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The Prince

차례

머리말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에게 드리는 글

|제 1 장| 군주국의 종류

|제 2 장| 세습제 군주국

|제 3 장| 혼성 군주국

|제 4 장| 왜 반역하지 않았나?

|제 5 장| 자치국의 정복과 통치 방법

|제 6 장| 자력으로 얻은 새 나라

|제 7 장| 행운과 군사 원조

|제 8 장| 범죄로 찬탈한 군주들

|제 9 장| 시민적 군주국

|제10장| 군주국의 국력 평가

|제11장| 교권 군주국

|제12장| 군대 조직과 용병

|제13장| 원조 병력, 혼성 군대 및 국민군

|제14장| 군대의 통솔

|제15장| 인간으로서의 군주에 대한 찬양과 비난

|제16장| 관용과 인색

|제17장| 잔인과 동정심

|제18장| 군주의 언행

|제19장| 경멸과 증오에서 벗어나라

|제20장| 요새 및 보위 수단

|제21장| 명예로운 군주의 행동

|제22장| 군주의 측근들

|제23장| 아첨배의 배척

|제24장| 이탈리아 군주들이 영토를 잃은 이유

|제25장| 운명

|제26장|야만인들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

해설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훈민정음

머리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흔히 ‘악마의 계시로 쓴 책’ 혹은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평가되고 있다. 군주론이 이처럼 강하고 혹독한 책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만큼 획기적이며 독창적인 정치사상과 지배원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구절을 ‘선’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면 ‘악’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악’을 ‘선’의 기준이 아닌 ‘군주’의 기준으로 파악하였으며, 집권·찬탈·존경·멸시 등의 현실적 상황을 지배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이 근세정치사상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며, 지금도 고전적 가치를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500여 년간 소위 ‘문제의 책’으로 알려진 ≪군주론≫은 밀도 짙은 언어로 집약되어 있다. 이 번역서는 조지 벌이 영역한 ≪THE PRINCE≫를 다음의 책을 참고하면서 다시 한글로 옮긴 것이다.

① C. Gauss와 黑田正利의 역서를 번역한 사회과학연구회 최현백의 ≪군주론≫

② N. H. Tomson의 역서를 번역한 중앙일보 동서문제 연구소 연구주간 이상두의 ≪군주론≫

③ G. Einaudi editore 판을 번역한 인하대학교 임명박 박사의 ≪군주론≫

④ 고려대 황문수 교수가 번역한 ≪군주론≫

출판사와 편집자의 호의로 다시 펴내게 된 이 책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보탬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의 원고를 정리해 준 임옥미 씨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송 우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에게 드리는 글 1)


최근 군주의 총애를 독차지하려는 무리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물건을 바치거나 군주가 특별히 좋아한다고 소문이 난 물건을 바치는 등의 일들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군주께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명마를 받으셨고, 가장 좋은 무기를 선사받으셨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찬란한 황금 갑옷과 희귀한 보석을 받으셨으며, 군주의 높은 격식에 알맞은 갖가지 장식물들이 제공되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전하께 진심으로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시하기 위하여 저 자신이 바칠 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소유물 가운데는 전하께 드릴만한 물건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유일하고 값진 것이 있다면, 제가 알고 있는 지식뿐입니다.

저는 역사상 위대한 위인들에 관하여 오랫동안 연구하였고, 고대국가와 고대세계에 관하여 쉬지 않고 공부해 왔습니다. 제가 골똘히 분석하고 오랜 시간을 끌며 연구했던 자료가 있습니다. 이러한 저의 지식을 조그마한 책으로 간략히 서술하여 전하께 바칩니다.

저 역시 이 책이 전하께 드리는 선물로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친절히 받아주실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이 작은 책2)을 쓰기까지 여러 해 동안 많은 고생과 위험을 겪으면서 공부하여 어떤 진실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모든 지식을 바치오니 바쁘신 가운데 잠시 시간을 내시어 읽으시고 이해해 주신다면 저로선 그보다 큰 영광이 없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글을 쓸 때에 흔히 아름다운 글귀를 고르고 과장된 표현만을 씁니다. 사건에 대한 진실은 외면한 채 매력적인 일에만 눈을 돌리고 놀라운 수식어만을 씁니다.

저는 이 책을 쓰는 데 있어서 문장의 기교는 가능한 삼갔습니다. 저의 소망은 이 책이 유명해져서 제가 명성을 얻는 데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다양한 내용과 중요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지위가 낮고 비천한 인간이 감히 군주의 지배원리를 논하려는 의도가 주제넘는 짓이라 생각되실지 모르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은 산수화를 그립니다. 높은 산과 고원의 모양을 그리기 위해서는 들판에 내려가서 직접 보아야만 합니다. 낮은 지대를 그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아야 합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군주의 지위에서 백성을 내려다보아야 하고, 군주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평범한 시민의 위치에서 군주를 보아야만 합니다.

전하! 보잘것없는 책입니다만 저의 충정을 받아주십시오. 만일 전하께서 열심히 읽으시고 깊이 생각하신다면, 운명의 여신과 당신의 자질에 의하여 약속된 명성과 지위에 오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지위의 높은 자리에서 이 낮은 곳을 내려다보시면 당신은 깨달으실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크고도 매서운 운명의 저주를 부당하게 받고 있는가를……. 3)




제1장

군주국의 종류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국가의 권력 밑에서 살아왔는데 모든 국가는 공화국 또는 군주국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군주국가라 함은 일반적으로 혈통에 의하거나 찬탈에 의하여 집권한 후 오랜 기간을 한 가족이 지배자로 행세하는 세습제도를 의미한다.

찬탈에 의한 정권은 전에 없던 새로운 군주 가문의 탄생을 뜻한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자(Francesco Sforza)가 지배하던 밀라노 군주국과 같은 경우이다.4) 그렇지 않으면 스페인의 국왕이 다스리던 나폴리 왕국처럼 어떤 군주국가에 의하여 한 국가가 정복당한 후 새로 세습국가를 창설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한 군주의 지배에 들어간 피지배국들은 자기 나라를 정복한 군주국에 통합되어 통치되거나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며 별개의 군주국이 되기도 한다. 다른 국가를 정복하는 군주는 타국의 무력을 이용하여 전쟁을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자기 나라의 군대만으로 승리하기도 한다. 때로는 순전히 행운에 의하여 이기고 때로는 자신의 절묘한 묘책에 의하여 승리하기도 한다.




제2장

세습제 군주국


공화제에 관해서는 다른 곳5)에서 서술하였으므로 이에 관한 문제는 여기에서 거론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오직 군주론에 관한 것만 언급할 작정이다. 나는 군주국가들이 어떻게 통치되고 있으며,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는가를 논하고자 한다.

오래 전부터 왕가의 혈통에 따라 권력이 이어지는 세습국가는 새로 건국하는 신생 군주국보다 군주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습에 의해 군주국을 지배하는 사람은 다만 선조들이 창설한 제도를 소홀히 하지 않고 그때그때 사건에 따라 적절한 대책만 세우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세습군주는 엄청나게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자가 나타나 그의 통치권을 빼앗지 않는 한 다른 위험이 별로 없다. 군주가 합리적으로 처신하고 꼼꼼히 다스리면 통치권을 유지할 것이다. 설사 정권을 빼앗겼다고 해도 왕권을 찬탈한 자가 궁지에 몰리는 일이 생기면 그는 쉽게 다시 왕위에 복권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이탈리아에 그런 예가 있다. 페라라(Ferrara) 공작6)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1484년 베네치아인들의 공격을 견디었고, 1510년 교황 율리오 2세의 침략도 이겨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그의 권력이 오랜 세월을 두고 세습에 의하여 확고하게 굳어 있었다는 사실밖에는 없다.

사실 세습에 의해 타고난 군주는 국민에게 압박을 가할 필요가 적고 그럴 이유도 별로 없다. 따라서 군주는 더욱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군주가 유달리 잘못을 저지르고 국민으로부터 증오받을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백성은 당연히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세습적 군주국가에는 혁명을 치른 기억이 없으며, 백성이 혁명을 일으킬 이유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두 차례 혁명적 기운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전 왕이 후세를 위하여 적절한 조치7)를 해두었기 때문에 왕국은 타도되지 않는다.



제3장

혼성 군주국


세습제 군주국과 달리 새로 건설하는 신생 군주국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신생 군주국 중 완전한 독립국가가 창설되는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지배해 오던 나라의 일부로 편입되어 혼성국을 이루게 된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신생국가라면 으레 겪게 마련인 한 가지 난관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 신생 군주국의 백성은 지금보다 더 잘살기를 기대하면서 의도적으로 현재의 군주를 갈아치우려 반란을 일으킨다.

백성은 군주를 향해 무기를 들고 일어난다. 그러나 백성의 반란이 실패하면 그들은 스스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들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신생국에서 백성의 도전은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하나의 풍조로 보아야 한다.

새로 나타난 군주는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를 새로운 통치자로 만들어 준 동지들까지도 항상 강압적으로 대하게 된다. 이런 결과로 자신이 나라를 세우면서 가한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대를 받게 된다. 심지어 자신을 군주의 지위에 오르도록 도와준 사람들과 우애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동지들이 아주 당연한 일을 해도 그들을 의심하게 되며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동지에게 사약을 하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군주가 되기까지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군주라 할지라도 정복한 내 영토에 들어가려면 항상 원주민의 호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정복지의 원주민이 반대한 프랑스의 왕 루이 12세8)는 밀라노를 두 번이나 점령하였지만 점령하자마자 잃게 되었다. 첫 번째는 루도비코9) 자신의 군대만으로도 침략자에 대항하여 밀라노를 지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스스로 성문을 침략자에게 열어주었다가 속으로 기대했던 혜택이 없음을 곧 깨달았다. 그들이 예상했던 이익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새로운 정복자로부터 받는 멸시를 견딜 수 없어 백성은 새 정복자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군주를 배반하였던 영토를 군주가 다시 재정복한다면 다시는 그 지역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군주는 과거의 반역을 거울삼아 지난번과는 달리 자신의 확실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반대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며 의심스러운 자들을 색출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왕에게 빼앗겼던 밀라노를 되찾기 위하여 첫 번째에는 루도비코 공이 변두리에서 겁만 주고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로부터 두 번째로 밀라노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온 세상의 도시국가들이 들고 일어나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고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몰아내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프랑스가 밀라노를 내놓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따지고 보면 원주민의 환심을 사지 못한 프랑스가 밀라노를 두 번 점령하였다가 두 번 다 상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첫 번째에 내놓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이미 논하였다. 이제 두 번째 내놓게 된 이유를 규명해야 된다. 그때 프랑스 왕에게 어떤 방책이 가능하였으며 그와 똑같은 처지의 사람이 그보다 더 굳게 정복지를 보존하려면 어떠한 정책을 취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일이 남아 있다.

피점령국이 정복자가 오래 전부터 통치해 온 기존 국가의 일부 영토로 합병될 때에는 그 두 나라가 동일한 언어를 쓰는 지방이냐, 아니냐에 따라 사정이 달라진다. 언어가 같은 지방인 경우 계속 통치하기란 아주 쉽다. 특히 점령국이 자유의 관념에 익숙하지 못하다면 더욱 쉽다. 이런 경우 빼앗은 영토를 안전하게 보존하려면 지난날 이 고장을 지배하던 군주의 혈통을 파괴해 버리면 그만이다. 편안한 생활을 위한 그 고장의 생활방식을 어지럽히지 않았기 때문에, 관습에 변동이 없는 한 백성은 말없이 살아간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오래전부터 프랑스에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부르고뉴·브르타뉴·가스코뉴 및 노르망디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언어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풍습은 서로 비슷하므로 정복자와 피정복자는 피차 쉽게 융화될 수 있다.

새로운 속국을 보존하려면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는 옛 군주의 혈통을 끊어버릴 것이며, 둘째는 그 나라의 법률이나 세금제도를 뜯어고치지 말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새로 얻은 나라는 단시일 내에 종주국에 융화될 것이다.

그러나 언어와 풍습이 다르며 국가 제도가 서로 같지 않은 지방의 나라를 얻은 경우에는 어려운 문제가 많이 생긴다. 군주가 이러한 나라를 순조롭게 보존하려면 운도 운이려니와 군주 자신이 매우 부지런해야 된다. 이런 국가를 다스리기 위한 가장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정복자가 몸소 그곳에 가서 같이 거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새로 얻은 나라를 더 안전하게 오래 지킬 수 있다. 이러한 통치방법은 투르크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 실시한 방법이다.10)

만일 투르크 왕이 그리스로 옮겨 살지 않았더라면 투르크가 그 밖의 어떤 통치방법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그리스를 오래 지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지에 있으면 문제를 발생 시초에 탐지해서 즉각 수습할 수 있다. 만일 군주가 현지에 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는가? 사태가 심히 악화된 뒤에야 알게 될 것이며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또한 군주가 현지에 직접 가서 통치하는 방법은 현지에 보낸 자기 신하들의 노략질을 막을 수 있다. 신하들은 군주와 가까이 있으므로 직접 호소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 만일 신하가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그는 군주를 더욱 공격하게 되며, 다른 음모를 꾸민다면 군주를 더 두려워하게 된다.

따라서 군주가 새 나라에 직접 가서 살면 극한적인 곤경에 빠지기 전에는 통치권을 잃을 위험은 좀처럼 없다.

군주가 현지에 정착하는 것보다 나은 다른 현명한 통치 방법은 새 나라의 여러 곳에 자기 나라 백성을 이주시키는 방법이다. 역사적인 사실들이 입증하는 바11)와 같이 당신이 얻은 나라는 쉽게 복종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식민지촌을 창설하지 않고 새 영토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수의 기마대와 보병과 같은 부대를 주둔시키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할 것이다.

식민이주 정책은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군주는 자기 본국 국민 중에서 이주 희망자를 쉽게 모집할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이사시켜 새 영토를 안전하게 유지한다.

때로는 군주로서 개인적인 부담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군주와 새로 정착한 집단 이주민에게 자신들의 재산과 집을 빼앗긴 원주민들이 반항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무리들은 보잘것없는 소수이다. 반항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가난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으므로 피해를 줄 만큼 강하지 못하다. 그 밖의 대다수 원주민들은 피해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살아간다. 다수의 원주민은 자기들까지 재산을 약탈당한 사람의 처지가 될까 걱정하며 감히 나쁜 짓을 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식민정책에 의한 통치는 경제적이고 신뢰도가 높으며 해로운 일이 적은 방법이다. 정복자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 가난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탈이 나지 않는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백성의 욕망을 채워주어야 하느냐, 아니면 짓밟아 버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조그마한 피해에 대해서는 앙심을 품고 대들지만 운명의 여신이 내려친 무자비한 탄압에는 반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군주가 압박이나 피해를 가할 때에는 복수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극악한 방법을 써야 한다.

군주가 식민정책을 쓰지 않고 군대를 주둔시키는 경우에는 경비가 훨씬 더 든다. 모든 세금 수입을 국방비에 바쳐 군대를 유지하고 반란을 막는 데 충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영토를 얻었다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큰 손실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

군주는 군대의 주둔지를 여러 곳으로 이동시켜야 하므로 군대가 이동하여 주둔하는 곳마다 온 나라가 피해를 입는다. 원주민 모두가 이 때문에 곤욕을 당하여 모든 백성이 적으로 변한다. 군대의 이동에 따라 피해를 당한 많은 사람들의 적의는 날이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적대의식을 품은 원주민들이 늘어나서 결국 군주를 몰아내는 큰 세력으로 발전한다.

정복한 영토를 안전히 유지하며 통치하는 방법으로 식민정책보다 더 유효한 방법은 없다.

한 가지 더 말할 점은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같지 않은 영토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때는 인접 약소국가들을 통치하고 있는 군주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거나 지도자가 되어야만 한다. 이들과 연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주위에 있는 강대국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군주는 자신과 같이 강한 외국 군주의 현지 침투를 막도록 예방책을 준비해야 한다. 침략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반드시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의 소행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지나친 야심을 갖고 있거나, 혹은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톨리아 사람들이 언젠가 로마 군대를 그리스로 끌어들인 것이 그 예이다. 다른 지방에서도 역시 로마인들을 끌어들인 것은 원주민들이었다. 언제나 그렇기 마련이지만 강한 외국이 한 지방에 침입하면 약소국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을 지배한 강국이 미워서 그 외국을 지지한다.

약소국가라는 입장만 생각한다면 군주로서는 이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 힘들 게 없다. 군주는 정복자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군주가 세운 나라에 대뜸 제 스스로 합방해 오기 때문이다. 군주로서는 다만 피정복 국가가 지나치게 강력해지거나 지나친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감시만 하면 된다.

군주는 자신의 힘과 피정복자들의 도움으로 강한 이웃 나라를 쉽게 쳐부수어 스스로 그 지역의 명실상부한 지배자로 행세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유의하지 않은 군주는 누구나 피로써 획득한 영토를 쉽게 빼앗길 것이다. 비록 빼앗기지 않고 지배한다 하더라도 군주는 헤아릴 수 없는 난관과 곤욕을 겪게 될 것이다.

로마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점령지에서 이러한 원칙을 조심스럽게 적용하였다. 로마의 군주들은 점령지에 자국의 백성을 집단 이주시켰다. 주변의 약소국가들이 자체의 힘을 기르지 못하게 만들었고 어떤 외국도 로마의 위세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스의 경우가 더 좋은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그리스에서 로마인들은 아카이아인 및 아이톨리아인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그들은 힘을 합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을 쳐부수고 또 안티오코스12)를 쫓아냈다.

아카이아인들과 아이톨리아인들이 아무리 얌전하게 굴어도 로마인들은 이들의 영토확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가 이들을 설득하여 동맹을 맺을 겨를도 주지 않고 그대로 쳐부수었다.

또한 안토니오코스 대왕은 강했지만 로마인들은 그가 그리스에서 권위를 펴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로마인들은 현명한 지배자가 지녀야 할 모든 지혜에 따라 통치했다. 현재의 어려운 문제에 대처하였을 뿐만 아니라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까지도 대비했다. 피지배자가 복종하지 않으면 선수를 쳐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려 애썼다.

통증이 생기면 일찍 치료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뒤늦게 치료하고자 한다면 그때는 이미 불치의 고질병이 된 후일 것이므로 치료할 수가 없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모성 질병13)을 초기에 치료하기는 간단하지만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반면에 시간이 지나면 병이 악화되어 발견하기는 쉬우나 치료가 어렵다. 병을 발견하였으나 치료의 기회는 놓쳐버린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불화도 시초에 발견한다면 쉽게 빨리 다스릴 수 있다. 다만 현명한 지배자만이 불안의 시초를 알아차릴 뿐이다. 투약이 부족하거나 만인이 인식할 때까지 불평이 커졌다면 이미 치료 시기는 지났을 때이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어려움이 닥쳐와도 항상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썼다. 로마인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어려움을 그냥 내버려두는 일이 없었다. 전쟁을 피할 도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에서 필리포스와 안티오코스와 전쟁하기로 결심하였다. 어차피 후에 이탈리아에서 전쟁할 바에는 그리스에서 하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두 군데에서 다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늘 ‘현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라’는 현명한 자들의 입에서 매일 나오는 말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용기와 지혜’를 최대로 활용하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악뿐만 아니라 선을, 선뿐만 아니라 악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눈을 돌려 프랑스를 보자. 프랑스는 내가 위에서 말한 방법을 실행해 본 적이 있을까? 나는 샤를 왕14)보다 루이 왕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행적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루이 왕은 이탈리아에 와 있던 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더 자세히 알 수가 있다.

당신은 이 사람이, 군주가 외국 영토를 지배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꼭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정반대의 일만 골라서 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루이 왕은 베네치아 사람들의 야심에 사주되어 이탈리아에 끌어들여졌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루이 왕의 힘을 이용하여 롬바르디아 땅의 절반을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루이 왕이 취한 행동의 과정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탈리아를 짓밟으려고 하였으나 그 지역에서 그를 도와주려는 맹방이 없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과거 샤를 왕의 행적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어느 곳에서든지 우호적인 나라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심리적인 고통을 받았다. 이러한 사태에 처해 루이 왕은 사려깊이 행동을 하여 자기 자신이 잘못만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원하는 바대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롬바르디아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자 그는 앞서 샤를 왕이 잃었던 명성과 세력을 즉시 회복하였다. 제노아가 항복하였고, 피렌체는 그의 연합국이 되었다. 만토바 후작15)과 페라라 공, 벤티볼리오 가문, 포를리 백작부인 그리고 파엔차, 페사로, 리미니, 카메리노, 피옴비노16)의 지배자들, 루카와 피사와 시에나의 시민이 모두 루이 왕과 손을 잡으려고 찾아들었다.

그때서야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기들의 처사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롬바르디아에 있는 조그마한 두 도시를 차지하려고 루이 왕을 끌어들였으나 이미 이탈리아 전 국토의 3분의 1을 그에게 주는 우를 범하였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만약 루이 왕이 내가 앞서 말한 원칙을 지켜 모든 동맹국을 잘 확보했더라면 이탈리아에서 세력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쉬웠겠는가하는 점이다. 동맹국이 많았으나 그 동맹국들은 모두 약하고 겁을 먹고 있었다. 교황권과 베네치아 사람들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저들은 모두 루이 왕 편에 붙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 왕으로서는 이들을 이용하여 나머지 강국들을 손쉽게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밀라노에 입성하자마자 그 정반대의 짓을 했다. 로마냐 지방을 점령하려고 알렉산데르 교황17)을 원조한 점이다. 잘못은 결정적이었고, 루이 왕은 다가올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런 결정을 내림으로써 루이 왕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약화시켰으며, 자기의 여러 동맹국들과 멀어졌으며, 자신의 품 안에 제 발로 몰려왔던 모든 사람들과 멀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교회의 정신적 권위에 속세적 권력까지 크게 덧붙여 줌으로써 교회의 힘을 강화시켜 주었다.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나니 그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알렉산데르 교황의 야욕을 꺾고 교황이 투스카나의 지배자가 되는 길을 막기 위해 루이 왕은 몸소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될 판국에 이르렀다. 교회의 힘을 강화해 주고 동맹국들을 따돌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루이 왕은 나폴리 왕국까지 탐을 내어 나폴리를 스페인 왕과 나눠 가졌다.

이탈리아에서 제일의 지배자였던 그가 스페인이라는 경쟁자를 공연히 끌어들인 것이다. 야심에 가득 찬 불평분자들에게 좋은 활로를 찾게 한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루이 왕은 후일 나폴리에 천추의 한이 될 인물을 왕으로 남겨놓았다.18) 자신을 추방하게 될 이 인물을 왕으로 남겨두기보다 차라리 제거했어야 마땅했다.

권력이나 영토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하나의 상식이다. 그리고 이에 성공할 때 사람은 비난보다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그럴 능력도 없이 억지 희생을 마다 않고 욕심을 부릴 때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욕을 먹어 마땅하다.

프랑스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나폴리를 공격할 수 있었다면 프랑스는 마땅히 공격을 했어야 했다. 만일 그럴 능력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차지하지 말아야 했을 것이다. 루이 왕이 이탈리아에 발판을 구축하기 위한 책략으로 베네치아 사람들과 롬바르디아를 분할하였다면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폴리를 스페인과 짜고 분할한 것은 연합세력을 구축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후세의 비난을 면치 못할 사실이 되었다.

루이 왕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그는 약소 국가들을 궤멸시켰다.

둘째, 이탈리아에서 이미 세력이 강하던 자의 세력을 더 강화시켜 주었다.

셋째, 이탈리아에 아주 강력한 외국 세력을 끌어들였다.

넷째, 그 자신이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통치했다.

다섯째, 이탈리아에 식민촌을 건설하지 않았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실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여섯 번째의 잘못만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그가 죽어서도 비난받아야 할 운명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섯 번째의 실수란 무엇인가? 베네치아인들에게서 그들이 얻은 것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만일 그가 교회의 세력을 강화시켜 주지 않고 스페인을 이탈리아에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베네치아인들을 짓밟아도 마땅하고 또 그들을 없애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되어도 그는 베네치아를 망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의 힘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한 롬바르디아를 치려는 다른 세력들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사람들도 롬바르디아를 자기네가 장악하지 못한다면 여기에 반대했을 것이고, 다른 나라들도 롬바르디아를 프랑스로부터 빼앗아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당시에 누구도 프랑스와 베네치아 두 나라에 감히 도전할 용기를 가진 자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루이 왕이 로마냐19)를 알렉산데르 교황에게 양도하고 나폴리 왕국을 스페인에게 넘겨준 것이 전쟁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되풀이하여 말하지만, 인간이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면 절대로 안 된다. 인간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이란 피하면 피할수록 불리하게 된다.

만일 루이 왕이 교황에게 한 서약을 잘 지켰고, 교황이 그의 이혼을 허용하고 루앙20)에게 추기경 자리를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루이 왕이 그 일을 맡기로 약속한 점을 누가 찬양한다면, 나는 군주의 신의와 약속 이행에는 다른 원칙이 있다고 말해야겠는데, 이 점은 후에 논하겠다.

그러므로 루이 왕이 롬바르디아를 잃게 된 까닭은 그가 다른 나라를 점령한 군주들이 지키는 원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를 빼앗고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그 지키는 바 원칙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고 매우 평범하고 합당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알렉산데르 교황의 아들인 보르지아21)왕, 통칭 발렌티노가 로마냐를 정복하고 있을 때 낭트에서 루앙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루앙 추기경이 나에게 말하기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전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대답하기를, 프랑스 사람들은 통치술을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일 그들이 치국술을 알았다면 교권이 그렇게 강대하게 커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판에 가서 교회와 스페인은 이탈리아에서 대적할 수 있을 만한 자가 없을 정도로 강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프랑스는 자신이 불러들인 교회와 스페인 때문에 패망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극히 타당한 원칙 하나를 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남을 강하게 하는 자는 누구나 망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강한 권력은 재간이나 힘에서 생겨나며, 강대해진 자는 모두 재간과 힘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


제4장

왜 반역하지 않았나?

