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론(네오변환)
∷ 머리말 7
∷ 제1장 사랑에 대하여 9
∷ 제2장 사랑의 발생에 대하여 12
∷ 제3장 희망에 대하여 16
∷ 제4장 18
∷ 제5장 20
∷ 제6장 잘츠부르크의 나뭇가지 20
∷ 제7장 남녀 간에 일어나는 차이에 대하여 22
∷ 제8장 24
∷ 제9장 28
∷ 제10장 29
∷ 제11장 31
∷ 제12장 32
∷ 제13장 제일보, 사교계, 불행 34
∷ 제14장 36
∷ 제15장 39
∷ 제16장 39
∷ 제17장 사랑에 왕좌를 빼앗긴 아름다움 41
∷ 제18장 43
∷ 제19장 속 미의 예외에 대하여 44
∷ 제20장 46
∷ 제21장 첫 대면에 대하여 47
∷ 제22장 심취에 대하여 49
∷ 제23장 첫눈에 반하는 것 50
∷ 제24장 미지의 나라에의 여행 54
∷ 제25장 소 개 61
∷ 제26장 수치심에 대하여 63
∷ 제27장 눈 짓 70
∷ 제28장 여자의 자존심에 대하여 71
∷ 제29장 여자의 용기에 대하여 79
∷ 제30장 슬프고 이상한 광경 83
∷ 제31장 사르비아티의 일기초 84
∷ 제32장 친밀에 대하여 92
∷ 제33장 98
∷ 제34장 사랑의 고백 98
∷ 제35장 질투에 대하여 101
∷ 제36장 질투에 대하여(계속) 107
∷ 제37장 록산느 110
∷ 제38장 오기에 대하여 112
∷ 제39장 119
∷ 제40장 129
∷ 제41장 사랑에서 본 여러 국민-프랑스에 대하여- 131
∷ 제42장 프랑스에 대하여(계속) 135
∷ 제43장 이탈리아에 대하여 137
∷ 제44장 로마에 대하여 140
∷ 제45장 영국에 대하여 142
∷ 제46장 영국에 대하여(계속) 146
∷ 제47장 스페인에 대하여 150
∷ 제48장 독일인의 사랑 152
∷ 제49장 피렌체의 하루 158
∷ 제50장 미국인의 사랑 165
∷ 제51장 프로방스의 사랑 167
∷ 제52장 12세기의 프로방스 173
∷ 제53장 아라비아 178
∷ 제54장 여자 교육에 대하여 188
∷ 제55장 여자 교육에 대한 항의 193
∷ 제56장 여자교육에 대한 항의(계속) 202
∷ 제57장 미덕에 대하여 207
∷ 제58장 결혼에서 본 유럽의 현황 209
∷ 제59장 베르테르와 돈 주앙 217
∷ 후 기 229
머리말
저자가 독자의 관용을 바란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출판한다는 사실이 이 가식적인 겸손을 드러낸다. 차라리 독자의 올바른 판단과 인내와 공정에 맡길 일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요구하는 것은 공정이다. 프랑스에서 너무 자주, 그야말로 프랑스적인 기술이나 의견 또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으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제공하여 어디서나 진실한 감상과 의견밖에는 중요시하지 않는 저자는, 그 성격은 애매모호하더라도, 혹시나 근래 하나의 미덕으로까지 간주된 배타적인 정열을 자극하지 않았나 해서 걱정이 앞선다.
사실 역사, 도덕, 문학, 과학까지도 라인강이나 산악지대나 영불해협을 넘게 되었을 때 독일적, 러시아적, 이탈리아적, 그리고 스페인 내지 영국적이 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정의, 이런 지리적인 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될 것인가? “참으로 스페인적인 헌신”, “참으로 영국적인 도덕”이라는 표현이 다른 나라 애국자의 연설 가운데 사용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표현을 강요하지 않겠는가. 이런 자기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편애는 콘스탄티노플이나 그 밖에 미개한 민족에 있어 피에 굶주린 영광으로까지 달하고 있다. 그리고 문명국에서는 병적이고 불행한 허영심이 되어, 조금이라도 이를 손상시키면 소란을 떠는 것이다.
(시몽의 ≪스위스 기행≫ 머리말에서)
제1장 사랑에 대하여
나는 그 솔직한 발전은 모두가 미(美)의 성격을 띠는 정열을 해명하려고 한다. 사랑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정열적인 사랑
포르투갈 수녀(修女)의 사랑. 아벨라르에 대한 엘로이즈의 사랑. 베셀 대위의 사랑, 첸토 헌병의 사랑.
2. 취미의 사랑
1760년경 파리에서 유행했던 사랑. 당시의 회상록이나 소설, 크레비용, 로장, 뒤클로, 샹포르, 마르몽텔, 데피네 부인 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장밋빛이라야 하는 그림이다. 어떤 이유가 있을지라도 불쾌한 것이 하나라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습관이나 세련에 부족함이 있는 것이 된다. 좋은 소질을 타고난 남자는 미리부터 사랑의 여러 가지 장면에 대처할 방법을 알고 있다. 이 사랑에는 예기치 못할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그는 언제나 재치 있는 인간으로서 진정한 사랑보다도 섬세하고 세련된 데가 있다. 이것은 카라치파(볼로냐 화단의 삼대서가, 카라치와 그의 두 사촌형제를 말함―역주)의 그림에도 비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이다.
그리고 정열적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이해를 초월하게 하는 데 반하여, 취미의 사랑은 언제나 그것과 타협할 수 있다. 이 빈약한 사랑에서 허영심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일단 허영심을 빼앗기면 이 사랑은 겨우 혼자서 걸을 수 있는 회복기의 환자와 다름없다.
3. 육체적인 사랑
사냥을 가서 숲 속으로 도망치는 아름답고 싱싱한 시골 처녀를 발견한다. …… 이런 종류의 쾌락에 의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무미건조한 성격의 사나이라도 16세가 되면 이런 것부터 경험한다.
4. 허영의 사랑
대부분의 남자는, 특히 프랑스에서는 젊은이의 사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유행에 민감한 여자를 소유하고 싶어 하며, 또 소유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아첨되거나 손상된 허영심은 곧 무언가에 열중케 하는데, 여기에는 때때로 육체적인 사랑이 있는 수도 있으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육체적인 쾌락이 따르지 않는 일도 있는 것이다. 평민에게는 공작부인이 30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숀 공작부인이 말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루이왕 궁정에 출입하던 사람들은, 지금도 헤이그의 어떤 미인을 즐거운 마음으로 상기하고 있는데, 그녀는 공작이나 대공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러나 군주체제에 알맞게 한 대공이 궁정에 도착하면 공작 따위는 발길로 차버리는 것이었다. 즉 그녀는 외교사절단의 장식물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평범한 사랑이 가장 행복한 때는, 육체적인 쾌락이 증가되는 경우이다. 그때에는 추억이 이 관계를 약간 연애와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상대방에게 버림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비애가 생긴다. 그리고 소설적인 생각에 매여 자기는 사랑을 해서 우울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허영심은 자기가 마치 위대한 정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어떤 종류의 연애에 의해 쾌락을 맛보고 있든 간에, 정신이 흥분되면 곧 쾌락은 강해지며, 그 추억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연애의 정열에 있어서는, 다른 많은 정열과는 반대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추억은 장차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언제나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허영의 사랑에 있어서는 때때로 습관이나 또는 좋은 상대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일종의 우정을 낳게 한다. 그러나 이 우정은 가장 싱거운 것이다. 그것은 확실성 등을 자랑한다.*
육체적인 쾌락은 자연이 주는 것이므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애정이 깊고 정열적인 사람의 눈에는 종속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살롱에서 남의 웃음을 사거나 때때로 사교계의 사람들의 술책에 걸려 불행하게 되는 수도 있지만, 그 대신 허영심이나 돈 때문이 아니라고 우기며 정열이 없는 심장의 소유자는 결코 맛 볼 수 없는 쾌락을 즐기고 있다.
정숙하고 애정이 깊은 여자 가운데는 육체적인 쾌락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녀들은 그런 쾌락에 몸을 내맡길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설사 그런 기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열적인 사랑의 황홀함이 거의 육체의 쾌락을 잊어버리게 한다.
알피에리(1749~1840, 이탈리아의 비극 시인―역주) 식의 구원받을 수 없는 자존심에 희생되어, 그 노예가 된 남자가 있다. 이런 사람은 매우 잔인하다. 왜냐하면 네로처럼 자기 나름으로 남을 판단하고 있어 언제나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존심이 최대의 쾌락을 가져오지 않는 한, 육체적인 쾌락에 도달할 수 없다. 즉 쾌락을 주는 상대방 여인에게 잔인한 짓을 하지 않으면 헛일이다.
≪쥐스틴≫(사드 후작의 소설―역주)의 무서운 학대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사람은 좀처럼 믿음직스러운 감정을 찾아보지 못한다.
이처럼 사랑을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하는 대신에, 물론 여덟 개 내지 열 개의 뉘앙스를 구별할 수도 있다. 아마도 사람에게는 각자의 견해처럼 느끼는 방법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상의 구별은 다음과 같은 추론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같은 법칙에 의해 생기고, 자라고, 죽거나 혹은 불멸까지 승화된다.
제2장 사랑의 발생에 대하여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1. 감탄
2. “저 사람에게 키스를 하고, 키스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3. 희망
상대방의 미점(美點)을 여러 모로 검토한다. 최대의 쾌락을 맛보기 위해 여자가 몸을 내맡기는 시기는 이때일 것이다. 쾌락은 예리함을 수반하므로, 아무리 얌전한 여자라도 희망이 보이면 핏발이 서고 정열이 불타며, 언뜻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4. 사랑의 탄생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모든 감각을 가지고 되도록 가까이 접촉하며 보고 만지고 느끼는 데서 쾌락을 맛보는 일이다.
5. 첫 번째 결정 작용이 시작된다
사람은 분명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여자를, 여러 가지 미점으로 감싸려고 한다. 끝없는 기쁨으로 자기의 온갖 행복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이 자기 것임에 틀림이 없는 확실한 소유물을 과장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머리를 24시간 동안 줄곧 돌아가게 하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겨울이 되어 잘츠부르크의 소금광산에 나뭇가지를 깊숙이 집어넣어 두었다가 2~3개월이 지난 후에 꺼내보면, 그것은 반짝이는 결정체로 덮혀 있다. 참새의 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느다란 가지가 반짝이는 무수한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본래의 나뭇가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결정 작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새로운 미점을 발견하는 정신작용이다.
여행자가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 제노아 바닷가의 오렌지 숲의 서늘함을 이야기한다고 하자. 그는 ‘그녀와 함께 그 서늘함을 맛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당신의 친구가 사냥을 가서 발을 삐었다고 하자.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간호를 받는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언제나 그녀와 함께 웃으면서 자기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통도 축복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친구가 발을 삔 데서 비롯하여, 천사와 같은 애인의 우아함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미점을 애인에게서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만 그러한 미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족한 것이다.
내가 결정 작용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우리에게 쾌락을 맛보라고 명령하며 피를 뇌로 보내는 본성과, 쾌락은 사랑하는 자의 미점과 함께 증대된다는 의식과 또는 그녀는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야만인은 한 발짝 이상 앞으로 더 전진할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한다. 그들에게도 쾌락은 있으나 그들의 뇌의 작용은 숲 속을 도망치는 사슴을 쫓는 데 모조리 소비된다. 그 고기를 먹고 빨리 체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적의 도끼에 맞아 쓰러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극도로 문명이 발달된 곳에서는, 애정이 두터운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서가 아니면 쾌락을 찾아볼 수 없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것은 야만인과는 정반대이다. 문명국에서는 여자가 여가를 갖지만, 야만인의 남자는 일에 쫓기므로 암컷을 짐승처럼 취급할 수밖에 없다. 많은 동물의 암컷이 인간의 여자보다 행복한 것은 수컷의 생활이 훨씬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숲을 떠나 파리로 되돌아가자. 정열에 사로잡힌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온갖 미점을 발견한다. 그러나 주의력이 산만해지는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든 단조로운 것에 싫증을 느끼고, 완전한 행복에 대해서도 권태를 느끼기 때문이다.
6. 의혹이 생긴다
상대방의 열 번에서 열두 번에 걸친 눈길이나, 한순간이나 또는 며칠에 걸쳐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서 우선 희망을 얻고, 이어서 그것이 헛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 하지만, 이윽고 남자는 최초의 놀라움에서 깨어나 그 행복이 만성이 되고 혹은 흔해빠진 변덕스러운 여자에게나 적용되는 이론에 이끌려 확실한 보증을 요구하며 더욱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남자가 너무 방심한 태도를 보이면, 상대방은 무관심과 냉담과 분노로 응수한다. 프랑스에서라면 “꽤 자신이 만만하시군요.” 하고 비꼬는 것이다. 여자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한때의 도취에서 깨어난 수치심에 억눌렸기 때문이거나, 또는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한 것이 걱정스럽거나 혹은 단순한 조심 내지 교태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는 지금까지 기대하던 행복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한 희망의 근거에 대해 엄격해진다.
그는 인생의 다른 쾌락을 맛보려고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데도 없다. 무서운 불행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를 사로잡으면 깊은 주의력이 생긴다.
7. 제2의 결정 작용
여기서 제 2의 결정 작용이 시작되어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굳힌다.
의혹이 생기던 날 밤, 무서운 불행의 한 순간이 지나가면 사랑을 하는 남자는 15분마다 중얼거린다. “그녀는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정 작용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또다시 매서운 눈초리를 한 의혹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갑자기 그를 멈춰서게 한다. 그는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는 중얼거린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이처럼 비통한 심정과 감미로운 심정에 교대로 사로잡히면서 가련한 애인은 분명히 느낀다. “그녀가 나에게 주는 쾌락은 그녀 외에 아무도 주지 않는다.”
그 진리의 확실성, 한 손은 완전한 행복을 느끼면서 더듬는 이 무서운 절벽 길―이것이야말로 첫 번째 결정 작용보다 두 번째 결정 작용을 훨씬 강력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랑하는 남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생각 사이를 헤매게 된다.
1. 그녀는 모든 미점을 갖추고 있다.
2.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3. 그녀로부터 가장 큰 사랑의 증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이 싹틀 무렵의 가장 비통한 순간은, 그가 잘못된 추측을 했다는 것을 알고, 하나의 결정을 파괴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이다.
그는 결정 작용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제3장 희망에 대하여
사랑이 싹트기 위해서는 극히 작은 희망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희망은 2~3일 내로 없어질지 모르지만, 사랑이 싹튼 데는 변함이 없다.
과감하고,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격렬한 성격과 인생의 불행에서 자라난 상상력이 있으면 희망은 한결 적어도 무방하다. 이 경우에 그 희망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사라질지 모르지만, 사랑을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만일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가 이미 많은 불행을 경험했으며, 애정도 많고 사려가 깊은 성격의 소유자로서 다른 여자에게 절망하고 새로운 상대편 여자에게 커다란 감동을 느끼면, 통속적 쾌락은 도저히 제 2의 결정 작용을 훼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속된 여자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는 것보다는 차라리 언젠가는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에 들 수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기회를 꿈꾸는 편을 오히려 더 좋아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사람 앞에서 희망을 무참히 짓밟고 다시는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할 만큼 모욕을 줄 작정이라면 바로 이 시기(너무 늦어도 안 되므로 조심할 것)가 좋을 것이다.
사랑이 싹트기 위해 이 시기 사이에 더욱 오랜 간격이 있을 수 있다. 냉정하고 끈질기고 신중한 사나이라면, 사랑이 싹트기 위해서는 좀 더 커다란 희망이 요구되며 그 희망이 오래 지속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지속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제2의 결정 작용이다. 그동안에 그는 사랑을 받느냐 아니면 죽어버리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사랑이 몇 달 동안 계속되어, 끊임없이 사랑에 대한 확신을 되풀이하게 되면 사랑을 단념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다. 성격이 강할수록 마음은 변치 않는다.
너무 빨리 몸을 맡기는 여자와의 사랑에서는 제2의 결정 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훨씬 강한 이 두 번째 결정 작용이 시작되면, 무관심한 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가 형성된다. 왜냐하면 첫째, 그 나뭇가지는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점, 즉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 나뭇가지는 그런 사람의 눈에는 미점으로 보이지 않는 미점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여자의 옛 남자친구가 그녀의 어떤 매력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눈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어떤 뉘앙스를 인식하게 되면, 그것이 델 로소(육체적인 사랑밖에 생각하지 않는 탕아―역주)의 결정 작용의 한 다이아몬드가 된다. 그는 이런 말을 들은 밤에는 뜬눈으로 몽상에 잠기는 것이다.
상냥하고 고매하며 열렬한, 흔히 말하는 소설적인 낭만을 가진 애인과 단둘이서 한밤중에 한적한 숲 속을 산책하는 단순한 행복을 왕자의 행복보다 훨씬 더 낫게 생각하는 사람을, 문득 담 사이로 보면 나도 밤새도록 몽상에 잠기게 되었다.
로소는 이러한 나의 애인을 가리켜 가면을 쓴 새침데기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애인을 창부라고 부를 것이다.
제4장
남자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처녀―예컨대 시골의 외떨어진 저택에 사는 처녀―처럼 담담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이성의 사소한 일에도 가벼운 동경심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하여 극히 작은 희망이라도 일어나면 사랑을 낳고 결정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이 경우에 사랑은 우선 재미있는 것으로서 받아들여진다.
놀라움과 희망은 열여섯 살만 되면 느끼는 사랑의 욕구와 우수에 의해 크게 조장된다. 이 나이 때 느끼는 불안은 사랑의 갈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갈증은 우연히 제공된 음료수의 맛에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일곱 가지 시기를 다시 한번 요약해 보자.
1. 감탄
2. 얼마나 좋을까 등등
3. 희망
4. 사랑의 탄생
5. 제1의 결정 작용
6. 의혹의 발생
7. 제2의 결정 작용
제1과 제2 사이에는 일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수도 있다.
제2와 제3 사이는 1개월 정도이다. 만일 희망이 계속 따르지 않으면 큰 일이라고 생각하여 자연히 제2를 포기하게 된다.
제3과 제4 사이는 한순간이다.
제4와 제5 사이는 간격이 없다.
제5와 제6 사이에는 성격의 열렬한 정도와 대담성에 따라 며칠 걸리는 수가 있으나, 제6과 제7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제5장
인간은 더욱 큰 쾌락을 주는 행위를 먼저 하게 마련이다.
사랑은 열병과 같은 것이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여기에 취미의 사랑과 정열적인 사랑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성질을 다만 행복한 우연으로서 기뻐할 뿐이다.
사랑은 나이를 문제시하지 않는다. 듀 데팡 부인(1697~1780, 프랑스의 재원. 그녀는 68세 때 50세의 월폴을 사랑했음―역주)의 별로 잘 생기지 못한 호레이시 월폴(1717~1797 영국 문학자―역주)에 대한 정열을 보라. 파리인은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커다란 정열의 증거로서, 뭔가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밖에 인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랑의 증거인 수줍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학교를 갓 나온 자의 수줍음과는 다르다.
제6장 잘츠부르크의 나뭇가지
사랑에 있어서 결정 작용은 거의 멈추는 때가 없다. 그 경과는 다음과 같다. 즉 애인과의 사이가 좋지 못할 때에는, 결정 작용은 상상에 의한 화해로 나타난다.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러이러한 미점이 있다고 확신시키는 것은 상상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친밀한 사이가 된 후라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불안은 좀 더 현실적인 화해에 의해 해소된다. 이와 같이 행복은 그 근원에 있어서는 동일하며, 날마다 다른 꽃이 핀다.
만일 사랑을 받는 여자가 정열에 눌려, 열광된 나머지 남자의 불안을 말살하는 큰 실수를 범하면, 남자의 결정 작용은 한동안 중단된다. 그러나 사랑은 그 활기, 즉 불안감을 잃게 되는 대신에 무한한 신뢰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일종의 달콤한 습관이 생겨나 인생의 모든 고통을 덜어주고 사랑의 기쁨에 또 다른 흥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버림을 받으면, 또다시 결정 작용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그녀의 감탄할 만한 행위를 회상하고 당신이 일찍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으나, 그녀가 당신에게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행복을 머릿속에 그릴 때마다 다음과 같은 비통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처럼 즐거운 행복은 다시 맛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잃은 것은 내 잘못이다.” 당신은 다른 행복을 구하려고 해도 마음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뭔가 육체적 위안을 생각할지도 모르고, 말을 달려 데번셔의 숲으로 사냥을 가보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자기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되면 착각을 일으켜 자칫하면 권총으로 자살하기 쉽다.
또한, 도박에서도 딴 돈을 무엇에 쓸까 하는 데서 결정 작용을 일으킨다. 근래에 와서는 귀족들이 궁정의 음모도 정당한 것으로 여겨 꽤 향수를 느끼는데, 그것이 일으키는 결정 작용이 없으면 그다지 매력이 있는 것이 못 된다. 류인느나 로쟝과 같은 벼락출세를 꿈꾸지 않은 궁정인은 없었으며, 폴리냑 부인의 공작령을 바라지 않은 미인은 없었던 것이다. 합리적인 정부는 이런 결정 작용을 두 번 다시 부여할 수 없다. 미국 정부만큼 상상력과 인연이 먼 것은 없다. 그 주변에 있는 미개인도 대부분 결정 작용을 모르리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로마인은 거의 결정 작용의 관념을 갖지 않으며, 겨우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서만 그것을 알고 있다.
증오에도 결정 작용이 있다. 복수할 수 있을 가상이 생기면, 다시 새로이 증오하기 시작한다. 터무니없거나 입증할 수 없는 요소를 지닌 신념은 반드시 가장 터무니없는 인물을 그 당파의 수령으로 추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결정 작용의 결과이다.
수학에도 결정 작용이 있다(1740년의 뉴턴학파를 보라). 즉 그들이 신봉하는 것을 증명함에 있어 그 모든 부분을 언제나 동시에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그 증거로 독인 대철학자들의 운명을 보라. 그 불멸의 위대성이 그처럼 자주 입에 오르면서도 그들의 운명은 30~40년을 넘는 일이 없었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음악에서 광신자가 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 감정의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대자에게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제7장 남녀 간에 일어나는 차이에 대하여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 몸을 맡김으로써 남자에게 집착한다. 여자들의 몽상의 19/20는 사랑에 관한 것이므로, 육체관계를 한 후에는, 이 몽상은 오직 한 사람의 주위에 집중된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그토록 특이하고, 결정적이고 수줍음에 어긋나는 행위를 어떻게 해서든지 정당화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용은 남자에게는 없다. 여자의 상상력은 틈이 나는 대로, 그 감미로운 순간을 세밀히 분석한다.
사랑은 빤한 일까지도 의심하게 하기 때문에 몸을 맡기기 전에는 애인이 속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던 여자도, 이제 거절할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자, 남자가 다만 그 정복자의 명단에 또 한 사람을 더 첨가하려고 한 데 지나지 않았나 해서 불안에 떤다.
이때 비로소 제2의 결정 작용이 일어난다. 그것은 의혹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여자는 자기가 여왕의 위치에서 노예로 전락했다고 느낀다. 이러한 정신 상태는 희귀한 육체적 쾌락이 주는 도취에 의해 조장된다. 여자는 아무 재미도 없는 일, 손만 놀리면 되는 자수 같은 것을 하면서도 애인을 생각한다. 한편 남자는 기병대들과 어울려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고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므로 제2의 결정 작용은 여자 쪽이 훨씬 강하다. 의혹이 더욱 많으며 허영심이나 명예가 위기에 직면해 있고 남자와 함께 하는 손쉬운 위안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자는 이성에 따르는 데 길들어 있지 않다. 남자인 나는 싫어도 책상에 매달려 날마다 여섯 시간씩 일하면서 무미조건한 이성적인 일에 매어 있다. 여자는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공상에 잠기는 경향을 갖고, 언제나 흥분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남자의 결점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도 훨씬 빠른 것이다.
여자는 이지보다는 정서를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습관에 의하면 여자는 가정에서 별로 책임 있는 일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은 그녀들에게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녀들은 이성이 어떤 소용이 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은 그녀들에게 해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언제나 그녀들에게 어제 쾌락을 누렸으니 내일은 그런 짓을 그만두라고 타이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갖고 있는 땅의 일부에 대한 소작인과의 교섭을 아내에게 맡겨 보라. 장부는 당신보다 잘 정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당신은 간판만 전제군주일 뿐, 아내에게 사소한 잔소리나 할 권리밖에 갖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아내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재능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왜냐하면 여자가 일반적인 일에 대해 머리를 쓰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거기에 반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세세한 일은 여자가 남자보다 한결 정확하게 잘 처리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소매상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맡기면 남보다 훨씬 이익을 올린다. 여자와 흥정을 할 때에는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모자란다고 한다.
이것은 여자가 언제나 감동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장례식의 소란함을 보라,
제8장
이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꿈나라였다. 여기서 그녀는 공중누각을 세웠다.
-월터 스콧 ≪라마무어의 새색시≫ 제2권 70면-
18세의 처녀는 충분한 결정 작용을 할 힘이 없으며 인생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한정된 욕망밖에 갖지 못한다. 그래서 28세의 여자와 같은 정열로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
오늘 저녁에 나는 이런 견해를 어떤 재치 있는 부인에게 말했다. 그녀가 반대하여 하는 말이,
“젊은 처녀의 상상력은 불쾌한 경험에 의해 더렵혀져 있지 않고, 청춘의 불꽃은 활활 타오르기 때문에 한 남자에 대해 황홀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애인을 만날 때마다 실제의 그가 아니라 자기가 그린 달콤한 이미지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그 뒤 그녀가 그 애인과 다른 남자들의 정체를 알고 나면, 슬픈 현실의 체험 때문에 결정 작용의 힘이 약해져요. 불신이 상상력의 날개를 꺾어 버리는 거지요. 그래서 아무리 비범한 남자라도 전과 같이 마음을 빼앗기는 이미지는 그릴 수 없게 돼요. 그러니 젊었을 때와 같은 정열로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어요.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28세 때에 그리는 이미지에는 16세의 첫 사랑이 그려낸 이미지의 화려함이나 숭고함을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두 번째의 사랑은 언제나 한물간 느낌이 드는 법이거든요.”
“천만에요, 부인. 16세 때엔 느끼지 못한 불신이 생겨나면, 그것은 반드시 두 번째 사랑에 다른 색채를 부여할 거예요. 첫사랑은 강물처럼 모든 것을 흘려보내어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애정이 깊은 사랑은 28세가 되면 자기를 알게 되지요. 만일 그녀의 인생에 아직도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요. 그래서 흔들리는 가여운 마음속에서는 사랑과 불신의 무서운 싸움이 시작돼요. 이때 결정 작용이 서서히 시작되지요. 그러나 언제나 두려운 위험을 지켜보면서 겪은 모든 동요와 비통한 시련을 극복한 결정 작용은, 젊은이의 특권이라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했던 16세의 결정 작용보다 천 배나 빛나고 견고해요. 그래서 사랑은 전과 같이 즐겁지는 않지만 훨씬 정열적인 것이지요.”
이 대화(볼로뉴에서 1820년 3월 9일)***에 의해, 그때까지 명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견해에 반박이 가해진 후로, 나는 애정이 두터운 여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이치에 맞는 말을 한마디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창부형의 여자는 다르다. 우리도 그녀들에 대해 관능과 허영심쯤은 갖고 있다.
남녀 간에 생기는 사랑의 차이는 상호 간에 희망의 본질이 같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한쪽은 공격하고 한쪽은 방어한다. 한쪽은 요구하고 한쪽은 거부한다. 한쪽은 대담하고 한쪽은 극히 소심하다.
남자는 중얼거린다. “나는 그 여자의 마음에 들까? 그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여자는 중얼거린다.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농담이 아닐까? 변덕스럽지 않은 사람일까? 자기의 사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정말 알고 있을까?”
많은 여자들이 23세의 청년을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섯 번이나 사랑의 싸움을 해 온 사나이라면 만사가 달라진다. 그는 젊은 영웅이다. 남자에게 희망은 오직 사랑하는 여자의 행위에 달려 있다. 이만큼 명백한 일은 없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에는, 희망은 도덕적인 고려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올바로 평가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대개의 남자는 여자에게 모든 의혹을 일소해 줄 만한 사랑의 증거를 요구하지만, 불행하게도 여자는 그런 증거를 남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애인의 한쪽에는 안심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다른 쪽에는 위험과 굴욕까지 가져온다는 인생의 불행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남자는 홀로 간직된 영혼의 괴로움을 겪을 위험이 있지만, 여자는 자칫하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을 사게 된다. 여자는 남자보다 소심하지만, 여론은 여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존경을 받는 것이 첫째’****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생명을 걸고 여론을 정복할 만한 확실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그러므로 여자가 남자보다 사랑에 대해 훨씬 더 경계심이 강할 수밖에 없다. 여자의 경우에는 습관상 사랑이 발생할 시기의 마음의 움직임은, 남자보다도 달콤하고 소심하며 더디고 용감하지 못하다. 그만큼 마음이 변치 않는다. 일단 시작된 사랑의 결정 작용을 남자처럼 깨끗이 단념할 수 없는 것이다.
여자는 애인을 만나면 재빨리 마음의 담을 쌓거나, 아니면 사랑의 행복에 몸을 맡겨 버린다. 그런데 이때 남자 쪽에서 공세를 취하면, 여자는 마음속으로는 싫어하면서도 그 행복 속에서 떨어져 나간다. 싸우기 위해서는 모든 쾌락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역할은 훨씬 단순하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의 눈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상대편의 미소 하나로 그는 행복의 결정에 이른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그런 미소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남자는 상대방의 항거가 너무 오래 계속되면 치욕으로 생각하지만, 여자에게는 반대로 영광이 된다.
여자는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일 년 동안 그 남자에게 열 번 내지 열두 번밖에 말을 건네지 않고 견딜 수 있다. 그녀는 남자를 만난 횟수를 마음속에 새겨둔다. 나는 그 사람과 두 번 극장에 갔다. 그리고 두 번 식사를 했다. 그 사람은 산책길에서 나에게 세 번 윙크를 했다.
어느 날 밤, 사소한 장난 끝에 그는 그녀의 손에 키스를 했다. 그 후로 어떤 이유가 있든, 또 때로는 이상하게 보일 염려가 있어도 그녀는 다른 남자로 하여금 자기 손에 키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레오노르(스탕달의 애인 메탈드를 가리킴―역주)는 우리에게 만일 남자 쪽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여성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제9장
나는 이 글을 냉정한 입장에서 쓰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말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에 침묵을 명령하고 싶다. 하나의 진리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탄식을 쓴 데 불과하지 않느냐고 걱정하고 있다.
제10장
결정 작용의 증거로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인용하려고 한다. 어떤 처녀가 얼마 후에 군대에서 돌아오는 친척인 에드와르가 매우 훌륭한 청년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도 그녀의 평판을 듣고,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누구에게선가 듣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양친에게 공공연히 구혼하기 전에, 그녀를 한번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교회에서 낯모르는 청년을 보았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를 에드와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그의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찰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 한 주일이 지난 후에 진짜 에드와르가 도착했는데, 그는 교회에서 본 청년이 아니었다. 그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만일 그녀를 이 에드와르와 억지로 결혼시킨다면 한평생 불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두뇌가 부족한 사람들이 사랑의 부조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떤 관대한 남자가 불행한 처녀를 여러모로 돌봐 주었다. 이 이상의 친절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이 막 싹트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괴상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말 타는 솜씨도 서툴렀다. 처녀는 탄식하면서 그의 호의를 받아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남자가 품행이 단정한 사교계의 어떤 부인에게 호의를 품고 가까이 하려고 했다. 그녀는 이 남자가 이상한 육체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가 몹시 싫어졌다.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그에게 몸을 맡길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그의 숨은 불행이 그의 재능이나 상냥한 태도를 손상시키는 일은 없었다. 다만 결정 작용이 불가능해졌을 뿐이다.
한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의 신성화에 열중하기 위해서는―그 상대자를 아르덴의 숲에서 만나건, 꿀로의 무도회에서 만나건―우선 그 상대자가 모든 점에서(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점에서라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점) 완전하다고 생각되어야 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점에서 완전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제2의 결정 작용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가 되면 어떤 미점이 애인에게 있다고 생각되려면, 다만 그 미점의 관념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미가 사랑의 발생에 필요한가는 이것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추가 최초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윽고 사랑하는 남자는 참된 미 따위에는 눈도 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애인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형성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약속하는 것은―그가 실제로 그런 얼굴을 보았다고 가정하고 하는 말이지만―이를테면 한 단위로 나타낼 수 있는 행복량이라고 치자. 그러면 그 애인의 얼굴은 있는 그대로도 천 단위의 행복량을 약속하는 것이다.
사랑이 싹트기까지 아름다움은 간판으로서 필요하다. 아름다움은 사랑이라는 정열을 북돋아 주며, 상대방이 아름답다는 칭찬을 남들에게서 듣고 있는 동안에 사랑하게 된다. 강한 감탄은 극히 사소한 희망까지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든다.
취미의 사랑이나, 그리고 아마도 정열적인 사랑에 있어서도 최초의 5분간에 있어서도, 여자는 애인을 고를 때 자기 자신이 남자를 보는 견해보다 다른 여자들이 그 남자를 보는 견해를 중요시하게 된다. 대공(大公)이나 장교가 사랑에서 거두는 성공은 여기에 유래한다. 늙은 루이 14세의 궁정의 미녀들은 이 왕에게 사랑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감탄하는지 분명히 규명하지 않는 한 경솔하게 희망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맥이 빠져서 사랑을 영원히 썩히거나 적어도 자존심이라도 자극해 주지 않으면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다.
미련하게 고지식하거나, 누구에게나 미소를 던지는 남자에게는 아무도 호감을 갖기 않는다. 그러므로 사교계에서는 여자에게 진력이 났다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고귀한 태도이다. 사람은 너무 보잘것없는 식물을 웃음거리의 자료로 삼지 않는다. 사랑에 있어서도 우리의 허영심은 너무나 손쉬운 승리를 경멸한다. 그리고 남자는 어떤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내맡겨진 것은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제11장
일단 사랑의 결정 작용이 시작되면, 사람은 사랑하는 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새로운 아름다움 하나하나를 향락한다.
그런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에게 쾌락을 주는 새로운 능력을 말한다.
쾌락은 사람마다 다르며, 때때로 상반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추할 수도 있다.
미의 본질을 발견하려면, 각자의 쾌락의 성질을 알아보아야 한다. 가령 델 로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궤도에서 벗어난 행실도 참아내고 몹시 음탕한 짓을 해도 웃음으로서 용서해 주는 여자였다. 즉 언제나 육체적인 쾌락을 그에게 상기시키고, 그의 그러한 친절을 자극하는 동시에 그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여자다.
분명히 델 로소는 사랑을 육체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리지오는 정열적인 사랑만을 진짜로 인정하였다. 그들이 ‘미’라는 말에 대해 견해가 일치할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당신이 발견한 ‘미’란 당신에게 쾌락을 주는 하나의 새로운 능력이며, 사람마다 각각 다른 쾌락을 느끼므로, 각자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결정 작용은 당연히 그 사람의 쾌락의 색채를 띠게 되는 것이다.
어떤 남자의 애인에 대한 결정 작용, 즉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가 애인에 대하여 연달아 품었던 모든 욕망의 만족을 축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12장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향락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새로운 아름다움이 각각 하나의 욕망에 충분한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녀가 다정한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녀는 다정한 여자이다. 다음에 당신은 그녀가 코르네이유의 에밀리처럼 교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다정한 것과 교만한 것은 원래 공존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녀는 즉시 로마인의 영혼을 지니고 나타난다. 정열 중에서 사랑이 가장 강한 것은 이런 정신적인 이유 때문이다. 다른 정열에 있어서는, 욕망은 싸늘한 현실에 순응해야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현실 쪽이 곧 욕망에 순응한다. 그러므로 강한 욕망이 최대의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은 사랑의 정열에 있어서이다.
개개의 욕망의 만족을 지배하는 행복에 일반적인 조건이 있다.
1. 그 여자가 당신의 소유물처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당신뿐이기 때문이다.
2. 그 여자는 당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자이다. 이 조건은 프랑수아 1세나 앙리 2세의 멋진 기사도적인 궁전 또는 루이 15세의 우아한 궁전에서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다. 입헌적이고 합리적인 정부에서 여자는 이런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3. 소설적인 심정의 남자에게는, 그녀가 숭고한 영혼을 갖고 있을수록 그 팔 안에서 느끼는 쾌락은 천상적이며 모든 비속한 사념의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18세의 프랑스 청년은 거의 다 장 자크 루소의 제작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이 제3의 행복의 조건은 중요하다.
행복을 얻기 위해 이처럼 현혹적인 작용이 가해지는 동안에 사람은 이성을 잃게 된다.
사랑을 하는 순간부터 가장 현명한 남자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자기의 장점을 과소평가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사소한 호의도 과대평가한다. 그리하여 불안과 희망이 일종의 소설적인 요소를 띠게 된다. 이미 아무도 우연으로 돌릴 수 없다. 그는 개연성의 의식을 잃게 된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도 그의 행복에 미치는 효과에서 보면 사실과 똑같은 현실적인 것이 된다.
이성을 잃은 무서운 징후의 하나는, 예컨대 관찰하기 어려운 조그만 사실을 생각할 때 당신은 그것을 희다고 생각하며 당신의 사랑에 유리하도록 해석하지만, 얼마 후에 당신은 그것이 사실은 검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도 그것은 당신에게 여전히 당신의 사랑에 분명히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심한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이 친구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것은 이때이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남자에게는 벌써 친구란 없다. 이것은 궁정에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원인에서 저지르는 무분별한 것은 상냥한 여자라면 용서해 주는 법이다.
제13장 제일보, 사교계, 불행
사랑의 정열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제일보이다. 그때 남자의 머릿속에 어처구니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사교계는 그 화려한 행사에 의해 이 제일보를 쉽게 하며 사랑에 유용한 구실을 한다. 제일보란 먼저 단순한 찬미(제1로)부터 애정이 담긴 찬미(제2로)로 변화이다. 저 사람과 키스하면 얼마나 좋을까 등등. 수많은 촛대로 밝힌 휘황찬란한 살롱에서 춤추는 급속한 왈츠는 젊은이의 마음을 도취시킨다.
도취는 젊은이의 수줍음을 없애고 힘의 의식을 증대시키며 나중에는 사랑에 대해 용기를 준다. 왜냐하면 단지 아름다운 여자를 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극도의 아름다움은 다감한 사나이의 용기를 꺾어 버린다. 당신을 사랑하는 기미까지는 보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여자가 얌전해지는 것이 눈에 띄어야 한다.
여자 쪽에서 선수를 치지 않는데 누가 여왕을 감히 사랑하려는 엄두를 내겠는가?
그러므로 고독하여 권태로울 때에 기다리던 무도회가 열리면, 사랑이 움트는 데 이처럼 편리한 것은 없다. 딸을 가진 어머니가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이다.
프랑스의 궁전에서 볼 수 있는 호화로운 사교는 1780년 이후로 볼 수 없게 되었으나 이것은 사랑에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결정 작용이 이루어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고독과 여가를 거의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궁정생활은 많은 뉘앙스를 보거나 행하는 습관을 부여한다. 그런데 극히 사소한 뉘앙스라도 감탄과 정열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사랑에 특유한 불행이 다른 불행(애인이 당신의 정당한 자존심과 명예심 그리고 위엄을 손상시킨 경우의 허영심의 불행과 건강, 금전, 정치적 박해 따위의 불행)과 겹쳤을 경우에, 이런 장애에 의해 사랑이 더욱 불타는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일에 불과하다. 이런 불행한 상상력을 다른 데 쏠리게 함으로, 희망을 갖기 시작한 사랑의 결정 작용을 방해하고, 행복한 사랑에서는 사소한 의혹의 발생을 방지한다. 이러한 불행이 사라졌을 때 사랑의 감미로움과 광기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변덕스러운 성격이나 무감각한 성격을 가진 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불행이 사랑의 탄생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싹튼 후에도 그때까지 여러 가지 불행을 경험해 온 사람이라면, 슬픈 추억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인생의 다른 사건에 지쳐버린 상상력이, 있는 힘을 다해 결정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불행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제14장
앞으로 내가 하는 말에 여러 가지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만 오랫동안 정열을 기울여 사랑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를 이기고 사랑한 불행한 사람들에게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자연이나 예술에서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이 번개같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것은 잘츠부르크의 소금광산에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나뭇가지의 작용에 의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아름다움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뜻하지 않은 행복을 접하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일 정도이다. 미를 사랑하는 마음과 연애는 이렇게 서로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인생의 불행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이, 확실하고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지 않는 일이다. 영혼은 너무나 감동하여 교란되어 있기 때문에 그 감동의 원인 또는 감동에 따르는 사건에 주의를 기울일 여념이 없다. 그리하여 영혼은 감각 자체가 되어 버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몽상에 잠겨 있을 때, 무슨 일이 생겨 그 몽상에서 깨어나 어떤 새로운 관련으로 해서, 전보다 더욱 생생하게 그녀의 생각이 날 때야말로 비상한 힘이 되어 소생하는 것이다. 이런 쾌락은 의식적으로 회상한다 해서 쇠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보잘것없는 늙은 건축가가 밤마다 사교계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전에 내가 그녀에게 한 말 같은 것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 남자를 동정하는 마음에서 과장하여 칭찬했더니 그녀는 나를 비웃었다. 나로서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는 밤마다 당신과 만나고 있군요.”하고.
