젊은 40∼50대 부부의 경우에 협약의 효과는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박민선 · 허미영, 2005; 강경하 외, 2008; 허미영, 2009). 가족경영협약은 농가여성의 농업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 가사노동의 분담과 의사결정권의 확보를 통하여 부인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농업에 대한 책임감이 증가하여 궁극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2) 가족경영협약의 효과


(1) 성평등한 가족문화로의 전환

가족경영협약은 남편의 가사참여유도, 자산분배, 노동보수지급 등에 대한 협약을 통하여 성평등한 가족문화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협약과정을 통하여 적지 않은 의식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워크숍 진행과정에서 다른 농가의 가사분담사례, 자산분배실천사례경험을 통하여 인식의 전환을 경험한다. 농가 부부 각자가 여성농업인이 처한 불평등을 인식하고 여성농업인의 현실과 법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남성의 적극적인 대처를 이끌어내어 가사노동참여와 의사결정의 공유, 부인과 자산공유 등을 협의한다. 다음 사례는 협약 후 여성농업인이 느낀 변화를 나타낸다.


이전에는 하우스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밥하면서 청소기를 돌리면 남편은 TV보다가 겨우 발만 들어 주고 다시 내렸는데 이제 반찬도 냉장고에 넣어 주고 곧잘 설거지를 해준다(<사례 1W>).


남편은 “여자가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완고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내가 협약 후 느끼는 제일 큰 변화는 남편이 나를 배려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전에 남편은 자기가 아프면 큰일이고, 내가 아프면 별 것 아닌 것으로 대했다. 요즘은 내가 아프다고 하면 나를 들에 데리고 가지 않고 일꾼을 사서 일하기도 한다. 엄청난 변화이다(<사례 14W>).


(2) 농업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 증진

협약농가들 중 다수의 여성은 부부가 합의하에 경영성과를 분배받음으로써 자신의 농가경영에 책임감을 느끼고 농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아내로만 살았는데 이제 내 주장을 하고 내 단독으로 의견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100만원 출자금을 내어 주어 나를 농협조합원으로 가입시켜 주었기 때문에 농협회의에 가서도 내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의견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이다. 남편도 협약을 한 이후에는 시간이 나면 내가 도와달라고만 하면 언제나 가사노동을 해준다. 이전보다 훨씬 맘이 편하고 농사일도 재미있다(<사례 12W>).


가족경영협약을 한 농가 부부들은 협약한 후 가장 좋은 점으로 부부가 의논하여 농사와 가사를 하게 된 점과 노후에 대하여 미리 준비하게 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선도농가에 적용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가족경영협약의 효과가 추가적인 사후조사결과에서도 지속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상생활에서 불만요소였던 사안들을 부부가 협의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만족스런 가족생활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가족관계 및 가족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위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듯이 가족경영협약은 여성농업인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① 남편의 가사분담이 증가하였으며, ② 과도한 노동시간을 조절하여 생활에 여유를 갖고 여가생활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③ 부부가 서로 의논하여 농사와 가사를 결정하는 바람에 가족 내 민주화, 농업 경영합리화가 증진되었으며, ④ 노동대가 및 자산배분 등의 경제적 보상으로 여성농업인의 책임감 및 경영참여가 증가하였다.


가족경영협약

심규태 · 김서운씨 부부는 ‘가족경영협약’을 한 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쌓였다고 말한다. ‘가족경영협약’을 실천하는 심규태 · 김서운씨 부부. “집안일을 정확하게 분담하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집안일은 아내만의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영농교육이나 각종 행사에는 가능한 함께 참여하고, 농사일을 해도 내 몫을 당당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04년 8월 ‘가족경영협약’을 맺은 심규태(45) · 김서운(39)씨 부부(대전시 동구 대별동). 심씨 부부는 가족경영협약을 맺은 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마음의 변화’를 꼽는다. 예전 같으면 함께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김씨가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종종거려도 남편 심씨는 휴식을 취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가 집안일을 할 때 함께 나서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만큼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김씨 또한 농사일을 해도 예전과는 달리 의욕과 애착이 간다는 것.

1,900평의 시설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심씨 부부는 가족경영협약을 맺을 때 하루 작업시간을 김씨는 8시간, 심씨는 10시간으로 정했다. 김씨는 “농사일이 시간을 정해서 하기가 어렵지만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생활에 여유도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에는 협약 조항 중의 하나인 가족 여행도 다녀왔다. 예전 같으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뒀을 일이다.

협약 내용 중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은 경제적인 부분. 하지만 심씨는 집을 새로 짓게 되면 명의를 부부 공동으로 하겠다고 김씨에게 약속했다. 김씨는 “지난해 봄에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현장판매 수익금을 따로 관리했다”면서 “기대한 것보다 남편이 협약 내용을 지켜 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 기쁘다”고 말했다. 심씨도 “내년부터 포도 농사에서 나오는 수익은 어머니와 아내에게도 배분할 계획”이라며 “협약을 맺으니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쌓이는 것 같아 다른 부부에게도 적극 권장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출처: 한국농업인신문(2006.10.16)



5. 여성농업인 지위향상을 위한 과제


1) 법적 지위 확보를 위한 제반 제도 개선 필요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기 위하여 여성을 농가의 공동경영주로 인정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2008)은 여성농업인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조치로 공동(농업)경영주제도의 도입을 제안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공동경영주는 ‘농사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과 책임을 경영주와 함께 공유하면서 영농활동에 상시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개념을 정의하였다.

「여성농어업인육성법 및 시행령」에서는 여성농업인을 농업경영주, 공동농업경영주, 가족농업보조자, 농업임금근로자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농업인은 농업인을 인정하는 조건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농업경영주나 공동경영주로서 법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을 공동경영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농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한 가지 방안으로 현행 농지원부에는 농가주에 관한 사항을 중심으로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앞으로는 농지원부 작성양식을 개선하여 농가 구성원을 공동농업경영주, 가족농업보조자 등으로 구분하여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농가구성원에 대한 역할을 세분할 경우, 부부 및 가족 간의 역할 분담이 좀 더 명확해지기 때문에 농업경영의 합리화 및 개선이 이루어진다. 또한 여성농업인이 농업경영의 주체로 인정되면 각종 사회보험에서 독립적인 가입자 및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단독경영주가 아닌 여성농업인도 본인 명의로 정부의 각종 농업정책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어 농가여성의 신용 및 재정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다.

여성이 농업 공동경영주로 인정되면 대다수 여성농업인의 사회적 위상이 보조적인 가족농업 종사자에서 당당한 직업적 지위를 가지는 여성농업인으로 격상될 것이다. 따라서 여성농업인들의 직업의식이 강화되고 영농의욕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생명보험, 자동차보험의 보상수가를 산정함에 있어서 여성농업인을 일반 가정주부로 간주하는 불이익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2) 성 인지적 여성농업인 정책의 추진