알렉산더 사후의 다리우스 왕국


새로 얻은 나라를 통치하려면 많은 난관을 겪는다.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22)은 ‘이런 일을 어떻게 극복했을까?’하고 궁금해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 아시아의 정복자가 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정복한 영토에 대해 매듭을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복자가 죽으면 일반적으로 정복한 영토에서 반란이 일어나는데 알렉산더의 정복지에서는 반란이 없었다.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통치하였다. 그들의 통치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오직 그 후계자들끼리의 야욕과 경합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이 의문점에 관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역사상 알려진 모든 군주국은 다음의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 방식을 통해 통치한다.

하나는 모든 백성이 한 군주에게 복종하고 그 군주의 선심과 허가를 받은 각 장관들이 군주를 보필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군주의 명성은 대단치 않지만 오래된 혈통에 의해 덕망 있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귀족들의 도움으로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경우이다. 이러한 귀족들은 오랫동안 자기들의 영토와 자신의 신하를 가지고 있다. 이 신하들은 그 귀족을 자기네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며 군주에 대한 자연적이며 습관화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군주와 신하들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군주의 지위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 국토에서 군주에 대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된다는 위신을 한 몸에 지녀야 한다. 특별한 은혜를 입은 일이 없는 대신들과 관리들의 말에 그 누구도 군주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투르크와 프랑스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통치 방법의 예를 찾을 수 있다. 투르크 제국은 한 사람의 군주가 통치하는 방식이었다. 군주 이외의 사람은 모두 그의 노예와 마찬가지였다. 군주 한 사람이 통치하면서 자기 제국을 여러 개의 직할지23)로 나누었다. 이곳에 자기가 믿을 만한 행정관을 파견하고 언제든지 자기의 충신이 되도록 필요에 따라 임명하고 파면했다.

프랑스 왕국은 다르다. 프랑스 국민의 인정을 받으며 존경을 받고 있는 오랜 지배 전통이 있는 귀족을 시켜 위임통치를 하였다. 이 당시에 귀족들은 제왕의 특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어떤 군주라도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함부로 이들을 몰아낼 수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의 본국과 귀족의 위임 영토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투르크 제국이 지배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이 두 개의 나라를 비교해 본다면 투르크 제국과 같은 나라는 그 통치권을 일단 잡아만 놓으면 보존하기는 쉬웠다. 반면에 프랑스 같은 나라는 빼앗기는 비교적 쉽지만 이를 지키는 데는 대단히 힘이 들었다.

투르크 제국을 정복하기는 어렵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투르크 제국은 쳐들어가는 자에게 지방 군주들이 호응하지 않고, 옛 군주와 밀착하였던 사람들이 그 통치자에게 반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다. 그들은 자기 군주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하여 매달리는 노예와 같기 때문에 감히 반역을 저지를 만큼 부패하지 않았다. 설령 투르크 국민이 부패하였다 해도 그들을 이용하려 들지 못한다.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이들 백성을 따라오게 할 방법 없이 아무리 선심을 쓴다한들 백성은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투르크 제국을 침략하려는 자가 있다면 공격하기 전에 투르크의 군신이 하나로 굳게 단결해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 단결이 공고한 투르크를 정벌하려면 투르크의 내부 분열에 기대를 거는 무모함을 버리고, 정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강력한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현명하다. 만일 투르크가 전쟁에 패하여 군사를 재정비할 겨를이 없는 경우가 되면 황제의 황통 이외에는 겁낼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다른 자들은 백성에게 황제가 될 만한 신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복자가 승리를 거두기 전에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리 후에도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프랑스와 같은 방식으로 통치하는 나라에서 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는 한 토호를 수중에 넣는다면 그 나라에 쉽게 쳐들어 갈 수 있다. 프랑스에는 항상 현상타파를 외치는 불평분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런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당신에게 정복의 길을 터주며 당신의 승리를 보장해 준다.

정복은 쉽게 하였지만 이 나라를 통치하고 보존하려면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당신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과 이미 당신에게 정복당한 자들이 다시 암적 존재로 변하기 때문이다.

옛 군주의 혈통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폭동을 일으키려는 귀족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두 만족시켜 줄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숙청할 수도 없다. 그들은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으므로 당신이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르면 그 나라는 금방 잃게 된다.

이제 당신이 다리우스 왕24)이 하던 종류의 정치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당신은 다리우스의 통치 방법이 투르크의 정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알렉산더는 무엇보다 먼저 다리우스를 완전히 쳐부수어 그의 나라를 빼앗아야 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가 승리를 거두고 다리우스가 죽은 후에는 내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그 나라는 알렉산더의 수중에 안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이 서로 잘 단결하여 통치하였으므로 큰 어려움 없이 지배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확실한 사실은 자중지란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백성은 아무런 소동도 벌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프랑스 왕국과 같이 구성되어 있는 국가에서 어려움 없이 다스리기란 불가능하다. 스페인 왕국과 프랑스, 그리스 왕국에서 로마인들에게 대항하여 일어난 수많은 반란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들 왕국에서는 많은 귀족들이 영토를 분할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이 있는 한, 로마의 통치는 항상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통치가 장기적이고 로마의 영향력이 강력해질수록 그러한 반란의 위험성은 줄어들었고 로마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로마인들은 각자 귀족들의 내분을 이용하여 그가 정복한 영토의 각 지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예전 군주들의 혈통은 끊어졌으므로 개별적으로 모두 로마인들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아시아의 지배자로서 위치를 유지한 알렉산더가 쉽게 지배권을 보존한 것이나, 또한 피로스25)와 같은 다른 많은 통치자들이 정복지를 보존하는 데 애를 먹은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정복지를 통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거나 적은 차이는 정복자들에게 능력이 있고 없고에서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정복한 국가의 종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제5장

자치국의 정복과 통치 방법


자기네 법률체제 아래서 자유로이 살던 나라를 정복하였을 때에 이를 안전하게 통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기존의 국가질서를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

둘째, 자신이 직접 그곳에 가서 산다.

셋째, 피정복자들이 자치를 하도록 허용하고 그들에게 조공을 받으면서 당신에게 친근한 국가로 남아있도록 과두정치체제를 내세워 우방으로 만든다.

과두정치를 실행하면 통치자는 새로운 군주에 의해 직명된 통치권력을 가진다. 따라서 새 군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권력을 지탱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 결과 이들은 군주의 명령에 최선을 다한다.

자치에 익숙한 국민들을 통치함에 있어서 그곳의 자유민을 통치자로 뽑으면 쉽게 다스릴 수 있으며 이는 그 영토를 유지하기 위한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손쉽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스파르타와 로마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아테네와 테베에서 과두정치를 실시하였으나 결국에는 두 도시를 다 잃고 말았다.

그와 반대로 로마인들은 카푸아·카르타고·누만티아를 보존하기 위하여 이들 나라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기 때문에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리스를 통치할 때 로마인들은 스파르타가 다스린 방법대로 자유를 주고 자치 왕국으로 다스리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결국 그 지역의 많은 도시를 파괴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새로 얻은 영토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에서는 그 영토를 황폐화시키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누구든지 자치의 전통이 있는 도시국가의 주인이 되려면 그 도시를 파괴해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파괴당할 수 있다. 그러한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자유에 대한 향수와 옛 제도에 대한 동경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새로운 정복자가 많은 혜택을 베풀어도 영원히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복자가 아무리 선정을 베풀고 선견지명이 있더라도 원주민들을 분산시켜 놓지 않는다면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에 대한 애착과 옛 제도를 대뜸 명분으로 들고 나온다. 마치 피렌체에 의해 백 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한 후에도 피사가 봉기했던 역사와 같이,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놓치지 않고 일어선다.

그러나 도시와 지방의 백성이 늘 어떤 군주의 지배하에 살아온 관습이 있을 때에는 그 옛 군주의 혈통만 없애버리면 주민들은 그들 스스로 새로운 군주를 자치적으로 선출하고자 해도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군주 없는 자유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장 봉기를 할 기회도 못 얻게 되어 새로운 군주로서는 그들의 신임을 얻기가 더 수월해지는 것이다.

자치 공화국은 생기와 증오 그리고 복수욕이 강하다. 지난날의 자유에 대한 추억이 노예화된 오늘의 현실을 방관해 버리거나 그대로 주저앉아 있지 못하게 한다. 이때에 통치자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옛 군주의 혈통을 모조리 없애버리거나 직접 자신이 현지에 가서 사는 것이다.




제6장

자력으로 얻은 새 나라


새로운 군주국가나 새로운 군주의 통치에 관해 얘기함에 있어서 내가 역사상 위대한 인물을 거론한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인간이란 대개 다른 사람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따르게 마련이고, 만사를 처리함에 있어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인간이 위인의 발자취를 완전히 뒤따르거나 본받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속 깊은 사람은 항상 훌륭한 인물의 발자취를 따르고 위인의 특출한 행적을 모방한다. 그 자신의 슬기가 선현들에 비길 바는 못 될지라도 훌륭한 풍채만은 갖추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훌륭한 명궁처럼 행동하고 싶어 한다. 훌륭한 명궁은 거리가 너무 멀다 싶은 표적을 맞추려면 자기 활의 탄력을 고려하면서 가까운 표적보다 훨씬 위를 겨냥하여 힘껏 당긴다. 이것은 그렇게 높은 데를 맞추려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높이 겨냥해야만 화살이 먼 표적에 가 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로 들어선 인물이 모두 새 사람인 새로운 나라에서 그 군주가 통치권을 유지할 때에 당하는 어려움은 그 본인의 능력 여하에 따르는 셈이다. 일개 시민에서 군주가 됐다는 자체가 본인의 능력 아니면 행운의 덕분일 것이나, 그가 당하는 어려움도 다시 그 능력 혹은 행운 덕분에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군주가 된 자는 행운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위치를 굳히는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군주가 다스리는 다른 왕국이 없다면 자신이 신생국에 가서 직접 통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행운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군주가 된 인물로는 모세와 키루스26) · 로물루스27) · 테세우스28)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성경에 나오는 모세는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므로 자력으로 위인이 된 사람에 낄 수 없다는 논자가 있을지 모르나,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자격자라는 점에서는 찬양할 만한 위인이다.

그렇다면 새로 영토를 획득하여 새 나라를 창설한 키루스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이들은 모두 흠모할 만하며 그 행적과 제도를 살펴보면 하느님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모셨던 모세와 비교해 볼 때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그들의 생애와 치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들은 오직 시기 이외의 어떤 행운도 누린 것 같지 않다. 이를테면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지만 그 일감으로 일을 만들어 낸 것은 본인이었다.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의 용기나 슬기는 깨져버렸을 것이고, 또 그러한 용기와 슬기가 없었다면 기회가 왔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세라는 인물을 만나야 했고, 모세 또한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굴욕과 압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필요했다. 로물루스가 로마의 왕이 되어 자기 나라를 창설하는 데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알바롱가를 떠나 죽음의 구렁텅이에 버려지는 여건이 필요했다.

키루스는 메디아 제국에 반대하는 페르시아인의 반항심이 필요했고, 이때 메데스인들이 오랜 세월 누려온 평화 때문에 유순하고 나약해졌다는 여건 또한 없어서는 안 되었다.

아테네인들이 분산된 상태에 있지 않았더라면 테세우스는 그의 용기를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절호의 기회는 능력 있는 이들을 큰 성과로 이끌었다. 그리고 본인들의 슬기로 이들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나라는 유명해지고 큰 변영을 누리게 되었다.

용기와 슬기가 있는 인간은 갖은 고초를 겪은 뒤 군주의 지위에 올라 영토를 얻었으므로 나라를 지키는 데 별로 애를 먹지 않는다. 이들이 나라를 얻을 때 고생하는 것은 군주로서의 자리를 굳힘에 있어서 새 제도와 새 법률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 명심해야 할 점은 한 나라의 조직에 새 변화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힘들고, 불안하고, 위험한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개혁자는 옛 질서 아래서 영화를 누리던 모든 사람의 원한을 사는 반면 앞으로 새 질서에서 번영할 사람들로부터도 미온적인 지지밖에 얻지 못한다. 이 미온적인 지지의 까닭은 기존 법률의 덕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원한이 두려운 때문도 있고, 또 인간이란 만사에 불신이 앞서고, 경험에 의하여 자기가 시험해 보기 전에는 새로운 것을 믿으려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변화에 반대할 때에는 그 반대와 공격은 강렬하지만 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수비는 미온적이고 소극적일 따름이다.

그러니 개혁자와 그 지지자들은 모두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철저히 논하려면 먼저 자기 혼자 움직이는 개혁자와 남들에게 기대고 있는 개혁자를 구분해야 한다.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격다짐으로 나갈 수 있는 개혁자인가, 아니면 설득을 통해 개혁하는 사람인가를 구분해야 한다. 설득을 통한 경우는 언제나 실패하고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강권을 행사해 나가는 경우에는 별로 위태로워질 것이 없다. 무력을 배경으로 한 예언자는 모두 승리하였고, 무력의 배경이 없는 예언자는 모두 실패하였다.

내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민중이란 원래 변덕스러운 것이다. 민중에게 어떤 일을 설득하기는 쉽지만, 설득했다 하더라도 그 일에 확신을 갖도록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였지만 민중이 믿지 않는다면 강제로 믿게 만들 수 있도록 대비해야 옳을 것이다.

모세나 키루스 그리고 테세우스나 로물루스도 무력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오래도록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기로라모 사보나로라29)수도사를 보라.

민중이 그를 신임하지 않게 되고, 믿지 않는 자들을 강제로 믿게 할 방도도 없고, 여태까지 믿던 자를 그대로 묶어둘 방도도 없게 되자, 그의 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와 같은 환경에 처하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때가 언제인가 하면 그들이 아직도 기를 쓰려고 하는 그때이다.

그러나 일단 성공을 하면 그들의 능력에 시샘을 하는 자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민중에게 존경을 받기 시작하면 그들은 영속적인 권력과 안전, 존경과 번영을 누리게 된다.

이제 좀 비굴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앞에서 말한 사람들처럼 위대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이들은 서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비교가 된다.

그 예는 시라쿠사의 히에론30)의 경우이다. 그는 일개 시민에서 시라쿠사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 역시 기회를 잘 포착한 이외에 행운의 덕을 본 일이 없다. 왜냐하면 시라쿠사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자 그를 군사령관으로 뽑았고, 그 다음은 그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들의 군주가 될 권리를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슬기와 용기는 대단했다. 그가 일개 시민이었을 때를, 그의 자서전을 쓴 작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그는 왕국을 제외한 왕으로서의 모든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31)

그는 구식 민병대를 해체해 버리고 새로운 군대를 창설했다. 그는 옛 동맹국들을 버리고 새로운 동맹을 만들었다. 이렇게 자신의 동맹과 군대를 갖게 되자 그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히에론은 군주가 되기까지는 고생을 하였지만 자기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별로 고생을 하지 않았다.



제7장

행운과 군사 원조


한낱 시민의 입장에서 순전히 행운에 의해 군주가 된 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군주가 되는 셈이지만 후에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군주들은 군주의 자리까지는 날개를 단 듯이 쉽게 올라서지만, 권좌에 앉자마자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한다.

이러한 예는 그리스의 여러 나라, 아오니아와 헬레스폰트의 도시국가에 많았다. 돈으로 군주의 자리를 얻은 자들이 이런 경우이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자기의 안전과 영광을 위하여 지방 군주를 두었는데, 이 지방 군주는 다리우스 왕의 덕으로 군주가 되었다. 일개 평민이 일약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경우도 이런 예에 속한다.

이런 종류의 통치자는 자신을 군주의 자리에 앉혀준 자들의 호의와 운수에 의지한다. 그러나 그 호의와 운수라는 것은 모두 변화하기 쉽고 불안정한 왕국의 근원이 된다.

타인의 힘에 의거하여 집권한 군주들은 그 지위를 유지하는 방법도 모르고, 또 그것을 유지할 능력도 없다. 혹시 안다고 해도 그 방법을 써먹을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어찌하여 방법을 모르는가? 한낱 평민으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적절한 재능이나 용맹함과 총명함을 구비하지 못했다. 그들은 왜 무능한가? 자기에게 충성하고 헌신하는 군대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말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세워진 정부는 자연 현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안전하기 위한 깊은 뿌리와 굳은 가지가 없음으로 해서 폭풍에 시달리는 나무와 같다.

따라서 이들은 단 한마디의 불길한 주문에 의해서도 파괴된다. 자기 앞에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자가 갑자기 군주가 되었거나, 타인이 고생 끝에 집권한 방법을 사려 깊이 생각하지 않는 한 용맹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

용맹과 슬기로 군주가 된 경우와 운수에 의해 군주가 된 두 가지 예를 우리의 생생한 기억 속에서 찾아 제시하고자 한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자와 보르지아 황제가 그 예이다. 프란체스코는 정당한 수단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의 위대한 능력으로 비천한 평민에서 밀라노의 공작이 되었다. 그는 끝없는 투쟁 끝에 승리를 얻었으므로 정권을 유지하는 데 그다지 어려운 일이 없었다. 반대로 보르지아 황제는 일반적으로 발렌티노 공작이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자기 아버지를 잘 둔 행운 하나로 나라를 상속받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행운이 떠나자 그는 영토를 잃었다. 무력과 행운에 의해 나라를 얻은 유능한 군주들이 사용했던 수단과 방법을 그가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지위는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앞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이 탁월한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자는 나라를 얻고 난 후 자신이 안주할 군주라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대를 이어서 지은 큰 건물은 쉽게 위험에 휩싸이지 않는다. 발렌티노 공작의 전 생애를 보면 그가 미래를 위해 튼튼한 건물을 지으려고 애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 군주가 된 자들 중에서 보르지아 황제가 한 행동보다 더 현명하고 교훈적인 행동을 한 사례를 나는 알고 있지 못하다. 비록 그의 통치가 유효하지는 못했지만 실패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으며, 단지 특이하고 극단적인 악운이 덮친 때문이었다.

알렉산데르 6세가 아들에게 자기의 지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이러한 의도는 시기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무수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교황령이 아니면 그의 아들을 군주로 보낼 나라가 없었다. 교황령의 하나를 자기 아들에게 준다 해도 밀라노의 공작과 베네치아 사람들이 그 아들의 통치에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렉산더는 알고 있었다. 파엔차와 리미리는 이미 베네치아의 보호 아래 있었다. 이탈리아의 병력이나 그가 이용하고자 하는 다른 군대들은 교황권의 강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조종당하고 있었다. 군대는 오르시니32)와 콜론나33) 및 그 추종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그는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알렉산데르 6세가 할 일은 불안을 조성하고 폭동을 조장하여 그들의 일부라도 안전하게 통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베네치아 사람들이 프랑스 군대를 이탈리아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쉬운 일이었다. 알렉산데르 6세는 이런 술책을 서슴지 않고 채택하였으며, 특히 루이 왕의 결혼을 해소시킴으로써 더욱 쉽게 목적을 달성하였다.

발렌티노 공은 베네치아의 원조와 알렉산데르 6세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를 침공하였다. 밀라노에 도착하자마자 루이의 군대는 로마냐를 쳐부수었다. 로마냐는 이탈리아에 앉아 있는 루이 왕의 권위에 질려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러나 발렌티노 공이 비록 로마냐와 콜론나를 정복했지만 자신의 지위를 굳히고 발전시키는 데 곤란한 점이 두 가지나 있었다. 첫째는 그가 자기 군대의 충성심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프랑스의 속셈이었다. 프랑스의 정책과 오르시니 군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가 이용하려고 한 오르시니 군대는, 이용은커녕 오히려 그에게 반항하였다. 그가 가는 길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의 승리를 찬탈하려 했다. 루이 왕까지도 이러한 반란의 대열에 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발렌티노 공은 이러한 공포 속에서 하나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발렌티노 공이 피엔차를 정복한 직후 로마냐를 공격할 때 그는 오르시니 군대가 마지못해 전투에 임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차렸다. 또 우르비노 공국을 점령하고 난 후 투스카나를 공격하기 위해 루이 왕의 지원을 받으려 하였으나, 루이는 기대에 어긋나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직시한 발렌티노 공작은 다시는 외국 군대에 의존하거나 행운에 기대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제일 먼저 그는 로마에 있는 두 파로 갈린 오르시니와 콜론나의 귀족들에게 선무공작을 했다. 귀족들의 환심을 사고자 관직을 주고 돈을 뿌렸다. 귀족들에게 지위에 따른 권위를 인정해 주니 옛 지배자에 대한 미련은 몇 달 만에 허물어져 버렸다. 귀족들에게는 공작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 다음으로 오르시니의 지도층을 파괴해 버릴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르시니는 자신의 붕괴를 초래할 귀족들의 지위 향상과 권력의 확장을 염려하여 페루자 가까이에 있는 마조네에서 발렌티노 공과 회담을 하였다.

이 회담이 끝나자 우르비노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로마냐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발렌티노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발렌티노는 이 모든 난관을 프랑스의 힘을 빌려 극복할 수 있었으며 발렌티노의 세력은 전과 같이 회복되었다. 그 후 그는 프랑스나 그 밖의 세력의 힘에는 더 이상 의존하지 않으려 했다. 이러한 속셈 때문에 생길지 모르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는 책략을 생각해 냈다. 발렌티노의 비밀책략은 철저하였으므로 오르시니 까지도 파올로34)를 내세워 화해를 제의해 왔다.

발렌티노 공은 외교상의 모든 술책을 동원하였으며 파올로에게 돈을 주고 옷과 말을 선사했다. 발렌티노 공에 반한 파올로의 단순한 꼬임에 빠진 오르시니는 세네갈리아에서 발렌티노 공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말았다. 오르시니의 지배층은 붕괴되었고 남아 있는 오르시니의 추종자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그리하여 발렌티노 공작은 우르비노 공국을 비롯하여 모든 로마냐 영토를 차지했다. 그는 로마냐인들의 믿음과 우정을 얻게 되었다. 원주민들은 그의 선정으로 이제 번영을 약속받은 것처럼 보였다.

발렌티노 공작이 로마냐를 통치하려고 와서 보니 로마냐의 옛 지도체제는 나약한 귀족들의 집단이었다. 국민을 위해 훌륭히 다스리기는커녕 국민을 수탈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통치는 화합보다 무정부주의적 상태였으므로 각 지방에서는 약탈이 성행하였고 일마다 어긋나 있었다. 그러므로 발렌티노 공작은 이 영토를 평화롭게 다스리고 군주의 권위에 순종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발렌티노 공작은 잔인하고 유능한 레미로 데 오르코35)를 로마냐에 파견하고 전권을 부여했다. 레미로는 로마냐를 단시일에 평화롭고 단결된 곳으로 재건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자 발렌티노 공은 날이 갈수록 비대해지는 레미로라는 초권력적 존재를 그대로 놓아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발렌티노 공은 자기 직속으로 이 지방의 중심지에 시민의회를 설치하였다. 모든 도시에서 이 시민의회에 대표자를 보냈다.

그는 지난날 수없이 저지른 가혹행위로 멍든 백성의 마음을 풀어주고 존경을 받으려고 머리를 짜냈다. 그리하여 지난날의 가혹행위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자기에게 충성하던 거친 신하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식하도록 음모를 꾸몄다.

발렌티노 공작은 자기에게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 아침 레미로의 몸은 두 동강이가 되어 체세나 광장 앞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피 묻은 시신과 함께 칼이 그 옆에 놓여 있었다. 로마냐 백성은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공포심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발렌티노 공작은 상당한 권력을 휘어잡는 자리에 올랐다. 또 위험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고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군대를 소유했다. 그리고 자신을 능히 해칠 수 있는 세력이 생기면 모두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그런 후에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심으로 프랑스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조심스럽게 세웠다.

지난날 자기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고, 루이 왕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발렌티노 공작은 새로운 동맹을 찾기 시작하였다. 가에타를 포위하고 있던 스페인에 대항하여 나폴리로 진격하고 있던 프랑스와 임시변통으로 타협하고자 했다. 사실상 그의 의도는 스페인의 지원을 보장받는 책략이었고, 이러한 의도는 만일 알렉산데르 6세가 생존해 있었더라면 적중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계획들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동맹관계 외에 그가 가장 근심한 일은 교황의 후계자와의 관계가 비우호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책략으로 이러한 사태를 벗어나려 했다.

첫째, 그가 약탈한 영토의 옛 지배자의 혈통을 완전히 단절시켜 버리고 그에게 반란을 일으킬 기회를 주지 않는다.

둘째, 내가 이미 지적하였지만 로마에 있는 귀족들을 장악하여 교황의 견제세력으로 키운다.

셋째, 가능하다면 교황청을 지배한다.

넷째, 아버지인 알렉산데르 6세가 서거하기 전에 막강한 힘을 잡아 첫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한다.

이 네 가지 책략 중에서 알렉산데르 6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세 가지 책략은 성공하였고 네 번째의 책략 또한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점령하여 약탈하였던 왕국의 수많은 옛 지배자들을 죽여버렸다. 살아 도망친 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는 로마의 일부 귀족을 손아귀에 넣었고, 그들로 하여금 교황청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뒤에서 조종했다. 그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토스카나의 지배자가 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페루자와 피옴비노는 이미 자신의 소유지가 되었고 피사 역시 자기의 영향력 아래 들어왔다. 이렇게 세력이 커진 그는 이제 프랑스조차 존경을 하거나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는 이미 스페인의 침략으로 나폴리를 빼앗겼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서로 막강한 힘을 가진 자기와 친구가 되려고 열망했다.