이런 느낌은 매우 강하여, 언제나 그녀와 함께 있는***** 나의 적에게까지 미쳤다. 이 여자를 만나면 레오노르의 생각이 나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만은 이 여자를 미워할 수 없었다.
사랑을 받는 여자는 기묘한 마음의 작용 때문에 그녀가 갖고 있는 것 이상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언젠가 그녀를 잠깐 만난 적이 있는 먼 마을이 생각나면, 그녀의 모습보다도 더욱 감미로운 몽상에 잠기게 된다.
사랑의 몽상은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좋은 소설은 3년마다 다시 읽어 보아도 똑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때 내가 느꼈던 애절한 기분에 어울리는 정서를 주기도 하고, 또 내가 무감각한 상태에 있을 때라면 생각의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똑같은 음악을 몇 번이나 즐겁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추억이 스며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감동되는 것은 다만 상상력만이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오페라를 20번이나 들어도 쾌락을 준다면, 그것은 전보다 음악을 이해하는 힘이 강해졌거나, 아니면 첫날의 감명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소설이 우리에게 인간의 심리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주면, 나는 전에 그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상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메모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인간에 대한 지식을 한결 깊게 해 줄 뿐이며 소설의 참된 쾌락인 몽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이러한 몽상은 기록할 수 없다. 기록하면 쾌락의 철학적인 분석에 빠지게 됨으로, 현재의 몽상을 죽이는 것이 되며, 미래에 있어서도 더욱 분명히 몽상을 죽이게 된다. 기억에 호소하는 것만큼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3년 전에 내가 플로렌스에서 스콧의 ≪옛 사람들≫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메모에 기록해 둔 것을 찾아내었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곧 내 생애의 역사 속으로, 즉 과거와 현재의 행복의 비교, 다시 말해서 고도의 철학 속으로 잠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감동에 잠기는 감미로운 느낌과는 영원히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발랄한 상상력을 가진 모든 대시인은 겁쟁이다. 즉 자기의 감미로운 몽상이 중단되거나 훼방을 받을까봐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즉 주의력을 딴 데로 쏠리게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속인들은 비열한 이해관계로 그를 아르미다의 정원*으로부터 끌어내어 악취가 심한 진흙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들은 시인을 초조하게 하지 않고서는 그 주의력을 자기에게 돌리지 못한다.
위대한 예술가가 그처럼 사랑과 인연이 가까운 것은 감동적인 몽상으로 영혼을 기르는 습관을 갖고 있으며 또한 속인에 대한 혐오를 느끼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보루로서 직함이나 훈장을 원할 것이다.
제15장
매우 격렬하고 괴로운 정열에 사로잡혔을 때에는, 문득 자기는 이제 사랑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이 될 때가 있다. 이것은 마치 바다 한복판에서 솟아나는 담수의 샘과 같은 것이다. 애인의 생각을 해도 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애인의 냉정함에 괴로워하더라도 인생에 대한 아무런 흥미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 훨씬 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생활이 물론 확고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나 자연이 신선하고, 정열적이고 흥미 있는 모습으로 보였는데, 이제 와서는 가장 음침하고 무기력한 혐오만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최근에 애인을 방문했으나 당신이 처해 있는 정신 상태에서는 이미 상상력이 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때 냉정했던 그녀가 태도를 누그럽게 하여 전과 똑같은 희망을 똑같은 외부적인 표시에 의해 주었다고 하자. 이런 것은 아마 여자 쪽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상상력은 이전의 기억과 그 슬픈 경고에 훼방을 받아, 사랑의 결정 작용은 곧 멈춰 버린다.
제16장
페르피냥에 가까운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항구에서
-1822년 2월 25일-
나는 오늘 밤에 완벽에 가까운 음악을 듣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와 똑같은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런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생생한 행복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느낀다면, 음악처럼 사랑으로 유혹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작년에 나폴리에서 완전한 음악은 완전한 무언극과 마찬가지로 그때의 내 몽상의 대상을 상기시켜 여러 가지 훌륭한 생각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폴리에서는 이 깨달음이 어떻게 그리스 사람들을 무장시키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불행하게도 오늘밤 너무나 L부인 (레오노르)을 찬미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오늘 밤에 들은 완전한 음악도(매일 밤 오페라에 다니면서도 2~3개월 동안이나 거의 듣지 못했으나) 다만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효과, 즉 명상의 대상을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효과를 나타내는 데 지나지 않는 것 같다.
3월 4일, 1주일 후.
나는 앞서의 주장을 부정도 긍정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썼을 때에는 분명히 내 마음속의 것을 그대로 기록했을 뿐이다. 오늘날에 와서 내가 그것을 의심한다는 것은 아마도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듣고 몽상에 잠기는 습관은 사랑의 기반을 만든다. 부드럽고 구슬픈 멜로디는, 지나치게 비극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사랑의 몽상을 자극할 뿐이므로 상상력이 무리하게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섬세하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감미로운 것이다. 예컨대 ≪비앙카와 팔리에로≫의 사중창의 첫 부분의 가냘픈 클라리넷의 솔로와, 그 중간쯤의 라 캄포레지의 독창과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사랑하는 여자와 사이가 좋은 애인은 아르미다와 리날도의 유명한 이중창을 황홀한 마음으로 즐긴다. 행복한 사랑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의혹과 화해 뒤에 오는 기쁨의 순간을 정확히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창의 중간쯤에서 리날도가 도망치려는 장면의 기악부는 정열의 투쟁을 놀랄 만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애인은 심장에 생리적인 영향을 받으며, 실제로 심장이 뛰는 듯한 생각이 든다. 내가 이 곡을 듣고 느낀 감상은 말하지 않겠다. 북쪽 사람들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니까.
제17장 사랑에 왕좌를 빼앗긴 아름다움
알베리크는 극장의 관람석에서 자기 애인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수학적인 계산이 허용된다면, 애인의 얼굴이 2의 행복을 자기에게 약속해 준다면 그 여자의 얼굴은 3의 행복을 약속해 주었다(완전한 미는 4로 표시되는 행복을 주는 것으로 가정한다).
이때 그가 자기 애인의 얼굴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별로 놀라운 일이 못된다. 왜냐하면 애인의 얼굴은 그에게 100 단위의 행복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인 얼굴의 조그마한 결점, 예를 들면 얽은 흔적 같은 것도 사랑하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주며, 그런 결점을 다른 여자에게서 발견하면 깊은 몽상에 잠긴다. 그것은 그가 이 얽은 흔적을 보고 여러 가지 감미로운 감정을 맛보아 강한 흥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것을 애인의 얼굴에서 보았을 때는 어떻겠는가? 그런 흔적을 보면 설사 다른 여자의 얼굴에서 보았을 경우라 하더라도 그 감정은 믿을 수 없을만큼 강하게 되살아난다.
이리하여 사람은 미보다도 추를 택하고,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 이 경우에 추는 곧 미이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가 몹시 메마르고 얼굴이 얽은 여자를 정열적으로 사랑하였으나 그녀는 죽어 버렸다. 3년 후에 그는 로마에서 두 사람의 여자와 친해졌는데, 한 쪽은 절세의 미인이고 한쪽은 마르고 얼굴이 얽었으며 매우 못생긴 편이었다. 일주일 후에 나는 그가 그 추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그동안에 그 여자의 추함을 죽은 애인의 추함으로 지우는 데 보내었다). 이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귀여운 태도이지만, 이 추한 여자 쪽에서도 그를 놓치지 않고 그의 정열을 불타게 하여 유혹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유효한 방법이었다.
어떤 남자가 여자와 만나 그 못생긴 데 정이 떨어진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녀가 건방지지만 않으면 용모의 결점은 잊을 수 있다. 그리하여 꽤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며 사랑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1주일이 지나면 그는 희망을 갖는다. 다시 1주일이 지나면 그는 그녀에게 열중하게 된다.
제18장
극장에서도 인기 배우에 대하여 이와 비슷한 경우를 들 수 있다. 관객들은 배우가 잘생기고 못생긴 것에 관심이 없다. 르깽(1728~1778, 프랑스의 배우―역주)는 못생기기로 유명했으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가리크(1717~ 1779, 영국의 배우―역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째는 관객이 배우의 얼굴이나 행동의 진정한 아름다움보다는 지금까지 그 배우의 연기를 보고 느낀 그 쾌락에 대한 감사와 추억으로 인해 그들의 상상력이 배우에게 부여한 아름다움만 보기 때문이다. 희극배우가 무대에 등장하면 그들은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처음으로 프랑스 극장에 가 본 처녀는, 첫 막에서는 르깽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곧 그녀를 울리고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가 분장하는 탕크레드(볼테르의 비극의 주인공―역주)나 오로스만느(볼테르의 비극 ≪자이르≫의 등장인물―역주)와 같은 역에 어떤 저항을 할 수 있겠는가. 못생긴 점이 아직 더러 눈에 띄더라도 모든 관객들의 열광과 그것이 그녀의 어린 마음에 주는 효과가 순식간에 배우의 추한 얼굴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못생겼다는 것은 말뿐이 되고 만다. 아니 그런 말도 이미 없어졌다. 르깽에 매혹을 느낀 부인들은 “어쩌면 저렇게 잘생겼을까!” 하고 떠들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성격, 즉 정신적인 습관의 표현이며 따라서 모든 정열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열이다. 아름다움은 여자에게 개연성밖에 주지 않는다. 그것도 냉정하다는 개연성이다. 그러나 얼굴이 얽은 애인의 눈초리는 모든 개연성을 무로 돌리는 매력 있는 현실인 것이다.
제19장 속 미의 예외에 대하여
머리도 좋고 애정도 있으나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감수성을 가진 여자는, 사교계에 얼굴을 나타낸 이튿날에,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암시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일일이 후회하지만, 이런 여자는 남자가 잘생기지 못해도 쉽사리 익숙해진다. 그리고 이런 것은 그녀가 남자를 사랑하는 데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
당신이 반해 있는, 그러나 언제나 쌀쌀하게 구는 여자에 대해, 그 아름다움에 거의 무관심한 것도 같은 원리에 의해서이다. 미의 결정 작용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친구가 당신의 사랑의 상처를 위안해 주기 위해, 그녀는 아름답지 못하다고 당신에게 말할 때 우선 그 말에 찬성할 정도니까 친구는 잘되었다고 믿어 버린다.
오늘 밤 내 친구인 용감한 트라브 대위가, 전에 미라보를 만났을 때의 인상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이 위인을 보고, 아무도 눈으로는 불쾌한 인상을 받지 않았다. 즉 그를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그의 능변에 이끌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의 미에 주의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면(조각이나 그림의 아름다움)이 거의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다른 아름다움, 즉 표정의 아름다움에만 유의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주의력이 추에 대해 눈을 감는 동시에 별로 못생기지 않은 섬세한 점, 예를 들면 그의 탐스러운 머리칼의 아름다움 같은 것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그의 머리에 뿔이 돋아나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역시 아름답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오페라 극장의 맨 앞 줄 좌석을 차지하여, 웬만한 것에 흥미를 잃어 상상력이 메말라 버린 남자들이라도 밤마다 아름다운 무희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주의력이 쏠리게 될 것이다. 그녀들은 우아하고 대담하고 비범한 동작으로 육체적인 사랑을 불러일으켜 그들에게 아직도 가능할지도 모르는 유일한 결정 작용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못생긴 여자라도, 자주 무대에 나서게 되면 비싸게 팔릴 수 있다. 죠프르와(1743~1814, 프랑스의 연극 비평가―역주)는 극장을 여자의 발판이라고 말했다. 무희는 이름이 알려질수록 가치가 있다. 그래서 무대 뒤의 격언에 “팔리지 않은 여자에게도 흥정꾼이 붙는다.”*********는 말이 있다. 이런 여자들은 사랑을 한다면 애인에게 바쳐야 할 정열을 불태우지 않으므로, 자칫하면 오기에서 사랑에 빠지기 쉽다.
용모에 흠잡을 데가 없는 여배우가 무대에서 밤마다 두 시간씩 고귀한 연기를 하는 것만 보고 그 밖의 그녀의 사생활을 전혀 알지 못할 경우, 그런 여배우의 표정에 어찌 고매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간신히 뜻을 이루어 이 여자의 집에 초대를 받으면 그녀의 얼굴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므로 그녀를 에워싼 현실이 그다지 고상하지 않더라도 곧 일종의 소설적이며 감동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지루한 프랑스 비극에 열중하던 젊은 시절의 어느 날 밤, 오리비에 양(1767~7784, 미모가 뛰어남―역주)과 저녁을 함께 했을 때, 나는 어쩐지 여왕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내가 지금까지 여왕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귀여운 한 아가씨에게 매혹되었을 뿐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제20장
정열적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동시에 미의 효과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것은 그가 여자에게서 받는 가장 강한 인상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새틴 모자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남자는, 사교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 가까이와도 자기가 냉담한 데 놀란다. 그런 사람은 남이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자기가 가엾게 생각된다.
절세의 미인도 이틀째 되는 날에는 그다지 놀라움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며, 결정 작용을 저해한다. 그녀들의 가치는 누구나 알고 있다. 즉 일종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녀들의 애인의 명단에는 바보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왕족이나 백만장자 따위들 ……
제21장 첫 대면에 대하여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애정이 두텁고 의심이 많다. 가장 순진한 여자도 그렇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심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인생에 실망하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에게 소개될 때, 뻔히 알 수 있는 평범한 태도로 나오면, 상상력을 위축시키게 하여 결정 작용을 저해한다. 이와 반대로 연애는 첫 번째의 소설적인 상황에서 개가를 올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놀라움은 특수한 사건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미 결정 작용에 필요한 두뇌의 작용을 반쯤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세라핀느의 사랑의 시초(≪질 브라스≫ 제2권 142면)를 인용해 보려고 한다. 돈 페르난도가 종교재판의 경관에게 쫓겨 도망칠 때의 이야기이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깊은 어둠을 뚫고 골목을 몇 군데 빠져 나간 후에, 문이 열린 쌀통 앞에 이르러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방이 매우 호화로운 데 놀랐다. …… 살펴보니 방 한쪽에 밀면 열릴 것 같은 문이 보였다. 나는 “어떻게 된 걸까.” 하고 중얼거리면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문을 조금 열어 보니 방이 쭉 연속되어 있고 제일 구석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방을 몇 개 지나 불이 켜져 있는 방에 이르렀다. 그 불은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놓은 금박을 입힌 촛대에서 타고 있는 촛불이었다. …… 이윽고 더워서 커튼을 절반쯤 젖힌 침대를 바라보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것은 한 젊은 여자로, 얼마 전의 우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 아주 매혹되었다. …… 내가 황홀한 심정으로 한참 내려다보는 동안에 여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밤중에 자기 방에 낯선 남자가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라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부인 무서워 마시오..” ……그녀는 하녀를 불렀다. …… 하녀가 나타나자 좀 대담해져서 나에게 누구냐고 거만하게 물었다.
이것은 매우 인상적인 첫 대면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현대의 풍습으로 딸에게 남편감을 보이는 틀에 박은 듯한 거의 감상적인 첫 대면처럼 어색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합법적인 매음행위는 수치심을 손상시키기도 한다.
“1790년 2월 17일, 나는 오늘 오후에” 하고 샹포르는 기록하고 있다.(제 4권, 155면)
“나는 이른바 가정의 경사에 참석했다. 그러니까 젊고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나고 부덕이 높은 마리이유 양이, 건강이 좋지 않을뿐더러 인상도 나쁘고, 품행도 단정치 못하며 머리가 둔하지만 돈이 많은 M.R 씨의 아내가 되는 행복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늘 결혼 계약서에 서명할 때까지, 그와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
“만일 이 더러운 세기의 특색을 이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일을 공공연히 하고 이런 기쁨의 우스꽝스러움일 것이다. 그리고 장래에 대하여 말한다면, 같은 사회가 위선적인 잔인성을 가지고 사랑을 하는 젊은 아내의 사소한 경솔에 대해 모욕을 퍼붓는다는 것이다.”
모든 의식은 성질상 외관을 존중하며,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거기에 적합하게 행동해야 하므로, 상상력은 마비되고 의식의 목적에 어긋난 우스꽝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작용한다. 여기서 사소한 농담의 마술적인 효과가 생긴다. 미래의 남편과 틀에 박힌 맞선을 보는 동안에, 불안과 수치심에 억눌린 가엾은 처녀는, 자기 역할만 생각하기에도 벅차다. 이것도 상상력을 말살하는 하나의 확실한 방법이다.
교회에서 서너 마디의 라틴어를 들은 후에, 그때까지 두 번밖에 만난 일이 없는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은, 2년 동안 사랑한 남자에게 본의는 아니지만 몸을 맡기는 일보다 분명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현대의 결혼에서 일어나는 죄와 불행의 원인은 P(로마가톨릭(papisme))이다. 그것은 결혼 전의 처녀에게서는 자유를 빼앗고, 그녀가 선택을 그르친 후에는 이혼을 금하고 있다(차라리 이런 과오를 강요당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부관계가 원만한 독일을 보라. 어떤 아름다운 귀부인(사강공작부인)은 최근에 공공연히 네 번째 결혼을 했으나, 피로연에는 전 남편을 초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사람은 그녀와 사이좋게 교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좀 극단의 경우 같지만, 아무튼 남편의 폭정을 벌하는 이혼만 허용된다면, 많은 불행한 가정은 구제된다. 재미있는 것은 로마가 가장 이혼이 많은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랑은 첫 대면에 남자에게 어떤 존경을 촉구함과 동시에 어딘가 동정을 북돋는 듯한 것이 있는 것을 나타내는 표정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제22장 심취에 대하여
매우 섬세한 재질을 가진 사람은 호기심과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것은 특히 마음속에 정열의 원천인 신성한 불길이 꺼진 사람들에게 심하며, 가장 불길한 징후의 하나이다. 사교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학생에게도 심취가 있다. 인생의 양극단에 있어서는, 감수성이 너무 많거나 적기 때문에, 단순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것이 당연히 주게 마련인 참된 감각을 맛볼 수가 없다. 너무나 열렬한, 혹은 발작적으로 열렬한 영혼, 말하자면 신용대부로 사랑하는 영혼은 대상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쪽에서 몸을 내맡긴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 인간의 본성에서 오는 감각을 자기가 경험하기에 앞서, 멀리서나마 아직 보기도 전에 대상을 상상에서의 매력으로 감싸는 것인데, 이 매력의 마르지 않는 원천은 실은 그들 자신 속에 있다. 가까이서 상대방을 잘 볼 수 있는 단계가 되어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머릿속에서 그린 대로 본다. 그리하여 그 상대방의 외관에서 자기 자신을 향락하면서, 그 상대방을 향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 만사를 자기의 부담으로 처리해 나가는 데 피로해지면 그들은 사랑하는 대상이 그릇을 돌려주지 않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심취는 사라지고 자존심이 맛본 패배에서 그때까지 지나친 평가를 해온 대상을 가혹하게 대하게 된다.
제23장 첫눈에 반하는 것
이 우스꽝스러운 말은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상 있는 일이다. 나는 베를린의 미남들이 고원의 꽃이라 하는 아름답고 고상한 빌헬미나가 사랑을 경멸하고, 그 광기를 비웃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녀는 젊음, 재능, 미모, 그 밖의 모든 행복에 빛났으며, 막대한 재산은 그녀의 온갖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자연과 협력하여 완전한 행복이 주어졌다는 드문 예를 세상에 남긴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23세였다. 궁전에 나온 것은 훨씬 전의 일이며,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호의를 보기 좋게 거절했다. 그녀의 정숙함, 더구나 단호한 부덕은 세인의 본이 되었다. 그 후 내노라는 미남들도 그녀의 사랑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만 그 우정을 원할 분이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페르디난트 대공(大公)의 무도회에 나가, 어느 젊은 대위와 무도장에서 10분 동안 춤을 추었다.
“이때부터”라고 그녀는 그 후 어떤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그는 내 마음과 내 전부의 주인이었어. 만일 헤르만을 만나는 행복이 다른 일을 생각하느라 중단된다면, 내 마음은 공포에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어. 내 유일한 관심은, 그가 조금이라도 나를 생각해 줄까 하는 것이었어.
오늘날 내 과실에 대한 단 한 가지 위안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힘이 내 이성을 빼앗아 버렸다는 환상에 잠기는 것뿐이야. 다만 그를 한 번 보기만 했는데 내 혼란과 동요가 얼마나 심했는지, 도저히 말로는 사실에 가깝도록 표현할 수 없어. 나는 너무 빨리, 너무 강하게 그에게 이끌려 가서 얼굴을 붉히고 있어. 그가 나에게 던진 첫마디가 ‘나를 사랑해요?’라는 당돌한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한 감정의 결과가 이처럼 뜻하지 않는 일로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어. 무슨 독약이라도 마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어.
불행하게도 너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내가 헤르만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처음 만난 지 15분도 못되어 그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 되었어. 그래서 그 후에도 이 이상 소중할 수 없었어. 나는 그의 결점을 다 알고 있었어. 그러나 그가 나를 사랑해 준다는 조건으로 모든 것을 용서했어.
그와 춤을 추고 나서 얼마 후에 왕은 돌아가셨고, 헤르만은 친위대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을 수행해야 했어. 그와 함께 삼라만상은 사라져 버렸어. 그가 내 옆을 떠난 순간부터 내가 얼마나 쓸쓸했는지 말로 전할 수 없어. 다만 혼자 있고 싶은 욕망만이 그 쓸쓸함과 똑같을 만큼 강했어.
나는 간신히 집에 돌아왔어. 방을 이중으로 쇠로 잠그고, 나는 자기 정열에 항거하려고 했어. 나는 그것에 성공한 것으로 생각했어. 아, 그날 밤과 그 후의 며칠 동안 나는 스스로 정숙하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
당신이 방금 읽은 것은 당시에 소문이 자자하던 사건의 정확한 묘사이다. 그런 한두 달 후에 빌헬미나는 여러 사람이 그녀의 감정의 움직임을 간파했으므로 꽤 불행했던 것이다. 이 글은 그 긴 불행의 연속적인 발단으로, 결국 그녀는 젊은 나이에 그처럼 비참하게 죽어야 했지만 독은 그녀 자신이 마셨는지 애인이 마시게 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젊은 대위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다만 춤을 잘 춘다는 것뿐이다. 그는 매우 쾌활하고 자신만만하며 호인 같은 인상을 주었으나, 창부들과 놀아나고 있었다. 게다가 귀족이란 말뿐이고 매우 가난하여 궁정에는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첫눈에 반하기 위해서는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되며, 의혹에 권태를 느끼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자기 앞에 닥쳐올 우연한 사건을 기다리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랑도 없이 나날을 보내는 데 권태를 느끼고, 인생의 모든 속박을 벗어난 여자들에게 압도되어, 자존심이 주는 보잘 것 없는 행복에 불만을 느끼고, 부지불식간에 이상적인 남자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런 남자를 만나면 결정 작용이 대상을 밝혀내어, 이 자기 운명의 지배자에게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미점이 있다고 영원히 믿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불행에 빠지기 쉬운 여자의 영혼은 너무나 고귀하기 때문에,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만일 타락이라도 할 수 있는 성격이라면 이런 불행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교리문답이 미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은밀한 권태와, 나무랄 데 없는 몸가짐의 단조로움이 주는 혐오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교계에서 말하는 행실이 나쁜 남자에 의해서 일거라고 생각한다. 카토(B.C. 237~142, 로마의 웅변가―역주)형의 남자가 첫눈에 반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자기의 지위를 먼저 생각하면 사랑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 때문에 의심이 많아진 여자는 이러한 영혼의 혁명을 경험할 수 없다. 다른 여자가 상대가 될 남자에게 보내는 찬사만큼 첫눈에 반하게 하는 일은 없다.
모험적인 사랑의 희극적인 시초 중 하나로, 가짜로 첫눈에 반하는 수가 있다. 자기 처지에 권태를 느끼고 감수성이 전혀 없는 여자가 어느 날 밤 일생에 한 번밖에 있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공상해 온 위대한 영혼의 움직임을 마침내 경험했으므로 그녀는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몸을 어디에 숨겨야 할지 모른다. 특히 어제 밤 반한 남자를 어떻게 피해야 좋을지 모른다.
영리한 남자는 이처럼 첫눈에 반한 것을 간파하고 이용할 수 있다. 육체적인 사랑에 있어서도 첫눈에 반하는 일이 있다. 어제 우리는 베를린 제일의 바람둥이 여자와 함께 마차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보았다. 미남인 핀돌프 중위가 옆을 지나갔던 것이다. 그녀는 깊은 몽상에 잠겨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날 밤 그녀가 극장에서 내게 고백한 바에 의하면, 그녀는 그에게 홀딱 빠져 미칠 것 같으며, 아직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 핀돌프의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용기가 있다면 그 사람을 부르러 보낼 텐데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뜨거운 정열이 나타나 있었다. 이런 표정은 다음 날까지도 계속되었으나, 3일 후에 핀돌프가 어리석은 짓을 해서 남들의 웃음을 샀으므로 그녀는 벌써 그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는 보기도 싫을 정도가 되었다.
제24장 미지의 나라에의 여행
북방 태생의 사람들은 이 24장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오렌지 나무에 대한 몇 가지 까다로운 특수한 연구이다. 이 나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만 자라지만, 본래의 키만큼 자라진 않는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면, 나는 사실을 훨씬 작게 취급해야 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책을 쓰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물론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문학적인 재능이 없으므로, 나는 다만 과학의 정확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오렌지 나무의 나라에 머물러 있으면서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평원에 무성하게 자란 오렌지 나무를 본 적이 없는 프레드릭 대왕이나 그 밖의 북방의 명사들은 악의에서는 아닐테지만, 반드시 내가 아래에서 말하는 사실을 부인할 것이다. 나는 선의를 존중하며, 그 이유도 알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이 솔직한 선언은 교만하다고 생각될 우려가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첨가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쓰고 남이 쓴 것을 부정한다. 나는 책을 복권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상 책에는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것이다. 후세 어떤 책은 잊어버리고 어떤 책은 재판함으로써 복권 당첨자를 발표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힘껏 그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써 나갈 수밖에 없으므로, 남을 비웃을 권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풍자 시에는 언제나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 특히 꾸리에(1722~1825, 프랑스의 저널리스트로 풍자 작가―역주)가 델 휴리에를 풍자한 것처럼 쓴다면 명분이 선다.
이 정도로 전제하고 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파리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사실을 검토해 보려고 한다. 파리는 물론 다른 도시보다 훌륭한 도시지만, 소렌토처럼 오렌지 나무가 무성한 곳은 아니다. 그런데 리지오 비스콩티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하여 기록한 것은 타소의 나라 소렌토인데, 이는 나폴리만을 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나폴리보다 훨씬 경치가 아름답지만, 거기서는 아무도 ≪미르와르≫(miror 파리에서 창간한 오락신문) 같은 것은 읽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날 밤, 이런 커다란 행복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가 오기까지 시간을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열에 들뜬 사람처럼 여러 가지 일에 손을 대 보지만 곧 포기해 버린다. 끊임없이 시계를 들여다본다. 잠시 시계를 바라보지 않는 동안에 10분쯤 지나면 무척 기뻐한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집 현관에 서서 문을 두드리려고 할 때가 되어 그녀가 집에 없으면 차라리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집에 없어서 유감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중에 반성한 결과이다. 요컨대 기다리는 동안의 괴로움이 이상한 심리상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사랑이 부조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상력이, 한 걸음 한걸음 행복하던 달콤한 몽상에서 끌려나와 가혹한 현실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다정한 남자라면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여자를 만나자마자 시작되는 투쟁에서는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주의력이나 용기가 부족하면 곧 패배하여, 그 후로는 오랫동안 상상력의 몽상을 해쳐버리는 것이다. 정열에 몸을 맡김으로써 패배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사실은 정열과는 인연이 멀고, 다만 자존심의 굴욕만이 남게 되는 그러한 패배인 것이다. ‘나는 바보였다. 용기가 없었다.’ 하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에게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사랑이 어느 정도 식었을 때이다.
결정 작용의 몽상 때문에 소비된 얼마 남지 않은 주의력을 집중시켜 보더라도, 사랑하는 여자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고백할 때에는 무의미한 말이나 자기가 느낀 것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기가 일쑤이다. 그리고 더욱 비통한 것은, 자기감정을 과장하여 자기 눈에도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자기가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으므로 괜히 말을 꾸미거나 말에 힘을 주거나 한다.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어색한 일이므로 말하지 않을 수도 없고, 우물쭈물하면 여자와 더욱 멀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느끼고 있지도 않은 것을 그럴듯하게 이야기한다. 한 번 더 말해 보라고 하면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만나지 않으면 그녀를 훨씬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사랑을 알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마음속에 이런 모순을 느껴 사랑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나는 비겁한 심정을 잘 알고 있다. 병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포화 속으로 뛰어드는 그 심정 말이다. 2년 전부터 다만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떠벌린 것을 생각하면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에서 여자들은 정열적인 연애와 은근한 연애의 차이, 다정한 남자와 산문적인 남자(레오노르의 말이다―저자주)를 구별할 수 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정한 남자가 손해를 보고 산문적인 남자가 이득을 보게 된다. 산문적인 남자는 평소에 부족했던 만큼의 정열을 얻게 되지만, 다정한 남자는 가엾게도 애정이 복받쳐 미칠 것 같지만, 그 광기를 숨기려고 한다. 그는 자기의 흥분을 억누르는 데 정신을 빼앗기므로, 사랑에 성공하는 데 필요한 침착성을 잃고, 산문적인 남자라면 반드시 성공도 거두었으리라고 생각되는 그녀의 방문으로부터 오히려 풀이 죽어서 돌아온다.
자기의 정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다정하고 자존심이 강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말이 많지 않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평범한 남자는 사랑에 성공할 기회를 정확히 계산하여, 실패하지 않을까 두려워 우물쭈물하는 일이 없다. 그는 오히려 자기의 속된 근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정한 남자를 비웃는다. 머리가 좋으면서도 극히 간단한 문제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확실한 성공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정한 남자라면 힘으로 여자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여자의 자비심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일찌감치 단념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방이 정말로 민감한 정열을 느낄 수 있는 여자라면, 우리는 구태여 그처럼 고생하면서 사랑을 속삭인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정열이 확실한 표현만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남자의 태도는 부끄러워하고, 냉정하고 속에 거짓을 품고 있는 듯이 보일 것이다. 생활의 모든 순간에, 그처럼 생생하고 또 세밀하게 느낀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가 자기에게 주는 고역이지만, 이것은 그가 소설을 읽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 살면 결코 이런 괴로운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15분 전에 자기가 느낀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거나 그것을 일반적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려고 애쓰지 않고, 다만 솔직하게 그때그때 느낀 것을 표현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무리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또 기억도 혼란되어 있으므로, 그때에는 제대로 말할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한 시간이나 승강이를 한 끝에 간신히 이 상상력이 지닌 마법의 나라에서 빠져나와 이제부터 사랑하는 여자 앞에 있다는 것을 즐기려는 단계가 되면 대개는 헤어져서 집에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이런 말은 과장되었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더욱 심한 예를 보았다. 내 친구가 어떤 여자를 우상처럼 숭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말해 주지 않으므로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가 어떤 실례되는 일을 했다고 해서 갑자기 여자가 그에게 한 달에 두 번 이상 자기한테 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토록 고대하던 방문 때가 되면 그는 마치 미쳐서 발작이라도 일으킬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사르비아티는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그는 방문의 시초부터 돌아갈 것이 걱정이 되어 즐거움은 조금도 맛볼 수 없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어댄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의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말도 한다. 무슨 까다로운 말을 입 밖에 내기도 하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우스꽝스러움에 놀라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속으로 무척 애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겉보기에는 냉담하게 보인다. 사랑은 그 열기 때문에 정체를 숨긴다.
그녀와 만나지 않을 때에는, 상상력은 그녀와 줄곧 이야기를 나누고 부드럽고 감동적인 흥분을 느낀다. 이리하여 10일 내지 12일 동안은 그녀와 얼마든지 말할 용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날의 전일부터 열병이 생겨 만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녀의 살롱에 들어갈 때에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도록 입도 다물고, 다만 나중에 그녀의 얼굴을 상기할 수 있도록 바라보기만 하자고 결심한다. 그러나 일단 그녀 앞에 나서면 갑자기 눈앞이 아물거려 미친 사람처럼 이상한 짓을 저지를 것 같다. 자기가 두 개의 영혼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쪽은 행동에 옮기려 하고, 다른 한쪽은 그 행동을 비난한다.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주의력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순간 피도 정지되어, 방문을 마치고 두 주일 동안이나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있어야 하는 불행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권태로운 사나이가 옆에 앉아 있으면, 가엾은 애인은 그 귀중한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것이 재미있는 듯 그 사나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알고도 모를 심정이 된다. 그리하여 그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던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 버린다.
그는 그동안에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아주 인연이 먼 인간이 되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지낸 며칠 동안에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기만 몰랐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윽고 그녀의 앞을 물러나온다. 그리고 태연스럽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두 주일 동안 만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숫제 다시는 만나지 않는 편이 덜 괴로울 것이다. 이건 포리카스트로 공작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그보다도 더욱 비참하다. 공작은 질투심이 많은 남편의 뜨거운 사랑 때문에 감금을 당한 애인과 15분 동안 만나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레체까지 천리 길을 왕복하였다.
사랑을 의지로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이것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르비아티는 애인에게,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나서 차라리 무관심하게 되기를 바랐다. 이런 방문의 효과는 오직 다시 결정 작용을 일으킬 뿐이다. 사르비아티에게는, 생활이 두 주일의 주기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의 주기는 전에 …… 부인을 만난 날 밤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가령 5월 21일에 그는 행복에 도취되어 있었으나, 6월 2일은 머리에 권총을 쏘고 싶은 유혹에 지기 싫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날 밤에 소설가들이 자살의 순간을 서툴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목이 마르네. 이 컵의 물을 마셔야지.” 하고 사르비아티는 무심코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결심에 반대하지 않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울기 시작했다.
사랑을 하는 남자들의 말에는 으레 혼란이 따르므로, 이야기의 일부에서 성급하게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그들은 뜻하지 않은 우연적인 말로만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마음의 울부짖음이다. 이 밖에도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말 전체의 흐름에서이다. 이쪽이 무척 감동되어 있을 때에는, 자기 감정을 일으킨 상태의 감정을 간파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25장 소 개
나도 여자가 어떤 자상한 일을 재빨리 파악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감탄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바보 같은 인간을 지나치게 칭찬하며, 하찮은 일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평범한 허풍을 훌륭한 성격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 알 수 없다. 여기에는 내가 미처 모르고 있는 어떤 일반적인 법칙이 있을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한 가지 미점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하나의 세부에만 마음이 끌려,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경액*은 이 미점을 즐기기 위해 소비되며,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나는 많은 뛰어난 인물들이 재치가 있는 여자에게 소개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첫 대면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약간의 편견이었다.
만일 독자가 어떤 사사로운 이야기를 허용해 준다면, 나는 얌전한 L.B(라 베도예르) 대령이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최고로 꼽히는 스트류브 부인에게 소개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는 “부인이 저 친구를 마음에 들어 할까?” 하고 수근거렸다. 나는 부인에게, 대령이 이틀째 계속해서 같은 넥타이를 매며, 이틀째에는 뒤집어 맸기 때문에 옆으로 주름이 나 있을 테니 잘 보라고 넌지시 말해 주었다.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이 매력적인 인물이 찾아왔다고 했다. 아마도 파리에서 제일 가는 바보라도 부인에게 대령보다는 좋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부인이 나중에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인은 정숙한 여자였다. 그러므로 두 사람 사이에 추문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두 사람처럼 서로 성격이 맞는 사이는 없었다. 스트류브 부인을 소설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라 베도예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그는 부인 때문에 젊은 나이에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여자에게는 애정의 뉘앙스,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마음의 변화, 자존심의 가벼운 움직임까지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점에서 여자는 남자에게는 없는 감각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부상자를 간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여자는 정신의 결합, 지성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나는 가장 훌륭한 여자들이 어떤 지성이 뛰어난 남자(나는 아니다)에게 탄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동시에 그녀들은 거의 같은 말로 바보를 칭찬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사람들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가짜라고 생각하고, 크기만 하면 좋아서 가짜를 택하는 것을 바라보는 다이아몬드의 감정인처럼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자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 제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라사르 장군(1775~1809, 나폴레옹의 전위부대의 용장―역주)이 실패한 것을, 수염을 기르고 맹세만 하던 대위가 성공한 것이다. 남자의 가치 중에는 분명히 여자가 모르는 일면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완전히 육제적인 법칙에 돌리고 있다. 남자는 신경액을 뇌수에서 소모하지만 여자는 심장에서 소모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민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남자는 운명을 내건 대사업에 몰두하면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심심풀이로서의 위로밖에 없다.
아피아니(1754~1809, 이탈리아 화가―역주)는 덕을 수단으로 밖에는 인정하지 않는 사나이인데, 오늘밤 나와 토론했을 때 이 장의 사상을 이야기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에포니나(로마시대의 열녀―역주)가 영웅적으로 헌신하여 남편을 지하의 동굴에 숨겨두고 먹여 살리며, 남편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힘썼네. 그러나 만일 한 사람이 로마에서 평안하게 살고 있었다면, 그녀는 자기 애인을 숨기는 데 그 정신력을 사용했을 걸세. 강한 영혼에는 식량이 필요하다네.”
제26장 수치심에 대하여
마다가스카르의 여자는 우리가 애써 숨기는 곳을 태연하게 드러내 놓는다. 그러나 팔을 내 보이라고 하면 부끄러워서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이다. 수치심의 3/4은 분명히 후천적인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문명의 산물 중에서 행복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법칙일 것이다.
맹수가 물을 마실 때 몸을 숨기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목을 물에 담가야 하므로 그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타이티 섬에서의 관찰에 비춰 보더라도, 수치심에는 이 이외의 어떤 자연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연애는 문명의 기적이다. 야만인이나 문명이 낮은 인종에게서는 육체적인 사랑, 그나마 가장 야비한 애욕밖에는 찾아볼 수 없다.
수치심은 사랑에 상상력이라는 도움을 주고 생명을 불어 넣는다. 수치심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딸에게 조심스럽게 가르친다. 혹은 단체정신에 의해 생겨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자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소심하고 상냥한 여자에게 남자 앞에서 얼굴을 붉힐 일을 하는 것처럼 괴로운 것은 없다. 어느 정도 거만한 여자라면 죽음을 택할 것이다. 다소 대담한 짓을 하여, 그것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좋게 보이면 곧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 행동을 비난하거나 혹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만 해도, 무서운 의혹이 생긴다.
그러므로 비속하지 않은 여자는 되도록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무난하다. 모험은 평등한 것이 아니다. 여자는 상대방에게 사소한 기쁨, 귀염성을 보이기 위해 후회와 수치심으로 애인이 전과 같이 그리워지지 않을 정도의 위험까지도 무릅쓰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즐겁게 떠들며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파티는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면, 애인의 얼굴을 보는 것도 싫어진다. 가장 가벼운 위반도 참을 수 없는 수치로 벌을 받게 되는 습관의 힘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수치심의 효용은 그것이 연애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 반론도 없을 것이다. 감정의 메커니즘으로서 이처럼 간단한 것은 없다. 영혼은 수치심에 사로잡히면 욕망을 돌보지 않는다. 인간은 욕망을 억압하고, 욕망은 행동으로 인도한다.
분명히 모든 상냥하고 고결한 여자는(이 두 성질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으므로, 그 한쪽이 다른 쪽을 수반하지 않는 일은 드물다) 거절당한 남자가 가면을 썼다고 말하는 냉담한 습관을 몸에 지니게 된다.
이 냉담하다는 비난이 일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수치심에는 중용을 지킨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현명하지 못하고 자존심만 강한 여자라면, 수치심에 관해서는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영국 여자는 별장의 파티에서 남편과 함께 살롱에 나가는 것을 남이 보지 않게 한다고 한다. 더욱 심한 것은 남편 이외의 남자 앞에서 떠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성 있는 영국인이 가정의 행복에 그처럼 권태로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이런 지나치게 세심한 배려 때문일 것이다. 죄는 남자에게 있다. 어째서 그렇게 오만한 것일까.