현재 국가정책의 기조를 성 주류화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농업인에 대한 성 인지적 농업정책이 추진된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 정부는 농림수산식품부에 여성정책실을 폐지하고 부서의 명칭을 농촌사회과로 변경하였다. 농촌사회과에서 여성농업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농가경영을 합리화하고 성 평등한 가족문화로 전환을 가져오는 가족경영협약제도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났지만 확산되지 않고 있다. 여성농업인단체와 학계의 요구가 있었지만 가족경영협약을 제도화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여성농업인육성법」에 의거하여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가족경영협약에 대한 인정 근거와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족경영협약의 긍정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협약 체결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가족경영협약’ 관련 현장전문가 양성 및 체결 농가에 대한 정책적 지원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가족경영협약을 하는 과정에서 부부 간에 의견 조정이 가능하며, 노동참여 및 경영참여가 증가하고, 그만큼 농사일에 대한 책임감 및 농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가족문화에 관해서는 여성의 자율성 증대와 비례하여 가족의 민주화가 증진되고 여행 등 여가활동을 포함한 사회활동이 증가하며 협약을 통하여 부부가 의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의 가사노동참여가 여성농업인의 삶의 질 평가에 매우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남편의 가사노동참여를 유도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개선교육과 남성농업인 대상 양성평등문화, 가사노동참여의 필요성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필수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가족구성원들이 함께 영농계획을 수립하고 경영승계와 노동 보수 및 휴가 등에 대해 ‘농가경영협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며, 가족경영협약을 체결한 농가에게는 체결농가에 대한 연금가입, 창업농 및 부부 후계농 선발, 정책자금 지원 시 가점 부여 등 제도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향후 과제이다. 가족경영협약을 법제화하기 위해서는 가족경영협약 관련 현장전문가의 양성 및 체결 농가에 대한 정책적 지원방안 마련과 가족경영협약 체결 농가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여성농민운동의 방향: 생산, 가공, 유통, 농민에게

류화영(전여농 사무부총장)

얼마 전 KBS2TV 30분 다큐에서 전여농의 ‘우리텃밭’이 방송되었다. 상주 봉강마을의 제철꾸러미 생산자 조직이 소개된 것이다. 그 후 며칠 만에 카페 가입자가 1천200명이 되고 그 중 2백 명이 꾸러미를 신청했다. 농산물은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게 아니라 갑자기 많이 신청을 받을 수 없다하니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요.’ 간절한 사연을 담아 신청하는 소비자도 하나, 둘이 아니고 ‘대기자도 좋으니 제발 받아 달라’는 소비자도 많았다.

전여농 사무실은 즐거운 비명과 함께 생산자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100만이 촛불을 들었음에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고 중국산 과자에서는 멜라닌이, 냉동야채가공품에서는 생쥐와 면도날까지 등장할 정도로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식량체계는 생산과 가공, 유통과정에서 많은 농약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온갖 식품첨가물, 화학약품이 범벅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건강과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고 농민은 초국적 기업에게 경제적 이익은 물론 농민의 가치와 존엄까지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초국적 기업으로부터 종자를 사고 그에 맞는 농약, 비료, 농기계를 쓰며 중간상인이나 도매시장을 통한 판매로 고투입, 저소득이 될 수밖에 없고, 누가 먹을지도 모르고 헐값에 팔게 되니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농민 중심적인 생산, 가공, 유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식생활 패턴의 변화로 식품비 지출액 중에서 신선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에 80%에서 2005년에는 29.8%로 급감했다.

반면 가공식품의 비중은 같은 기간 18%에서 25% 수준으로 늘었다. 특히 식품비 지출액 중 외식비의 비중은 1970년에 1.9%에서 2005년에는 45.8%로 급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공식품과 외식산업 원재료의 대부분을 수입농산물, 그것도 상당수 GMO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농산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얼굴 없는 농산물들이 차지함으로 인해 농민과 소비자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농가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가공사업을 농민들의 협업으로 해냄으로써 그 부가가치가 농민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농촌공동체를 복원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농민적 가공의 핵심에는 전통지식을 가진 여성농민이 있다. 농사와 관련된 모든 지식과 지혜는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공동체 문화의 유산이며 자원이다. 이를 간직한 여성농민들은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수천수만 씨앗 중 우리 땅과 우리 몸에 맞게 걸러지고 선택되어 온 토종종자를 심고, 우리 가족이 먹는 것과 같이 정성들여 키우며,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손쉽게 요리하기위한 다양한 가공법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가공사업과 관련한 법 · 제도는 기업들에게는 유리하지만 사업자등록이나 조세제도, 표준규격 기준 획일화 등 과도한 규제로 여성농민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여농은 생산과 생활과 투쟁을 책임지는 여성농민 대표조직으로서 새로운 모색과 시도를 해오고 있다. 몇 해 전부터 횡성의 텃밭두부, 나주 알콩달콩 작목반 등이 여성농민의 협업을 통한 가공사업을 해왔으며 2007년 식량주권실현을 위한 농민, 소비자 교육과 직거래장터를 시작으로 2009년에는 ‘얼굴있는 생산자,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하는 우리텃밭’사업을 소비자들의 지지와 격려 속에 펼쳐나가고 있다.

생산비를 보장해주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농민이 주는 대로 먹겠다는 소비자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직된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연대는 가공업자, 유통업자, 지방정부까지 함께 하는 지역먹을거리체계를 세우는 중심이 될 것이다. 전여농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평등하게, 평화롭게 함께 나누며 농민으로서, 소비자로서, 주권국가로서 모두의 식량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세상을 향해 앞장서고자 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준비, 누군가는 먼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 전여농 “안전 먹을거리 보장 약속합니다.”(서울우리텃밭, 200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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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성정책개발원, 2004, 『농업인력 육성정책의 성별영향평분석평가』.

통계청, 2011, 『2010 농림어업 총조사 잠정 집계결과』.

허미영 · 박민선, 2004, “여성농업인의 경영참여 실태와 그 결정요인”, 『농촌사회』 14(1): 205-237.

허미영, 2009, “성 평등한 가족문화로의 전환: 가족경영협약농가를 중심으로”, 『가족과 문화』 21(3): 29-55.

한국농업인신문, 2006.10.16.

Boserup, Ester., 1970, Women’s Role in Economic Development, New York: St. Martin’s Press.

Miller, Carol. and Shara Razavi, 1998, Gender Analysis: Alternative Paradigms, UNDP

Sachs, Chrolyn E., 1983, The Invisible Farmers. NJ: Rowman and Allanheld.

社)農山漁村女性 · 生活支援協會, 2006農山漁村女性 · 生活活動支援協會, 2000, 여성농업인연구팀 역, 『일본의 가족경영협약과 여성농업인제도』,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농촌자원개발연구소.


이야깃거리

  1. 농가여성, 여성농민, 여성농업인의 개념적 차이를 설명해 보자.

  2.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면 개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설명해 보자.

  3. 성 인지적 여성농업인 정책은 기존의 여성농업인 정책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보자.


더 읽을거리

김주숙, 1994, 『한국농촌의 여성과 가족』, 한울.

농촌자원개발연구소, 2006, 『일본의 가족경영협약과 여성농업인지원제도』, 농촌진흥청.

반다나 시바, 한재각 외 역, 2000,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당대.

엄영애, 2007, 『한국여성농민운동사』, 나무와숲.

여성평우회 편, 1985, 『제3세계 여성노동』, 창작과비평사.





