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메타정보

제목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저자이정
저작권자없음
번역자강무학
번역권자(주)집문당
기여자없음
판매권자(주)집문당
발표일없음
발매일2026년 01월 14일
서체정보KoPub바탕체
언어없음
조회수1,347

저자 · 번역자 약력

● 저자 이정(李靖), 571~649 BC 당나라의 인물 자(字)를 약사라 했고, 옹주 삼원현 사람으로, 그 시조는 숭의후로서 위의 은주 자사를 지냈다. 이정은 그 자태나 용모가 위엄이 있는 풍격을 지녔으며, 어려서부터 문재에 뛰어나 수나라 말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그 후 수양제 아래서 벼슬을 했으며, 수나라가 망한 후 당나라 고조, 태종을 도와서 돌궐을 평정하는 데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이다. 어려서 문무의 재력(才力)이 있었고 특히 병법에 뛰어났다. 수(隋)나라 말기에 작은 고을인 마읍(馬邑)의 승(丞)으로 있다가 수나라 조정에 반기를 든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의 휘하에 들어 삼위(三衛)가 되었다. 619년에 이정은 왕세충(王世充)의 반란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개부(開府)의 벼슬을 받았다, 621년에는 강릉에 웅거하던 소선(蕭銑)의 40만 군대를 격파하고 625년에는 태원 지방을 침략한 돌궐(突厥)의 침입을 격파하여 검교안주도독(檢校安州都督)이 되었다. 태종이 즉위하자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임명되고 태종 정관(貞觀) 3년(629)에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었다. 그 후 대주도행군총관(代州道行軍摠管)이 되어 변경을 위협하던 돌궐의 우두머리인 힐리가한(頡利可汗)이 머물고 있던 정양(定襄)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 전공으로 대국공(代國公)에 봉해졌고 이어 정양도행군총관(定襄道行軍摠管)이 되어 돌궐을 격파하고 철산(鐵山)에 웅거하던 힐리가한을 사로잡아 북방을 안정시켰다. 그 공으로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를 거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승진되었다. 637년에 이정은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지고 복주자사(濮州刺使)에 임명되었다. · <이위공문대> 이외에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음부기(陰府機)> 1권, <도금비술(韜鈐秘術)> 1권, <도금총요(韜鈐總要)> 3권, <위국공수기(衛國公手記)> 1권, <궁결(弓訣)> 1권, <병금신서(兵鈐新書)> 1권, <육군경(六軍鏡)> 3권 등 7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위공문대> 이외에는 현존하지 않는다. ● 번역 강무학 서울 태생으로 6세부터 한학을 배워 동양고전을 연구해 왔으며, 신문편집인 등을 역임하였다. 장편역사소설 〈단군〉, 〈을지문덕〉, 〈삼국통일〉 등을 펴냈으며, 〈삼국사기〉, 〈육도삼략〉, 〈손자병법〉등의 번역서 외에 한국의 역사와 사상에 관련한 다수의 연구서와 〈한국세시풍속기〉 등을 저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