그는 갑자기 피사를 침략했다. 그러자 피렌체에 대한 원한과 그에 대한 공포에 질려 루카와 시에나가 항복했다. 그 후 피렌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알렉산데르 6세가 죽자마자 그는 곧 왕위를 승계하였다. 그는 군주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갖추었다. 그는 강력해졌고 자기 혼자 스스로 지배할 능력을 가졌으므로 명성이 대단하였다. 자신의 용기와 총명과 힘 이외에는 행운이나 타인의 힘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발렌티노 공작은 집권의 칼을 든 5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단결된 로마냐를 남겨주었지만 다른 모든 영토는 프랑스와 스페인, 두 초강대국의 전쟁 사이에 끼어 바람에 날릴 듯 나약해졌으며 정신적으로는 병들어 있었다. 발렌티노 공작은 정열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나 인간을 자기 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매장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비록 단시일에 건국했지만 천하에 다시 없이 견고한 왕국이었으므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군대가 감히 그를 공격하지 못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았더라면 그는 분명히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대제국을 세웠을 것이다.

그가 구축하였던 왕국의 기초가 얼마나 튼튼하였던가?

로마냐는 병중에 있는 그가 일어나 다스려 주기를 한 달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그가 위독하여 산송장이 되었을 때까지 훼방하는 자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발리오니36)와 비텔리37)와 오르시니가 성내로 침입하여 왔지만 백성은 단 한 사람도 침입자와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교황의 자리에 앉히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교황의 자리에 앉으려는 것은 막아냈다. 비록 알렉산데르 6세는 죽었지만 그가 생전에 정치를 잘하여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율리오 2세가 선출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미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다만 아버지가 죽음의 문턱에 와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사망하리라는 것은 예견하지 못했다.”

발렌티노 공작이 취한 모든 행적을 보고 나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는 발렌티노 공작이야말로 행운이나 타인의 힘에 의지하여 군주가 된 자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임을 강조하고 싶다. 발렌티노는 뛰어난 용기와 야망의 화신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이유는 아버지 알렉산데르 6세의 생명이 짧게 끝났고 발렌티노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모든 신생군주국의 통치자 중에 발렌티노 공작이 이룩한 업적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을 발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군주가 적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기를 원한다면 동맹을 만들어야 한다. 무력을 쓰거나 군대가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하고 군대로부터 존경을 받도록 하라. 만일 새로 군주가 된 자신을 해치려 하거나 해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타도하라. 옛 군주의 통치구조를 개혁하라. 엄격할 때는 엄하고 관대할 때는 관대하여 백성의 사랑을 받도록 하라. 만일 새로 군주가 된 자는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부대가 있다면 즉시 해산시켜라.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야 할 때는 모든 군주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반란이 두렵다. 다른 군주들은 기꺼이 그대를 도와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군주들은 그대를 해치려고 조심스럽게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다.

다만 한 가지 발렌티노가 비난받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교황의 선거에서 율리오를 택한 일이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교황으로 만들지는 못했어도, 그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뽑히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사람이 추기경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는 사태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었고, 추기경이 된 후에 자신에게 공포의 원인이 될 인물은 기피했어야 했다.

당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이유는 당신을 두려워하거나 증오하기 때문이다. 케사르가 박해를 가한 사람은 많다. 다른 모든 사람 중에서도 산 피에트로 아드 빈쿨라·콜론나·산 조르지오 및 아스카니오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루앙 추기경과 스페인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가 교황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교황청의 스페인 사람들은 발렌티노 공작과 같은 마을 사람들이었으며 그에게 절대 복종하였다. 루앙 추기경은 프랑스 왕국의 배경을 가져 스스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발렌티노 공작은 처음부터 거의 모든 교황을 스페인 사람들 중에서 뽑고자 했으나 이러한 계획이 빗나가자 산 피에트로 아드 빈쿨라를 제쳐놓고 루앙 추기경을 교황의 자리에 앉히려 했다.

위대한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면 그들이 옛날의 박해를 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발렌티노 공작은 산 피에트로 아드 빈쿨라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잘못된 선택이 궁극적으로 대왕국이 붕괴되는 원인이 되었다.



제8장

범죄로 찬탈한 군주들


행운이나 용기가 없는 사람이 군주가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공화국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충분히 논하겠다. 그렇다고 나머지 하나를 지나쳐 버릴 수는 없다. 내 마음속에 있는 두 가지 길이란 한 인간이 범죄적 수법이나 사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군주의 지위에 오른 경우와, 평범한 한 시민이 자기 고장에서 자기를 추종하는 주민들의 승인을 받아 군주가 되는 경우이다.

범죄적 수법이나 사악한 방법으로 군주의 지위에 올라간 두 가지 예를 들면 고대의 예 하나와 현대의 예 하나를 들 수가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결론짓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방법 역시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사람인 아가토클레스38)는 평범한 시민일 뿐만 아니라 가장 비천한 출신이다. 그는 일생을 통틀어 가장 비참한 환경에 처했을 때 시라쿠사의 왕으로 부상하였다. 도자기공의 아들로 태어난 이 사람의 모든 경력을 보면 꼭 범죄인처럼 비뚤어진 행동이 많았고 뻔뻔스러운 범죄적 인간으로 완력이 센 사람이었는데, 군대에 들어가 집정관이 되었다.

그는 집정관으로 임명되자 자신이 군주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추대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폭력에 의지하여 바로 군주의 자리를 쟁취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그의 야망을 시칠리아에서 전쟁을 하고 있던 카르타고 사람들에게 알려 동의를 얻었다.

아가토클레스는 어느 날 아침 시라쿠사의 원로원을 소집하고 백성을 모이게 하였다. 마치 국민에게 중요한 사실을 발표하듯이 꾸몄다. 그리고 미리 짜여신 신호에 따라 모든 원로원 의원들과 부자들을 그의 군인들이 살해해 버렸다.

국민들이 보고 있는 백주에 살해극을 연출하였으니 그 어떤 사람도 반항과 반대를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꾸민 음모대로 그는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는 카르타고와 두 번이나 싸워 모두 졌다. 한때는 완전히 포위까지 당하였지만 그는 끝까지 자기 왕국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부대 중 일부는 고국에 남겨놓아 왕국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카르타고가 있는 아프리카로 쳐들어가는 작전을 썼다.

이러한 양면작전으로 국내의 포위는 단시일 내에 풀렸고, 카르타고는 아프리카에서 궁지에 몰렸다. 궁지에 몰린 카르타고는 자기들이 아프리카의 소유권만 가질 것이며 시칠리아는 아가토클레스에게 남겨주고 떠난다는 내용으로 화해를 청해 왔다.

그러므로 아가토클레스의 일생을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일생에 행운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비천한 사람이었지만 군대에 들어가 계급이 오름에 따라 집정관이 되었고, 이어서 군주가 되었다. 그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난관과 위험을 극복하면서 왕국을 통치하고 유지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수단과 방법으로 그는 자신의 지위를 지켜 나갔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따르는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것은 도저히 용기라 할 수 없다.

친구를 배반하고 체면도 동정심도 종교심도 없는 그의 사고방식을 슬기라 부를 수도 없다. 이러한 수단과 방법이 군주의 지위를 보장할지는 몰라도 군주에게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가토클레스가 위험에 직면하여 견디고 살아남은 점과, 역경을 견디고 극복한 불굴의 정신이 다른 어떤 명장에 비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무자비한 잔인성과 비인간성, 그리고 그가 저지른 많은 범죄행위들 때문에 그를 영광스러운 명장들 속에 끼워 넣지 않았다.

따라서 행운이나 지혜에 의하지 않고 성취한 그의 왕국을 행운과 지혜에 의해 이룩한 것처럼 인식해서는 안된다.

알렉산데르 6세가 교황으로 있던 시대에 페르모의 올리베로토39)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 없는 고아로 어려서 버려져, 조반니 폴리아니라고 불리는 외숙부에 의하여 키워졌다. 그는 청춘 시절에 파울로 비텔리의 군대로 들어가 열심히 복무해서 후에 위대한 군의 지휘자로 성공하였다.

파울로가 죽자 올리베로토는 파울로의 형제인 비텔로조40)의 부하로 들어갔다. 아주 짧은 기간에 그는 지적이며 용감하고 저돌적인 군인으로 성장하여 비텔로조의 수석 지휘관이 되었다. 군에서 성장한 그는 타인의 명령에만 좇아 행동한다는 것은 노예의 근성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의 상태보다 노예의 상태에 더 매력을 느끼는 페르모 시민의 도움과 비텔로조 휘하에 있는 일부 간신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페르모를 장악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는 조반니 폴리아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러 해 동안을 고향에서 떠나 살아왔으므로 잠시 동안 고향에 가서 외숙부와 살고 싶어 자신의 재산을 약간 투자하고 싶다는 명성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자기가 허송세월을 하지 않고 일했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수백 명의 부하와 종을 이끌고 영광스럽게 귀향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조반니 폴리아니에게 환영연을 베풀어 주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고무친의 고아에서 오늘날 군의 장군으로 길러준 외숙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조반니 폴리아니는 조카에 대한 애정을 발하여 페르모 시민들에게 대환영을 하도록 명령하고 조카를 자기의 저택에서 묵도록 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올리베로토는 장래에 저지를 범죄를 완벽한 비밀로 해놓고 자신을 환영해 준 조반니 폴리아니와 페르모 시민을 위한 감사의 대가로 공식 연회를 주최하였다.

연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들고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고 있을 때 올리베로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위대함과 그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지아에 대한 인물평과 정책으로 돌렸다. 연회에 참석했던 조반니 폴리아니와 다른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자, 올리베로토는 갑자기 일어나 이러한 중대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보다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해야 한다면서 옆방으로 들어갔다. 조반니 폴리아니와 다른 사람들도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앉자마자 숨어 있던 군인들이 칼을 뽑아들고 나타나 조반니 폴리아니와 다른 시민들을 살해해버렸다.

이러한 도살이 있은 후 올리베로토는 말을 타고 시내로 달려가 각료들이 집무중인 궁전을 포위해 버렸다. 이리하여 시민들은 폭군 앞에 공포에 떨며 복종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스스로 군주의 권좌에 올라 정권을 잡았다고 선언하였다.

올리베로토는 자신의 지배를 위해 자신을 해치려는 자는 모두 목을 자르고 새로운 관료와 군대를 창설하여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였다. 군주가 된 해에 그는 페르모의 군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웃에 있는 나라들에게 실로 가공할 만한 존재로 등장하였다. 만일 오르시니와 비텔리를 세네갈리아에서 올가미를 씌웠던 일과 같은, 체사레 보르지아의 책략에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면 그의 정복은 아가토클레스처럼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리베로토 역시 그곳에서 덫에 걸렸으며 그가 존속살해의 범죄를 저지른 1년 후에 그의 만용과 범죄적 수법의 스승이었던 비텔로조와 함께 목 졸려 죽임을 당했다.

사람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아가토클레스나 그와 비슷한 인간들이 헤아릴 수 없는 배반과 잔인한 행동을 자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기 나라 백성의 반란과 외적의 침략 속에서 안전하게 왕국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정권이란 전시는 물론 태평성세에도 안전하게 유지하기가 힘든 것이다. 폭군의 정권은 더욱 불안하다. 그러나 이들이 저지른 너무나 잔인한 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시민과 외국의 많은 사람에 의한 반대가 하나도 없었던 것은, 잔인한 행위라 해도 이를 선하게 사용했는가 아니면 나쁘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 연유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악마라 해도 선용이냐 악용이냐 하는 말을 하도록 허용한다면 어떤 것이 악의 선용일까? 잔인한 행위가 모든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오로지 한 번만 사용되었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이에 의해 보장되었으며, 이러한 잔인한 행위가 계속적으로 행사되지 않고 인간에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면 선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잔인한 행위는 처음에 모처럼 사용되었다 해도 다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어 차차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아가토클레스처럼 신과 인간의 협조로 악을 선용한 경우에는 군주의 지위를 굳히는 수단으로 쓸 수 있으나, 악을 악용한 경우에는 권좌에 머무를 수 없다.

군주가 한 국가를 장악하면 그가 벌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을 처벌하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가 일시에 모든 사람을 응징하고 매일 그러한 잔인한 행위를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써 백성은 마음이 편안하고 민심이 그에게 되돌아 온다. 겁이 많고, 나쁜 진언에 따라 통치하는 군주에게는 모든 사람이 항상 칼을 품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그의 신하들을 믿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롭고 계속적인 폭력에 의해 고통을 받으므로 군주와 함께 안전을 찾는다는 감정을 조금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은 일시에 모든 것을 향해 사용하라. 그러면 백성은 폭력의 맛을 알 것이며 분개하는 마음도 적어진다. 혜택은 가능한 한 일반적으로 모두에게 줘라. 백성은 단맛을 즐길 것이다. 평소에 군주로서 중요한 것은 좋은일이건 나쁜 일이건 그의 행동을 번복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하들과 동고동락하며 살아야 한다. 군주가 역경에 처해서 압박을 가하려 하면 그때는 너무 늦었고 어떤 호의를 베풀어도 이는 소용 없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역경에 처한 군주가 베푸는 호의란 마지못해서 베푸는 것처럼 보여서 백성이 아무런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9장

시민적 군주국


우리는 이제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범죄적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그렇다고 폭력과 같은 난폭한 행동에 의하지 않으면서 평범한 시민들이 그를 좋아하여 시민적 지지를 배경으로 지배자가 되는 경우이다. 우리는 이런 형태의 군주국을 시민적 군주국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런 지배자들은 행운이나 용맹으로 군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행운이 따르는 민첩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경우의 군주는 시민들의 지지나 귀족들의 지원에 의하여 지위를 얻는다. 이 상이한 두 가지 유형의 지배는 모든 도시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민들은 어느 국가에서든지 귀족들에게 지배를 당하거나 압박을 받지 않으려고 열망하고 있다. 반대로 귀족들은 시민을 지배하고 억압하려 한다. 귀족과 시민의 이러한 반대적 입장은 군주국·자유시·무정부라는 세 가지 형태의 국가를 형성하게 한다.

군주국은 시민이나 귀족에 근거를 두고 성립하므로 이들 중 시민계급이거나 귀족계급이거나 둘 중의 한 계급은 정권과 밀착할 기회를 갖는다.

국가적 기반을 상실한 귀족들은 시민들과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기들 중 한 사람의 지위를 강화시켜 그를 군주로 추대하고 그 군주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다. 시민계급도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은 귀족계급과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 중 한 사람을 군주의 지위에 추대하고 시민계급 출신의 군주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시도한다.

귀족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자는 시민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자보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귀족 출신으로 군주의 지위에 오르면 자기 주위에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므로 자기의 소신대로 명령하거나 집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계급 출신의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자기를 거역하는 사람이 주위에 전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아주 적다.

또한 귀족들의 요구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폭력적으로 빼앗기 전에는 만족시킬 수 없으나, 시민계급의 요구는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도 만족시킬 수 있다.

시민계급의 희망은 귀족계급의 요구보다 정직하다. 시민계급은 다만 억압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귀족계급은 시민을 억압하려고 한다.

군주는 시민계급의 적대감정에 대항하여 자신의 안전을 유지하기가 곤란하다. 그는 귀족과 대항해서는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 귀족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군주로서 가장 불길한 때는 시민들이 그를 배반하고 적의를 품었을 때이다. 적대감정이란 그에 대한 배반일 뿐만 아니라 반대 행동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귀족계급은 시민계급에 비하여 선견지명이 있고 시민계급보다 더 교활하다. 그들은 항상 자기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승산이 있는 쪽에 달라붙는다. 다시 말하지만 군주는 항상 시민계급과 살아야 하며 귀족과는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 군주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귀족을 만들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다. 자기의 뜻에 따라 작위를 주기도 하고 빼앗아 버릴 수도 있다.

논점을 더 명확히 밝혀내기 위하여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귀족계급에 관해서 기억할 만한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귀족들의 행동이 완전히 당신에게 의존하는가, 의존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정권을 탐내지 않고 군주에게 완전히 의지하려는 귀족에게는 사랑과 영광을 베풀어야 한다. 군주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귀족들은 그럴 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겁이 많거나 정신박약으로 인해 당신에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그들을 이용할 수 있다. 특별히 그들이 당신에게 충고를 줄 만한 능력을 소유하였다면 당신이 그들을 호의로 대하면 그들은 당신을 존경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위기에 처해도 이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다른 하나는, 고의로 야망을 품고 당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이다. 이는 당신보다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한다는 신호이다. 이러한 족속이 나타나면 당신은 그들에게 마치 적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양 그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탄압하여 자신의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자들은 당신이 역경에 처하면 쉽게 망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시민의 추대에 의하여 군주가 된 사람은 시민과 우정을 가지고 통치해야 한다. 시민계급이란 다만 자기들이 억압당하지 않는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군주로서 시민계급과 우정을 가지고 통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민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귀족계급의 뜻에 따라 군주가 된 사람이라도 어쨌든 시민계급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는 더욱 쉬운 일로서 시민들을 군주가 잘 보호해 주기만 하면 해결된다. 인간이란 자기를 해칠 줄 알았던 사람이 오히려 잘해 주면 그 혜택에 더욱 큰 고마움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귀족계급의 지지로 군주가 된 사람이 시민계급에 혜택을 베풀면 시민들은 자기들이 지원하여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보다 더 호감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군주가 국민의 환심을 사는 방법은 많다. 이러한 방법은 환경에 따라 다양하므로 어떤 일정한 원칙을 내세울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이 문제를 취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군주는 시민계급과 우호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은 군주는 역경이 닥쳐오면 이에 대처할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스파르타의 군주 나비스41)를 보라. 그는 전 그리스 군대와의 전쟁에 이겨서 의기충천한 로마의 군대와 맞서 그의 왕국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으며 그들과 싸워 자신의 권좌를 지켰다.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몇몇 신하들이 거역하였다. 이때에 백성마저 적대의식을 품고 달려들었다면 군주의 지위를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민계급의 지지만 받으라. 나의 주장에 대해 시민 위에 지은 권좌는 진흙탕 위에 지은 집과 같다는 속담으로 반박하지 말기 바란다. 그러한 주장은 권력의 기반을 시민계급에 두었던 군주가 신하의 반란, 그리고 내란과 외부로부터 적이 쳐들어왔을 때 자기 스스로 난국을 타개하려 하지 않고 시민계급이 군주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나약한 지배자에 한해서 맞는 소리다.

이런 경우에 군주는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42)나 피렌체의 조르지오 스칼리43)처럼 자기 자신이 과오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진실로 백성의 신임을 받으며 통치하는 군주는 항상 엄중한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따라서 그는 용감한 인간이다. 그는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요, 위험을 미리 예기하고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인격에 의해 일반적인 전체 시민의 충성을 얻은 사람이요, 그가 창건한 왕국의 국민으로부터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언제든지 백성의 반란에 붕괴되지 않는다. 이러한 권력은 항상 안전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주정체는 위기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그런 현상은 과두정치에서 전제정치로 변화할 때 일어난다. 군주들은 보통 자기가 직접 통치하거나 장관들을 통하여 백성을 다스린다. 장관들에 의해 정치를 할 경우 군주의 지위는 나약해져 위험천만해진다. 이 경우의 통치는 관권에 연관된 소수 시민의 지지만 얻기 때문이다.

이런 군주에게 역경이 닥쳐오면 과거에 자기를 지원했던 지지세력은 반대의사를 표명하거나 외부세력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켜 왕국의 붕괴를 재촉한다.

그리고 위기가 닥쳐오면 군주는 즉시 절대적인 권력을 휘어잡아야 하는데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시민들이나 부하들은 항상 대신들의 말에 순종하는 습관이 들어 위기에 처한 군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혼란의 시기에 군주가 믿을 만한 심복을 얻기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기에 처한 군주가 태평성세에 보내준 백성의 성원을 그리워하지만 헛수고이다. 태평성세에는 누구나 군주를 위해 축배를 들고 모든 백성이 군주에게 충성을 약속하며 육신까지도 바치려고 모여든다. 그러나 전시에는 많은 시민이 필요함에도 태평성세와 같이 모여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전쟁이 충성심을 테스트하기 위한 기회라면 그런 기회는 군주에게 단 한 번 있다. 이기면 테스트에 성공한 것이며 지면 끝장이다. 따라서 충성심의 테스트는 대단히 위험하다. 현명한 군주는 모든 시민들이 항상 군주만을 의지하고 군주만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군주에게 항상 충성을 다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제10장

군주국의 국력 평가


군주국가의 특성을 연구하는 데 고려해야 할 점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군주의 권력이 필요에 따라서 독자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가, 아니면 항상 다른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야 유지되는가 하는 점이다.

뒤에서 보다 더 명확히 말하겠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어떤 침략자에게도 대항할 만한 군사력을 모을 수 있는 충분한 재력과 인력을 가진 군주는 능히 독립한다. 동일한 판단 기준으로 보면 남의 힘에 항상 의존하는 군주는 적과 대항하여 전선을 지키지 못하고 성안으로 쫓겨 들어와 거기서 방어하는 자이다.

전자에 대하여는 이미 말하였고, 필요에 따라 뒤에 더 이야기하겠다. 후자에 대해서는 군주의 힘을 강화하고 도시들을 요새화하여 전 국토에 대한 걱정이 없도록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성벽을 굳게 요새화시킨 군주가 내가 말하는 바이지만, 앞으로 말한 방법에 따라 정치를 한다면 적은 상당한 조심성 없이는 군주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란 곤란이 확실히 예상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각성하라. 그들은 한정된 영토만을 다스렸으며 마음이 내킬 때에만 황제에게 복종하였다.

독일의 도시들은 군주나 이웃의 국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성은 견고하게 요새화되어 있었으므로 성벽을 쳐들어가는 작전은 어려웠고 장기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독일의 성벽과 참호는 훌륭하여 다른 나라들이 감히 침략할 생각도 못했다. 그들은 포술에 익숙하였고 음료수와 식량과 기름을 항상 1년분씩 비축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독일의 도시들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원자재를 성 내에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재정의 손실 없이 일반 시민이 스스로 자급자족하고 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군자금을 부담할 능력이 있었다. 군사훈련은 항상 고도로 실시되었고 이를 위한 많은 병법과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완벽히 요새화된 성을 가지고 백성으로부터 증오를 받지 않는 군주는 공격을 받지 않는다. 설령 공격을 받는다 할지라도 일 년 내내 훈련된 군대 앞에 진을 치고 전투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침략자는 창피만 당하게 되므로 침략 의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반박할지 모른다. 만일 백성의 재산이 성 밖에 있다면 그들의 소유물이 불에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장기간의 포위에 지쳐 끝내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군주에 대한 의무를 포기할지 모른다고 나의 견해를 반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하고 용감한 군주는 자기의 신하와 백성을 격려할 줄 안다.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은 끝날 날이 멀지 않으며, 지금의 적들이 갖는 공포심을 상기시키고 지나치게 솔직한 걱정을 하는 자에게는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용기를 북돋워 주는 등 격려를 하며 모든 난관을 극복한다.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다. 적이 오자마자 불을 지르거나 약탈을 자행할 경우이다. 이런 일을 군주가 당하더라도 성 내의 모든 신하들이 다 군주에게 충성하고 있으므로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밖에 있는 재산에 손실이 왔거나 피해를 입으면 이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보다 군주와 밀착하려고 한다. 그들의 가옥은 이미 잿더미로 변했고 그들의 땅은 이미 약탈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군주와 가까워져야 한다. 신하는 이런 의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란 원래 은혜를 입은 만큼 갚으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위대한 군주란 적의 포위를 당했을 때라 해도 방어책을 강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면 군주는 신하들을 고무시켜 백성을 안심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제11장

교권 군주국


이제 교권 군주국에 대한 토론만 남아 있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지배자가 왕국을 설립한 후에 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교권 군주국은 능력이나 행운이 있는 자가 획득하지만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행운의 두 가지 모두 소용이 없다. 이들 국가는 지배자의 행동과 생활양식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종교적 제도에 의하여 유지되기 때문이다.