한편 플리머스에서 갑자기 카디스나 세비야로 옮겨 가면, 스페인에서는 더운 기후와 격렬한 정열이 필요한 분별을 어느 정도 잊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요염하고 강한 애무가 공공연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았는데, 감동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하였다. 이런 보기 흉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수치라는 구실로 여자가 몸에 붙이는 습관의 힘은 헤아릴 수 없다. 저속한 여자도 수치심을 과장함으로써 탁월한 여자와 동등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치심은 상냥한 여자가 애인에 대하여 말보다도 행위로 심정을 노출시키는 일이 있다. 미모와 재산, 그리고 바람기로 볼로냐에서 제일가는 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그곳에 머물러 있는 어느 바보 같은 프랑스인이(덕분에 프랑스 사람이 이렇다는 말을 듣게 되었지만) 어젯밤 그녀의 침대 아래 숨어들어 가려고 했었다.
그는 한 달째 수많은 우스꽝스러운 사랑의 고백을 늘어놓아 그녀를 괴롭혀 왔는데, 그것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머리가 좀 모자랐다. 그는 그 부인이 하녀를 물러가게 하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기다렸으나, 모두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부인은 벌떡 일어나 벨을 눌렀다. 그러자 5~6명의 하인들이 몰려와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을 하였으므로 그는 창피를 톡톡히 당하고 쫓겨났다.
“그런데 만일 그 남자가 두 시간만 더 기다렸다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고 내가 물었다.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난처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필경 ‘모두들 내가 당신의 부름으로 여기까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할거요’라고 말할 게 뻔하거든요.”
나는 이 미인의 집을 나와, 다른 부인의 집에 갔다. 그 부인은 내가 알기로는 가장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로, 그녀의 극도로 섬세한 마음씨는 놀라운 미모 못지않았다. 그녀는 혼자 있었다. 나는 아까 그 부인의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토론을 했다. 그녀는 말했다. “그렇지만 만일 그 여자가 그 사람을 전부터 좋아했더라면, 그런 짓을 하더라도 용서해 주었을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었을 거예요.”
나는 고백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깊숙이 던져진 이 뜻하지 않은 빛에 아연실색하였다. 이윽고 나는 말하였다.
“그러나 남자 쪽에서도 만약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들 그런 난폭한 짓을 할 용기가 있었을까요?”
만일 여자가 이 장을 썼다면 이처럼 애매하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의 자존심이라든가 지나친 수치심의 습성이라든가, 또는 어떤 종류의 섬세한 감수성이라든가 그런 자연적인 근거가 없는 섬세함 등―나는 이 모든 것을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을 토대로 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여자가 철학적인 솔직함을 가지고 나에게 대략 다음과 같은 의미의 말을 하였다.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 자유로운 사랑을 바칠 때가 오더라도 내가 선택한 남자는, 지금까지 내가 사소한 선악에 대해서도 얼마나 엄격했던가를 알고 더욱 내 감정을 존중해 주리라고 생각해요.”
이런 남자는 좀처럼 만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그런 남자 때문에 이처럼 매력 있는 여자가 현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에게 냉담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치심의 최초의 과장이지만, 여기 대해서는 그런대로 경의를 표해두자. 둘째 과정은 여자의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셋째 과정의 원인은 남편의 자존심이다.
이러한 사랑의 기대는 때때로 더욱 정숙한 여자의 몽상에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다. 사랑을 하도록 만들어진 영혼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있으면서 사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으로부터도 하나의 커다란 행복을 빼앗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꽃을 피우지 않은 오렌지 나무와 같은 것이다. 사랑을 하도록 만들어진 영혼은 다른 어떤 행복에도 큰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유의하기를 바란다. 사교계의 즐거움도 두 번째에는 참을 수 없는 공허를 느끼게 된다. 미술이나 자연의 숭고한 경치를 사랑하려는 마음도 우러나지만 사실은 그런 것도 그녀에게 사랑을 약속하고 과장하는 데 불과하다.
이윽고 그녀는 그것이 스스로가 금한 저 사랑의 행복을 속삭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수치심에 있어서 비난해야 할 유일한 점은 그것이 거짓말을 하는 습관으로 이끌고 간다는 것이다. 바람둥이 여자가 정숙한 여자보다 우세한 것은 이 점뿐이다. 바람기가 있는 여자라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좋아지면 곧 그렇다고 말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저는 더욱 행복해질 거예요. 저는 당신을 존경하고 있거든요.”
반대로 애인에게 몸을 맡긴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정숙한 여자의 커다란 만족은 이러하다.
“남편과 다투고 나서 8년 동안 아무에게도 몸을 맡기지 않기를 잘 했군요.”
이 이론은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이때의 기쁨은 굉장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애인에게 버림을 받은 세빌리아의 귀부인의 후회가 어떤 것이었던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에 있어서는 모두가 표징이라는 것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내 문체에 다소의 관용을 가지고 대해주기 바란다.
남자인 내 눈으로 보면 수치심에는 다음과 같은 아홉 가지 특징이 있다.
1. 여자는 적은 것을 위해 많은 것을 건다. 그러므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 때로는 가면을 쓸 필요도 있다. 예컨대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웃지 않는다. 따라서 수치심을 적당히 표현하려면 큰 재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적은 수가 모이면 대개 여자는 잠시 수치심을 잊기 쉽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남자의 이야기가 반드시 점잖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도취와 광기의 정도에 따라 베일을 벗는다.
많은 여자들이 무엇보다도 남자의 뻔뻔함을 존중하는 것은 수치심이나 또는 그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참아야 하는 커다란 권태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뻔뻔함을 용감한 태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2. 제 2의 법칙. 나의 애인은 부끄러워하는 나를 더욱 존경할 것이다.
3. 습관의 힘. 습관의 힘은 가장 정열적인 순간에 있어서도 이긴다.
4. 수치심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쾌락을 준다. 그를 위해서라면 여자가 어떤 규범이라도 깨뜨릴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5. 그리고 여자에게는 더욱 도취되는 쾌락. 이 쾌락은 하나의 강한 습관을 타파시킴으로 영혼 속에 더욱 혼란을 일으킨다. 바르몽 백작은 밤중에 애인의 침실에 몰래 들어간다. 이것은 그에게 매주 있는 일이지만, 여자에게 훨씬 커다란 쾌락을 마련해준다.
6. 수치심의 결점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7. 지나친 수치심과 그에 따르는 엄격함은, 다정하고 소심한 여자에게 사랑하는 용기를 앗아간다. 이런 여자야말로 남자에게 사랑의 감미로움을 주고 자기도 그것을 맛보도록 만들어졌는데도 말이다.
8. 여러 명의 연인을 사귀어 본 적이 없는 다감한 여자라면 수치심은 그녀가 편안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그러한 결점을 갖지 않은, 즉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말하는 대로 이끌릴 위험이 있다. 그녀들은 맹목적으로 습관에 따르지 않고 사사건건 주의를 기울인다. 민감한 수치심 때문에 어딘가 동작이 어색해진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움을 꾸미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어색함은 천사와 같은 우아함에 가까운 것이다.
때때로 이런 여자의 친절한 태도가 애정의 표시로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이 천사와 같은 영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염해 보였기 때문이다. 몽상을 중단하는 것도 귀찮고 남자에게 어떤 재미있고(예의 이상도 아닌) 예의 바른 말을 걸려고 머리를 쓰는 것도 귀찮아 그녀는 조용히 남자의 팔에 안겨 있다.
9. 여자는 작가가 되어도 거의 숭고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지만 그녀들의 짤막한 편지에 더러 우아한 데가 있는 것은, 그녀들이 절반밖에 솔직해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솔직하게 된다는 것은 숄을 걸치지 않고 외출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남자는 상상력이 이끄는 대로 마구 갈겨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약
우리가 여자를 대할 때 흔히 저지르는 잘못은 여자를 남자보다 너그러우며 마음이 변하기 쉽고, 특히 경쟁 대상이 될 염려가 없는 남자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성의 일반적인 경향 이외에는 이 변하기 쉬운 존재를 지배하는 두 개의 새로운 기묘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것은 여자의 자존심과 수치심, 그리고 수치심에서 생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습관이다.
제27장 눈 짓
눈짓은 정숙한 교태의 커다란 무기이다. 눈은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으나, 나중에 언제든지 부정할 수 있다. 눈짓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로마의 미라보라는 말을 듣는 G 백작(1776~1834, 이탈리아의 극작가 지로우 백작을 가리킴―역주)의 일을 생각한다. 이 나라의 애교 있는 작은 정부는 그에게 독특한 화술을 가르쳤다. 그것은 모든 것을 말하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띄엄띄엄 말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말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나는 특히 정숙한 여자에게서 배웠다고 덧붙여 말하고 싶다. 이러한 간계한 지혜는 남자의 압박에 대한 여자의 잔인한, 그러나 정당한 복수이다.
제28장 여자의 자존심에 대하여
여자는 일생 동안 남자로부터 그들이 이른 바 중대한 문제, 예컨대 떼돈을 벌거나 전쟁의 무공, 결투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또는 잔인하거나 엄청난 복수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존심이 강한 여자는 자기가 이런 큰일을 할 수 없으므로, 그런 중대한 일에서 자존심을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힘과 고귀함에 있어서는 주위의 누구보다도 뛰어났다고 자부하고, 마음이 고동치는 것을 느끼면서도, 남자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까지도 자기보다 존중되는 것을 본다.
자기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보잘것없는 일, 즉 감정에 의해서만 비로소 중요시되는 일, 따라서 제3자는 모르는 일일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운명의 허무함과 자기 영혼의 긍지와의 상극에 괴로워하면서 그 열렬한 정열이나 감정에 따라 정한 일을 끝까지 지킴으로써 사람들에게 자기의 프라이드를 존중하게 하려고 힘쓴다.
이런 여자의 경우, 육체관계가 있기 전이라면 애인이 자기를 정복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사랑을 하고 있으면 사랑을 표시하려고 할 뿐인데 그녀는 여로모로 상상을 하여 남자의 태도에 화를 낸다. 이것은 사랑하는 남자의 감정을 즐기지 않고, 반대로 허영심에 자극을 받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 감수성이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기 전에는 매우 부드럽고 다정했던 여자도 일단 사랑을 하게 되면 속된 바람둥이 여자와 마찬가지로 허영심밖에 갖지 않게 된다.
고매한 성격의 여자는 애인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목숨을 내던질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자존심이 경쟁을 하게 되면, 가령 문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 하는 일로도 애인과 싸워서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여자의 체면이 서는 것이다. 하긴 나폴레옹도 조그마한 마을을 적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려고 하다가 패전을 한 일도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싸움이 1년 이상이나 계속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매우 훌륭한 여자는 자기의 자존심의 크기를 애인에게 의심받기보다는 차라리 자기의 행복을 희생하는 쪽을 택하였다. 화해는 내 여자 친구 집에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우연한 일이었으므로 잘되었다. 뜻밖인 곳에서 애인을 만나 그녀는 마음이 풀렸던 것이다. 그녀는 애인이 그 집에서 16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역시 그런 곳에 그녀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뜻하지 않은 행복의 감격을 감출 수 없었으나 남자는 그녀보다도 더욱 감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릎을 꿇을 뻔했다. 나는 사람의 눈에서 이처럼 눈물이 많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그들이 갑자기 행복을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눈물은 미소의 극치이다.
알지르 공작이 리치먼드에서 캐롤린 여왕을 뵈었을 때, 여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이것은 좋은 표본이라고 하겠다. 여자의 성격이 고귀할수록 이런 폭풍은 무섭다.
어두컴컴한 하늘이 심한 폭풍우를 예고하는 것처럼
-바이런 작 ≪돈 주앙≫-
여자는 평소에 애인의 훌륭한 성격을 기쁘게 생각할수록 사랑이 식은 것 같은 그 잔인한 순간에는, 언제나 애인이 다른 남자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했던 것을 분하게 여겨 복수를 하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지루한 ≪클라리사할로≫(1788~1824, 리차드슨의 소설―역주)를 읽은 것은 훨씬 전의 일이지만, 클라리사가 라블레이스의 구혼을 거절하고 죽어가는 것은 여자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라블레이스의 과실은 큰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조금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사랑 때문에 그의 잘못을 용서해 줄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모니무(라신의 비극 ≪미드리다트≫의 여주인공―역주)는 여자의 섬세한 심정의 감동적인 표본이라고 하겠다. 뛰어난 여배우가 낭독하는 다음의 대사를 듣고 기쁨에 얼굴을 붉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억제해 온 이 불행한 사랑은
……
당신의 교묘한 수단에 걸려 나는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드러난 이상 이 사랑은 지킬 것입니다.
당신도 나를 잊지 못할 것이며,
나도 당신에게 강요된 그 부끄러운 고백은
언제까지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언제나 당신이 내 마음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될테지요.
이처럼 나에게 창피를 주고, 이런 잔인한 승리를
나한테서 얻은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보다는,
차라리 무덤을 찾는 것이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영원한 괴로움을 안겨주어
사랑 때문에 나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한 남편인 당신과.
-라신-
나는 후세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군주정치의 좋은 점이 있었다. 이런 성격을 만들어내고, 위대한 예술가가 그것을 묘사했다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중세의 공화국에서도 이런 섬세한 마음의 훌륭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정치 형태가 사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나의 주장(제40장 참조)을 뒤엎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튼 그대로 인용하기로 한다. 그것은 단테의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시구이다.
아, 그대가 속세에 돌아갈 때
………………
나를 생각해다오. 내 이름은 라 피아요.
나는 시에나에서 태어나 마렘마의 늪에서 죽었노라.
내 신세는, 나와 결합했을 때
반지를 준 사람만이 아노라.
-단테의 ≪신곡≫ 연옥편 제5곡-
이처럼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이 여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데스데모나(셰익스피어의 ≪오델로≫에 나오는 여주인공―역주)의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한마디만 하면 지상에 남겨 놓고 온 친구에게 남편의 죄상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네로 델라 피에트라는 시에나에서 가장 부유하고 지체가 높은 트로메이가의 유일한 후계자인 피아와 결혼했다. 토스카나가 칭찬해 마지않는 그녀의 미모는 남편의 마음에 질투를 일으켰다. 그 질투는 허위 보고나 끊임없이 마음에서 일어난 의심에 자극받아 마침내 남편으로 하여금 무서운 계획을 꾸미게 하였다. 오늘날 그녀가 아주 결백했는지에 관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단테는 결백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편은 그녀를 당시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유명했던 시에나의 마렘마로 데리고 갔다. 그는 아내를 이런 땅에 가두어 두는 이유를 아내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도 자존심 때문에 아무런 탄식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허물어져 가는 탑 속에서 아내와 단 둘이서 살았다(나는 해변가에 있는 그 페허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는 결코 그 모욕적인 침묵을 깨지 않았다. 젊은 아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소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아내의 옆에 있으면서, 냉정하게 이 지방의 풍토병이 효과를 나타내기를 기다렸다. 늪지대의 나쁜 공기는 곧, 당대의 지상에 나타난 가장 아름답다는 얼굴을 시들게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죽어 버렸다. 이 고대의 어느 연대기 작자는 네로가 단도로 그녀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그녀는 마렘마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수수께끼였다. 네로 델라 피에트라는 여생을 침묵 가운데 보내면서 끝내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젊은 피아가 단테에게 이야기한 태도만큼 숭고하고 섬세한 것은 없다. 그녀는 그처럼 젊은 나이에 지상에 남기고 온 친구들에게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대고 남편의 이름을 밝히면서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남편의 엄청난 학대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만 남편만이 자신의 죽음의 진상을 알고 있다고 했을 뿐이다.
자존심의 복수가 이처럼 영속되는 것은 남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피에몬테에서 우연히 이와 비슷한 사건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였다. 나는 밀수를 방지하기 위해 25명의 기병과 함께 세지아 강을 끼고 있는 숲으로 파견되었다. 밤이 되서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이 한적한 고장에 도착했는데, 나무 사이로 옛날 성의 페허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두운 얼굴을 한 그 고장의 귀족으로, 180센티미터 장신의 40대 남자였다. 그는 할 수 없이 방 두 개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나는 거기서 부하인 상사와 음악을 즐기곤 했다.
며칠 후에 우리는 이 남자가 한 여자를 이곳에 숨기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장난삼아 그 여자를 카뮈라고 불렀는데, 거기에 어떤 무서운 사실이 숨어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6주 후에 그녀는 죽었다. 나는 관속의 그녀를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신부를 매수했다. 밤중에 성수(聖水)를 뿌린다는 구실로 그는 나를 예배당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나는 죽은 후에도 숭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높은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고귀하고 우아한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얼마 후 이 불길한 고장을 떠났으나 5년 후에 우리 연대에서 한 분대가 이탈리아 왕의 대관식에 가는 황제를 수행해 갔을 때 자세한 내막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나이는 질투가 많은 백작으로 어느 날 아침 아내의 침대에 영국제 시계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도시의 어떤 젊은 남자의 것이었다. 그날 그는 곧 아내를 세지아 강변의 숲 속에 있는 고성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네로델라 피에트라와 마찬가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가 무어라고 애원하면 그는 자기가 언제나 갖고 다니는 회중시계를 쌀쌀한 태도로 말없이 그녀 앞에 내미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해서 3년 가까이 그녀와 단둘이서 살았다. 그녀는 절망한 나머지 꽃다운 시절에 죽고 말았다. 남편은 시계의 소유자를 단도로 찔러 죽이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제노바에 가서 배를 탔는데, 그 후 영영 소식이 끊겨 버렸다. 그의 재산은 분배되었다.
만일 자존심이 강한 여자 앞에서 타인의 모욕을 태연스럽게 받아넘기면(이것은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녀는 불쾌해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비겁한 자라고 생각하여 곧 모욕하게 된다. 이와 같이 교만한 성격을 가진 여자와 사이를 원만히 유지하려면, 자주 이웃 사람과 싸움을 해야 한다.
런던의 유명한 여배우 코넬 양은 어느 날 갑자기 돈 많은 어떤 대령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사이였다. 그때 마침 그녀는 친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애인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여 대령에게 말했다. “이분은 내가 팔려고 내놓은 말을 보러 왔어요.” 그러자 이 젊은 애인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나는 그것과는 다른 볼일로 이곳에 왔어요.”
그녀는 그 무렵에 이 청년에게 약간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으나 이 대답을 듣고 다시 열렬히 사랑하기 시작했다. 이런 여자는 자기가 스스로 애써 품위 있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애인의 자존심에 공명하여 자기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로잔 공작의 성격은, 만일 여자들이 첫 대면을 하는 날에 그 점잖지 못한 태도를 여자 쪽에서 용서할 수 있다면 이런 여자들에게는(아마도 다른 뛰어난 여자들에게도) 유혹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여자들은 모든 것을 간파하고 하찮은 일에 동요되지 않는 눈을 냉담하다고 생각한다. 생크루 궁정의 여자들은 나폴레옹을 냉정하고 산문적인 성격이라고 보았다. 위대한 인물은 매와 같은 것이다.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갈수록 보이지 않게 되고 그 위대성은 영혼의 고독이라는 벌을 받게 마련이다.
이 여성적인 자존심에서, 여자들이 말하는 소위 “거친 성격”이 비롯된다. 이것은 국왕들이 말하는 불경죄와 흡사한 것 같다. 이것은 자칫하면 저지르기 쉬운 죄이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무리 다정한 남자라도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거칠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 그리고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만일 그가 사랑의 최대의 매력, 즉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자기가 하는 말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행복을 맛보려고 해도 역시 같은 비난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바탕이 좋은 남자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이것을 믿으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자 친구들과의 정당하고 담백한 교제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상대가 혹시 잘못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기가 우리보다 성격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일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간주할지도 모른다는 일이다.
여자는 그 진정한 자존심을, 자기가 남자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얼마나 강한가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프랑수아 1세의 왕비를 모시는 젊은 시녀가 애인에게 바람맞았다고 놀림을 받았다. 그리고 남자는 그녀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남자는 병에 걸리고 벙어리가 되어 궁전에 나타났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도 이 여자가 여전히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자, 어느 날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말해 봐요.” 그러자, 그는 말을 했다.
제29장 여자의 용기에 대하여
그대 거만한 승원의 기사에게 말하노라. 그대가 치열한 싸움에서 보이는 고귀한 용기도 사랑과 의무 때문에 고난을 견디는 여성의 용기에는 미치지 못하노라.
-≪아이반호≫ 3권 220면-
어떤 역사책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남자는 모두 이성을 잃고 당황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뛰어남을 보이는 것은 이때이다.”
여자의 용기에는 그녀의 애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비군이 있다. 그녀는 애인에게 자존심을 자랑한다. 그리고 일단 위험을 당하면, 그때까지 보호하고 힘을 과시하면서 그녀의 자존심을 손상시켜 온 남자와 경쟁할 수 있다는 데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그러므로 그 기쁨의 에너지는, 그와 같은 순간에 남자의 약점이 되는 공포를 초월하게 한다. 남자도 이 경우에 그런 원군의 도움을 받으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게 된다. 공포는 위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의 용기에 대해 흠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가장 용감한 남자보다도 더 용감한 여자를 본 적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애인으로 갖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애인을 통해서 느끼므로 가장 두려운 개인적인 위험도 여자에게는 애인 앞에서 꺾는 장미로 보일 뿐이다.
나는 사랑을 하지 않는 여자들 중에서도 냉정하고 놀라운, 그리고 강한 정신의 용기를 보았다. 그녀들이 그처럼 용감한 것은 사랑의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정신의 용기에 대해 말하면, 자기의 사랑과 싸우는 여자의 의연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이다. 다른 어떤 용기도, 이처럼 강하게 자연에 거역하고, 이처럼 괴로운 행위를 참는 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마도 여자는 이런 힘을 수치심이 강요하는 저 희생의 습관에서 얻고 있을 것이다.
여자의 불행 중 하나는 이런 용기의 증거가 언제나 숨겨져 있어, 거의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불행한 일은, 그 용기가 언제나 그녀들의 행복에 역행하여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클레브 공의 아내는 남편에게 고백하지 않고 느무르 공에게 몸을 맡겨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여자는 주로 자기를 훌륭히 방어할 수 있다는 자존심에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남자가 그녀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인색하고 한심한 생각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열적인 남자에게 허영심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생각은 악마를 쫓는 심정으로 고행하며 자존심을 만족시키고 있는 수도승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클레브 공의 아내도 늙어서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존심의 만족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알 만한 나이까지 살았더라면 아마 후회했을 것이다. 자기도 라 파예트 부인처럼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말이다.
이 에세이를 100페이지쯤 다시 읽어 보니, 나는 참된 사랑에 관해서는 빈약한 관념밖에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영혼 전체를 차지하는 사랑, 때로는 가장 행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절망적이지만 언제나 고귀한 이미지로 영혼을 살찌게 하는 사랑, 모든 존재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는 그런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그 사랑을 잘 알고 있으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재능의 부족을 이처럼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다. 참된 사랑에 있어서의 몸가짐과 성격의 단순성, 진지성, 감정의 뉘앙스를 그처럼 정확하고 솔직하게 그려내는 눈초리, 특히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 등, 이런 것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잘 이해하도록 쓸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남자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예” 또는 “아니오”하는 말 한마디만 해도, 다른 남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리고 그 남자에게 있어서도 다른 때에는 찾아볼 수 없는 감동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아홉 시쯤, 말을 타고 아름다운 영국식 정원 앞을 지나갔다. 이 정원은 큰 나무들이 우거진 언덕에 있으며, 그 언덕은 볼로냐의 시내를 등지고 있어, 그 언덕 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롬바르디아 평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츠안피에리가의 정원은, 마침 내가 찾아가는 카사 레키오의 레노 폭포수로 통하는 길가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월계나무 숲에서 우연히 데르판테 백작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깊은 몽상에 잠겨 있었다. 전날 밤에 우리는 파티에서 두 시까지 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는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나는 폭포에 갔다가 레노강을 건너 세 시간 후에야 다시 츠안피에리 정원의 숲 아래를 지나갔는데,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전과 같은 자세로, 월계수 숲 위에 높이 솟은 소나무에 기대고 있었다. 독자는 이런 이야기를 단순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내게 와서 눈물이 글썽거리며, 자기가 이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때까지 교외에 나가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그는 두 시간 후에 나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읽어온 내 글이 그의 말에 비하면 얼마나 냉랭해 보일까!
그는 자기가 상대방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날 밤 우리는 기지 백작부인에게 찾아갔지만 대리석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다만 때때로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자존심이 억센 정열과 싸우는 마음의 갈등을 나타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처럼 흰 그녀의 목과 카노바(1757~ 1822, 이탈리아의 조각가 스탕달의 친구―역주)의 작품인 조각과 견줄 만한 아름다운 두 어깨도 붉으스름하게 상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여자다운 섬세한 마음씨로, 간파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관찰에서 그 검고 깊은 눈을 피하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 데르판테가 무어라고 말하자 그녀가 거기에 반대하면서도 갑자기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았다. 이 기품 있는 여자는 그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데르판테의 행복에 관한 나의 추측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허영심을 제어하면 그는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나보다 더욱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설사 내가 외관으로나 실제에 있어서도 매우 행복한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볼로냐, 1811년 8월 3일-
제30장 슬프고 이상한 광경
여자는 그 독특한 자존심에 의해 바보를 앞세워 재능 있는 사람에게 복수하고, 재물이나 힘을 자랑하는 산문적인 영혼으로써 고매한 마음에 복수하는 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에 매여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친척들은 그 자존심으로 인해 그녀를 가엾은 입장에 그대로 놓아둔다. 그러나 운명은 이 모든 불행보다 더 나은 위안으로서 정열적인 사랑을 받는 행복을 준비해 두지만, 여의치 않게 되면 그녀는 자기의 당면한 적의 최초의 희생자가 아니었다고 하는 그 부조리한 허세를 빌려온다. 그것이 그녀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행복을 말살해 버리고, 따라서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드러내 놓고 연애를 열 번씩이나 해 온(그것도 하나가 끝나고 나서 다음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것을 알고 있는 여자 친구들이 그녀에게 제법 진지하게 연애를 하면 세상에 얼굴을 내놓고 다닐 수 없다고 타이른다. 그런데 이 여자들도 언제나 저속한 생각을 갖고 있어, 그녀에게는 해마다 새로운 애인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 이처럼 한심한 광경이 어디 있겠는가. 즉 애정이 깊고 무척 섬세하며 순결한 천사와 같은 여자가 뻔뻔스러운 매춘부의 말대로 이끌려 자기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행복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저 여자는 검은 옷을 걸치고 있다.”고 외치는 어리석은 재판관 앞에 눈부신 흰 옷을 입고 출두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제31장 사르비아티의 일기초
저 소녀야말로 우리에게 시재(詩才)를 주었노라.
-프로페르티우스 2권 1-
볼로냐의 1818년 4월 29일.
사랑의 괴로움은 감당할 수 없다. 나는 사는 데 싫증이 났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날씨는 음산하고 비가 온다. 추위가 다시 닥쳐와, 오랜 겨울이 지난 후에 겨우 봄이 되려고 기지개를 펴던 자연을 어둡게 하고 있다.
퇴역대령 스키아세티가 찾아와서 두 시간쯤 있다가 갔다. 그는 이지적이고 냉정한 친구이다.
“그 여자를 단념하는게 좋겠네.”
“어떻게 하면 단념할 수 있겠나. 나에게 전쟁에 대한 정열을 되돌려 주게나.”
“자네가 그 여자를 알게 된 것은 불행이었네.”
나는 거의 찬성할 뻔했다. 그만큼 나는 맥이 빠져 용기를 잃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울적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둘이서,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녀의 여자 친구들은 그녀에게 내 욕을 할까 하고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결국 “사랑과 청춘에 버림을 받은 여자는 마음이 뒤틀린다.”는 나폴리의 속담밖에 찾아낼 수 없었다. 아무튼 그 잔인한 여자가 나에게 몹시 격분하고 있다(이것은 그 여자의 남자 친구가 하는 말이지만)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한번 따끔하게 혼내 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증오심을 막을 도리가 없다.
스키아세티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비오는 거리를 이리저리 헤맸다. 나의 거실, 그녀와 처음 만나고 그 후 밤마다 만나던 때부터 줄곧 살고 있던 이 방은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가구 어느 그림을 보더라도 지금은 영원히 잃어버린 행복을 후회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찬비가 내리는 거리를 헤맸다. 우연히―만일 그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면―나는 그녀의 집 창 밑을 지나갔다. 나는 그 창으로부터 눈물이 글썽한 눈을 떼지 않고 걸어갔다. 방에서는 갑자기 광장을 내려다보려고 했는지 커튼이 살짝 열렸다 곧 닫혔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지탱할 수 없어 이웃집 처마 밑에 숨어 버렸다.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다. 커튼이 움직인 것은 우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연 것이 그녀의 손이었더라면―
세상에는 두 가지 불행이 있다. 거절된 사랑의 불행과 죽음의 공허에 대한 불행이 그것이다.
사랑을 하고 있으면 나는 두어 발짝 앞에 무한한 행복, 나의 모든 소원을 능가하는 행복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만 한마디 말과 한 번의 미소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스키아세티와 같은 정열도 없이 슬픈 나날이 연속될 뿐 어디서도 행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사랑이 전에 내게 있었던가 하고 의심할 지경이다. 나는 우울에 빠진다. 강한 정열 같은 것은 갖지 않고, 다만 약간의 호기심과 허영심만 있으면 좋을 텐테……
지금은 낮 두 시다. 그 집 창문의 커튼이 약간 움직인 것을 본 것은 어제 저녁 여섯 시였다. 나는 이집 저집을 찾아다니다가 극장에 갔다. 그러나 어디에 가나 말없이 생각에 잠기고 다음 문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처럼 화를 낸 후에―화를 낼 만한 이유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까닭을 알면 용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한 순간이라도 나를 사랑했을까?”
이런 것을 페트라르카 시집의 여백에 써 놓은 사르비아티는 그 후에 얼마 안 가서 죽고 말았다. 그는 스키아세티에게도 친구요, 또 나의 친구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에세이의 침울한 부분은 모두 그 친구 때문이다. 그는 무분별의 화신과 같은 사나이였다.
그에게 온갖 광기를 저지르게 한 여자는 분명히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스키아세티는 말하였다.
“그러나 이 불행한 사랑이 사르비아티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네. 그렇지만 금전상의 타격을 보았어. 젊었을 때 지나치게 화려하게 살다가 몹시 가난해졌으므로 사랑이라도 하지 않으면 울분을 쏟을 곳이 없었을 거야. 그는 덕분에 두 주일 동안 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베길 수 있었어.
이건 그런 성격을 가진 남자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는 이번 사랑으로 진정한 논리학의 공부를 했던 걸세. 이것은 궁정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그럼 남자로서는 특이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의 대단한 용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네. 예컨대 그를 무허 속에 빠뜨린 ……의 날(1814년 4월 11일, 나폴레옹이 퇴위한 날―역주)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보내지 않았는가. 러시아에 원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별로 달라진 것을 느끼지 않는 데 자기 자신도 놀라고 있었네. 사실 그는 어떤 큰일이든지 이틀씩 계속해 생각할 정도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최근 2년 동안은 그런 일에 끄떡 않던 사나이가 항상 용기를 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네. 그는 그때까지는 위험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네.”
경솔하고 무엇이나 선의로 해석해 주리라고 믿은 결과, 그가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한 달에 두 번 밖에 오지 말라는 선언을 받은 후에 우리는 그가 그녀를 만나는 날 밤에는 기쁨에 도취되어 밤늦게까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전에 그가 언제나 이 여자를 찬미하던 그 고결하고 순진한 태도로 그녀가 자기를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 부인과 자기는 이 세상에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영혼을 갖고 있으므로, 눈짓 한 번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를 죄인처럼 취급하려는 속인들의 쓸데없는 평판에 그녀가 조금이라고 귀를 기울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적에게 에워싸인 한 여성에 대한 이 아름다운 신뢰로 말미암아, 그는 그녀로부터 출입금지의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 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격언을 잊어버리는 것 같군. 즉 영혼의 위대성은, 그것이 극단으로 고양되었을 경우에만 신용해야 한다는 말일세.”
그는 대답했다.
“그 여자의 마음에 내 마음 만큼 꼭 어울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나의 이 정열적인 태도는 폴리니의 바위들이 지평선에 그리는 선이 노한 레오노르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니까.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실패만 가져왔네. 차분히 계획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인상에 따라 경솔한 짓을 했으니까.”
그의 광기의 뉘앙스는 이런 것이었다.
사르비아티에게는 생활이 두 주일의 주기로 나누어져, 각각 그전에 허용된 방문에 의해 생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녀로부터 그다지 냉대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의 행복도, 냉대를 받았을 때의 불행보다 그 강도에 있어서는 훨씬 미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부인은 그에 대해 솔직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그에게 반박하고 싶었으나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고뇌에는 대단히 내면적인 데가 있어, 그는 질투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런데 이것은 별개의 문제로 치고, 그는 레오노르의 무정한 냉대 속에 솔직하고 고귀한 영혼에 대한 산문적이며, 책략적인 영혼의 승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당시에 미덕이나 특히 명성에 대해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정열의 결과인 어두운 생각밖에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긴 철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이것은 다소 흥미로운 것이었다. 나는 이런 기묘한 영혼을 관찰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 흔히 정열적인 사랑은 독일식으로 다소 머리가 둔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살비티아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결단력이 있고, 또 재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레오노르의 푸대접을 받고 돌아와서도 그녀의 무정함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마음이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를 푸대접하는 여자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보지 않았으면, 사랑이 이처럼 허영심을 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언제나 사랑을 찬미했다.
“만일 어떤 마법의 힘이 나에게 ‘이 시계의 유리를 깨뜨려라. 그러면 레오노르는 너에게 3년 전과 같은 보통 친구로 돌아갈 것이다’ 하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깰 용기가 없었을 걸세.”
나는 이렇게 말하는 그가 미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으므로, 앞에서 말한 반박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중세기 말에 있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고, 그것을 합리적인 근거 위에 다시 세운 것처럼 고매한 성격은 사랑에 의해 새로워지고 단련되는 걸세. 이때 비로소 인간은 인생의 모든 치기에서 벗어날 수 있네. 이 혁명이 없다면 언제까지나 장엄함과 연극적 분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네. 나는 사랑을 하고 나서 비로소 위대한 성격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네. 그만큼 우리들의 사관학교의 교육은 어리석은 것이었어.
나폴레옹의 궁정이나 모스크바에서 내 딴에는 잘한 것 같지만, 나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네. 물론 의무를 다하기는 했네. 그러나 나는 완전한 자기 희생과 성실의 결과인 저 영웅적인 단순성을 알지 못했네. 예컨대 티투스 리비우스(B.C. 59~A.D. 17, 로마의 역사가―역주)가 묘사한 로마인의 단순성을 이해하게 된 것은 불과 1년 전 일이었네. 그 전에는 그들이 무훈이 혁혁한 우리의 연대장에 비해 쌀쌀하다고 생각했네. 그들이 조국 로마를 위해 한 것을, 내가 레오노르에 바친 마음속에서 발견 할 수 있네.
만일 내가 그녀에게 무엇이고 해줄 수 있다는 행복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의 첫째 소원은 그것을 감추는 일이었을 걸세. 레굴루스나 데시우스(두 사람 다 조국 로마를 위해 죽은 위인―역주)와 같은 사람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그것은 그들에게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네. 나는 사랑을 하기까지는 보잘것없는 인간이었어. 그래서 나는 자기를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싶었지, 나는 그것에 일종의 힘을 느끼고 혼자서 좋아했던 걸세.
그리고 우리는 보통 애정의 경우도 사랑에서 힘을 얻고 있지 않을까? 청춘의 변덕이 지나면 마음은 공감에 대해 문을 닫아버리네, 소년시절의 친구들은 죽었거나 뿔뿔이 흩어져서, 자를 손에 들고 언제나 이해와 허영심을 재고 있는 멋 없는 자들과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네. 그래서 영혼의 정답고 고귀한 면을 돌보지 않고 방치해 버렸기 때문에 점점 황무지가 되어, 30세도 못 되어 모든 감미롭고 부드러운 감정이 마비되어 버리네.
사랑은 이 불모의 사막에서 아주 젊었을 때보다 훨씬 풍부하고 신선한 감정의 샘을 솟아나게 하네. 젊었을 때의 희망은 막연하고 열광적이며 언제나 허황된 것이었네. 어떤 보람된 일에 헌신하지도 않고, 계속적인 강한 욕구도 없었네. 다만 변덕스럽고 새로운 것만 찾아, 어제 찬미한 것을 오늘은 거들떠보지도 않네.
그러나 사랑의 결정 작용만큼 명상적이고 신비적이며, 영원히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은 없네. 청춘시절에는 재미있는 것만이 마음을 즐겁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네. 그런데 그 즐거움도 순간적인 것이었어.
그러나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와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것은 물론, 관계가 없는 것까지도 마음을 감동시키는 걸세. 나는 레오노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160킬로미터나 떨어진 큰 도시에 도착했을 때 몹시 두렵기 짝이 없었네. 길모퉁이를 돌아갈 적마다 나는 …… 부인의 친구로 아직 알지도 못하는 알비차 부인과 마주치지 않을까 해서 괜히 마음이 떨렸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비스럽고 신성한 빛을 띠고 있었네. 하다못해 어떤 노학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심장이 몹시 두근거렸네. 그리고 레오노르의 여자 친구의 집 근처에 있는 성문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네.”
사랑하는 여자의 냉정한 태도에는 커다란 매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여자들 옆에서 느끼는 가장 감미로운 순간에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코레조(1494~1534, 이탈리아의 화가―역주) 그림의 음영은 다른 화가들처럼 불쾌한 변이부로 되지 않고 밝은 부분을 환히 돋보이게 하며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데, 이미 그 자체가 감미로운 몽상에 잠기게 하는 매력적인 우아함을 갖고 있다.
“그렇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반쪽 …… 정열적으로 사랑한 일이 없는 남자에게는 숨겨져 있네.”
사르비아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현명한 스키아세티와 대화하기 위해 그 변증법의 모든 힘을 빌어야 했다.
“행복하고 싶으면 고생이 없는 생활, 날마다 맛보는 조그마한 행복으로 만족하게. 커다란 정열이라는 행운의 티켓은 단념하게.”
“그럼 자네의 호기심을 나한테 주게.”
하고 사르비아티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동안 우리의 현명한 대령의 의견에 따르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싸움에 다소 성공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사나이는 얼마나 강했던가!
거리에서 멀찌감치 잠시 …… 부인의 모자와 비슷한 흰 공단 모자를 보기만 해도 그의 삼장은 고통을 멈추어, 벽에 기대어 몸을 의지해야만 했다. 아무리 슬플 때에도 그녀와 만날 수 있다는 행복은 언제나 그에게 모든 불행이나 이론을 추월한 몇 시간의 도취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무한한 정열을 2년 동안 소모하고 죽었을 때에는 분명히 많은 고귀한 습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적어도 이 점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어 조금이라도 상황이 호전되었더라면, 그도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긴 그의 진가는 그 단순성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련하고 불행한 자여,
얼마나 달콤한 생각과 간절한 소망을 지니고 죽음에 임했던가.
금발 머리에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다만 한 줄기 고상한 상흔이 눈썹 위에 있었지만.
-단테-
오직 잠깐 그녀를 보는
그 기쁨을 무엇으로 바꿀 것인가.
-≪로미오와 줄리엣≫-
제32장 친밀에 대하여
사랑이 주는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처음으로 잡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색정의 행복은 훨씬 현실적이며 흔히 농담의 재료가 되기 쉽다. 정열적인 사랑에 있어서 육체적인 관계는 그것에 이르기 위한 최후의 한 발자국만큼 완전한 행복은 못된다.
그러나 행복이 그 기억을 남기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것을 묘사할 수 있겠는가.
모티머는 오랜 여행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집에 돌아왔다. 그는 제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그녀는 답장을 주지 않았다. 그는 런던에 도착하자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말을 타고 그녀가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갔다. 그녀는 뜰 안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당황했으나 손을 내밀어 그를 맞았다. 그는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함께 뜰 안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동안에 제니의 옷이 아카시아의 가시에 걸렸다. 그 후로 모티머는 행복했으나 제니는 그에게 충실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제니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자기가 대륙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자기에게 보여준 태도를 증거로 들었으나, 상세한 말은 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아카시아의 숲을 보면 온몸이 몹시 떨려 왔다. 이것의 그의 생애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서 남은 유일한 기억이었다.
전에 기병이었던 어떤 과감하고 솔직한 사나이가 오늘밤(가르다 호수의 파도에 흔들이는 배 위에서) 자기의 여러 가지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을 지금 여기서 발표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여하튼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는 순간은 아름다운 5월의 하루와 같은 것으로, 아름다운 꽃에 대해 말하기엔 미묘한 시기라고. 그것은 자칫하면 가장 아름다운 희망까지도 금세 시들게 하고 운명이 안겨주는 사랑도 꺼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러움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부족하다. 이것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는 베르테르(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 주인공―역주) 식에 정절에 대해서는 뜻하지 않은 다행한 일이지만, 이것이 또한 최상의 술책이기도 하다. 정말로 감동받은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매력 있는 말을 하게 마련이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떠버리곤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허세를 부리는 남자는 불행하다. 그런 남자는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있을 때에도 온갖 재치를 다 부린다 하더라도 그 행복의 3/4을 잃어버린다. 한 순간이라도 허세에 사로잡히면 일 분 후에는 싱겁게 여겨진다.