제12장 한국 농업구조의 변화와 위기의 한국농업


윤병선


주요 개념 및 용어

녹색혁명, 푸드달러, 농업생산력, 농업노동수단, 농업노동대상, 경지이용률, 경영규모별 농가분포, 농민층분해, 노동생산성, 노동집약도, 토지생산성, 자본생산성, 자본집약도, 농가소득, 농업소득, 농외소득, 농업조수입, 농업소득의존도, 농업소득의 가계비충족도, 농가부채, 전업농, 겸업농, 1종겸업, 2종겸업, 부등가교환, 가치수탈, 교역조건, 쉐레현상, 곡물자급률,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대안농업, 지역먹을거리운동, 유기농업


한국경제는 1960년대 이후 대외지향적인 공업화정책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농업은 식량자급률의 하락, 농업노동력의 급감과 고령화, 농지잠식 등이 급격하게 진행되어 왔다. 1970년에 230만 ha에 달하던 경지면적은 2010년 현재 172만 ha로 크게 감소한 반면, 휴경지는 크게 증가하였다. 농지의 외연적 축소와 함께 경지이용률도 1970년의 142.1%에서 2010년에는 109.0%로 크게 감소하였다. 특히, 식량작물의 재배면적은 1970년의 270만 6천 ha에서 2005년에는 123만 ha로 절반이하로 축소되어 곡물자급률은 25%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농업생산의 위축으로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감소되었다.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 중반이후 계속 감소되어 왔고, 더욱이 1990년대 중반에는 농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농업소득보다 높아지기 시작해서 2005년에는 농업소득의 비중이 40%이하로 하락했고, 2010년에는 31.4%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위기적인 상황은 197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개방농정과 상업농 체제로의 급속한 전환, 국제경쟁력 강화를 지상목표로 한 규모화 정책이 한국 농정의 핵심 축을 이루면서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농약과 비료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었고, 이는 석유문명에 기반을 둔 ‘녹색혁명형 농업’이 심화되는 과정이었다. 이 녹색혁명은 쌀과 소맥, 옥수수 등 3대작물의 다수확 개량품종, 관개,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이들을 결합하는 관리기술을 구성요소로 하는 일련의 기술체계의 개발과 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혁명은 선진국의 농업관련기업의 현지진출과 자원 · 시장지배를 위한 환경을 정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과거의 다품종 생산은 지역 내 자급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지만, 녹색혁명형 농업에 의거한 대규모 단일경작은 지역의 시장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유통자본의 개입이 없다면 판로의 확보도 어렵게 되었다. 농사의 연장에서 각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농산가공도 가공자본의 몫으로 되어버렸고, 제도와 법은 농민의 소규모가공을 제한하고 식품자본에 유리하게 적용되었다. 지역이나 국가 단위에서 순환이라는 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는 생산단계에서부터 거대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즉 종자, 농약, 비료에서 시작해서 가공과 유통에 이르는 거의 전 과정이 거대 종자업체와 농화학업체, 유통업체, 가공업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소비자가 지출한 식품비(푸드달러) 가운데 생산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포장업자가 가져가는 몫보다도 적은 지경에 이르렀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획일화된 ‘질 나쁜’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농업부문의 세계화는 시장 원리의 확산을 통해 지역차원에서 농업전문화 추세를 강화하고, 농민들을 초국적 농산업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농식품체계의 일부로 통합시키며, 농업생산물을 다른 형태의 가공 농식품 생산을 위한 원료로 바뀌게 하고 있다. 또한 음식소비 자체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식품체계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시장경제로 일컬어지는 자본주의경제에서 미약하게나마 보호의 대상이었던 농업이 녹색혁명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농업구조에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개괄하면서 농가경제의 변화과정과 농업의 위기적인 상황의 내용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녹색혁명(green revolution)

녹색혁명은 1943년 미국의 Rockfeller재단 주도로 이루어진 옥수수재배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후 IRRI(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국제쌀연구소)에 의해 IR-8과 같은 다수확 벼가 개발되면서 본격화되었다. 녹색혁명이 활발하게 추진된 1963∼1983년의 20년 동안 후진국의 쌀, 소맥, 옥수수의 총생산이 각각 연평균 3.1%, 5.1%, 3.8%의 증가율을 보여, 세계 곡물생산은 1960년대 초에서 1980년대 중반 사이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 함께 다양한 피해가 지적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관개에 따른 염해현상, 고수확품종의 보급에 따른 유전적 다양성의 상실, 화학비료나 농약의 다투입에 의한 토양 · 수질오염 등의 환경문제, 생산비용의 상승에 따른 경영압박과 기술보급 및 소득분배의 지역 간 · 계층 간 사회경제적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녹색혁명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transnational agri-food conglomerate)

과거 자급적 영역에서 농민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농업자재의 생산 및 가공부분에 자본이 진출하면서 농업관련산업(agribusiness), 농업관련기업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에 의한 농업지배가 심화되어 농업용 자재공급, 유통 · 가공의 각 단계를 통합하는 거대자본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 국가 내지는 지역차원에서 이루어졌던 이들 자본이 최근에는 국경을 초월하여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자본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 초국적 농업관련산업체들은 농업생산에 필요한 종자나 농화학제품의 생산에서부터 식품가공과 유통에 이르기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복합체(conglomerate)라고 한다. 대표적인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로서는 Cargill, ConAgra, Monsanto 등이 있는데, 이들은 농업용 자재의 생산, 농산물의 가공, 유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1. 농업생산력구조의 변화


시장경제로 일괄되는 자본주의경제를 성립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터전은 농업이었다. 산업혁명에 앞서 이루어진 농업혁명은 농산물을 원료로 이용해서 가공하는 공업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공업이 지배하는 사회로 전환되면서 농업도 이윤을 얻기 위한 산업으로 변화되었다. 농업의 시작이면서, 결과인 종자도 종자업체에 의존하게 되었고, 퇴비도 화학업체에서 생산한 비료로 대체되었다. 이로 인해서 농업생산량의 증대는 달성했지만, 더 많은 농업투입자재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되었다.

농업생산력이란 농업생산에서 발휘되는 인간노동 자체의 사회적 역량, 즉 농업노동의 생산력을 의미한다. 농업은 생산과정에서 광범하게 자연력을 이용하면서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데, 이러한 농업생산의 특수성 때문에 농업생산력이 특별하게 문제로 대두된다. 농업생산력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농업노동력과 농업노동대상(토지, 종자) 및 농업노동수단(농기계, 비료, 농약 등)이다. 이러한 농업생산력 구성별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한국농업의 생산력구조의 변화과정과 그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


1) 농지이용현황


생산과정이 다르면 토지가 수행하는 역할도 다르게 된다. 공업의 경우, 토지는 공장이 들어서는 장소로 단지 적재수단(積載手段)으로 기능하지만, 농업에서 토지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작물에 대하여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는 토양이다. 따라서 토지가 생산을 위한 일반적인 조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산력으로 직접적인 생산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농업생산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지가 농업생산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경지이용상황이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토면적은 1,000만 3천 ha이고, 이 중 경지면적은 171만 5천 ha로 매년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과정에서 필요한 공업용지와 택지조성으로 인한 농지의 잠식 때문이다. 이러한 농지의 외연적 축소와 함께 내포적 의미의 경지축소도 함께 나타났는데, 경지이용률은 1970년의 142.1%에서 크게 감소하여 2010년에는 109.0%를 기록하고 있다.


<표 12-1> 경지이용 상황(단위: 천 ha)

연 도

국토면적

경지

면적

경지

이용률

작 물 별 경 지 이 용 면 적

식 량 작 물

채소

특용

작물

과수

뽕밭

기타

소계

미곡

맥류

두류

서류

잡곡

1970

9,848

2,298

142.1

2,706

1,203

1,075

365

181

123

254

89

60

85

70

1975

9,848

2,240

140.4

2,522

1,218

761

324

146

73

244

118

74

43

143

1980

9,899

2,196

125.3

1,982

1,233

360

244

92

53

359

118

99

27

180

1985

9,912

2,144

120.4

1,780

1,237

242

196

65

40

337

133

109

12

221

1990

9,926

2,109

113.3

1,669

1,244

160

188

40

37

277

130

132

8

195

1995

9,927

1,985

108.1

1,346

1,056

90

132

40

28

322

122

172

2

233

2000

9,946

1,889

110.5

1,316

1,072

68

107

44

25

296

92

169

1

224

2005

9,965

1,824

104.7

1,232

980

61

118

48

26

240

77

150

1

222

2010

10,003

1,715

109.0

1,093

892

51

83

42

25

206

86

156

279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2011년 농립수산식품 주요통계』, 2011.