교권적 군주는 자기 혼자 국가를 독차지하고 있으며 국가를 자기가 방위해야 한다는 신념 없이 통치한다. 신하가 있지만 다스려야 할 신하가 아니다. 교권적 국가는 방위하지 않아도 군주들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는 종교국가이다. 그리고 신하들도 왕의 다스림을 받는 인물이 아니므로 군신 간에 두려울 것이 없고 자신들의 이익을 다투기 위한 애증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군주국은 항상 안전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군주국가는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지극히 높은 신의 계시에 따라서 지탱되므로 나는 이에 대해 논하지 않겠다. 이런 국가들은 다만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에 따라 유지되기 때문에 모자란 사람이나 건방진 사람만이 그에 대하여 논평하려 대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알렉산데르 6세 시대까지의 이탈리아의 권력자들, 즉 모든 영주와 귀족들, 그리고 옹졸한 사람들까지도 교회가 장악한 세속 권력을 경멸했다. 그런데 오늘날 프랑스의 왕이 교권 앞에서 몸을 떨며 이탈리아에서 교권이 왕을 몰아내며 베네치아를 파멸시킨 힘은 무엇인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회상하는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프랑스의 샤를 왕이 침략하기 전의 이탈리아는 교황과 베네치아인, 나폴리의 왕과 밀라노 공작 그리고 피렌체인이 지배하였다. 이들 국가간에는 두 가지 잠재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어떤 무장 외국군이라도 이탈리아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영토를 확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들 중 극히 위험스러운 국가는 교황과 베네치아인들이었다. 베네치아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페라라44)를 방어한 경우처럼 다른 모든 국가들의 연합이 필요하였다. 로마 교황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호족을 이용해야 했다. 오르시니와 콜론나 간에는 항상 분쟁의 기미가 있었다. 교황의 눈앞에서까지 무기를 들고 다투어 교황권을 약화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식스토 4세와 같은 위대한 교황도 때때로 행운의 도움과 정치적 수완을 다하였지만 어려움에서 자신을 지킬 수 없었으며 정권이 단명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교황들이 평균 10년씩은 통치를 하였지만 이들 양 파의 어느 하나도 제압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한 교황이 콜론나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권력을 기울이면 오르시니 파를 적대시하는 사람이 나타나 콜론나를 재생시켜 주었고, 이러한 사태의 반복은 오르시니를 파괴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와 같은 사태는 교황이 행사하는 속권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산데르 6세의 정권에 와서는 어느 집권자보다 재력을 행사하여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알렉산데르 6세는 발렌티노 공작을 이용하였다. 알렉산데르 6세의 목표는 발렌티노 공작의 지위 향상을 위한 일이었지만 교회를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 알렉산데르 6세가 죽고 발렌티노 공작도 패망하자 알렉산데르 6세가 한 노력의 열매는 교회에 떨어졌다.

그때 율리오 2세 교황이 나타났다. 그는 로마의 귀족들이 모두 파괴되어 없어진 로마냐를 갖고 보니 이곳에서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교권을 발견하였다. 알렉산데르 6세의 노력으로 모든 분파가 소멸되었다. 그는 또한 알렉산데르 6세가 전에 한 번도 쓰지 않은 부를 발견하였다. 율리오 2세는 이러한 모든 상태를 계속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 증진시켰다. 그는 볼로냐를 손아귀에 잡아넣고 베네치아를 쳐부수며 프랑스를 이탈리아 밖으로 내쫓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모든 계획은 성공했다. 또한 최상의 신임까지 얻었다. 무슨 일을 하든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권의 격상을 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오르시니와 콜론나의 당파 세력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동일한 조건으로 묶어놓았다. 이들 속에 파벌사이의 다툼을 일삼는 불평분자가 조금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견제하였다.

첫째는, 교권의 막강함이 그들의 의기를 꺾을 수 있었다. 둘째로, 자기들끼리 소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던 그들 출신의 추기경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들은 자기들의 추기경을 가지고 있을 때는 늘 소요사태를 일으켰다. 추기경들도 로마 안팎의 봉건 영주들과 밀착하여 움직이기 때문이었으며, 귀족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추기경 편을 들었고,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야심이 엇갈림에 따라 충돌과 소요사태를 빚었다.

이제 레오 10세 교황께서는 가장 강력한 지위를 갖는 교황권을 확립하였다. 그의 선조들은 무력에 의해 교권을 확립했지만, 그는 그의 선함과 헤아릴 수 없는 미덕으로 더욱 위대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제12장

군대 조직과 용병


이제까지 소수국에 관한 모든 특징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어찌하여 그들은 번영했으며, 어떻게 하여 패망했는가? 그리고 영토를 얻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반적으로 군주국이 공격과 방어를 하기 위해서는 왕국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앞에서 군주국은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은 국가에는 비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생군주국이나 고대국가 또는 혼합국가건 간에 가장 중요한 기초는 훌륭한 법률제도와 훌륭한 군대조직이다. 훌륭한 군대가 있는 국가라면 필연적으로 훌륭한 법률이 있을 것이므로 나는 여기에서 법률보다는 군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거니와, 군주가 자기의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군대의 종류는 네 가지이다. 그것은 군주 자신의 군대, 구원병, 용병, 그리고 혼성군이다.

용병과 구원병은 쓸모 없고 위험스런 존재이다. 만일 군주가 용병에 의지하여 자기 국가를 유지하려 한다면 안정과 안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용병이란 단결하지 못하고 권력을 탐낸다. 풍기가 문란하고 배신적이다. 용병은 자기들끼리 훈련하고 연습할 때는 용감하지만, 적 앞에서는 비겁해진다. 용병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들을 따르는 인간에 대하여 신의를 지키지 못한다. 용병은 전쟁을 회피하며 패배 또한 회피한다. 따라서 용병을 쓴다면 당신은 평화 시에는 그들에게 약탈당하고, 전시에는 적으로부터 약탈당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해 보면 용병에게 충성심을 요구하거나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할 필요는 분명히 없다. 월급에 매달려 군인이 된 이들을 전장에 붙잡아 둘 방법은 없다. 월급에 매달린 이들이 당신을 위해 전선에서 죽어주길 바란다면 큰 실수이다. 그들은 당신이 전쟁을 하지 않는 기간에 한하여 당신의 군대에 근무한다는 사고방식이 철저한 자들이다. 전쟁이 터지면 그들은 바로 도망쳐버리거나 사라질 뿐이다.

오늘날 이탈리아의 쇠퇴는 오랜 세월을 용병에게 의지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군주가 현명하여 용병을 잘 이용한 시기가 있었고, 용병 또한 다른 용병조직에 대하여 용감히 경쟁한 실례가 있지만 이는 평화 시의 일이다. 이탈리아가 외적의 침략을 당할 때마다 용병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까닭에 프랑스의 왕 샤를은 그의 숙소를 지키는 소수의 장교만 이끌고 와서 이탈리아를 정복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결과를 이탈리아 군주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이 지적한 잘못한 점에 기인하기보다는 내가 이미 지적하였듯이 용병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다는 잘못에 기인한다. 따라서 죄는 군주에 의하여 저질러졌고, 그러한 군주는 반드시 죄의 대가를 받아 잘못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용병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명백한 예를 들고자 한다.

용병대장들 중에는 유능한 자도 있고 무능한 자도 있다. 만일 용병대장이 유능하다면 당신은 그들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유능한 용병대장이 월급을 주고 있는 당신보다 유능하다는 사실을 인정받으면 상대적으로 당신의 권위보다 더욱 높아지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당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이 바라는 것보다 적을 더욱 억압하여 자신의 지위를 굳히려 들 것이다. 만일 용병대장이 무능하다면 당신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용병이든 용병이 아니든 무력을 가진 자가 정권에 도전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나는 용병이 아닌 다른 군사조직은 군주나 공화국의 지배하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있는 군주는 자기 스스로 군대의 지휘자가 되어 전쟁터에 나가 싸운다.

공화국은 군주가 시민 중에서 사령관을 임명하고 임명된 사령관이 적합하지 않음이 입증되면 사표를 받는다. 만일 사령관에 임명된 자가 적격한 자라면, 사령관으로서의 권한이 정권을 탐낼 만큼 비대해지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한다.

경험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있는 군주와 스스로 무장한 공화국만이 확고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용병을 쓴다는 것은 다만 손실을 의미할 뿐이다. 자신의 민병을 가진 공화국은 외국 군대의 원조를 받아 유지하는 공화국에 비해 국내에서 정권에 야심을 품은 자기 부하의 반란에 정복당할 위험성이 적다.

로마와 스파르타는 수 세기 동안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평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스위스 역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여 완전한 평화를 유지했다. 카르타고는 용병에 의존했던 고대 국가의 한 예이다. 로마와의 한 차례 전쟁이 끝난 후에 카르타고는 시민이 용병부대의 사령관 자리를 차지하여 지휘하였지만 곧 그들의 용병에 의하여 전복당했다.

에파미논다스45)가 죽은 뒤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는 테베의 최고 지휘자가 되었으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들의 자유를 박탈해 버렸다. 필리포 공작의 사후에 밀라노 사람들은 베네치아에 대항하기 위하여 프란체스코 스포르자를 용병으로 썼다. 그는 카라바지오에서 승리한 후에 자기를 고용해 준 밀라노를 공격하기 위하여 베네치아와 연합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스포르자 역시 나폴리의 조반나 여왕의 용병으로 있었으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여왕의 곁을 떠나버렸다. 졸지에 이런 일을 당한 여왕은 자기의 왕국을 지키기 위하여 아라곤 왕의 자비를 바라며 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날 베네치아 사람들과 피렌체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용병을 썼는데 용병대장들이 그들을 훌륭히 방어해 주었고 국가를 찬탈하려 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나의 견해로 이 사실에 대해 말한다면 이때의 피렌체는 다행히 행운을 만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염려가 될 만한 용감한 용병대장 중 어떤 자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어떤 자는 권력을 찬탈하려는 음모가 탄로났으며, 또 어떤 자는 그의 야심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반니 아쿠토46)같은 사람은 승리를 거두지 못한 자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의 충성심을 표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만일 아쿠토가 피렌체 전쟁에서 이겼다면 모든 권력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스포르자가에게는 늘 자기들과 대항하는 브라치오47)가문이 있었으며 이 둘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프란체스코가 롬바르디아에 야심을 품으면 브라치오는 교권과 나폴리 왕국에 반대를 표시하였다.

어쨌든 우리는 얼마 전에 일어난 일에 관심을 돌려보자. 피렌체의 용병대장으로 임명된 파올로 비텔리는 빈틈 없는 사람으로 평민으로 태어나 상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그가 피사를 손에 넣었다면 피렌체의 운명은 그의 손에 달려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파올로 비텔리가 만일 적의 용병대장이 되었다면 피렌체는 그에 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용병대장의 지위를 계속 유지시켜 주었을 것이고 백성은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확장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베니스 사람들이 자국의 힘으로만 전쟁을 수행했어도 승리의 영광을 얻고 안전을 유지했을 것이다. 베니스가 본토에 대한 작전을 개시하기 전에 귀족들과 민병들은 의기충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본토에 대한 작전을 개시하자마자 그들 스스로 전의를 상실하고 이탈리아의 군사적 전통을 따르게 되었다.

그들이 처음에 본토를 장악하기 시작하였을 때에는 자기들이 채용한 용병대장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때문에 베니스의 지배는 한정된 것이었지만, 권위는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카마놀라(Carmagnola)48)를 그들의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영토의 확장을 끝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유능한 카마놀라의 용기를 믿었던 베니스 사람들은 카마놀라의 지도력에 힘입어 밀라노 공작을 패망시켰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그는 아주 미온적인 태도로 전쟁에 임했다.

이를 본 베니스 사람들은, 이 사람을 가지고는 어떤 전쟁에서도 더 이상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식하였을 때에는 이미 그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자신들이 점령한 영토를 포기하기 전에는 그의 지위를 무너뜨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베니스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카마놀라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베니스 사람들은 그를 죽여버린 후 바르톨로메오 데 베르가모, 로베르토 다 산 세브리노, 피티글리아노 백작49)등을 그들의 용병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런 자들의 도움은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겠다는 희망은 커녕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영토나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게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우려는 바일라(Vaila)50)에서 현실로 증명되었다. 그들은 8백 년간의 고투 끝에 정복한 영토를 단 하루의 전투에서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용병이 가져오는 승리는 느리고 별것 아닌 사소한 승리일 뿐이지만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패배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너무나 오랫동안 유지해 온 이탈리아의 용병제도를 보더라도 더욱 철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용병의 본질과 정책에 대하여 명확히 인식한다면 비극을 예방하는 것은 한층 쉬울 것이다.

당신은 특히 최초의 이탈리아 사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탈리아는 황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교황권의 권위가 비록 일정 지역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강대해져, 여러 군소국가로 분열하였다. 어떤 사태가 일어났는가 하면 황제의 후원을 받아오던 귀족계급에 대항하여 수많은 대도시들이 그들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이때 교회는 그들의 세속 권력을 확대할 심산으로 이 반란을 지원하였다.

수많은 도시 속에서 한 시민이 군주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전 이탈리아는 교권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사제들이나 촌장들은 군사작전에 대한 경험이 없었으므로 외국 군대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종류의 군대로서 최초로 명성을 떨친 사람은 로마냐의 알베리고 다 코니오51)였다. 이 사람의 군사교육을 받은 자 중에서 브라치오와 스포르자는 당대의 명장이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용병대장이 군사를 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용병대장들의 능력을 믿었던 이탈리아는 드디어 프랑스 왕 샤를에 의하여 유린되었고, 루이에게 약탈당했다. 또한 페르디난드에 의하여 무참히 짓밟혔고, 급기야는 스위스 군대에 의하여 모욕까지 받았다.

용병대장들은 자기 군대의 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보병부대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책략을 서슴지 않고 썼다.

왜 보병부대의 힘을 기르지 않았는가 하면, 용병이란 자신의 국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남의 나라를 지켜주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같은 용병이라도 병사들은 대장의 권위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용병대장이란 어떤 명성을 얻기는 틀린 직위이다. 만일 용병대장이 명성을 얻는다 해도 대규모의 보병단을 유지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용병대장들은 전쟁에 필요한 수많은 보병들의 필요성을 도외시했다. 그들은 오로지 명성을 얻고 유지하기 쉬운 기병대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러한 용병대장들의 책략 때문에 2만 5천 명의 병력 중 보병은 2천 명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돈을 주고 고용하는 군주에게 충성하기보다 자신의 영달과 병사들의 안전에 더욱 힘을 썼다.

전투에 임하여 죽음을 각오한 돌격의 스크럼은 짜지 않고, 포로가 되는 스크럼을 짠 채 항복의 길을 택하여 몸값을 지불하지 않고 석방되길 바랐다. 이들 용병은 적이 방어하고 있는 도시를 공격할 때에도 밤에 공격하는 야간 작전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용병들은 포위를 당하면 포위를 뚫기 위해 돌격하지 않고, 포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용병들은 진영에 성을 쌓거나 참호를 파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전투를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모든 용병의 태만은 용병 계약과 용병의 군사법률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용병은 항상 자기들은 위험에서 안전이 보장되어야 했고, 피로에서 건강을 보장해야 했다. 이러한 용병을 이용한 용병정책은 이탈리아를 노예와 멸시상태에 빠지도록 했다.




제13장

원조 병력, 혼성 군대 및 국민군


용병 다음으로 쓸모 없는 군대는 구원병이다. 구원병이란 강대국의 군주나 황제에게 당신이 군사원조를 요청했을 때에 당신을 도와주러 오는 군대를 말한다.

페라라 전쟁에서 용병을 썼다가 고난과 비애의 쓰라림을 겪었던 율리오 2세 교황은 최근 용병 대신 구원병을 사용하기로 정책을 바꾸고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와 협정을 맺어 자기의 장군들과 군대를 도와줄 구원병을 요청했다.

구원병 자체는 쓸모 있고 믿을 만한 훌륭한 군대일지 모르지만, 구원병을 청해 사용한 군주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모든 경우 재앙만 초래했다. 구원병이 전쟁에서 패하면 당신이 곤경에 처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일 구원병이 승리하더라도 당신은 구원병의 권력 아래 있게 된다.

고대 역사를 보면 이러한 예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율리오 2세가 저지른 생생한 예를 들고 싶다. 그는 페라라를 쳐부수기 위해 외국 군대의 도움을 요청했다가 끝내는 그들의 손아귀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이보다 무모한 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구원병을 사용한 과오를 저지르고도 결과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행운이었다. 그의 구원병이 라벤나(Ravenna)에서 패배하였으나, 곧 스위스 군대가 라벤나에 도착하여 승리자를 내몰았으므로 율리오 2세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구원병이 완전히 패망하였다면 율리오는 적에게 포로가 되었을 것이고 만일 구원병이 이겼다면 율리오는 구원병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용케도 행운은 이 두 가지 위험에서 그를 구해주었다.

피렌체는 자기의 군대는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피사(Pisa)를 보호하기 위하여 1만 명의 프랑스 군대를 고용하였다. 그 결과 피렌체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콘스탄티노블(Constantinoble) 황제는 이웃 나라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리스에 1만 명의 투르크 군대를 투입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투르크 군대는 철수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리스가 처음으로 노예상태에 떨어져 이교도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군사적 승리를 원하지 않는 무능한 군주만이 구원병에 의지한다. 구원병이란 용병보다 쓸모는 있으나 더욱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구원병을 사용한 군주는 운명의 장난을 피할 수 없다. 구원병은 단결된 군대이므로 어디서든 자기 상관의 명령에 전적으로 복종한다. 그러나 용병이 당신을 해치려면 상당한 시간과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용병이 질서정연한 군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당신에 의해 고용되었고 당신에 의해 월급이 나가기 때문이다.

용병의 사령관은 당신의 임명에 의하여 보직된다. 따라서 그가 당신을 해칠 만한 충분한 권위가 당장에 형성되지는 않는다. 간단히 말한다면 용병은 비겁하기 때문에 위험하며, 구원병은 용감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들은 항상 구원병을 피하고 자신의 군대를 양성하여 쓴다. 이러한 군주들은 전쟁을 만나면 군사원조를 받아 승리하기보다 차라리 자신의 군대로 싸우다가 전선을 빼앗기는 편을 택한다. 진정한 승리란 외국 군대의 원조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체사레 보르지아와 그의 행동을 예로 들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그는 구원병을 이끌고 로마냐를 침략하였고 곳곳에서 프랑스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참전하였다. 구원병과 함께 이몰라(Imola)와 포를리(Forli)를 점령했다.

그러나 구원병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위험이 적은 용병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오르시니와 비텔리를 용병으로 고용하였다. 이들을 고용하여 전투를 진행하다 보니 용병 역시 의심스럽고 충성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존재라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을 해고해 버리고 자기 자신의 군대에만 의지하였다.

이러한 군대의 효용가치에 대해서는 그가 프랑스의 구원병에 의지했을 때와 오르시니와 비텔리의 용병에 의지하였을 때, 그리고 오직 자신의 군대에만 의지하였을 때 얼마나 많은 차이점이 있는지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는 군대를 쓰면서 여러 번 정책을 바꾸었지만 정책의 모든 단계마다 그의 지위가 상승하였다. 그리고 그는 군대의 절대적인 명령자로 등장하였을 때만 만인이 존경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나는 최근의 이탈리아를 계속 예로 들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에 이야기한 바 있는 사람들 가운데 시라쿠사의 히에론(Hiero)을 빼놓고 싶지 않다. 내가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시라쿠스 사람들이 히에론에게 군대의 지휘자로 일해달라고 하였을 때, 그는 바로 용병이란 쓸모 없는 군대임을 깨달았다.

그들이 고용한 군부대들은 모두 이탈리아가 쓰던 용병과 같이 쓸모 없는 조직체였다. 히에론은 이 군대를 유지할 수도 없고 단순히 해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용병을 산산조각으로 해체해 버렸다. 그런 후에 그는 외국 군대를 버리고 오직 자기 자신의 군대만 이끌고 전선에서 싸웠다.

나의 이 주장에 알맞은 비유를 구약성서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다윗(David)은 사울(Saul)에게 필리스틴 전사인 골리앗(Goliath)과 싸울 것을 제의하였다. 이 제의를 받은 사울은 그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무기와 갑옷을 선사했다. 사울은 무기와 갑옷을 거절하며, 이것을 가지고는 잘 싸울 수가 없으므로 차라리 나의 투석기와 칼을 가지고 적과 싸우겠다고 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남의 갑옷을 입고 전쟁을 하면 옷이 몸에 맞지 않아 옷자락이 뒤에 질질 끌리거나 너무 무거워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이런 경우 아무리 좋은 갑옷이라도 보잘것없는 자기 옷보다 불편한 법이다.

루이 11세의 아버지인 샤를 7세는 행운과 용기로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해방시킨 후에 자기 자신의 군대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기병과 보병을 양성할 병력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였다.

아버지의 이런 뜻에 반하여 루이 대왕은 보병을 양성하는 부왕의 정책을 포기하고 스위스 군대를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오는 다른 왕들이 답습하여 결과적으로 왕국이 파멸하는 원인이 되었다.

스위스 군대만 이용하여 지위를 향상시킴으로써 자기 군대는 나태에 빠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자신의 보병은 전투에 투입하는 것조차 회피하였고, 자기의 기병은 외국 군대의 보조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군인들의 의식에는 전투에 익숙한 스위스 군대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의식이 싹텄다. 따라서 프랑스 군대는 스위스 군대에 대항할 수 없었으며, 스위스 군대의 지원 없이는 어느 곳에서도 싸울 기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혼성군을 사용하게 되었다. 혼성군은 일부는 용병이며 일부는 자국의 군대로 구성되어 있다. 혼성군은 단순한 용병이나 구원병보다는 우월하지만 순수한 자기 군대만은 못하다. 프랑스의 예가 충분히 입증하듯이, 샤를 대왕의 군사정책을 발전시키고 유지하였다면 이 왕국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침략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변덕스러운 존재이다.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 독약이 들어 있는 것을 모르고 첫 숟가락이 달기만을 바란다. 이런 결과는 내가 전에 소모성 질환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악마의 재난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군주는 참으로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군주는 흔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로마제국이 붕괴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연구해 보면 그것은 바로 고트족(Goth) 용병을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조그만 시작이 대로마제국의 군대를 썩게 만들었다.

나의 결론은 이러하다. 누구든지 군주가 된 자는 자기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 하며 자신이 지휘하지 않는 한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설령 운 좋게 다른 군대를 이용했다 하더라도 남의 군대는 용기와 충성심이 없으므로 역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항상 다음의 경구를 기억한다.

자기 자신의 군대에 의하지 않은 권력의 명성보다 더 나약하고 불안전한 군주는 없다.52)

군주 자신의 군대는 자기가 집권한 국가의 신하와 시민, 그리고 그 예속민으로 구성된다. 그 외의 모든 군대는 구원병이거나 용병이다. 내가 지적한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보면 해당 군주국의 군대가 어떤 성격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나 다른 수많은 공화국의 군대와 군주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군주에게 헌신하게 만들기 위하여 군대를 어떻게 조직하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남의 군대를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군대를 가졌던 군주의 지혜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한다.



제14장

군대의 통솔


그러므로 군주는 전쟁과 군사력의 강화, 그리고 부단한 군사 훈련을 등한히 하면서 다른 목적이나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전쟁의 기술이야말로 지배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능력은 세습군주가 그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할 때 절대로 필요하며, 일개 평민인 자가 일약 지배자의 위치에 뛰어오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구비조건이다.

반대로 향락에 도취하여 희희낙락하여 군사력을 등한시한 군주는 자기의 국가를 잃는 것이 필연의 사실임을 보았다. 당신이 나라를 빼앗기는 첩경은 전쟁 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다. 반대로 당신이 나라를 보유하는 첩경은 전쟁의 기술을 연마하는 데 있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자는 그 자신이 유능한 무인이었으므로 평범한 시민 출신으로 밀라노 공작의 지위에 올랐다. 그의 아들들은 군대의 어려운 생활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공작의 지위에서 다시 평민의 지위로 전락하였다.

당신이 튼튼한 무력의 뒷받침이 없이 통치하려다가 겪는 첫 번째 불행한 일은 백성으로부터 멸시를 받는 것이다. 내가 곧 설명하고자 하는 것처럼 군주가 가장 견제해야 할 일은 바로 백성으로부터 멸시를 받는 일이다.

군사력의 배경이 있는 군주와 군사력의 뒷받침이 없는 군주를 서로 비교할 수 없다. 강력히 무장한 군주가 군사력이 없는 군주에게 복종하길 바라거나, 자기 스스로 무장하지 않은 군주가 자신의 부하를 무장시키고 있다 하여 왕권의 안정과 안전을 기대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군주 자신은 무장하지 않고 신하들만 무장시킨다면 신하들은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므로 서로 협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모든 불행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군주는 군병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며, 군대는 자기 군대이지만 군인 중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군주는 항상 군사 훈련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하며 군대에 대한 관심을 전시보다 평화 시에 더욱 가져야 한다. 군사훈련은 정신적 무장과 육체적 단련으로 엄격한 군기 아래 철저하게 훈련시키며 쉬지 않고 산과 들로 사냥을 하도록 내보낸다. 또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견디어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을 기르고, 어느 곳에 가든지 지세에 익숙하도록 훈련하여야 한다.

산맥의 굴곡은 어떻게 생겼으며 산골짜기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느 쪽으로 갔으며 평야는 어떻게 펼쳐져 있는가 하는 문제에 늘 익숙해져야 한다. 군주는 강과 늪지대를 세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 큰 고통이 따를 것이지만 그래도 지형을 익혀야 후환이 없다.

이와 같은 지식을 갖추면 유익한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군주가 국토의 산간벽지에까지 지형에 통달하였다면 유사시에 군사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 나라 각 지방을 정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어떤 나라의 지형이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루스카니(Ruscany)의 언덕, 골짜기, 평야, 강 그리고 늪지대는 다른 지방의 그것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따라서 한 지방의 지세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다른 지방의 지형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리적 요인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 군주는 훌륭한 지휘자로서의 자질이 되는 첫째 조건을 상실한 것이다. 지형을 파악하는 능력은 전시에 군주로 하여금 적이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 쉽게 알게 해준다. 또한 야영지를 어디에 정해야 하며, 군사를 어떻게 기동시켜 전투에 투입하며, 어떻게 진을 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일까 하는 문제를 쉽게 풀어준다.

아카이아인의 지도자 필로포에멘53)은 평화 시에도 전투 전략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을 가진 것이 없어 역사가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다. 그는 산골짜기를 친구들과 함께 걷다가도 갑자기 걸음을 멈추곤 했다. 만일 적이 저 산 언덕에 있고 우리가 우리의 군대와 함께 이 산 밑에 있다면 어느 편이 유리할까? 어떻게 하면 대열을 파괴하지 않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후퇴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어디로 군사를 이동시킬까? 만일 적이 이곳에서 후퇴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작전을 펴는 것이 최선의 추격 방법일까?