사랑의 기술이란 그때그때의 도취의 정도에 따라 자기 기분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다. 즉 자기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이것이 용이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는 여자에게서 어떤 반가운 말을 들으면 벌써 이야기할 힘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말이 인도해 주었을 행동을 하지 못한다. 타이밍을 놓친 달콤한 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잠자코 있는 편이 낫다. 10초 전까지만 해도 적절했던 말이 지금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내가 이 규칙을 어기고 3분 전에 재미있던 말을 할 때마다 레오노르는 반드시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중얼거린다.
“그녀가 옳아. 그런 일이 섬세한 여자에게는 제일 귀에 거슬리는 거야. 이게 바로 감정의 모독이야.”
그녀들은 오히려 평범한 연설가처럼 어느 정도 약한 것이나 냉담한 것은 너그럽게 보아 준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애인의 가식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그러므로 보잘 것 없는 사소한 불성실도―그것이 아무리 순진한 것이라도―곧 그녀들로부터 행복을 빼앗고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정숙한 여자는 열렬하거나 당돌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그러나 이것은 정열의 특징이다). 열렬함은 여자의 수치심에 경고를 줄 뿐만 아니라 그녀로 하여금 방어태세를 취하게 한다.
여자가 질투나 불쾌를 느껴 냉담해지는 경우에는 사랑에 유리한 도취를 가져오는 화제를 꺼내는 것이 좋다. 처음에 두 세 마디 전제하는 말을 한 다음에 영혼이 하는 소리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커다란 기쁨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빠지는 실수는 어떤 잔꾀로 감동적인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사교계의 가식으로부터 해방시켜 그때그때에 느낀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친밀성과 자연스러움을 견지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용기만 있다면 곧 일종의 화해라고 할 수 있는 보답을 받을 것이다.
사랑의 정열이 이처럼 다른 정열보다 뛰어나 있는 것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주는 즐거움이, 무의식적으로 보답을 받는 데 있다. 완전한 자연스러움이 있으면 두 사람의 행복은 곧 하나로 융합된다. 공감이나 그 밖의 본성의 여러 가지 법칙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이 세상 최대의 행복이다.
사랑의 행복에 불가결한 조건인 이 자연스러움이라는 의미를 밝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인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조금이라도 자기를 미화하여 원래의 진실하고 순수한 모습을 바꾸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를 미화하면 주의력이 거기에 쏠려서 여자의 눈에 나타나는 감정에 대해 피아노의 건반처럼 소박하게 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곧 쌀쌀함을 느낌으로 그녀 쪽에서도 교태에서 구원을 찾게 된다. 남자가 별로 재치 없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숨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런 여자 앞에서는 남자가 가면을 써도 벌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 가면을 쓰는 편이 편리하므로 그것이 습관이 되어 나중에는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랑은 벌써 사랑이 아니라 거래와 마찬가지이다. 그 유일한 차이는 돈 대신에 쾌락이나 허영심 또는 그 두 가지 혼합물을 얻는다는 데 불과하다. 이쪽에서 가면을 써도 발각될 우려가 없는 여자에 대해서는 일종의 경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치가 뛰어난 여자를 만나면 둔한 여자는 곧 버리게 된다. 물론 이 경우에 습관이나 맹세 따위에 질질 끌려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자연에 맡겨두면 언제나 최대의 쾌락을 향해 가려는 마음의 경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움이라는 말은 습관과는 다른 것이다. 이 두 개의 말을 같은 의미로 취하면 분명히 감수성이 풍부할수록 자연스럽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습관은 인간의 생활방식이나 행위에 대해 자연스러움보다 그 영향력이 약한데 이는 인간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냉정한 인간의 생활은 어느 페이지나 똑같다. 어제도 오늘도 당신이 악수하는 손은 같은 나무로 만든 싸늘한 손인 것이다.
민감한 남자는 한 번 마음이 감동되면, 이미 행동 지침으로서의 습관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이미 아무 감동도 일으키지 않는 길을 더듬어갈 수 있겠는가.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 하나하나에 무게를 느끼게 된다. 한마디의 말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니 어떻게 그가 말을 조심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어떻게 그가 이건 잘 얘기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되면 순수성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원해서는 안 된다. 순수성은 반성 같은 것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특질이다. 인간의 존재는 그 천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사랑은 그 본질을 느낄 수는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섬세한 마음이 사랑에서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움의 최후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본다.
정열에 사로잡힌 남자는, 폭풍 속에서의 유일한 지주로서, 끝까지 진실을 굽히지 않고 정확하게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한다. 이야기에 열이 올라 끊기기 쉬우면 때로는 자연스러움을 되찾는 순간을 기대해도 좋으나, 그렇지 않으면 뜨거운 광적인 사랑이 좀 식지 않고서는 자연스럽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옆에 있으면, 동작도 자연스러움을 잃고 만다. 동작의 습관은 근육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레오노르의 팔에 몸을 의지하면서 언제나 금세 쓰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만 똑바로 걸을 생각만 했다.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자연스러움을 잃는 것이 가장 불리하며, 곧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벌써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당신의 솔직함에서는 솔직함으로 대한다는 무의식적인 충동을 잃게 된다. 이것은 여자를 감동시키는 모든 수단(유혹하는 수단이라고 해도 좋다)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을 할 소질이 있는 여자가, “얽히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는 칡덩굴의 아름다운 격언에서 자기의 운명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법칙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첫걸음이다. 영리한 여자는 자기 몸을 더는 방어할 수 없게 된 때가 아니면 애인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성실성에 대한 가벼운 의심은 그녀에게 힘을 주어, 적어도 그녀의 굴복을 하루는 연기시켜 줄 것이다.
앞에서 한 말이 우습게 들리면, 그것을 취미의 사랑에 적용시켜 보면 될 것이다.
제33장
언제나 해소시켜야 하는 사소한 의혹이 있으면, 이것이 갈망을 일으켜 행복한 사랑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의혹이 사라지지 않으므로 그 쾌락은 결코 권태롭지 않다. 이 행복의 특징은 매우 진지하다는 것이다.
제34장 사랑의 고백
당신의 친구에게 정열적인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복을 받는 실례는 없다. 만일 당신이 하는 말이 사실 그대로라면, 그는 당신의 쾌락이 자기의 그것보다 천 갑절이나 되며 당신이 그의 쾌락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자끼리라면 이것은 더욱 거북해진다. 여자에게 소중한 것은 남자에게 정열을 일으키는 것이며, 또 대개의 경우에 고백을 들은 여자 쪽에서도 그 상대방 남자에게 자기의 매력을 과시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열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두려운 의혹에 대해 냉정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처럼 요긴한 것은 없다. 이 무서운 정열로 이루어진 상상은 언제나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성격의 큰 결점은”
하고 사르비아티는 1817년에 쓰고 있다.
“정열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때, 심리적으로 증명되었다. 어떤 것을 확고한 사실로의 근거로 보고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으로, 이 점은 나폴레옹의 성격과 정반대이다. 그리고 매우 불행한 일은 본의는 아니지만 그것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것이다.”
가령 야심을 품었을 때 용기를 갖기는 쉬운 일이다. 손에 넣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결정 작용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데 사용되지만, 사랑에 있어서의 결정 작용은 우리가 용기를 내야 하는 대상에 굴종하고 있다.
여자에게는 배반하는 친구가 생길지 모르며, 권태를 느끼게 하는 친구가 생길지 모른다.
어떤 35세의 귀부인은 생활이 권태로워 무슨 할 일이 없을까, 무슨 재미있는 장난이라도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인이 소극적이라 불만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새로 얻을 가망도 없으므로, 몸을 불태우는 정력을 처리하기 어려워, 다만 그 따분함을 폭발시키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았다. 이런 여자는 어떤 진정한 정열, 즉 자기의 애인이 옆에 누워 있는데도, 불손하게도 다른 남자가 그녀 이외의 여자에게 호감을 갖는 것을 훼방하는 것을 하나의 일거리(즉 즐거움)로 삼으려고 한다.
이것은 증오가 행복을 낳는 유일한 경우이다. 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인가 한다는 즐거움이 있다. 이어서 그 계획이 사교계에 알려지면, 이를 성공시키려는 자극이 이 일에 매력을 준다. 여자 친구들에 대한 질투가 끝나면 그 애인에 대한 증오라는 형태를 취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남자를 그렇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이런 여자는 자기가 상대방을 부러워하고 있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려면 우선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여자 친구를 조소하며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쓸개 빠진 친구들도 있다.
고백을 들은 음흉한 여자는 최악의 간계를 꾸미면서, 자기는 다만 소중한 친구들의 우정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권태로운 여자는 사랑과 그 심한 불안에 사로잡힌 친구들의 마음속에서는 우정도 시들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할 때 우정은 속을 털어놓는 이야기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그런데 이런 고백만큼 선망을 느끼는 상대방에게 불쾌하게 들리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여자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고백은 다음과 같이 직접적인 추론에 의할 경우이다.
“우리들의 폭군인 남성이 유행시킨 편견 때문에, 이런 어리석은 전쟁을 악착같이 해야 하지 뭐에요. 오늘은 나를 도와줘요. 내일은 내가 도움을 줄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예외 말고도,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사귀고 나서 그 후 질투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진정한 우정도 있다.
정열적인 사랑의 고백이 환영을 받는 것은 사랑을 그리워하는 학생들 사이거나, 호기심에 불타 애정의 발산처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젊은 처녀들 사이에서이다. 이런 처녀들은 사랑이야말로 생애의 중대사이며, 그것은 아무리 빨리 알아도 무방하다고 속삭이는 본능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세 살 난 계집애가 제대로 애교를 떠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취미의 연애는 고백에 의해 불타고, 정열적인 사랑은 고백에 의해 식어진다.
고백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가장 어려운 일이다. 정열적인 사랑에 있어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왜냐하면 말은 그 뉘앙스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조잡하므로) 그것은 매우 미묘한 일이므로, 관찰할 때 착각을 하기 쉽다. 흥분한 관찰자는 똑바로 보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가 우연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현명한 것은, 자기 자신을 고백의 상대로 삼는 것이다. 애인과 나눈 이야기와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어려운 일의 특징을 이름을 바꾸어 오늘밤 안으로 상세히 적어 보라. 만일 당신이 정열적인 사랑을 품고 있다면, 일주일 후에 당신은 이미 딴 사람이 되어 있을 터이므로, 그때 이 진단서를 읽으면 좋은 충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선망이 생길 듯하면, 육체적인 연애밖에는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남자들만 모여 식사할 때의 끝을 보라. 그들은 바퍼의 소네트를 낭독하면서 즐거워한다. 각자 옆의 사나이가 칭찬하거나 감격하는 것을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예의상 유쾌한 체하는 경우가 많다. 페트라르카의 매력 있는 사랑의 노래나 프랑스의 연가는 격에 맞지 않을 것이다.
제35장 질투에 대하여
사랑을 하고 있으면, 국회에서 토론을 듣고 있을 때에도, 포화를 뚫고 말을 몰아 전초중대의 교대로 갈 때에도, 무엇인가 자기의 눈이나 기억을 자극시키는 새로운 사물에 부딪히게 되면 반드시 애인에 대해 품고 있던 관념에 새로운 미점을 첨가하거나, 혹은 애인으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수단(그것은 처음에 굉장한 것으로 보인다)을 찾아내는 법이다.
그때 상상력의 하나하나가 순간적인 황홀감을 안겨준다. 이런 생활을 쉽사리 버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질투가 생길 때에도 같은 영혼의 습관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대이다.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데, 상대편에서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왕관에 당신이 부여하는 미점은, 당신에게 천상의 기쁨을 주기는커녕 당신의 심장에 단도를 꽂는 것이 된다. 하나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외친다.
“이렇게 달콤한 쾌락, 그것을 즐기는 것은 너의 연적이다.”
그리고 당신을 자극하는 사물도 앞에서 말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 전과 같이 사랑을 받는 새로운 수단을 당신에게 제시하는 대신에, 연적의 새로운 이점을 보일 뿐이다.
공원에서 말을 타고 있는 미인을 보았다고 하자. 그리고 당신의 연적은 50분 동안에 16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준마를 갖고 있었다고 하자. 이 경우에 곧 분노가 치밀어 사랑에 있어서 ‘소유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고 향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연적의 행복을 과장하고, 그 행복이 자기에게 주는 모욕을 과장하여 최대의 고뇌, 즉 최대의 불행에 빠진다. 한 가닥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불행에.
이 경우에 유일한 치료법은 연적의 행복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이다. 당신은 멀리서 그 여자가 쓴 것과 비슷한 모자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당신의 연적은 그녀의 살롱에서 낮잠을 자는 수도 있을 것이다.
잠든 그를 깨우고 싶으면, 당신의 질투를 보여 주면 된다. 그렇게 되면 당신보다 그 남자를 택한 여자의 가치를 일부러 알려주는 것이 되어, 그도 당신 덕분에 그 여자가 좋아져서 당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연적에 대해서는 중용이란 있을 수 없다. 되도록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농담이라도 건네거나, 그렇지 않으면 협박을 해야 할 것이다.
질투처럼 괴로운 것은 없으므로, 생명을 거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위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몽상도 그처럼 비극적인 것이 되지 않고(앞에서 말한 메커니즘에 의해) 유쾌한 일로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연적을 죽이는 공상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적에게 절대로 힘이 되어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서, 연적에게는 당신의 사랑을 숨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허영심이나 그 밖의 어떤 구실을 찾아내어, 되도록 예의바르고 침착하게 슬쩍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보게, 어째서 모두들 그런 하찮은 여자에 대해 떠들어대는지 도무지 나로서는 알 수 없군 그래. 게다가 내가 그 여자에게 반했다지 뭔가. 자네가 그 여자를 좋아한다면 기꺼이 양보하고 싶네. 다만 그렇게 되면 내가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그게 한 가지 마음에 걸릴 뿐이야. 반년쯤 지나서 자네가 차지해 주게.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이런 일에도 세상 사람들은 명예를 운운하거든. 만일 자네 순번이 돌아오기까지 잠자코 참을 수 없으면, 유감스럽지만 우리 둘 중에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할 걸세.”
당신의 연적은 어차피 정열적이 아닐 테고, 아마도 매우 신중한 사나일 터이므로 당신의 결심을 이해하면 그럴 듯한 구실을 찾아내기가 바쁘게 문제의 여자를 당신에게 양보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언은 통쾌하게 하고, 모든 담판은 은밀히 추진해야 한다.
질투의 고통이 이처럼 심한 것은 허영심이 그 고통을 참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금 말한 방법에 의하면 당신의 허영심은 일종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자기를 다만 호인에 불과하다고 경멸하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용감하다고 자부해도 좋다.
만일 사태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 곧 6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가서 지나가는 길에 당신의 눈에 띄는 댄서를 애인으로 삼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신의 연적이 속된 남자라면 그는 당신의 상처가 아물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좋은 방법은, 연적이 스스로 실수를 저질러 여자 쪽에서 그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기를 태연히 기다리는 일이다. 소녀 시절부터 서서히 자란 위대한 정열이 아닌 한, 재치 있는 여자는 속된 남자를 언제까지나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육체관계를 맺은 여자에 대해 질투를 느낄 경우에는, 더욱 겉으로는 무관심한 체하고 속으로 은밀히 곯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개의 여자들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남자가 질투를 하여 화를 내면 그가 질투의 대상으로 삼은 남자와 가까워져서 장난이 때로는 진짜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서 질투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였다. 왜냐하면 질투를 일으키는 사람은 이성을 잃기 쉬워 미리 충고를 해두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중한 것은 태연함을 가장하는 것이므로, 철학적인 저술의 논조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연적이 당신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당신이 정열에 의해서만 가치를 갖는 것을 당신으로부터 빼앗거나 또는 그 빼앗은 것에 대하여 어떤 희망을 품게 하는 일에 의해서이므로, 만일 당신이 그런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면, 상대는 곧 무기를 잃게 된다.
당분간 별로 할 일이 없고 어떤 위안을 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오델로≫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가장 확실해 보이는 것조차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읽으면 기뻐할 것이다.
공기처럼 가벼운 일도
질투하는 자에게는 성경의 말씀만큼이나 훌륭한 증거가 된다.
-≪오델로≫ 제3막-
나는 아름다운 바다의 경치가 위로를 주는 것을 경험하였다.
조용히 빛나면서 솟아오른 아침 해는, 성에서 육지가 내려다보이는 웅장한 산들의 풍경을 드러내 보였다. 한편 수천의 은파를 일으키고 있는 아름다운 바다는, 멀리 수평선 끝까지 그 두려운, 그러나 상냥한 위엄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조용하고 숭고한 경치를 바라보면 고뇌에 가득 찬 인간의 마음도 그것과 일치되어, 그 커다란 영향은 명예와 덕행을 불러일으키고야 만다.
-≪람메르무어의 신부≫ 제1권-
사르비아티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1818년 7월 20일.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때때로 마치 야심가나 애국적인 시민이 전쟁 때에 병참창고의 수비라던가 그 밖의 아무런 위험이 없는 부서에 임명되었을 때 경험하는 것 같은 감정을 나의 생애에서 느끼는 일이 있다. 나는 40세가 되면 사랑을 해야 할 나이에 별로 정열도 소모하지 않고 지낸 것을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인생을 허송세월한 것을 뒤늦게 깨닫고 굴욕적인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어제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세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에 연적 한 사람도 끼어 있었으나, 그녀는 그를 환대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이해시키고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길이 때때로 그에게 머무는 것을 보고 무척 괴로웠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돌아올 때 극도의 불행에서 한 가닥의 희망이 섞인 심한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일, 얼마나 생생한 사상, 그리고 또 얼마나 민속한 추리가 있었던가. 나는 연적의 외면상의 행복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이 그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꼈던가.
나는 생각했다. 나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감수할 조그마한 희생에도, 그의 뺨은 천한 공포로 인해 창백해질 것이라고. 예를 들면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 “곧 죽는다”고 쓴 두 장의 제비가 들어있는 모자에 손을 집어넣는 일― 이러한 감정은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므로, 나는 태연스럽게 상냥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2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나이가 있었다면 나는 얼마나 조소했을까.
1806년에 배를 타고 미주리 강을 거슬러 올라간 루이스, 클라크 두 선장의 여행기 215페이지를 읽었다.
리카라족은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의젓하다. 우리는 그들의 세 부락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이 고장의 여자들은 우리가 본 다른 부족의 여자들보다 한결 아름답다. 그러므로 애인들에게 그다지 권태감을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장소에 따라 물건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면 세계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면 된다는 새로운 진리의 예증을 발견했다. 리카라족 사이에서는 남편이나 형제의 동의가 없이 여자가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면 그것은 큰 죄가 된다. 그런데 형제나 남편은 친구에게 이런 대접을 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기꺼이 선심을 쓴다.
우리 일행 중에는 흑인이 한 사람 있었다. 그들은 이런 빛깔의 피부를 가진 사람은 처음 보았으므로, 그는 그들 사이에서 대단한 흥미를 일으켰다. 그는 곧 여자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그녀들의 남편은 그를 질투하기는커녕 그가 집에 오는 것을 매우 기뻐하였다. 우스웠던 것은 좁은 오두막집의 안이 밖에서 모두 보인다는 것이다.”
제36장 질투에 대하여(계속)
여자의 마음이 변한 듯이 보일 경우.
그녀는 당신 곁을 떠난다. 왜냐하면 당신이 결정 작용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습관에 의해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를 보존하고 있다.
그녀가 당신 곁을 떠나는 것은 당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의혹을 지워버린 것이다. 즉 행복한 사랑에 따르게 마련인 약간의 의혹도 생겨날 여지가 없다. 여자에게는 다소의 불안감을 주는 것이 좋다. 결코 쓸데없는 변명 같은 것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여자와 오래 사귀는 동안에, 당신은 그녀가 거리나 사교계의 어떤 여자를 질투하고 두려워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여자를 가까이 하라. 그러나 공공연하게 하지 말고 몰래 하라. 다만 열성적으로 해야 한다. 그녀의 증오의 눈이 이윽고 모든 것을 찾아내고 들춰낼 것이다. 몇 달 동안 어차피 당신은 어떤 여자에게도 깊은 증오밖에 느끼지 않을 것이므로, 오히려 이것은 하기 쉬운 일인지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열을 나타내면 만사를 그르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여자와 너무 자주 만나지 말고 좋은 친구들과 샴페인이라도 마시고 있으라.
애인의 사랑을 판단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사랑의 토대, 즉 처음에 두 사람을 맺어준 동기에 육체적인 쾌락이 섞여 있을수록 그 사랑은 변하기 쉽고 특히 배반할 우려가 있다. 이것은 특히 16세경에, 결정 작용이 청춘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사랑의 경우에 그러하다.
2.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거의 결코 같지 않다.** 정열적인 사랑에는 스스로 변천이 있어, 교대로 두 사람 중의 하나가 더욱 깊이 사랑하게 마련이다. 때때로 한쪽은 단지 불장난이나 허영에서 사랑하고 있는데 다른 쪽은 정열적인 사랑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 흔히 열중하게 되는 것은 여자 쪽이다. 그리고 애인의 한쪽이 품고 있는 사랑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질투를 일으키면 곧 다른 쪽의 애인이 허영으로 말미암아 애정의 깊은 영혼의 욕구를 가장하는 것이다.
요컨대 한쪽에서 취미로 사랑을 할 경우에 상대방이 정열적인 사랑을 하는 것처럼 싱거운 것은 없다.
재지 있는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하면서, 오직 그녀의 생각을 사랑으로 쏠리게 하여 황홀한 심정을 갖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수가 있다. 여자는 자기에게 이런 기쁨을 주는 이 재지 있는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는 희망을 품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여자는 그가 주는 기분을 자기에게 느끼게 하는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 여자가 그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경우에 질투를 하는 남자보다 질투를 받는 남자가 더욱 매력이 있다면, 그 질투는 그녀의 마음에 커다란 증오감을 일으키게 한다. 클랑즈 부인의 말대로 여자는 다른 여자들로부터 질투를 받을 만한 남자가 아니라면 질투를 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가 질투하는 남자를 사랑할 경우에, 그 남자의 질투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그 질투는 매우 다루기 어려우며 여자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수가 있다. 거만한 여자에게는 남자의 질투가 자기 실력을 확인하는 방법으로서 환영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질투는 남자의 사랑을 입증하는 방법으로서 달갑게 여겨지는 수도 있으며, 매우 미묘한 여자의 수치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또한 질투는 남자의 용감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환영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사랑을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의 용감성이며, 결코 냉정한 마음과 공존할 수 있는 튀렌(1610~1675, 냉정하고 전략이 뛰어난 프랑스의 명장―역주)식의 용기는 아니다.
결정 작용의 원리에서 비롯되는 규칙의 하나로써 여자는 자기가 배반한 남자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면, 절대로 “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자에 대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언제나 즐기며 결정적인 “예”를 듣기 전까지는.
죽기보다는 살아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원하여,
적당한 구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앙드레 셰니에***-
프랑스에는 유명한 드 소메리 양의 일화가 있다. 애인에게 현장을 들켰는데도 대담하게 사실을 부인하고, 남자가 그래도 더 추궁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알겠어요. 당신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군요. 내가 하는 말보다도 당신의 눈으로 본 것을 더 믿으니까요.”
당신을 배반한 애인과 화해하면 이것은 쉴새없이 생겨나는 결정 작용을 말살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죽어 버리고, 당신의 마음은 고뇌로 말미암아 찢어질 것이다. 이것은 사랑과 생활의 가장 불행한 결합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다만 친구로서 화해할 만한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제37장 록산느****
여성의 질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여자는 의심이 많으며, 우리보다 훨씬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을 위해 큰 희생을 치룬다. 또한 우리네 남자들처럼, 기분 전환의 수단을 갖고 있지 않고, 애인의 행동을 확인할 수단이 없다. 여자는 질투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기의 체면을 손상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다른 남자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체한다. 애인으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특히 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정열이 조소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잔인한 생각을 품기도 하지만, 남자처럼 연적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수단(결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여자에게 있어서 질투는 남자보다 더욱 혐오스러운 병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자기의 무기력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런 지독한 병을 고치려면, 질투를 일으키게 하는 자나 질투를 일으켜 괴로워하는 자 중에서 어느 하나가 죽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식의 질투의 표본은 ≪운명론자 자크≫(디드로의 소설―역주) 라 프므레 부인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 로슈프코(1613~1680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역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질투를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전에 질투했다는 것과 지금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여자는 가엾게도 질투로 고민했다는 고백을 하는 것조차 꺼린다. 그만큼 질투는 여자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쓰라린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만일 엄정한 이성이 상상력의 불길에 조금이라도 대항할 수 있다면 나는 질투를 일으켜 괴로워하는 불행한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자의 부정과 당신들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당신들의 부정의 일부는 직접적인 행위이고 일부는 헌신의 의사표시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육군사관학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부정은 남자에게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아닙니다. 반대로 여자의 경우에는 이것은 헌신의 의사표시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이 되지요. 남자에게는 그것이 필요한 일처럼 되어 있어요. 이건 나쁜 습관 때문입니다. 우리는 젊었을 때 학교에서 상급생을 본 따서 자기의 허영심이나 가치의 증거를 이런 종류의 성공담에 두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들의 교육은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요.”
하나의 행위를 의사표시로서의 가치에서 생각해 보자. 화가 난 김에 나는 옆에 있는 남자의 발밑에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고 하자. 이것은 그에게는 몹시 아프지만,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의 뺨을 때렸다면 결투가 벌어지게 된다.
남자와 여자에게 있어서 부정(不貞)의 차이는 이와 같이 분명하므로, 정열적인 여자는 남자의 부정을 용서할 수 있지만, 남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여자가 정열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기로 사랑을 하고 있는가를 구별하는 결정적인 실험이 있다. 여자가 부정한 행위를 했을 때, 전자의 경우라면 사랑을 죽여 버리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사랑이 배가 된다. 거만한 여자는 자존심 때문에 질투를 숨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남자와 며칠 밤이고 잠자코 긴 밤을 냉전으로 보낸다. 더구나 마음속으로 남자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며, 자기가 그의 눈에 보잘것없는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분명히 가장 큰 괴로움에 틀림없으며, 또 사랑이 불행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의 하나이다.
이런 여자의 고민을 제거하려면, 남자 쪽에서 어떤 범상치 않은 행동을 취해야 한다. 특히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시치미를 떼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여자를 동반하고 하루쯤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제38장 오기에 대하여
오기는 허영심의 한 작용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지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상대방을 내 가치의 판정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된다. 나는 그에게 좋은 면은 보이려고 한다. 사람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때로는 자기의 부당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이 자기를 속이려 한다고 생각한다.
오기는 명예심에서 오는 병이므로, 군주정치하에서 더욱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며, 미국처럼 사람들의 행위가 그 효용에 따라서 평가되는 나라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은―누구나 그렇지만―특히 기만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옛날의 프랑스 군주정체는 상당히 명랑한 것이었으므로, 오기도 색정이나 취미의 사랑에 대해 영향을 미칠 뿐이었다. 오기가 심한 추태를 부리는 것은, 기후 관계로 더욱 음울한 군주국(포르투갈이나 피에몬테)에서이다.
프랑스의 지방 사람들은 머릿속에 사교계의 멋쟁이에 대해 괴상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어서 서로 남의 결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누가 탈선을 하지 않나 하고 언제나 감시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태도에는 자연스러운 데가 없고, 언제나 자존심만 내세우고 있다.
이와 같은 버릇은 그들의 사랑까지도 기형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선망과 함께 소도시의 생활을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어떤 도시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경우에는 이것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명랑하고 고상한 감동이라도, 이 문명의 산물 중에서 가장 천한 오기에 접하면 곧 퇴색해 버린다. 그리고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런 소시민들이 대도시의 부패를 비난하는 것이다.
정열적인 사랑에는 오기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여자에게만 있는 특이한 자존심이거나―그에게 푸대접을 받고도 잠자코 있으면, 그는 나를 경멸하고 이제는 사랑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혹은 미칠 듯한 질투에서 비롯된다. 질투는 자기가 두려워하는 상대가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한 남자는 전혀 다르다. 그는 적이 살아서 자기의 승리를 눈으로 목격하기를 바란다.
자존심이 상한 남자는 연적이 자기와 경쟁을 포기하면 괴로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연적은 마음속으로 불순하게도 ‘내가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승리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기는 결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오직 승리를 원할 뿐이다. 이런 현상은 흔히 오페라의 무희들의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그녀의 경쟁자인 여자를 멀리하기만 하면, 투신자살이라도 할 것 같던 그녀의 정열은 곧 사그라질 것이다.
오기로 하는 사랑은 정열적인 사랑과는 달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경쟁상대가 경쟁을 포기할 때까지만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원리를 고집하기를 주저한다. 왜냐하면 나는 실례를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으며, 거기에도 의문점이 많아서 말이다. 사실은 다음과 같다.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려고 한다.
돈나 디아나는 23세의 젊은 여자로, 세빌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명문 출신의 부르주아 딸이었다. 미인이기는 하지만 얼굴에 약간 곰보 자국이 있었으며 머리가 좋고 자존심이 무척 강하였다. 그녀는 한 젊은 장교를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집안에서 그와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장교는 모릴로 장군을 따라 미국으로 출정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끊기지 않았다.
어느 날 돈나 디아나의 어머니의 살롱에 손님들이 많이 모여 있을 때, 어떤 바보 같은 자가 이 젊은 장교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사람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다만,
“가엾어라, 아직 젊은데……”
하고 말할 뿐이었다. 그때 우리는 노 메신저(1583~1639 영국 극작가―역자)의 희곡을 낭독하고 있었다. 이 희곡의 줄거리는 비극으로 끝났는데, 여주인공은 겉으로는 애인의 죽음을 태연하게 맞아들였다.
돈나 디아나의 어머니는 교만함에도 불구하고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기쁨을 감추기 위해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당황하여 어리석은 소식을 전한 자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돈나 디아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혼자서 조용히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의 태도가 무서워 하녀에게 거동을 잘 살피라고 일렀다. 그러나 그녀의 언동에서는 아무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2년이 지난 후에 어떤 미남이 그녀와 가까워졌다. 이때에도 그가 귀족이 아니라고 해서 돈나 디아나의 부모는 결혼을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자 그녀는 기어코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딸과 아버지 사이에 자존심이 대립되었다. 청년은 출입 금지를 당하고, 돈나 디아나는 시골 별장은 물론 교회에도 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녀는 엄중한 감시를 받아 애인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변장을 하고 그녀와 몰래 만나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고집스러워져서 아무리 좋은 혼처가 들어와도 다 거절하고, 페르디난트 7세의 작위와 높은 지위도 포기했다. 드디어 돈나 디아나의 성년이 가까워졌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이 자율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니 집안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추진하게 되었다. 양가에서 정식으로 모인 자리에서 혼담이 절반쯤 무르익어 갔을 때, 6년 동안이나 변치 않고 사랑해 온 청년이 그녀와의 결혼을 거절했다. 15분이 지나자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오기로 사랑을 해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의 괴로움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위대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정열적인 사랑에 있어서는 여자의 자존심이 오기를 자극하지 않으면,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수가 흔히 있다. 이 경우에 겉보기에는 원하는 것이 충족되어 있다. 그리하여 불복은 이상하고 비정상으로 보인다. 따라서 불행을 섣불리 입 밖에 낼 수도 없고, 언제나 불행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불행은 가장 즐겁고 매혹적인 환상에 빠진 상태와 얽혀 있다. 이런 불행은 애인이 가장 흐뭇한 심정을 느낄 때, 도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쳐든다. 그리하여 팔에 안긴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행동을 맛보는 순간에도 그것은 결코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아마도 질투 다음으로 가장 잔인한 불행일 것이다.
어느 대도시에서 온화하고 애정이 두터운 한 남자가 이런 격정에 사로잡혀, 다만 자존심에서 자기를 사랑하던 여자를 죽인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어느 날 밤, 그는 애인에게 바다로 배를 타러 가자고 했다. 물론 아담한 보트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그는 바다 한복판에 나가 단추를 눌렀다. 보트는 산산조각이 나서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런던 극장에서 제일 변덕스러운 미모의 여배우 코넬 양을 60세의 노인이 돌봐 주고 있었다.
“그 여자가 당신만 소중히 여길 줄 압니까?”
하고 어느 친구가 물었더니 노인이 대답했다.
“두고 봐요. 앞으로 날 사랑하게 될 테니까. 그것도 아주 미친 사람처럼 말이오.”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근 1년 동안이나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때때로 미친 듯이 열중하였다. 석 달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에게 아무 불평도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영감은 이 여자와 자기 딸 사이에 여러 모로 자존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오기가 개가를 올리는 것은 취미의 사랑에 있어서이다. 이런 사랑에서는 오기가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취미의 사랑을 정열적인 사랑과 구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젊은이가 입대할 때 으레 듣게 되는 격언이 있다. 그것은 딸 형제가 있는 집에 숙사를 정하게 되어, 어는 한쪽의 사랑을 받고 싶으면, 다른 쪽의 비위를 맞춰 주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들뜬 처녀의 환심을 사고 싶으면, 겸손한 태도로 진지하게 그 집 여주인에게는 마음이 조금도 끌리지 않는다고 말하면 된다. 나에게 이런 유익한 금언을 가르쳐준 사람은 라사르 장군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정열적인 사랑을 해치는 가장 위태로운 방법이다.
오기는 연애결혼 다음으로 행복한 결혼을 얽어매는 사슬이 된다. 대개 남편들은 결혼한 지 두 달이 지나면 정부를 만들어 오랫동안 아내의 애정을 붙잡아 매어 둔다. 그리하여 아내는 남편의 일을 생각하게 되고, 이어서 가정의 사슬이 이 습관을 요지부동하게 만든다.
루이 15세 시대에 궁정에서 한 귀부인(드 슈와젤 부인)이 남편을 극진히 사랑했는데, 그 까닭은 남편이 그녀의 동생 그라몽 공작부인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버린 여자라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듯이 보이면, 우리는 곧 침착성을 잃고 그녀에게 정열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탈리아인의 용기는 분노의 발작에서 생기며, 독일인의 용기는 도취의 순간에 일어나고 스페인 사람의 용기는 자존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용기는 각 중대의 병사나 각 사단의 연대 간의 자존심에 관계된 국민(프랑스 국민을 가리킴―역주)이 있다면, 싸움터에서 일단 패주하게 되면 이미 지주를 잃었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 허영심이 강한 패주자들에게는, 위험을 예견하고 대책을 강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생각될 것이다.
어느 프랑스 철학자가 말했다.
“북아메리카 밀림지대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포로는 산 채로 불태워지는데, 그 전에 우선 활활 타는 불길 옆의 기둥에 묶어 두고 인간의 인성이 착안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잔인하고도 교묘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갖은 고통을 준다. 여행자들이 이들 야만인이 사람고기를 맛있게 먹는 기쁨, 특히 아녀자들이 잔인성을 경쟁하는 포학한 쾌락을 목격하고 기록한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대해 한번 읽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여행자들이 포로의 영웅적인 용기와 그 변함없는 냉정한 태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포로는 얼굴에 조금도 고통스러운 빛을 나타내지 않을 뿐더러, 오만한 자존심과 신랄한 조소, 걸쭉한 욕설로 사형 집행자에게 도전한다. 그들은 자기의 무훈을 노래하고, 자기가 죽인 구경꾼들의 친척과 친지들의 이름을 말하고, 그들에게 준 형벌을 상세히 설명하고 나서, 주위에 있는 자들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쓸개 빠진 놈들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사지는 찢겨서, 분노에 날뛰는 적에게 먹히면서, 그의 마지막 저주는 생명과 더불어 꺼져가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문명국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며, 가장 용감한 적탄대장에게도 지어낸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리고 후손들은 그 진위까지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포로의 특수한 정신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은 포로와 사형집행인 사이에 자존심의 투쟁이 발생하기 때문이이다.
우리나라의 용감한 군의관들은 다음과 같은 일을 자주 관찰한다. 즉 침착할 때에는 수술 중에 큰 소리를 질렀을 부상자도, 미리 일종의 준비를 해두면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그 준비란 그들의 명예심을 자극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간접적으로, 다음에는 집요하게 너는 수술을 받을 때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39장
1. 사랑싸움에 대하여
여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 싸우는 당사자가 사랑하고 있을 경우.
2. 싸우는 당사자가 사랑하고 있지 않을 경우.
만일 애인끼리 인정하는 미점에 있어서 한쪽이 너무나 월등할 경우에 다른 쪽의 사랑은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조만간 경멸을 받으리라는 두려움이 일어나 곧 결정 작용을 중단시키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정신의 우월처럼 불쾌한 것은 없다. 오늘날 사교계에서 볼 수 있는 증오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 만일 심한 증오가 이 원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만 이 원칙에 의해 격리된 인간이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그 우월성이 사회적인 고려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사랑에 있어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열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에게 냉정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월한 자는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하지 않고서는 창문 하나도 닫을 수 없을 것이다.
우월한 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환상을 품는다. 그가 느끼는 사랑은 우선 거절당할 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지닌 거의 모든 약점도 그 사랑을 더욱 귀중한 것으로 만든다.
우월이 없는 인간사회에서는 정열적인 사랑의 보답을 받은 후에, 그것이 오래 지속되게 하려면 곧 사랑의 싸움을 필요로 한다. 베리 공작부인에 관한 일화가 그 예이다. 뒤크로의 ≪회상록≫의 사랑은 인생의 산문적이고 이기적인 측면에 의거하여 남자가 죽기 전에는 떨어질 수 없는 냉정한 습관과 결부되어 있으므로, 이 사랑은 정열적인 사랑보다도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이것은 벌써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랑에서 생긴 하나의 습관에 지나지 않으며 다만 추억과 육체적인 쾌락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이 습관은 당연히 그다지 고귀하지 못한 영혼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날마다 사소한 말다툼이 일어난다. 즉 정열적인 사랑에 있어서는 날마다 새로운 애정의 증거가 요구되는 것처럼, 이번에는 ‘그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두드토 부인(18세기 프랑스의 전형적인 귀부인으로 루소의 열렬한 사랑을 조롱함―역주)과 생 랑베르의 일화를 생각해 보라.
자존심이 이런 관심을 계속 지속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도 있다. 이 경우에 몇 달 동안 불어 닥친 폭풍이 지나기면 자존심이 사랑을 죽여 버린다. 그러나 이 고귀한 정열은 사라지기 전에 오랫동안 저항을 계속한다. 행복한 사랑에 있어서의 작은 싸움은, 냉대를 받으면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언제나 환영을 품게 한다. 때때로 다정스러운 화해가 이루어지면 이 기간을 한결 쉽게 만든다. 남이 모를 고민이나 금전상의 불행이라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깊이 사랑하는 남자를 용서한다. 그리고 언제나 싸움을 하는 일에도 만성이 되어 버린다.
사실상 정열적인 사랑의 격렬한 싸움만큼 흥미로운 원천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도박과 권력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싸우던 상대가 죽기라도 하면 살아 남은 희생자는 위안을 받을 길이 없다. 이 원리는 대체로 중류계급의 결혼을 얽어매고 있다. 꾸지람을 당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가장 사랑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를 듣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랑의 싸움에도 거짓이 있다. 나는 어떤 재치 있는 여자의 편지를 제 33장으로 선택했다. 즉,
“언제나 해소시켜야 하는 사소한 의혹이 있으면, 이것이 갈망을 일으켜 행복한 사랑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의혹이 사라지지 않으므로 그 쾌락은 결코 권태롭지 않다.”
이 경우에 성질이 거친 남자나 교양이 없는 남자 또는 성격이 급한 남자라면 진정시켜야 할 이 조그마한 의혹, 이 사소한 불안이 곧 싸움으로 발전한다.
만일 사랑은 받고 있는 여자에게 훌륭한 교육의 결과인 예리한 감수성이 없을 경우, 그녀는 이런 종류의 사랑엔 더욱 격렬함이 있고, 따라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섬세한 여성이라도, 미친 듯이 화를 내는 남자가 무엇보다도 자기 정열의 희생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모티머경이, 애인에 대해 가장 그리워한 것은 그녀가 그의 머리에 집어던진 촛대였을 것이다. 사실상 만일 자존심이 이런 것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행복한 사랑이 최대의 적인 권태에 대해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프랑스가 낳은 유일한 역사가 생 시몽은 말했다(제5권 45면).