한편, 작물별 경지이용상황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식량작물의 재배면적은 1970년의 270만 6천 ha에서 2010년 109만 3천 ha로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맥류와 잡곡의 재배면적은 같은 기간 동안 크게 감소했지만, 1990년대까지 미곡의 재배면적이 감소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매제도 등을 통해 쌀값이 상대적으로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쌀값에 대한 정부의 지지정책이 후퇴하고, 쌀 수입이 이루어지면서 미곡의 재배면적도 감소하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25%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식량작물의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이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경지규모별 농가분포


경지규모별 분포는 녹색혁명형 농업과 개방농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990년경까지는 0.5ha미만의 영세농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규모가 큰 대농층이 증가하는 전반적인 상향이동의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는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경영규모를 늘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0년 이후에는 농가의 경영규모별 농가분포가 구조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즉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0.5ha 이하층과 2.0ha 이상층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고 있는데 증가하는 계층의 분기점이 상향 이동하여 1.0ha 미만층의 농가 수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대규모 농가의 분기점 역시 상향 이동하여 3.0ha 이상 층에서도 절대적인 농가 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1∼3ha 경영농가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1990년 이후 농가의 계층 간 이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3ha층을 중심으로 일부의 농가가 경영규모를 축소하여 하향 이동한 반면 일부의 농가는 경영규모를 확대하여 상향 이동한 것으로 판단된다.26) 3.0ha 이상 대규모 농가들의 경영규모가 크게 늘어나서 특히 5ha 이상 대규모 농가가 꾸준히 상승하여 2005년에는 3만 2천호를 넘고 있는데 이는 전체 농가 중 2.5%에 해당한다.


<표 12-2> 경지규모별 농가 분포 및 연평균 변화율(단위: 천 호, %)

연 도 

경종 외

농가

0.1ha

미만

0.1∼

0.5ha

0.5∼

1.0ha

1.0∼

1.5ha

1.5∼

2.0ha

2.0∼

3.0ha

3.0ha

이상

농가호수

1970

72

(2.9)

26

(1.0)

761

(30.6)

824

(33.2)

446

(18.0)

193

(7.8)

124

(5.0)

37

(1.5)

2,483

(100.0)

1975

94

(4.0)

2

(0.1)

689

(29.0)

828

(34.8)

431

(18.1)

187

(7.9)

112

(4.7)

36

(1.5)

2,379

(100.0)

1980

28

(1.3)

14

(0.6)

598

(27.7)

748

(34.7)

438

(20.3)

191

(8.9)

109

(5.1)

31

(1.4)

2,156

(100.0)

1985

46

(2.4)

9

(0.5)

525

(27.3)

686

(35.6)

390

(20.2)

160

(8.3)

87

(4.5)

23

(1.2)

1,926

(100.0)

1990 

24

(1.4)

15

(0.8)

468

(26.5)

544

(30.8)

352

(19.9)

191

(10.8)

129

(7.3)

44

(2.5)

1,767

(100.0)

1995

24

(1.6)

16

(1.1)

417

(27.8)

432

(28.8)

265

(17.7)

153

(10.2)

123

(8.2)

70

(4.7)

1,501

(100.0)

2000

14

(1.0)

30

(2.2)

410

(29.6)

379

(27.4)

219

(15.8)

132

(9.5)

114

(8.2)

85

(6.1)

1,383

(100.0)

2005

17

(1.3)

38

(3.0)

419

(32.9)

330

(25.9)

174

(13.7)

107

(8.4)

93

(7.3)

93

(7.3)

1,273

(100.0)

2010

14

(1.2)

23

(2.0)

450

(38.2)

288

(24.5)

142

(12.1)

87

(7.4)

78

(6.6)

97

(8.2)

1,177

(100.0)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2011년 농립수산식품 주요통계』.


이러한 변화는 농업구조의 협의적 개념, 즉 농업생산요소 간의 결합관계, 특히 농지와 농업노동력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구조적 변화로 파악될 수 있다.


3) 농가인구의 구성과 변화


한국 사회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과 산업화로 인한 급속한 도시화와 농촌인구의 절대적 · 상대적 감소, 이로 인한 지역 간 · 산업 간 불균형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농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에 따라 농가인구의 절대적 · 상대적 감소 또한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와 같이 단기간에 농가인구가 급속도로 감소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농가인구는 1970년대 후반에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하였는데, 총인구 중 농가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 44.7%에서 1980년에는 28.9%로, 그 후 1990년에는 총인구의 15.3%인 666만 명이 되었으며, 2000년에는 8.7%인 403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감소세는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10년 후인 2010년에는 6.4%인 306만 명으로 지난 25년 만에 농가인구는 3분의 1수준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농가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농업노동력의 양적 감소뿐만 아니라, 농업노동력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


<표 12-3> 농가인구의 변화: 1970∼2010(단위: 천 명, %)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2000

2005

2010

총 인구

32,241

35,281

38,124

40,806

42,793

44,406

46,333

47,041

48,580

농가인구

14,422

13,244

10,827

8,521

6,661

4,851

4,031

3,434

3,063

총 인구대비

44.7

37.5

28.9

20.8

15.3

10.9

8.7

7.3

6.4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2011년 농립수산식품 주요통계』.


농업노동력의 질적 저하는 농업경영주의 연령별분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 농업경영주의 연령별 분포를 보더라도 농업노동력의 노령화가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81년의 경우 30세 미만의 농업경영주의 비율이 5%를 넘었으나, 1990년에는 2.1%로 크게 감소하였고, 2010년에는 0.2%에 불과하게 되었다. 또한 30∼49세의 농업경영주의 비율도 1981년 46.1%에서 2010년에는 14.6%로 크게 하락하였다. 그러나 60세 이상의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21.5%에서 60.9%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또한, 농가 경영주의 노령화는 후계자에 의해 농가의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에 의해 경영이 승계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어 여성경영주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표 12-4> 농업경영주의 연령별 분포(단위: 천 호, %)

연 도

총 농가

30세 미만

30∼49세

50∼59세

60세 이상

호 수

비 율

호 수

비 율

호 수

비 율

호 수

비 율

1981

2,030

104

5.1

936

46.1

555

27.3

435

21.5

1985

1,926

99

5.0

789

41.0

582

30.2

493

25.9

1990

1,767

37

2.1

594

33.6

584

33.0

552

31.3

1995

1,500

12

0.8

406

27.1

447

29.8

635

42.3

2000

1,383

7

0.6

322

23.3

348

25.2

706

51.1

2005

1,273

2

0.2

226

17.7

303

23.8

741

58.3

2010

1,777

2

0.2

172

14.6

287

24.4

717

60.9

출처: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

4) 농업생산요소 투입량의 변화


한편 농가인구의 감소에 따른 농업취업자의 감소로 인하여 농가의 호당 평균 노동투하량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동력기계의 투입시간은 크게 증가하였다(2005년에 대한 수치조정). 녹색혁명형 농업의 영향으로 비료와 농약의 사용량은 1990년경까지 꾸준이 증가하였다. 다만 1990년대 이후 비료와 농약의 사용량이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식품의 안정성과 관련하여 비료와 농약사용을 억제하는 농법이 도입되고, 정부의 친환경농업육성정책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 12-5> 농업생산요소 투입량의 변화

연 도

비료

(ha당 kg)

농약(논)

(ha당 kg)1)

농가노동투하량(호당 평균, 시간)

노동력

축력 일손돕기

동력 단일위탁

1975

282

3.6

1,708.5

82.6

18.1

1980

285

5.2

1,814.9

46.8

34.8

1985

311

5.7

2,017.0

28.7

80.3

1990

458

6.8

1,592.7

10.6

129.8

1995

434

4.6

1,413.7

3.1

159.1

2000

382

5.9

1,266.1

1.1

129.5

2005

376

4.7

1,487.5

45.6

17.6

2008

311

4.3

1,299.4

44.6

-

주: 1) 농약사용량은 농약출하량을 기준으로 추정. 1975년 사용량은 1978년 수치.