그는 늘 이런 식으로 지형을 익혔다. 또한 친구들과 거닐면서 그의 군대에서 일어날 모든 사건을 이야기해 주며 친구들의 의견을 물었다. 친구들의 의견을 듣은 뒤에는 자기의 견해는 이렇다 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자기의 견해를 입증하였다.

특수 상황에 대하여 쉬지 않고 연구한 결과로, 그는 그의 군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훌륭하게 지휘할 수 있었다.

탁월한 훈련을 시키자면 군주는 역사를 읽고 위인들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연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승리는 모방하고, 패배는 피해야 한다. 군주는 역사에 밝아야 하며 자기 자신보다 먼저 위인의 자리를 거쳐간 사람들의 행적을 본받아야 한다. 칭찬받고 명성이 드높은 역사적 인물을 지표로 삼아 항상 그들의 행동과 업적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한다.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은 아킬레스(Axhilles)54)를 흠모했고, 카이사르(Caesar)는 알렉산더를, 그리고 스키피오(Scipio)55)는 키루스(Cyrus)56)를 모방하였다고 전해진다. 크세노폰57)이 쓴 키루스의 전기를 읽은 자라면 스키피오의 영광된 승리가 키루스의 행적을 본받은 바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스키피오의 고고한 도덕성과 예의범절, 인간성과 관용이 크세노폰이 묘사한 키루스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알게 될 것이다.

현명한 군주라면 이러한 방법을 따라야 한다. 군주는 평화 시에 안일한 생활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역경에 처하면 역경이 오히려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행운의 여신이 자기의 곁을 떠난다 하더라도 곧 불운에 저항할 수 있는 의기를 길러야 한다.




제15장

인간으로서의 군주에 대한 찬양과 비난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군주가 자기의 신하나 친구에게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전에 많은 사람들이 거론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러한 저술이 주장한 이론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특별히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늘 특별한 사항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우리가 어떤 사항을 추상적으로 상상만 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존재를 인식하는 편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존재했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전혀 실재한 사실이 없는 공화국들과 군주제도 등을 상상하고 논의한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가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인간이 꼭 해야만 할 이상적인 일만 찾다가 현실적인 인간행동을 포기한다면 이는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는 일이라기보다는 파괴를 의미한다. 매사에 도덕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면 많은 비도덕적인 인간의 틈바구니에 끼여 슬픔만 당한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만일 군주가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려면 비도덕적인 것이라도 배워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도덕적 행동이건 비도덕적 행동이건 행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식적인 일에서 떠나 오직 진실로 실재하는 것만 보자. 특히 군주처럼 사람들의 눈에 띄는,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찬양받거나 비난받을 여러 가지 자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자기가 가진 것을 지나치게 아끼는 사람을 인색하다 하고, 남의 것까지 가지려고 탐내는 사람을 탐욕스럽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선심을 잘 쓴다는 말을 듣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탐욕스럽다는 말을 듣는다. 잔인하다는 평을 듣는 군주도 있고, 동정심이 많다는 평을 듣는 군주도 있다. 충성심이 강한 사람도 있고, 충성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은 나약하다 하고 다른 사람은 비겁하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강력하고 용기 있다고 한다. 공손한 사람과 건방진 사람, 음탕한 사람과 순결한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거짓이 없다 하고, 다른 사람은 교활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경솔하다 하고, 다른 사람은 근엄하다고 한다. 신앙심이 깊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미신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말은 끝이 없다. 내가 이미 열거한 모든 사항 중에서 좋은 일만 골라서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군주가 있다면 그러한 군주에게 만백성은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군주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 모든 자질을 갖출 수 없으며, 항상 미덕만 골라 실천하기는 몹시 어렵다. 군주는 자기 나라를 잃을 경우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지도 모를 악덕의 오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군주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만 위험스러운 사태가 아니라면 모든 일을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군주의 성격이 세밀하지 못하고 대범하다면 사소한 위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므로 군주는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악평에 의해 비난받는 것 정도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군주는 칭찬받는 일이든 악평을 받는 일이든 간에 필요한 경우에는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군주가 겉으로 보기에는 미덕이나 그 미덕을 실행하다 보니 국가가 망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사악한 것 같지만 이 사악함이 자신을 안정과 번영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제16장

관용과 인색


그러므로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군주로서 제일가는 자질은 관대한 통치를 하여 명성을 떨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명성을 얻는 일에만 이끌려서 행동한다면 큰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너그러워 선하고 진지하다 하더라도 그 관용함이 국민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당신의 자질은 관용적이지만 이를 악덕으로 인식한 국민들이 해대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일 관용을 베풀고도 명성을 얻기 원한다면 당신은 국민에게 호사스럽게 허풍을 떨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유형의 군주는 자기의 전 재산을 얼마 안 가서 탕진하고, 종국에는 백성을 억압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군주가 자기의 명성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면, 백성에게 세금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워야 한다.

군주는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신하들은 곧 군주를 증오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우는 군주가 관용을 베풀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백성이 피해를 입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군주의 은혜로운 일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군주는 사소한 일로 국민의 지탄이 시작되면 최초의 위기를 맞게 되며 이 사소한 위기가 군주에게 비극을 가져온다. 관용을 베풀던 군주가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자기가 행한 지금까지의 방법을 고치려 하면 백성은 즉시 군주를 향해 인색한 놈이라는 악평을 퍼부어 댈 것이다.

그러므로 관용의 미덕을 실천하고도 욕을 먹을 바에야 군주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이 인색하다고 불리는 악평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 군주가 인색하다는 평을 들을지라도 세입이 충실하고, 침략자가 나타나면 사정없이 쳐부수어 나라를 지키고, 전쟁에 처한 백성을 세금의 출혈에서 해방시키고 더욱이 적까지 몰아낸다면, 그러한 시대의 백성은 당신이 아무리 인색하다 해도 진실로 관대한 군주라고 인식할 것이다.

군주의 관용은 가난한 백성에게 베풀어야 하므로 끝이 없다. 군주의 인색함이란 백성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므로 인색해지기로 마음먹으면 은혜를 베풀 대상은 별로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위대한 일은 모두 인색한 군주에 의해 성취되었으며 관대한 군주는 재앙만 만났다. 율리오 2세는 교황이 되기까지 관대하다는 명성을 이용하였으나 집권 후에는 그 명성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재정 능력으로 전쟁을 치르려 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프랑스 왕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자기의 부하들에게 전쟁 비용을 보충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 돈을 아껴쓰는 인색함이 있었기 때문에 전시에 부대경비를 감당할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현재의 스페인 왕이 평소에 관대하다는 명성을 얻었다면 그렇게 많은 계획에 착수하거나, 그 계획을 성공적으로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백성을 착취하지 않거나 자신을 방어하고 군주 자신이 최후에 가난과 부끄러움 속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면, 또한 군주가 생사람을 잡기 위해 무력을 가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인색한 자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인색함은 군주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악덕 중의 하나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러한 견해에 반대할지도 모른다. 카이사르는 관용의 미덕을 발휘하여 권력을 잡았고, 다른 많은 위인들도 관용을 베푼 것이 널리 알려져 대단히 높은 지위에 오른 사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이미 군주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느냐 아니면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도중에 있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달라진다. 이미 군주가 된 사람이라면 관용이란 부담스러운 것일 뿐이다. 반면 당신이 군주의 지위에 오르려는 찰나라면, 확실히 말하건대 관대하다는 명성은 꼭 필요하다. 카이사르는 전 로마에 걸쳐 자기의 지배를 확립하고자 했던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로마의 통치자로 등장한 후에도 관대하다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낭비벽을 고치지 않았다면 권좌는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또다시 어떤 자들은 내 견해에 대하여 반론을 펼 것이다. 세상에는 자기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큰 성공을 거둔 군주가 많으며, 이들은 모두 극단적으로 관용을 베푼 사람들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군주가 쓰는 재산은 군주 자신의 것이거나 신하의 재산이거나 그 외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이다. 그것이 만일 군주 자신의 것이라면 군주는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하의 재산이라면 군주는 과감하게 멋대로 전부 써야 한다. 신하의 재산을 전부 쓰더라도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군주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외국 영토에 진격하면 그의 군대와 신하들은 외국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약탈하고 훔치며 강탈하고 제멋대로 처분하여 다시 큰 재산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군주는 병사들이 멋대로 약탈하도록 내버려 두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당신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은 카이사르나 키루스나 알렉산더가 한 것처럼, 당신이나 당신 신하의 재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재산에 대해서는 보다 더 자유롭게 처분해야 한다. 남의 소유물인 재화를 당신 마음대로 처분하여 뿌리는 처사가 당신의 지위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더욱 확고한 명성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남의 재산이 아닌 자신의 재산을 탕진할 때에만 스스로에게 해롭다. 관용만큼이나 자신을 스스로 파괴시키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관용을 실행하려면 한이 없다. 당신은 자신이 도중에 관대하고자 해도 관대할 능력조차 상실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빈곤과 멸시 속에 파묻히게 될 뿐이다. 그런 후에 빈곤에서 탈출하려면 탐욕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백성의 증오를 받게 되는 것이다.

군주는 무엇보다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용은 이 두 가지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증오와 불명예를 유발하며 탐욕의 원인이 되는 관용이란 이름 아래 권력의 기반을 구하기보다는, 차라리 불명예는 있을지라도 증오의 대상만은 되지 않는 인색함의 악덕에서 통치의 원리를 찾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




제17장

잔인과 동정심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은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좋은가?


내가 이미 지적한 것 외에도, 군주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많다. 군주는 잔인하다는 평을 듣는 것보다 동정심이 많고 인자하다는 평판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군주의 인자함은 잘못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체사레 보르지아는 잔인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잔인성이 로마를 통일시켰고, 백성을 일치단결하게 만들었으며, 국가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국민들의 복종을 낳게 했다.

결과를 본다면 잔인하다는 평을 듣기 싫어한 피렌체의 군주들이 피스토이아(Pistoia)를 황폐하게 내버려둔 것보다는 체사레 보르지아가 훨씬 자비로웠다고 할 수 있다.58) 그러므로 군주는 그의 백성이 단결하고 복종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잔인하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두 번의 잔인한 행동은 너무나 인자한 나머지 혼란을 초래하고, 그 혼란은 약탈과 강도를 성행케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비로움을 입증해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군주의 가혹한 명령은 그에 속한 개인에게 큰 영향을 준다. 일반적으로 인자하다는 평을 받게 되는 군주의 자비는 반대로 어디서나 군주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 모든 지배자 중에서 특히 새로 군주가 된 자는 백성으로부터 잔인하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새로 건국한 국가에서는 위험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는 디도(Dido)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악함도 필요하다. 나의 왕국이 새로운 나라이기에 나에게 포악해지도록 압박한다. 그리하여 내 왕국의 국경을 지키도록 만든다.”59)

잔인한 짓을 해놓은 군주의 다음번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군주가 자신이 저지른 잔인한 그림자에 스스로 놀라는 일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군주의 행동은 인간적이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너무나 인자하여 사람을 믿으면 군주 자신이 무능한 사람이 된다. 또한 극단의 불신을 품으면 군주 자신이 견디지 못한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은가,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좋은가?

대답은 자명하다. 공포의 대상도 되고 사랑의 대상도 되어야 좋다. 그런데 실제 두 가지 모두의 대상이 되도록 조절하기가 어려우므로 어떤 군주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출 능력이 없다면 사랑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길이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다. 또한 거짓말을 잘하며 사기성이 많다.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고 이기적이다.

인간이란 당신이 그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때에 한하여 당신을 따를 뿐이다.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그들은 자신이 위험에 봉착하면 당신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재산을 바치며 그들의 목숨과 아이들까지도 바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위기에 처하면 그들은 태도를 바꾸어 당신을 해치려 할 것이다.

어떠한 군주라도 사려가 너무 깊어 자신의 약속을 전적으로 지키려 하면 결국 자신이 자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돈을 주고 산 우정, 위대함을 상실한 우정, 돈을 주고 얻은 마음의 순결함은 영원하지 못하며,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 인간은 공포에 질리게 만든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해치려고 결심했을 때, 공포의 대상이었던 사람에 대해서는 머뭇거리지만 사랑하고 친근하던 사람에 대해서는 서슴지 않고 해치게 마련이다.

사랑의 묶음이란 존경과 애정이 존재함으로써 연결된 매듭이므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그 매듭을 파괴해 버린다. 그러나 공포라는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무서움에 의해 강화된 감정이므로, 공포의 매듭을 풀려고 하면 할수록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언제나 유효적절히 이용할 수 있다.

군주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함부로 도전하지 못할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만일 군주가 백성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최소한 백성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금물이다. 증오를 받지 않고 공포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은 현명한 군주라면 가능하다.

그리고 군주는 자신의 신하나 백성 및 그들의 부녀자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증오를 받는 일은 피해야 한다. 만일 어떤 자를 처단할 일이 있다면 그에게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정당성과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군주가 남의 재산에 대하여 욕심을 부려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재산의 상실은 잊지 못하되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버리는 속물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재산이든 몰수하기 위한 구실을 찾자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어떤 군주거나 한 번이라도 약탈에 의하여 욕심을 채우기 시작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항상 남의 소유물을 쥐어짜기 위한 구실을 찾게 된다. 재산을 빼앗기는 쉽지만 어떤 자를 처벌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는 어려우며, 그러한 처단 행위를 오래 끄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떻든 간에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하거나 대규모 군대의 사령관으로 지휘를 하고자 하면 잔인하다는 평판이 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비난 없이는 군대의 단결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니발(Hannibal)의 감탄할 만한 승리도 그러했다. 그는 수많은 인종으로 구성된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외국 땅에서 싸웠지만 그가 명령하는 일이 좋건 싫건 군대 내에서 한니발 자신을 향한 불만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한니발의 비인간적이며 잔인한 성격 때문에 병사들 자신이 죽임을 당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한니발이 갖춘 장군으로서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질 중에서, 그의 군사들로부터 공포와 존경의 대상이 되게 한 근본적인 자질이다. 한니발에게 그러한 잔인함이 없었다면 그 외의 다른 많은 자질을 가졌더라도 원정은 실패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한편으로 한니발의 성공에 감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공적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데 근본이 되었던 이 잔인성은 도외시하고 있다.

자신이 살던 시대뿐만 아니라, 인간이 기록한 모든 역사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스키피오(Scipio)를 보면 잔인하지 않은 군주는 그 밖의 모든 군주의 자질을 갖추었어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스키피오의 군대는 스페인에서 그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이 일어난 단 하나의 이유는, 스키피오가 평소에 지나치게 너그러운 인물이어서 그의 군대들이 군율에 순종하기보다는 방종하도록 내버려둔 데 있다.

파비우스 막시무스60)는 원로원에서 로마군단을 타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스키피오라고 비난하며 그를 탄핵했다. 또한 로크리(Locri) 사람들이 스키피오의 한 장교에 의하여 약탈당했으나 스키피오는 약탈당한 사람들에게 만족할 만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모두 스키피오의 천성적인 관용에서 기인된 일이었다. 원로원에서 스키피오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타인의 잘못을 책하는 것보다,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만일 스키피오가 자유분방한 생각으로 군대의 사령관직을 유지하였다면 역사에 남은 그의 명성과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로원의 탄핵을 받고 그 명령 아래 살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의 운명적 성격이 감추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 영광을 가져오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아야 하느냐, 아니면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군주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이는 백성 자신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군주가 백성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면, 군주 자신만이 즐거움을 만끽하며 백성은 고생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것에 의지하며, 그 자신이 지배할 수 없는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내가 말한 것처럼 현명한 군주는 사랑을 받거나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를 가리지 않으며, 단지 백성의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고자 노력할 뿐이다.



제18장

군주의 언행


군주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행동 또한 교활하지 않으면서 공명정대하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최근의 몇 가지 경험을 생각해보면, 자기가 한 말은 가볍게 잊어버리고 백성을 기만하고 속인 군주들이 끝에 가서는 정직한 군주들보다 더욱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꼭 알아야 할 일이 있다.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그 하나는 법에 의지하여 싸우는 일이요, 또 다른 하나는 힘에 의지하여 투쟁하는 길이다. 법에 의한 방법은 인간의 이성에 따른 것이며, 폭력에 의한 방법은 짐승들이 본능적으로 지니는 특성에 따른 것이다.

고대 저술가들은 이 두 가지 방법에 대하여 넌지시 가르쳐 주고 있다. 즉, 역사가들은 고대의 아킬레스(Achilles)와 그 외의 많은 군주들이 사람인 명장에게 훈련받지 않고 머리는 사람이며 육체는 말이라고 전해오는 반인반마인 케이론(Chiron)에게 훈련을 받을 것을 부탁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케이론의 방식에 따라 훈련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를 음미해 보면, 군주가 된 자는 반은 인간이 되고 반은 짐승이 되어, 인간과 짐승의 특성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섞어서 백성을 통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야수와 같고, 또한 야수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알려면 반드시 여우와 사자로부터 배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올가미에 속수무책이며, 여우는 늑대 앞에서는 대항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가 올가미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어야만 한다. 여우와 사자 중 어느 하나의 모습으로만 행동하는 군주는 미련한 사람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그의 공약이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 때에는 그의 말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 된다. 군주가 자기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 약속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만일 모든 인간이 선량하다면 이러한 충고는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악한 동물이므로 그들은 당신에게 한 약조를 지키지 않는데 오직 당신만이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군주는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아름답게 색칠할 줄 알아야 한다. 색을 칠할 재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이에 대한 최근의 실례도 많이 있다. 외국과 맺은 많은 조약과 백성에게 한 약속들이 군주의 불신에 의해 깨지고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가장 훌륭한 군주로 알려진 사람은 대개 여우의 교활한 특성을 가장 잘 따른 사람들이다. 따라서 군주는 자기의 행동에 어떤 색깔을 칠해야 하는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군주는 어떤 면에서는 최대의 거짓말쟁이, 또는 최대의 사기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단순하기 때문에 그 많은 환경에 순응하게 되며, 따라서 사기꾼은 사기에 걸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단순한 인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에 일어난 일을 한 가지 예로 들고자 한다. 알렉산데르 6세는 항상 어떻게 하면 국민을 속일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생각한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항상 사기의 제물을 찾을 수 있었다.

알렉산데르 6세처럼 무슨 일이든지 확실히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또다시 없을 것이다. 그는 협잡의 명수였으므로 그의 협잡은 항상 그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군주는 내가 앞에서 말한 좋은 자질을 모두 갖추어야 할 필요성은 없으나 최소한 백성에게 그런 자질을 갖춘 듯이 보여야 한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감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만일 군주가 모든 미덕을 갖추고 있으면서 그 미덕에 따라 행동을 한다면 그런 군주는 틀림없이 멸망할 것이라는 점이다.

군주는 미덕을 갖춘 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허위성이 군주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도록 도와줄 것이다. 군주는 다만 자신이 인자하고 언행이 일치하며 악의가 없고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백성에게 인식되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군주는 진실로 그래야 된다. 군주의 성향이 선하다 해도 만일 악한 일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그것이 아무리 악한 짓이어도 서슴지 말고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군주라면 이것만은 꼭 깨달아야 한다. 특히 새로 군주가 되었다면 더욱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하여 때로는 불가피하게 신의와 자비, 친절과 신앙에 도전해야 할 때도 있으므로 덕망의 명성만 바랄 수도 없다. 군주는 다양한 운명과 환경에 따라 변절하기도 해야 한다.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군주는 가능하다면 선한 행동에서 빗나가지 않아야 하지만, 만일 필요하다면 악을 실행하는 방법도 알고 있어야 한다.

군주는 내가 위에서 지적한 좋은 자질들을 가진 인격자가 아닌 듯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단히 조심성 있게 처신해야 한다. 이와 같은 군주는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보고 듣기에는 인자하고 신의가 굳은 사람이며 성실하고 신앙 있는 사람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가진 듯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손으로 만져 판단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눈으로 보고서 판단한다. 왜 그런가 하면, 비록 당신이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당신 가까이 와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백성이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보려고 할 수는 있으나, 진실로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동행자는 극히 소수이다.

그리고 이들 소수의 사람은 당신의 녹을 먹고 있기 때문에 군주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언사를 다수 국민에게 감히 말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다 그렇지만, 특히 군주로서의 행동은 자신의 잘잘못을 호소할 법정이 없다. 무슨 일이든지 결과에 대한 최후의 책임을 자신이 진다. 결과가 나쁘면 역적이요, 좋으면 명군주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국가를 보위하고 적을 정복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리 나쁜 행동이라도 군주가 취한 방법은 늘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며, 일반적으로 칭찬을 받게 된다.

일반 시민은 항상 겉으로 나타나는 사실과 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게 마련이다. 이 세상은 다수의 일반 시민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국가의 지배를 받는 다수 세력이 존재하는 한 이를 반대하는 소수가 쉴 방은 어느 구석에도 없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61) 오늘날 어떤 통치자는 입만 열면 평화와 신의를 말하고 있으며, 이를 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은 평화의 적이며 신의에 대한 배신자이다. 만일 그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었다면 그의 지위와 왕국은 여러 번 넘어졌을 것이다.



제19장

경멸과 증오에서 벗어나라


군주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에 관해서는 이미 말했으므로, 나는 이제 군주가 일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고 싶다.

군주는 전에 내가 암시한 바 있는 것처럼 자신이 멸시를 받거나 증오를 사게 되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백성의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한, 군주는 자신이 해야 할 직분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으며 내가 앞서 말한 악덕이 있더라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전에 말한 바 있지만, 만일 군주가 신하의 재산에 손을 대거나 신하의 부인을 탐내면 모든 미덕은 소용이 없으며 신하와 백성의 증오를 받게 된다. 군주는 신하의 재산과 부인이 탐나겠지만 자제하여 그런 짓은 당연히 피해야만 한다.

다수의 재산과 다수의 명예를 강탈하거나 더럽히지 않아야 많은 백성이 군주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군주는 소수 계급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소수를 잡아 족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또 쉽게 찾을 수 있다. 군주가 변덕이 심하거나 경솔하고, 나약하며 비겁하다거나 굳건하지 못하다는 평판이 돌면 그는 백성으로부터 멸시를 당한다. 군주는 이러한 결점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는 백성에게 자신의 행동이 위대하고 용기 있으며 지혜롭고 용감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시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신하와 분쟁이 생기면 군주는 자신의 결정이 결코 취소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누구든지 군주를 경멸하거나 속이고자 감히 꿈꾸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군주가 위대한 인물로 인식된다면 그 위대한 군주에게 반역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공개적인 비난이나 공격은 더욱 불가능하다. 군주가 위대한 인물로 신하들에게 추앙받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 함부로 도전하지 못한다.

군주에겐 두려워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란에 의한 전복활동이며, 다른 하나는 외국 세력에 의한 침략이다. 외국의 침략은 방위력을 기르고 다른 나라들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음으로써 막아낼 수가 있다. 그리고 군주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좋은 상대국을 맞이하여 동맹을 맺게 된다.

한 가지 더 말할 것은 군주가 외국과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그러한 동맹관계가 음모에 의하여 파괴되지 않는 한 국내 문제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대외적 관계에 분쟁이 생길 경우 평소에 동맹관계를 잘 유지해 온 군주라면 끝까지 견디고, 어떠한 어려움을 당해도 항복하지 않는다면 동맹국의 도움으로 스파르타의 나비스(Nabis)처럼 모든 침략을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군신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외환이 없이 집권하는 군주는 신하들이 비밀리에 모여 음모를 꾸미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이 내란의 음모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국민으로부터 증오를 받거나 비웃음을 당하는 일을 피하면 된다. 국민이 만족하며 살고 두려워하도록 행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내가 이미 길게 설명한 것처럼 군주는 잔인해져야 한다.

군주가 음모에 대처하는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안전한 길은 무엇인가? 민중의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역자들이란 항상 증오의 대상이 되는 군주를 살해하여 국민의 환심을 사서 집권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반역자가 보기에 국민들이 자기들의 음모를 싫어하는 눈치가 있다면 그 음모를 실행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다. 반역자의 입장에서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음모는 헤아릴 수 없는 난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음모가 있었으나 그 음모가 최후까지 성공한 예는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음모를 꾸민 자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자기에게 협조하고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그들도 현상 타파의 뜻을 같이하는 불평불만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비밀을 유지할 이런 자들이 모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음모자는 다른 불평분자에게 자기의 계획을 털어놓자마자 상대방이 만족할 만한 이권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음모자가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음모에 가담하려는 사람도 음모를 꾸민 자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떤 이득이 있다는 뚜렷한 정보를 주면 위험이나 의구심이 있다고 해도 스스로 협조할 것이다. 확신이 선 음모의 협조자는 몇 명이 안 되지만 음모의 진실한 동지가 된다. 이들은 음모자의 계획을 군주로부터 지켜주며 군주의 무자비한 적으로 변한다.

내가 만일 반역자라면 내가 계획한 음모를 실행하기 위해서 두려움과 질시와 공포에서 벗어나, 내 계획이 실패하면 후에 무참히 처형당할 것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반대로 내가 군주의 입장이라면 거기에는 국가의 위엄이 있고, 국가를 지키는 법률이 있으며 군주를 존경하는 도시와 우방의 지원이 있으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군주에게는 충성하는 많은 백성이 있으므로 누구도 섣불리 음모를 꾸밀 생각을 못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음모자가 자기의 계획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는 공포를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반역자가 느끼는 공포란 음모를 실천에 옮긴 후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백성의 적의에 대한 두려움이다. 반역자는 그의 범죄적 계획을 실행하여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백성이 자기를 반대하면 도망칠 장소조차 찾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그러나 꼭 한 가지 예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우리들 아버지 세대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이다.