“실컷 난봉을 피운 끝에 베리 공작은 비롱 부인의 조카인 에디가의 막내아들 리옹에 홀딱 반해버렸다. 그는 미남도 아니요, 또 재주도 없었다. 작은 키에 몸집이 뚱뚱하고 뺨이 불룩한 새파란 젊은 청년으로 얼굴은 여드름 투성이어서 곰보처럼 보일 정도였다. 깨끗한 이는 아름다워 보였으나 한 때의 변덕이나 불장난의 상대라면 모를까 여자에게 계속적인 정열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되지 않았다. 재산은 전혀 없고 많은 형제자매들도 똑같은 가난뱅이였다. 퐁스 씨와 베리 공작부인의 미용사인 퐁스 부인이 그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기병중위인 이 청년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그가 도착하자 공작부인이 홀딱 빠져, 그는 뤽상부르 궁정에서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로잔(리옹은 그의 손자뻘이 된다)은 이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마드모아젤 시대 뤽상부르 궁전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고 유쾌했던 것이다. 그는 리옹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었다. 리옹은 원래 예의바르고 겸손하며 온순하고 선량한 정직한 청년이었으므로, 그 교훈을 명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공작부인의 변덕을 꽉 잡아둘 수 없다는 한계를 의식했다. 그는 다른 여자에게 겸손한 태도를 취했으므로 호감을 샀으나, 공작부인에게는 옛날에 로잔이 마드모아젤에게 한 것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그는 얼마 후에 호화스러운 옷을 걸치고 금은보석으로 몸을 장식했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면서 공작부인에게 질투를 일으키게 하고 자기도 질투를 하는 체하였다. 그는 때때로 그녀를 울리기도 했다. 그는 차츰 부인이 자기 허락이 없이는 어떤 사소한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부인이 오페라 극장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밖에 내보내지 않기도 하고, 극장에 가고 싶어 하지 않을 때 억지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는 부인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 친구들이며, 질투하고 있는 여자 친구들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한편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 그러니까 그가 질투하는 체하는 남자를 냉대하게 했다.
그녀는 몸치장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외출할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일부러 곧 머리를 다시 손질하게 하고 옷을 바꿔 입게도 했다. 이런 일이 너무 잦은데다가 때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그렇게 말하므로 부인은 밤마다 이튿날의 자기 몸치장에 대해 미리 그의 명령을 받아두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튿날이 되면 그는 모든 것을 변경해 버리는 것이다.
공작부인은 줄곧 울었다. 그녀는 마침내 하녀를 보내어 그의 의사를 들어오라고 일렀다(그는 도착한 후로 거의 뤽상부르 궁정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리본을 달아야 하느냐고 그의 의사를 몇 번씩 물으면 그는 대개 그녀가 전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것을 달라고 했다. 혹시 부인이 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조금이라도 마음대로 하면 그는 부인을 곧 하녀 취급하였다. 그러면 부인은 며칠씩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그처럼 위엄 있던 여자, 그처럼 엄청난 자존심을 가지고 행동하기를 좋아하던 여자가 이런 사나이나 보잘것없는 자들과 어울려 몰래 식사를 하기까지 타락하였다. 전에는 이름난 귀족이 아니면 그녀의 식탁에는 감히 얼굴을 내밀 수 없었데 말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는 가정교사인 제즈이트의 리그레 신부는, 이런 은밀한 식사에 끼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으나 그는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공작부인도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다. 므시 부인이 이런 기괴한 일에 대해 상담역 노릇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와 리옹이 회식자에게 미리 통지를 하고 날짜를 정하였다. 그녀가 언제나 리옹과 공작부인의 화해를 거드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런 생활은 곧 뤽상부르에 알려지고 말았다. 그러자 모두들 리옹의 비위를 맞추고 리옹 쪽에서도 조심스럽게 대하여 누구에게나 실례가 되지 않도록 했으나, 공작부인에 대해서는 그렇게 않았다. 그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부인에게 난폭한 언사를 써서 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들은 어색하여 얼굴을 돌리고 부인은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으나 그래도 부인은 그에 대한 정열을 억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리옹은 공작부인에게 권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묘약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어떤 유명한 여자(스타르 부인)가 보나파르트 장군에게 말했다. 그가 아직 영광에 싸인 젊은 영웅으로, 자유에 대해 죄를 범하지 않은 무렵의 이야기이다.
“장군님, 여자는 당신의 아내가 되던지 아니면 누이동생이 될 수밖에 없군요.”
영웅은 이 찬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교묘한 욕설로 복수를 한 셈이다. 이런 여자는 애인에게 경멸당하는 것을 좋아하며, 남자가 잔인하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사랑의 치료법
루카디아*****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고대의 아름다운 몽상이었
다. 사랑의 치료법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험이 주의력을 자기 보존에 강하게 집중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피할 수 없는 커다란 위험이 계속되어 자기 보존을 생각하는 습성이 생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 예로서 돈 주앙*의 폭풍우나 무어인의 나라에서 난파한 코슈레** 씨의 경우밖에는 내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일이 아니면 사람은 곧 위험에 익숙해져서 적의 20보 앞에서 보초를 서 있을 때에도 평소보다 더욱 사랑하는 여자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여러 번 말한 것처럼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라면, 자기 상상을 즐기기도 하고, 또 거기에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 가운데 사랑을 속삭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향락하거나 전율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관심사이므로 다른 어떠한 것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그러므로 사랑의 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고쳐주려고 하는 사람은 우선 사랑을 받고 있는 여자의 편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영리하기보다는 우정이 두터운 친구는 반드시 이와 반대되는 일을 한다. 그것은 마치 우스꽝스러울 만큼 적은 병력을 가지고 우리가 결정 작용이라고 부르는 매력 있는 환영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
친구의 사랑병을 고쳐주려는 사람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것을 명심해야 한다. 즉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어떤 믿을 수 없는 일이 나타나 그것을 인정하고 참거나, 아니면 이 목숨을 걸고 온갖 것을 단념해야 할 경우에, 아무리 똑똑한 남자라도 애인의 명백한 죄, 가장 심한 부정도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열적인 사랑에서는 시일이 조금만 지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 애인의 죄를 용서하게 되는 것은 사랑의 정열이 몇 달 동안 계속 타오른 후에, 그것을 알았을 때이다.
친구의 사랑병을 고치려거든, 무뚝뚝하게 직선적으로 위안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사랑과 애인에 대해 권태를 느끼도록 이야기하고, 동시에 그의 신변에 여러 가지 작은 사건이 일어나도록 위로해야 한다. 여행도 혼자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효과가 없다. 대조만큼 애인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은 없다. 파리의 화려한 살롱에서 일류의 미인들을 보았을 때처럼 나는 로마니아의 작은 방에서 혼자 쓸쓸히 살고 있는 가엾은 애인을 그리워한 적이 없었다.
내가 유배된 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살롱의 기둥시계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가 비를 맞으면서 자기의 여자 친구들을 찾아가는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대조에서 생긴 추억이, 전에 여자와 만난 장소에 가서 느끼는 추억처럼 생생하지는 않지만, 훨씬 고귀한 추억의 원천임을 알게 된 것은 그녀를 잊으려고 애쓰던 때였다.
사랑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친구가 애인과 떨어져 있는 것을 이용하려면, 언제나 친구가 옆에 있어서 사랑의 경위를 충분히 반성케 하여 그 과장됨과 무의미함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정말 평범한 일처럼 생각된다. 이것은 마치 좋은 술로 반주를 하면서 즐거운 식사를 마친 후 조용히 감상에 젖는 것과 같다. 전에 자기에게 행복을 안겨 준 여자를 잊기 어려운 것은, 상상력이 아무리 그녀를 상기하고 미화하더라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잔인한, 그러나 최상의 치료법인 자존심의 자극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이것은 애정이 두터운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처음 몇몇 장면은 훌륭하다. “그 여자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하고 비통하게 중얼거리는 남자와 행복의 절정에서 “어떤 슬픔이 닥쳐오더라도.” 하고 외치는 남자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
3. 그녀의 정열은 기름이 떨어진 램프의 불처럼 꺼질 것이다.
-≪람메르무어≫ 제2권 116면-
친구의 사랑병을 고치려고 하는 자는, 나쁜 이유를 들어서는 안 된다. 결정 작용에 승리감과 새로운 쾌락의 기회를 주는 것은 다시 그것을 자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랑에 배은망덕이란 있을 수 없다. 현재의 쾌락이 언제나 모든 것을 보상하고 나아가서는 최대의 희망까지도 보상하는 것이다. 솔직하지 않은 것은 가장 서투른 방법이다. 그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사랑의 병을 고쳐주려는 사람이 친구의 사랑을 정면으로 공격하면 사랑하는 남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노여움을 사면서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베긴다는 것은, 자네와 같은 상인의 용어를 빌어 말하면 복권을 사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 행복은 자네들의 이 무관심과 이기적인 이해의 세계가 나한테 제공하는 무엇보다도 훨씬 클 걸세. 여자에게 인기가 있으면 그대는 행복해질 걸세. 허영심을 가지게나. 나는 타인이 각자의 세계에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을 탓하려고는 하지 않네. 그러나 레오노르의 곁에는 모든 것이 신성하고 정답고 고결한 하나의 세계가 있네. 자네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미덕도 우리의 대화에서는 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덕에 불과하네. 아무튼 내가 그런 여자의 곁에서 일생을 보내는 행복을 꿈꾸도록 내버려두게. 나는 물론 중상을 입어 사랑에 실패하고 이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렇지만 그녀에게 복수 같은 건 하지 않을 심산이네.”
사랑은 시초에 좌절시켜야 한다. 카렘베르크 백작 부인처럼 억지로 갑자기 여행을 떠나거나, 할 수 없이 사교계에 나가 기분을 전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밖에 친구가 손을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책략이 있다. 예를 들면 당신의 애인이 사소한 일로, 당신의 연적에게 베푼 만큼의 예의와 존경을 당신에게는 베풀지 않는다는 것을 슬쩍 비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사랑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의사 표시이기 때문이다. 가령 극장에 들어갈 때 그녀가 그의 팔을 잡지 않았다고 하자. 이런 하찮은 일도 정열에 사로잡힌 남자는 비극적으로 생각하게 되며 결정 작용을 형성시키는 여러 가지 판단에 굴욕을 느껴 사랑의 원천을 더럽히고 드디어 사랑을 파괴하게 된다.
당신의 친구를 푸대접하는 여자에게 확인할 수 없는 어떤 육체적인 결함이 있다고 중상을 하는 것도 좋다. 비록 친구가 당신이 중상하는 줄 알더라도 그것은 근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상력에 의해 그것은 애인에게 흙칠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상상력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밖에 없다. 앙리 3세는 유명한 몽팡시에 공작부인의 욕을 했을 때,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 처녀를 사랑의 거래에서 구출하려면 특히 상상력의 움직임에 유의해야 한다. 그녀가 비속하지 않고 영혼이 고매할수록, 예컨대 그녀가 우리 존경을 받을 만하면 위험은 더욱 크다. 젊은 처녀가 자주 자기를 즐겁게 해준 남자를 생각하게 되면 반드시 위험하다. 감격과 감탄, 또는 호기심이 추억을 자아내면 그녀는 분명히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권태가 클수록 감격과 감탄과 호기심이라는 독약은 잘 듣는 법이다. 이럴 때는 즉시 강한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에 만났을 때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약이 미리 자연스럽게 조제되었다면 영리한 여자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 확실한 방법이다.
제40장
모든 사랑, 모든 상상은 사람에 따라 여섯 가지 기질로 나타난다.
1. 다혈질―프랑스 사람, 예컨대 프랑퀘이유씨(데피네 부인의 ≪회상록≫)
2. 담즙질―스페인 사람. 예컨대 로잔(생 시몽의 ≪회상록≫의 뻬길렘)
3. 우울질―독일사람, 예컨대 실러의 돈 카롤루스
4. 점액질―네덜란드 사람
5. 신경질―예컨대 볼테르.
6. 운동가질―크로톤의 밀론(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역사(力士)―역주)
기질의 영향이 야심이나 탐욕, 우정 등에서 나타난다면, 생리적인 면이 혼합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에 있어서는 어떨까?
모든 사랑이 앞에서 말한 네 종류로 분류된다고 가정하자. 즉
1. 정열적인 사랑― 줄리 데탕즈(루소의 소설 ≪신 엘로이즈≫의 여주인공―역주)
2. 취미의 사랑― 즉 건달의 사랑
3. 육체적인 사랑
4. 허영심의 사랑(부르주아에게 공작부인은 30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이 네 가지 사랑에, 앞에서 말한 여섯 가지 기질이 상상력에 주는 습관에서 생기는 여섯 가지 변화를 적용시켜 보아야겠다. 예를 들면 티베리우스는 헨리 8세와 같은 광적인 상상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음에 이렇게 해서 얻은 모든 결합을 정치 형태나 국민성에 의한 습관의 차이에 적용시켜 보자.
1. 콘스탄티노플에서 볼 수 있는 아시아적인 전제주의.
2. 루이 14세식의 절대군주제도.
3. 영국처럼 헌장(憲章)의 가면을 쓴 귀족제도, 또는 부자의 이익을 위한 한 민족의 지배. 모든 일이 성서적인 도덕의 규율에 의해 행하여진다.
4. 미국과 같은 연방 공화제. 만인의 이익을 위한 정부.
5. 입헌군주제, 즉―***
6.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나 프랑스처럼 혁명 상태에 있는 국가. 한 국가의 이러한 상태는 사람들에게 열렬한 정열을 북돋아주고, 풍속을 자연스럽게 하고, 사소한일, 인습적인 도덕, 졸렬한 예의범절을 파괴하므로, 젊은이를 진지하게 만들고, 허영의 사랑을 경멸케 하며, 취미의 사랑을 무시하게 한다.
이런 상태는 오래 계속되어 한 세대의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1788년에 시작되었다가 1802년에 중단되고, 1815년에 다시 시작되었으나 이것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사랑의 일반적인 고찰에 이어 나이의 차, 그리고 끝으로 개인적인 특성이 문제가 된다.
가령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드레스덴의 볼슈타인 백작에게서 허영의 사랑, 우울질, 군주제도하의 습성, 나이는 30세, 그 개인적 특성을 발견했다.”
이와 같은 고찰은 사물의 간략하게 하고, 사랑을 고찰하는 사람의 머리를 냉정하게 한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하나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비교해부학에 의해서만 자기 자신에 대해 생리학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열에 있어서도 허영심이나 그 밖에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착각을 일으키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관찰한 약점에 의해서만 자기 자신의 내부에 일어난 일을 밝힐 수 있다. 만일 이 글이 그런 대로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독자의 정신을 인도하여 이런 비교를 시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 일에 유도하기 위해 나는 아래에 여러 국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사랑의 일반적인 특징을 대충 써보려고 한다. 내가 때때로 이탈리아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용서해주기 바란다. 현재 유럽의 풍습으로는 이탈리아가 내가 묘사하려는 식물이 자유롭게 자라는 유일한 나라이다. 프랑스에서는 허영심이, 독일에서는 우습기 짝이 없는 미치광이 같은 철학이, 영국에서는 소심하고, 원한에 찬 자존심이, 이 식물을 괴롭히고 질식시켜 이상한 방향으로 구부러지게 한다.
제41장 사랑에서 본 여러 국민
프랑스에 대하여
나는 개인적인 감정을 버리고 냉정한 철학자가 되려고 한다. 프랑스의 여자들은 허영심과 육체적인 욕망밖에 갖지 않은 상냥한 프랑스 남성들에게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여성들보다 행동적 또는 정력적이지 못하다. 또한 두려움에 시달리지도 않고 특히 사랑받지 못하며 권위가 없다.
여자는 그 애인에게 벌로서 줄 수 있는 불행의 정도에 의해 비로소 권위를 갖는다. 그런데 남자에게 허영심밖에 없을 경우에 여자는 유용하기는 하지만 필요하지는 않다. 남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성공은 정복하는 일이며, 보유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욕망밖에 없는 남자에게는 창부가 있다. 프랑스의 창부가 아름답고 스페인의 창부가 미운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창부는 많은 남자에게 양갓집의 부인과 똑같은 행복, 즉 사랑이 없는 행복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남자는 언제나 애인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하나 갖고 있다. 허영심이 그것이다.
파리의 젊은이는 애인을 자기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노예로 간주할 뿐이다. 만일 그녀가 지배적인 명령에 반항하면 그는 그녀를 버림으로써 더욱 커다란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는 친구에게 자기가 멋지게 여자를 버렸다고 자랑한다.
자기 나라를 잘 알고 있는 한 프랑스 사람(메이랑 1736~1830 프랑스 문학가―역주)은 말하였다.
“프랑스에서 위대한 정열은 위대한 인물과 마찬가지로 보기 드물다.”
프랑스인에게는 연극에서 여자에게 버림을 받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 온 마을에 알려진 남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때문에 이것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베네치아나 볼로냐에는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파리에서 사랑을 발견하려고 하면, 교육과 허영심이 결여되고 가난에서 오는 싸움에 가장 정력을 소모하고 있는 계급에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자기에게는 충족되지 않는 큰 욕구가 있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자기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프랑스에서는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온갖 욕설과 비웃음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 된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경계하는 젊은이가 창녀를 예찬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열등함을 보여주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불안이 시골사람들의 저변에 깔려 있다. 최근에도 그런 예가 있었다. 어떤 남자는 베리 공작이 암살을 당한 이야기를 듣고 다만 “알고 있네.” 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중세기에는 위험이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였다. 아마도 16세기 인간의 놀라운 우수성의 제2의 원인은 여기 있을 것이다. 독창성도 현재는 희한하고 괴상한 것으로 위험시되고 가식적인 것으로 간주하나 당시에는 흔히 있는 가식 없는 것이었다. 코르시카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위험이 맹위를 떨치는 나라는 아직도 위대한 인물을 낳을 수 있다. 일 년 중에서 석 달 동안은 찌는 듯한 더위가 담즙을 끓게 하는 이런 고장에서는 다만 원동력의 방향지침이 없을 뿐이다. 나는 파리에는 원동력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다.
몽미라유(나폴레옹이 러시아와 프러시아 연합군을 격파한 싸움터―역주)나 볼로냐의 숲(나폴레옹이 영국 상륙을 위해 대군을 집결했던 야영지―역주)에서는 그처럼 용감하던 우리나라 청년들이 사랑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가 되어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아가씨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소심하기 때문이다. 전에 소설에서 읽은 사랑하는 남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상기하고 나서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낀다. 이런 냉담한 사람은 정열의 폭풍이 바다를 성내게 해도 배에 돛을 달고 저어나가면 파도를 헤치고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감미로운 꽃이다. 그러나 무서운 낭떠러지 끝에까지 가서 그 꽃을 딸 만한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사랑을 하면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뿐더러 상대방으로부터 버림을 받을지 모른다는 절망감이 따르며, 인생의 모든 다른 일에 대해서는 죽음의 공허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문명의 완성은 19세기의 모든 섬세한 쾌락에 빈번한 위험의 존재를 결부시키는 데 있을 것이다. 사생활의 향락이 자주 위험에 처해져서 무한히 증대될 필요가 있다. 나는 단지 군사적인 위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은 갖은 형태로 나타나고, 모든 생활과 이해관계로 결부되어 있는 위험, 중세기의 생활의 본질을 이룬 위험이다. 우리의 문명이 조절하는 위험은 가장 연약한 성격과도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오미라씨의 ≪센트 헬레나에서의 목소리≫(A Voice from Saint-Hel-ena) 속에 다음과 같은 위인의 말이 적혀 있다.
“저 종루(鐘樓) 옆의 평지에 진을 친 적 7, 8개 연대를 격파하라고 뮤라(1767~1815, 나폴레옹의 의형이자 용감한 장군, 나폴리 국왕에 임명됨―역주)에게 명령하면 곧 번개같이 적진을 향해 출발하여, 거느린 기병의 수가 아무리 적어도 적군은 곧 전멸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인물에게 마음대로 행동하라고 하면, 결단력이 없는 한 어리석은 자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용사가 어떻게 그렇게 비겁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적이 앞에 있지 않으면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적을 맞이하면 그는 전 유럽에서 가장 용감한 군인이었다.
그는 싸움터에서는 영웅이요, 살라딘(1137~1193, 십자군 당시 이집트·시리아 군주, 이슬람교의 영웅―역주)이요, 또한 사자왕자 리처드(1157~1199 십자군 당시, 영국 왕. 용맹으로 유명함―역주)였다. 그런데 왕위에 오르고 어전회의를 주재할 때에는, 결단력과 판단력이 없는 비겁한 자에 불과했다. 뮤라와 네이(1769~1815, 프랑스의 맹장. 나폴레옹은 그를 용사 중의 용사라고 불렀다―역주)는 내가 아는 가장 용감한 사나이였다.”
(오일러 제1권 94페이지)
제42장 프랑스에 대하여(계속)
좀 더 프랑스의 욕을 하는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독자들은 왜 풍자가 벌을 받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이 글이 독자를 얻게 된다면 나의 프랑스 비방은 백배가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국민적인 명예심이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는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파리는 대화와 문학의 우수성으로 말미암아,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언제나 유럽의 살롱 구실을 할 터이니 말이다.
빈이나 런던에서도 편지의 3/4은 프랑스어로 쓰여지고 있다. 혹은 프랑스어의 비유나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도 터무니없는 프랑스어냐 이 말이다.
위대한 정열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프랑스는 독창성이 없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진정한 명예욕, 즉 사교계에서 존경을 받고 날마다 허영심의 만족을 얻기 위해 바이아르 장군(1748~1824. 프랑스 명장―역주)을 닮으려는 욕망이다.
2. 어리석은 명예욕, 파리의 상류사회의 세련된 신사처럼 되려는 욕망. 살롱에 들어갈 때의 몸가짐이나 연적에게 쌀쌀하게 굴고 애인과 의가 상하는 기교 등을 필요로 한다.
어리석은 명예욕은 바보 같은 자들에게 이해되기 쉽고, 날마다 그때그때의 행위에 적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참된 명예심보다 우리의 허영을 만족시키는 데 훨씬 유용하다. 참된 명예욕을 갖지 않더라도 어리석은 명예욕이나마 있으면 사교계에서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상류사회의 세련된 태도란, 첫째로 아무리 중대한 문제라도 풍자를 갖고 다룰 것. 옛날의 진정한 상류사회 사람들은 어떤 일에도 깊게 감동되는 일이 없었으므로,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요즘 지방으로 피서를 가게 되면서부터 이 습관이 변하였다. 프랑스 사람으로서 무엇에 감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부자연스런 것은 없다. 왜냐하면 감탄하고 있는 것에 비해 자기가 한결 열등하다는 것을 나타낼뿐더러(이것까지는 무방하다고 치자), 만일 누가 그 감탄하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면 그 사람보다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감탄은 선의와 행복으로 충만하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감탄하는 자는 자기의 감격에 자랑을 느끼고, 반대하는 자를 가엾게 생각한다. 나는 조소하는 자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일정한 생활태도를 모방하는 일이 없는 이런 나라들에서 조소하는 자는 싱거운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쾌락이 방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선천적으로 사치를 예찬한다. 마드리드나 나폴리의 궁정, 그리고 카디스의 축제를 보라. 이것은 정말 광적이다.
둘째, 프랑스 사람은 혼자서 살아야 할 경우에는, 자기를 매우 불행하고 괴상한 남자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런데 고독이 없는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셋째, 정열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일밖에 생각하지 않으며 존경을 받으려는 사람은 남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1789년 이전의 프랑스에서는, 개인적인 안정은 어떤 단체의 일원이 되어 그 단원에 의해 보호되지 않으면 누릴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이웃이 당신에 대하여 갖고 있는 생각은 당신의 행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파리의 거리보다도 궁정에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물론 이러한 습성은 날마다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한 세기 동안은 프랑스를 지배할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정열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창문에서 몸을 내던지면서 멋지게 길바닥에 떨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정열적인 인간은 개성적이고 남을 닮지 않는다. 이것이 프랑에서는 조소거리가 된다. 그들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이것이 더욱 조소에 박차를 가한다.
제43장 이탈리아에 대하여
이탈리아의 행복은 순간적인 느낌에 따르는 것이다. 이 행복은 독일과 영국에서도 어느 정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중세 공화 도시의 미덕이던 실용주의가 국왕들의 필요에서 생긴 덕, 즉 명예심에 의해 왕좌를 빼앗기지 않던 나라이다. 진정한 명예심은 어리석은 명예심의 길을 터놓는 나라이다. 어리석은 명예심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나의 행복을 이웃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애정의 행복은 허영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밖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프랑스는 세계에서 애정으로 맺어진 결혼이 제일 적은 나라이다.
이탈리아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푸른 하늘 아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에 민감하게 한다. 그리고 고독감을 더하게 해서 친한 사이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그들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아 소설을 읽진 않지만, 쉽사리 순간적인 감동에 따른다. 그리고 사랑과 흡사한 감정을 일으키는 음악에 대한 정열이 있다.
1770년경의 프랑스에는 의혹 같은 것이 없었다. 반대로 태연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 아름다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뤽상부르 공작부인은 백 명의 사나이와 가까이 사귀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도 우정도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정열을 품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므로 조금도 우습지 않다. 그리고 살롱에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한다. 이 병의 징후나 경과는 누구나 알고 있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애인에게 버림을 받은 사나이에게 말한다.
“그는 6개월 동안은 괴로울 걸세. 그러나 그 후에는 아무개처럼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이탈리아에서 대중의 판단은 정열의 충실한 하인이다. 이 나라에서는 진실한 쾌락이, 다른 나라에서는 사교계가 실권을 행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즉 허영심을 가질 여유가 없고 권력자에게는 잊어주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사교계에서는 거의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사교계는 권위가 없다.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정열을 갖고 있는 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권태로운 사람은 조소거리가 된다. 알프스 이남에서 사교계는 감옥을 갖지 않은 전제군주에 불과하다.
파리에서는 어떤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 명예심으로 인해 칼을 잡아야 하거나, 최소한 타인과 언쟁을 해야 하므로, 풍자의 그늘에 숨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와 다른 길을 택하였다. 즉 루소와 스타엘 부인의 뒤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풍자는 이미 진부한 방법이 되었으므로, 정열을 가질 필요가 생긴 것이다. 프제(1741~ 1797 루이 16세 시대의 문학자―역주)와 같은 사람은 다르렝꾸르(1786~1856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그의 문장을 비웃었다―역주) 씨와 같은 과장된 문장을 쓸 것이다.
그리고 1789년 이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은 실리, 즉 개인의 감정을 명예나 여론의 권위보다 더 존중하였다. 의회의 광경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심지어 농담까지도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나는 프랑스인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부(富)를 이루는 것은, 소수의 거부가 아니라 다수의 중류계급의 부의 축적이라고. 어느 나라에서나 정열적인 사랑은 보기 드물지만, 프랑스에서는 애정이 다른 나라보다 우아하고 섬세하여 커다란 행복을 가져온다. 세계에서 으뜸인 이 대국민은 사랑에 있어서도 인재에 있어서와 같은 지위에 있다.
1822년에는 무어(1779~1852, 영국 시인―역주)도, 월터 스코트(1771~1832, 영국 소설가―역주), 크라브(1754~1832, 영국 시인―역주), 바이런, 몽티(1754~ 1828, 이탈리아 시인―역주), 페리코(1789~1854, 이탈리아 시인―역주)도 없었다. 그러나 문학적이며 상냥하고 시대의 지적 수준에 도달한 지식인은 영국이나 이탈리아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1822년에 있었던 우리나라 하원의 논쟁이 영국 국회의 그것보다 뛰어난 이유가 여기 있다.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이 프랑스에 오면, 우리는 그들의 중세적인 사상에 놀라게 된다.
어떤 로마의 예술가는 파리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파리는 정말 불쾌하다. 아마도 내가 마음대로 사랑할 여자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감수성은 생겨나자마자 곧 소모되고 만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원천까지 퍼내어 마르게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로마에서는 그날그날의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외적 생활은 잠자고 있으므로 감수성이 축적되어 정열을 북돋아 준다.”
제44장 로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은 로마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나는 사륜마차를 타고 있는 어떤 점잖은 부인이 안면이 있는 여자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봐요, 파비오, 비텔레치를 사랑해서는 안 돼요. 차라리 강도에게 반하는 편이 낫지. 정답고 얌전한 태도를 하고 있지만 칼로 당신의 심장을 찌르면서 웃는 얼굴로 ‘아파?’ 하고 물을 수 있는 인간이에요.”
이런 말을 상대방의 열다섯 살 되는 아름다운 조숙한 딸 앞에서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었다.
만일 북국(北國) 사람들이 이 남국의 자연스러운 다정함에 감정을 상하지 않는다면, 1년간 여기 머무는 동안에 다른 나라 여자는 모두 역겹게 생각될 것이다. 이 다정함은 커다란 자연이 소박하게 발전한 것에 불과하다.
북극 사람들은 프랑스 여자의 정다운 모습을 보고 3일 동안은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흘째에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런 매력은 미리 연구되고 암기된 것으로, 날마다 변함없이 누구에게나 뿌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연스럽고 공상에 잘 빠지는 독일 여자는 그 밑바닥에 있는 속 취미와 무뚝뚝함과 기사 이야기 같은 애정을 보여주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알마비바 백작(보마르세 ≪피가로의 결혼≫ 제5막 7장―역주)의 말은 독일에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평소에 추구하던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고 깜짝 놀라는 걸세.”
외국인은 로마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나라에서는 권태로운 일이 없다. 대신 악의 세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남자에게만 한정한다면, 이곳 사교계에는 일종의 괴물이―다른 곳이라면 사람 앞에 나설 수 없는―나타나는 일이 있다. 정열적이고 총명하지만 비겁한 인간 말이다.
이런 남자가 어떤 악운의 장난으로 유명한 부인과 가까워진다고 하자. 그는 그녀에게 홀딱 빠져 그녀가 다른 남자를 가까이 하거나 하면, 그 불행을 속속들이 맛보게 마련이다. 그는 끊임없이 이 행복한 애인을 괴롭히려고 한다. 그녀는 그의 곁을 도망치려고 해도 안 된다. 누구나 그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염치 불구하고 여자와 그 애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애인은 참다못해 발길로 그 남자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이튿날에 발길에 채인 남자가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고 나서, 여전히 태연스럽게 그녀와 그 애인과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이런 쓸개 빠진 인간이 날마다 참아야 하는 수많은 불행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이 사나이가 독살자까지 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좀 모자라기 때문이다.
백만장자의 아들이 하루에 30수의 수입밖에 없는 빈민이 보는 앞에서 대극장의 무희(舞姬)를 첩으로 삼고 호사스러운 살림을 시키는 것도 이탈리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 사나이는 언제나 사냥을 가거나 말을 타고 다니는 미남이지만, 어느 외국인에 대해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남자를 만나서 직접 불평하거나 하지 않고 몰래 그 외국인에게 불리한 소문을 퍼뜨렸다.
프랑스라면 여론은 이 청년의 말을 증명하든가, 그 외국인과 결투를 요구하든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여론도 의미가 없었다. 돈은 언제나 환영을 받는다. 그러므로 파리에서 명예를 잃고, 내쫓긴 백만장자는 안심하고 로마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부력에 상당하는 존경을 받을 것이다.
제45장 영국에 대하여
나는 최근에 발렌시아의 델 솔 극장의 무용수들과 친해졌다. 그녀들 대부분은 품행이 매우 단정한 모양이었다. 일이 너무 고되기 때문이었다. 비가 오면 그녀들에게 매일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그리고 자정부터 아침 세 시까지 자작의 발레 <토레드의 유태인 아가씨>를 연습시킨다. 이 밖에도 밤마다 두 개의 발레를 추어야만 했다.
이것은 에밀에게 많이 걷도록 권한 루소를 상기시킨다. 나는 오늘 밤 아름다운 무용수와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생각했다―이 발렌시아의 하늘 아래서,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서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고, 상쾌한 바닷바람을 쐬는 엄청난 쾌락은 안개가 자욱한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160킬로미터의 여행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감각이 너무 풍부하여 사색을 훼방한다. 그리고 나의 아름다운 무용수의 순결은, 영국에서 남자의 자존심이 서서히 한 문명국에 터키식 후궁의 풍습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 영국의 어떤 아름다운 처녀는 매력이 있으나, 사상적으로는 부족한 데가 있는 것 같다. 원래 이 나라의 국민성은 감탄할 만한 독창성을 갖고 있었는데 처녀들은 흥미를 끌 만한 사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들은 다만 그 섬세함이 돋보일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에서 여자의 수치심은 곧 남자의 자랑이다.
그러나 노예가 아무리 온순해도, 그런 사교계에는 이윽고 무거운 짐이 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이탈리아에서처럼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밤을 보내지 않고, 매일 밤 마실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는 집에서 권태로움을 느끼는 부자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날마다 16~20킬로미터쯤 걷는다. 마치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걷기 위해서인 것처럼, 그리하여 그들은 신경액(제25장 역주 참조)을 발로 소모하고, 심장으로 소모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영국 태생의 높은 품위를 내세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여성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이탈리아의 청년만큼 게으름뱅이도 없다. 감수성을 뺏는 운동은 질색인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건강을 위해 참고 2킬로미터쯤 걷는다. 여자의 경우를 보면, 로마의 여자는 1년 동안에 영국 처녀들의 일주일분도 걷지 않는다.
영국 남편의 자존심은 매우 교묘히 가엾은 아내의 허영심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아내에게 천한 몸차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딸들에게 좋은 신랑감을 찾아 주려고 교육하는 어머니는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유행은 경박한 프랑스보다도 이성적인 영국에서 훨씬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영국에서 유행은 의무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쾌락이다. 유행은 런던의 뉴본드 가와 펜처치 가 사이와, 파리의 쇼세 당탱과 생 마르탱 가 사이와는 전혀 다른 견고한 담이 쌓여 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주는 따분한 생활의 대가로 이런 귀족취미를 허용하고 있다. 한때 유명했던 버니(1752~1830, 영국 여류 소설가―역주)의 소설을 읽어보면, 남자의 자존심이 빚어내는 영국 여성 사회의 모습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녀가 묘사한 여자 주인공은 목이 말랐을 때 한 컵의 물을 요구하는 것은 친하다는 이유로 갈증 때문에 태연히 죽어간다. 비속(卑俗)함을 면하려고 가장 증오해야 할 가식에 빠진 것이다.
나는 22세의 영국 청년의 신중함을 같은 또래의 이탈리아 청년의 심한 불신과 비교해 본다. 이탈리아 사람은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하며, 친밀해지면 불신을 버린다. 적어도 잊는다. 한편 영국 청년의 신중함과 교만이 증가하는 것은, 가장 친밀한 교제(외관뿐이지만)에서이다.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그 여자에게 브라이턴(영국의 해수욕장―역주)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이것은 유부녀를 사랑하는 22세의 청년의 말이며, 요컨대 80루이의 비용이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무리 뜨겁게 사랑해도 신중성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연인에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므로 브라이턴 여행을 그만둘까 해요.”
하고 말할 리가 없다.
지아노네나 펠리코를 비롯하여 많은 혁명가들의 운명이 이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이 많게 한 것과는 달리, 영국의 미남자들은 오직 지나친 허영심과 병적인 감수성으로 인해 신중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프랑스 사람은 그때그때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으므로, 애인에게 모조리 말해버린다. 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 사람은 친근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친근미가 없으면, 여자의 호감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나는 눈물이 글썽하여 괴로운 심정으로 위의 글을 써왔다. 그러나 임금에게도 아첨할 생각이 없는 이상, 한 나라가 다만 애인의 출신국이라는 이유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한편 군주 정체하의 비열성일지 모른다. 나는 다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첨가하는 데 그치려고 한다. 즉 이런 습관에 파묻혀 재지(才智)가 남편의 자존심의 희생이 되어 있는 수많은 영국 여성들에게 하나의 독창성이 있는 이상, 터키식 후궁을 부활시키려는 슬픈 속박에서 떠난 한 상류 가정이 있다면, 매력적인 여성이 태어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매력(charmant)이라는 말은 그 어원이 마법을 건다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에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평범한가. 정다운 이모젠(셰익스피어의 ≪심벨린≫의 여주인공―역주)이나 상냥한 오필리아의 살아 있는 모델은 영국에 많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모델은 완성된 영국 부인과 같은 존경을 받기엔 아직 멀었다. 완성된 영국 부인이란, 모든 인습을 지키고, 남편에게 병적인 귀족적 자존심과 죽도록 따분한 행복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통풍은 좋지만, 다섯 개에서 스무 개나 되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직한 소파에 드러누워 한낮의 여섯 시간을 사랑과 음악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보낸다. 그리고 밤에는 극장에 가서 네 시간 동안 음악이나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므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기후뿐만 아니라 생활양식도 음악과 사랑을 돕지만, 영국에서는 이와 반대이다.
나는 어느 쪽이 좋고 나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할 뿐이다.
제46장 영국에 대하여(계속)
나는 영국을 무척 사랑하지만, 그런 반면에 별로 가본 적이 없으므로 쓸 것이 없다. 때문에 아래에서는 어떤 친구의 관찰을 빌어서 서술하려고 한다.
현재의 아일랜드는(1822년) 과거 2세기 이래로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매우 기묘한 사회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용감한 결의에 찬, 권태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함께 웃으며 즐겁게 점심을 먹은 자들끼리, 두 시간 후에는 전쟁터에서 맞부딪칠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정열에 가장 적합한 정신상태, 즉 자연스러움을 이처럼 강력히 직접 환기시키는 것은 없다(마음의 위선과 자존심에 가득 차 고민하는 소심증). 우스티스(1762~1815 아일랜드의 고고학자―역주)의 ≪이탈리아 기행≫을 보라. 여행가는 이탈리아를 그다지 좋게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그 대신 자기의 성격에 대해서는 매우 정확한 관찰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러한 성격은 시인 비티(1735~1803 스코틀랜드의 시인―역주)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는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성실한 승려의 예로는 란다프 사교의 서한집을 보라.
당신에게는 아일랜드가 2세기 이래 영국에서 받은 여러 가지 잔인한 압제에 의해 피를 흘리고, 이로 말미암아 상당히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아일랜드의 정신계에 한 놀라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승려이다.
2세기 이래 아일랜드는 거의 시칠리아와 같을 정도로 지독한 통치를 받아왔다. 이 두 개의 섬을 비교 연구하여 500페이지 쯤 되는 책으로 발행하면, 많은 사람들은 분개하고, 여태까지 존중하던 많은 학설은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다만 소수의 이익을 위해 미치광이들이 통치해 온 이 두 나라 가운데 그나마 행복한 것은 시칠리아이다. 총독은 적어도 백성들에게 사랑과 쾌락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빼앗고 싶었을 터이지만, 다행히 시칠리아에는 법률이나 정부라는 악덕은 거의 없었다.
법률을 만들어서 실시하는 것은 노인과 성직자들이다. 이것은 영국제도에서 육체적인 쾌락을 박해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질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백성은 디오게네스(B.C. 404?~322 그리스 철학자―역주)가 알렉산더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정부에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신네들의 명예직만으로 만족해 주시오. 나한테는 최소한 햇빛은 남겨 주시오.”
정부는 법률과 규칙과 벌칙의 힘으로 아일랜드에서 감자를 재배했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인구는 시칠리아보다 훨씬 많은데 이것은 가난한 농민을 수백만 명이나 이곳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과 일에 지쳐, 사오십 년의 불행한 생애를 고대의 에린(아일랜드의 옛 이름―역주) 지대에서 보낸다. 그러면서도 세금은 꼬박꼬박 바친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이교도라고 믿고 있었더라면 이 가엾은 사람들에게 적어도 한 가지 쾌락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도 못하였다. 그들은 성 패트릭(387~ 460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포교한 성자―역자)를 숭배해야만 했다.
아일랜드의 백성은 야만인보다 더 불행하다. 고작 10만 명쯤 살아야 할 고장에 8백만이나 살면서 런던이나 파리의 부재지주 5백 명에게 호화로운 생활을 시키고 있다.
스코틀랜드 사회는 훨씬 나은 편이다. 여러 모로 정부도 선량하다(범죄는 적고, 독서도 하고 승려는 없다 등등). 그러므로 사랑의 정열은 훨씬 발달되어 있다. 백성들은 어두운 생각에서 떠나 익살을 느낄 여유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우수의 빛이 떠돌고 있다. 이 우수는 특히 무도회에서 매력적이다. 그것은 무용수들이 열심히 춤추는 민속무용에 독특한 묘미를 더해 준다. 에든버러에는 이와는 다른 장점이 있다. 그것은 비천한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도시는 독특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런던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이곳 에든버러에서는 로마와 마찬가지로, 명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런던에는 끊임없는 소용돌이 같은 활동적인 생활의 불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여기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에든버러는 그 현학적인 경향 때문에 악마의 밥이 되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메리 스튜어트가 옛 궁정 홀리루트에서 살며, 리치오가 그녀의 팔에 안겨 살해된 시대 쪽이 오늘날보다 사랑에는 적합하였다(부인네들은 이 주장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여자들 앞에서 아무개의 화성암설보다는 수성암설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장황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런던에 갔을 때에는 사람들은 왕이 이번엔 근위병에게 재정한 제복이라든가, B. 블룸필드 경(1786~1849 영국 귀족―역주)이 상원의원에 낙선했다는 것을 주로 화제에 올렸으나, 나는 베르네르(1750~1871 독일의 광물학자―역주)와 아무개와의 어느 편이 바위의 특질을 정확하게 규명했는가 하는 것보다 이런 이야기에 더욱 흥미가 있다. 일요일은 원유회와 같은 것이다. 하느님을 칭송하도록 정해진 이 하루는 내가 지상에서 본 가장 뛰어난 지옥 풍경이었다. 한 스코틀랜드 사람이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인 프랑스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빨리 걷지 말게. 산책이라도 하는 체하게.”