     2) 2003년부터 축력, 동력 대신에 일손돕기, 단일위탁이 조사됨.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림업주요통계』, 『농림수산식품통계연보』.


한편, 농업생산의 증가는 품종개량, 영농기술의 개선, 농업관련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지면적이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농업노동력도 양적 · 질적으로 감소되는 상황에서 농업기술발전에 의한 토지생산성의 향상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표 12-6>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동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지만, 최근 토지생산성의 증가속도는 정체상태에 있다. 특히 자본생산성은 1990년대에 들어선 이래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자본의 다량투하에 의한 농업생산의 증대를 꾀하려는 최근의 농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표 12-6> 농업생산성의 추이

연 도

노동생산성1)

(원/시간)

노동집약도

(시간/10a)

토지생산성2)

(원/10a)

자본생산성

(원/원)

자본집약도3)

(원/10a)

1970

121

183.2

22,217

0.84

26,394

1975

511

159.0

82,578

0.81

100,904

1980

1,274

161.0

205,156

0.84

243,143

1985

2,318

168.8

391,360

0.69

570,159

1990

4,932

126.7

624,893

0.70

892,355

1995

9,387

106.6

954,171

0.61

1,574,839

2000

11,778

89.21

1,050,677

0.47

2,236,672

2005

12,297

92.76

1,140,668

0.36

3,137,691

2010

15,698

81.09

1,272,945

0.32

3,920,428

주: 1) 노동생산성 = 농업부가가치/영농시간, 노동집약도 = 영농시간/경지면적.

     2) 토지생산성 = 농업부가가치/경지면적, 자본생산성 = 농업부가가치/농업자본액.

     3) 자본집약도 = 농업자본액/경지면적.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2011년 농림수산식품 주요통계』.



2. 농가경제의 변화


1) 농가소득과 농업소득


농가소득은 농업소득과 농외소득(겸업소득, 사업이외소득, 이전수입)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농가의 경제적 지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이다. 농업소득은 농작물수입과 축산물 · 농산물가공수입 등으로 이루어지는 농작물이외수입을 합계한 농업조수입에서 농업생산에 투입된 농업경영비를 뺀 것으로, 농업소득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계속 감소되어 왔다. 농가소득에 대한 농업소득의 비중을 나타내는 ‘농업소득의존도’는 농가 내에서 농업경영의 중요도, 즉 농가경제에서 농업소득이 갖는 의의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경지규모가 큰 농가일수록 높고 작은 농가일수록 낮다. 농업소득의존도는 1970년대 초 · 중반을 제외하고는 농가소득의 농업소득의존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는데, 농산물시장개방이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 이후 농업소득의 비중은 크게 감소하여 2005년경부터는 40% 이하로 떨어졌고, 2010년에는 31.4%에 불과하게 되었다.


<표 12-7> 농가소득의 구성과 추이(단위: 천 원, %)

연 도

농가소득

농업소득

농 외 소 득

이전소득

겸업소득

사업이외소득

1970

256(100)

194(75.8)

10(3.8)

31(12.0)

22(8.4)

1975

873(100)

715(81.9)

22(2,3)

84(9.7)

52(5.9)

1980

2,693(100)

1,755(65.2)

67(2.5)

489(18.2)

383(14.2)

1985

5,736(100)

3.699(64.5)

214(3.7)

846(14.7)

977(17.0)

1990

11,026(100)

6,264(56.8)

589(5.3)

2,252(20.4)

1,921(17.4)

1995

21,803(100)

10,469(48.0)

1,527(7.0)

5,404(24.8)

4,403(20.2)

2000

23,072(100)

10,897(47.2)

1,435(6.2)

5,997(26.0)

4,743(20.6)

2005

30,503(100)

11,815(38.7)

2,531(8.3)

7,353(24.1)

8,803(28.9)

2010

32,121(100)

10,098(31.4)

3,467(10.8)

9,408(29.3)

9,077(28.3)

주: 1) 1983년도부터는 이전소득이 사업이외소득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항목으로 분류됨.

     2) 1983년 이전의 금액은 사업이외소득에서 사례금 · 송금보조 · 피증보조를 추출해낸 것임.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2011년 농림수산식품 주요통계』.


한편, 1990년대 중반에는 농외소득(이전소득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농업소득보다 높아지기 시작했는데, 농외소득의 증대는 정부의 농외소득개발정책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송금보조 및 피증보조, 비경상소득 등이 이전소득에 포함되면서 이전소득이 과대평가된 측면도 있다. 이전소득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의 8.4%에서 2010년에는 28.2%로 급증했는데, 이전소득에는 농가의 경영활동과는 무관한 사례금, 송금보조, 경조수입, 퇴직일시금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농가소득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2) 농업소득의 가계비 충족도


농가경제에서 농업소득이 갖는 의의와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가 가계비 중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농업소득의 가계비 충족도’이다. 농업소득의 가계비 충족도는 평균적으로는 1970년대 중반까지 점차 상승하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1975년에는 농업소득만으로도 가계비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나, 2010년에는 36.5%밖에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는 농가경제에서 농업경영이 갖는 의미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서,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경지규모를 확대해야만 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즉, 1975년의 경우는 경지규모가 0.5ha 이상이면 농업소득만으로도 가계비를 충족시킬 수 있었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그 기준이 1.5ha이상으로 높아졌으며, 1990년대에는 다시 2.0ha 이상으로 높아졌고, 2000년 이후에는 2.0ha 이상의 농가조차 농업소득으로는 가계비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표 12-8> 농업소득의 가계비 충족도(단위: %)

연도

평 균

경지규모별 농업소득의 가계비 충족도1)

0.5 ha 미만

0.5∼1.0 ha

1.0∼1.5 ha

1.5∼2.0 ha

2.0 ha 이상2)

1970

93.4

54.3

88.3

103.6

119.3

112.4

1975

116.0

78.3

107.8

124.0

138.5

149.5

1980

82.0

39.6

75.1

89.9

101.5

124.4

1985

78.9

35.6

53.6

82.9

103.0

115.2

1990

76.1

33.5

56.3

84.3

96.5

105.5

1995

70.8

34.5

55.3

81.5

89.8

117.5

2000

63.6

17.2

42.8

69.4

77.8

93.3

2005

44.3

16.1

25.4

36.3

51.2

60.1

2010

36.5

9.6

31.6

38.2

36.5

41.2

주: 1) 농업소득 가계비 충족도 = (농업소득/가계비)×100.

     2) 2000년 이후는 2.0∼3.0ha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농가경제조사결과보고』 각년판.