칸네스키(canneschi)62)는 지금 살아 있는 안니발레(Annibale)의 할아버지이다. 그는 볼로냐의 군주였던 안니발레 벤티볼리오(Annibale Bentivogli)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그를 살해했다. 칸네스키의 음모로 망한 이 왕가에는 다만 아기 강보에 싸여 있는 어린 메세르 조반니가 후계자로서 남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안니발레 벤티볼리오가 살해되자 분노한 민중이 즉시 들고 일어나 칸네스키의 모든 족속을 죽여버렸다.

민중은 당시의 지배자였던 벤티볼리오가의 존재에 대한 존경 때문에 음모자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민중의 궐기는 승리하였지만 안니발레가 죽은 후에 정부를 통치할 후손이 볼로냐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왕가의 씨가 말랐다는 소식을 들은 볼로냐의 시민들은 벤티볼리오가의 한 후예가 피렌체에서 대장간의 아들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시민들은 그에게 국가의 통치를 위임하였으며, 어린 조반니가 스스로 나라를 통치할 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그에게 나라를 맡겼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군주가 평소에 민중의 환심을 산다면 그 군주는 반역자의 음모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군주에 대한 백성의 적개심이 커지고, 따라서 군주가 백성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면 언제 어디를 가나 백성의 행동과 국가의 모든 현상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훌륭한 국가의 현명한 군주는 항상 귀족들의 격분을 자아내지 않고 국민들이 안정하며 만족하도록 하는 정치를 위해 고심한다. 이러한 고민은 훌륭한 군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인격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훌륭한 정치를 하고 있는 왕국은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가치를 지닌 통치기구를 가지고 있다. 이 통치기구를 통하여 왕은 자유와 안정을 유지한다. 자랑할 만한 프랑스의 통치기구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의회와 의회에 부여한 권위이다.

프랑스 왕국의 창건자는 피지배자들이 가질 수 있는 야심과 권력에 대한 분노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의회를 통하여 야심을 가진 자와 권력에 대한 분노를 가진 자의 직성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다수의 민중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다수의 민중들은 귀족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두려운 존재로서의 귀족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팽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귀족과 백성이 대립하여 싸우는 것에 대한 책임이 군주 자신의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왜냐하면 군주가 국민의 호감을 사는 행동을 하면 귀족의 반감을 자아내게 되고, 반대로 귀족의 환심을 얻을 행동을 하면 국민으로부터 반감을 사기 때문이다. 그러한 위기에서 자신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귀족계급을 견제하고 약한 자의 환심을 얻으면서도 왕에 대한 반감을 자아내지 않는 독립적인 조정기관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통치기구로서 의회보다 더 유익하고 효율적인 기구는 없었다. 의회보다 왕과 왕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다 더 유효한 기구도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의할 점 하나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즉, 군주는 자신의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가시킬 대상을 가져야 하며, 모든 좋은 일에 대한 공로는 오직 군주 혼자의 것으로 돌리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군주에게 귀족들은 가치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로 인하여 백성의 증오를 받아서는 안 된다.

로마제국들의 흥망성쇠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나의 견해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많은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의 황제 중에는 훌륭한 인격을 도야했지만 권력을 상실하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신하가 꾸민 음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군주까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에 대한 반박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일부 황제들의 특징을 들어 그 황제들이 패망한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나의 지론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는 데 있다.

나는 오늘날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잘 알려진 사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내가 지금 제시하려는 사람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63)시대로부터 철학자 막시미누스(Maximinus)까지의 모든 황제들이다. 그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와 그의 아들 콤모두스(Commodus)64) 및 페르티낙스(Pertinax)65) 그리고 율리아누스(Julian)66), 세베루스(Severus)67)와 그의 아들 카라칼라(Caracalla)68) 및 마크리누스(Macrinus)69) 그리고 엘라가발루스(Elagabalus)70), 알렉산데르 및 막시미누스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다른 국가의 군주들은 귀족들의 야심과 백성의 격분을 사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었으나, 로마의 황제들은 또 다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군인들의 잔인성과 탐욕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군인들의 잔인함과 탐욕은 대단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많은 왕국이 이 때문에 패망하였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군인들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백성까지 만족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백성은 원래 평화 애호적이며 모험이 없는 황제를 좋아하지만, 군인들은 호전적인 지배자를 좋아하며, 거만하고 잔인하면서도 탐욕스러운 군주를 좋아한다.

군인들은 군주가 이러한 자질을 백성에게 보여주고 자기들의 월급을 올려주며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주고 잔인성을 만끽하도록 내버려두기를 원한다. 이런 까닭에 세습적인 권위도 없고 백성과 군인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군주는 항상 슬픈 종말을 고하는 비운에 빠지기 마련이다.

많은 군주들, 특히 신생 군주국가에서 이 두 계층 간에 상반되는 이해가 엇갈리면 군주들은 군인계층을 회유하기 위하여 민중계층을 짓밟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책은 정당하지는 않지만 필요하다.

군주에 대한 증오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주의할 일이 있다. 모든 사람과 모든 계층의 신하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막아야만 한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가장 강력한 세력에 의해 증오를 받는 것만은 꼭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새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는 보편적인 지원보다 훨씬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므로 민중보다 군인들에게 더 기대를 걸게 된다. 이런 경우 군주가 군인에게 의존한 정책이 유리했는가, 아니면 불리했는가 하는 문제는 군주의 지위가 군대와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가를 판단해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위에서 지적한 이유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페르티낙스 그리고 알렉산데르는 모두 비모험적 인간들이었다. 정의를 사랑하고 잔인함을 증오했다. 친절하고 절제 있게 산 지배자들이었다.

그러나 마르쿠스를 뺀 다른 모든 군주들은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마르쿠스 홀로 전 생애를 권좌에 앉아 보냈으며, 죽은 후에도 높은 명예를 유지한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마르쿠스는 세습에 의하여 군주의 지위를 계승하였으므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군인이나 민중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인격적으로 위대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많은 자질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전 통치 기간 동안 군인계급과 민중을 완전히 통솔하였고, 이들로부터 증오를 받거나 조롱을 당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페르티낙스는 집권 초기에 비운을 맞이했다. 그는 콤모두스 밑에서 방탕한 생활을 해온 군인들의 생활을 이해하지 않는 황제가 된 것이다. 새로운 군주가 된 페르티낙스가 요구하는 엄격한 군기를 군인들은 견딜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황제 자신이 스스로 증오의 대상이 되도록 행동한 결과였다. 더욱이 그는 너무 늙었기 때문에 군인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군주가 악행을 행하면 증오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행에 의해서도 국민의 증오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때때로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왜냐하면 언제나 군주의 지배를 존속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민중이건 군인이건 아니면 귀족이건 간에 부패할 여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당신 스스로 이들의 부패를 책하기보다는 당신을 받들어 주는 데 만족하고 그들의 취향에 따르게 된다. 이런 때에 군주는 자기의 지지계층에 대해 선심을 쓰는 것이 선행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선행은 오히려 군주의 적이 된다.

그러면 알렉산데르를 보자. 그는 최선의 선정으로 통치했다. 특히 그가 백성에게 준 신뢰는 어떤 선정보다 평판이 높다. 이는 그가 통치한 14년의 기간 중에 재판 없이는 사람을 처형하지 않았음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나약한 통치자로 인식되었고, 자기 어머니의 뜻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결국은 조롱을 받고 군인들의 음모에 의해 살해당했다.

콤모두스·세베루스·안토니우스 카라칼라와 막시미누스의 성격을 비교해 보자. 당신은 이제까지 본 황제들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극도로 잔인하고 탐욕스러웠다. 군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들 중에서 세베루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행한 종말을 고했다.

세베루스는 지혜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군인계급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비록 그가 민중을 탄압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성공적으로 국가를 통치하였다. 그의 지혜가 군인과 민중에게 너무나 깊은 인상을 주었으므로 민중은 그에게 감탄하고 그를 두려워했다. 군인들 역시 그를 존경하였고 만족하며 섬겼으므로 군주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세베루스는 그 행적이 기억될 만한 인물이다. 새로 군주가 된 인물로서는 특출한 면이 있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여우와 사자의 본성을 둘 다 훌륭하게 이용하였다. 이는 새로운 군주가 꼭 모방해야 할 점이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무능함을 알게 된 세베루스는 친위대에게 살해당한 페르티낙스(Pertinax)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하여 로마에 진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의 군대를 설득시켜 슬라보니아에서 진격 명령을 내렸다. 로마제국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나타내지 않고 그는 군대를 진격시켰다. 그리고 그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나기 전에 벌써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그가 입성하자 원로원은 공포에 질려 그를 황제로 선출하고 율리아누스를 살해했다.

이렇게 계획이 성공하자 세베루스는 전 제국의 황제가 되려고 작심하였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두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하나는 아시아에 있었는데, 아시아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던 페스세니우스 니게르(Pescenius Niger)가 자신이 황제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또 하나의 장애는 서방에서 알비누스(Albinus)가 황제로 행세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적대의식을 나타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한 세베루스는 니게르는 쳐부수고, 알비누스에게는 속임수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세베루스는 알비누스에게,


“나는 원로원에서 황제로 추대되었으니 이 영광을 당신과 함께 나누어 갖고 싶다. 나는 그대에게 ‘카이사르’의 칭호를 보내니 원로원의 결정에 따라 그대와 나는 공동으로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라고 쓴 편지를 써보냈다. 알비누스는 자기에게 들려온 소식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였다. 알비누스를 무마시킨 세베루스는 니게르군을 패망시킨 후 니게르를 살해해버렸다. 동부 지역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세베루스는 로마로 돌아왔다. 그리고 원로원에 출석하여 알비누스가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고 비열하게도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따라서 부득이 출병하여 그런 배은망덕한 자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끝내 프랑스에 있는 알비누스에게 진격해서 그의 왕국과 생명을 빼앗았다.

그러므로 세베루스의 통치방식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사자의 맹폭과 여우의 교활한 자질을 갖춘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무서움과 존경을 받았으며, 한 번도 군대의 증오를 산 일이 없는 위인이다.

새로운 군주로 벼락출세하여 그렇게도 큰 권력을 휘두르며 유지했다는 사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무자비함은 약탈행위 때문에 발생하는 국민의 저주로부터 항상 그를 보호해 주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 안토니우스 카라칼라 역시 백성이 감탄하고 군인이 존경할 만한 훌륭한 자질을 가진 자이다. 그는 군 출신이었고, 어떠한 환경에도 대처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책상에서나 어디서나 간에 나약한 일을 항시 비웃었다. 이런 점이 바로 군인들이 그를 위해 헌신적으로 싸우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가 지닌 전대미문의 포악성과 잔인함은 그로 하여금 수많은 백성을 학살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전 시민을 살해할 정도로 잔인하였던 그는 자연히 세월이 지나면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와 가장 절친한 사람들까지도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기의 부하와 군대에 의해 포위된 자리에서 한 백부장의 칼에 의해 최후를 마쳤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일은 어떤 군주라도, 반역자의 음모가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진행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주를 죽이는 데 따르는 다른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음모는 그리 흔하지 않으므로 군주가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간에 군주는 국사를 집행할 때에 가까운 사람인 신하나 부하들에게 슬픔을 주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스스로 억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안토니우스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자기의 경호원인 백부장에게 매일 협박을 가하고 그의 형제를 무참하게 죽였다. 이러한 거친 행동은 그를 비운으로 몰고 갔으며, 그의 죽음에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다.

콤모두스를 생각해 보자. 그는 왕국을 쉽게 통치할 수 있었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왕권을 세습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아버지의 발자취만 따르면 무사하였고, 그렇게 하여 군인들과 백성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잔인하고 야수적인 성질 때문에 탐욕성을 채우기 위한 정치를 백성에게 실행하였으며, 군인들을 방종과 부패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었다. 또한 위신을 잊어버리고 자기와 격이 맞지 않는 비천한 검투사와의 싸움을 즐기기 위하여 종종 투기장에 내려갔다. 이렇게 황제의 권위에 먹칠을 하는 무지한 행동을 자행하였으므로 드디어 군인들이 그를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증오를 받아 음모의 제물이 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마지막으로 고찰해 볼 사람은 막시미누스이다. 그는 아주 호전적인 인간이었다. 내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는 알렉산데르의 나약한 성격의 병에 지친 군대들이 알렉산데르의 사후에 그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의 권력은 길지 않았다.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증오와 멸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가 비천한 하류 계급 출신이라는 점이다. 한때 그는 트라키아(Thrace)에서 양치는 목동이었다. 이 사실은 모든 백성에게 알려져 그가 황제가 된 후에도 다른 사람의 눈에 그를 비천하게 보이게끔 하였다.

둘째는, 그가 황제로 선출되었을 때 황제에 대한 공식적인 환영에 응하지 않았으며, 그가 로마에 파견한 고급 관리들이 극단적으로 야만적인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이로써 백성은 그들이 잔인하다는 인상을 버릴 수 없었으며, 황제 또한 백성으로부터 원한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결과로 전국에서 그의 비천함에 대한 대공세가 일어났고, 그의 폭군정치에 대한 증오에서 시작된 대대적인 항쟁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아프리카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곧이어 로마의 전국민적 지지를 받던 원로원이 반기를 들었다. 전 이탈리아 민중이 그에게 반대하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이 음모에는 그의 군대까지 합세하였다. 군인들이 아퀼레이아를 포위하고 그 도시를 함락시키는 데는 별 난관을 겪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그의 잔인성에 사람들이 진저리를 쳤기 때문이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이 어찌나 많았던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마침내 민중과 군인은 힘을 합해 그를 살해했다.

나는 엘라가발루스(Elagabalus)나 마크리누스, 율리아누스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철저히 경멸당하여 오래가지 못하고 몰락한 군주들이다. 그 대신 오늘날의 군주는 군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강구해야 할 문제점이 적어졌다는 말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군주는 몇 가지 문제에만 군인들에게 유의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은 곧 해결된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군주가 굳건한 정부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정복한 땅을 다스리기 위하여 옛날 로마제국이 필요로 했던 때처럼 많은 상비군을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로마 시대71)에 백성보다 군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면 이는 당시의 군인계급이 민중보다 더 강력한 정치적 힘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오스만과 술탄(Sultan)72)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의 지배자가 군인보다 민중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시대이다. 지금은 민중이 더욱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의 예외로 둔 오스만은 지배자가 1만 2천 명의 보병과 1만 5천 명의 기마병으로 구성된 상비군을 가지고 있으며, 이 상비군은 오스만의 안전과 강화를 위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 군인들의 충성심을 자아내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술탄의 지배체제는 전적으로 군인들에게 맡겨져 있으므로 군주와 군인의 유대를 강화해야 하는 정치체제이다.

술탄의 정체는 다른 모든 군주국과 판이하며 세습군주국이나 신생군주국으로 부를 수 없는 교황제와 비슷하다. 술탄은 군주의 아들이 왕관을 이어받는 세습군주 제도가 아니며, 군주로 선출된 사람이 왕좌에 올라 국가를 통치하는 제도이다. 선거에 의한 왕권계승 제도는 옛날부터 내려온 관습의 하나이므로 신생군주국과 구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새로운 군주가 당해야 할 어려움은 하나도 없다. 군주가 된 자는 새로운 사람이지만, 국가의 제도는 옛날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새로 선출된 군주는 세습에 의한 지배자인 양 백성에게 인식된다.

그러면 본론으로 되돌아가 보자. 누구든지 나의 논점을 확인한 사람이라면 군주가 붕괴당한 이유는 증오를 받거나 멸시를 당하였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왜 그러한 불행이 찾아왔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자는 용감하여 몰락하였고, 어떤 자는 인자하여 몰락하였다. 용감한 군주이거나 용감하지 않은 군주이거나 간에, 둘 다 영광의 은퇴가 아니면 비운에 사라졌다. 신생국의 군주였던 페르티낙스나 알렉산데르가 세습권에 의하여 군주가 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모방하려 하였던 것은 쓸모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초래한 경우이다. 마찬가지로 카라칼라나 콤모두스 및 막시미누스가 세베누스를 모방하려 했던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그들의 백성에게 선정을 답습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므로 신생군주국의 새로운 군주가 된 사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행적을 모방할 수 없다. 세베누스와 같은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서도 안 된다. 그러기보다는 세베루스로부터는 그의 왕권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자질을 배워야 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부터는 안정되고 안전한 국가를 유지하고 죽은 후에도 영광을 얻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제20장

요새 및 보위 수단


군주들은 자기의 영토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부하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자기의 영지에 있는 신하들이 서로 분열 대립하도록 만든다. 또한 어떤 군주는 백성 자신이 서로 알력을 가지고 싸우도록 만드는가 하면, 집권 초기에 의심을 품은 자들을 설득하여 환심을 사도록 하는 군주도 있다. 또 어떤 군주는 요새를 만들고, 다른 군주는 기존의 요새를 파헤치기도 한다.

군주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상반된 수단을 선택하는데, 이때에 환경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인식 없이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들을 논해보고자 한다.

이제까지 어떤 군주이건 간에 새로 군주가 된 사람이 신하들의 무장을 해제시킨 일은 한 번도 없다. 반대로 신생국의 군주는 자기의 부하들이 무장을 하고 있지 않으면 무장을 갖추도록 조치를 취했다. 부하들을 무장시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에게 무장을 시킴으로써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한다. 충성심만 얻는 것이 아니라 군주 자신에게 무의미한 존재로 보였던 부하들이 충실하고 강인한 부하들로 변하여 군주 자신의 힘이 된다.

모든 사람을 무장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일부만이라도 무장시키고 그들을 돌보아 줌으로써 나머지 사람들까지 군주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백성을 무장시킴에 있어서 어떤 자는 무장시키고, 또 어떤 자는 무장시키지 않는다는 차별대우가 알려져도 군주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장을 시킨 자들은 군무에 더욱 복종할 것이며, 무장을 시키지 않은 자들은 잘못하면 더 큰 위험이 있을 것이므로 무장한 사람들보다 더한 충성심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군주의 더 큰 애호를 받으려고 애쓰며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군주가 부하들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면 무장해제를 당한 부하들은 그것에 대해 화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군주가 부하들을 불신한다는 의구심을 가지며, 부하들을 믿지 못하는 비겁한 자로 군주를 경멸하고, 끝내는 군주를 배반하게 될 것이다.

군주는 비무장 상태로 오래 견딜 수 없으므로 내가 이미 그 특징을 설명했던 용병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믿을 만한 용병이라 하더라도 당신에게 덤벼드는 강력한 적을 쳐부술 수 없으며, 당신이 불신하는 신하들 역시 용병으로 견제할 수 없을 것이므로 결국 당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말한 것처럼 신생군주국의 새로운 군주는 자기 자신의 신하들을 강력하게 무장시켜야 한다. 역사 속에는 이러한 예들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군주가 그 자신의 국가와 새로운 영지를 확장하여 옛 왕국에 합병시켰다면 사정이 다르다. 새로운 영지를 획득하기까지 군주 편에 섰던 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의 무장을 해제시켜야만 한다. 점령한 새로운 영지의 군인들 중에 당신 편을 든 사람들이라 해도, 시간과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

중요한 문제는 모든 일을 당신 자신에게 복종하는 당신의 군대를 통하여 해결해야 하며, 마지막에는 당신의 본국 군대만 무장시켜야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나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위인들은 늘 피스토이아(Pistoia)는 당파 싸움을 시켜 다스려야 하고, 피사(Pisa)는 요새를 건설하여 지켜야 한다고 말해 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다 쉽게 자기의 속령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서로 분열하고 대립하고 알력이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책은 이탈리아 영토들이 안정을 유지하였던 시기에는 의심할 바 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정책이 오늘날에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성의 의견을 분열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군주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적이 접근해 오면 평소에 의견이 분열된 도시는 즉시 항복을 했다. 나약한 파벌들은 항상 침략자들의 편에 붙고, 강력한 파벌은 군주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분열 정책에 영향을 받은 베네치아는 그들의 속령을 겔프(Guelf)파와 기벨린(Ghibelline)파로 분열시켰다.73) 비록 두 파가 서로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하도록 두지는 않았으나, 시민들이 서로 불화하여 자기들끼리 싸웠다. 이는 그들이 서로 단결하여 베네치아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러한 정책은 베네치아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일라에서 베네치아가 패하자 이 중에서 한 파가 즉시 용기를 얻어 그들의 전 영토를 차지해 버렸다.

그러므로 분열 정책은 군주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강력한 군주국에서는 이러한 분열이 허용되지 않는다. 분열 정책은 군주가 자신의 신하들을 조금 더 쉽게 조종하고자 평화 시에 한해서 이익이 되며, 전시에는 위험한 정책일 뿐이다.

갖은 난관과 반대를 무릅쓰고 승리를 쟁취한 군주만이 위대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운명의 여신이 새로 군주가 된 자에게 더욱 큰 명성을 얻도록 특별히 배려한다면, 여신은 신생군주에게 세습군주보다 더 큰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에게 적들이 나타나게 하고 전쟁터에서 그와 싸우는 적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하여 모진 수난을 겪게 한다. 그의 적들이 설치한 고난이라는 사다리를 통하여 더욱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와 같이, 유능한 군주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듯한 허위 여론을 조작해 놓고 이를 자기 힘으로 극복하는 체하여 자기 스스로의 위치를 다진다.

군주들, 특히 새로운 군주들은 집권 초기에 의심하였던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신뢰했던 사람들보다 더욱 충직하고 쓸 만한 인물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시에나(Siena)의 지배자 페트루치(Petrucci)는 집권 초기에 믿었던 사람보다 의심하였던 인물의 도움으로 정치를 한 사람이다.74)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군주가 처한 환경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군주가 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다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을 뿐이다.

초기에 반대의사를 강력히 나타내는 사람이라도 그들이 언젠가는 군주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집권 초기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별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군주에 대하여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행동했던 결과인 비우호적 인상을 속히 씻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더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그러므로 집권 초기에 군주의 편을 들며 너무나 안일 속에 빠져 자신의 직분에 나태한 자들보다는 이들을 이용하는 편이 군주 자신에게 더욱 유용하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군주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어떤 국민들의 도움으로 새로 정권을 잡은 군주들은, 그들이 자신을 지원한 동기를 조심성있게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 지원이 새로운 군주에 대한 자연적인 갈망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정권에 대한 불만에 기인했다면, 그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한다는 문제는 심히 어렵고 곤란한 일이다. 이런 자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군주는 없다. 그들은 다시 당신에게 불만을 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실례는 수없이 많다. 군주는 현 정권에 만족하며 살아온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옛 정권이 망함으로써 그들은 당신에게 더욱 적대의식을 표시하지만 차차 군주와 우정을 나누고 군주의 정복에 호감을 갖게 된다.

군주들은 자기의 정권을 더욱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국토를 요새화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요새는 자신에 대한 반란을 음모할 자들을 가두어 둘 때나 외부로부터의 급습을 당할 때 안전한 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국토의 요새화 정책이 고대로부터 채택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요새를 파괴하는 정책도 있다. 우리 세대의 니콜로 비텔리(Niccolo Vitelli)가 그의 도시를 보존하기 위하여 치타 디 카스텔로에서 두 개의 성곽을 파괴한 일은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르비노(Urbino)의 공작인 귀도발도(Guidobaldo)는 체사레 보르지아에게 추방되어 본국에 돌아온 후 모든 요새를 헐어버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의 왕국을 잃지 않는 보다 안전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벤티볼리오도 볼로냐에 돌아와 이와 비슷한 일을 벌였다.

그러므로 국토를 요새화하는 일이 쓸모 있는 일이냐, 아니면 쓸모 없는 일이냐 하는 것은 군주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보면 유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롭기도 하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외국의 내정간섭보다 자신의 국민을 더욱 무서워하는 군주는 성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국민들보다 외국의 간섭을 더욱 두려워하는 군주는 성을 쌓지 말아야 한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자가 쌓은 밀라노의 성은 다른 어떤 어려움보다도 스포르자가에 대항하는 봉기를 막기 위해서였다.

군주에게 있어서 최상의 요새의 필요성은 민중에 의한 증오를 피하는 데 있다. 만일 당신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백성의 증오를 받는다면 당신은 절대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이 한번 무기를 잡고 일어서면 그들에게 외국의 원조는 언제든지 부족하지 않을 만큼 주어진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성곽은 어떤 지배자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다만 지롤라모 백작이 살해된 후 그의 부인 포를리(Forli)의 경우는 예외이다. 이 여인의 경우에는 요새화시킨 성곽 속에서 민중의 반란을 피하는 은신처를 찾았고, 그곳에서 밀라노의 구원을 기다리며 숨어 있다가 나라를 회복하였다. 포를리가 숨어 있을 당시의 민중들은 외부 세력의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

나라를 회복한 후에는 여인에게 그러한 성곽이 별로 가치 있는 것이 못 되었다. 체사레 보르지아가 그녀를 공격하자 그녀에게 적의를 품었던 신하들이 침략자의 군대와 합세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그녀가 성곽을 가진 것보다 국민의 적대의식을 회피하는 데 신경을 쓰는 것이 더욱 안전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생각해 볼 때 요새를 만드는 사람이나 만들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논평의 대상이 된다. 요새만 믿고 국민으로부터 받는 증오를 피하는 데 소홀히 하는 군주라면, 나는 그가 누구든 간에 비난을 삼가지 않을 것이다.