이 세 나라 중에서 위선이 제일 적다고 생각되는 곳은 아일랜드이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는 무엇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 재치 있는 활동성이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엄격한 계율을 지키지만, 일요일이면 런던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춤을 추면서 정신없이 좋아한다. 스코틀랜드의 농민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연애를 많이 한다. 상상력이 이 나라를 16세기 이후로 프랑스화한 것이다.
영국사회의 가장 큰 결함은 막다른 골목에 달하면 빚을 져서 그 결과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보다 더욱 비찬함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내가 금년 가을에 크로이돈의 한 사제의 아름다운 동상 앞에서 들은 말로 요약되어 있다.
“사교계에선 아무도 앞장서려고 하지 않아요. 나중에 기대가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이런 남자들이 수치심이라는 이름 아래 아내나 애인에게 부과하는 규율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제47장 스페인에 대하여
안달루시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이다. 나는 두세 가지 일화를 알고 있는데, 그것이 결합되어 사랑을 형성하는 몇몇의 광기에 관한 나의 지론이 스페인에서는 얼마나 진실한지를 말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프랑스식 섬세함을 존중해서 그런 일화는 쓰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쓰고 있지만 절대로 프랑스 문학으로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항의를 했다. 그러나 헛일이었다. 다행히 나는 오늘날 호평을 받고 있는 문학자들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다.
무어인은 안달루시아를 포기할 때, 그들의 건축과 풍습을 남겨 놓았다. 이 풍습에 대해 세비네 부인과 같은 문체로 쓰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므로, 무어식 건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주요한 특징은 어떤 집이나 아름다운 주랑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정원이 있다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철에 한란계가 몇 주일씩 30도 이상을 가리킬 무렵에도, 이 주랑 아래는 서늘한 그늘이 져 있고, 조그마한 정원 한복판에서는 분수가 솟아오르고, 그 단순하고 즐거운 소리만이 이 아늑한 은신처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대리석 수반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열두 그루의 오렌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두꺼운 천의 텐트처럼 마당을 덮어 강한 햇살을 막고, 낮에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만이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서 경쾌하고 활발한 안달루시아의 미인이 당신을 맞이한다. 같은 색깔의 올이 달린 검은 비단 드레스로부터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발목과 흰 얼굴, 상냥하고 정열적인 눈―이것이 내가 글에 등장시키는 것을 금지당한 천사와 같은 존재의 모습이다.
나는 스페인의 민중을 현대에 있어서의 중세기의 대표자라고 생각한다.그들은 수많은 작은 진리는 모른다(이웃 나라 사람들은 이런 것을 안다는 것에 대해 유치한 허영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위대한 진리는 잘 알고 있어, 그 귀결을 추구하기에 충분한 성격과 지성을 갖고 있다. 스페인 사람의 성격은 프랑스 사람의 기지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완고하고, 소박하고 거칠고 야성적인 자존심에 가득 차 있어,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15세기와 18세기의 대조이다.
스페인은 또 다른 비교에 유용하다. 즉 나폴레옹에게 저항할 수 있었던 이 유일한 주민은 어리석은 명예심에 따르는 비열함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훌륭한 군기를 만들거나, 반년마다 제복을 바꾸거나, 또는 커다란 박차를 달지는 않지만 그 대신 ‘no importa(괜찮아)’**** 장군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제48장 독일인의 사랑
언제나 증오와 사랑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탈리아인이 정열로 살고 프랑스인은 허영으로 산다고 하면, 고대 게르만 민족의 선량하고 단순한 후손인 독일인은 상상으로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생활과 가장 긴밀한 사회적인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곧장 철학에 뛰어드는데, 그것은 실로 놀랄 만한 일이다. 이것은 감미롭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그리고 전혀 증오를 품지 않은 일종의 광기이다.
나는 아래에 수시로 메모한 것을 근거로(기억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저서를 인용하려고 한다. 이것은 군인정신과는 반대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에까지 군인정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그것은 카데 가시쿠르(1731~1799 아카데미 회원―역주)의 ≪오스트리아 기행≫이다. 1795년에 순수한 영웅주의가 이런 더러운 이기주의로 전락한 것을 본다면 고결하고 용감한 드제 장군(1768~1800 프랑스 장군―역주)은 뭐라고 말할까?
타라베라의 전투에서 두 친구가 같은 포병중대에 소속되어 싸우고 있었다. 한 사람은 대위로 중대장이며, 다른 사람은 중위였다. 대위가 탄환을 맞고 쓰러졌다. 중위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옳지, 프랑수아가 죽었구나. 이제 내가 중대장이 될 수 있다.”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걸.”
하고 프랑스와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는 탄환을 맞고 기절했을 뿐이었다. 대위나 중위는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는 청년으로 악의라고는 전혀 없었다. 다만 약간 머리가 모자라 황제에게 도취되어 있었을 뿐이다. 황제가 영광이라는 미명하에 교묘히 환기시킨 광적인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그들은 인도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센부른의 열병식에서 황제의 눈에 띄어 남작의 칭호라도 받으려고 날뛰고 있는 처량한 광경 속에서, 황제의 주치의인 가시쿠르는 독일인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p. 288).
친절하고 다정하기로 말하면 오스트리아 여자를 따를 수 없다. 사랑은 그녀들에게 하나의 신앙이다. 그녀들이 프랑스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문자 그대로 열렬히 사랑한다. 마음이 잘 변하고 변덕스러운 여자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빈의 여자는 대체로 정숙하고 요염한 데가 전혀 없다. 정숙하다는 것은 물론 자기가 택한 애인에 대해 그렇다는 말이다. 남편은 빈이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존재이다.
-1809년 6월 7일-
빈에서 제일 첫손가락에 꼽히는 미인이, 내 친구이자 황제의 근위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K 대위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는 온순하고 재치 있는 남자였지만 태도나 풍채가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빈 거리를 돌아다니는 우리의 용감한 참모장교들 사이에서 큰 화제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누가 가장 대담한가를 겨누게 되었는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모든 전술이 쓰여지고 이 미인의 집은 미남과 돈 많은 장교로 포위되었다. 부관, 연대장, 근위장교, 대공작까지도 이 미인의 집 창문 밑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하녀에게 돈을 뿌렸으나 모두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대공들도, 파리나 밀라노에서는 이런 지독한 여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녀 앞에서 그들의 실망을 비웃었더니“그런데 그분들은 제가 M대위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까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이것은 매우 당돌하고 실례가 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센부른에 있을 때 나는 황제 전속의 두 청년이, 빈의 숙소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근신한 태도를 비웃었으나, 하루는 두 청년 중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니까 말하지만, 실은 이 마을의 처녀와 가까이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내 방에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나는 그 여자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요.” 나는 이처럼 자진해서 방에 틀어박힌 여자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동양에서도 흔히 그런 것처럼, 나의 의사라는 자격이 좋은 구실이 되어 점심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반하여 집안일을 돌보며,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인데도 전혀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고, 남자가 자기를 프랑스로 데려가 줄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청년도 자기 숙소에서는 절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데, 얼마 후에 나에게 비슷한 고백을 했다. 나는 그의 애인도 만나 보았는데, 앞의 여자처럼 금발 머리에 매우 아름다운 날씬한 여자였다.
이 두 여자 중에서 열여덟 살 되는 쪽은 부유한 가구점 딸이었다. 그리고 다른 여자는 스물 네 살쯤 되고, 장 대공 밑에서 싸우고 있는 오스트리아 사관의 아내였다. 이 부인은 우리와 같은 허영이 강한 나라에서라면, 영웅주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바치고 있었다.
남자 쪽에서는 그녀에게 성실치 못하였으며, 매우 거북한 고백까지 해야 했으나, 그녀는 헌신적으로 그의 시중을 들고 그가 병들자 더욱 떨어지기 어려운 것 같았다. 그의 병은 점점 중해졌으나 그녀는 그럴수록 더욱 그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외국인이며 또한 승리자의 위치에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이르자 빈의 상류층은 모두 헝가리의 영지로 피난을 갔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구경할 수 없었으나, 내가 목격한 것만으로도 파리에서 볼 수 있는 사랑과는 판이하였다.
독일인에게 사랑은 일종의 미덕이고 신성의 발로이며, 어떤 신비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사랑은 이탈리아 여성들의 마음속에 깃들었을 때처럼 활기 있거나 격렬하지도 않고 질투도 없고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신원하며, 거룩하였다. 이 젊은 영국 여자들의 사랑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몇 해 전에 라이프치히의 재단사가 질투의 발작으로 연적을 공원에서 찔러 죽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독일인다운 선량함과 감격성(이것이 그들의 성격적인 약점이지만)을 지닌 모럴리스트들은, 그 판결을 검토해 본 결과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재단사를 오로스마네(볼테르의 비극 ≪자이르≫의 여주인공. 질투로 애인을 죽이고 자살한다―역주)와 비교하고 그의 운명에 동정을 참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라이프치히의 모든 처녀들은 그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흰 옷을 입고 길에 꽃을 뿌리면서 그 재단사를 단두대까지 전송하였다.
아무도 이 의식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을 표방하는 나라의 일이므로 이것은 마치 살인에 경의를 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리고 독일에서 의식이라고 불리는 것은 결코 기이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것은 독일의 작은 군주국가의 궁정의식을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 눈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마이닝겐이나 쾨텐 같은 곳에서는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대공 앞을 행진하는 여섯 명의 밀렵 감시병이 바루스의 로마군을 무찌르기 위해 진군하는 헤르만의 병사로 보이는 것이다.*****
독일인과 다른 나라 사람의 차이는 첫째로 명상에 의하여 마음이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흥분하는 데 있다. 두 번째 차이는 그들이 확고한 성격을 찾기를 몹시 갈망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랑의 발전을 위해 매우 적합한 궁정 생활도, 독일에서는 오히려 사랑을 시들게 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일류 대공의 궁정에서조차 얼마나 이상한 일로 가득 차 있는지 여러분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참모본부가 있는 독일 마을에 들어가면, 두 주일 동안에 그 마을에 사는 여자들은 상대를 택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선택은 요지부동이다. 나는 프랑스 사람이 그때까지 정숙한 여자의 암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괴팅겐, 드레스덴, 쾨니히스베르크 등지에서 만난 독일 청년은 소위 철학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사상체계는 마치 서투르게 써서 뜻을 분명이 알 수 없는 시에 불과하였으나, 도덕적인 견지에서 보면 최고로 신성하고 숭고하였다. 그들은 이탈리아 사람처럼 중세로부터 공화주의와 불신과 암살을 이어받지 않고 열광과 성실에 대한 강한 의욕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10년마다 다른 모든 위인의 이미지를 말살할 만한 새로운 위인을 탄생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칸트, 슈테딩, 피히테 등등).
일찍이 루터는 도의심에 강력하게 호소했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은 그 양심에 따라 30년 동안 싸웠다(1618년부터 1648년에 걸친 30년 전쟁을 가리킴―역주). 설사 신앙이 보잘것없더라도 존중해야 할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예술가들에게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신의 제 3계명과, 조국을 위해 살인을 무릅쓴 마음의 갈등 사이에 고민하는 산드(1795~1820 독일의 애국학생―역주)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타키투스(55~120 로마의 역사가―역주)의 ≪게르마니아≫에도 이미 여자와 사랑에 대한 신비로운 열광을 찾아볼 수 있다. 하긴 이 작가는 주로 로마를 풍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독일을 20킬로미터쯤 여행한 사람이라면 산산조각으로 분할되어 있는 이 국민에게 열렬하고 과격하기보다는 오히려 온화하고 정다운 성질이 공통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경향을 분명히 찾아볼 수 없다면, 오귀스트 라 퐁텐(1758~ 1831 독일 소설사―역주)의 몇 가지 소설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프러시아의 여왕 루이자는 그가 ‘평화로운 생활’을 훌륭히 묘사한 상으로, 그를 마그데부르크의 사제회원으로 임명하였다.
나는 이런 독일인의 공통된 경향의 새로운 증거를 오스트리아의 법전 속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범죄의 처형에 있어서 죄인의 자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 법전은 범죄가 드물며, 또한 끊임없이 사회와 싸우고 있는 용감하고, 이지적인 타산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약자의 광적인 발작에 지나지 않는 그 국민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필요한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이탈리아에 수입하려고 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온 독일의 재판관이, 피고의 자백 없이 사형이나 그 밖의 무거운 징역을 선고하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제49장 피렌체의 하루
1819년 2월 12일 피렌체에서
나는 오늘 밤 극장에서 법관에게 어떤 진정을 하러 온 50세쯤 되는 남자를 만났다. 그가 맨 처음에 한 질문은 “저 사람의 애인은 누굽니까?”였다. 이곳에서는 이런 일은 보통이며 그 자체의 규칙에 있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일이다. 그것은 정의에 입각하여 있으며 인습적인 데가 없고, 여기서 벗어나면 “돼지”라는 말을 듣게 된다.
“무슨 새로운 일은 없나?” 하고 볼태라에서 돌아온 친구가 어제 나에게 물었다. 그는 나폴레옹과 영국인에 대해 몹시 분개하고 나서 마치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말했다.
“라 비테레스키가 남자 애인을 바꿨더군. 그래서 게라르데스카는 가엾게도 절망하고 있어.”
“이번엔 누구야?”
“몽테갈리라네. 그 수염을 길게 기른 미남 장교 말이야. 얼마 전까지는 코로나 공작부인의 애인이었지. 저것 봐, 아래층에서 그 여자 곁에 달라붙어 있지 않나. 연극이 다 끝날 때까지 저러고 있을 걸세. 여자의 남편이 자기를 집에 들여놓지 않거든. 저것 보게. 저쪽 입구에서는 게라르데스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네. 멀리서 배반한 여자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에게 보내는 시선을 엿보고 있네. 그자도 신세를 망치게 됐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단 말이야. 모두들 파리나 런던 같은 데 바람 쏘이러 갔다 오라고 권하지만 듣지 않아. 이곳 피렌체를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죽을 지경이라는 걸세.”
상류사회에는 이런 절망이 해마다 20건쯤은 있으며, 그중에는 3~4년 동안 계속되는 것도 있다. 버림을 받은 남자는 조금도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신세타령을 한다. 이곳에는 사교계다운 곳이 별로 없고, 또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데에 얼굴을 내놓지 않는다.
이탈리아라고 해서 정열이나 아름다운 영혼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더욱 불타는 마음, 허영심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들지 않은 마음만이, 평범한 가운데서도 감미로운 쾌락을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이 나라에서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랑이, 파리에서는 가장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서도 맛보지 못하는 도취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오늘밤 이탈리아어에는 사랑의 여러 가지 특수한 경우를 각각 표현하는 명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어라면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말이다. 가령 극장에서 손에 넣고 싶은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으면 남편이나 하인이 난간에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 슬쩍 시선을 피하는 동작 같은 것이 그렇다.
이 국민의 성격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깊은 정열에 지배되는 버릇이 붙은 주의력은 재빨리 움직이지 못한다. 이것이 프랑스 사람과 이탈리아 사람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이다. 이것은 이탈리아 사람이 합승마차를 타는 장면이나 돈을 지불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 사람의 경우라면 소위 ‘프랑스인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비속한 프랑스 사람이라도 데마주르식의 아둔한 자만가가 아닌 이상 이탈리아 여성에게는 언제나 뛰어난 인물로 보인다(로마의 D공작부인의 애인).
2.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처럼 숨어서 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의 정부의 둘도 없는 친구이다.
3.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
4. 사교계가 없다. 날마다 남의 집에서 두 시간 동안 떠들며 뽐내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일과로 삼으려는 남자는 없다. 수다 떤다는 프랑스 말은 이탈리아어에는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정열에 사로 잡혀 말하고 싶은 때에는 입을 연다. 그러나 잘난 체하며 수다를 늘어놓는 일은 극히 드물다.
5. 이탈리아어에는 우스꽝스럽다는 말이 없다. 프랑스에서는 두 사람이 한 가지 모델을 모방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모방 솜씨를 비판할 자격이 각각 생긴다. 이탈리아에서는 지금 내 앞에서 어떤 사람이 기묘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당사자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며, 또 내가 그것을 하더라도 즐거울지 어떨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로마에서 눈에 거슬리는 언동도 20킬로미터쯤 떨어진 피렌체에서는 고상하게 보인다. 우리는 리옹에서나 낭트에서도 똑같은 프랑스어를 쓰고 있지만, 베네치아, 나폴리, 제노아, 피에몬테에서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말을 쓰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런 방어능력 사용하는 사람들도 글을 쓸 때에는 공통된 언어, 즉 로마말을 쓰고 있다. 무대가 밀라노인데 등장인물이 로마 말을 쓰는 연극처럼 싱거운 것은 없다. 이탈리아어는 말하기 위해서보다 주로 노래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으로 프랑스어의 침입에 대해서는 음악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위정자와 그 밀정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실용을 존중한다. 어리석은 명예심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 대신 비방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대수롭지 않은 사회적인 증오가 있다.
요컨대 사람을 비웃는 것은 치명적인 적을 만드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정부의 권력과 역할이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과 우수한 인간을 처벌하는 일에 치중되는 이 나라에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6. 행랑방의 애국주의
우리가 이웃의 존경을 받고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자존심은 1550년경 이탈리아의 작은 군주들의 전제주의에 의해 모든 고상한 시도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일종의 카리반(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등장인물―역주)이라고 할 수 있는 광기와 우매함으로 가득 찬 괴물, 즉 ‘행랑방의 애국주의’라는 야만적인 산물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은 튀르고 씨가 베로이의 비극 ≪칼레의 포위≫에 대해 한 말이다.
나는 이 괴물이 가장 재치 있는 인물까지도 해치는 것을 보았다. 가령 외국인이 어떤 거리에서 그곳의 화가나 시인의 결점을 지적하려고 하면, 아름다운 부인들에게까지도 나쁜 인상을 주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남의 동네에 와서 욕하는 게 아니에요.” 하고 진심으로 타이르거나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 루이 14세가 한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브레시아에서 “우리들의 아리치”라고 말하는 것처럼 피렌체에서는 “우리들의 벤베누티”라고 한다.* 그들은 “우리들의”라는 말에 은근히 악센트를 붙인다. 이것은 ≪미르와르≫ 신문이 국민음악이라든가, 유럽의 음악가 몽시니(1729~1817 프랑스 음악가―역주)에 대해 말하는 어조와 비슷하다.
이들 용감한 애국자들을 보고 조소하지 않으려면, 우선 역대 교황의 사악한 정책에 농락된 중세의 분쟁의 결과, 어떠한 마을도 이웃 마을을 어떤 비열한 결함과 같은 말로 표현되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교황은 이 아름다운 나라를 증오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이 행랑방의 애국주의는 이탈리아의 커다란 정신적 상처이다. 이 악독한 티푸스균은, 이탈리아가 소군주들의 속박에서 벗어난 후에도 오랫동안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애국주의의 한 가지 특징은 외국 것에 대한 가차 없는 증오이다.
이렇게 해서 이탈리아 사람은 독일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만일 그들에게 “18세기의 이탈리아는 예카테리나 2세나 프레드릭 대왕과 겨룰 만한 어떤 인물을 낳았는가? 독일에 있는 조그마한 정원과 비슷한 영국식 정원도 없지 않은가. 기후 때문에 반드시 나무 그늘이 필요한 당신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면 대뜸 화를 낸다.
7.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정치적인 편견이 전혀 없다. 이 점은 영국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라 퐁테느의 시구쯤은 훤히 외우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의 적은 당신들의 주인이다. 성직자와 성격에 의존하는 귀족제도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낡은 위로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양복점 주인이 과격한 왕당파가 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이탈리아 사람은 프랑스에 석 달쯤 머물러 있어야 한다.
나는 이탈리아인의 성격의 마지막 특징으로서 서로 토론할 때 도량이 좁은 것과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할 만한 말이 발견되지 않을 때 터뜨리는 분노를 들고 싶다. 그들은 이럴 때 얼굴이 창백해진다. 이것은 매우 예리한 감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만 결코 애교 있는 태도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감수성이 존재한다는 하나의 증거로 들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서 영원한 사랑을 찾아보고 싶었다. 여러 모로 애쓴 끝에 나는 오늘밤 처음으로 C와 그 애인을 소개 받았다. 그들은 54년 동안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크게 감동되어 이 사랑스러운 노인들의 곁을 떠났다. 여기에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나는 두 달 전에 R 승정을 만났다. ≪미네르바≫ 신문을 갖다 주었더니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는 D 부인과 함께 별장에 살고 있었다. 승정은 34년 전부터 이탈리아 말로 하면 그 부인과 사랑하는 사이라고 한다. 부인은 아직 아름다웠으나, 그들의 동거생활에는 어딘가 우울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옛날에 이 부인의 남편이 아들을 독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파리에서처럼 주일마다 15분 동안 애인을 만나고 나머지는 사람의 눈을 피해 눈짓을 하거나 손을 쥐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사나이는 날마다 너댓 시간을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보낸다. 그는 그녀에게 소송에 대한 이야기며, 자기 집의 영국식 정원과 사냥과 승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애정이 가득 찬 친근의 표시이다. 그는 어디서나, 심지어 그녀의 남편 앞에서도 그녀를 “당신”이라고 부른다. 자기를 야심가라고 생각하는 어떤 청년이 빈의 어떤 중요한 지위(대사직위와 맞먹는 자리―역주)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애인과 떨어져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6개월 후에는 그 직위를 버리고 애인의 집에서 행복을 되찾기 위해 돌아왔다.
프랑스라면 이처럼 언제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으면 차츰 귀찮아질 것이다. 프랑스 사교계에서는 점잖게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애인으로부터 “여보, 기분이 좋지 않으시군요. 말이 없으니 말이예요. 우울하신가 보죠?”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그때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여자에게 말하면 된다. 즉 자기 생각을 분명히 전달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한 친근함이나 솔직함에서 일종의 도취가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이런 방법으로 사랑을 하면 취미를 마비시켜, 인생의 다른 일에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런 사랑은 정열의 최상의 후계자이다.
아직도 ‘페르시아인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파리 사람은, 이런 풍습을 망칙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당당한 논술을 펴서, 폭풍과 사물의 근저에서 파리가 조금도 볼로냐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려고 한다. 파리의 친구들은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보잘것없는 교리문답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1821년 7월 21일―볼로냐의 사교계에는 보기 싫은 사람이란 없다. 파리에서는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면 남편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볼로냐)에서는 아무렇지 않다. 배반당한 남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풍속은 같아도 증오가 적다. 아내의 정부는 언제나 남편의 친구이며, 그들의 우정은 상호간에 이런 역할을 함으로써 견고해지므로, 다른 이해관계보다 오래 계속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런 사랑은 대개 5~6년 계속되며, 죽을 때까지 이르기도 한다. 두 사람이 무엇이든지 털어놓는데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 후 한 달만 지나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1822년 1월―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이 시종기사(중세 때 아내의 정식 애인으로 인정된 기사―역주)의 습관은 자존심과 교만, 스페인식 습성과 더불어 필립 2세(1527~1598 스페인 왕―역주)에 의해 이탈리아에 수입되었으나 대도시에서는 완전히 없어졌다. 내가 알고 있는 예외는 칼라브리아 사람뿐으로 이곳에서는 형이 성직자가 되어 자기 아내를 아우와 결혼시키고, 자기는 제수의 기사가 되는 동시에 애인이 된다.
나폴레옹은 북부 이탈리아와 이 지방(나폴리)에서 방종을 빼앗아 버렸다.
현대 미인의 품행은 그들의 모친으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한다. 딸들은 정열적인 사랑에 기울어져, 육체적인 사랑은 쇠퇴해버렸다.
제50장 미국인의 사랑
자유로운 정부란 시민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안전과 평화를 도모해 주는 정부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행복한 생활에서 거리가 멀다. 행복은 자기가 손수 만들어 내야 한다. 안전과 평화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평범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유럽에서는 이것을 혼동하고 있다.
우리는 해를 끼치는 정부에 익숙해 있으므로, 여기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처럼 생각된다. 이 점은 마치 고통에 시달리는 병자와 같다. 미국인은 이와 정반대이다.
이 나라에서는 정부가 임무를 잘 수행하며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운명은 우리 모든 철학을 뒤집어 부정하거나, 혹은 그 철학이 인간의 요소를 다 모른다는(이것은 우리가 몇 세기에 걸친 유럽의 불행한 상태에 의해 참된 경험을 쌓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것을 지적하여 철학을 비난하는 것처럼, 정부에서 비롯되는 불행을 모르고 사는 미국인이 오히려 자기 행복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서는 감수성의 원칙이 말라버린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들은 올바르고 위선적이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다.
성격, 즉 정신이 이상한 자들이 시와 노래를 모은 이 책으로부터 끌어낸 괴상한 결론과 행위의 규범만이 이 모든 불행을 가져오는 데 충분한 원인일까? 원칙에 비하면 결과가 너무나 중대한 것 같다.
드보르네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그는 유복하고 정직한 미국인의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미 커다란 아들을 몇 명이나 둔 아버지였다. 그때 한 청년이 식당에 들어왔다.
“허, 윌리암, 거기 앉아라, 혈색이 좋구나.”
하고 주인이 말했다. 손님은 이 청년이 누구냐고 물었다.
“우리 집 둘째 놈입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인가요?”
하고 손님이 물었다.
“광동에서 오는 길입니다.”
아들이 세계의 끝에서 돌아왔는데 이 정도 이야기밖에 더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모든 생활을 합리화하여 위험을 미리 막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많은 노력과 심려 끝에 마침내 과실을 딸 때가 되면, 그것을 즐기기에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이 윌리엄 펜(1644~1718 퀘이커 교도로 펜실베이니아의 정치가―역주)의 자손은 그들의 생활을 묘사한 것 같은 다음의 시를 읽은 적이 없을 것이다.
“살기 위해 사는 보람을 잃는다 Et proptervitam, vivendi perdere causas”
겨울이 되면(이것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서도 즐거운 계절이다) 젊은 남녀는 밤낮으로 썰매를 타고 돌아다닌다. 그들은 신이 나서 매우 즐겁게 16~32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곳으로 썰매를 타러 가지만, 감독하는 자가 없어도 잘못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곳에는 청춘의 육체적인 쾌활이 있으나, 그것도 곧 혈기와 함께 쇠퇴되어 25세만 되면 사라져 버린다. 인생을 즐기려는 정열이 없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성적인 습관이 너무 많기 때문에 결정 작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는 이러한 행복에 감탄하지만 부럽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와 다른 열등한 인간의 행복으로 보인다. 나는 플로리다나 남미가 훨씬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에 대한 나의 추측에 부채질을 하는 것은 예술가와 작가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직 우리에게 1막짜리 비극도 한 장의 그림도 그리고 한 권의 워싱턴 전기도 보내오지 않는다.
제51장 프로방스의 사랑
1100년부터 1328년까지의 프로방스(지중해 연안 남부 프랑스 지방―역주)에서는 사랑이 기묘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사랑에 있어서의 양성 관계를 위해 규율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 규율은 오늘날 명예문제와 마찬가지로 엄격히 그리고 충실하게 지켜졌던 것이다.
이 사랑의 규율은 우선 남편의 권한을 박탈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런 규율은 어떠한 위선도 예상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성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임으로 당연히 많은 행복을 가져왔을 것이다.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여 애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데도 일정한 방식이 있었다. 몇 달 동안이나 같은 방법으로 구애를 한 다음 비로소 여자의 손에 키스를 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 사회는 아직 미개했으므로 지금 같으면 권태로워할 형식이나 의식도 당시에는 문명의 표시로서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프로방스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운이며, 동일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남녀의 말, 그리고 시인의 수가 굉장히 많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사회의 모든 형식적인 것은 오늘날에 와서는 무미건조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신선미가 있었다.
여자의 손에 키스했다고 해서 별로 어떤 특전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후 자기의 가치에 따라 차츰 애인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게 되는 것이다. 유의해야 하는 것은, 여기서 남편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애인들의 위치는, 우리가 말하는 이성 간의 부드러운 우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개월 또는 몇 해에 걸친 시련을 겪은 후에 여자가 완전히 남자의 성격과 분별심을 신뢰하고, 남자가 여자의 외관은 물론 정다운 친근미를 갖게 되면 이 우정이 여자의 정절에 상당히 큰 위협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특전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여자가 많은 애인들을 두고 있더라도 최고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한 사람뿐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남자는 손에 키스하거나 날마다 만나는 우정 이상으로 진전할 수 없었다. 이 기이한 문화에 관해 현재 남아 있는 문헌은 다 운문으로 쓰여져 있으며, 그것도 매우 어려운 압운을 붙이고 있다.
이 즉흥 시인들의 담시에서 우리가 끌어내는 관념이 애매하더라도 놀라울 것이 못 된다. 결혼계약서까지도 운문으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1328년의 정복 이후로 교황은 때때로 이단이라는 이유로 모든 방언으로 쓰여진 책을 불살라 버리도록 명령했다. 교활한 이탈리아인은 라틴어를 공인하였다. 재치 있는 인간들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언어라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일을 1822년에 다시 한 번 해주었더라면, 퍽 유익한 조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이처럼 공개하는 것은, 언뜻 보면 정열과는 양립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만일 귀부인이 그 기사에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의 무덤에 참배하고 오세요. 그리고 3년 후에 돌아오세요.” 하고 말한다면, 애인은 곧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오늘날 명예나 체면에 관한 일로 약점을 보이는 것과 똑같은 굴욕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의 말은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감정의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함을 갖고 있었다.
이런 풍속이 진정한 문명을 발달시키게 되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 중세 봉건시대의 공포로부터 벗어났을 뿐인데도, 여성들이 오늘날처럼 합법적으로 압제를 받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랑 때문에 몸을 망치는 일이 많고 매력도 사라지기 쉬운 이 연약한 존재가, 자기와 가까운 남자들의 운명의 결정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3년 동안의 팔레스티나로 추방, 기쁨으로 충만한 개화된 생활에서 십자군 진영의 광신과 권태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열렬한 기독교가 아니면 매우 참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애인에게서 매정하게 버림을 받는 파리의 여자가 그 남자에게 할 수 있는 일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체면을 존중하는 파리의 여성은 처음부터 애인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신중성이 오늘의 여성에게 정열적인 사랑에 몸을 내던지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신중성(나는 이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이 육체적인 사랑으로 그것을 복수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위선이나 금욕주의에서는 발전했으나, 진정한 미덕을 존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자연에 등을 돌리면 벌을 받아야 하므로 지상에는 그만큼 행복이 적어지고 고매한 정신작용이 더 감소되었을 뿐이다.
10년 동안 가까이 교제해 온 후에, 여자가 32세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 가엾은 애인을 버린 남자가 있다면 그는 이 프로방스에서는 명예를 잃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수도원 같은 데서 고독에 파묻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매하지 않고 다만 조심스러울 뿐인 남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정열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는 편이 영리한 것이다.
이상은 모두 추측에 의한 것이다. 정확한 관념을 주는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풍속은 특수한 사실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당신은 애인을 화나게 한 시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2년 동안 이 남자를 정말 속에 빠뜨려 놓은 후에, 그녀는 그의 수많은 편지에 비로소 답장을 썼다. 만일 그가 손톱을 빼내어 그것을 그녀에게 사랑과 성실을 맹세한 50명의 기사의 손으로 바치게 한다면 용서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시인은 곧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았다. 각자 애인에게 미움을 받지 않고 있는 50명의 기사가 성대한 의식을 갖추고 그 손톱을 노한 연인에게 바치러 갔다. 그것은 마치 왕자가 그 나라의 한 거리에 입성하는 것 같은 당당한 행렬이었다. 사랑하는 남자는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복을 입고 멀리서 자기 손톱의 뒤를 따랐다. 긴 의식이 끝난 후에 귀부인은 그를 용서하였다.
그는 비로소 이 부인과 사랑에 빠졌을 때와 같은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은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분명히 2년 동안의 불행이 그의 참된 정열을 입증하였다. 그리하여 설사 그 정열이 전과 같은 힘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도 그것을 재생시켰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그것은 모두가 정의의 관념에 의거하여 남녀 간에 행해진 사랑스러운 기지로 가득 찬 은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은밀함이라고 말한 것은, 어느 때나 정열적인 사랑은 그다지 흔치 않은 예외로, 그 법칙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방스에서는 타산적인 것, 이성에 지배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양성 간의 정의와 평등의 권리에 입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불행을 방지하는 수단으로서 칭송하고 싶다. 루이 15세의 절대 군주제에서는 이와 반대로 남녀 사이를 악랄하고 음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섬세하고 까다로운 운율에 매어 있는 아름다운 프로방스 말은 결코 대중의 말은 아니었으나, 상류사회의 풍습은 자연히 하류사회로 옮아갔던 것이다. 당시의 프로방스의 하류사회는 상당히 유복했으므로 조금도 거친 데가 없었다. 상업이 성하여 그들의 생업은 점점 피어나갔다. 지중해 연안에 사는 주민들은 이 바다에 배를 띄워 흥망을 거는 장사를 하는 편이 군주에 순종하여 강도질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9세기). 이윽고 10세기의 프로방스인은 아라비아인과 무역을 하면 약탈이나 폭행 또는 투쟁보다도 즐거운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중해는 유럽 문명의 요람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후가 좋은 이 아름다운 해안은, 음침한 종교나 법률이 없었으므로, 더욱 그러하였다. 당시의 프로방스 사람들의 매우 쾌활한 정신은 기독교 세례를 받아도 변질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같은 결과의 싱싱한 모습을 이탈리아의 각 도시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역사는 한결 분명한 형태로 전해져서 다행히 단테와 페트라르카와 같은 시인과 훌륭한 그림을 남겼다.
프로방스에는 ≪신곡≫과 같은, 당시의 풍습이 전부 상세히 반영된 위대한 시를 남기지는 못했다. 그들은 이탈리아인에 비하면 정열이 부족하고, 명랑성은 뛰어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그 이웃인 스페인의 모르인으로부터 생활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 사랑은 행복한 프로방스의 성관의 연희와 즐거운 모임에 군림하고 있었다.
당신은 오페라 극장에서 로시니의 아름다운 가극의 종곡을 들은 적이 있는가? 무대는 모두 쾌활함과 아름다움과 이상적인 화려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인생의 어두운 반면에서 천 리나 멀어진 것처럼 생각된다. 오페라가 끝나고 막이 내리면 관객은 집으로 돌아간다. 샹들리에는 걷어 올려지고 등불이 꺼진다. 남포등의 퀴퀴한 냄새가 장내에 퍼진다. 다시 막이 반쯤 올라간다. 허술한 차림을 한 인부들이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젊은 여자들이 등장했던 장소를 초라한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
십자군의 툴루즈 점령이, 프로방스 왕궁에 미친 결과도 이와 비슷하였다. 사랑과 우아와 쾌활 대신 북방의 야만인과 성 도미니크가 침입했다. 나는 열광에 사로잡힌 당시의 종교재판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이 책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이 야만인은 우리 프랑스인의 조상이었다. 그들은 살육하고 약탈했다.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을 오직 파괴함으로써 얻는 즐거움 때문에 파괴했다. 조금이라도 문명의 냄새가 나는 것에 대해서는 야만적인 분노를 터뜨렸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남국의 말을 한마디로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분통이 터졌다. 가공할 성 도미니크의 가르침을 받아 미신적이던 그들은 프로방스인을 죽이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프로방스인에게는 만사가 끝장났다. 사랑도 쾌활도 시도 벌써 없었다. 그들은 1235년의 정복으로부터 20년도 지나지 않아서 우리 조상인 프랑스인과 똑같을 만큼 미개하고 포악해진 것이다.
2세기 동안 프로방스의 상류계급 사이에 행복을 이루고 있던 이 매력적인 문명 형식은 대체 어디서 이 세계의 한 모퉁이에 떨어졌던 것일까? 그것은 분명히 스페인의 무어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제52장 12세기의 프로방스
나는 아래에 프로방스어로 쓰여진 사본의 한 이야기를 번역하려고 한다. 사건은 1180년경에 일어나 1250년에 쓰여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당시의 풍속이 그대로 문체에 나타나 있다. 현대어로 고치지 않고 직역하는 태만을 양해하여 주기를 바란다.
레이몽 드 루시용 전하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용감한 영주이며, 부인은 당대의 미인 마르그리트였다. 그녀는 재치나 우아함에 있어서도 특출하였다.
어느 날 카브스 뗑셍의 한 기사의 아들인 기욤 드 카브스뗑이라는 사람이 레이몽의 성곽에 찾아와서 전하에게 자신을 시동으로 써달라고 간청했다. 레이몽은 기욤이 잘생기고 재치 있는 것을 보고 궁정에 두기로 했다.
기욤은 정성껏 일했으므로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이윽고 주인으로부터 충성을 인정받아 부인 마르그리트의 시동이 되었다.
기욤은 언동을 조심하여 더욱 충성을 다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르그리트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기욤의 말과 행동이 그토록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부인이 기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욤, 만일 어떤 여자가 너를 사랑하게 되면, 너도 그 여자를 사랑하겠느냐?”
기욤은 부인의 마음속을 알아차리고 떳떳이 대답했다.
“그럼요, 그 태도가 진실하면 사랑하고 말고요.”
“성 요한에게 맹세하고 말하지만, 정말 훌륭한 대답이로구나. 그럼 여자의 태도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하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겠어? 내가 한번 시험해 보자.”
“부인의 뜻대로 하시지요.”
하고 기욤은 대답했다.
그는 달콤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자 사랑의 신이 곧 그에게도 전해 왔다. 그리하여 이 신의 속삭임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어 그는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는 즐거운 시며 무용과 사랑의 노래를 지어 읊조렸다. 그리하여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특히 사모하는 부인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사랑의 신은 마음이 내키면 그 종복들에게 곧잘 선심을 쓴다. 기욤에게도 상을 줄 심산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인에 대한 생각밖에 하지 않게 되고, 부인도 밤낮 기욤의 재치와 용기에 대한 생각만으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은 기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욤, 너는 요즘의 내 태도를 진실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거짓이라고 생각하느냐?”
기욤이 대답했다.
“부인, 신에게 맹세하고 말하지만, 제가 부인을 모시게 된 이후로, 세상에 부인처럼 훌륭한 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이나 태도에 부인만큼 진실한 분이 없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신념입니다.”
부인이 대답했다.
“기욤, 만일 하느님께 맹세하고 말하는데, 이후에도 너는 절대로 나한테서 버림을 받지 않을 게다. 네 마음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부인은 말을 마치고 팔을 벌려 정답게 기욤을 껴안고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 방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는지 남들이 곧 두 사람 사이에 대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기욤은 마르그리트 부인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것은 온 세상 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곧 레이몽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레이몽은 몹시 비통하게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부하를 잃는 것도 슬펐지만, 그보다도 아내의 불명예를 생각해서였다.
어느 날 기욤은 시종 한 명을 데리고 매사냥을 갔다. 레이몽이 그의 간 곳을 묻자 신하 한 사람이 매사냥을 갔다고 대답하고, 다른 신하는 그가 간 곳을 소상히 알렸다. 레이몽은 칼을 가슴에 품고 혼자 기욤이 간 곳을 향해 말을 몰았고 곧 그를 발견했다. 기욤은 레이몽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레이몽을 맞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혼자서 오셨습니까?”
레이몽이 대답했다.
“기욤 너와 함께 사냥을 하려고 했다. 아직 하나도 잡지 못했느냐?”
“네, 아직 못 잡았습니다. 어디 짐승이 눈에 띄어야지요. 속담에도 없는 짐승은 잡을 수도 없다고―”
“그런 말은 집어치워라. 나에 대한 충성심이 진심이라면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여라.”
“하나님께 맹세하고, 바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변명을 듣고 싶지 않다. 묻는 말에 대답하면 돼.”
“주인님, 무슨 말씀이든 물어 주십시오.”
레이몽이 물었다.
“기욤, 하느님과 신앙에 맹세코 대답해라. 네가 사랑의 신에 사로잡혀 사랑의 노래를 지어서 부르게 된 애인은 정말 있느냐?”
“주인님, 제가 사랑의 신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어떻게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랑의 신의 종복입니다.”
“옳은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애인은 누구냐?”
“주인님,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애인의 이름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인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베르나르 벤타두르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분별심이 쓸모 있을 때가 한 번은 있다.
누가 내 사랑의 기쁨을 물었을 때
으레 거짓말로 넘어간 것.
알뜰히 사랑을 간직한 자가
아무 도움도 청할 수 없는데
남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결코 영리한 일이 못 되고
오히려 지혜가 모자라는 어리석은 일.
레이몽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맹세코 너에게 힘이 되어주마.”
기욤이 대답했다.
“주인님, 제가 사랑하고 있는 여자는 마르그리트 마님의 여동생으로, 저도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힘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훼방은 하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자, 내 손을 잡아라.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써주마.”