한편, 농업경영을 통하여 가계비를 충족시키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면 농민들은 겸업이라는 형태로 활로를 모색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1970년대 중반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일정하게 유지되던 전업농 비율은 최근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한편, 1980년대 중반 이후 빠른 속도로 늘어났던 제2종 겸업농가의 비율이 최근에 다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농업소득의 감소를 겸업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농가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표 12-9> 전업 · 겸업별 농가호수(단위: 천 호, %)

 

총농가수

전 업

겸 업

소 계

소 계

1종

2종

호 수

비 율

호 수

비 율

호 수

비 율

호 수

비 율

1970

2,483

1,681

(67.7)

802

(32.3)

488

(60.8)

314

(39.2)

1975

2,379

1,917

(80.6)

462

(19.4)

298

(64.5)

164

(35.5)

1980

2,155

1,642

(76.2)

513

(23.8)

295

(57.5)

218

(42.5)

1985

1,926

1,518

(78.8)

408

(21.2)

168

(41.2)

240

(58.8)

1990

1,767

1,052

(59.6)

715

(40.4)

389

(55.7)

326

(44.3)

1995

1,501

849

(56.6)

652

(43.4)

277

(42.5)

374

(57.5)

2000

1,383

902

(65.2)

481

(34.8)

225

(46.7)

257

(53.3)

2005

1,273

796

(62.6)

477

(37.4)

165

(34.6)

311

(65.4)

2010

1,177

627

(53.3)

550

(46.7)

193

(35.2)

356

(64.8)

주: 1) 1종겸업농가는 연간총수입 중 농업수입이 50% 이상인 겸업농가.

     2) 2종겸업농가는 연간총수입 중 농업수입이 50% 미만인 겸업농가.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2011년 농림수산식품 주요통계』, 각년판.



3. 농업위기의 실태


1) 농가교역조건의 악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농업부문에도 전면화 되면서 자본에 의한 농업지배가 한층 강화된다. 그 결과 자본에 의해서 생산된 생산물(종자, 비료, 농약, 농기구 등)과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 사이에 부등가교환이 이루어져 농민으로부터 가치수탈이 심화된다. 첫째, 농기계, 비료, 농약 등의 농업자재 생산의 대부분은 독점자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농업용 자재는 독점자본이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생산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 즉 독점가격으로 판매한다. 이 독점가격에 의한 농업자재의 가격상승은 농업경영비를 증대시켜 최종적으로는 농가의 소득감소를 가져온다. 둘째, 농산물시장을 통한 가치수탈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한편에서 농업에 있어서의 상품생산이 현저하게 진전되고, 농업경영은 시장을 겨냥한 경쟁이 치열해 진다. 이로 인해 다수의 소규모 생산자 사이의 경쟁이 격화된다. 다른 한편 농산물의 구입자인 가공 · 유통부문에서는 독점화가 진전되어 소수의 독점적 가공메이커나 유통업자의 지배력이 강해진다. 그 결과 농산물의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시장의 역학’의 차가 발생한다. 독점적인 가공업체나 유통업자는 힘의 차이를 배경으로 농산물의 가격인하를 강행한다. 이러한 사실은 농가투입재와 농산물 사이의 교역조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 1) 농가교역조건 = (농가판매가격지수 / 농가구입가격지수) × 100

                                                             2) 2005년 = 100을 기준.

<그림 12-1> 농가교역조건추이


<그림 12-1>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농가구입가격지수의 상승률은 농가판매가격지수의 상승률을 훨씬 앞서게 되어 농가의 교역조건은 악화되어 왔고, 최근에 들어서면서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27)


2) 식량자급력의 악화


농업생산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농산물의 수입개방의 전면화로 식량작물의 생산감소와 수입대체현상이 일반화되었고, 그 결과 곡물자급률은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1970년에 80.5%였던 곡물자급률은 1995년에는 30% 이하로 하락하였고, 그 이후 30%∼25%대의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두류의 자급률은 1970년의 86.1%에서 2010년 8.7%로, 밀은 같은 기간 동안 15.4%에서 0.8%로 급락했다. 이와 같이 낮은 곡물자급률은 2008년의 세계적 식량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전지구적인 기상재해 등으로 곡물생산량이 급감할 경우 곡물의 안정적인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대안농업운동(alternative agriculture movement)

대안농업운동은 기존의 거대 농기업과 거대 유통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생명논리에 의해 생산과정을 재구조화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소비자에게 공급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환경과 농업의 친화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농업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부하를 줄이고, 자원의 내부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지역자원과 환경의 보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농업생산성과 수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는 농업경영방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유기농업운동과 1980년대 이후의 생활협동운동에서 최근의 지역먹을거리(local food)운동에 이르는 다양한 운동들이 대표적인 대안농업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생협운동은 대안소비자운동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으며, 지역먹을거리운동은 대안지역사회운동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표 12-10> 곡물자급률 추이(단위: %)

연도

보리쌀

옥수수

두 류

서 류

기 타

1970

80.5

93.1

106.3

15.4

18.9

86.1

100.0

96.9

1975

73.1

94.6

92.0

5.7

8.3

85.8

100.0

100.0

1980

56.0

95.1

57.6

4.8

5.9

35.1

100.0

89.8

1985

48.4

103.3

63.7

0.4

4.1

22.5

100.0

11.6

1990

43.1

108.3

97.4

0.05

1.9

20.1

95.6

13.9

1995

29.1

91.4

67.0

0.3

1.1

9.9

98.4

3.8

2000

29.7

102.9

46.9

0.1

0.9

6.4

99.3

5.2

2005

29.4

102.0

60.0

0.2

0.9

9.7

98.6

10.0

2010(P)

26.7

104.6

26.6

0.8

0.8

8.7

98.7

7.8

출처: 농림수산식품부, 『2011년 농림수산식품 주요통계』.


3) 도농 간 소득격차의 확대


농업소득의 감소와 이에 따른 농가소득의 정체로 인해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과 농가소득의 격차가 확대되었다. 도시근로자 가구소득과 농가소득의 비교자체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농가소득은 농업소득, 농외소득, 이전수입 등의 총계이고, 영농에 참가한 가족전체의 현금소득과 현물소득이 포함되어 있는 데 반해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은 근로소득, 기타소득 등 현금소득만을 계상하고 있다. 더욱이 영농을 위해서 노동력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을 제공 · 지출하는 농가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구의 소득비교 는 농가소득이 과다하게 계상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가구소득과의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림 12-2>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90년대 중반 도시근로자가구소득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있었던 농가소득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그 격차가 더욱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주: 소득격차 = 농가소득 / 도시근로자가구소득