제21장

명예로운 군주의 행동


군주의 위신을 높이는 데는 자신의 능력을 널리 선전하고 과시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는 스페인의 현재 왕인 아라곤가의 페르디난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새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나약한 왕이었지만 기독교 제일의 명성과 영광을 자랑하는 왕으로 인식되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의 업적을 고찰해 보면 모두 위대하고 어떤 것은 비범하기까지 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집권 초기에 그라나다(Granada)를 공격하였는데, 이 전쟁이 그의 권력의 기초를 다져주었다. 그는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감을 갖지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전쟁을 벌였다.

그는 또한 카스티야(Castile)의 호족들이 모든 힘을 전투에 집중하도록 맹공격을 가하여 내정 개혁에 관심을 가질 틈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켰고, 따라서 그들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페르디난드는 교회와 국민으로부터 돈을 걷어 군인들을 먹여 살릴 줄을 알았다. 또한 장기전을 통하여 상비군의 기초를 닦았으며 이 군대를 이용하여 자신의 명성을 키웠다. 더구나 더욱 큰 전쟁의 구실이 될 종교상의 필요성을 만들어 놓고 종교의 잔혹성을 빌려 잔인한 행동을 자행하였다. 이리하여 무어인을 추방하고 그의 왕국을 제거해 버렸다. 이보다 더 잔인하고 거친 약탈은 할 수 없을 것이다.75)

같은 종교상의 구실로 아프리카를 침략하였고 이탈리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최근에 와서는 프랑스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페르디난드는 항상 새로운 정책을 계획하고 큰 정책을 입안했다. 그리하여 모든 신하가 항상 불안과 경탄 속에서 지내도록 하고 자신의 결정에 따르게 했다. 그의 부단한 행동은 국민들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조그마한 모반의 틈을 낼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한 가지 일이 끝나면 곧 다른 일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냈다.

국내 정치에 대한 군주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밀라노의 베르나보(Bernabo)76)가 한 행동을 모방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그는 시민들이 생활을 하면서 선한 일이거나 악한 일이거나 간에 특별한 일이 발생하면, 모든 사람에게 풍문이 자자할 만큼 선행을 한 자에게는 상을 주었고,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는 벌을 주었다.

군주로서의 모든 행동은 초능력을 가진 위대한 인간처럼, 명성을 얻도록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는 항상 진실한 친구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적인가를 분명히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런 다음, 친구에 대해서는 모든 사랑을 베풀고 반대로 적에 대해서는 모든 탄압을 가하는 행동을 명확히 해야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이러한 태도는 중용의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항상 유익하다.

만일 인접 국가 두 나라가 싸워 한쪽이 승리한다면 당신이 위태로워지거나 아니면 안전해질 것이다. 인접 국가에서 전쟁이 터지면 당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선언하고 전력을 다하여 용감히 동맹국의 전투에 참여하는 편이 항상 당신을 이롭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립적 태도를 취하여 당신의 입장을 선언하지 않고 우물쭈물한다면 당신은 항상 승리자의 자비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꼴을 보고 패배자까지도 더욱 고소하게 생각하며 만족해 할 것이다. 따라서 중립정책을 취한 당신은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망명할 곳도 찾을 수 없게 된다. 망명을 하려고 할 때에는 이미 이웃나라가 망해버렸을 때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는 자신이 역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지 않고 중립을 지킨 의심스러운 우방을 용서하지 않는다. 패전자라 해도 당신이 손에 칼을 잡고 그와 운명을 같이하지 않았으므로 당신이 어떤 요청을 해도 거절한다.

안티오코스(Antiochus)는 아이톨리아의 요청으로 로마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리스로 진격하였다. 그는 로마인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던 아카이아에게 사절을 보내 국외자의 입장에 서달라고 요청하였다. 한편 로마인들은 자기들과 힘을 합하여 싸우자고 아카이아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가 아카이아 회의에서 토론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안티오코스의 외교관은 중립적 입장을 지킬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로마의 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의 권고에 흥미를 갖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명성도 권위도 얻지 못하고 다만 전리품으로 전락하는 운명에 빠질 것이다.”77)

이와 같은 일은 항상 생긴다. 친구가 아닌 군주는 당신의 중립을 요구한다. 당신의 친구인 군주는 당신의 군사적 지원을 요구한다.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일반적으로, 당면한 위험에서 도피하기 위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이러한 군주들은 대개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용감하게 한편을 들 것을 선언하고 도와준 후 그가 만일 승리자가 되었다면, 비록 그 승리자는 강력하고 당신은 약한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은혜를 입은 자이므로 전쟁이 끝난 후 거칠거나 배신적인 행위를 결코 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승리자라 해도 우정을 내동댕이치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망설임을 나타내지 않을 만큼 완벽한 이기주의자는 없다.

만일 상황이 바뀌어 당신의 연맹이 패배하였다면 그는 당신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것이다. 그는 당신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행운의 여신이 되돌아온다면 사태는 역전되고 상황은 당신에게 유리하게 변할 것이며, 이때 당신과 그는 똑같이 행운을 맞이할 것이다.

만일 교전당사국 중 어느 편이 이기든 당신에게 아무런 염려가 없을 때에는 어떤 편을 지원해 줄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현명하다면 둘 다 구해야 하는데, 당신의 지원이 한쪽을 승리하게 만들고, 또 다른 한쪽은 패배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당신의 편이 승리한다면 당신의 연맹은 당신의 자비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강력한 당신이 지원해 주는 데도 승리하지 못한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여기에 군주가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침략적인 군주와는 부득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동맹을 맺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동맹이 성공하여도 당신이 그의 포로처럼 되는 결과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주는 타인의 자비 속에 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베네치아인들은 밀라노의 공작과 싸우기 위해 프랑스와 연합하였다가 연합체를 파기해 버렸다. 이 연합은 그들에게 불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과 스페인이 그들의 군대를 이끌고 롬바르디아(Lombardy)에 쳐들어왔을 때의 피렌체처럼 이러한 연합체가 불가피하다면, 내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군주는 한편만을 선택해 지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군주든지 안전한 정책만을 취하려 할 수는 없다. 차라리 군주가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취한 조치가 위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일은 한 가지 위험에서 빠져나오면 또 다른 위험 속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신중함이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험의 정도를 판단하여 손해가 적은 쪽을 택하는 것을 뜻한다.

군주는 능력 있는 자를 적극적으로 격려해 주고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명예를 부여하여 재능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상업이건 농업이건, 그 외에 어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평화롭게 일할 마음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군주는 백성이 재산을 약탈당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경우에 고율의 세금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도시와 국가의 재산을 부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나 일이 있으면 늘 포상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주는 연중 적당한 시기를 골라 연극과 축제를 벌여 국민들이 유쾌하게 놀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도시가 직업조합이나 가족 단위로 나누어져 있다면 그런 국가의 군주는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하고 때때로 이들과 만나 정중함과 관대함을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군주로서의 위엄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군주의 위엄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위엄의 부족은 절대적인 손해 요인임을 명심하라.



제22장

군주의 측근들


장관을 고르는 문제는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각료의 가치는 군주 자신의 총명에 의하여 결정된다.

첫 번째 견해는, 지배자의 현명함이 주변에 있는 군주의 측근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측근 간부들을 유능하고 충직한 사람들로 선택하면 그 군주는 항상 현명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군주가 측근들의 능력을 인정하였으며 그들의 충성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무능한 신하를 고른 군주는 항상 비난을 듣는다. 군주가 장관을 임명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시에나(Siena)의 군주인 판돌프 페트루치(Pandolf Petrucci)가 그의 각료로 안토니오 다 베나프로(Antonio da Venafro)78)를 선택한 일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를 보면 판돌프가 역시 위대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재능이 깃들여 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며, 둘째는 다른 사람들이 희망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지혜는 탁월한 것이며, 두 번째 지혜는 좋은 것이며, 세 번째의 것은 쓸모 없는 것이다.

판돌프는 첫 번째의 지혜를 가지지 않았다 해도 두 번째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

군주가 비록 예리하지 못하더라도 타인의 언행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판단력을 가졌다면 장관들의 행동이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에 따라 칭찬도 해주고 시정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정치를 하면 장관들이 군주를 속일 수 없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게 된다.

군주가 자기의 측근 간부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여기에 있다. 장관이 당신보다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여 매사에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러한 측근은 당신을 훌륭히 보필하는 장관이 결코 아니다. 당신은 그를 신임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 이유는 정부의 일을 위임받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오직 군주의 이익만 생각해야 하며, 군주의 정무 이외에 자신의 이익을 찾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군주가 자신이 바라는 장관을 만들려면 군주의 위치에서 그들을 돌봐주고 명예를 보유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군주의 빚을 지게 하여 국가에 대한 명예와 의무를 같이 하게 해야 한다. 군주를 의지하지 않고는 자기 혼자 설 수 없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명예와 재산을 최대로 주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관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군주는 현상타파를 음모하는 반란의 공포에서 해방된다.

이러한 유대를 가진 군주와 장관 사이에는 서로 두터운 믿음이 있고, 이러한 밀접한 유대가 없는 군신은 둘 다 재앙 속에 빠지게 된다.



제23장

아첨배의 배척


나는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논제가 있어 이야기하려 한다. 군주가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란 극히 어렵고, 특히 신중하지 못하거나 신하를 잘 선택하지 못한 군주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첨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들은 항상 조정에 득실대고 있다. 인간이란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거나 자만심에 탐닉하기 때문에 아첨배에 의해 천벌의 제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군주가 어려움을 피하려고 노력하다가 측근의 멸시를 받는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아첨에서 피하여 당신의 안전을 유지하는 길은 당신이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이해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조심할 일은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게 되면 당신은 군주의 위엄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별 있는 군주는 중간의 방법을 채택한다. 자기의 정부기구에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여 그들만 군주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허락하고, 그것도 군주가 묻는 사항에만 대답하고 그 외의 것은 말하지 못하도록 권위를 유지한다. 군주는 그들에게 세밀히 질문해야 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들어야 한다. 말을 듣고는 그들의 말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군주는 단체나 개인이거나 간에 군주에게 솔직히 진언하면 할수록 그들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이들이 아니면 진실한 말을 들을 사람은 없으며, 일단 말을 듣고 결정을 하면 틀림없이 정책에 반영하기로 해야 하며 그 결정에 집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아첨배에 의하여 파멸하거나 충고에 영향을 받아 쉽게 말이 바뀌게 된다. 그런 결과는 군주를 비천하게 만든다.

나는 최근의 한 예를 제시하고 싶다. 현재의 황제 맥시밀리안의 신하인 루카(Luca) 사제는 그의 황제에게 자기는 누구와도 상의한 일이 없고 자신의 뜻대로 한 일도 없다고 말하였다. 이는 내가 앞에서 논한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황제는 비밀주의자로 자기의 계획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한테도 충고를 듣지 않았다. 황제의 계획은 발표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그의 심중을 알아차리고 그의 계획을 반대했다. 많은 반대자들에게 둘러싸인 황제는 자기의 제안을 철회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로 황제는 오늘 결정한 일을 내일 철회했다. 그리하여 황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계획이 불투명하여 그의 시정에 대해 믿음을 갖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군주는 항상 충고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묻지 않은 사실에 진언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용기를 꺾어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군주는 편견 없는 질문자가 되어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에 관해서 참을성 있게 들어야 한다.

더욱이 어떤 사람이 무슨 이유에서든지 진심을 감추고 말하려는 낌새가 있으면 군주는 그의 면전에서 분통을 터뜨려야 한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어떤 군주가 현명하다는 평판이 있으면 군주 자신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군주의 측근이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확실히 잘못된 생각이다. 여기 틀림없는 원칙이 하나 있다. 현명한 군주가 아니면 훌륭한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 군주는 자신의 모든 일을 돌봐주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통째로 맡기지 않는 한 좋은 충고만 받아들이는 현명한 군주가 될 것이다. 남의 후견에 의하여 통치하는 군주는 좋은 충고를 많이 받겠지만, 그의 권력은 길게 가지 못한다. 군주를 대신하여 정부를 맡아주는 사람이 머지않아 군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군주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충고자의 진언을 들으면 일관된 견해를 얻을 수 없다. 또 듣는다 해도 그들의 견해를 자기 것으로 정리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상대자는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언한다. 따라서 군주는 이들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한 이해하지도 못한다.

사태는 다르게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첨배들이 미덕이라고 하는 말에 따라 군주가 행동한다면 당신은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아래와 같다.

훌륭한 충고는 누가 하든지 훌륭한 조언을 바라는 군주의 사려 깊음에 의하여 나오는 것이다. 좋은 충고를 한다고 해서 군주가 사려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24장

이탈리아 군주들이 영토를 잃은 이유


군주가 만약 앞에서 내가 지적한 것들을 잘 지킨다면 새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라고 해도 오랫동안 통치한 군주처럼 능숙하게 보일 것이다. 이들은 빠른 시일 안에 안정을 찾고 장기간 치적을 쌓은 군주보다 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군주의 행동은 세습에 의하여 군주가 된 사람의 행동보다 많은 사랑과 주의를 받게 된다. 신생군주의 정치가 슬기롭다고 인정받으면 혈통에 의하여 이어지는 세습군주에 대한 충성보다 더욱 큰 민심을 얻고 그들의 충성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은 과거보다 현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 좋은 것이라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면 현재에 만족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인정을 받은 군주가 다른 일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백성은 군주에게 대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로운 군주는 새로 왕국을 건설하고 훌륭한 법과 튼튼한 국방을 유지하여 믿을 만한 동맹을 찾으면 위대한 영도력을 갖추게 된다. 마치 처음부터 군주로 태어난 사람처럼 지배자로서의 명예와 강력함이 이중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군주로 태어났어도 무능한 자는 이중의 수치가 따르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탈리아의 군주들 중에서 나폴리의 왕과 밀라노의 공작 등 자신의 통치 기간 중에 영토를 상실한 지배자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앞에서 충분히 검토한 바와 같이 그들은 공통적으로 군사조직이 약했다. 귀족계급의 지지를 받은 그들은 민중의 적으로 군림했고,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해도 귀족계급의 충성을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는가를 몰랐다. 만일 그들이 이 두 계급 중에서 한 계급의 지지만 받았더라도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는 군대를 파견할 만큼 강력하였던 왕국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알렉산더의 아버지가 아닌, 티투스 퀸티우스에 의하여 패배한 사람을 뜻한다―를 공격해 왔던 로마나 그리스의 강대함에 비교할 수 없는 적은 권력자였다. 그는 적에 비해 보잘것없었지만 민중을 만족시키고 귀족의 충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군인 출신이었으므로 이들 강대국과 여러 해에 걸쳐 싸울 수 있었다. 비록 마지막에 몇 개의 도시를 빼앗기기는 하였으나 그는 왕국을 최후까지 사수하였다.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한 우리 시대의 군주들이 영토를 빼앗긴 것을 운이 나빠서 그랬다고 운명에 이유를 돌려버려서는 안 된다. 그들의 타고난 무능을 비난해야 한다. 바다가 잔잔할 때에 폭풍이 불어닥칠 것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태평성세가 지나면 전쟁이 몰려올 것을 추호도 예상하지 않았다. 역경에 처하면 일어서서 싸워야지 도망치면 안 되는 데도 그들은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복자의 무자비함에 분격한 자기의 민중들이 일어나 자신들의 패망한 왕권을 회복해 주기를 희망하였다.

이러한 군주들의 태도는 모든 대책이 실패했어도 모든 것이 잘되어 간다는 식의 태도이다. 이러한 무사안일주의로 인해 장래에 대한 무모한 희망을 품고 미리 조심하는 데 게으름을 피우는 태도는 심히 나쁜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스스로 넘어지는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행운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그러한 행운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당신은 안전하지 못할 것이니 그 이유는 당신이 비겁한 방법에 기대를 걸었으며, 어려움에 대해 당신 스스로 대처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튼튼하고 안전하여 영원히 견딜 국방의 길은 당신의 자력과 지혜에 의존하는 것밖에 없다.



제25장

운명

운명의 지배와 운명에 도전


나는 인간만사가 운명과 신의 섭리에 따라 결정되고, 아무리 사려 깊은 인간이라도 운명을 거역하거나 극복할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였고 지금도 그러한 견해를 밝히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들은 운명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다만 인간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 세대에 풍만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예기치 않았던 크나큰 변화와 변혁이 과거에 일어났고, 또 현재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러한 사태를 볼 때 나 또한 동감이 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운명의 장난은 우리가 하는 일의 반 정도를 지배하고, 나머지 반은 우리 자신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명을 성난 강물에 비유하고 싶다. 홍수가 나면 평야를 뒤덮고 나무의 뿌리를 뽑고 재산과 인명을 삼키며 제방의 흙을 무너뜨려서 산산조각을 낸다. 어떤 인간도 이 물결 앞에서는 약한 존재가 되며 도망치거나 저항하지 못한다. 자연적인 현상인 홍수가 나기 전에 물결이 잔잔할 때 인간이 미리 재난에 대비하여 방파제를 쌓고 운하를 건설한다면 강물이 다시 범람해도 운하로 빼내거나 조금 더 물결이 약해지도록 하여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여신은 자기에게 힘을 가하지 않는 곳에 나타나 그녀를 억제할 장애물이 없고 가두어둘 제방이 없는 곳으로 쳐들어간다.

당신이 만일 이탈리아를 생각한다면 그곳이 이러한 변화와 주장들의 온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는 제방도 운하도 없는 허허벌판의 나라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이탈리아도 독일이나 스페인, 프랑스처럼 방위력을 충분히 길렀다면 홍수의 물결이 그렇게도 큰 재앙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모두 잡아삼켜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로써 운명의 여신에게 도전하는 일반적인 의문이 풀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특수한 경우의 환경에 국한하여 논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어떤 군주는 성격상 약점이나 다른 아무 상황의 변화가 없는데 오늘은 흥하고 다음 날 망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군주들이 운명에 극도로 의존하기 때문에 운명의 여신이 떠나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에 휩싸인다고 생각한다. 또한 군주가 시기적절한 정책을 변화 있게 채택한다면 시류가 변할 때마다 겪어야 할 충돌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번영과 영광을 갈망하는 군주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다. 환경에 따라 어떤 군주는 조심스럽게, 어떤 이는 성급하게 행동한다. 어떤 이는 폭력을 휘두르고, 어떤 이는 교묘하게 속인다. 어떤 군주는 인내로 극복하고, 어떤 이는 매사에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천태만상의 인간들이 각자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 있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동원한다.

이처럼 서로 행동양식이 다른 사려 깊은 두 종류의 인간 중에서 한 사람은 그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할 것이다. 성급한 사람이나 매우 조심성 있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법을 쓰지만 성공률은 똑같다. 이러한 결과는 그들이 채택한 방법이 시기에 맞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시기에 맞지 않았느냐 하는 데서 생기는 차이이다.

이미 내가 말한 것처럼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였으나 같은 결과에 도달할 수도 있다. 동일한 방법으로 일을 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다른 사람은 실패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은 취한 방법이 시기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덧없이 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인간이 인내심이 있고 조심성 있게 행동하며, 환경과 시류가 그러한 인간을 요구한다면 그는 시류에 맞아 번영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시류에 맞추어 행동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기 자질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행동하기가 쉽지 않으며, 언제나 한 가지 방식으로 행동하던 습관이 들어 자기 자신이 스스로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성 있는 인간에게 시대가 성급하게 굴도록 재촉하여도 적응하지 못하며 결국은 비운에 빠진다. 만일 군주가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성격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 행운의 여신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교황 율리오 2세는 매사에 조급하였다. 그러나 시기와 환경이 그의 성격과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는 항상 성공했다. 볼로냐와의 첫 번째 전쟁을 상기해 보면 그때는 조반니 벤티볼리오(Giovanni Bentivogli)가 살아 있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그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스페인 왕도 반대하였으나 율리오 2세는 아직도 이 전쟁에 대해 협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폭악한 성질과 조급함이 홀로 원정을 떠나도록 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스페인과 베네치아를 당황시키고 꼼짝 못하게 했다. 베네치아는 공포에 떨어서 그랬고, 스페인은 나폴리 왕국 전체를 다시 정복한다는 야망에서 그랬다. 한편으로 그는 프랑스 왕을 그의 편에 끌어들였다. 프랑스가 그의 편을 든 원인은 교황의 행동을 보고 베네치아를 압박하기 위하여 그의 지원이 절실히 요청되었고 교황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군대의 원조를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황의 다른 행위는 논하지 않겠다. 모든 행동이 이와 비슷했으며 모두 성공적이었으나 그가 교황으로서 단명하였던 이유는 자신의 성질에 반대되는 행동을 허락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조심성 있는 행동이 필요한 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파멸하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 성질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이제 결론을 내자. 행운의 여신은 성격이 완고한 인간 앞에서는 변덕을 떤다. 행운의 여신과 일치하는 정책을 쓴 군주는 번영을 얻는다. 그렇지 못할 때는 여신과 군주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다. 나는 용감한 것이 신중한 것보다 좋다는 견해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행운이란 여성과 같아서 그녀를 순종하게 하려면 폭력과 강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해 보면 그녀는 냉정한 사람보다 난폭한 사람에 의하여 정복당한다. 과부는 언제나 청년을 좋아한다. 청년은 점잔을 빼지 않고 언제나 정열적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그녀에게 담력 크게 명령만 하지, 절대로 사정하는 일이 없다.



제26장

야만인들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


내가 지금까지 논한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오늘날의 이탈리아 군주를 이해하고 영광을 얻을 시대인가 아닌가 내 자신에게 스스로 묻는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이 새로운 명령자로 등장한 사려 깊고 유능한 인간에게 명성을 얻게 하고 모든 백성이 부유하며 이탈리아의 모든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많은 여건으로 보아 새로운 군주에게 현재보다 더욱 적당한 시기가 언제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말한 것처럼 모세가 그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인이 이집트의 노예가 되는 것이 필요했다. 키루스의 위대함이 인정된 이유는 메디아인(Medes)에 의해 압박받는 페르시아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Theseus)의 탁월함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아테네인이 분산되어 있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정신이 무엇인가의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는 지금 더욱 처절해져야 한다. 이탈리아는 히브리인들보다 더 지독한 노예가 되어야 하며, 아테네인의 분열보다 더욱 산산조각이 나야 하며, 페르시아인들보다 더욱 압박을 받아야 한다. 또한 지도자가 없어야 하며 무법천지가 되어 충돌하고 약탈당하며 찢기고 짓밟혀야 한다. 이탈리아는 모든 종류의 황폐함을 견뎌보아야 한다.

예전에 이탈리아에는 신의 속죄함을 받아 나라를 구할 것처럼 모인 빛나는 인물이 있었다.79) 그러나 얼마 후에 보니 그는 그의 일생 중 가장 찬란한 시기에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생명력을 잃은 이탈리아는 상처를 씻어주고 롬바르디아 지방의 약탈에 끝장을 내며 토스카나와 그 왕국에 과중한 세금의 압박을 해제해 주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곪아터질 듯한 상처를 고쳐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보라, 이탈리아가 야만적인 잔인성과 압박에서 구해지길 신에게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를! 보라, 만일 어떤 자가 깃발을 올리기만 하면 그 기수를 따르고자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가를!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행운과 지혜가 있고 하느님과 교회의 축복을 받으며 교회의 최상급의 위치에 오른 훌륭하신 당신 일가가 아니면 노예 상태의 이탈리아를 구해줄 사람은 찾을 수가 없다. 이 일을 하려는 당신이 내가 지금까지 말해온 위인 등의 치적과 생애를 마음속 깊이 새긴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거론한 위인들도 탁월하고 기억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나 그 외에 누구도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는 갖지 못했다. 그들의 정치적 의견은 정당하지 않았으며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당신이 당신을 축복하는 것과 같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도 않았다. 우리의 희망에는 위대한 정의가 있다. 왜냐하면 필요한 전쟁은 진짜 전쟁이며, 전쟁에서 무기밖에 희망을 걸 것이 없다면 그 무기는 신성하기 때문이다.80)

이탈리아는 당신을 맞이할 오랜 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당신이 내가 찬미한 인물들과 겨룰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의 노여움도 들리지 않고 있다. 바다는 갈라져 길을 터주고 구름은 당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바위틈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고 신이 보내는 양식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모든 일이 당신의 위대함을 격려하고 있다. 남은 것은 당신의 뜻이다. 신은 모든 일을 자기 혼자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빼앗으려 하지 않으며, 우리들의 몫인 영광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지적한 인물 중에 당신 일가가 해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를 먼저 해준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수많은 혁명이 일어났고 수많은 전쟁을 하였지만 군인들의 사기가 늘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옛 군사조직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당시 이탈리아의 군대를 참신하게 개혁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새로운 통치기구를 창설하는 것보다 군주에게 큰 명예를 주는 것은 없다. 이 법률과 통치기구를 굳게 하는 토대를 건설하고 훌륭하게 운영할 때 국민들은 군주를 찬양하고 존경할 것이다.

지금 이탈리아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개혁할 시기는 아니다. 우리의 지도자는 부족함이 없고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도 큰 용기에 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투와 군인들의 조그마한 전투를 보라! 이탈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힘이 강하고 재주가 좋으며 지혜로운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군인에게 있다. 군인의 약점은 지도자의 허약함 때문에 생긴다. 능력 있는 장군은 이를 거부한다.

모든 인간이 서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용기와 행운을 얻어 다른 사람을 지배할 만큼 똑똑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결과로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전쟁을 하였으며 그렇게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이탈리아 군대만으로 전투에 임했을 때에는 항상 패배하였다. 타로(Taro)의 싸움이 그랬고 알렉산드리아(Alexsandria)와 카푸아(Capua), 제노바(Genova), 바일라(Vaila), 볼로냐(Bolona), 메스트리(Mestre) 전쟁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이름 높은 당신의 집안이 자기의 조국을 구한 위인의 행적을 뒤따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백성으로만 구성된 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에 자기 군대보다 더 충성스럽고 진실하며 훌륭한 부대가 있으랴. 이 군대는 개개인이 훌륭하므로 군주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군주가 명예를 주며 군대를 유지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전군의 작전은 더욱 훌륭해진다.