레이몽은 덧붙여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처제의 집으로 가자. 바로 저기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리에트 성을 향해 떠났다. 성에 도착하자 마르그리트의 동생 아그네스와 그녀의 남편 로베르 드 타라스콩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레이몽은 아그네스의 손을 잡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아그네스, 그대는 사랑을 하고 있소?”
“네.”
“상대는 누군데?”
“말할 수 없어요. 그런 건 묻는 게 아녜요.”
그러나 그녀는 레이몽의 성화에 못이겨 마침내 기욤 드 카프스뗑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은, 기욤이 처량한 생각에 잠겨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이몽이 기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레이몽은 이 대답을 듣고 무척 기뻐하였다. 아그네스는 이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잘했다고 대답하고 나서 기욤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하였다. 그녀는 곧 방으로 기욤을 불러들여 오랫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므로 레이몽은 기욤이 분명히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어 흡족했으며 남들의 소문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그네스와 기욤이 이윽고 방에서 나오자 곧 성대한 만찬회가 열렸다. 아그네스는 식사를 마친 후에, 자기 방문 옆에 2인용 침대를 갖다 놓게 하여, 마치 무슨 속셈이 있는 것처럼 꾸몄기 때문에 레이몽은 그가 처제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튿날 성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정중한 배웅을 받고 루시용에 돌아왔다. 레이몽은 부인에게 가서 기욤과 처제와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부인은 밤새도록 슬픔에 잠겨 있다가 이튿날 기욤을 불러 냉정한 태도로 배반자, 더러운 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기욤은 결코 자기는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날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러자 부인은 곧 동생을 불러 기욤의 말이 사실인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기욤에게 다른 여자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노래를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기욤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었다.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이토록 달콤한 생각이여.
레이몽은 이 노래가 기욤이 자기 부인을 위해서 지었다는 것을 알고 기욤을 멀리 성 밖으로 데리고 가 목을 잘라서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심장을 도려내어 그 바구니에 넣어 가지고 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 심장을 구워서 식탁에 놓게 하고 부인에게 슬그머니 권했다. 레이몽은 부인이 그것을 다 먹고 나자, 지금 당신이 먹은 심장은 기욤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목을 꺼내어 보이고, 맛이 좋았느냐고 물었다. 부인은 기욤의 목을 보고 나서 말했다. “네. 참 맛있었어요. 앞으로 어떤 음식을 먹어도 이 삼장 맛은 내 입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레이몽은 칼을 빼들고 부인에게 덤벼들었다. 부인은 재빨리 도망쳐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이 사건은 카타로니아와 아라공 왕의 영지 전체에 알려졌다. 알퐁스 왕과 이 지방의 모든 영주들은 기욤의 죽음과 레이몽 때문에 비참하게 죽은 부인을 애도하였다. 그들은 레이몽에게 공격을 가했고, 기욤과 부인의 유해를 아라공의 알피냐크라는 마을의 성당 앞 기념비 아래 묻었다. 그리고 사랑에 충실한 이 나라의 모든 남녀들은 신에게 두 사람의 명복을 빌었다. 아라공 왕은 레이몽을 잡아 옥에 가두어 죽게 하고 그의 모든 재산을 기욤의 친척과 죽은 부인의 친척에게 나누어 주었다.
제53장 아라비아
참된 사랑의 조국과 전형을 보고자 한다면 아라비아의 베드윈족(사막에 사는 아라비아인―역주)의 검은 천막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고독과 아름다운 기후가 사람들에게 고귀한 정열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만큼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는 그런 정열 말이다.
남자가 사랑의 모든 형태를 경험하려면, 우선 애인들 사이가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슬픈 유럽에는 그 평등이 없다. 버림을 받은 여자는 불행하게 되고 명예를 잃었다. 그런데 아라비아의 천막 아래서는 한번 세운 맹세는 깨뜨릴 수 없다. 그 죄로 곧 경멸과 죽음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 민족에 있어서는 관용이 신성시되어, 남에게 주기 위해서는 훔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날마다 위험이 따르므로 정열적인 고독 속에 살아야 한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한자리에 많이 모여 있어도 거의 떠들지 않는다.
이 사막의 주민들에게는 변화가 없다. 모든 것이 여전하고 확고부동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들의 독특한 풍습을 잘 알지 못함으로 빈약한 스케치밖에 할 수 없으나 아마도 호메로스 시대부터 존재해 온 것 같다. 그것이 처음으로 기록에 남게 된 것은 기원전 600년경 그러니까 샤를마뉴의 2세기 전의 일이다.
우리 유럽인이 십자군을 동원하여 동유럽 여러 나라를 괴롭히던 당시에, 동유럽인들의 눈에 야만인으로 보인 것은 우리 쪽이었다. 우리의 풍속 중에서 고상한 것은 모두 십자군과 스페인의 무어인에게 힘입고 있다.
우리가 자신을 아라비아인과 비교하는 것을 보고 평범한 인간의 자존심을 웃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예술은 그들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 우리의 입법도 뛰어나지만 우리가 가정의 행복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 그들보다 뛰어난지는 의심스럽다. 우리는 언제나 이 행복을 위한 성실과 단순성이 부족하다. 가정 관계에 있어서는 속이는 자가 먼저 불행하다. 그에게는 마음의 평정이 있을 수 없다. 언제나 불의를 저지르므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오래된 역사적인 기념물의 기원을 살펴보면, 아라비아인은 먼 옛날부터 많은 독립된 부족으로 갈라져 사막을 방황했던 모양이다. 이들 부족은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다소 우아한 풍습을 지니게 되었다. 관대함은 그들의 공통된 특성이었으나 부족은 그 번영한 정도에 따라, 새끼양 4분의 1의 선물로 표시되기도 하고, 100마리의 낙타로 표시되기도 했다.
아라비아의 영웅적인 세기, 그 관대한 영혼이 재치나 세련된 감정에 더럽히지 않고 빛나던 시대는 마호메트의 바로 전 시대였다. 이것은 우리 기원으로 말하면, 5세기경의 베네치아 시의 설립과 클로비스의 치세에 해당된다.
나는 우리 자존심에 간청한다. 아라비아인이 남긴 사랑의 노래며 ≪천일야화≫에 묘사된 고상한 풍습과 클로비스의 역사가 그레고라르아루 드 토우르, 샤를마뉴의 역사가 에지나르의 페이지마다 피로 물든 그 혐오스러운 공포를 비교해 보라.
마호메트는 청교도였다. 그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 쾌락을 금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나라에서 사랑을 죽여버렸다. 그의 종교가 다른 회교의 나라만큼 그의 요람지인 아라비아에서 보급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프랑스군은 이집트에서 ≪노래 책≫이라는 인 폴리오판(2절 4면판―역주) 책 네 권을 갖고 들어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노래를 지은 시인의 전기.
2. 노래의 본문. 시인은 자기의 흥미를 끈 모든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애인을 노래하고 자기 말과 활을 찬미하고 있다. 이 노래들은 흔히 작자 자신의 사랑의 편지이기도 하다. 작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기의 모든 애정을 충실히 묘사해서 바친 것이다. 때로는 자기의 활과 화살을 불태우지 않을 수 없었던 추운 밤까지도 노래하고 있다. 아라비아인은 집이 없는 백성이다.
3. 노래를 작곡한 음악가의 전기
4. 악보. 이 악보는 우리에게는 마치 상형문자와 비슷하다. 아마도 이 음악은 우리에게 영원히 미지로 남을 것이다. 설사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
이밖에 ≪사랑으로 죽은 아라비아의 이야기≫라는 또 다른 책이 한 권 있다. 이런 진귀한 책은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몇몇 학자들은 그럭저럭 읽을 수 있을 테지만, 그들은 학구적인 습성 때문에 마음이 메말라 있다. 이러한 기념물은 그 오랜 역사와 거기 묘사되어 있는 풍습의 기이한 아름다움 때문에 매우 흥미롭지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역사적인 사실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아라비아인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특히 마호메트 이전에는 카바(Caaba), 즉 아브라함의 집에 참배하기 위해 메카로 갔다. 나는 런던에서 이 성도의 정확한 모형을 본 적이 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사막 한복판에 던져진 700~800채의 집이 있고,이 도시의 한 모퉁이에 거의 정방형의 커다란 건물이 카바를 둘러싸고 있다. 이 건물은 길다란 회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라비아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순례를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이 회랑은 아라비아의 풍습과 노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몇 세기에 걸쳐 남녀가 서로 데이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성가의 합창에 맞추어 천천히 카바를 순례했다. 한 바퀴 도는 데 45분이 걸리는데 이것을 하루에 몇 번씩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방의 사막에서 모여든 남녀들의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아라비아의 풍습이 진보된 것은 이 희망에서였다. 때로는 사랑을 하는 남녀의 양친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아라비아의 청년들은 부모나 형제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는 젊은 처녀와 함께 성스러운 순례를 하면서 여러 가지 사랑의 노래를, 자기의 정열을 상대방에게 전했던 것이다. 물론 이 민족의 관대하고 감상적인 풍습은 이미 그들의 유랑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라비아의 은근함은 이 카바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카바는 그들의 문학의 발생지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문학은 처음에 시인의 정열을 단순히 강력하게 표현했다. 그 후에 시인은 애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아름다운 말을 쓰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문장의 수식이 생겨났다. 이것을 무어인이 스페인에 가져갔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이 민족의 책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나는 아라비아인이 연약한 여성을 존경하는 증거를 그 이혼의 형식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은 여자는, 남편이 없는 사이에 천막을 거둬서 입구가 반대쪽이 되도록 다시 친다. 이 간단한 의식이 두 사람을 영원히 갈라놓는 것이었다.
단편
예븐 아비하지라트가 편찬한 ≪사랑의 시집≫이라는 표제의 아라비아 책에서 초역함.
(왕실도서관소장 사본 1461-1462호)
자파르 에라파자디의 아들 모하메트는 이야기한다. 소하일의 아들 에라바스가 임종이 임박한 자밀의 병상에 문병하러 갔더니, 자밀은 이미 자기 영혼을 하느님께 돌려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밀은 말하였다.
“오, 소하일의 아들이여, 이곳에 한 사나이가 있는데, 그는 술을 마신 일도 없고 부정하게 돈을 번 일도 없다. 그리고 신이 살생을 금지한 생물을 까닭 없이 죽인 일도 없어. 알라의 신 외에 신이 없고, 마호메트가 알라신의 예언자임을 믿어 왔네. 이런 사나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나?”
“물론 그는 구원을 얻어 천당으로 갈 걸세. 그런데 자네가 말하는 그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바로 나야.”
“아, 그래? 난 자네가 이슬람교의 신도인 줄 몰랐네. 자네는 20년 전부터 보타이나를 사랑하고 노래까지 지어 찬송하지 않았나?”
“나는 오늘이 저세상에 첫발을 들여 놓는 날이네. 그렇지만 내가 보타이나에게 나쁜 짓을 했다면, 나는 이 마지막 심판 날에 마호메트의 관용을 바라고 싶지는 않네.”
자밀과 그의 애인 보타이나는 아라비아 족에서도 사랑으로 유명한 베누 아즈라 족 출신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속담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신도 이처럼 정다운 여인을 지어낸 적이 없었다.
아구바의 아들 사이드는 어느 날, 한 아라비아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
“사랑을 위해 죽고 사는 나라의 사람이오.”
“그럼 당신은 아즈라 족이군요.”
“그렇소. 카바의 신에게 맹세코.”
“그런데 당신네들은 어째서 그렇게 사랑을 하오?”
“우리나라 여자는 아름답고 젊은이들은 순결하니까.”
하고 아라비아 사람은 대답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아루아 벤 헤잠에게 물었다.
“당신네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오?”
“신에게 맹세코 정말이오. 나는 우리 부족 중에서 오직 사랑 병 때문에 죽은 젊은이를 30명쯤 알고 있소.”
어느 날 베누 파자르트 부락의 아라비아인이 베누 아즈라 부족의 아라비아인에게 말했다.
“당신네 베누 아즈라 족은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을 아름답고 고상한 일로 생각하고 있소.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커다란 약점이자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소? 당신들은 훌륭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오히려 어리석고 연약한 남자에 불과하오. 그렇지 않소?”
아즈라 족의 아라비아인이 대답했다.
“만일 당신이 우리나라 여자의 큰 눈―긴 속눈썹에 덮힌, 화살을 쏘는 듯한 검고 큰 눈을 보고 그녀의 눈웃음과 입술 사이로 반짝이는 흰 이빨을 본다면, 당신도 그런 소리는 하지 못할거요.”
아브달라 엘 자구니의 아들 아부 엘 하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교회의 남자가 기독교도의 처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는데 부득이한 일로 사랑의 의논 상대인 친구와 함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그는 그 나라에서 볼 일이 지체되는 동안에 죽을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임종이 가까워졌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되었는데, 만일 내가 회교도로서 죽으면 저 세상에 가서도 그녀를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이네.”
그래서 그는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죽었다. 그 친구가 기독교인 처녀의 집에 가 보았더니, 그녀도 중한 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이제 이 세상에서 그분을 만나뵐 수 없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저 세상에 가서는 만나 뵙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알라 신 외에 신이 없고 마호메트가 신의 예언자임을 맹세해야 합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죽었다. 신이여 여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엘테미니가 말한다. 타그레브의 아라비아인의 부락에 기독교를 믿는 부잣집 처녀가 회교도의 젊은이를 짝사랑했다. 그녀는 재산도, 몸에 지닌 값진 장식품도 그에게 다 바치겠다고 했으나, 남자의 사랑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망한 나머지 그녀는 어느 조각가에게 100디나르를 주고 사랑하는 젊은이의 조각을 새기게 했다. 그녀는 조각가가 만든 조각을 어떤 장소에 세워놓고 날마다 찾아가서 그 조각에 입을 맞추고 나서 하루 동안 그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리면 날을 보내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면 그녀는 조각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오랫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런 일을 되풀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젊은이는 죽었다. 그녀는 남자의 시체에 입을 맞추고 다시 조각 곁에 돌아와 여느 때처럼 인사를 하고 키스를 한 다음, 그 옆에 누웠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유서를 써 놓고 손을 그 위에 얹은 채 그녀는 숨져 있었다.
야멘 나라의 우에다는 아라비아인 사이에서 미남으로 유명했다. 그와 아브르엘 아지스 딸 옴 엘 보나인이 우아리드 벤 아브드엘 마레크의 아내가 되었을 때, 우에다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광란과 비관 속에 나날을 보내다가 시리아로 가서 마레크의 아들 우아리트의 집 주위를 헤매다가 한 여자를 만나 친해졌다. 그는 그녀를 믿어도 좋다고 생각되자 옴 엘 보나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저의 집 마님인 걸요.”
“그래? 실은 당신의 마님은 내 사촌누이야. 내 소식을 전하면 매우 기뻐할 거야.”
“그래요? 그럼 전해 드리죠.”
그녀는 곧 우에다의 소식을 옴 엘 보나인에게 전했다.
“뭐? 우에다가 살아 있다구?”
“네, 정말이예요, 마님.”
“그럼 내가 사람을 보낼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일러 줘.”
부인은 우에다를 몰래 집안에 데리고 들어와 옷장 속에 숨기고 남의 눈을 피해 사랑을 즐기고 누가 알아차릴 것 같으면 다시 옷장 속에 숨기곤 했다.
어느 날 우아리드는 진주를 입수하여 하인에게 일렀다.
“이 진주를 보나인에게 갖다 드려라.”
하인은 진주를 받아들고 보나인의 방으로 갔는데, 때마침 보나인은 우에다와 함께 있었다. 하인은 얼른 방안의 광경을 보았으나 보나인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인은 부인에게 진주를 전하고 용돈을 졸랐지만 그녀는 거절하고 하인을 꾸짖었다. 하인은 부인을 원망하고 우아리드에게 자기가 본 광경을 이야기하고 우에다가 숨은 옷장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거짓말 말아. 이 에미 없는 후레자식아. 너 나한테 거짓말 한 거지?”
우아리드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곧 보나인의 방으로 뛰어갔다. 방 안에는 옷장이 여러 개 있었다. 그는 하인에게서 들은 옷장에 걸터앉아 아내에게 말했다.
“옷장이 하나 필요한데.”
“다 당신 것 아닌가요. 내 몸과 마찬가지로.”
“그럼 내가 걸터앉은 이걸 갖고 가야겠군.”
“그렇지만 그 속에 여자에게 제일 소중한 게 들어 있어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나한테는 옷장만 필요하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보나인은 대답했다.
우아리드는 하인 두 사람을 불러 곧 옷장을 밖으로 내가고 구덩이를 깊숙이 파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옷장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네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 그게 정말이라면 너는 동족하고도 영영 이별을 해야 겠다. 너에 대한 소문은 땅 속에 묻어버려야지. 만일 헛소문이라고 해도 궤짝 하나 땅에 묻었다고 나쁠 것 없지 않느냐. 나무를 묻은 것뿐이니까.”
그는 말을 마치고 옷장을 구덩이에 밀어 넣고 흙과 돌을 덮게 했다. 그 후 보나인은 날마다 몰래 이곳에 와서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그녀는 땅에 얼굴을 댄 채 죽어 있었다.
제54장 여자 교육에 대하여
우연과 어리석은 남자의 자존심의 결과인 소녀 교육의 현상을 보면 우리는 당분간 그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물론, 우리 남자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가장 빛나고 풍부한 재능을 그녀들 속에 잠재워 두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 일생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외치지 않는 자가 있을까?
여자는 고작 재질을 닦아
저고리와 치마의 구별만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유식한 여인≫ 제2막 제7장-
파리에서는 “대단히 얌전한 따님이군요.”라는 말이 미혼인 딸에 대한 최대의 찬사이다. 그리고 양과 같은 온순한 습성에 따르면 어리석은 구혼자에게 이 말처럼 효과가 있는 것은 없다. 그 후 2년이 지나서 어느 흐린 날에 이 남자가 아내와 마주 앉아, 모자를 쓴 채 키 큰 하인 세 사람의 시중을 받으며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싶다.
1818년에 미국에서는 버지니아주의 흑인에게 글자를 가르쳐 준 자는 34대의 매를 맞는 형벌에 처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만큼 효과적이고 현명한 법률은 없다.
미국 자신이 조국의 노예이던 시대와 평범하게 살게 된 지금과 어느 쪽이 조국을 위해 유익했을까? 그리고 자유인의 능력이, 그가 노예로 있을 때의 두세 갑절의 가치가 있는 이상, 그 자유의 사상에 대해 왜 똑같은 말을 할 수 없었던가?
젊은 처녀들에게 노예교육을 실시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가 가르치고 싶지 않은 것만 그녀들이 알고 있음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일부의 남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들이 받은 약간의 교육으로 우리에게 반항하지 않을까?”
나폴레옹이 국민에게 무기를 주지 않고 과격한 왕당파가 학생의 상호 교육(상급생이 하급생을 가르치는 교육법―역주)을 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에게 무기를 주고 압박을 계속해 보라. 그는 기회를 엿보다가 그 무기로 당신을 겨눌 만큼 배은망덕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1770년경의 수도원에서처럼 아베 마리아나 음탕한 노래로 딸들을 백치로 만드는 것이 허용되더라도 역시 몇 가지 이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1.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 여자는 남은 가족을 돌봐야 하지 않는가.
2. 그녀는 어머니로서 미래의 폭군이 될 아들에게 최초의 교육을 해야 하지 않는가. 어린이의 성격은 이 교육에서 형성되고 ‘저 길보다 이 길에서 행복을 찾도록’ 방향이 제시된다. 이것은 보통 네다섯 살때까지 이루어진다.
3. 우리가 아무리 우쭐대도 가정의 자질구레한 일에 대해서는(이것이 우리 남성의 행복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정열이 식었을 경우에 우리의 행복은 날마다 자질구레한 근심 걱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생애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아내의 의견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우리로서는 그런 영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20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반복되면 당할 수 없다. 1년 동안 똑같은 말을 듣고도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로마인 같은 기력이 있는 남자가 어디 또 있겠는가? 세상에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남편이 많은데, 그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며 결코 정의나 평등의 관념에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남자 쪽에서는 할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으므로 아내는 그것을 남용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4. 끝으로 사랑(남국이라면 12년에서 15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있어서는 남성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에 달려있지 않은가? 여자가 터무니없이 자존심이라도 내세우면 우리는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노예가 왕좌에 올라앉았을 때 어찌 권력을 남용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여자의 가면적인 애정이나 자존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항의는 무의미하다.
“남자는 전제군주이다. 그러나 다른 전제군주가 얼마나 이치에 맞는 충고를 존중하는가를 보라.”
그러나 전능자인 남자가 좋아하는 충언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즉 그의 권력을 증가시키는 것을 가르치는 충고이다.
가엾은 젊은 아가씨들은 이처럼 자기들을 압박하고, 더욱 압박하기 위해 자기들을 타락하게 만드는 전제군주에 대해 은총과 훈장으로 보답을 받을 수 있는 유익한 충고를 하는 리에고(당시 페르디난드 7세에 반항한 자유주의자―역주)나 키르가(나폴레옹과 싸운 스페인 장군―역주)와 같은 자들을 어디서 발견하면 좋을까? 포를리에(나폴레옹과 싸운 스페인 장군―역주)처럼 교수대에 처형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혁명이 성공을 거두는 데에도 몇 세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불행하게도 최초의 실험이 반드시 현실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처녀의 재질을 발전시키고 성격을 훌륭히 기르는 참된 의미의 훌륭한 교육을 해 보라. 이윽고 그녀는 자기가 다른 여자보다 뛰어나 있음을 알고 교만해질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불쾌하고 가장 어리석은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남자는 일생을 함께 하려는 사람으로서 교만한 자보다 차라리 하녀를 택할 것이다.
울창한 숲 속에 한 그루의 어린 나무를 심어보라. 주위의 나무에 공기 소통과 햇살에 가려 그 나무의 잎사귀는 시들고, 형태는 길쭉하고, 괴상한 모양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아예 전체를 동시에 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책을 읽을 줄 아는 것으로 콧대가 높아진 여자란 어떤 인간일까?
현학자는 2000년 이래 여자는 남자보다 발랄한 재질을 갖고 있으며 생각이 섬세하고, 남자는 여자보다 견실하고 주의력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옛날 파리의 한 어리석은 사나이가 베르사유의 정원을 산책하면서, 자기가 목격한 바에 의해 나무는 형태가 갖추어진 채로 돋아난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녀가 소년보다 체력이 떨어진다. 이것은 재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볼테르나 달랑베르는 완력에 있어서도 당대의 일인자였다. 그러나 십 세의 소녀는 같은 나이의 장난꾸러기 소년보다 훨씬 영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녀가 20세가 되면 어리석고 서툴고 겁이 많은 거미처럼 비겁해지는 데 비해 장난꾸러기 소년은 재치가 뛰어난 청년이 되는 것일까?
여자는 우리가 가르치고 싶지 않은 것만 알고 있다. 즉 그것은 생활의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부잣집에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불리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고 이미 돈 때문에 부패하고 생기를 잃은 사람들이나 하녀들에게 둘러 싸여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왕자만큼 바보는 없을 것이다.
자기를 노예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일찍 눈이 뜨인다. 그녀들은 모든 것을 다 보지만, 무지함으로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는 30세의 여자가 15세의 소년보다 무식하다. 그리고 50세의 여자는 25세의 남자보다 분별력이 없다. 루이 14세의 가장 어리석은 행위를 찬미하고 있는 세빌리에 부인을 보라. 그리고 데피네 부인의 유치한 이론을 보라. 여기서 사람들은 여자는 어린애를 길러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모른다. 나는 “기른다”는 말은 부정하지만, “돌본다”는 말은 찬성한다. 여자는 그 외에 집안 살림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지식에 있어서 15세의 소년을 따를 만한 여가가 없는 것일까? 남자는 재판관, 은행가, 변호사, 상인, 의사, 그리고 승려 등의 일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폭스(1749~1806 영국 정치가―역주)의 논문도 읽고 카몽스(1525~1580 포르투갈의 시인―역주)의 ≪루시아다스≫를 읽을 만한 여자쯤은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북경(파리를 가리킴)에서 만찬회에 초대된 노 대신의 비위를 거슬린 가엾은 신문기사를 그럴 듯한 이유를 부쳐 투옥하여 파멸시키는 수단을 찾아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재판소에 출근하는 법관은, 가계를 처리하고 딸에게 양말 뜨는 법을 가르치고, 댄스와 피아노의 연습을 돌봐주고, ≪코티디엔느≫ 신문을 가져온 교구의 신부를 접대하고, 리슐리가에 모자를 사러 갔다가, 튈르리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그의 아내의 분주함에 비해 바쁜 점에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 법관은 고상한 일에 쫓기면서도 아직 아내가 튈르리 공원에서 하고 있는 산책을 할 여유가 있다. 그리고 만일 그가 국가를 다스리는 권력과 친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배하는 신과 친밀한 사이라면, 그는 여성의 행복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 더 많은 수면을 그들에게 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기도할 것이다. 현재의 사회 상태에 있어서는, 남자에게 행복과 부의 원천인 여가도 여자에게는 결코 유익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훌륭한 법관이 우리들로부터 제거하려는 그 가슴 아픈 자유의 하나가 되어 있다.
제55장 여자 교육에 대한 항의
그러나 여자에게는 자질구레한 집안일이 있지 않은가. 우리 연대장 S대령에게는 네 명의 딸이 있는데, 최상의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다. 즉 하루 종일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갔을 때, 그녀들은 내가 나폴리에서 선물로 갖다 준 로시니의 가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로와이요몽의 성경을 읽기도 하고 역사책인 르 라고와의 운문으로 된 연대표를 암기하고 있었다. 지리도 잘 알고 자수도 잘 놓는다. 이 귀여운 딸들은 저마다 하루에 8수쯤 벌 수 있을 것이다. 1년을 300일로 치면 넷이서 180프랑을 벌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녀들의 선생 한 사람 몫의 사례금도 되지 않는다. 그녀들은 1년에 180프랑을 위해서 인간기계가 획득해야 할 시각을 영원히 잃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유럽에서 해마다 출판되는 10권 내지 12권의 좋은 책을 재미있게 읽게 되면,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대서양의 기슭에 나무를 심으면, 파도의 운동을 멈추게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과 같다. 교육 만능이란 이런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년 전부터 온갖 교육에 대하여 같은 항의가 반복되고 있다.
파리의 여자는 1720년 로와 섭정시대보다 1820년 쪽이 도의심이 더 강하고, 또 당시에 가장 돈 많은 세무원의 딸보다 현대의 가난한 변호사의 딸이 오히려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가사를 돌보는 의무가 그만큼 소홀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가난이나 병, 체면, 본능이 가사를 돌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항의는 마치 장교가 너무 상냥해지면 승마술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과 같다. 장교가 조금이라도 승마술을 소홀히 하면 그는 곧 말에서 떨어져 팔을 삐게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있다.
사상을 지니게 되면 남녀를 막론하고 좋든 나쁘든 똑같은 효과를 준다. 허영심은 우리에게 전혀 필요치 않을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도시의 소시민의 경우가 좋은 예이다. 적어도 허영심이 참된 가치―사회를 유일하게 하거나 혹은 즐겁게 하는―를 근거로 하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모든 일을 변모시킨 혁명의 영향으로 어리석은 자들은 20년 전부터 여자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역시 여자다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꽃을 기르고, 식물 표본을 만들고, 카나리아를 기르는 등의 일 말이다. 그들은 이것을 순수한 즐거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순수한 즐거움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이런 일은 어리석은 여자에게 맡겨 두도록 하자, 집주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시를 짓는 영광을 어리석은 남자에게 맡기는 것처럼, 그러나 로랑 부인이나 하친슨 부인에게 벵골의 장미를 기르며 세월을 보내라고 누가 권유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사고방식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즉 사람은 자기 노예에게 “너무 바보라 반항마저도 하지 않아요.”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자연법칙에 의해(하긴 이것은 속인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생애의 반려자의 결점도 그것이 당신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고통만큼 당신의 행복을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나 같으면 밤마다 아내의 찌푸린 얼굴을 보느니 1년에 한 번쯤 아내가 홧김에 단도를 들고 덤비는 편이 낫다.
요컨대 같이 사는 사람 사이에서 행복은 전염하는 것이다. 당신이 연병장이나 국회에 있는 동안에 부인은 르두테(1759~1840 프랑스 화가―역주)의 아름다운 그림책을 펴 놓고 장미꽃을 그리거나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자. 그 즐거움은 양쪽이 다 순수한 것이다. 그러나 장미꽃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을 경우에는 부인은 집에 돌아온 당신에게 곧 권태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밤에는 사교계에 나가서 좀 더 싱싱한 감정을 맛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셰익스피어를 올바로 읽었다면 그녀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피곤하게 되었을 것이며, 또 같은 정도로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교계에 나가는 것보다는 당신과 팔짱을 끼고 방센의 숲을 산책하는 것을 행복하다고 여길 것이다. 상류사회의 화려한 즐거움 같은 것은 행복한 여자에게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다.
무지한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자교육의 적이다. 그들은 오늘날 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속삭이고,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여자가 보스턴(카드놀이―역주)을 싫어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미국이나 인도에서 햇볕에 탄 얼굴로 돌아와 그들에게 그곳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들을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 여자는 우리 거야. 자네가 뉴욕에 가 있는 동안에 마차 색깔은 완전히 달라졌다네. 지금 유행하고 있는 건 짙은 밤색이야.”
우리는 이러한 지식도 필요하므로 귀를 기울인다. 만일 우리가 탄 마차가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라면 어떤 미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런 바보들은 남성의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자들보다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여자가 무엇을 좀 배우면 곧 바닥이 드러난다. 30세의 바보가 친구의 별장에서 12세의 소녀를 보고 중얼거린다.
“10년 후에는 이런 여자와 함께 살자.”
소녀들이 어떤 유익한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놀라고 두려워 할지 상상해 보자.
교양 있는 여성이 남자와 함께 사교계의 대화에 끼어드는 대신에 여자다운 다정함을 잃지 않고 훌륭한 사상을 몸에 지닌다면 그녀는 분명히 당대의 가장 뛰어난 남자들로부터 거의 열광적인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경쟁자가 되고 반려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당신이 법령으로 연애를 금지할 경우의 일이다. 훌륭한 법률이 생길 때까지는 사랑의 매력과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정 작용이 성립되는 근거는 확대될 것이다. 또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 곁에서 모든 사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눈에 자연은 아주 새로운 매력을 지니게 되고 또한 사상은 언제나 어느 정도 성격의 뉘앙스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그들은 더욱 피차 잘 이해하고 분별없는 짓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랑은 맹목적이 되지 않고 그 불행도 줄어들 것이다.
상대편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가 있는 이상 수치심이나 섬세함, 그 밖의 모든 여자다운 우아함은 교육에 의해 침해되지 않을 것이다. 꾀꼬리에게 봄에는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자의 우아함은 무지와는 관계가 없다. 당신네 마을 중산층의 훌륭한 부인들과 영국의 대상인 아내들을 보라. 일종의 현학취미인 가식, 의상이나 고상한 취미를 가진 체하는 꾸밈새, 로시니(1781~1850 프랑스의 음악가―역주)에 대해 그럴 듯한 말을 할 필요성, 이런 것이 파리 여성의 매력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현학취미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때나 르로와의 의상이나 로마네지(1781~1850 프랑스의 작곡가―역주)가 작곡한 사랑의 노래를 들먹이는 가식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나라의 선량한 신부 이야기를 할 때에 후라 파오로(1559~1620 베네치아의 신학자―역주)나 토렌토의 의회를 화제로 삼는 젠 체하는 태도와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염병의 무서운 효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아직도 가장 사랑할 만한 여자가 살고 있는 곳은 파리일 것이다.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관념을 심어준 것은 그녀들의 머리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내가 책에 요구하는 것은 여자에게 그런 관념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트라시의 몽테스키외 주석책(註釋冊)이 나와 있는 이상, 나는 파리 여성들에게 그로티우스(1583~1645 네덜란드의 법학자―역주)나 푸펜도르프(1632~ 1694 독일 법학자―역주)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여성의 섬세함은 어렸을 때부터 놓여진 위험한 입장, 즉 남자라는 잔인하고도 매력있는 적 속에서 살게 마련이라는 입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부유하기 때문에 전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여자가 5만 명은 있다. 그런데 일이 없으면 행복이 없는 것이다. 정열은 사람을 일에, 더구나 모든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에 몰아넣는다.
어린 자매를 넷이나 거느리고 있으면서, 연수입 1만 리브르밖에 없는 여자가 딸에게 양말이나 옷을 마련해 주려면 그녀는 분명히 일해야 한다. 그러나 자가용 마차를 가진 여자가 자수를 놓거나 가구를 덮는 레이스를 짜는 것은 일한다고 볼 수 없다. 이 경우에 그녀는 약간의 자기만족을 제외하면, 그것에 아무 흥미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일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녀의 행복은 매우 위험하다. 뿐만 아니라 남편의 행복도 위험하다. 왜냐하면 두 달 전부터 자수를 놓는 것밖에는 보람을 느끼지 않던 아내의 마음은, 취미의 사랑이나 허영의 사랑, 그리고 육체적인 사랑마저도 자기의 일상생활에 비하면 매우 큰 행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의 화제에 오르면 안 된다.”라는 말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책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남의 입에 오르는 여자가 있을까?” 오히려 여자가 그 운명에 혁명을 일으키는 말을 기다리며 날마다 정당한 행복의 양식을 제공하는 학문을 숨기려고 하는데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여기서 부인들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주려고 한다. 인간은 어떤 하나의 목적, 예컨대 1547년에 제노아에서 일어난 피에스코***의 음모에 대해 잘 알아보려는 목적을 세우면, 무미건조한 책에도 흥미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하고 있을 때, 자기 애인을 만나고 온 제삼자를 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독서의 흥미는 매달 증가하여 나중에는 피에스코의 음모 같은 것은 돌아보지도 않게 된다. 진짜 여성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장소는 병실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여자에게 일감을 주기 위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도록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할 용기가 있느냐? 이것은 예외에 의거하여 추리하는 것이다.
나는 마치 현명한 남자가 그 여가를 이용하는 것처럼, 여성도 날마다 서너 시간의 여가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 어머니는 아이가 홍역에 걸려 있을 때, 볼레의 ≪시리아 기행≫을 읽고 즐기려고 해도 헛일이다. 이것은 돈 많은 은행가의 아내가, 남편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맬서스에 대해 즐거운 명상에 잠기려고 해도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정신을 가질 것. 이것이야말로 부유한 여자가 여자의 비속함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다. 이 정신이 있으면 자연히 다른 감정도 우러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여자를 모두 작가로 만들려는 것인가? 만일 딸에게 노래 선생을 마련해 주기만 하면, 딸을 장차 오페라 극장의 가수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지당한 말이다. 나는 여자가 책을 쓰면 스타르 부인처럼 사후에 출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50세 이하의 여자가 책을 발간한다는 것은 마치 위험한 복권에 자기의 행운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에게 애인이 있다면 우선 그 애인을 잃게 될 것이다.
예외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여성이 어린 자녀들을 기르고 가르치기 위해 쓰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그녀가 자기 작품에 대해 말할 때에도 금전 문제에만 한정시켜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잘 알고 있는 기병대장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1년에 봉급으로 4,000프랑을 받으시지요. 나는 지난 해에 영어 번역을 두 번해서 두 아들에게 학비로 3,500프랑을 더 지출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즉 여자는 친구까지도 그 출판을 몰랐던 돌바크 남작(1723~1780 독일 철학자―역주)이나 라파예트 부인처럼 책을 내야 한다. 책을 내도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은 창녀뿐이다. 그녀를 직업 때문에 언제나 멸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속인들은 그녀의 재능을 칭찬하거나 반하기도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1년에 수입이 6,000리브르쯤 되는 사람들 중에는 책을 써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문학을 일상생활의 재미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한 권의 양서를 읽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이다. 그들의 지성은 10년이 지나면 배가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지성이 있을수록 남의 행복과 어긋나는 정열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번이나 쉴러를 읽는 어머니의 아들이 기도를 하거나 잔리스 부인을 읽는 어머니의 아들보다 소질이 좋으리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 변호사, 상인, 의사, 기사 등은 전혀 교양이 없어도 사회에 나가 활동을 할 수 있다. 그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날마다 교양을 몸에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아내는 무엇에 의하여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또 필요한 재능을 얻을 수 있을까? 그녀들은 가정의 고독 속에 묻혀 있으므로 생활과 필요라는 위대한 책은 덮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계산서를 가지고 식모와 말다툼을 하거나, 월요일마다 남편이 주는 3루이의 돈을 언제나 똑같은 방법으로 소비할 뿐이 아닌가. 나는 남편들을 위해 한마디 하려고 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남자라도 20세가 되어 뺨이 장밋빛을 띠고 있으면 무지한 여자에게는 위험인물이 될 수 있다. 그녀는 본능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명한 여자의 눈에 그런 남자는 미남자와 하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현대 교육의 우스운 점은, 처녀들에게 결혼하기가 바쁘게 잊어버릴 것만 가르친다는 것이다. 하프를 잘 연주하려면 6년 동안 날마다 네 시간씩 연습해야 하며, 세밀화나 수채화를 잘 그리려면 그 반쯤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처녀들은 겨우 중간 정도의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속담이 생겼다.
“섣불리 아는 것은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여기 상당한 재능을 가진 여자가 있다고 하자. 결혼하여 3년이 지나면 그녀는 하프나 화필을 한 달에 한 번도 손에 대지 않게 된다. 그런 복잡한 일은 귀찮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 예술가의 재질이 있다면 문제는 다르지만, 그렇게 되면 가사는 돌보지 못할 것이다.
이리하여 여자의 예의범절이라는 구실로, 처녀들에게 장차 부딪치게 될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할 만한 것은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항이 있다는 것까지도 숨기고 부인하여, 막상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첫째로 놀라고 다음에는 지금까지 받은 교육은 다 거짓이었다는 불신을 주게 된다.
나는 딸을 제대로 교육시키려면, 사랑을 가르쳐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풍습으로 볼 때 16세의 처녀가 사랑을 모른다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가씨는 이처럼 중대하고 가르치기 어려운 것을 누구에게서 배워야 할 것인가? 하녀 사이요에게서 배운 지식을 한탄하는 줄리 데탕주(루소의 ≪신 에로이즈≫의 여주인공―역주)를 보라. 우리는 거짓으로 가득 찬 예의범절의 세기를 충실히 묘사한 루소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여자교육은 아마 유럽에서 가장 괴상하고 비상식적인 우스꽝스러운 것이므로, 여자는 차라리 교육을 받지 않을수록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여가자 남자보다 뛰어나고, 또 다른 나라 여자보다도 훌륭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제56장 여자교육에 대한 항의(계속)
프랑스에서의 여성에 대한 관념은, 모두 정가 3수우(20수우=1프랑―역주)의 ≪교리문답≫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50프랑의 거래를 할 때에는 이런 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19세기의 풍습에 젖은 허영심에서 그들의 행복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땐 이런 권위에 바보처럼 그대로 따르는 일이다.
결혼은 하나의 신비적인 행위이므로 이혼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의 신비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교회의 결합에서 오는 신비이다. 만일 교회가 남성명사였더라면, 이 신비는 어떻게 될까. 그러나 이제 이런 뒤떨어진 편견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기이한 현상에 유의하자. 나무 뿌리는 도끼로 잘라 버렸는데, 가지는 여전히 무성하다는 현상 말이다. 우리는 사실과 그 현상을 관찰하기로 하자.
노인의 운명은, 남녀를 막론하고 젊었을 때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여자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45세의 여자가 사교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가를 생각해 보라. 냉혹하게 아니 오히려 그 여자의 진가 이하로 취급된다. 24세 때에는 모두들 야단이지만 40세가 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45세의 여자는 자식이나 애인의 힘에 의해 남에게 존중될 뿐이다. 미술에 뛰어난 어머니가 그 재질을 자식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자식이 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극히 드문 경우뿐이다. 그러나 교양 있는 어머니는 자식에게 하나의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 즉 모든 쾌적한 재능에 관한 관념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가는 남자에게 유용한 재능의 관념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자식은 그것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터키인이 미개한 것은 대부분 저 아름다운 조지아 여자가 정신적으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리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16세 때에 같은 나이의 지방 출신 젊은이보다 정신적으로 우수한 것은 그 어머니 때문이다.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16세와 25세 사이이다.
피뢰침과 인쇄술, 그리고 방직기술 등을 발명한 사람들은 매일같이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하고 있다. 몽테스키외, 라신느, 라 퐁테느와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한 국민이 탄생시키는 천재의 수는 충분한 교육을 받은 인간의 수에 비례한다. 또한 우리의 구두 제조공 코르네유와 같은 작품을 쓸 만한 재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감정을 정리하여 그것을 대중에게 전하는 기술을 얻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이다.