<그림 12-2> 도시근로자가구와 농가의 소득격차추이



4. 맺음말: 대안의 모색


농업부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시장 원리의 확산을 통해 지역차원에서 농업전문화 추세를 강화하고, 농민들을 초국적 농산업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농식품체계의 일부로 통합시켜 왔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먹을거리의 생산과 가공, 유통 및 소비체계는 세계적 규모로 급속하게 통합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농업생산과 관련한 전 과정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직 · 간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그 폐해는 건강한 농촌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에 의한 지구적 규모의 농업지배의 강화는 생태학적 문제를 야기하고, 대규모 단작을 중심으로 하는 공장식 영농으로 인해 농약의 남용을 가져오며, 농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체를 위협하고, 작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농촌사회의 불평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는 값싼 위험식품(junk food)문화에 노출된다. 현재의 농식품체계는 환경적으로 균형잡힌 영농체계를 무너뜨리고, 유전적 자원의 다양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대량투입을 전제로 하므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농가소득이 감소하고, 경작면적도 축소되 었고, 식량자급력은 크게 저하되었다. 도농 간의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가운 데, 농업에서는 후계인력의 확보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농정은 규모화와 국제화를 통해서 한국농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기존의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생산농민을 중심으로 한 대안농업운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소비자운동이 결합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대안농업운동은 기존의 거대 농기업과 거대 유통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생명원리에 의해 생산과정을 재구조화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도시와 농촌의 분리 및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담겨있다. 환경과 농업의 친화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농업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부하를 줄이고, 자원의 내부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지역자원과 환경의 보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농업생산성과 수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는 농업경영방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아울러 녹색혁명형 농업에 기반을 둔 세계의 농식품체계로 인해 파괴된 농촌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운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공동체는 인간 본래의 관계방식이며 사회적 삶의 그릇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자연과 맺어 온 공동체적 관계는 근대 이후 점차 해체되었으며, 그 자리는 자본주의 상품관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지속가능성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공동체적 관계는 단절되고 왜곡되었다. 도농 간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격차의 확대를 가져왔고 급기야 농촌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졌기에 파괴된 공동체를 회복함으로써 농업을 살리고, 생태를 복원하는 작업이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에 의해서 재구조화된 현재의 세계 농식품체계가 초래한 사회적 · 경제적 · 환경적 문제들을 극복하고, 세계 농식품체계하에서 발생한 먹을거리의 공간적 · 시간적 · 장소적 · 형태적 괴리의 확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지역먹을거리(local food)운동도 관심을 받고 있다. 직거래를 통해서 농업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농민운동차원에서도 이루어졌지만, 지역먹을거리운동은 단순한 직거래운동을 넘어서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 내기 위해서는 농(農)과 식(食)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극복하고 지역 내 자원의 선순환을 꾀함으로써 지역의 재생도 도모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유기농업(organic farming)

유기농업이란 화학비료나 농약, 생장조절제, 제초제, 가축사료 첨가제 등을 사용하는 대신 유기물과 자연광석, 미생물 등 자연적인 자재만을 사용하는 농업을 말한다. 20세기의 농업은 인공적으로 화학합성된 비료나 농약 등 화학물질을 사용함으로써 농업생산력은 크게 높아졌으나, 오랜 기간에 걸쳐 화학물질을 사용하면 자연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밝혀졌다. 유기농업은 퇴비와 두엄 등 유기물을 주비료로 사용하게 되면 토양의 활력이 회복되어 작물 자체에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이 자연적으로 생기는 원리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생산농민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업생산자단체는 1976년에 설립된 ‘정농회’라고 할 수 있다.

지역먹을거리운동(local food movement)

지역먹을거리운동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에 의해서 재구조화된 현재의 세계 농식품체계가 초래한 사회적 · 경제적 · 환경적 문제들을 극복하고, 세계 농식품체계하에서 발생한 먹을거리의 공간적 · 시간적 · 장소적 · 형태적 괴리의 확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직거래를 통해서 농업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농민운동차원에서도 많다. 그러나 지역먹을거리운동은 단순한 직거래운동을 넘어서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 내기 위해서 농(農)과 식(食)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극복하고 지역 내 자원의 선순환을 꾀함으로써 지역의 재생도 도모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먹을거리운동은 농민시장, 학교급식, 농산물 가공, 꾸러미사업 등이 있다.

대안적인 농식품체계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단순한 연계에서 벗어나서 ‘소비자의 생산, 생산자의 소비’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관행농업과 대안농업은 단순히 영농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안농업은 관행농업을 지탱하는 사회 · 경제체제와 물질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는 “특별한 사회구조 및 특별한 도덕적 · 인지적 신념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안적 농식품체계는 단순히 농산물체계만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유기농업은 지역별 환경요인에 바탕을 두고 생산규모를 조정하고, 자연순환농법과 저투입 농법을 확산시키면서, 사회경제적 · 정책적 구성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는 시스템으로 농촌구조가 전환을 모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로의 회복과 농촌지역의 인간권리의 회복까지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소비자의 요구나 특화된 생산물을 생산하여 판매하기 위한 농민들의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농업의 의미를 새롭게 보고, 농업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농민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그 속에서 농업종사자들의 권리를 회복시키고, 소비자의 식탁에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자는 공생과 생명의 유기농업운동이 그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생산농민들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재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계된 대안적인 생활협동조합이나 지역먹을거리운동이 실험범위를 넘어서지 않고 있지만, 이들이 거대한 글로벌 경제에 대한 저항운동과 합류하고 여러 다양한 차원의 존재들과 합류해 나간다면 커다란 운동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는 “농업은 자연에서 생존하는 생물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농업을 하나의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보다 폭넓게 농사라는 인간본래의 삶의 방식과 관계를 가진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자와는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사의 외연적 확대와 내포적 심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농사의 외연적 확대는 농사를 단순히 농작물의 생산에 한정시키지 않고, 생산한 농작물을 가공과 판매뿐만 아니라, 연구개발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사업형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농사의 내포적 심화는 각종 생산활동과 생활양식이 주위의 자연적 · 사회적 환경에 오염이나 파괴를 초래하지 않게 하면서 생산물도 건강, 문화, 환경의 관점에서 우수한 것이 되게 하는 생산행태를 추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우자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앞으로 대안농업운동은 다음과 같은 점을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첫째, 순환의 체계를 만들면서 농사의 외연적 확대를 꾀해야 한다. 1차 농산물의 생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역에서 가공하고, 나아가 지역에서 판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은 단지 농민들에게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 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 현재의 관행화된 유기농업에 대한 진지한 반성도 필요하다. 유기농업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향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자원도 가능하면 내부에서 조달하는 시스템을 지향한다. 현재와 같이 석유문명에 기초를 두고 있는 농업생산체계는 생산물의 안전성과는 별개로 유기적인 것이 아니다. 가능하면 농업생산에 투입되는 농자재를 내부에서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통한 농사의 내포적 심화를 꾀해야 한다. 대안농업운동은 단지 안전한 먹을거리의 생산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생태성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이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체제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대규모 전업농이 아닌 건강한 소농들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다. 대안농업운동은 농업의 회생을 통해서 농촌의 회생을 꾀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새롭게 농민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고, 파괴된 농촌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유기적인 관계를 고려한 영농방식으로 생산한 농산물이 지역에서 가공되고 소비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한다. 생태적 여건을 고려한 유기농업생산, 지역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상생의 생활협동조합운동, 지역산 농산물의 가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순환체계가 이루어짐으로써 지역 내의 자기의존체계(self-reliance system)를 공고히 하는 것이 대안농업운동이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종덕, 2009, 『먹을거리의 위기와 로컬푸드』, 이후.

김철규, 2006, “한국 농업체제의 위기와 세계화: 거시역사적 접근”, 『농촌사회』 16(2): 183-211.

김흥주, 2006, “생협 생산자의 존재형태와 대안농산물체계의 모색”, 『농촌사회』 16(1):95-142.

박민선, 2009, “초국적 농식품체계와 먹거리 위기”, 『농촌사회』 19(2): 7-36.

우자와 히로후미, 이병천 역, 2008, 『사회적 공통자본』, 필맥.

윤병선, 2004,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농업지배에 관한 고찰”, 『농촌사회』 14(1): 7-41.

윤병선, 2004, “농업관련산업의 세계화 전략과 그 영향”, 『산업경제연구』 17(5): 1637-1653.

윤병선, 2010, “대안농업운동의 전개과정에 관한 고찰”, 『농촌사회』 20(1): 131-160.

조완형, 2006, “생협운동의 최근 동향과 대응과제”, 『한국협동조합연구』 24(1): 115-135.

허장, 2007, “유기농업의 ‘관행농업화’와 위기에 관한 논의”, 『농촌경제』 30(1): 1-30.