이탈리아의 힘으로는 침략자를 쳐부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국민병을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

스위스와 스페인의 보병이 막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도 약점이 있으므로 이들보다 유능한 제3의 군대가 출현한다면 그들을 전투에서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보병은 기마대와 맞서지 못하며, 스위스 군대는 자기들과 힘이 비슷한 보병부대를 만나면 무서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스페인의 보병은 프랑스의 기병에 대항하지 못하고, 스위스 군대는 스페인의 보병에 패배한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한 바와 같다.

스위스병의 비겁함을 증명하는 완전한 예를 찾을 수는 없으나 스위스와 동일한 작전을 폈던 독일 군대와 스페인의 보병이 싸웠던 라벤나(Ravenna) 전투에서 약간의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교전 중에 스페인군은 독일군의 창에 대항하기 위해 아래위로 방패를 민첩하게 잘 이용하여 태연하게 공격하였다. 독일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독일군의 기병대가 합세하지 않았다면 스페인군은 독일군을 섬멸하였을 것이다.

이제 스페인과 스위스 보병의 약점을 안 당신은 기병과 싸워서 이길 수 있고 다른 보병과 싸워도 지지 않을 새로운 형태의 군대를 창설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군인을 모으고 새로 군대를 조직하여 당신의 왕국을 확고하게 하라. 이러한 종류의 새로운 군대를 국민에게 선보인다면 당신은 새로운 군주로서 위대함을 알리고 모든 백성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오랜 세월을 보낸 이탈리아는 이제 구원자를 만났으니 이 기회를 헛되이 보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외국의 압제 아래 고통받던 이탈리아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호의를 가지고 환영하는지, 복수에 어린 간절한 소망과 절대적인 충성심과 헌신, 눈물로 당신을 얼마나 환영하는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어떤 성문이 당신을 가로막을 것인가? 어떤 백성이 당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려 할 것인가? 누가 당신의 길을 질투할 것인가?

이탈리아의 어느 누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것인가. 그런 야만적인 횡포는 모든 사람의 코에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러므로 위대한 이 위업이 달성되도록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당신께서 맡아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깃발 아래 우리 조국이 고귀해지고 당신의 보호 아래 페트라르카(Petrarca)가 한 말81)이 이루어지도록 하소서.

광폭에 대항하는 미덕을 쌓으러 나가자!

전투는 곧 끝나리라.

로마인의 용기는 죽지 않았고, 이탈리아의 가슴은 타오르고 있다.



해설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58세를 일기로 1527년에 세상을 떠난 정치이론가요 역사가이자 관리였다. 피렌체 공화국의 10인 위원회 서기장을 역임하기도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외교적 사명을 띠고 대사역을 하기도 하였으며 로마교황을 상대로 궁중을 드나들기도 하였으나, 음모자로 낙인 찍혀 관직에서 쫓겨난 후 피렌체 근교 세인트 안드레아 근처의 산장에 은거하며 가난과 불운 속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왜 수백 년 동안 인구에 회자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군주론이라 일컬어지는 이 책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은거 생활 중 로마사를 쓰던 붓을 꺾고 1513년 7월부터 12월 사이 단 4, 5개월 만에 쓴 책이며, 집필 의도는 책으로 발행하려는 저술 활동은 아니었고, 당시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메디치가에 바치려는 개인적인 기술이었다.

14세기 이탈리아는 수많은 도시국가와 군주국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략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에 군사와 내정을 담당한 일이 있는 마키아벨리로서는 나약한 이탈리아와 강력한 프랑스가 엮어낸 역사와 현실을 보고, 이탈리아를 살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주의 출현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고, 그때 마침 새로운 군주가 보다 정열적인 통치를 하는 것을 보고 편지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어떤 논리적 체계를 앞세우는 데 중점을 둔 이론서라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직관과 육감과 혜안으로 짧은 기간 내에 속을 털어놓고 쓴 글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권력을 장악한 군주가 어떻게 해야 군주는 군주대로 강력해지고, 그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는 국가대로 강력해지며, 그러한 군주와 국가가 어떻게 해야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다시 말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도덕성이나 정권의 정통성보다 권력의 운용 체제나 방식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집필 활동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행위였다. 종교적 색채가 진한 시대에 살면서 인륜이나 도덕, 그리고 신의 섭리를 강조하지 않고 오직 군주의 권위, 군주가 가지고 있는 권력의 유지 운용수법에 매달리는 듯한 글은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글을 써서 보낸 14년 후에 죽었고, 그가 죽은 지 5년 후인 1932년에 이 글은 책으로 간행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그 후 500년간 이 지상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루소나 몽테스키외보다 정치적으로 더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되었고, 그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글이 공개되자 1599년 로마교황청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포함한 모든 저작물을 금서목록에 올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하였고, 세상에 그의 저작물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만들었다.

둘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1740년에 반마키아벨리론을 발표하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군주에게 악덕을 권한 책이라고 매도하였다.

셋째, 이 글이 수백 년간 거론되는 과정에서 마키아벨리라는 저자의 이름이나, ‘군주론’이라는 글 자체보다 더 유명한 새로운 단어가 탄생하였다. 바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단어이다. 마키아벨리가 누구이고 ≪군주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 세상이 되었다.

이 세 가지 사례만 본다 하더라도 이 책이 가지는 정치학적인 의미가 얼마나 지대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키아벨리를 악마라 하고, 어떤 사람은 그를 악마의 대변자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마키아벨리를 역사상 가장 비열하고 음흉한 자라고 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대부라고 한다.

이러한 혹독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근대 정치학을 개척한 책으로 평가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오히려 이 책은 사상 최대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정치학 고전의 하나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자가 보기에는 단견인지는 모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큼 시대적인 상황을 뛰어넘은 권력 운영체제에 관한 솔직한 고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로마사 논고≫ 이외에 ≪정략론≫, ≪피렌체사≫ 등과 같은 저서를 남겼으며, 연극 작품으로 <만드라골라>, 풍자시로 <황금의 나귀> 등 많은 글을 남겼다.






1) 로렌초(Lorenzo)는 피에르 데 메디치의 아들이며 레오 10세(조반니 데 메디치)의 조카로 1492년에 태어나서 1519년 젊은 나이에 죽었다. 1516년에 우르비노 대공의 지위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은 초대 피렌체의 대공작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원래 이 책을 ‘위대한 로렌초’라 불리던 동명의 그의 조부, 로렌초의 아들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바치려고 했던 것 같다.


2) 흔히 우리가 말하는 ≪군주론(De PRINCI PATUS)≫이라는 책의 제목은 없었고, 마키아벨리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주론≫이라는 정치서적을 쓰고 있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3) 자신의 비운을 탓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에 대한 뜻을 다시 펴보려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4) 군주국가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지배원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정복과 투쟁의 연속이다. 마키아벨리는 자국의 힘이 없으면 타국의 힘을 빌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또한 국가의 힘과 전략을 중요하게 여기되 때로는 행운에 의한 군주의 영광도 배제하지 않았다.


5) 마키아벨리의 공화국에 관한 논설은 그의 다른 저서인 ≪정략론≫의 첫 부분에 있다. 이것은 1521년에 집필한 책으로 ≪군주론≫과 같은 무렵에 쓴 것이다.


6) 페라라 공작은 페라라 공국의 군주로서 1471년부터 1505년까지 생존한 에르콜 에스테(Ercole D’Este)를 말한다. 공작 1세였던 이복형제 보르소 에스테로부터 승계되었다. 13세기 초부터 페라라에서 군주의 문을 열고 이어왔다. 그는 나폴리 왕국의 딸과 결혼하였다. 1481년 베네치아 왕국과 경제적 이해관계와 영토문제로 충돌하였다. 이 전쟁에 수많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참전하였고, 페라라는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 프랑스가 밀라노를 정복한 1499년에는 프랑스 왕궁에 출두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7) 마키아벨리가 원본에 쓴 용어는 이탈리아어로 ‘addentellto’라는 단어이다. 이 말은 성벽을 쌓을 때 다음의 증축을 위해 성벽 끝에 남겨둔 삐죽 나온 부분을 가리키는 건축용어이다. 여기서는 ‘변혁의 필연적 연속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8) 루이 12세(1462~1515)는 샤를 오를레앙의 아들이다. 1498년 샤를 8세의 뒤를 이어 프랑스 국왕이 되었다. 즉위와 함께 밀라노와 나폴리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우선 그는 알렉산데르 6세와 흥정하여 루이 11세의 딸인 그의 아내 잔느(Jeanne)를 버리고 그에게 결혼 지참물로 브리타니아 땅을 가지고 올 샤를의 미망인과 결혼하였다. 1499년 그는 베네치아와 조약을 맺어 밀라노를 분할, 그해 가을 밀라노에 진입했다. 1500년 11월에 스페인과 비밀협정을 맺어 나폴리를 분할하기로 하고 1501년 프랑스 군대를 보내어 나폴리를 침공했다. 다음 해에 프랑스와 스페인이 충돌하였고, 1503년에 프랑스 군대는 가릴리아노에서 섬멸당하였다. 몇 년 후 루이 왕은 스페인과 교황 및 제국들과 조약을 맺고 베네치아 지방을 분할하기로 했다. 이것이 캉브레 동맹이다.

베네치아인들은 1509년에 아냐델로(또는 바일라)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에 완패당하였다. 프랑스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자 전쟁의 열의가 식게 되었고, 교황 율리오 2세는 베네치아인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교황 사이에 적대의식이 높아져 마침내 루이 왕은 전체 평의회를 소집하려다 크게 실패하고 교황 율리오 2세는 신성동맹(Holy League)을 결성하는 데 성공했다.

1512년 프랑스는 라벤나 전투에서 이겼으나 사령관 가스통 드 푸아가 여기서 전사하였다. 라벤나 전투 이후 프랑스는 차차 후퇴하여 마침내는 루이 왕이 회복해 놓은 모든 이탈리아 지역에서 밀라노와 제노아의 성주만 남게 되었다.

1512년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1513년에는 교황 율리오 2세가 사망했다.

1513년 루이 왕은 밀라노에 대항하기 위하여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었으나 프랑스 군은 노바라 전투에서 스포르자의 용병인 스위스인 부대에 대패했다. 1515년 초 루이 왕을 이어서 프랑수와 1세가 왕위에 오르고, 이 왕은 즉위한 지 몇 개월 후에 대병력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9) 루도비코(Ludovico)는 밀라노 대공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자와 비앙카 마리아의 아들이다. 1476년 그의 조카 잔 갈레아초 밀라노의 섭정으로 정권을 잡았다. 페라라 공의 딸 베아트리체 데스테와 결혼하고 나폴리, 피렌체와 삼각동맹을 맺어 그의 지위를 강화하였다. 잔 갈레아초가 아라곤의 이사벨라와 결혼하자 나폴리는 신랑을 지지하게 되고, 이 때문에 루도비코는 프랑스와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는 샤를 8세의 침입에 호의로 대했고 침공 직후 잔 갈레아초를 죽였는데 아마도 공작의 지위를 탐내던 루도비코가 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의 계속적인 침공에 그는 1495년 베네치아 동맹(League of Venice)에 가입하였다. 프랑스 군대가 물러간 후 그는 프랑스와 개별적으로 조약을 맺었다. 루이 12세가 즉위하자 밀라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쳐들어갔다. 그는 이미 오를레앙 대공으로서 밀라노 대공의 칭호를 받고 있었다. 1년 후 반란이 일어나 루도비코는 돌아왔으나, 1500년 프랑스의 군대에 다시 패했다. 그는 프랑스의 로슈성에 갇혀 여생을 마감했다.


10) 여기서 그리스라 함은 고대국가의 그리스이며 발칸반도 전역을 가리킨다.


11) 집단이주 정책은 고대 로마의 콜로니아에서 착상된 듯하다.


12) 안티오코스 3세(Antioqus III)는 시리아의 왕이었으며, 기원전 242년에서 187년까지 생존했다. 로 마와의 적대감정으로 장기간 싸웠다.


13) 소모성 질병은 인체의 힘을 서서히 소모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으로 폐결핵·당뇨병 등을 꼽는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마키아벨리 시대에 이런 병을 초기에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14) 샤를 8세는 프랑스 국왕으로 이탈리아를 침략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탈리아 원정 중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매료되어 프랑스에 르네상스를 전파했다. 그가 즉위한 뒤 영국은 프랑스에 있던 영토 중 칼레만 남기고 모두 잃었다. 그는 많은 세제 개혁과 군사 개혁을 단행하여 프랑스 왕국의 힘을 크게 강화했다.


15) 만토바 후작은 1495년 포르노보 전투에서 이탈리아 군대를 지휘한 프란체스코 곤차가 장군이다.


16) 이들의 구체적인 이름은 Astorre Mantredi, Giovanni di Costanzo, Storza, Pandolfo, Malatesta, Giulio Cesare da Varano, Jacopo degli Appiani이다.


17) 알렉산데르 6세는 1492년에 교황으로 뽑힌 추기경이다. 1503년에 사망했다. 사생활이 문란하고 자신의 사생아들을 지나치게 편애 보호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그의 행정 수완은 유능했다.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 그리고 프랑스와 스페인 전쟁 등 로마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어려운 문제를 겪게 된 인물이다.


18) 당시 나폴리 왕국의 군주는 아라곤(Aragon)이었으며, 1501년에 프랑스 군대에 항복했다.


19) 로마냐는 로마 교황령의 동북부 지역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그 지역이 어디인지는 아직도 명백하지가 않다.


20) 조르주 담부와즈는 루앙 대주교로 1460년에서 1501년까지 생존했다. 루이 12세의 가장 유력한 고문으로 그의 이탈리아 통치를 많이 지도하였다. 1498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 의하여 추기경이 되었는데, 이는 루이 왕과 교황 사이의 흥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21) 체사레 보르지아(발렌티노 공작)는 1476년경 로드리고 보르지아 추기경(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는 한 번도 사제 노릇을 한 일이 없으나, 1493년 그가 부제로 된 후 자기 스스로 성직을 포기하고 프랑스로 가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루이 12세와의 조약을 교섭하고, 루이 왕으로 하여금 샤를 8세의 미망인과 재혼하도록 특별 사면을 주고 나폴리를 정복하기 위해 교황과의 동맹을 주선했다. 이때 루이 왕은 독립자치 지역으로 교황의 명목상 통치를 받고 있던 로마냐 지방을 이 사람이 정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약속하였다. 그가 1501년 봄 로마냐 지방의 7개 도시를 함락시키자 교황은 그를 로마냐의 대공으로 삼았다. 1502년 교황은 카메리노 지방과 우르비노 지방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작전이 성공한 후 자기의 용병들로부터 반란이 일어났으나 세네갈리아에서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해 버렸다. 1503년에 교황은 사망하고 그가 세운 나라는 그의 아버지가 죽자 무너졌다. 그 자신은 여러 가지 불행을 겪다가 1507년 스페인에서 죽었다.


22) 알렉산더(M. AuRius Alexander)는 기원전 356년부터 323년까지의 마케도니아의 황제이다.


23) 원어로는 산자크(Sanjak)이며 행정 직할 영토를 말한다.


24) 다리우스(Darius) 3세는 페르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기원전 336년에서 330년까지 통치했다.


25) 피로스(Pyrrhos)는 기원전 318년에서 272년까지 생존한 에피루스국의 국왕이다. 그는 마케도니아를 정복했었고 이탈리아에서 로마인들과,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인들과 전쟁을 했다.


26) 키루스(Cyrus)는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이며 기원전 529년에 전사했다.


27) 로물루스(Romulus)는 전설에 나오는 로마왕국의 창시자이며 초대왕이다.


28) 테세우스(Theseus)는 아티카(Attica)의 전설에 나오는 영웅으로 아게우스의 아들이며 아테네의 왕이었다.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에서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죽인 것을 비롯하여 공적이 많다.


29)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는 1452년에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조용히 지냈다. 1480년 초에 플로렌스의 성 마르코 수도원에 들어갔다. 1491년께 그 수도원의 부원장이 되자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많았다. 메디치 일가가 추방된 후로는 그의 경고가 들어맞았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로 커져 1494년에서 1497년 사이에 절정에 달했다. 1497년에 채택한 공화헌법은 대체로 그가 작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열광적인 지지도 받았지만 심한 반대가 움트기 시작했다. 교회를 공개 비판했기 때문에 교황의 비위를 거슬러 파문당하고, 이어서 곧 플로렌스 시민들의 신망을 잃었다. 1498년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 처형되었다.


30) 여기서 히에론(Hiero)은 시라쿠스의 왕 히에로 2세를 가리킨다. 귀족의 일원이었으며 기원전 270년 마메르티노인들을 정벌한 후 통치자가 되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시초에는 카르타고를 지원했으나 후에 로마와 화해하고 그 후 내내 로마와 제휴했다.


31) 이탈리아어로 다음과 같다.

“Guod nibil illideerat ad renandum Praeter regnum”


32) 오르시니(Orsini)는 로마의 영주로서 케사르 보르지아의 초기에 그의 용병으로 이용되었다.


33) 콜론나(Colonna)는 로마의 귀족으로 13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34) 시그노르 파울로(Signor Palo)는 오르시니의 우두머리였다.


35) 레미로 데 오로코(Remirro de Orco)는 케사르 보르지아의 우두머리였고, 1501년에 로마냐의 군주로 임명되었다. 1502년에 사망했다.


36) 발리오니(Baglioni)는 페르기아 교황령의 지배자였다. 14세기에 권력을 잡아 전성기를 누렸다.


37) 비텔리(Vitelli)는 커타 디 카셀로의 귀족으로 이루어진 로마의 한 국가이다.


38) 아가토클레스(Agathocles)는 기원전 317년에 시라쿠사의 지배자로 선언한 후 카르타고가 지배하던 곳을 뺀 전 시칠리아를 통치했다. 기원전 310년에 카르타고에게 대패하고 교묘히 전선을 아프리카로 옮겼다. 국내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도시가 늘어나 다시 귀국해서 평정했으며 카르타고와 화해했다. 기원전 289년에 사망했다.


39) 올리베로토(Oliverotto)를 지칭하는 시대는 1501년이다. 그는 1502년에 세네갈리아에서 교살당했다.


40) 비텔로조(Vitelozzo)는 파올로 비텔리의 형제이다. 체사레 보르지아에 봉사했으며, 1502년에 세니갈리아에서 살해당했다.


41) 나비스(Nabis)는 스파르타의 폭군으로 특히 그의 잔인성은 후세가 주목할 만하다. 기원전 192년 필로포멘에 의해 전투에서 패망한 직후 살해당하였다.


42) 그라쿠스 형제(Gracchus)는 로마의 귀족이다. 그들의 과격한 개혁정책은 시민계급의 지지를 받던 원로원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폭동이 일어난 후 그의 추종자들은 무참히 죽음을 당했고, 그 자신도 자신의 노예에게 죽음을 당했다.


43) 스칼리(Scali)는 피렌체의 지도자로 정권을 잡았으나 시민계급의 지지를 상실하고 귀족들의 반란으로 망했다. 그가 피렌체의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용감한 행동은 본받을 만하다.


44) 베니스는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1482년에 페라라에 선전포고하였다. 이때 베니스에 대항하는 식스투스 4세, 나폴리, 밀라노와 피렌체의 동맹이 형성되었다.


45) 에파미논다스(Epamiunodas)는 4세기경에 살았던 테반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46) 조반니 아쿠토(Giovani Acuto)는 존 호크우드라는 사람으로 이탈리아에 귀화하였다. 본래 에섹스 태생이며 프랑스에 봉사했고 에드워드 3세가 작위를 주었다. 1306년에 자신의 소규모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용병으로 갔다. 이탈리아의 속담에 “귀화한 영국인은 악마의 화신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영국 용병이 배반한 첫 케이스이다.


47) 브라치오(Braccio)는 1368년에 나서 1424년에 죽었다. 알베르시오 다바비아노 밑에서 훈련된 용병대장으로 나폴리의 조안나 군에 대항하여 싸우다 죽었다.


48) 카마놀라(Camagnola)는 1390년경에 태어났다. 1425년에 베니스의 용병으로 채용되었고 한동안 베니스와 피렌체 연합군의 사령관이기도 했다. 배신행위를 의심받아 베니스에 의하여 1432년에 처형되었다.


49) 피티글리아노 백작은 1442년에서 1510년까지 생존했다. 베니스의 용병대장으로 바일라 전투의 연합참모장이었다.


50) 바일라 전투는 1509년에 발생한 전쟁이다.


51) 알베리고 다 코니오는 로마냐의 쿠니오에서 백작을 지냈다. 14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용병으로 크게 활약했던 그는 ‘성 조지’라는 용병회사를 창설하였으며, 오직 이탈리아만 도와주었다. 1409년에 사망하였다.


52) Quod nibil sit tam infirmum aut instabile quam fama potentiae non sua vi nixa.


53) 필로포에멘은 아카이아 연맹의 명장으로 그는 강력한 군사적 기반을 닦고 아카이아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기원전 208년에 초대 장군으로 선출되었다.


54) 아킬레스는 ≪일리아드(Iliad)≫에 나오는 영웅이다. 전설에서 나오는 인두마신(人頭馬神)인 피닉스와 키론에게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55) 스키피오는 기원전 234년에 태어나 183년에 죽었다. 로마의 위대한 장군으로서 스페인과 아프리카를 석권했다. 그는 한니발(Hanibal) 대군과 대결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부정부패의 죄로 피소되어 로마에서 은퇴했다.


56) 키루스는 페르시아제국의 창설자로, 기원전 529년에 전사했다.


57) 크세노폰은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 사람이다. 키루스의 휘하에 있던 그리스 군대와 협력하여 401년에 아르타크세레크세스와 싸웠다.


58) 피소토이아는 피렌체의 도시로 1501년에서 1502년 사이에 두 당파 간의 혹심한 분쟁이 발생하여 유혈, 파괴, 약탈이 심했다. 마키아벨리도 이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일에 관여했었다.


59) Res dura, et reqni novitas me talia coqunt Moliri, et late fines custode tueri.


60)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로마의 영사로 다섯 번이나 일했으며, 한니발에 대항하던 전시인 기원전 217년에 지배자로 임명되었다. 모든 정책에 소극적이었던 대표적인 인물로서 비난을 받았다. 기원전 203년에 사망했다.


61) 마키아벨리가 이름을 감춘 사람은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이다.


62) 칸네스키는 볼로냐의 세도가였다. 베니스와 피렌체에 대항하는 밀라노를 지원하였다.
1445년에 이 가문의 우두머리가 경쟁자인 벤티볼리오에 대항하여 정권을 잡고자 했다. 안니발레 벤티볼리오를 살해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국민의 저항이 심하여 칸네스키는 그 도시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


6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28년에 출생하여 180년에 죽었다. 왕국의 말년에 열심히 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직면했다.


64) 콤모두스는 180년에서 193년까지의 로마 황제. 아버지의 왕권을 계승하고 통치하는 동안 백성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정치를 하였다.


65) 페르티낙스는 193년에 몇 달 동안 재위한 로마의 황제.


66) 율리아누스는 193년에 페르티낙스가 피살된 후 로마의 황제로 추대된 사람이다.


67) 세베루스는 193년에서 211년까지의 로마 황제. 146년에 태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콤모두스 밑에서 장군으로 있었다. 193년에 부하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가 되었고 로마로 진격했다.


68) 카라칼라는 211년에서 217년 사이의 로마 황제. 세베루스의 아들로서 그와 그의 형제 게타(Geta)와 함께 아버지의 대를 이었다. 212년에 게타는 피살되었고 혼자 지배자가 되었다.


69) 마크리누스는 217년에서 218년까지 재위한 로마의 황제이다. 세베루스에게 헌신한 비천한 가문 출신으로 후에 황제가 되었다.


70) 엘라가발루스는 218년에서 222년의 로마 황제.


71) 마키아벨리가 인용한 로마제국은 마르쿠스 시대로부터 고르디아누스 3세까지이다.


72) 마키아벨리 시대의 오스만의 지배자는 셀림 1세(Selim Ⅰ)였고, 술탄은 이집트의 지배자를 의미한다.


73) 겔프파는 교황파, 기벨린파는 황제파.


74) 페트루치는 자신이 1502년에 창건한 시에나의 지배자이다. 피렌체가 의심한 동맹국이었으며, 마키아벨리는 그와 협상하기 위하여 여러 번 만났다.


75) 마키아벨리는 그라나다에서 14세 이상 되는 자로서 세례를 받지 않은 모든 무슬림을 1502년에 추방시킨 일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76) 베르나보는 형제와 함께 밀라노 영지를 1354부터 1385년까지 다스렸다. 1385년에 투옥되어 자기의 조카인 기엔 갈레아조에게 처형당했다.


77) Quod autem isti dicunt non interponendi vos bello, nibil magis aliennum rebus vestris est, sine gratia, sine dignitate, Praemium victoris sritis.


78) 베나프로는 시에나의 판돌프 페트루치의 대사직과 고문을 지내며 그가 훌륭한 군주가 되도록 많은 조언을 한 충신이다.


79) 아마도 체사레 보르지아를 가리키는 듯하다.


80) Iustun enin est besllun quibus necessarium et pia arma ubi nulla nisi in arnis spes est.


81) Virtu eontro a furore Prendera l arne e

fia el combatter cortoj

che l’antico valor

Nell’ italici cor non e’ancor moroto.