현대 여성의 교육방침에 의하면, 여자로 태어난 천재는 대중의 행복에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우연히 이런 천재가 자기 소질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까지 뻗어가는 것을 보라. 현대의 예로서는, 위험과 교리문답 이외의 교육을 받지 못한 예카테리나 2세와 같은 여성을 보라. 그리고 롤랑 부인과 아레지오에서 일개 연대를 움직여 프랑스군과 싸우게 한 알렉산드리아 마리와 우리의 카스르레(1769~ 1822 영국 정치가―역주)나 파스퀴에(1767~1862 프랑스의 정치가―역주)보다도 훨씬 교묘히 자유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나폴리의 여왕 카롤린과 같은 여성을 보라.
정신적인 역할에 있어서 여성의 우월성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수치심에 대한 장의 제9조를 보라. 만일 에지워스(1767~1849 아일랜드의 여류소설가―역주)가 처음으로 문단에 나갔을 때, 젊은 영국 처녀로서의 체면 때문에 그 소설에 설교를 가미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 작품은 얼마나 우스운 것이 되었겠는가.
연애에 있어서나 또는 결혼에 있어서 함께 살아 가는 여인에게 자기의 사랑을 숨김없이 전할 수 있는 행복을 지닌 사나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고생을 함께 해주는 선량한 여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자기의 사상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처럼 수속절차를 필요로 하는 여인에게 현명한 조언을 기대한다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현대 교육의 이념에 따르는 가장 완전한 여성이라도 그의 배우자를 생활의 위험 속에 고립시키고 나아가서는 그를 권태 속으로 몰아넣는 과오를 범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만일 아내에게 사고능력이 있다면 남편은 얼마나 훌륭한 의논의 대상을 소유한 셈인가. 그 의논 상대와의 이해관계는 두 사람의 생활의 시초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남편의 생애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정신의 아름다운 특권의 하나는 노경에 존경을 받는 것이다. 볼테르가 파리를 방문한 경우를 보라. 왕자의 위광(威光)조차 무색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청춘의 광채를 잃은 후의 가엾은 여성들의 행복은 자기가 사교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일종의 서글픈 착각에 있지 않는가.
젊었을 때의 재능의 파편 같은 것은 단지 우스꽝스러운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여성에 있어서는 50세에 죽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겠다. 참된 도덕적인 견지에서 볼 때, 인간은 지성을 소유할수록 정의가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재능이란 힘이다. 그뿐만 아니라 재능은 행복에 이르는 위대한 기술을 발견하기 위한 횃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남성은 평생에 한 번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시기의 그에게는 어떠한 일도 불가능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인의 무지는 인류에게 이와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한다. 오늘날의 연애는 남성에게 승마를 연습시키고, 멋진 옷을 고를 줄 아는 정도의 역할밖에는 시키지 못한다.
나는 이 이상 비평할 만한 시간의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만일 내가 관습을 결정할 수 있다면, 젊은 여자들에게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실시하고 싶다. 나는 이 책에 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므로 어떤 점에서 현대의 남성교육이 졸열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지 말기를 바란다.(두 가지 기초적인 학문, 즉 논리학과 윤리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이 교육은 그대로 여자에게 실시하더라도 음악이나 수채화나 자수밖에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여자만을 위한 중앙수도 학교를 세워 상호 교육법에 의해 소녀들에게 산수와 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린이를 많이 모아서 교육하는 커다란 이득은, 설사 교사의 교육법이 제한되어 있더라도 아이들은 친구들과 사회생활을 해 나가며 이해관계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현명한 교사라면 어린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이나, 추억과 같은 실제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금송아지≫의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식으로 도의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몇 해가 지나면 이러한 상호교육 방식은 모든 과목에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소녀들의 현재 형편으로 보아, 나는 그녀들이 소년들처럼 라틴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라틴어는 권태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데 제일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역사, 수학, 식용 또는 약용 식물, 그리고 논리학과 정신과학 등을 가르치고, 무용과 음악 및 그림은 다섯 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처녀가 16세가 되면 남편을 고를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연애와 결혼 및 남자의 불성실성에 대해 올바로 배워야 할 것이다.
결혼에 대하여
사랑이 없이 결혼한 여자의 정조는 자연에 위배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자연에 대한 위반을, 지옥의 공포와 종교적인 감정에 의해 실천하려고 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우를 보면 그것이 어디까지 성공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여론의 힘으로 그것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여론이 자연을 막는 유일한 제방이었으나 쌓아올리는 방법이 좋지 못하였다.
“자기가 선택한 남편에게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딸에게 말하면서 억지로 늙은이와 결혼시킨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지만 처녀들은 기꺼이 결혼하지 않는가?―이것은 현대의 답답한 교육제도에서는 어머니의 집에서 참고 사는 노예 상태가 감당키 어려울 만큼 권태롭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는 이성이 없는 데다가, 그것은 자연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자에게 정조를 잘 지키게 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즉 미혼인 자녀에게는 자유를 주고 기혼자에게는 이혼을 허용하는 것이다.
여자는 언제나 최초의 결혼에서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나날을 잃게 되며 이혼에 의해 어리석은 자들에게, 여러 가지 화제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정부를 갖은 젊은 아내는 이혼할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많은 정부를 거느렸던 여자도 어느 나이에 도달하면 그 악평을 만회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전에 범한 것과 동일한 남의 과실에 대하여 극히 가혹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태도가 언제나 성공을 거둔다. 어떤 가엾고 성숙한 젊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이혼을 요구하자 전에 50명이나 정부를 거느리던 여자들로부터 창피를 당했다.
제57장 미덕에 대하여
남을 위해 괴로운 일을 하는 습관을 미덕이라고 부른다. 22년 동안 원주(圓柱) 위에서 고행을 계속한 성 시메옹 스트리트는 내가 보기에는 결코 덕이 높은 사람은 아니다. 이것이 나의 견해이다. 이 글이 너무 경쾌한 맛을 풍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생선밖에 먹지 않고 목요일에만 남과 이야기를 나누는 수도승도 존경하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늙어서 비열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북극의 조그마한 거리에서 귀양살이의 온갖 고생을 참아낸 카르노 장군(1753~1823 프랑스 장군―역주)을 더 좋아한다. 이런 평범한 선언에 실망한 독자는, 아마 이 장의 나머지를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페사로의 축제(1819년 5월 7일)에 나가야 했으므로 기도서를 빌렸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포르투갈 왕 알폰소 5세의 딸 요안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불타올랐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덧없는 현실을 싫어하고 오직 하늘의 고향만을 그리워했다.”
≪기독교의 진수≫에 명문으로 설교하고 있는 감동적인 미덕도 결국 위경련이 무서워 송로(松露)는 먹지 않는다는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지옥의 존재를 믿고 있는 이상 그것은 매우 현명한 타산이지만, 가장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레굴루스의 카르타고 귀환에서 볼 수 있는 철학적인 미덕은 우리나라의 대혁명 시대에도 유사한 기적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영혼의 고매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투르벨 부인이 바르몽의 유혹에 저항한 것은, 주로 저 세상에서 끓는 기름 솥에 태워지는 참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기도 끓는 기름 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경쟁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어째서 바르몽을 경멸하고 버리게 하지 못했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자기의 맹세와 볼마르씨(루소의 ≪신 에로이즈≫에 나오는 즈리의 남편―역주)의 행복을 존중하는 주리 데탕주가 훨씬 감동적이지 않은가.
이상의 투르벨 부인에 대해 한 말은 허치슨 부인의 덕행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청교도 주인은 훌륭한 여성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빼앗아 갔는가.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일의 하나는 남자가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은 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매우 복잡한 학문인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라. 그리고 결혼과 풍습에 대해 논하는 것을 들어보라.
제58장 결혼에서 본 유럽의 현황
나는 지금까지 결혼 문제를 주로 이론적인 면에서 다루었다. 이번에는 사실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을 하는 나라는 어디인가? 그것은 분명히 신교의 나라 독일이다.
아래에 사르비아티 대위의 일기의 한 부분을 한 마디도 빼지 않고 옮겨 놓는다.
할베르슈타트, 1807년 6월 23일
그러나 뷰로우 씨는 진심으로 펠트하임 양을 사랑하고 그것을 조금도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어디든지 그녀를 따라가서 이야기를 걸고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100보나 떨어진 곳으로 그녀를 끌고 가기도 한다. 이처럼 한 여자에게 공공연히 호의를 보이면 여러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자리의 흥을 깨뜨려 버린다. 이런 일이 프랑스의 센강 기슭에서 있었다면 몹시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자리의 흥이 깨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만큼 개의치 않고 설사 실례되는 짓을 하더라도 상식에서 어긋났다는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뷰로우 씨는 이처럼 5년 동안 미나에게 모든 애정을 쏟았으나 전쟁 때문에 결혼까지는 하지 못했다. 사교계의 처녀들은 저마다 공인된 애인을 갖고 있다. 나는 친구 메르만 군이 알고 있는 독일 사람들 중에서 연애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즉 메르만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형제 게오르그, 피트, 라싱그 씨 등등 모두 연애결혼을 했다. 이 밖에 그는 최근에 연애결혼을 한 사람을 열 두 명이나 들었다.
이런 남자들이 애인의 비위를 맞출 때의 공공연한 정열적인 태도는 프랑스라면 무례하고 망측하고 파렴치한 짓이라고 할 것이다.
오늘 밤 ‘푸른 사냥꾼’(여관이름)에서 돌아오는 길에 메르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친척 중에는 여자가 많은데, 남편을 배반한 사람은 하나도 없네.”
이 말을 절반을 접어 듣는다고 해도, 아무튼 독일은 특이한 나라이다.
그의 제수 무니코프 부인의 친정은 남자 상속인이 없어, 막대한 재산이 영주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점잖지 못한 제의를 했더니 부인은 싸늘한 태도로
“그런 말을 다시는 내 앞에서 꺼내지 마세요.”
하고 딱 잘라 버렸다.
그는 이 일을 매우 완곡하게 천사와 같은 필립피네에게 말했다(그녀는 자기를 군주에게 팔려고 한 남편과 방금 이혼한 참이었다). 그녀는 몹시 분개했으나 조용히 점잖은 말로 말했다.
“당신은 우리네 여성을 우습게 아는군요. 당신의 명예를 생각해서 농담을 한 것으로 생각하겠어요.”
그가 이 아름다운 여자와 브로켄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녀는 마차에서 잠들어 혹은 잠든 체하고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그에게 더욱 몸이 쏠렸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얼른 반대쪽으로 물러났다. 그는 그녀를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이튿날 자기의 과실을 뉘우치고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그녀를 극진히 사랑하며 또 그녀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주 만나지만 그녀는 전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할베르슈타트의 태양은 너무 어둡고, 정부는 귀찮게 굴었으므로 두 사람이 냉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가장 정열적인 밀회를 할 때에도, 으레 칸트와 클로프스토크(1724~1803 독일 시인―역주)가 화제에 올랐다.
메르만의 이야기에 의하면, 브라운슈바이크 법정에서 간통죄로 기소된 남자는 징역 10년에 처해진 일이 있다고 한다. 이 법률은 사문화되었으나, 적어도 사람들은 이런 일에 대해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사랑의 모험가라는 남자의 가치는 프랑스에서처럼 미점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프랑스라면 이 가치를 결혼한 남자 앞에서 부인하면, 오히려 그 남자를 모독한 것이 된다.
나의 연대장인 CH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상대편은 몹시 불쾌할 것이다.
“당신은 결혼한 후로는 여자가 생기지 않는 것 같군요.”
몇 해 전, 이 나라의 어떤 여자가 갑자기 신앙에 눈떠 브라운슈바이크 궁정에 나가는 남편에게 자기는 6년 동안이나 그를 속여 딴 남자를 사랑해 왔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남편은 이 사실을 곧 대공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그녀의 정부는 모든 직위를 버리고 24시간 안으로 국외로 떠나야만 했다. 대공이 그 법률을 적용하여 처벌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할베르슈타트 1807년 7월 7일
이 나라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배반당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그 아내는 어떤 여자일까. 조각품이다. 겨우 형체만 있는 고깃덩이다. 그녀들도 결혼하기 전에는 무척 귀엽고 어린양처럼 경쾌하고 사랑의 눈길에 곧잘 응하는 싱싱하고 다정한 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감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단 남편이 발견되면, 그때에는 벌써 하나의 어린이 제조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언제나 감탄한다. 그녀들이 낳은 자식들의 절반은 일곱 살 전에 죽는데, 자식들이 4~5명 있는 집이라면 언제나 아픈 아이가 하나는 낀 셈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자식이 병에 걸리면, 어머니는 절대로 외출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들이 자식들에게 매이는 데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점점 모든 사상을 잃어간다. 이것은 필라델피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쾌활하던 처녀도 1년이 못 되어 가장 권태로운 아내가 되어 버린다.
나는 신교의 나라 독일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침에 있어, 지참금은 봉토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거의 없다는 말을 첨가하려고 한다. 1년 수입이 4만 리브르인 집 딸 디스돌프 양은 아마 지참금이 2,000에큐(7,500프랑) 정도일 것이다.
메르만 군의 아내는 4,000에큐를 갖고 왔다. 지참금이 부족한 것은 궁정에 있어서의 허영심으로 메운다. 메르만은 나에게 말했다.
“부잣집 딸과 결혼하면 10만이나 15만 에큐의 지참금을 갖고 오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궁정에는 나갈 수 없게 되네. 따라서 대공이나 대공비가 나오는 사교계에서 떠나야 하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것은 솔직한 말이었다.
필립피네와 같은 마음씨를 가진 독일 여자는 그 재질이나 고상한 표정을 짓는 얼굴, 18세 무렵에 갖고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 정열(지금은 27세이나), 이 나라의 풍습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정숙성, 그리고 같은 이유로 적당히 간직한 신앙― 이 모든 점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남편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멋없는 주부에게 어찌 충실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오늘 아침에 코린의 애인 오스왈드 경이 4년 동안이나 짝사랑만 해 오면서 끝내 상대방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지 않은 것을 그녀에게 비난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부인이 있지 않아요?”
그녀는 새벽 세 시까지 코린을 읽고 이 소설에 커다란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필립피네의 태도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감수성이 매우 소박했으므로, 이 자연의 나라에서도 마음과 생각이 저속한 자들에게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농담을 들으면 그녀는 메스꺼웠으며, 그것을 구태여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점잖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무척 노골적인 농담에도 곧잘 깔깔거렸다. 그 후에 유명해진 16세의 공작 딸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것도 그녀였다. 그녀가 때때로 수위인 근위장교를 자기 방에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스위스
나는 베른에 가까운 스위스의 오벨랜드 지방의 가정처럼 행복한 가정을 아직 모르고 있다. 이곳 처녀들이 토요일과 일요일은 애인과 함께 보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1816).
그러나 파리에서 생 클루까지만 여행해도 세계를 안 것으로 자처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아마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나는 다행히 어느 스위스 작가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서, 내가 넉 달 동안 보고 들은 것에 대한 확증을 얻게 되었다.
어떤 선량한 농민이 과수원의 피해가 크다고 불평을 했다. 그럼 왜 개를 기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딸의 신랑감이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 대답의 뜻을 알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전에 사나운 개를 길렀더니, 동네 청년들이 딸의 방 창문에 얼씬도 못하더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장이 아내를 자랑하길, 처녀 시절에 그녀만큼 밤에 찾아오는 남자가 많은 여자는 없었다는 것이다(즉 아내만큼 많은 청년들이 잠자러 온 여자는 없었다는 뜻이다).
평판이 좋은 어떤 대령이 산악지대를 행군할 때, 이 고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유복하고 인망이 두터운 구장집에 묵었다. 그가 집에 들어갈 때, 16세 정도로 보이는 아름답고 싱싱하고 순박한 처녀가 눈에 띄었다. 이 집 주인의 딸이었다.
그날 밤 야외 무도회가 있었다. 대령은 딸에게 눈짓을 했다.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는 요기를 내어 오늘 밤 자러 가도 좋으냐고 물었다.
“안 돼요. 사촌 언니와 함께 자는 걸요. 제가 가지요.”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대령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는 저녁시사가 끝나자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은 등불을 들고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가 일이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안 돼요. 어머니께 허락을 받아야 해요.”
그는 깜짝 놀랐다. 벼락이 떨어진다 해도 이처럼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이 선량한 사람들의 방으로 살짝 다가갔다. 그녀가 어리광을 부리면서 어머니에게 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이불 속의 남편에게 말했다.
“트리내리가 대령과 자도 괜찮겠죠?”
“괜찮구 말고. 그런 분이라면 아내라도 빌려주고 싶은 걸.”
어머니는 트리내리에게 말했다.
“그럼 갔다 오너라. 그렇지만 몸가짐이 단정해야 해. 발가벗거나 해서는 안 돼.”
이튿날 트리내리는 처녀인 채 잠에서 깨어났다. 대령은 그녀를 존중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불을 정돈하고 남자를 위해 커피와 크림을 가져왔다.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함께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슴의 비로오드 천을 잘라서 대령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걸 즐거운 하룻밤의 기념으로 갖고 계세요. 간밤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대령이라는 높은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자유스러워 훨씬 좋았을 텐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대령에게 마지막 키스를 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내가 입법자라면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밤의 무도회를 열도록 하고 싶다. 일주일에 세 번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그곳에 나간다. 무도회는 일곱 시에 시작되어 밤중에 끝난다. 바이올린 연주비와 음료수 값만 치루면 되는 것이다. 옆방에서는 어머니들이 딸의 행복한 교육에 은근히 질투를 느끼며 포스톤을 한다. 그 다음 방에서는 아버지들이 신문을 읽거나 정치 이야기를 한다. 밤 열두 시나 한 시 사이에 모든 가족들은 떼를 지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하여 처녀들은 젊은 남성을 볼 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어리석거나 성실치 못한 사나이는 곧 미움을 받게 된다. 그녀들이 스스로 남편을 고르는 것이다. 실연을 하는 아가씨도 더러 있겠지만 아내에게 배반을 당하는 남편이나 부부 사이가 나쁜 가정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이 경우에 부정을 치욕이라 하여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법률은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스스로 남편을 선택했다. 그러니 정조를 지키시오.”
그렇게 되면 나는 법정에서 영국 사람이 간통이라고 하는 것을 기소하고 처벌하는 것을 승인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법정에서는 간통을 한 남자에게 형무소와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재산의 2/3의 벌금과 몇 해의 징역을 언도할 것이다.
아내의 부정에 대해서는 배심원에 기소할 수 있다. 배심원은 먼저 남편의 품행에 비난을 받을 만한 점이 없다는 것을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신의 죄를 인정한 여인은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만일 남편이 2년 이상 부재였을 경우에는 몇 해의 징역으로 충분하다. 일반적인 풍습도 차츰 이 법률에 따르게 되며 이것을 완성시킬 것이다.
이 경우에 귀족과 승려는 몽테스팡(1641~1707 루이 14세의 왕비―역주) 부인이나 뒤 바리 부인(1743~1793 루이 15세의 왕비―역주)처럼 그녀들의 성실했던 시절을 애석하게 여기면서 이혼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파리 근교의 마을에 불행한 여인들의 낙원을 세운다. 남자는 의사와 성직자 외에는 들여보내지 않는다(이것을 위반하는 남자는 고역을 치루게 한다). 이혼을 원하는 여자는 우선 이 낙원에 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한 걸음도 밖에 나가지 않고 2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편지는 보낼 수 있지만 답장은 받을 수 없다.
상원의원을 비롯한 몇몇 유능한 법관으로 조직된 심의회가 그 여자를 대신하여 이혼소송을 처리하고 남편이 아내의 생활을 위해 지불해야 할 위자료를 결정한다. 패소한 여인도 이 낙원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정부에서는 한 여인에게 2,000프랑씩 낙원의 운영비를 보조해 준다. 여기에 들어가려면 2만 프랑 이상의 보증금이 있어야 한다. 그 내부의 규율은 매우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2년 동안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한 후에, 이혼한 여자는 재혼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의회는 소녀들 사이에 경쟁심을 일으키기 위해 아버지의 유산 상속에 있어서 남자에게 여자의 배를 주는 것이 정당한가 아닌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딸에게는 남자와 똑같은 액수의 유산을 준다. 이 제도가 적합하지 않은 타산적인 결혼 관습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혼이 가능하게 되면 구태여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프랑스의 각 지방에 노처녀를 위한 수도원을 30개쯤 세워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 건물에 호의를 갖고 그곳에서 일생을 보내는 가엾은 여자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자존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장난감같은 것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꿈 이야기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제59장 베르테르와 돈 주앙
젊은이들 여럿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사나이를 마냥 놀려준 끝에, 그가 살롱에서 내빼면 화제는 흔히 여자를 손에 넣는 방법으로 옮겨 간다. 즉 여자를 손에 넣으려면 모차르트의 돈 주앙식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베르테르식이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베르테르보다는 생 푸르(루소의 ≪신 에로이즈≫의 주인공―역주) 쪽이 더욱 두드러진 대조를 이룰 것 같지만 그는 너무 평범한 인물이므로, 이런 남자를 대표로 내세우면 애정이 깊은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돈 주앙형의 성격이 존중될 만한 유용한 미덕을 많이 갖고 있다. 즉 용기, 기략, 활기, 냉혹, 기지 등등. 돈 주앙형의 남자는 때때로 공허감에 사로잡히며 그 노년은 매우 비참하다. 하긴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년까지 이르지 못하지만.
사랑을 하는 남자는 살롱에서의 행동이 어색하다. 여자를 손에 넣는 것을 당구 시합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여자 앞에서 재능이나 힘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남자가 한 가지 무척 바라는 것이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그가 아무리 재치가 있다고 해도 역시 농담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튿날 잠에서 깨어나면 조롱을 받은 데 화가 나서 복수하려고 하기는커녕 오직 애인을 생각하고 행복한 공중누각을 쌓기에 정신이 없다.
베르테르식 사랑은, 영혼을 모든 예술에 기울이게 한다. 감미롭고 낭만적인 인상, 달빛, 숲의 아름다움, 그림의 아름다움 등 요컨대 미의 감각이 열린다(그 미의 형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초라한 옷을 입고 있어도 좋다) 재산이 없어도 행복을 발견한다.
이런 영혼은 메이랑이나 브장발처럼 마음을 거칠게 하진 않지만 지나친 감수성 때문에 루소처럼 광기에 사로잡히기 쉽다. 소녀의 시절을 지나 사랑이 어디 있으며 무엇이 사랑인지 알고 있는 고귀한 여성은, 흔히 돈 주앙형의 남자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돈 주앙은 여성 정복의 질보다 양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애정이 깊은 사람에게는 불쾌한 일이지만, 돈 주앙형의 남자의 승리를 위해서는, 남들이 그 사랑을 알 필요가 있으며, 베르테르형의 남자의 승리를 위해서는 비밀이 필요하다. 이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방탕한 남자는 대체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들 중 반은 교육과 주위의 사람들을 모방한 결과 이기적이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돈 주앙형의 남자는, 결국은 여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여자의 불행을 즐기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텔레 피냐텔레 공작은 뮌헨에서 정열적인 사랑이 없이 순수한 쾌락만으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밤에 그는 말했다.
“나는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물어물하는 그런 여자가 좋아.”
이처럼 당황해 할 때, 자존심 때문에 얼굴을 붉히거나 복수를 하려고 하지 않고, 이 순간을 행복의 원천으로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청년에게는 취미의 사랑에 있어서 그것을 좀먹는 허영심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약해진 느낌을 주지만 순수하고 협잡성이 없다. 그는 우리가 여자들을 부당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1820년 2월 20일).
인간은 자기의 기질, 즉 영혼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가 좀 나은 역할을 하려고 생각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루소도 리슐리외 공작(1696~1788 육군원수로 호색가―역주)도 아무리 각각 재능을 기울여도 여자의 일로 경력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루소가 슈브레트의 공원에서 두드트 부인 앞에서 경험하게 된 순간이나 베네치아에서 ‘스쿠오레’의 음악을 들은 순간, 또는 토리노에서 벌어질 부인 앞에 무릎을 꿇은 순간에 맛본 감정을 리슐리외 공이 절대로 맛보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루소처럼 라르나즈 부인 앞에서 괴상한 짓을 하여 얼굴을 붉히고 일생 동안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생 푸르형의 남자의 역할이 훨씬 감미롭고, 그것은 생활의 모든 순간에 스며든다. 그러나 돈 주앙의 역할 쪽이 화려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생 푸르가 도중에 그 고독한 은둔적인 취미와 명상적인 습관을 바꾸어 본다고 하더라도, 그는 단지 사교계의 말석을 더럽히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돈 주앙이 그 방탕한 취미를 진심으로 버린다면, 남자들 사이에서 굉장한 명성을 얻고 또 애정이 깊은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이유만으로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 내가 베르테르 쪽이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돈 주앙이 사랑을 일상생활의 흔한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 주앙은 베르테르처럼 자기의 욕구에 따라 현실에 적응하지 않고 다만 야심이나 탐욕 그 밖의 정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냉정한 현실에서 그 욕구를 불완전하게 만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결정 작용의 매혹적인 몽상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장군처럼 작전의 성공만 염두에 두고 있다. 요컨대 속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베르테르보다 더 사랑을 향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죽이고 있다.
나는 위에서 한 말에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하나 베르테르 쪽이 분명히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있지만,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신의 심술이므로 부득이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정의를 실현하는 습성이 행복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다. 베르테르형의 남자는 결코 악인이 아니다.
죄를 범하고도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후회를 느끼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미쉬랭 부인의 자살은 밤마다 리슐리외 공을 괴롭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절대로 공감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며, 또한 사람을 죽이는 일쯤은 태연하게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설에 의해서만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에 있어 도덕을 변호하는 이 글을 읽고 증오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본래 소설의 법칙상 도덕적인 사랑의 묘사란 싱겁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도덕적인 감정은, 연애감정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간주되고 도덕적인 사람은 약한 사랑과 같은 말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묘사기술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며, 자연 그대로의 정열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 친구에 대해 인용하는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돈 주앙은 자기와 타인을 연결하는 모든 의무를 파기한다. 이것은 인생이라는 큰 시장에서 돈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결코 지불하지 않는 불성실한 악덕 상인이다. 평등의 관념을 그에게 마치 물이 공수병 환자에게 주는 듯한 분노를 일으킨다. 명문 태생이라는 자부심이 돈 주앙의 성격처럼 잘 어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권리의 평등이라는 관념과 함께 정의의 관념도 소멸된다. 아니, 명문 출신인 돈 주앙은 전에 이런 관념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가명(家名)을 자랑하는 남자이고 계란 하나를 찌기 위해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는 것쯤은 예사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너그럽게 봐주어야 한다. 그는 자기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일으키는 악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에서 기뻐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은 자기 혼자뿐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의 불꽃이 타올라 모든 정열이 생명을 느끼게 하고 남의 생명을 소홀히 할 때, 돈 주앙은 풍부한 감각과 외적인 행복에 취해, 타인이 자기 의무에 헌신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기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훌륭한 처세법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30세가 되면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면서도 그는 자기에게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에게 모든 쾌락을 준 것에 대해 차츰 혐오를 느낀다. 돈 주앙은 토론에서 살맛을 잃고 내게 말했다.
“여자에게는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게 아니야. 두 세 사람 겪어보면 싫증이 나네.”
나는 대답했다.
“언제까지라도 싫증을 느끼지 않으려면 상상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네. 그렇게 되면 여자마다 색다른 흥미를 일으킬 걸세. 같은 여자라도 2, 3년 먼저 알았느냐 나중 알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사랑할―만일 자네가 그 여자를 좋아한다면―수 있네. 그러나 아무리 정다운 여자라도, 그리고 그 여자가 자네를 사랑하고 있더라도, 역시 평등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자네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될 걸세. 여자에 대한 자네의 태도는 인생의 다른 기쁨을 모조리 죽여 버리네. 베르테르는 그것을 백 갑절로 증대시키지만 말이야.”
이 슬픈 이야기도 종말에 가까워 온다. 늙어가는 돈 주앙은 자기의 혐오감을 상대편의 잘못으로 돌리고, 절대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좀먹는 독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상대자를 바꾼다. 그것이 화려해 보여도, 마침내는 그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즉 평온한 권태를 느끼거나 아니면 초조한 권태에 빠질 분이다.
마침내 그는 이 치명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어떤 향락에 있어서도, 자기 능력을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공공연히 악을 위해 악을 행한다. 이것은 날마다 되풀이되는 최악의 불행이다. 그 모습을 충실히 묘사하려고 한 시인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여기 내가 묘사한 스케치 정도만 해도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할 것이다.
그러나 돈 주앙과 같은 뛰어난 인간은 이 치명적인 길에서 발을 돌이키기를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성격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모순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능은 영광의 전당에 이르는 길을 거쳐 미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보잘것없는 문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던 로슈프코(1613~1680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역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잠언집≫ 267면)
“사랑의 즐거움은 사랑하는 데 있다. 사람은 상대방에게 일으키는 정열보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정열에 의해 더욱 행복한 것이다.”
돈 주앙의 행복은 분명히 풍부한 재질과 활동력에서 비롯된 허영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이나, 한 도를 다스리는 지사라면 그보다 더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크레이브의 공작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느므르 공작의 행복은, 마렝고의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의 행복보다 더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 주앙식의 사랑은 사냥의 취미와 비슷한 감정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의 실력에 도전하는 여러 자기 대상의 자극을 필요로 하는 활동 의욕이다.
베르테르식 사랑은 하나의 비극을 몇 번이나 다시 쓰는 학생과 비슷하다. 이것은 인생의 새로운 목적이며, 모든 것이 그것과 관련되며, 만물의 양상을 변화시킨다. 정열적인 사랑은 사람의 눈에 자연을 숭고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 같은 신선미를 준다. 그는 자기 영혼을 향해 열린 이 이상한 풍경을 지금까지 모르고 지내온 것을 놀랍게 생각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싱싱하며, 흥취를 일으킨다.
사랑을 하는 남자에게는 자기가 보는 모든 풍경의 수평선에 애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한 번 보기 위해 천 리 길을 가면, 나무도 바위도 그녀에 대해 속삭이며, 그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준다. 이런 마술적인 풍경의 환상은 돈 주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다만 외부적인 사물을 추구할 뿐이며, 그것도 자기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며, 어떤 새로운 정사를 위해 유의해야 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베르테르식 사랑에는 독특한 쾌락이 있다. 한두 해가 지나 사랑하는 남자가 애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버리면 이상하게도 이것은 사랑의 성공이나 실패 또는 애인으로부터 받은 푸대접과는 관계가 없이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보거나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 여자가 여기 와 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그리고 나는 이 카사레키오의 경치에 대해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걸고 대답을 듣는다. 그녀의 농담에 덩달아 웃는다. 그녀로부터 천 리나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그녀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날 밤 레오노르는 몹시 기분이 좋았어.’
그러나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허, 나 좀 봐. 베드람의 정신병원에도 나보다 정신이 멀쩡한 자가 있겠는걸.”
내가 이 글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할 수 없군. 자넨 언제나 정열에 사로잡힌 남자와 돈 주앙을 비교해 말하지만, 문제는 그런 데 있는 게 아니네. 정열이라는 것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다면 자네 말이 옳네. 그러나 무엇에 대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두려워 말고 취미를 갖고 사랑을 하라. 두려움은 언제가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돈 주앙형의 남자에게는, 지금 말한 정신 상태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괴로울 것이다. 그는 이런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며, 그것은 그의 허영심을 지나치게 손상시킨다. 그들의 생활태도의 잘못은, 소심한 사람이 반 년 걸려서 상대방을 겨우 손에 넣는 것을 두 주일이면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흔히 있는 냉정한 사나이의 사랑을 본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애정이 깊은 여자에게 자기의 진심을 보여 호감을 살 만한 마음이 결여되어 있으며 돈 주앙의 역할에 필요한 재능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자기가 여자에게서 얻은 것이 베르테르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신중한 남자는 언제나 의심을 품는다.
사랑을 감추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여자 쪽에서도
한평생 실수를 범하지 않는 듯한 남자에게는
언제나 한숨만 쉬게 내버려 둔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녀가 주는 보물의 가치는
맛본 자가 아니면 모른다.
그것은 값질수록 고귀하다.
사랑의 행복은 노고의 대가이다.
-니베르네 ≪즉흥시인 기욤 드 라 트르≫ 제3권 342면-
돈 주앙의 눈에 비치는 정열적인 사랑은, 험한 벼랑길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에는 물론 매력적인 사랑의 숲을 헤쳐 가지만, 얼마 안 가서 바위틈에서 길을 잃어, 속인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이윽고 길은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울창한 나뭇가지가 햇빛을 가리고, 위험에 시달려 본 적이 없는 영혼에게 일종의 공포를 안겨 준다.
이 수많은 곡절을 지나 자존심을 자극하는 미궁을 헤맨 끝에, 갑자기 한 모퉁이에 부딪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라라 루코>(영국 시인 토마스 무어의 시―역주)의 아름다운 카슈미르 계곡이 나타난다.
이런 길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거나, 들여놓아도 두서너 걸음밖에 들여놓지 않은 돈 주앙형의 남자가 어떻게 긴 여로를 지나야만 나타나는 이런 광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호색이 좋은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새것을 바란다.
이미 세상에 새것이 없어졌을지라도.
좋다. 당신은 맹세와 정의를 비웃는군. 호색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거야? 그것은 분명히 쾌락뿐이다.
그러나 2주일 동안 쫓아다니다가 손에 넣은 미인과 석 달 동안 맛보는 쾌락은, 3년 동안 쫓아다니다가 손에 넣은 애인과 10년 동안 맛보는 쾌락과 다르다.
내가 “항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 기관이 변하여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애인은 친구가 되어 다른 기쁨, 즉 소년의 기쁨을 줄 것이다. 그것은 꽃피는 계절에, 아침에 장미이던 꽃이 계절이 지나면 저녁에 달콤한 열매로 변하는 것과 같다.
3년 동안이나 사랑한 여자는 문자 그대로 여주인공이다. 가까이 가면 전율을 느낀다. 나는 돈 주앙에게 말하려고 한다. 전율을 느끼는 남자는 권태롭지 않다고.
사랑의 쾌락은 언제나 불안과 정비례한다. 호색의 불행은 권태이다. 정열적인 사랑의 불행은 절망과 죽음이다. 사랑의 절망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하여 화젯거리가 된다. 파리에 우글거리고 있는 권태로운 늙은 방탕자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권태로 자살하는 사람보다 사랑으로 자살하는 남자가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권태는 모든 것을, 자살할 용기까지도 빼앗는다.
변화에만 쾌락을 느끼는 성격이 있다. 그러나 보르도 산 와인을 타박하고 샹파뉴 산 와인을 칭찬하는 남자는 ‘나는 샹파뉴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다소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두 가지 술에는 각각 단골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기의 기관과 습성에 잘 맞는 행복을 추구한다면, 어느 쪽이나 다 옳다. 호색가가 부패하게 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용기가 없어 호색가 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면, 각자 자기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을 개종시키려고 하는 의도에는 좀 우스꽝스러운 데가 있는 것 같다.
후 기
프랑스 근대 소설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스탕달(Stendhal 1783~1842)은 남프랑스의 도피네 지방의 수도 그레노블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 어머니를 잃고 더욱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어, 이것이 후의 그의 인생관인 자기중심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수학을 좋아하였는데, 그 이유는 “위선과 애매함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799년 17세 때 이공대학 입학시험을 치루기 위해 파리로 올라갔으나 수험은 하지 않고 관극과 극작에 몰두하였다. 다음해 친척인 드가류 백작의 주선으로 프랑스육군성에 들어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군에 참가하여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 후 나폴레옹 제정하에서 경리관, 사정관으로 있다가 참의원 서기관을 지내고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이탈리아로 건너가 7년 동안 밀라노에서 살았는데, 이 기간에 자유의 문학자들과의 교우, 메치르데와의 불행한 사랑 등 그의 문학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1821년 그가 이탈리아 경찰로부터 위험인물의 혐의를 받고 밀라노를 떠나 파리에 돌아와 쓴 것이 ≪연애론≫(1822)이다. 그가 일생 동안 쓴 작품은 전집으로 70여 권에 이르며 이것은 “잉크로 종이를 새까맣게 물들이는 것만이 가장 큰 쾌락”이라는 그의 말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이 ≪연애론≫은 그가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메치르데와의 사랑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스탕달의 연애관은 상당히 정신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의 사랑 체계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에서 체계적 서술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스탕달 자신이 “어떤 진리를 서술한 것으로 자부하고 있을 때에도, 실은 탄식만을 쓴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앞선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1820년 스탕달은 생애에서 최대의 사랑을 하였다. 마틸드 뎀보스키(Mathilde Dem bowsky)는 밀라노의 한 장군의 아내로 별거 중에 있었다. 스탕달은 1818년부터 그녀의 맑고 싸늘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었으나, 그녀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사촌 언니의 충고에 따라 스탕달의 방문을 한 달에 두 번밖에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말뼈다귀인지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과 가까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연애론≫은 말하자면 이 메치르테와의 비련의 기록이며, 또한 ‘사모의 서’이기도 하다.
스탕달은 이 책을 ‘이데올로기의 서’라고 말하고 특별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이 자기가 체험한 최대의 사랑의 기록이라는 점을 차지하고서도 그는 평소에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철학자’로 자처했으며 이 책은 그의 유일한 철학적 저술이기 때문이다.
역 자
옮긴이
김현태 전남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불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불문학과 수료.
역서: 발자크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졸라 나나, 도데 도데 단편 선집
* 퐁 드 베르와 데팡 부인의 유명한 노변대화: “우리는 40년 동안이나 함께 살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으니 어떻게 된 걸까요?” “글쎄, 잘 모르겠는걸.” “아마도 별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 1811년 나이가 훨씬 연하인 로카와 결혼한 스타르 부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 3월 9일―스탕달은 1820년 3월 21일부터 한 주일 동안 볼로뉴에서 지냈다. “볼로뉴에서 한 주일 동안 머물렀다 …… 나는 곧장 사교계에 소개되었다. 내가 10년만 더 젊었더라면 꽤 멋이 있었을 것이었지만.”(1820년 3월 26일의 서한)
**** “자연은 여자에게 말한다―예쁘면 좋고, 똑똑하면 더욱 좋다. 무엇보다도 존경이 제일”이라는 보마르셰의 격언처럼 프랑스에서는 존경이 없으면 감탄도 없고 따라서 사랑도 없다.
***** 애인의 사촌 여동생인 트라베르시 부인을 가리킴. 스탕달은 그녀와 인사를 나누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 아르미다는 타소(1544~1595)의 ≪예루살렘 해방≫에서 가장 유혹적인 주인공, 그 이름은 때때로 마법과 같은 매력으로 유혹한 여자를 가리킨다. ≪아르미다의 정원≫은 이 마녀가 십자군의 장군 리날드를 유인하여 우군으로부터 이탈케 한 장소로서 비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몽환경(夢幻鏡)을 의미함.
** 1821년 그리스인이 터키에 반란을 일으키자, 프랑스와 영국의 열광적인 동정을 야기시킴.
*** ≪비앙카와 팔리에로≫는 로시니의 가극이며, 라 캄포레지는 그 당시의 프리마돈나.
***** 점잖지 못한 말이지만, 이것도 지금은 없는 내 친구 보트멜 남작의 ≪회상록≫의 인용문이다.
* 감각론. 철학자 카파니스의 가설, 인간의 정신활동을 신경액이라는 물질의 소모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
** 영국의 귀부인 리고니 양에 대한 알피에르의 사랑. 그녀는 동시에 하인과 관계하고 있었으나 정숙한 페네로프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 18세기 프랑스의 서정시인. 공포정치의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비가 제36에서 인용한 것인데 정확하지는 않다.
**** 라시느의 비극 ≪바자제≫의 여주인공. 질투의 전형적인 인물.
***** 그리스의 이오니아의 섬. 사형수를 이곳 낭떨어지에서 아래로 뛰어내리게 했다.
* 세비라의 돈 주앙은 16세 때 사랑 때문에 국외로 추방되었는데, 배가 난파되어 그리스 섬에 도착하였다.
** 코슈레 씨의 경우―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일어난 소피호의 난파사건. 코슈레의 난선기(難船記)는 1821년에 출판되었다.
*** 스탕달은 여기서 입헌국가의 예가 생각나지 않은 체하고 있다. 프랑스는 어떤가? 루이 18세는 헌법을 반포하지 않았는가. 스탕달의 견해에 의하면 당시의 프랑스는 혁명국가라는 것이다. 1822년에 발표된 글로서는 꽤 대담한 표현이다.
**** 이 말이 전쟁에서 기적을 나타내서 나폴레옹 군대를 분쇄했다. 패보를 듣고도 “괜찮아……” 이 말에 힘을 얻어 패병이 다시 집결, 다시 싸웠다.
***** 바루스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의 장군으로 게르마니아에서 가혹한 전제 정치를 하여, 헤르만을 우두머리로 하는 주민의 폭동을 진압하려다가 패하였다.
* 아리치는 프러시아의 시인이고 벤베누티는 토스카나의 화가.
** 풍자문학의 걸작이라고 하는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의 편지≫를 인용.
*** 제노바의 명문 피에스코가의 당주. 1547년 공화국의 전권을 잡은 안드레아 도리아에게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켰다가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