이야깃거리

  1. 한국사회에서 농업 · 농촌 · 농민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 있는 지표들은 무엇일까?

  2. 위의 지표들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살펴보자.

  3. 대안농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장사례에 대하여 조사해 보자.


더 읽을거리

야마자키농업연구소, 최연희 역, 2010, 『자급을 다시 생각한다』, 녹색평론사.

프레드 맥도프 외, 윤병선 외 역, 2006, 『이윤에 굶주린 자들』, 울력.

각주

1) 이 책에서는 사회학의 방법론에 대해 깊이 다루지 않는다. 보다 자세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관련 도서를 참조하거나 사회학 방법론 수업을 수강하기 바란다.

2) 이러한 가족은 가구(household)와 구별되기도 한다. 정부의 인구조사에서 주로 이용되는 가구는 주거나 가계를 함께하는 자나 독신으로 주거를 갖고 단독생활을 하는 자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혼인이나 혈연은 고려되지 않고 경제적인 협력과 주거 공간의 공유를 기준으로 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3) 한국의 전통 농촌사회에서는 흔히 장남이 혼인 후 분가하지 않고 자신의 자녀와 부모와 같이 3세대가족을 구성하는데, 이를 장남형 직계가족이라고 한다(최재석, 1975). 반면에 1970년대 이후 장남을 중심으로 자녀교육이 이루어지면서 이들이 도시로 이동하고, 차남이 학업을 포기하고 농촌에서 부모와 함께 농사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차남형 직계가족’이 만들어지기도 한다(최재석, 1988; 김흥주, 1994).

4) 장현섭(1993: 48)은 『학술논저종합색인』(1987)의 가족 부분에 수록된 해방 이후의 가족연구 600여 편 대부분이 “산업화로 인해 한국사회는 핵가족화되었다”라는 주장을 하거나 그러한 가정에서 자신들의 논지를 전개시키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5) 장현섭(1993)은 한국 가족유형의 구조적 특질을 보다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구센서스 자료의 일방적인 가구형태 분류에서 나아가 한국인의 가족가치 지향을 감안하여 일반적인 의미의 핵가족과 직계가족으로 구성되는 이념형과 노인부부가족이나 한부모가족 등으로 구성되는 비이념형, 그리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념형이나 비이념형으로 변화하는 과도기형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이념형 개념은 Weber가 설명한바, 논리적 일관성에 의해서 같이 묶여질 수 있는 측면들을 선택하여 통일되고 일관성 있는 개념적 구성물을 의미한다.

6) 1985년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64.5%에 이르렀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8년에는 31.6%에 불과하다(농촌진흥청, 2009: 128).

7) 이러한 가족 개념은 바로 우리의 전통적인 ‘집(家)’의 개념과 연결되는데, 이는 과거의 조상을 거쳐 미래의 자손에 연결된다고 의식하는 초시간적이고 관념적인 집단이다(최재석, 1982: 211).

8) 복식학급은 두 학년 이상의 학생들로 편성한 학급을 말한다. 2002년 12월 기준으로 복식학급 수(2,103 학급)의 95.5%가 농산어촌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04: 41).

9) 향토개척단은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전국 농촌 200여 지구에 1,500여 명을 파견하여 활동하였다. 향토개척단은 조사활동, 봉사활동, 계몽활동, 지도활동 등을 하면서 소농구조의 농촌문제를 해결할 방향으로서 농업협업화를 제시하였다.

10) 소몰이 시위 형태로 소값피해보상운동이 일어난 곳은 경기 안성, 강원 홍천 · 춘천 · 원주, 충북 괴산 · 청주 · 진천 · 음성, 충남 · 당진, 전북 완주 · 진안 · 임실 · 부안, 전남 · 무안 · 함평 · 해남 · 강진, 경북 의성 · 안동, 경남 고성 · 진양 등 20여 개 군이었다.

11) 각지에서 버스 2,645대에 9만 4천여 명의 농민이 참여하였고 그 외 학생, 노동자, 빈민, 전국연합 참가자들이 있었다.

12) 전농은 1991년 6전(전노협, 전농, 전대협, 전빈연, 전교조, 전민련)을 중심으로 한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투쟁에 연대하면서 연대연합조직의 단초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전국연합)의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3) 1993∼1994년까지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되어 활동하였다.

14) 소속 단체는 농가주부모임전국연합회, 대한양계협회, 대한양돈협회, 생활개선중앙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전국버섯생산자협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한우협회, 전업농중앙연합회, 한국관광농원협회, 한국기독교농민회, 한국낙농육우협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민속채소생산자협회, 한국양록협회,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한국영농법인중앙연합회, 한국유기농업협회, 한국양봉협회, 한국포도회 등이다.

15) 생협전국연합회, 한살림, 전국농민회총연맹,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농어촌사회연구소, 정농회, 파주환경연합, 원불교 천지보은회, 전국귀농운동본부, 전교조, 한국가톨릭농민회, 전국농협노조, 민주노동당 등이 참여하였다.

16)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여성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가톨릭농민회,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전국한우협회 등이 속해 있었다.

17) 농민연합 구성단체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가톨릭농민회, 전국농업기술자협회, 한국낙농육우협회,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한국4-H중앙연합회,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새농민회 등이다.

18) 4단계의 시기별 구분은 서종혁(2007)에 따라 정리했으며 각 시기별 명칭은 필자가 붙인 것임.

19) 힐러리(Hillery, 1995)는 공동체(community)의 구성요소를 추출하여 공동체 개념을 도출하였다. 공동체의 정의를 논의한 사회학적 연구문헌들 속에서 공통의 요인들을 뽑은 결과, 지역(area), 사회적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 공동체적 연대(common ties)가 공동체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20) 2002년 4월에 개봉된 이정향 감독의 작품으로 김을분 할머니와 유승호가 주연을 하였다. 엄마와 같이 도시에 살던 상우(7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 외딴집에 남겨지게 된다. 도시 출신이며 천방지축인 외손자와 산간오지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외할머니의 기막힌 동거에 관한 이야기로 가족의 소중함과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하는 영화다.

21) 농업인이란 농업을 경영하거나 이에 종사하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22) 최저주거기준이란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기준을 의미하며, 주택법 제5조 2항 및 동법시행령 제7조에 의거 2004년 건설교통부장관이 설정 · 공고한 기준을 말한다.

23) 문화 · 예술 시설(2006년 기준)은 농촌지역에 715개소, 도시지역에 2,728개소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4) 농업인안전공제는 1996년부터 농협에서 농업인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공제 보험료의 50%를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다. 2009년에는 농업인안전공제에 농업인 791천 명이 가입하였다.

25) 농지연금제도는 농지를 담보로 매달 생활비를 연금형태로 지원하는 제도이다. 지원대상은 65세 이상, 영농경력 5년 이상, 경지면적 3ha 이하이다.

26) "자기 가족의 노동으로 경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 않고, 가족을 부양할 수 없을 정도로 적지 않은 토지의 소유자”인 소농이 농업에서의 상품생산의 발전과 농민 간의 경쟁심화로 인해서 양극으로 분해되는 것을 ‘농민층 분해’라고 한다. 농업에서의 ‘농민층 분해’의 속도가 늦은 이유로 ‘중농표준화론’의 주장도 있으나, 최근의 개방농정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농민층 분해’의 속도가 빨라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개별농가에 대한 패널조사를 통해 자세히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27) 농가구입가격과 농가판매가격 사이의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모습은 가위와 같은 모양이어서 이를 가리켜서 쉐레(Schere)현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